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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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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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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30 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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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05,694

작성
23.11.06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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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2쪽

145. 프린스 오브(9)

DUMMY

*


심장에 열기가 닿는다.


검은 살을 헤집는다.


검은 검檢.


흑색의 칼날 위로 푸르른 빛깔의 검기가 씌워졌다. 반투명한 색깔이라 그 내부로 짙은 암청색의 심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푸르른 검기는 고블린의 외부를 찢은 것처럼 내부를 파고 들었다.


가죽, 표피, 지방층, 근육, 뼈에 흠집을 조금 냈고, 그 사이에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체조직과 세포를 갈라낸고 파괴했다.


피가 도는 혈관을 찢고, 심장 근처에 있는 대동맥도 깨나 날아갔다.


갈기갈기 찢으며 전진했으며, 그립을 바깥에서 처넣을 정도로 단검을 찔렀음에도 거리가 부족했다. 고블린은 제법 몸통이 두껍고 컸다.

검기가 더욱 움직였고,


심장 근처에 닿는다. 고블린은 형언하기 어려운 격통을 느낀다.


칼날이 심장에 다가온다.


파즈즈즈,


공기는 아니되 그 주변에 있는 것들을 태우는 무언가가 일었다. 불길이다. 그와 비슷한 것이었다. 뇌전의 기운이 칼끝에 모여들어 형체를 만들었다. 물 속에 들어있는 것과 같은 꼴이었으나 MP로 이루어진 번개는 그 내부에서 생겨나 자신의 자리를 차지했다.


번개가 닿는 곳은 열로 인해 지져졌다.


타들어가고, 열기의 칼날이 되어 체조직을 부수고 째고 가른다.


멀리 있던 심장이 번개에 닿았다.


푸른 번개는 그 혀를 낼름거리는 뱀처럼, 그것도 여러 마리의 사두蛇頭처럼 갈래가 나뉘어져 심장을 노렸다.


물처럼 있는 피를 한껏 태우고 증발시키면서, 장기를 망치면서 다가가 심장의 표면을 갈랐고, 내부 기관을 태우기에 이른다.


*


“카아아아아아아아······.”


고블린은 말이 아닌 소리를 뱉었다. 애초에 말을 할 수 없는 놈이긴 하지만, 동족 간의 의사소통 정도는 가능한 녀석이었다. 지금 놈이 뱉는 소리는 동족 간에도 알아들을 수 없는 단순한 비명에 가까웠다.


비명을 지를 힘이 부족했다. 실시간으로 내부에서 심장이 망가지고 있는 것이 고블린에게는 참 익숙치 않았다.

경험이 없는 고블린이었다. 누구라고 죽는 경험을 해봤겠냐만은, 아직 싸움의 경험이 그리 많지 않았다. 몇 번의 플레이어 레이드를 견뎠던 놈이라면 조금 다를 수도 있겠지만.


힘이 남았어도 의지가 꺾인다면 MP 유저들의 싸움은 거기서 성패가 갈린다고 봐도 좋았다.


고블린은 심장을 조여오는 번개의 흔적이 두려웠다.


자신이 피해를 각오하고 상대를 죽였다고 생각한 순간에, 그 공격이 무용지물이 된 것 또한 고블린의 의지를 꺾게 만든 주요한 이유이기도 했다.


자욱한 연기. 발광하던 빛은 서서히 사라져간다. 눈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기감으로 현실을 인식한다.


인식하는 현실은 고블린에게 죽음을 말하고 있었다.


심장이 망가졌다면, 고블린 역시 확률적 죽음을 받아들여야 했다.


재생력을 갖고 있었지만, 개체마다 그 위력이 달랐다. MP를 격발시키고 마구잡이로 주변 생물들을 잡아먹고, 에너지를 보충하고 천운이 따른다면 살 수도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죽을 수도 있었고.


어느 정도 선을 넘은 것이다.


심장에 타격이 가고 타들어간 순간부터.


고블린의 강맹함은, 죽음 직전의 부상을 입었더라고 하더라도 아무렇지 않게 날뛸 수 있는 힘이다. 플레이어들에게는 두려움을 주는 능력이지만, 그 광폭한 소동이 끝나고 나서 자신도 살 것이라는 100% 확신은 없는 상태이다.


고블린은 꼬챙이를 말아쥔다.


다시금 팔을 들어 제냐의 등 뒤를 쿡, 찍었다. 여전히 걸리는 게 있었다.


제냐는 멀쩡했다.


“소환.”


이라고 그 품 속에서 웅얼거렸고, 곧 손잡이까지 견갑 아래로 처박은 비검을 두고, 한 자루를 다시 소환했다.


검기가 생겨난다. 제냐는 굳이 새롭게 구멍을 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미 찍었던 그 구멍의 뒤쪽으로, 들어간 비검을 더욱 밀어넣으며 그립 위로 블랙 리틀즈02의 칼날을 찔러 박았다.


퍽,


망치로 못을 때리듯한 소리가 들리면서, 고블린의 가슴 내부에 들어가 있던 비검이 심장을 완전히 찢어발기며 거진 관통했다. “칵.”


고블린의 입가에서 흰 빛이 떨어져 내려왔다. 아래에 있던 제냐의 정수리에 묻었다. 피를 제대로 표현하지 않는 것은 감사한 일이었다. 이 게임은, 고통에 대해서는 관대한 편이지만 혐오스러운 감각에 대해서는 그다지 친절하지 않았다.

더럽게 맛없는 음식을 입에 담을 때, 현실에서 그랬을 때와 같은 감각이 온다. 아마 저게 피가 아니라 다른 종류의 오물이었더라면 모자이크나 우회적 연출도 없었을 것이고, 그대로 머리에 묻어 흐르는 느낌과 냄새를 다 감당해야 했을 테다.


제냐는 “소환.”


이라고 외치면서 다시 한 자루를 불렀고, 썬더 인챈트를 가동시켰다.


검력과 함께 번갯불이 검은 비검의 위로 솟구친다.


검기를 곧바로 쓰기에는, 조금 힘이 달리는 느낌이었다. 계속해서 새롭게 생성해서 박아 넣고 있으니. MP 소모가 빠르다.

검기를 만들지는 않았다.


살짝의 홈만 있어도 충분하다.


제냐는 블랙 리틀즈04를 고블린의 명치에 박아넣었다. 쿡, 하고 고블린의 꺾인 의지처럼 물러진 보호막에 틈이 났다. 어지간한 공격으로는 흠도 잘 나지 않을 방어력인데 간신히 그것을 뚫었고, 단단한 외피를 가르고 칼 끝이 조금 들어간다.

검력의 파도가 내부에 흘러갔지만 그게 중요하진 않다.


제냐는 다시금 읊었다.


“썬더Thunder."


뇌전을 부른다.


그 부름에 답하듯 제냐가 당장 투입할 수 있는 모든 MP가 전부 손끝으로 흘러나오며 검은 비검의 칼끝까지 향했다. 그 뚫린 표피의 안쪽으로, 최대 화력의 썬더볼트를 처박았다.


콰지지지직.


하고,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났으며, 곧 폭발과 함께 제냐가 뒤로 밀렸고, 고블린 프린스는 가슴팍 내부에 두 자루, 명치에 한 자루를 박아넣은 채 폭발의 압력에 밀려 또 몇 걸음 떨어졌다.


검은 꼬챙이를 들고 있던 팔도 허물어져서 제냐를 놓아주게 되었다.


폭발의 여운.


”크르르르르···.“


그 속에서 짐승이 운다.


제냐는 눈이 조금 눈이 가물거렸다. 후우.


비스트 슬레이어가 어디로 갔더라.


기감이 주변을 더듬는다. 간신히 그 범위의 끝에 비스트 슬레이어가 놓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천천히, 고블린을 주시하면서 그대로 뒤로 빠져 검을 집어들러 움직인다.


고블린은 많은 상처를 입었고, 조용히 울고 있었다.


이 때가 적기라고 생각해 들어갔다가 횡액을 당할 수가 있었다. 상처 입은 짐승이 가장 무서운 법이었다.

상처입은 몬스터는 더욱 그렇고, 악마종의 네임드 몹이라면 더 말할 것이 없다. 놈은 죽기 직전에도 평시와 거의 비슷한 전투력을 유지 가능한 데다가, 그것이 자신의 삶의 마지막이라면 온갖 발악을 다 할테였다.


그 광란에 쓸려 들어가 줄 이유는 없었다. 천천히 거리를 벌리고, 놈이 힘을 잃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틈을 기다리면 될 뿐이다.


저벅.


제냐는 조용히 움직인다, 고 생각했지만 작은 발자국 소리가 났다. 은엄폐를 응용한 보법을 쓰고 있었던 것 같은데. 여기저기가 삐걱거리는 기분이다.

하도 처맞았더니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걸 기력으로 간신히 돌리고 있었는데 MP를 계속해서 소모하고, 검기를 만들고 상대의 몸속에 처박고를 반복하다 보니 그마저 힘들다.


평소보다 훨씬 힘이 없는 상태로 제냐는 조용히 거리를 벌렸다.


크르르르르,


사자가 우는 것같은 떨림을 낸다.


고블린은 제자리에 서 있었다.


무언가 생각을 하기라도 하는 것일까. 악마종에게 그럴싸한 생각이 있는가. 교활함은 있다고 듣기는 했지만.


자신의 죽음에 대한 어떤 수용을 하고 있을런지도 모른다. 제냐는 아니었으나, 이 세계에 살아가는 NPC들에게는 게임 오버가 곧 죽음이었으니까 말이다.


어떤 생물도 죽음은 두려운 법이다.


프린스라 불리며 고블린들을 통솔할 만한 자격과 힘이 있는 개체라고 하더라도 그렇다.


처음에 흉악하게 일그러졌던 인상과 모습이 지금은 초라해보인다.


흩어지는 폭연 속에서 처연하게 서 있는 고블린의 형상은 그저 죽어가는 생물의 비참함 뿐이다.


후우우,


하고 바람이 불었다.


어둠숲의 침엽수목 사이 사이로 바람이 불어 연기가 밀려난다.


시야가 점차 확보된다.


기감으로 바라보고 있는 주변 환경과 실제 눈으로 바라보는 색감 넘치는 광경이 합쳐지면서 제대로 초인으로서의 감각이 돌아온다.


여러 가지 루트를 통해 얻어내는 정보들을 종합적으로 다루어냄으로써 초인의 감각은 완성되는 것이었다.


이곳에 있으면서 원거리에서 닥쳐오는 위험을 느끼기도 하고. 육감을 사용하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사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느끼기도 하고.

실제 캐릭터에게 달려있는 기관들로 오감 정보를 얻고.


그렇게 조심을 해도 죽을 지 모르는 게 이 게임이다.


걸리적거리는 나뭇잎 따위를 발로 밟아 부스러뜨릴 때마다 소리가 났다. 아주 조용히 걷고 싶었지만 그건 되지 않는다.


저벅거리며 뒤로 천천히 물러서는 제냐의 모습에 고블린은 여전히 미동이 없다.


폭발 전의 화약고를 보는 것처럼, 혹은 폭풍이 일기 전의 고요함을 느끼는 것처럼 제냐는 싸늘하게 머리가 식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저 다 걸어 비스트 슬레이어가 박혀 있는 한 나무에 도달했고, 고블린으로부터는 대각선 방향으로 30여 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다. 제냐의 시선에서 왼쪽 대각선 전방에 고블린이 있었다. 시야로 나무들 틈에 고블린의 모습은 여전히 보인다.


비스트 슬레이어를 바라보지도 않고, 그대로 뒤로 걸으면서 다가가 손을 내밀어 그립을 잡은 뒤 뽑아내었다.


블랙 리틀즈도 좋기는 하지만 비스트 슬레이어가 아무래도 가장 강력하다. 무게적으로도 그렇고 리치도 그렇고. 무기 자체가 갖는 강함이 강하다면 기력술을 써서 강화시켰을 때 상대에게 더 큰 데미지를 줄 수 있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검기를 다룬다지만 긴 리치를 그것만으로 전부 커버하기에는 효율이 떨어졌다. 쓸만한 검이나 도구를 갖고, 그 위에 얇은 코팅을 더한 뒤 절삭력과 파괴력만을 얻어내는 게 가장 적합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었다.

때로는 검기를 날려 원거리 공격을 하는 미친 작자들도 있기는 하지만. 아직 제냐가 제대로 쓸 수 있는 기술은 아니다.


이전에 위검기僞劍氣라며 AI 제냐가 써먹은 게 있기는 하지만, 그건 엄밀히 말하면 기력술과 MP를 사용한 초상술의 합작이었다. 뇌전의 기운에 검력을 섞어 날려보낸 것이고, 그저 무식하게 MP를 때려박아 근거리에 있는 적들을 잡아낸 것에 불과하다.

위력적으로 보이며 눈으로는 충격적인 장면을 연출할 수 있지만 실제 효율이나 파괴력을 따진다면, 동량의 MP로 더블 인챈트를 한 뒤 직접 다가가 베는 게 훨씬 좋을 테였다.


원거리 공격이라고 하지만 정말 제대로 된 투사체 발사류의 공격들처럼 멀리까지 닿지도 않을 뿐더러 말이다.

그저 얼마나 기력술의 운용 능력이 올라왔는가 체크하는 정도의 의미만을 갖고 있는 기술이었다. 의지력의 발전 역시 같은 말이다.


나무에서 검을 뽑아낸 제냐는 기다린다.


어느 정도 거리를 갖는 게 가장 적절할까.


”······.“


들리지는 않게, 자그마하게 인벤토리를 불렀다. 반투명한 인벤토리 창 너머로 고블린의 모습은 계속 주시한다. 눈으로 잠시 놓쳐도 기감은 여전히 살피고 있었다. HP포션과 MP포션을 긁어서 꺼냈고, 순식간에 입으로 물어 마개를 따고 흘려넣었다. MP포션은 마시고, HP포션은 몸에 대충 뿌리고 반절은 마셨다. 한 두어 병 정도를 더 마실 때까지 고블린은 움직이지 않았다.


대치 상태에서 가장 먼저 움직임을 보인 건 저 멀리에 있는 최태현이었다.


퉁,


하고 나무의 위에서 다시금 화살을 발사시킨 최태현은 거리라는 게 자신을 보호해주리라 여기고 있었다.


고블린은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고, 마침 날아오는 화살을 직시한다.


가만히,


그것을 보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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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 146. 프린스 오브(10) 23.11.06 22 3 16쪽
» 145. 프린스 오브(9) 23.11.06 21 3 12쪽
145 144. "아, 그 놈 잘 있으려나?" 23.11.06 19 3 16쪽
144 143. 고블린 페이즈Phase 2(2) 23.11.06 18 3 17쪽
143 142. 고블린 페이즈Phase 2 23.11.06 22 3 14쪽
142 141. 프린스 오브(8) 23.11.05 22 3 12쪽
141 140. 프린스 오브(7) 23.11.05 22 3 13쪽
140 139. 프린스 오브(6) 23.11.04 21 3 14쪽
139 138. 프린스 오브(5) 23.11.04 18 3 13쪽
138 137. 프린스 오브(4) 23.11.04 18 3 13쪽
137 136. 프린스 오브(3) 23.11.03 20 3 18쪽
136 135. 프린스 오브(2) 23.11.03 18 3 12쪽
135 134. 프린스 오브Prince of 23.11.03 19 3 17쪽
134 133. 유니콘 23.11.02 21 3 14쪽
133 132. 전리품들 23.11.02 21 3 14쪽
132 131. 수난 23.11.01 21 3 20쪽
131 130. 백마 23.11.01 18 2 19쪽
130 129. 헛웃음 23.11.01 19 3 11쪽
129 128. 저녁 비행 23.11.01 21 3 18쪽
128 127. 또 사냥 23.10.31 17 3 12쪽
127 126. 재접속 23.10.31 18 3 22쪽
126 125. 간밤의 습격, 그 끝 23.10.30 20 3 32쪽
125 124. 위검기僞劍氣 23.10.29 20 3 19쪽
124 123. 맥컬리 23.10.29 22 3 21쪽
123 122. 펠 파이든 23.10.29 23 3 21쪽
122 121. 골목길 23.10.29 18 3 23쪽
121 120. 미첼 카니브 23.10.28 22 3 17쪽
120 119. 튀어 23.10.28 24 3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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