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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연 님의 서재입니다.

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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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3.23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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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람의 계승자 - 생존자니까 살아남는다(14)

DUMMY

나젠크루거 일행이 다시 말을 몰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자정을 넘긴 시각이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둠이 깔려있었기에 일행은 각자가 든 횃불에 의존한 채 천천히 이동하고 있었다.

멀리 그믐달이 아련하게 빛을 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마저도 곧 흘러온 구름에 가려져 버렸다. 암흑만이 질펀하게 내려앉은 공기는 근처에 물보라가 날린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습기가 차있었다.

횃불이 앞길을 비추자 어둠에 묻혀 있던 사물들이 기웃기웃 모습을 드러냈다. 대부분은 나무와 바위였지만, 이따금 먹이를 찾아 나선 들짐승들이 불빛에 놀라 후다닥 수풀 속으로 몸을 숨기곤 했다. 천지를 뒤덮은 암흑 속에, 횃불이 내는 작은 불빛만이 일행의 앞길을 비추고 있었다. 눅눅한 밤바람이 일행을 스치고 갈 때마다 불꽃은 금방이라도 꺼질 것처럼 위태롭게 흔들렸다.

루도는 말 위에 앉은 채 끄덕끄덕 졸고 있었다. 쏟아지는 졸음에 고개를 떨어뜨리던 그의 목이 급기야 앞으로 쓰러질 듯 기우뚱 기울어졌다. 루도는 화들짝 놀라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눈을 비비며 앞을 보니 안젤리카는 이미 깊게 잠들어 있었다. 그녀는 모포를 꼬옥 쥐고는 루도에게 기댄 채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납치범들은 오후에 전속력으로 달리던 것과는 달리, 지금은 가벼운 경보(trot)정도로 말을 몰고 있었다. 말들의 피로가 충분히 회복되지 않았다는 것도 있었지만, 시야를 확보하기 어려운 깊은 밤중에 말을 달리는 것은 극도로 위험하다는 이유가 더 컸다. 덕분에 말 위에서 느껴지는 규칙적인 흔들림은 아이를 어르는 토닥거림처럼 기분이 좋았다. 아이들은 금세 잠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우응.....”


안젤리카가 잠결에 몸을 뒤척였다. 루도는 그녀가 떨어지지 않도록 어깨를 끌어 균형을 잡아주었다. 말에 오를 때 천천히 간다는 설명을 듣자 안젤리카는 옆으로 앉는 것을 택했다. 원피스를 입고 있어 다리를 벌리기 불편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덕분에 지금 그녀는 루도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은 채 편안하게 수면을 취하고 있었다.

루도와 안젤리카는 토드의 말에 같이 탔다. 둘은 왜 나젠크루거의 말에 타지 않는지 의아해했지만, 투정을 부릴 처지가 아니었기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나젠크루거는 일행의 맨 앞쪽에서 말을 몰고 있었다.

루도는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워낙 비몽사몽간인 데다 끝이 보이지 않는 숲길의 연속이었기 때문에, 이곳이 어디인지도,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는지도 파악할 수가 없었다. 루도의 고개가 다시 끄덕이기 시작했다.

반쯤 감긴 눈동자 사이로 선두에 있는 나젠크루거의 뒷모습과, 흔들리는 횃불의 불꽃과, 새근거리는 안젤리카의 머리가 보였다. 잠에 빠져서 그런지 눈앞의 광경이 꿈을 꾸고 있는 것 마냥 현실감이 없었다. 마치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 같았다.

그렇게 그대로 잠이 들려는 찰나, 검은 형체가 푸드덕거리며 나젠크루거의 말머리로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뭐야......저건......’


그것은 박쥐였다. 손바닥에 들어올 정도로 작은 그것은 말머리에 내려앉은 채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인데도 도망치지 않는 모습이 제법 신기했다. 루도는 그 광경을 꿈이라 생각하며 다시 눈을 감으려 했다. 거의 감긴 눈꺼풀 사이로 박쥐의 입이 사람처럼 움직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 그 아이인가?”


말하는 박쥐라니, 재미있는 꿈이었다. 루도는 히죽 웃었다.


“......가 가린워드 마을의 생존자라는 거군.”


그 순간 루도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몸을 휘감던 졸음이 순식간에 달아났다. 루도는 실눈을 뜬 채 눈동자를 굴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잠든 안젤리카의 얼굴이 보였다. 꿈이 아니었다.

나젠크루거의 말머리에 있는 박쥐는 분명 말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기척을 보아 뒤에 있는 토드는 그가 깨어났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았다. 루도는 계속 잠든 척하며 그 박쥐를 바라보았다. 박쥐는 나젠크루거와 두런거리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거리가 떨어져 있어 대화내용이 잘 들리지 않았으므로, 루도는 온 정신을 그쪽으로 쏟아 부었다. 어렴풋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추격대인가. 치안경비대 아니면 하급 기사들이겠지. 귀찮긴 하지만 큰 문제는 아니야. 나잔즈 교각으로 사람을 보내겠다. 그들에게 맡기고 너희는 서둘러 귀환하도록.”


“그 부분은 부탁하도록 하죠. 그리고 소년 앞쪽에 자고 있는 은발 머리 여자아이 말인데....”


순간 박쥐의 시선이 루도를 향해 꽂혔다. 미리 자는 척하고 있었는데도 들킨 것처럼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인상착의는 확실히 비슷하군. 하지만 큰 기대는 하지 마.”


나젠크루거가 어깨를 흠칫했다. 루도에게는 그의 뒷모습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왠지 그의 얼굴이 일그러진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이렇게 비슷한 아이는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 하지만 잊지 마라. 베릴의 아이가 소환될 때 보았던 빛은 아스트리카 왕국 쪽이었다는 것을. 얼핏 보니 귀족의 영애 같은데, 그녀를 보았을 때 근처에 류이너스 교단의 움직임이 있었는가?”


“특별한 움직임은 없었습니다.”


“만약 베릴의 아이가 리크나이츠로 와있다면 교단 측에서 알지 못했을 리가 없어. 그래도 혹시 모르니 보고는 해두지. 그럼 이만.”


이야기가 끝나자 박쥐가 다시 날개를 퍼덕거리며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어둠 속으로 그 모습이 녹아들 찰나, 나젠크루거가 박쥐를 불러 세웠다.


“잠깐. 질문이 남아있습니다.”


박쥐는 허공에 멈춘 채 뒤를 돌아봤지만, 그 모습이 뒤편에 있던 루도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나젠크루거가 공중을 향해 말하는 것만 보일 뿐이었다.


“만약 진짜가 아닐 경우에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리고, 저 아이에게서 가린워드 사건의 기억을 캐낸 후의 처분은?”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다만 루도는 말을 타고 있는데도 나젠크루거의 움직임이 순간적으로 완전히 멈추었던 것 같다고 느꼈다.

무거운 침묵이 깔리고, 말발굽 소리만이 귓가를 때렸다. 루도는 박쥐가 했던 말을 곰곰이 되새겨 보았지만, 딱히 도움이 되는 것은 없었다. 그들의 대화를 주의 깊게 들어놓으면 탈출할 때 쓸모가 있을 만한 정보가 나올 거라 생각했지만, 거리가 멀어 자세히 들리지 않았을 뿐더러 대화 내용도 상당히 짧았다.

루도에게 다시 졸음이 찾아올 때 즈음, 잘박이 나젠크루거 쪽으로 붙으며 말했다.


“...어찌 됐든 좋은 꼴은 못 보겠군.”


“.....”


나젠크루거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무언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오히려 곁에 있던 슬라크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흥,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 지금까지 쭉 그래 왔잖아? 건방진 꼬맹이든, 울보 아가씨든, 볼일이 사라지면 결과야 똑같지.”


“꼬마가 진짜라면 명줄이 길어지겠지만, 만약 아니라고 한다면....”


슬라크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즉각 죽여버려야지. 쓸데없는 광경을 많이 봤으니까.”


루도는 입술을 깨물며 새어나오는 비명을 억지로 틀어막았다.


****


밤이 깊었는데도 로샤단의 홀에선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불빛에 이끌린 날벌레들이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따금 큼지막한 녀석들이 창에 부딪힐 때면 돌아온 루도가 노크를 하는 게 아닐까 싶어 황급히 뒤를 돌아봤지만, 번번이 허탕이었다. 유미르네는 멍하니 촛불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다지 세게 분 것이 아니었음에도 촛불이 심하게 일렁였다.

마리네와 유미르네는 걱정이 되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잡혀간 루도도, 그를 찾으러 간 람카디스도 날이 저물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캄캄해져 하릴없이 방으로 돌아가려는 참에, 카토르가 램프를 들고 어슬렁거리며 나왔다.

그는 람카디스가 사용하던 가죽소파에 앉더니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식당에서 맥주를 홀짝거리던 제르칸트가 재미난 구경이라도 발견한 듯 걸어왔다. 아이들도 눈을 반짝이며 촛불에 불을 붙였다.

유미르네가 말했다.


“와아, 카토르 지금 마법 쓰는 거예요? 무슨 마법? 루도를 찾아오는 거?”


카토르는 눈을 감은 채 대답하지 않았다. 갑자기 그가 양팔을 쫙 벌리더니 목을 기묘하게 꺾기 시작했다. 경련이라도 일어난 듯 그의 어깨가 부르르 떨렸다. 유미르네는 곧바로 난색을 보이며 뒤로 물러섰다.


“뭐...뭐하는 거예요? 제르칸트, 카토르가 뭐 하는 건지 알아요?”


제르칸트는 턱을 괸 채 피식 웃었다.


“글쎄다. 저런 모습을 보고 보통은 미쳐간다고 하지 않던가?”


카토르는 우스꽝스러운 자세를 한 채 그대로 굳어버렸으므로, 화려한 마법을 기대했던 구경꾼들은 이내 흥미를 잃고 말았다. 마리네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다시 고개를 떨어뜨렸다.

람카디스 일행이 출발한 후, 마리네는 루도가 납치된 것이 자신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며 심하게 자책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길드 내에 아무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루도가 납치될 당시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던 자신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있었다.

제르칸트는 쓴웃음을 지으며 마리네의 어깨를 두드렸다.


“아직도 자학 중이냐? 그런다고 엎어진 물이 다시 담아지는 것도 아니야.”


마리네는 서글픈 표정으로 촛불을 바라보았다. 빛을 받아 음영이 뚜렷해진 얼굴에 회한이 서렸다.


“그때....유미르네를 부르러 갈 때....루도와 같이 갔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예요. 루도는 같이 가자며 불러 세웠는데...제가 쓸데없는 고집을 부려서....”


“그거야말로 지나친 비약이다 얘. 그렇게 따지면 약속시간에 늦게 나온 내 잘못이 더 큰 거 아니니?”


“하지만....”


서로 자기가 잘못했다며 언성을 높이자 제르칸트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으하하하! 그래, 다들 책임감 하나는 뛰어나서 좋구나.”


그는 아이들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고는 정신이 번쩍 들도록 머리카락을 몇 올 뽑았다. 유미르네가 앙칼진 비명을 질렀다.


“아야얏! 뭐 하는 거예욧!”


“반성하는 건 좋지만, 그것 때문에 실의에 빠지는 것만큼 멍청한 것도 없지. 지금은 녀석이 무사히 돌아오길 기도하는 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는데?”


아이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르칸트는 이야기의 마지막에 마치 남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처럼 말을 맺었다. 유미르네는 이 아저씨가 드디어 환청을 듣는 건가 싶어 입을 비죽거렸다.


“말을 하려면 똑바로 해요. 남 얘기하듯이 돌려서 말하지 말고.”


“아니, 아니야. 난 정말로 들은 대로 전해주는 것뿐이다. 그녀가 나한테 말을 거는 건 정말 오랜만이거든”


“예?”


그 말투가 자못 진지했기 때문에 유미르네는 불안한 얼굴을 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한 명은 미친 사람 마냥 눈을 감고는 양팔을 벌려 날갯짓을 하고 있었고, 한 명은 아무래도 귀신을 보는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자 넘실대는 촛불도, 창문을 두드리는 풀벌레 소리도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유미르네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그나마 정상을 유지하고 있는 마리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리, 아무래도 자는 사람들 깨워야 하는 거 아니니?”


“와아...혹시, 정말로?”


마리네는 환호성을 지르며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조금 전 실의에 빠져 있던 모습과는 달리 눈동자가 이채롭게 빛났다. 어이없어 하는 유미르네를 내버려둔 채 그는 곧장 제르칸트에게 다가갔다.


“제르칸트, 그 검 정말로 말할 줄 알아요?”


제르칸트는 빙긋 웃어 보였다.


“지난 번 검을 집었을 때 목소리를 들었나보구나. 이 아가씨는 말수가 굉장히 적은 편이지. 한번 이야기해볼래?”


그는 검집을 풀러 마리네에게 건넸다. 마리네는 쭈뼛쭈뼛 거리며 검을 받았다. 미쳐버린 3명을 바라보는 유미르네의 얼굴이 괴상하게 비틀렸다.

마리네는 떠듬거리며 검에게 말했다.


“아...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캄블러군.」


“어...제 이름을 아시나요?”


「본의 아니게 예전에 캄블러군이 자기소개를 하던 것을 들었답니다. 제 이름은 아직 모르시겠지요? 저는 에리안델 크류네라고 한답니다. 잘 부탁드려요.」


“네...넵. 잘 부탁드립니다. 저기...크류네님은 사람인가요?”


「후훗. 사람이라면 이런 모습을 하고 있진 않겠지요?」


마리네의 머릿속에 살포시 웃음 짓는 그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굉장히 차분하고 아늑한 목소리였다.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 속의 응어리가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마리네는 계면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역시 그랬구나! 난 그때 환청이 들리기에 제가 정신병에 걸린 줄 알았어요.”


“......”


유미르네가 보기에 마리네는 완벽하게 정신병에 걸려 있었다. 그는 제르칸트의 검을 꼭 쥐고는, 땅바닥을 보며 헤실 거리며 웃었다. 밤이 깊어 떠돌던 귀신에라도 씐 것일까. 귀신이라면 질색을 하는 그녀는 금세 사색이 되어 제르칸트를 다그치기 시작했다.


“이...이봐요, 제르칸트? 마리네 지금 뭐에 홀린 거 맞죠? 당신 교단 사람이라며, 어떻게 좀 해봐요.”


“응? 잘 놀고 있는데 뭘 해. 그나저나 좀 섭섭한걸. 에리안델은 나랑 있을 땐 백날 가도 한 마디도 안 꺼내는데 말이야.”


제르칸트가 투덜대자 마리네가 이내 고개를 들며 말했다.


“그건 제르칸트랑 대화하다 보면 꼭 주제가 음담패설로 빠져서 불쾌해서 그런 거래요. 그런데 음담패설이 뭐죠?”


“끄응...그 녀석이라고 뭐 다를 거 같아? 남자는 나이 들면 다 똑같아.”


“뭐...뭐야 정말! 이 인간들이 지금 단체로 실성해가지고!”


유미르네가 갈피를 잡지 못해 혼란스러워하자 마리네가 히죽 웃으며 그녀의 팔을 검 집으로 잡아끌었다.


"어맛! 얘가 지금 뭐 하는 거야!“


「겁내지 마세요. 발렌스양. 그는 미치지도 귀신에 홀린 것도 아니랍니다.」


“어....어라라?”


에리안델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는 분명히 유미르네에게도 전해졌다.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입을 뻐끔거리다가, 이윽고 손가락을 튕기며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했다.


“나도 드디어 미쳤구나!”


그녀가 미치지 않았으며, 자신이 말하는 검이라는 것을 이해시키느라 에리안델은 진땀을 빼야 했다. 한참 동안 설명을 들은 후에야 유미르네는 반색을 하며 검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우와아, 말하는 검이라는 게 정말 있는 거구나! 이거 진짜 비싸겠는데?”


「파...파는 물건은 아니랍니다. 일단은....」


아이들은 말하는 검에 정신이 팔려 이것저것 말을 걸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잠시나마 우울함을 잊은 것 같자 제르칸트도 싱긋 웃었다.

그때 말없이 날갯짓을 하고 있던 카토르가 갑자기 경련을 일으키며 몸을 꼬기 시작했다.


“우...피피유피...끼요오오오..이히힉? 허헉!”


유미르네는 슬쩍 뒤를 돌아보더니 다시 검에게로 관심을 쏟았다.


“있지, 에리안델. 저기 뒤에 있는 사람은 확실히 미친 거 맞지?”


그렇게 바닥에 푹 고꾸라진 카토르는 잠시 후 비척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는 몰라보게 눈 밑이 퀭해져 있었는데, 며칠 동안 잠도 못 자고 혹사당한 사람 같았다. 정신없이 물 사발을 들이키는 그에게 제르칸트가 말했다.


“어때, 뭐 찾아낸 것 있나? 람카디스나, 루도나.”


카토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두워진 데다 거리가 너무 떨어졌어. 내 패밀리어(familiar)로는 한계야. 도로를 따라 움직이는 불빛을 보긴 했는데, 그게 람인지 납치범인지는 확인이 안 돼.”


“아아, 그렇군요. 하지만....네. 알겠습니다. 크류네씨 말대로 할게요.”


엉뚱한 곳에서 대답이 나오자 카토르는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이내 눈썹을 찌푸렸다.


“언제부터 에리안델이 애들 장난감이 된 거야? 대주교가 보면 기절하겠군.”


제르칸트는 싱긋 웃었다.


“내가 시킨 게 아니라 그녀가 원한 거야. 좋잖아? 풀죽은 애들도 달래고, 그녀에게 호감도 사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카토르는 마음대로 하라는 듯 손사래를 치며 장의자에 쓰러졌다. 그는 이제 자기 방으로 돌아갈 기력도 없는 것 같았다.

에리안델과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누던 마리네는, 얼마 후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제르칸트에게 건네주었다.


“고마워요, 크류네씨. 덕분에 기분이 많이 나아졌어요.”


“흐응, 우리 에리안델 아씨. 꼬맹이들하고 무슨 얘기를 하셨어?”


칼자루를 쥔 채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던 제르칸트는 잠시 후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이것 봐. 나하고는 말도 안 한다니까? 의외로 앙칼진 데가 있어. 마리네, 에리안델이 너한테 무슨 말 한 거냐?”


마리네는 웃으며 말했다.


“위로받았어요. 자책하는 제 마음은 알지만, 지금은 루도가 돌아오길 기도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래요.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면 신께서 반드시 그 소망을 들어주실 거라고 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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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람의 계승자 - 꼬마 레인저(10) +4 15.03.21 1,822 57 9쪽
10 람의 계승자 - 꼬마 레인저(9) +3 15.03.21 1,836 54 12쪽
9 람의 계승자 - 꼬마 레인저(8) +2 15.03.21 1,996 52 11쪽
8 람의 계승자 - 꼬마 레인저(7) +3 15.03.21 1,928 62 11쪽
7 람의 계승자 - 꼬마 레인저(6) +2 15.03.21 2,093 57 11쪽
6 람의 계승자 - 꼬마 레인저(5) +5 15.03.21 2,181 58 20쪽
5 람의 계승자 - 꼬마 레인저(4) +2 15.03.21 2,405 58 10쪽
4 람의 계승자 - 꼬마 레인저(3) +4 15.03.21 2,765 72 12쪽
3 람의 계승자 - 꼬마 레인저(2) +3 15.03.21 3,288 92 14쪽
2 람의 계승자 - 꼬마 레인저(1) +3 15.03.21 4,438 88 15쪽
1 람의 계승자 - prologue +23 15.03.21 7,846 119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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