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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연 님의 서재입니다.

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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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3.26 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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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4)

DUMMY

디리터가 황급히 쓰러진 자들을 살폈으나, 살아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모두 예리한 무기에 급소를 찔려 절명한 모양이었다. 바깥의 참상과는 대조적으로, 술집에서는 여전히 노랫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쓰러진 물체가 시체라는 것을 깨달은 니암이 비명을 지르려 하자, 루도가 황급히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막힌 입 사이로 억눌린 신음이 새어나왔다.


“우....우웁!!”


겁에 질린 마리네가 떠듬거리며 말했다.


“누...누가 이런 짓을? 말도 안 돼...갑자기....왜?”


시체를 살피던 디리터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들은 미처 눈을 감을 틈도 없이 당한 모양이었다. 그는 애써 마음을 추스르며 시신의 눈을 감겨주었다.


“한 번에 한 명씩. 무섭도록 깔끔한 솜씨야. 비명조차 들리지 않았어. 대체 뭐 하는 녀석들이지? 음...? 이건...!”


디리터가 시체 사이에서 뭔가를 집어 들었다. 그것은 휘장이었다. 달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은색의 휘장. 그 문양은 익히 알고 있는 것이었다. 구름 위를 날아다니는 천사를 조각한. 그건 제르칸트가 항상 어깨에 붙이고 다니던 것과 똑 닮아있었다. 루도와 마리네가 동시에 소리쳤다.


“류이너스의 심볼!”


이칼롯은 즉시 검을 뽑고 사위를 살폈다. 그다지 먼 거리가 아니었음에도 기척조차 느끼지 못했다. 범인은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엄청난 고수임이 틀림없었다. 그가 아직 이 근처에 있을지도 몰랐다.

시야가 어두워 사물이 잘 보이지 않았다. 이런 상태라면 범인은 어디에도 존재할 수 있었다. 골목길 어귀? 술집 지붕? 아니면 태연하게 어둠 속에서 당당히 바라보고 있을지도! 뒤늦게 데루루피아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간책을 사용한 자들!


“일단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하지 않을까?”


제리온이 술집에 도움을 요청하려 하는데, 이칼롯이 황급히 그를 가로막았다.


“잠깐! 디리터, 시체가 모두 몇 구지?”


“다...다섯 구?”


“...제길!!”


이칼롯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자신들은 완벽하게 걸려들었다. 조금만 더 신경 썼더라면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을 텐데, 어찌 앞을 내다보지 못했던가? 그는 이를 갈며 말했다.


“아까 따라오던 자는 모두 여섯이었어! 한 명은 살아서 도망갔다는 소리다!”


“응? 그럼 그나마 다행...아!!”


그제야 모두들 상황을 파악하고는 경악했다.

한 명은 살아남았다. 순식간에 5명의 목숨을 끊을 정도로 숙련된 암살자가 달아나는 이를 놓쳤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건, 일부러 놓아준 것이다.

생존자는 지금 죽을힘을 다해 도망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광휘의 결사에 충격적인 사실을 전할 것이다. 그는 자신이 보았던 광경에 대해, 자신들을 습격했던 자들의 행색에 대해 빠짐없이 설명할 것이다. 그가 보았던 것은 무엇일까? 범인은 일부러 류이너스의 심볼을 떨어뜨리고 갔다. 범인의 차림새가 어땠을지는 굳이 추측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다들 데루루피아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저들은 자신들을 습격한 무리가 류이너스 교단이라고 믿는 것 같아.


-니암이 습격당했던 신전에도 상트룸의 심볼이 떨어져 있었지.


“제대로 당했군. 이거 일이 엄청나게 위험해지는데?”


제리온이 신음을 흘렸다. 범인의 책략이 끝났을 거라 생각한 것이 실수였다. 그들은 이번 건수로 상트룸 수도회에 결정타를 날릴 생각이었다. 이번엔 상대방의 물건을 떨어뜨리고 가는 정도가 아니다. 생존자의 생생한 증언일 것이다. 그것은 최근 일어났던 일련의 의혹에 대해 쐐기를 박는 역할을 할 것이 분명했다. 디리터가 말했다.


“그럼 루루 누님은 어떻게 되는 거지?”


다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데루루피아는 두 단체를 중재시키기 위해 단신으로 광휘의 결사를 찾아갔다. 그런 상황에서, 먼저 보냈던 선발대 중 한 명이 공포에 질려 나타난다. 그는 말할 것이다. 류이너스 교단에게 습격당했다고. 분노한 전사들을 그녀가 설득할 수 있을까? 아니, 그들이 그녀를 가만히 놔둘까?

니암이 틀어 막힌 입을 억지로 비집으며 말했다.


“데루루피아님을 구해주세요!”


그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일행은 어찌 행동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우린 너를 지켜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일이 틀어지는 것은 그녀도 예상하고 있었어.”


이칼롯이 상황을 냉정하게 분석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그조차 눈이 심하게 흔들렸다. 듣고 있던 일행도 그의 의견에 쉽게 동조하지 못하고 있었다.

미처 말릴 틈도 없이, 니암은 이칼롯의 바짓자락을 붙들고 사정하기 시작했다.


“제발....부탁이에요. 더...더 이상 주변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은 보고 싶지 않아요. 제발....”


“크....”


이칼롯이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자, 니암은 급기야 땅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흐흑...저...저는 괜찮아요. 저 같은 건 어...어떻게 되든 상관없어요. 제발, 제발 데루루피아님을 살려주세요.”


망설일 시간조차 모자랐다. 디리터가 거칠게 투핸드소드를 뽑았다.


“마리네! 누님이 담판 지으러 간다고 한 곳이 어디였지?”


“으...응? 분명 행정 지구에 있는 중앙광장으로 간다고...”


냅다 뛰어가려던 그는, 뒤늦게 자신이 레인스터 지리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행정 지구가 어디냐?”


이칼롯이 그를 보며 말했다.


“의뢰를 어길 생각인가?”


“당연하지! 루루 누님처럼 좋은 사람 찾기가 쉬운 줄 알아?”


“그래...그럼 따라와라.”


이칼롯은 잠시 방향을 재더니, 시장거리에 난 마차 도로를 따라 달려갔다. 루도가 함께 가려고 발을 굴렀으나, 디리터가 그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그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니들은 니암 지키고 있어. 누군가는 임무를 완수해야 할 것 아니냐. 저기 술집에 들어가서 꼼짝 말고 기다려. 알았지? 사람 없는 곳엔 절대 가지 말고!”


그렇게 말하고는 그 역시 이칼롯을 따라 어둠 속으로 뛰어갔다. 사라져가는 그의 뒷모습을 멀거니 바라보고 있는데, 제리온이 침을 탁 뱉으며 말했다.


“젠장할! 지들이 무슨 영웅 리카르고라도 되는 줄 아나. 무슨 수로 수십 명을 상대한다는 거야?”


그가 욕지거리를 하며 신발끈을 동여매자, 마리네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제리온도 가려고?”


“그럼 안 가냐? 저 형씨 개죽음당하게 생겼는데. 물론 나도 같은 꼴이 될지도 모르지만.”


제리온은 조깅하듯이 가볍게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그는 뛰면서도 끊임없이 푸념을 늘어놓았다.


“빌어먹을! 어쩐지 일이 너무 쉽게 풀리더라. 10골드는 얼어 죽을. 50골드는 받아야겠어.”


그마저 사라지자, 길가엔 어린 소년 셋만이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마리네가 불안하게 목검을 움켜쥐었으나, 현 상황에 그다지 도움이 될 것 같진 않았다. 루도가 흐느끼는 니암을 토닥이며 말했다.


“일단 술집에 들어가서 도움을 청하자. 우리끼리 있는 건 너무 위험해.”


술집 안에서는 여전히 불빛이 환하게 새어나오고 있었다. 아무리 흉악한 살인범이라고 해도 인파가 몰린 곳에 무턱대고 나타나진 않을 것이다. 이대로 사람들 틈에 섞여 날이 밝길 기다린다면, 니암의 신변에 큰 문제가 생기진 않을 것이었다.

아이들은 니암을 부축하며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술집에서 흘러나오던 흥겨운 노랫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고 있었다.




늦은 시각이라 그런지 광장을 지나다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벽돌건물이 빼곡하게 들어선 행정 지구는 답답하고 사무적인 느낌이 들었다. 자그마한 잡초조차 모조리 뽑아버려 풀벌레 우는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간혹 쓰레기를 뒤지던 도둑고양이가 발소리에 놀라 황급히 몸을 숨길 뿐이었다.

데루루피아는 무기를 가지고 있었으나, 굳이 뽑아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무기를 뽑을 상황이 된다면 이미 틀렸다는 것이니까. 그녀는 눈대중으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인원을 파악해보았다. 어림잡아도 30여 명. 완전히 어둠 속에 녹아든 자들도 있을 테니 그 수는 더 많을 것이다. 달빛이 어두워 옆에 서 있는 것이 동상인지, 사람인지도 잘 구별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음침한 복장을 하고 다니면서 무슨 광휘의 결사라는 거야?”


그녀가 핀잔을 주자 개중 성질이 급한 자가 사납게 검을 움켜쥐었다. 물론, 대장의 명령 없이 검을 뽑을 수는 없었다. 데루루피아는 피식거리며 웃었다. 이렇게 말해도 현 상황에선 허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그녀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완벽하게 포위되어 있었다. 상트룸 수도회가 레인스터에 지부를 두고 있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건물이 행정 지구에 있다는 것도.

정확한 건물의 위치는 알지 못했으나, 굳이 찾아갈 필요는 없었다. 그들은 친히 마중 나와 그녀를 에워쌌다. 명령만 떨어진다면, 수십 개의 검이 그녀를 향해 쇄도할 것이다. 광장 가운데 위치한 분수대에 붉은 머리의 남자가 앉아있었다. 다른 이들이 모두 검은색 로브를 입은 반면, 그는 가벼운 여행복 차림에 레더아머(leather armor)를 착용하고 있었다. 그녀가 앞에 다다르자, 그는 앉은 채로 손을 내밀었다.


“이렇게 직접 찾아올 줄은 몰랐어, 데루루피아 아망초.”


“...당신이 조금만 더 머리가 좋다면 내가 왜 찾아왔는지도 알 텐데? 유르그젠.”


유르그젠이라 불린 남자는 난간에 걸쳐놓은 클레이모어(claymore)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네가 소환에 관한 정보를 찾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것은 알고 있다. 덕분에 우리도 많은 것을 얻었지. 하지만 그게 네 목숨을 지켜줄 정도로 비싼 것은 아니야.”


“내가 자살하러 온 게 아니라는 것쯤 이미 알고 있잖아? 시간 끌고 싶지 않아.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회군하도록 해.”


“회군? 글쎄... 회군이라. 자초지종은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유감인걸.”


그가 손짓하자 근처에 있던 사내 하나가 작은 가죽가방을 가져왔다. 유르그젠은 그 가방을 데루루피아의 발치에 툭 던졌다. 그녀의 눈썹이 작게 씰룩거렸다.


“굳이 안 봐도 알아. 류이너스 교단과 관련된 물건이 들어 있겠지.”


“그래, 맞아. 그 가방 안에는 귀중한 증거품이 들어 있지. 류이너스의 심볼과, 수호기사단의 견장이. 그걸 처음 발견했을 때 내 가슴이 얼마나 벅차올랐는지 설명해줄까? 그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사원 안에서.”


유르그젠은 그때의 참상이 떠오르는지 클레이모어를 땅바닥에 쿵 찍었다. 주위를 둘러싼 남자들의 숨소리도 점차 거칠어졌다. 예상했던 대로 그들은 사원을 습격한 자들이 류이너스 교단에 속한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생각보다 일이 어려워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침을 꼴깍 삼키며 말했다.


“당신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겠는데, 류이너스 교단도 습격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그리고 그 현장에서 발견된 것이 뭔지 알아? 바로 상트룸의 심볼이야.”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느끼는 대로. 이건 책략이야. 류이너스 교단과 상트룸 수도회를 반목시키기 위한 누군가의 계략이라고. 둘이 전면전을 벌이게 되면 일은 걷잡을 수 없게 될 거야. 지금은 침착하게 사태를 직시해야 해. 두 단체가 힘을 합치면 이간책을 쓴 자가 누구인지 알아낼 수 있을 거야.”


유르그젠은 잠시 자신의 머리칼을 매만졌다. 그는 그다지 동요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 애매하게 웃었다. 망설인 것도, 대답을 궁리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단지 데루루피아의 긴장된 표정을 즐기며 답을 미루고 있었다. 잠시 후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쁘지 않군. 하지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나? 눈에 거슬리는 상트룸 수도회를 쓸어버리고, 그럴 듯한 사람을 보내 사건을 무마시키는 거지. 화친을 받아들인다면 수도회는 말 그대로 병신이 되는 거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굴지의 수호기사단을 출진시키는 거야. 괜찮은 명분도 있군. 습격당한 신전에서 상트룸의 심볼이 나왔다라.”


“당신....!”


그녀는 유르그젠을 매섭게 쏘아보았다. 어둠에 가려 그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으나, 아마 간교한 미소를 짓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그는 느릿느릿한 동작으로 검을 뽑았다. 스르릉. 음산한 소리가 거리에 울려 퍼졌다. 은색의 검날이 달빛을 받아 반짝였다. 그가 말했다.


“너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수도회에 없진 않아. 늙은이들은 곧잘 쓸데없는 음모론에 휩싸이곤 하니까. 그래서 너를 바로 죽이지 않았던 거야. 마음만 먹었다면, 언제든 루프리모의 아이를 빼앗아올 수 있었어.”


“...무슨 소릴 하려는 거지?”


“일련의 사태를 저지른 사람이 누구냐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어쩌면 감사해야 할지도 모르지. 덕분에 이런 정당한 계기가 마련되었잖아? 난 말이야, 예전부터 불만이었어. 왕국의 흥망을 쥐고 있는 신의 아이를 왜 교단에서 데리고 있는지. 왜 ‘각성’을 위한 준비를 하지 않는지.”


“유르그젠, 당신!”


데루루피아가 그에게 다가가려 했으나, 옆에 있던 사내에 의해 저지당했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젠 섣불리 도망갈 수도 없었다. 일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광휘의 결사를 이끄는 자는, 생각했던 것보다 위험한 야망을 품고 있었다.

유르그젠은 히죽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 결과를 보라고. 어떻게 됐지? 펠아람의 아이는 죽어버렸어. 각성도 하지 못한 채. 수정이 빛나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행방조차 묘연하지. 이번엔 루프리모의 아이가 습격당했지. 뭐 용케 신변을 보호한 것은 칭찬해줄게. 하지만 그것도 요행일 뿐이야. 류이너스 교단이 번번이 허탕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이젠 질렸어. 루프리모의 아이는 상트룸 수도회로 와야 해. 더욱 강력하고, 철통 같은 보호 아래, 올바른 각성을 준비해야 해.”


“당신 미쳤어? 그러다 일이 잘못되어 파괴성향으로 각성하기라도 하면, 국가고 뭐고 전부 끝장이야!”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해야지. 그럼 단순히 손 놓고 있을 셈인가? 베릴의 아이는 아스트리카에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아반케즈의 빛은 브리토리스에서 보였다고 하지. 비록 폭풍협곡 덕분에 쉽게 들어오지 못한다고 해도, 무시할 수는 없어. 우리 역시 미래에 대비해야 해.”


“...무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겠다는 건가? 상트룸 수도회도 썩었군. 대신관도 당신의 속셈을 알고 있나? 아니, 당신들도 모두 같은 생각이야?”


그녀는 주변의 사내들을 향해 야멸치게 외쳤다. 그러나 검은 로브의 사내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들을 향해 한바탕 욕을 날려주고 싶었으나, 목이 바짝바짝 메어왔다. 그녀는 마른 침을 삼키고는, 분노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 호랑이 없는 곳엔 여우가 왕이라더니. 딱 그 꼴이네. 나젠크루거가 있었어도 당신이 지금처럼 말했을까?”


“임무에 실패한 쓰레기는 입에 담을 가치조차 없지.”


“그래서? 이젠 어쩔 셈이지? 날 죽이고 그 아이를 데려갈 건가?”


“못할 건 없지만, 그러면 내 입장이 조금 곤란해지지. 말했듯이 음모론을 좋아하는 영감들이 몇 명 있거든. 하지만 막상 루프리모의 아이를 갖다 놓으면 또 생각이 바뀔 거야. 지금 수도회에 필요한 건 승리다. 윗선의 늙은이들은 희생을 두려워한 나머지 몸을 사리고 있어. 이런 상태로 리크나이츠의 번영을 꿈꾸기엔 무리야. 여기까지 오면서 줄곧 고민했었는데, 역시 루프리모의 아이는 데려가야겠다. 넌 그때까지 얌전히 잡혀 있으라고.”


데루루피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협상은 실패였다. 유르그젠은 처음부터 사건의 진실 여부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가 이렇게 교활한 자일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이젠 이칼롯 일행이 니암을 데리고 최대한 도망쳐주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수호기사단이 있는 곳까지만 도착한다면 아직 희망은 있었다.

그녀는 품 안에 손을 넣었다. 손가락 끝으로 투박한 질감이 느껴졌다. 라이트 애로우(Light arrow)의 스크롤. 일행은 사전에 계획의 성공 여부를 알리는 통신수단을 마련해 놓았다. 설득이 성공한다면 빛의 화살을 두 개, 실패한다면 하나를 쏘아 올리기로 정했다. 그리고 지금은 하나를 쏠 때였다. 그녀의 화살을 보는 순간, 이칼롯 일행은 전력으로 도망칠 것이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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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람의 계승자 - 꼬마 레인저(3) +4 15.03.21 2,766 72 12쪽
3 람의 계승자 - 꼬마 레인저(2) +3 15.03.21 3,288 92 14쪽
2 람의 계승자 - 꼬마 레인저(1) +3 15.03.21 4,438 88 15쪽
1 람의 계승자 - prologue +23 15.03.21 7,846 119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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