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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연 님의 서재입니다.

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연재수 :
34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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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3.21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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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람의 계승자 - prologue

DUMMY

“....”


숨 막히는 정적만이 일대를 뒤덮고 있었다. 마을 어귀에 들어섰을 때부터 일행은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이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들이 본 광경을 어떤 식으로 표현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말을 꺼냈다간 마을을 ‘이렇게’ 만들어버린 무언가가 자신을 집어삼킬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더 컸다.


“맙소사...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한 남자가 정적을 깨고 입을 열었다. 죄라도 지은 것처럼 숨죽이고 있던 일행들은 그 남자의 한 마디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그중 한 명은 정말로 숨이라도 참고 있었던 것처럼 길게 숨을 내쉬었다.


“람카디스 대장, 여기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 차라리 시체가 뒹굴고 부서진 지붕파편을 밟고 다니는 게 낫겠네. 이런 풍경은 정말이지....”


숨을 내쉰 남자는 마땅히 표현할 단어를 찾지 못해 우물거리다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는 일행의 맨 앞에서 주변을 수색하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기분이 더럽다고요.”


람카디스라고 불린 남자는 혹시라도 누군가 남아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옆에 있던 집안의 문을 열어보았지만, 결과는 헛수고였다. 아니, 만약 이 무리가 도적떼나 패잔병 집단이었다면 그들이 접한 상황이 결코 헛수고는 아니었을 것이다. 모든 가재도구와 패물, 음식들이 아무런 손상도 입지 않은 채 그대로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을에는 아무도 없었다. 한 시간을 넘게 마을을 돌아다녔지만, 인기척은커녕 벌레 우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단순히 버려진 마을처럼 집이 헐어져 있고 군데군데 거미줄이 처져 있고 잡초가 무성한, 그런 시골의 풍경이 아니었다. 모든 집은 말끔하게-간혹 주인의 성격에 따라 다르지만- 정리되어 있었고, 어딜 봐도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을 법한 건물들이었다. 심지어 어느 한 집에는 방금 식사를 하던 것처럼 식탁에 음식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차라리 아무것도 없다면 좋으련만, 길가에는 얼마 전에 누군가가 입고 있었을 것이 분명한 옷가지들이 땅바닥에 널려져 있었다. 아무도 없는 길가에 버려져 있는 옷가지와 약탈의 흔적이 전혀 없는 건물들, 그리고 그 공간 속에 흐르는 무거운 정적은 대낮인데도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때문에 산전수전 다 겪은 레인저들도 알 수 없는 공포에 휩싸여 바짝 주위를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람카디스의 옆에서 걷던 검은 로브를 입은 남자가 입을 열었다.


“생명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군. 사람도, 동물도, 벌레 한 마리도 없어”


그는 길가에 버려진 옷가지를 지팡이로 한번 건드려보았다.


“마치 살아있는 것만 증발해버린 것 같군”


람카디스를 비롯한 모두가 검은 로브의 남자를 쳐다보았다.


“마법인가?”


남자는 어깨를 으쓱했다.


“마을 하나를 날려버릴 수 있는 마법은 있어. 물론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야. 하지만 내가 알기로 ‘살아있는 것’만 머리카락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지게 하는 마법은 없어. 아니, 그걸 따져보기 전에 여기 안전한 것 맞나? 만약 마을 사람들을 사라지게 한 근원이 아직 이곳에 남아있다면...”


“카토르, 재수 없는 소리는 그만 해.”


훤칠한 키의 근육질 남자가 불쾌하다는 듯이 침을 퉤, 뱉었다.


“난 가능성에 대해서 얘기한 것뿐이야. 이게 마법에 의해 일어난 일이라면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건 없어. 내가 모르는 마법이라는 것은 나보다 뛰어난 마법사가 행한 일일 테니까. 그게 아니라면.,.”


일행은 이제 민가를 지나 광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광장 입구에 세워진 이름 모를 성자의 동상만이 모든 것을 보았다는 듯 눈을 크게 부릅뜨고 있었다. 카토르는 이야기를 계속하려다가 입을 다물고는 람카디스를 바라보았다. 그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람카디스가 내주길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일행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의 시선을 의식한 람카디스는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신력이 작용한 것 같아. 마법이 아니라면 그것뿐이겠지. 애초에 우리가 의뢰받은 일도 그것과 관련 있는 일이니까. 어쨌든 지금은 마을 사람들을 찾는 데에 주력하도록 하자”


모두가 어렴풋이 예상하고 있었던, 하지만 누구도 입 밖에 꺼내지 않았던 대답이 그들의 대장에게서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자신들이 마주한 상황이 신력에 의해 일어난 일이라면 그건 상황이 아주 안 좋게 돌아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누구도 그걸 믿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에 잠자코 자신의 위치를 지키며 주위를 경계할 뿐이었다.

일행은 몸에 익은 대로 민첩하게 광장주변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누가 보기에도 기민하고 숙달된 병사의 모습이었지만 그들이 느끼는 막연한 불안감까지 감출 수는 없었다. 카토르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람카디스에게 다가갔다. 그는 행동하기 전에 무언가 확인할 것이 있는 것 같았다.


“마법이든 신력이든 아니면 산적들의 짓이든 간에 여기 있던 사람들은 다 어떻게 된 거지? 람, 우리는 교단에서 의뢰한 내용에 대해 정확히 듣지 못했어. 우리가 정확히 해야 할 일을 알아야 능률도 오르고 너도 알다시피 이런 일에는 위험도가....”


“조사를 부탁받았을 뿐이야.”


람카디스는 흔히 겪는 잔소리인 듯 능숙하게 그의 말을 끊었다. 카토르도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기 때문에 별말 않고 팔짱을 낀 채 람카디스의 말을 기다렸다.


“「가린워드 마을로 가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조사해달라, 그리고 우리가 예상하는 가장 최악의 경우가 발생했을 경우 생존자를 찾아달라」좀 더 길었지만 요약하자면 이거다.”


“하,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마주한 상황이 교단이 예상했던 최악의 경우라는 건가?”


람카디스는 좌우를 한번 살폈다. 그것은 그가 맡은 임무대로 마을의 생존자를 찾기 위함이 아니었다. 예상대로 그의 일행들은 모두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겉으로는 잡화점의 문을 두드리고, 버려진 옷가지를 살피는 등 자신들의 대장이 내린 명령을 따르고 있었지만 람카디스는 동료들이 카토르와 자신이 하는 대화를 엿듣고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들 역시 람카디스가 자신들이 대화를 엿듣고 있음을 알아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람카디스는 빙긋 미소 지었다.


“내가 여기까지 오면서 여태 의뢰내용을 말하지 않았던 건 괜한 불안감을 조성하고 싶지 않아서였어. 동요하면 그만큼 위태로워지는 법이니까.”


특별히 목소리를 높이거나 하진 않았지만, 그것은 카토르가 아니라 주변의 모든 일행들에게 한 말이었다. 그는 한번 목을 고르고는 갑자기 목소리 톤을 높여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마을은 도시 변두리에 있는 데에다 주민 대부분이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꾸려간다더군. 덕분에 사람들의 왕래가 거의 없는 곳이지. 들은 바로는 복숭아로 담근 술이 꽤 평이 좋다고 하던데.”


뜬금없이 바뀐 화제에 근육질의 남자가 성이 나서 한마디 하려고 돌아섰지만, 자신을 쏘아보는 람카디스의 시선과 마주치자마자 말문이 턱 막혔다. 람카디스는 피식 웃더니 말을 계속했다.


“돌크라면 반드시 욱해서 나에게 달려들 거라고 생각했지. 이 정도면 나도 쓸만하지?”


람카디스는 익살스럽게 한쪽 눈을 찡긋했지만, 일행 모두가 침묵한 채 아무런 반응이 없자 돌크처럼 침을 탁 뱉었다.


“재미없는 녀석들..”


그는 말을 이어갔다.


“그래도 토지가 비옥해서 꽤 규모가 큰 마을이지. 생각했던 것 이상이긴 하지만 갖출 건 다 갖췄고,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교회에서도 꽤 명망 있는 프리스트를 파견해놨거든.”


이제야 이야기가 본론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했는지 호기심 많은 이들은 각자 담벼락에 기대거나 의자에 걸터앉으며 본격적으로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람카디스는 그들을 보고 눈살을 한번 찌푸렸지만, 근무태만을 이유로 주먹을 휘두르진 않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는 거야. 정기적으로 교단본부에다가 선교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여기에서 파견된 프리스트만 2주 가까이 연락이 없는 거야. 그래서 우리더러 이 사태에 대해 조사해달라고 하더군.”


“2주 정도 연락이 없었다고 레인저 길드에 의뢰를 하진 않아. 그리고 2주 정도 연락이 없었다고 마을 사람들이 모두 종적을 감출 거라고 예상하지도 않지.”


카토르가 무심하게 대꾸했고, 람카디스는 그를 보며 빙그레 미소 지었다. 어설픈 해명을 한 것은 카토르가 그에 대해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동료들의 이해를 도우려는 것이었다.

아무도 없는 넓은 광장 중앙에 람카디스를 중심으로 레인저들이 원형 모양으로 퍼져 있었기 때문에 그 광경은 마치 그들만이 참여할 수 있는 작은 집회처럼 보이기도 했다. 람카디스는 입을 다물고는 자신이 교단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동료들에게 말해도 될지 잠시 망설였다.


“그...음. 내가 교단에서 들은 것은 이거야. 「펠아람」의 현신이 사망했다고 하더군. 2주 전에”


“뭐...뭐?!”


카토르는 자신이 들은 대답을 믿지 못하는 것 같았다. 다른 레인저들도 어안이 벙벙해서 눈만 크게 껌벅거리는 사람들이 대다수였지만, 침착한 이들은 이내 나직이 탄식했다. 람카디스는 괜한 얘기를 했다고 생각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표정을 봐서 이대로 이야기를 마무리 지을 수도 없을 것 같았다. 공기는 이제 무겁다 못해 텁텁하기까지 했다.

펠아람의 아이가 죽었다. 그것은 교단이나 람카디스 일행에게나 커다란 파장을 몰고 올 것이 틀림없었다. 그것이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간에. 그리고 나아가서 이 대륙의 앞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카토르는 숨이 막혔다가 갑자기 기도가 뚫린 사람처럼 푸욱 하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는 마법사로서의 지식을 최대한 동원해서 이 상황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걸쳐입은 로브가 답답해 숨이 찰 지경이었다. 그는 자신의 사고에 방해되는 로브를 거칠게 풀어헤쳤다. 이내 그의 밋밋한 앞가슴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긴 후 곧 답을 내었다.


“죽였군. 아예 없던 일로 만들어버리자는 건가?”


“그래. 하지만 교단에서 저지른 것이 아니란 말이지. 그건 당연한 거야. 우리가 지금까지 교단과 협력했던 것을 생각하면 말이지.”


“뭐 상당히 충격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중에 개같이 각성해버리는 것보다는 나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럼 우리가 했던 일은 모두 뻘짓이 되어버린다는 건데...아니 잠깐.”


카토르는 자신의 생각을 중얼거리다가 문득 무언가 빼먹은 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펠아람의 아이가 죽었다는 사실은 긍정적으로 평가하면 그다지 나쁜 일은 아니었다. 물론 절대 좋은 일이 되는 것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 교단에서 자신들에게 의뢰한 일과 람카디스가 얘기한 펠아람의 아이와는 무슨 연관이 있단 말인가?

고맙게도 람카디스는 카토르가 문제점을 제기하기 전에 답을 말해주었다.


“펠아람의 아이가 죽었다는 것은 방금 말한 대로다. 다만... 펠아람의 수정은 아직도 빛나고 있더군. 그건 나도 확인한 거야.”


“어...그럼?”


카토르는 람카디스가 말한 것이 믿어지지가 않아 입을 뻐끔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위에서 숨죽인 채 지켜보고 있던 다른 레인저들은 둘이 하는 이야기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아 입을 뻐끔거리고 있었다.


“펠아람의 아이는 아직 이 세상에 남아있다는 거지. 그것이 영혼일지라도.”


“맙소사!”


카토르는 비명을 내질렀다. 그것은 람카디스가 교단의 하이프리스트로부터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가 보였던 반응과 다르지 않았다. 카토르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나왔다. 어떻게 그런 우매한 짓거리를 할 수가 있단 말인가! 그는 상황을 정리하려고 머리를 굴리며 부산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빌어먹겠군! 그렇다는 것은 이곳이 펠아람의 아이가 습격했다고 추측되는 마을이라 그거로군!”


“아아... 나도 처음엔 미심쩍었지만 아마 확실하지 않을까 싶다. 이곳은. 여기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일단은 생존자를 먼저 찾아야...”


“어, 람카디스 대장!”


일행 중에 가장 젊고 의욕적인, 그래서 다른 모든 동료들이 람카디스와 카토르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때에도 열심히 마을을 수색하고 있었던 레인저가 소리를 질렀다.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람카디스 일행은 소리가 난 쪽으로 달려갔다. 소리가 난 곳은 광장을 가로질러 붉은색 벽돌로 지어진 제분소 너머의 골목길이었다.


“가크스! 무슨 일이냐!”


람카디스는 거리를 가로지르며 소리쳤다. 열댓 명의 무장한 남자들이 내는 쩔그럭거리는 쇳소리가 고요한 마을에 울려 퍼졌다. 가크스라 불린 젊은 레인저는 놀란 목소리였다.


“아이, 어린아이가 여기 있습니다! 아직 살아있어요.”


람카디스는 그대로 제분소를 지나쳐 골목길로 몸을 틀었다. 삽시간에 음침한 골목이 건장한 남자들의 그림자로 더욱 어두워졌다.

그곳에는 당황한 가크스와, 골목의 과일통 옆에 기대어 앉아 있는 어린 남자아이가 있었다. 아이의 셔츠는 어린아이의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피가 배어 나와 옷을 가득 적시고 있었다. 과일 통이 아이를 지탱하고 있는 것이지, 누가 통을 치워버린다면 그대로 땅바닥에 늘어져 곧바로 그 여린 생명이 끊어질 듯이 보였다.

아이는 옅은 숨을 쌕쌕 몰아쉬며 자신에게 그림자를 드리운 남자들을 바라보았다. 람카디스 일행은 모두 검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아이는 그들의 허리춤에 매달려 있는 무기를 보고는 공포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크....”


람카디스는 아이가 자신들의 무기를 보고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서둘러 일행에게 아이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물러나라고 지시했다. 이런 불길한 징조로 가득 차 있는 마을에 혼자 죽어가는 어린아이를 계속 보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골목은 금세 람카디스와 카토르만 남게 되었다.

람카디스는 아이가 놀라지 않게 조심스럽게 검을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아이는 고통스러운 듯 숨을 몰아쉬면서도 람카디스가 검을 천천히 내려놓는 모습을 주시하고 있었다.


“쉬이... 꼬마야 우리는 너를 해치러 온 사람들이 아니야. 자, 보이지? 칼도 바닥에 내려놓았단다. 우리는 너를 구해주려고 온 거란다.”


“으으...크..”


아이는 대답을 하려 했지만, 피가 입에 차 신음 소리만 새어나왔다. 곧 콜록, 하고 아이는 입에 고인 피를 전부 뱉어내었다. 자신의 허벅지에도 오지 않는 꼬마가 눈물을 흘리며 피를 토하는 모습을 보자 카토르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시선을 돌렸다.

람카디스는 조심스럽게, 아이가 놀라지 않게 천천히 허리춤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피묻은 입을 닦아주려고 손을 내밀자 아이가 흠칫 놀라며 몸을 뒤로 젖혔다. 람카디스는 그 자리에 굳은 채 가만히 아이를 바라보았다. 셔츠를 가득 적신 핏물은 이제 아이가 앉아있는 땅바닥을 점점이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아직 지혈이 되지 않아 피가 계속 흘러내리는 것이 틀림없었다. 아마 이대로 놔둔다면 몇 분 지나지 않아 이 어린 생명은 과다출혈로 생을 마감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람카디스는 주저하지 않고 그대로 손을 뻗어 피묻은 아이의 셔츠를 들추었다. 예상대로 옆구리를 날카롭게 베인 듯 상처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생각보다 상당히 오래된 상처였다. 치료를 하긴 했으나 워낙 조악하여 시간이 지나자 다시 상처가 벌어진 모양이었다. 아이는 갑자기 남자가 자신의 어깨를 움켜잡자 놀라서 아픈 것도 잊은 채 달아나려고 버둥거렸다. 람카디스는 손수건으로 아이의 상처를 꾹 눌렀다. 갑작스런 고통에 아이가 날카롭게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크...흐흑...”


람카디스는 오른손으로 상처를 틀어막고는 왼손으로 아이의 턱을 움켜쥐고 똑바로 눈을 바라보았다.


“꼬마야! 네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넌 지금 많이 다쳐서 이대로 놔두면 곧 죽는다. 네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날 믿어라. 난 결코 널 해치려고 온 사람이 아니다. 널 구하려고 온 거야. 알았지?”


람카디스의 단호한 말투에 아이는 놀라서 비명을 지르다 말고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리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카토르는 일행에게 응급처치할 의약품들을 가져오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아이는 카토르와 골목길 너머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커다란 아저씨들을 번갈아 쳐다보고는, 다시 람카디스의 굳은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람카디스는 거칠게 움켜쥐었던 턱을 놓고는 급한 대로 손에 낀 장갑으로 아이의 피묻은 입을 닦아주었다. 아이는 그런 람카디스의 행동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상처를 틀어막은 커다란 손도 처음에는 기절할 만큼 아팠는데 이제는 진정되어 오히려 따스하게 느껴졌다. 이내 이 남자가 자신을 해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아이는 다시 한번 눈물을 쏟아냈다. 그리고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살고 싶어....”


작가의말



이 작품은 기존에 문피아에 연재되던 작품입니다.

혹시라도 기존의 내용을 알고 계신 독자분이 계시면

가급적 새롭게 접하실 분들을 위해 스포일러성 댓글은 지양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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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람의 계승자 - 꼬마 레인저(8) +2 15.03.21 1,996 52 11쪽
8 람의 계승자 - 꼬마 레인저(7) +3 15.03.21 1,928 62 11쪽
7 람의 계승자 - 꼬마 레인저(6) +2 15.03.21 2,093 57 11쪽
6 람의 계승자 - 꼬마 레인저(5) +5 15.03.21 2,181 58 20쪽
5 람의 계승자 - 꼬마 레인저(4) +2 15.03.21 2,404 58 10쪽
4 람의 계승자 - 꼬마 레인저(3) +4 15.03.21 2,764 72 12쪽
3 람의 계승자 - 꼬마 레인저(2) +3 15.03.21 3,288 92 14쪽
2 람의 계승자 - 꼬마 레인저(1) +3 15.03.21 4,438 88 15쪽
» 람의 계승자 - prologue +23 15.03.21 7,846 119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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