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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연 님의 서재입니다.

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연재수 :
34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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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9,405
추천수 :
10,757
글자수 :
2,844,987

작성
15.03.21 02:13
조회
2,404
추천
58
글자
10쪽

람의 계승자 - 꼬마 레인저(4)

DUMMY

옆구리의 상처가 완치되어 아무 무리 없이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자, 루도는 마리네와 함께 람카디스에게 검술을 가르쳐 달라고 말했다.


“검술?”


람카디스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졌다.


“루도, 거기 네가 읽고 있는 다음 장 두 번째 줄부터 읽어봐라.”


“그러자 리쿠는 화가 나서 옆에 있던 사과나무를 걷었다.”


“걷어찼다.”


“걷어찼다...”


람카디스는 눈을 지그시 감은 채 한숨을 내쉬었다.


“검술은 왜 배우려고?”


“저, 디리터가 말하길 검을 쓸 수 있으면 늑대도 잡을 수 있다고 그랬고, 그리고...”


람카디스의 싸늘한 표정을 보자 마리네는 시무룩해져서 대답을 얼버무렸다. 람카디스는 한바탕 설교를 늘어놓을 생각으로 팔짱을 낀 채 둘을 쏘아보았다. 마리네는 적절한 대답을 찾지 못해 우물거리며 그의 시선을 회피하고 있었지만 루도는 고개를 빳빳이 세운 채 람카디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길드 홀에 정적이 흘렀다.


“어른이 하는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는데, 검술 같은 거 배워봤자 먹고 살기 힘들다고 말했잖아? 검술 10년 배우는 것보다 책 1년 보는 게 더 안정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단 말이야. 혹시 너희 접때 마을에 음식 사러 갔을 때 그 깡패놈들 보고 가르쳐달라고 하는 거 아니야? 그런 놈들 나중에 커봤자 여기저기 오입질만 하러 다니다가 뒷골목에서 칼 맞고 죽는다니까? 니들 그렇게 살고 싶어? 꼬맹이 자존심 내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냥 잠자코 내 말대로 공부나 해.”


둘은 멍한 표정으로 람카디스를 바라보았다. 그가 이렇게 말을 빨리하는 것은 본 적이 없었다. 아무래도 그는 두 소년이 짧은 치기로 떼를 쓰고 있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며칠 전 음식재료가 다 떨어져 둘은 람카디스, 가크스와 함께 마을 시장으로 간 적이 있었다. 로샤단에만 틀어박혀 있다가 처음으로 델키아의 번화가에 와본 루도는 신기한 표정으로 여기저기를 구경했었는데, 그중 가장 시선을 끈 것이 동네 불량배들이었다. 그들은 대거(Dagger)나 나이프(Knife)를 허리춤에 척 걸친 채 건들거리며 시장 사람들을 위협하고 다녔다. 그들이 친한 척하며 가게 음식을 집어먹어도 누구 하나 먹었으면 돈을 내라며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한껏 시장을 휘젓고 다니던 불량배들은 급기야 장을 보던 동네 처녀에게 치근덕거리기 시작했다.

보다 못한 가크스가 멀리서 경비병을 불러왔다. 그런데 그 경비병은 오히려 가크스에게 “뭘 저런 거 가지고 그러시오? 다 큰 청년하고 아가씨가 연애질을 할 수도 있는 거지.”라며 짜증을 냈다. 가크스와 경비병이 말다툼을 벌이자 불량배들은 그제야 그들을 발견하고는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마리네는 불구경하듯 쳐다보는 람카디스를 보며 잔뜩 볼이 부풀어 올랐다.


“람은 저런 사람들 못 이겨요? 저거 다 깡패잖아요!”


깡패라는 단어에 얼마나 악센트를 넣었는지 주변에 있던 상인들이 전부 마리네를 쳐다보았다. 루도는 그때까지도 멀리 사라져가는 깡패들을 싸늘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람카디스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깡패인 거 나도 알아. 하지만 우린 우리 구역을 관할하는 레인저고, 이 시장바닥을 관할하는 경비병은 따로 있거든. 여기서 칼을 뽑는 것도 안 되지만 저런 놈들 붙잡아서 지구대에 넘기는 것도 엄연히 월권행위야. 경비대장이 청원이라도 올리면 골치 아파져.”


마리네는 기가 막혀서 입만 벌리고 있었다. 불량배들 혼내주는 일도 그 구역 경비병에게 허락을 맡아야 한다니! 가크스 역시 화가 난 듯 얼굴이 험악해져 있었지만 람카디스의 말에 딱히 이의를 제기하진 못했다. “좋은 게 좋은 거지. 저런 놈들까지 신경 쓰면 우리같은 사람은 과로로 쓰러져요.” 경비병은 달래듯이 가크스의 어깨를 툭 치고는 입이 찢어질 듯 하품을 해대며 다시 자기 위치로 돌아갔다.



한창 분위기가 가라앉자 마리네는 고개를 숙인 채 작게 속삭였다.


“피이, 엄마 잔소리하는 것도 아니고.”


“다 들린다.”


자신의 소심한 반항마저 여지없이 들켜버리자 마리네는 얼굴을 붉히며 땅바닥만 바라보았다. 그때 지금까지 잠자코 있던 루도가 입을 열었다.


“람, 그런 깡패들을 가만히 놔두는 게 잘못된 거 아니에요?”


꼬마들 고집도 슬슬 마무리되어가는구나 싶어서 마음을 놓고 있던 람카디스가 놀라서 루도를 바라보았다. 그는 허리를 똑바로 편 채 단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조용히 훈계만 하고 끝낼 생각이었던 람카디스는 반항적인 루도의 얼굴을 보자 본격적으로 화를 내기로 마음먹고는 성난 표정을 지었다. 마리네는 그런 둘 사이에 껴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좋아. 너희들이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도 이렇게 골치만 썩이는 꼬맹이들 애써 데리고 있고 싶진 않다. 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극약처방을 써야겠다는 생각으로 아이들을 협박하려는데, 갑자기 루도가 말을 끊었다.


“람은 검술로는 당할 사람이 없다면서요? 그런데 왜 그런 쓰레기들을 보고도 가만히 있던 거예요? 그럼 대체 검술은 왜 배운 거예요? 늑대 잡으려고?”


자신의 말이 끊기자 람카디스는 화가 난 듯 손바닥으로 탁자를 탕, 쳤다.


“뭐 잘했다고 어른이 말하는 데 끼어들어? 내가 그때도 얘기했지? 그건 그쪽 치안담당이 알아서 하는 거라고! 어쭙잖은 정의감을 내세울 거라면 당장 집어치워라. 애초에 그놈들이 너한테 무슨 피해를 줬다고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거냐. 재수가 없다 뿐이지 그 녀석들도 다 세금내면서...”


“그런 깡패들한테 죽었단 말이에요!! 우리 엄마가!!”


람카디스는 말을 하던 채로 굳어버렸다. 땅바닥만 쳐다본 채 잠자코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마리네도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배에 칼이 찔려서 죽었다고요!! 내가 보는 앞에서! 돈을 내놓으라고 했는데 우리 엄마가 소리를 지르자 그대로 찔러버렸어요. 그 칼로!! 그 깡패 새끼들이 차고 있던 거랑 똑같은 걸로!!!”


이제 루도는 복이 받쳤는지 고래고래 악을 쓰고 있었다. 바락바락 지르는 목소리가 슬픔에 젖어 있었지만 그는 결코 눈물을 흘리진 않았다.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뭔가가 목구멍까지 타고 올라왔지만 루도는 눈을 질끈 감고 그것을 억눌렀다. 한바탕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루도는 숨을 골랐다. 떨리는 목소리가 자기도 모르게 새어나왔다. 어찌나 소리를 질렀는지 자기 방에서 코를 골고 있던 돌크가 놀라서 거실로 뛰어나왔고, 카토르도 지하실 계단에서 얼굴만 빼꼼히 내놓은 채 루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람카디스는 굳은 얼굴을 한 채 말이 없었다. 한 달 전 살고 싶다며 울부짖던 한 소년은 이제 죽을 힘을 다해 가슴 속에 담아둔 울분을 토해내고 있었다.

잠시 숨을 고르던 루도는 진정이 되었는지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는 아빠도 죽었고요. 엄마도 죽었고요. 얼굴도 모르는 숙부님도 이제는 죽고 없겠죠. 저한텐 이제 여기밖에 없어요. 람도, 마리네도, 로샤단 사람들도 어느 날 갑자기 다 죽어버릴 거예요?”


“루도!”


“청소 더 열심히 할게요. 빨래도 하고 음식도 만들고. 시키는 거 다 할 테니까 저한테 검술 좀 가르쳐줘요. 네? 제가 그 깡패들보다 훨씬 더 강해지면, 그럼 내가 레인저 일도 대신 해줄게요. 순찰도 돌고 늑대도 잡고. 그럼 로샤단 사람들도 잠 더 잘 수 있잖아요? 람이 길가다 깡패들 만나도 제가 지켜줄게요. 네?”


“파하!”


2층 난간에서 듣고 있던 돌크가 웃음을 터뜨렸다.


“루도, 제법이잖아? 사나이의 자질이 있어!”


람카디스는 잠자코 루도를 바라보았다. 눈앞의 이 소년은 웬만한 협박으로는 의지를 꺾을 것 같지 않았다. 집에서 쫓아낸다고 하면 집 밖에서 노숙이라도 하며 떼를 쓸 것 같은 기세였다. 무슨 말을 해야 이 아이의 고집을 꺾을 수 있을까. 재빨리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가 찾아낸 답은 하루 종일 고민해도 이 아이를 굴복시킬만한 답은 나오지 않을 거란 것이었다.


“하아아아~.”


람카디스는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땅 다 꺼지겠네. 꼬마들. 축하한다. 람이 한숨 쉬었을 때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는 거니까.”


카토르는 찡긋 윙크하고는 다시 연구실로 들어가 버렸다. 람카디스는 머리가 아픈 듯 이마를 쓸어내리며 말했다.


“너희들, 검술 지도가 얼마나 비싼 건지 알긴 하는 거냐? 그리고 요즘에야 실업자처럼 살고 있지만 나도 꽤나 바쁜 사람이라고.”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마리네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돈은 유미르네의 할아버지가 대신 내준댔어요! 요즘 세상엔 여자도 호신술 하나는 배워놔야 한다고.”


“엥? 유미르네도 검술을 가르쳐 달라고?”


람카디스는 다시 한 번 숨을 푸욱 내쉬었다. 돌크가 건물이 떠나갈 듯이 박장대소했다.


“으하하하! 와하하! 꼬맹이들이 꽤 주도면밀하게 계획했잖아! 대장, 이쯤에서 허락해주지그래! 나도 비번일 때 자세 정도는 봐줄게!”


람카디스는 한참을 뜸을 들였다. 그는 연방 이마를 문지르며 루도와 마리네를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두 소년은 긴장한 눈으로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알았다, 알았어. 가르쳐줄게. 어이구, 이래서 케셔가 어린 것들 못 키워 먹겠다고 진저리를 치는 거구만. 어떻게 이길 방법이 없네.”


루도와 마리네는 너무 기쁜 나머지 정말로 의자에서 펄쩍 뛰었다. 마리네는 뛰다 의자 팔걸이에 다리가 걸려 넘어졌는데도 헤실 거리며 엉덩이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루도 역시 웃음을 가득 머금은 채 람카디스에게 말했다.


“고마워요 람! 저 진짜 열심히 배울게요!”


람카디스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씨익 웃었다.


“그런데 루도, 난 동네 깡패들한테는 절대 죽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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