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저스연 님의 서재입니다.

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연재수 :
345 회
조회수 :
359,411
추천수 :
10,757
글자수 :
2,844,987

작성
15.03.25 02:35
조회
1,379
추천
45
글자
17쪽

람의 계승자 - 생존자니까 살아남는다(完)

DUMMY

“응? 뭔데?”


람카디스는 애써 활기찬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럼 루도도 생기있는 질문을 하지 않을까 하는, 다소 억지스런 기대를 걸었다. 그리고 그 기대는 여지없이 깨졌다.


“펠아람의 아이. 베릴의 아이.”


그의 표정이 즉시 딱딱하게 굳어졌다. 가슴이 아려왔다. 어째서 그 단어가 저 아이의 입에서 나오게 된 걸까. 그가 신의 아이를 둘러싼 거대한 폭풍 안에 있다는 걸 알면서도, 아무런 근심도 없이, 누구의 간섭도 없이, 행복하게 지내기를 바랐던 건 헛된 희망이었을까? 목이 메여왔다.


“...루도...넌...”


“나를 납치했던 사람들의 얘길 들었어요. 펠아람의 아이의 행방을 아는 것은 나뿐이라고. 그리고 안제는 베릴의 아이일지도 모른다고. 그것 때문에 난 납치됐고, 그것 때문에 안제는....”


그녀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루도의 눈동자엔 깊은 슬픔이 들어찼다. 아무리 불러도 이젠 대답이 들려오지 않음을 알기에.

마리네와 유미르네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둘의 표정을 보아 엄청 심각한 얘기를 하고 있다는 것만 눈치 챘을 뿐이었다. 유미르네는 지금이 할아버지가 말하던 자리를 피해줘야 하는 상황인지 망설였다.

람카디스가 대답할 단어를 찾지 못해 침묵하자, 루도는 말을 이어갔다.


“난 알아야겠어요. 그들이 찾던 것이 무엇인지, 그게 대체 뭐기에 그걸 봤다는 이유만으로 목숨을 위협받아야 하는지, 대체 그 빌어먹을 것이 뭐기에 죄 없는 안제와 이녜스가 죽었어야 했는지.”


루도는 마지막 말을 짓씹듯이 뱉어냈다. 죽어가던 안젤리카와 이녜스를 보며 공유했던 감정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었다. 공포는 슬픔이 되고, 슬픔은 분노가 되었다. 그들은 그렇게 허무하게 죽어야 했을 정도로 하찮은 존재가 아니었다. 그들은 꿈이 있었고, 가족이 있었고, 희망이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웃기지도 않은 이유로 산산조각 났다. 자신의 얼굴을 안다는 것만으로 죽이고, 찾던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만으로 죽이고. 어머니는 어땠지? 그분은 대낮에 칼에 찔려 죽어야 할 대단한 당위성을 가지고 있었나? 안젤리카의 시신을 끌어안은 채 절규하던 그녀의 어머니가 떠올랐다. 루도의 눈가에 검은 불꽃이 일렁거렸다.

람카디스는 루도를 지긋이 바라본 채 말이 없었다. 주방 쪽에서 지글대며 요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루도는 참을성 있게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이윽고 그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루도. 기억하는지 모르겠다만, 내가 너를 로샤단에 데리고 온 이유는 네가 가린워드 마을의 생존자이기 때문이었단다.”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가린워드라는 단어는 이미 그의 뇌리에서 평생 지워지지 않을 정도로 각인되었는데.


“알아요. 그러니까 묻는 거잖아요. 설명을 듣다 보면 기억이 돌아올 수도 있고, 그러면...”


“아니. 난 네가 그때의 기억을 영영 되찾지 못했으면 좋겠다.”


“에...?”


루도는 순간적으로 벙찐 표정이 되었다. 그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건 마리네와 유미르네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야. 너희들은 아직 어려서 내 말을 이해할 수 있을 진 모르겠다만.”


람카디스는 세 어린아이의 손을 끌어와 자신의 손바닥에 포갰다. 그의 손은 거칠고, 약간은 투박했지만, 난로에 다가간 것처럼 따스했다.


“불행이라는 것은 불공평한 점이 있어서, 보이는 사람에게만 보이고,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는 절대 보이지 않는단다. 그리고 슬프게도, 이 녀석은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더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하지.”


그의 목소리는 로샤단에서 글공부를 할 때와 같이 너그럽고, 인자했다. 그는 말을 이었다.


“행복도 마찬가지야. 나이가 들수록 행복은 점점 보이지 않게 되고, 불행은 더더욱 잘 보이게 돼. 그래서 사람들은 불행과 싸우고, 보이지 않는 행복을 찾아 나선단다. 물론 개인마다 차이는 있어. 그건 앞서 말한 대로 행복과 불행의 불공평성 때문이지. 그런데 이 녀석들은 엉뚱한 데가 있어서,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봤더니 불행이고, 불행이라고 굳게 믿었더니 행복으로 변하기도 하지. 다른 점이 있다면 불행은 자신을 봐달라고 한껏 몸을 부풀리지만, 행복은 자그마한 알갱이처럼 모습을 숨긴다는 거야.”


마리네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듯, 커다란 눈을 껌벅거렸다. 루도는 입을 굳게 다문 채 말이 없었다.


“행복이든, 불행이든, 한번 깨닫게 되면 보기 싫다고 보지 않을 수가 없고, 보고 싶다고 해서 다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야. 그리고 그건 종종 한 사람의 인생에 평생 영향을 끼치게 돼. 결국 그 사람은 꼬부랑 늙은이가 되어서야 깨닫는단다. ‘아아! 그때 그 불행을 보지 말았어야 하는 것을!’ 하면서 말이지. 그래서 현명한 사람들은 멋지게 치장한 채 유혹하는 불행보다, 아주 작고 볼품없는 행복을 찾으려고 노력한단다.”


말없이 듣고 있던 유미르네가 볼을 부풀렸다.


“애초에, 그 행복인지 불행인지가 정확히 뭘 말하는 건데요?”


“그건 사람마다 다르지. 돈이 될 수도 있고, 집이 될 수도 있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좀 어려운 말이지만 사상이 될 수도 있어.”


“흐응, 그럼 나는 돈인가? 난 돈을 받으면 행복하던데.”


람카디스는 푸근하게 미소 지었다.


“어린 너희들에겐 행복이 아주 커다랗게 잘 보이겠지. 종류도 수백 가지가 있을 거야. 그 행복을 놓치지 않는 게 중요하단다. 물론 그게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 안타깝게도, 난 지금껏 살아오면서 너무 많은 행복을 잃어버렸어. 또한 잃어버린 행복의 수만큼 불행도 알게 되었지. 그놈들은 항상 내 주위를 맴돌고 있어. 하지만 얼마 전 그 불행이 모두 잠식될 정도로 커다란 행복도 찾았단다.”


이번에는 마리네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럼 람의 행복은 뭔데요? 그 커다랗다는 거.”


람카디스는 자신을 바라보는 여섯 개의 수정들을 그윽하게 바라보았다. 때 묻지 않은, 그의 보물들.


“내 행복은, 너희들이지. 루도와 마리네, 유미르네도. 30년을 넘게 살아오면서 발견한 가장 큰 행복. 너희들이 행복해하는 모습만 바라봐도 난 행복하단다.”


개중 머리가 굵은 유미르네는 당장 질색을 하며 손을 뺐다. 그녀는 팔을 긁으며 혀를 내둘렀다.


“우왁, 그게 뭐예요. 완전 느끼해.”


루도는 고개를 약간 기울인 채 말이 없었다. 람카디스는 숙여진 그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루도. 난 네가 행복만 바라봤으면 좋겠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겠어?”


“...가린워드 마을에서 보았던 기억이, 나에겐 불행이라는 건가요?”


“그래. 즐거운 일만 지내며 살아도 모자란 인생이야. 굳이 ‘진실’이라는 모습으로 포장된 불행을 봐야 할 필요가 있을까?”


“람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겠어요. 하지만,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모른 채 살아갈 수는 없어요. 안제는, 아무것도 모른 채 죽어간 안제는 어떻게 하라고요! 그리고 그 납치범들이 다시 나타나지 않을 거라고 누가 장담하겠어요? 어차피 그럴 거라면, 속 편하게 진실이라도 알고 죽자고요!”


지금껏 단 한 번도 반항하지 않던 루도였지만, 이번만큼은 역정을 내며 소리 질렀다. 람카디스는 화를 내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웃는 채로, 루도의 이마에 붙은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루도야. 넌 아직 나를 믿고 있냐?”


“그...그거야 물론...”


그것은, 가린워드 마을의 후미진 뒷골목에서 둘이 처음 만났을 때 나눴던 대화이기도 했다. 두 번 말할 필요 없을 정도로 확실한 사실이었다. 그가, 람카디스를 믿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서 누굴 믿어야 한단 말인가?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하는 사이, 람카디스가 말했다.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만, 난 너를 믿는다.”


“....?!”


“넌 열심히 검술을 연마해 날 지켜주겠다고 했었지. 그때 네가 했던 말이 허언이 아니라는 것을 믿는다. 수지가 맞으니까 검술을 가르쳐준다고 한 거야. 네가 커서 나보다 훨씬 강한 사람이 될 거라고 믿었으니까. 세상 모든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고 해도, 난 너희를 믿는다.”


그런 것은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가, 레인저 길드의 마스터인 그가 아무것도 모르는 소년의 말을 믿고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네가 나를 지켜줄 정도로 강해질 때까지, 내가 도와주마. 지금 너를 괴롭히는 문제로 다시는 머리 싸맬 일이 없도록 해주마. 내 약속하지. 가린워드에서 보았던 것을 영영 기억하지 않아도 되게 해주마. 그때까지만, 날 믿어다오. 그때가 되어서도 네가 납득하지 못한다면, 그럼 방금 전 네 질문에 답해주마.”


“.......”


“이걸로는...납득할 수 없겠니?”


루도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가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말해버리면, 자신이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를 세상 어느 누구보다 믿는다고, 반드시 행복하게 해줄 테니 자신을 믿으라고 하는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너무 직선적인 그의 말에, 왠지 모르게 심통이 났다. 루도는 뾰로통한 얼굴로 말했다.


“람보다 강해지면, 그땐 반드시 알려주기에요.”


람카디스는 크게 웃었다.


“하하핫! 그래. 그때가 오면, 싫다고 해도 알려주마.”


얼마 지나지 않아 호화스러운 음식들이 식탁을 빼곡하게 채우기 시작했다. 몹시 시장했던지, 아이들은 곧바로 식사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문득 파이를 씹고 있던 루도가 말했다.


“람, 나 하고 싶은 말이 하나 더 있어요.”


****


델키아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어둠이 짙게 깔린 후였다. 람카디스는 곤히 잠든 아이들을 업어 방에 데려다 주었다. 그는 조용히 방문을 닫고는 1층 홀로 내려갔다. 불은 켜져 있지 않았으나 달빛이 창문을 뚫고 스며 들어와 앞을 보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나지막한 숨소리만이 간간이 들려오는 가운데, 약간 푸른빛이 도는 달빛이 창에 부서져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가죽 소파에 몸을 묻고 있는데 지하실 문이 열리며 카토르가 나왔다. 그는 약간 노곤한 모습으로 의자에 앉았다. 입고 있는 셔츠는 심하게 구겨져 부스스한 인상이 들었다. 람카디스는 졸린 눈을 비비는 그를 보며 싱긋 웃었다.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기다려줄 필요는 없는데.”


“기다려주긴, 난 나대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고. 홀에 누가 처박히는 소리가 들리기에 나와 본 것뿐이야.”


람카디스는 말없이 웃었다. 그는 턱을 괸 채 달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뜸을 들이던 카토르가 입을 열었다.


“어땠어? 착잡한 여행길은?”


“특별할 게 있나 뭐. 시신을 건네고, 비통해하는 부모의 얼굴을 보고, 짧은 대화를 나눈 것뿐이지. 큰 마찰은 없었지만, 역시 기분은 좋지 않았어. 자식 잃은 부모의 얼굴을 보는 건.”


“그래....그렇겠지. 루도 녀석도 어린 나이에 험한 꼴을 많이 보는군.”


람카디스는 얼굴을 돌리며 카토르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의 아랫입술이 뭉툭하게 올라갔다.


“루도가 말하더군. 죽음을 앞둔 사람과 눈을 마주치면 그 사람이 하는 생각이 들린다고. 그가 느끼는 감정까지도.”


“응? 정말?!”


“거짓을 말할 상황은 아니었어. 왠지 펠아람의 아이와 연관성이 있을 것 같은데...후우...”


카토르는 이마를 꾹꾹 누르며 생각에 잠겼다. 안 그래도 나이에 비해 선명하게 진 주름이 더욱 짙어졌다. 이내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알 리가 없지. 애초에 500년 전에 살았던 사람은 세상에 없다고. 에리안델이면 또 모르겠다. 어쨌든 흥미로운 사실이긴 한걸? 구현화된 신탁에 관해선 정보가 거의 없으니까. 펠아람의 폭주가 루도에게 무언가 영향을 끼쳤다는 건 확실한데....교단에서는 아직 모르겠군?”


그의 말에 람카디스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너한테만 하는 말이야.”


그의 입술이 축 늘어졌다. 람카디스의 대답은 짧았지만,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었다. 카토르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람카디스가 이러는 걸 한 두 해 본 것도 아니었으므로, 그는 체념하는 말투로 말했다.


“그래그래. 비밀은 꼭 지키지. 그럼 이제 루도는 어떻게 할 건데?”


람카디스는 빙그레 미소 지었다. 시선이 다시 창밖의 초승달로 향했다.


“글쎄....일단 루도가 죽어가는 사람과 절대 만나지 못하게 해야겠지.”


“어련하시겠어? 공과 사에서 공을 완전히 버리겠다는 거구만. 에휴.”


대화는 그대로 끊어졌다. 카토르는 한숨을 푹푹 쉬다가, 의자 솜을 뜯거나 욕을 하며 심통을 부리고 있었다. 람카디스는 그런 그를 보며 조용히 웃었다. 카토르는 저렇게 툴툴대곤 있어도 누구보다 그를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루도에 관한 비밀을 그에게 가장 먼저 털어놓은 것이기도 했다.

이번에는 람카디스쪽에서 먼저 말을 걸었다.


“있잖아, 내가 저 아이들의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


“아앙?”


뜬금없는 화제에 카토르는 즉시 질색을 했다. 굳이 표현하자면 그는 유미르네와 비슷한 성격이라, 이런 간지러운 질문을 들으면 바로 닭살이 올라왔다. 농으로 받아치려 하는데, 람카디스의 표정이 자못 진지하다는 것을 알았다. 결국 그는 다시 한숨을 푹푹 쉬었다.


“왜? 루도를 양자로 들인 것 때문에? 내가 보기에 넌 이미 충분히 걔네들 아버지인데. 뭔 일 있었냐? 루도가 너 따위는 아버지가 아니래?”


“그건 아니고.”


워낙 진지하다 보니 카토르 특유의 비꼬는 말투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루도가 그러더군. 펠아람의 아이가 뭔지 알려달라고.”


“....그래서?”


“나보다 강해지면 알려준다고 했어. 그때가 되어서도 알고 싶다면. 그리고 그 후에는 나를 지켜달라고 했지.”


“풋, 그쯤 되면 거의 프로포즈 수준인데?”


낮은 웃음소리가 홀 안에 울려 퍼졌다. 이런 고요함도 나쁘지 않았다. 이대로 해가 뜨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 방에 있는 아이들도 평온히 잠든 채일 텐데.


“루도는 어린 나이에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았어. 그건 평생 지워지지 않는 짐이 될 거야. 내가...그 아이를 보듬어줄 수 있을까?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


“흐음...”


섣불리 대답할 수 없는 문제였다. 둘 다 미혼인 데다, 특히 카토르에게 이런 가정적인 대화는 적응이 되지 않았다. 잠시 신음하던 그는 뭔가 떠오른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잔 할래?”


“...좋지.”


카토르는 부엌으로 가더니 커다란 술 주전자를 들고 나왔다. 작년에 가크스가 담가 놓은 산수유 와인이었다. 쪼르륵, 하는 달콤한 소리가 귓가를 간질거렸다. 건배하기 직전, 카토르는 술잔을 든 채로 람카디스에게 핀잔을 놓았다.


“애초에 말이야. 넌 아직 장가도 안 간 처지잖아? 그런데 아버지라니, 평생 미혼으로 살 생각이야?”


“그건 아니지만... 알다시피 워낙에 바빴잖아? 가정을 꾸릴 만한 상태도 아니었고. 정신 차리고 보니 어느새 30줄이지. 이제 아는 여자도 없어.”


“없긴 왜 없냐? 데루루피아가 있잖아.”


람카디스는 웃음을 터뜨렸다. 확실히 그녀라면 ‘아는 여자’의 목록에 들어가긴 했다.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었다. 흔치 않은 하늘색 단발머리와, 늘 툴툴대던 자그마한 입술이 떠올랐다. 문득, 그녀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지금쯤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그녀야 뭐...좀 까탈스러운 게 결점이긴 하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 괜찮긴 하지. 방랑벽이 있다는 것만 빼면 정말 좋을 텐데 말이야.”


“그 방랑벽이 문제지. 허구한 날 싸돌아다니는 바람에 결국 출석미달로 아카데미에서 제적 당했잖냐.”


둘은 잠시 술잔을 바라보며 추억에 잠겼다. 꿈에서도 다시없을 행복한 시절이었다. 술잔 속에는, 장밋빛 미래를 그리며 나아갔던 싱그러운 젊은이들이 들어 있었다. 데루루피아는 항상 융통성 없는 가이잘모를 구박했고, 카토르는 늘 그런 둘 사이에 끼어 피해를 봤다. 그리고 람카디스는 그런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걸었다.

그런 행복한 추억을, 저 아이들에게도 만들어주고 싶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서글프게 아름다운 추억을.

둘은 잔을 부딪쳤다. 카토르가 익살스럽게 잔을 치켜들었다.


“대사 한 번 해봐.”


람카디스는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음....로샤단의 행복을 위하여.”



***


작가의말

에피소드 1 종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람의 계승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7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4) +2 15.03.26 1,239 40 17쪽
46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3) +2 15.03.26 1,265 40 14쪽
45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2) +5 15.03.26 1,544 66 14쪽
44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 +3 15.03.26 1,295 52 18쪽
43 람의 계승자 - ep.2 - 낭만을 찾아!(6) +6 15.03.26 1,217 43 16쪽
42 람의 계승자 - ep.2 - 낭만을 찾아!(5) +3 15.03.26 1,299 45 12쪽
41 람의 계승자 - ep.2 - 낭만을 찾아!(4) +2 15.03.26 1,369 46 14쪽
40 람의 계승자 - ep.2 - 낭만을 찾아!(3) +4 15.03.25 1,333 44 15쪽
39 람의 계승자 - ep.2 - 낭만을 찾아!(2) +5 15.03.25 1,609 61 11쪽
38 람의 계승자 - ep.2 - 낭만을 찾아!(1) +3 15.03.25 1,635 44 13쪽
37 람의 계승자 - 아쟉스의 노래(完) +3 15.03.25 1,278 47 11쪽
36 람의 계승자 - 아쟉스의 노래(번외편) +3 15.03.25 1,346 42 10쪽
» 람의 계승자 - 생존자니까 살아남는다(完) +4 15.03.25 1,380 45 17쪽
34 람의 계승자 - 생존자니까 살아남는다(23) +4 15.03.25 1,409 47 13쪽
33 람의 계승자 - 생존자니까 살아남는다(22) +5 15.03.24 1,531 48 19쪽
32 람의 계승자 - 생존자니까 살아남는다(21) +6 15.03.24 1,412 47 11쪽
31 람의 계승자 - 생존자니까 살아남는다(20) +2 15.03.24 1,201 47 13쪽
30 람의 계승자 - 생존자니까 살아남는다(19) +2 15.03.24 1,434 42 10쪽
29 람의 계승자 - 생존자니까 살아남는다(18) +2 15.03.24 1,552 42 17쪽
28 람의 계승자 - 생존자니까 살아남는다(17) +2 15.03.24 1,438 45 9쪽
27 람의 계승자 - 생존자니까 살아남는다(16) +2 15.03.24 1,462 43 9쪽
26 람의 계승자 - 생존자니까 살아남는다(15) +5 15.03.23 1,356 44 28쪽
25 람의 계승자 - 생존자니까 살아남는다(14) +2 15.03.23 1,491 45 17쪽
24 람의 계승자 - 생존자니까 살아남는다(13) +3 15.03.23 1,485 44 21쪽
23 람의 계승자 - 생존자니까 살아남는다(12) +4 15.03.23 1,580 45 14쪽
22 람의 계승자 - 생존자니까 살아남는다(11) +1 15.03.23 1,642 43 13쪽
21 람의 계승자 - 생존자니까 살아남는다(10) +2 15.03.23 1,357 40 13쪽
20 람의 계승자 - 생존자니까 살아남는다(9) +4 15.03.22 1,568 50 14쪽
19 람의 계승자 - 생존자니까 살아남는다(8) +3 15.03.22 1,307 50 13쪽
18 람의 계승자 - 생존자니까 살아남는다(7) +2 15.03.22 1,544 45 16쪽
17 람의 계승자 - 생존자니까 살아남는다(6) +2 15.03.22 1,778 47 13쪽
16 람의 계승자 - 생존자니까 살아남는다(5) +4 15.03.22 1,736 45 20쪽
15 람의 계승자 - 생존자니까 살아남는다(4) +2 15.03.22 1,693 50 14쪽
14 람의 계승자 - 생존자니까 살아남는다(3) +2 15.03.22 2,166 69 14쪽
13 람의 계승자 - 생존자니까 살아남는다(2) +3 15.03.22 1,705 44 13쪽
12 람의 계승자 - 생존자니까 살아남는다(1) +4 15.03.22 2,134 52 17쪽
11 람의 계승자 - 꼬마 레인저(10) +4 15.03.21 1,822 57 9쪽
10 람의 계승자 - 꼬마 레인저(9) +3 15.03.21 1,836 54 12쪽
9 람의 계승자 - 꼬마 레인저(8) +2 15.03.21 1,996 52 11쪽
8 람의 계승자 - 꼬마 레인저(7) +3 15.03.21 1,928 62 11쪽
7 람의 계승자 - 꼬마 레인저(6) +2 15.03.21 2,093 57 11쪽
6 람의 계승자 - 꼬마 레인저(5) +5 15.03.21 2,181 58 20쪽
5 람의 계승자 - 꼬마 레인저(4) +2 15.03.21 2,405 58 10쪽
4 람의 계승자 - 꼬마 레인저(3) +4 15.03.21 2,765 72 12쪽
3 람의 계승자 - 꼬마 레인저(2) +3 15.03.21 3,288 92 14쪽
2 람의 계승자 - 꼬마 레인저(1) +3 15.03.21 4,438 88 15쪽
1 람의 계승자 - prologue +23 15.03.21 7,846 119 1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