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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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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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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23 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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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2. 매달린 사내의 시점

DUMMY

“크워어-!”


사자는 거센 파도처럼 소리를 쳤다. 그리고 몸을 웅크렸다가 펄쩍, 뛰어 알드라에게 다가온다. 알드라는 직진으로 자신에게 곧장 오는 사자의 모습에 피할 수 밖에 없다.


거대한 집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건물의 움직임이나 사실 비슷하다. 알드라가 현대의 지구인이었다면, 기차나 덤프 트럭이 덮치는 모습이라고 표현을 했으리라.


사자, 갈기를 휘날리고 있는, 금색의 털을 가진.

괴물 사자가 목을 빼며 아가리를 쭉 내밀고 턱, 한 번 더 허공을 씹는다. 알드라가 다시 한 번 더 옆으로 빠지면서 사자를 피한다. 위에서 알드라의 모습을 봤을 때 빙글 돌고 있는 듯도 했다. 사자가 계속 그를 따라갔다.


몇 번 알드라를 집어 삼키려 하다가 실패했다. 사자는 몸을 뒤로 했다. 앞발로 몸뚱이를 턱, 밀면서 궁둥이를 뒤쪽으로 뺀다.


마침 그 곳에, 사자가 부지런하게 입으로 물고 왔던 거대한 창이 꽂혀 있었기에 말이다.


사자는 잔디 바닥에 파묻히듯 꽂힌 거창巨槍의 대를 물었다. 사자의 악력이나 고갯짓에 담긴 거력은 어마어마한 것이다. 장정이 도로 뽑으려 해도 한참 힘이 걸릴 것 같은 자태의 창이었는데. 아주 무른 것에 부드럽게 꽂혀 있던 막대기마냥 수욱, 빠져나왔다.


사자는 그대로 대를 물어 제 아가리의 오른쪽에 창날이 있게끔 했다. 중간에서 조금 아랫단을 아가리로 씹고 있다. 이빨로 물지 않고, 창날을 이용해서 잡아 죽이려는 모양이었다. 알드라는 그 모습을 보고 이해했다.


아, 저 사자가 사람이구나, 하고 말이다.


그리고 그가 변신술사인 것도.


기력술사, 기사는 초인의 한 갈래다. 강화술만을 사용하는 부류이지만 무수하게 많은 초상술사들과 싸우면서 다양한 분야의 메이지들을 만나게 된다. 변신술사도 개중 하나였다. 저렇게 무식하게 커다란 괴물로 변하는 자는 여태껏 보지 못했지만.


몬스터를 테이밍해서 다루는 테이머들도 있었지만. 그렇게 테이밍된 몹mob과도 움직임이 조금 다른 것 같았다. 아주 고지능의, 마치 사람인 것마냥 행동하고 있지 않은가. 테이밍된 몹은 아무리 영리해도 기본적으로는 짐승인데. 그것에 사람의 명령이 전달되어 행동에 조금쯤 어설픈 면이 있다.


반면 변신술사가 제 모습을 바꾸어 괴물의 꼴을 하고 있을 때는. 겉 모양은 괴물이지만 움직임에 들어 있는 의도 하나하나가 아주 날카롭고 지혜로워서, 사람인 걸 유심히 관찰하면 알 수 있었다.


여태까지는 본능에 의해 움직이는 것처럼 알드라를 죽이려고 했었는데. 창대를 다루는 모습을 보니 알 수 있었다. 아무리 고도로 훈련된 펫 몬스터라고 하더라도, 검술이나 무술을 익힐 수는 없는 법이었다. 아주 단순한 동작 몇 가지를 익히게끔 한 뒤에. 뒤에서 테이머가 무술의 흉내를 내게끔 할 수는 있더라도.


진정한 무술의 묘리를 발휘하기는 아무래도 힘들다. 테이머는 테이밍 펫을 통해서, 한 다리 건너 둔한 무술의 모습을 구현하는 게 가능핧 뿐이었다. 반면 변신술사는 스스로의 육신을, 스스로의 의지로 움직이는 것이라.

짐승형의 몸뚱아리를 제어하는 법만 연습해서 익히면 강력한 육체의 힘에 사람의 무기술을 더할 수 있었다.


사자를 가지고 창대를 능숙하게 짓씹고 있는 저 자태를 보라. 으르렁거리는 눈빛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다.


알드라는 검을 곧추세웠다.


하늘이 푸르고, 청명하다.


사자와 사내라니.


참으로 그럴싸한 장면이라고 기사는 스스로 생각을 했다. 대공가의 기사로 산다는 게 그리 정의롭지만은 않다는 걸 이미 알고는 있었다. 그럼에도. 이런 때 잠시라도 동화 속 주인공과 같은 감상을 가져볼 수는 있지 않겠는가.


펑.


표정을 멋있게 고치며 사자의 앞에서 씨익 웃던 기사의 옆통수에, 화살 하나가 날아와 부딪혔다.


살을 찢고 가르는 처참한 소리는 나지 않았는데, 대신 무언가 터지는 폭발음이 나면서 그대로 알드라는 옆으로 날아가 버렸다.


마치 솜으로 채워진 인형이 독수리의 발에 채인 것과 같았다. 아무런 무게가 없는 천 뭉치처럼, 화살의 위력이 강력했던 터라 머리를 중심으로 저 멀리까지 난다.


땅바닥에 처박히지도 않고 길게 날아서, 전장에서 조금 벗어난 자리의 잔디 위에 볼품없이 처박혔다.


화살은 기력으로 무장한 고수급 기사의 육신을 단번에 꿰뚫지는 못했으나, 대신 강렬한 물리력과 폭발력으로 그대로 전장에서 이탈시키는 데 성공했다.


알드라는, 동화 속 한 장면 같구나,


라고 생각하던 데까지를 마지막 기억으로 의식을 잃고 볼품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


“한 발.”

“브라운을 불러줄 걸 그랬나?”

“그러게.”


최태현은 통신구를 통해서 라이엔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썬더스의 배 아래 부분에는, 안장과 비슷한 것이 늘어져 있었다. 마치 썬더스가 아래로 꼬리를 하나 더 내린 것과 같은 꼴이었는데, 새의 생식기 따위를 구현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아주 질기고 튼튼한 재질로 특별히 만들어 낸 물건이다.


썬더스의 몸통부에 연결되어 있는 가죽 끈은, 아래로 축 늘어져서 새가 날 때 뒤로 조금쯤 날린다. 보통은 풀어두거나, 장착을 하더라도 둘둘 말아서 잘 보이지 않게 치워둔다. 이처럼 앉을 것을 풀어 내린 상태는, 최태현처럼 썬더스에 간이로 타는 이들을 위한 것이다.


썬더스는 전장의 상공을 누비며 날았다. 아주 아득하게 높이 날아서는, 대공가의 저택 부지 전체에 펼쳐진 결계에 걸려 그럴 수 없었다. 새로서는 말도 안되는 저공 비행이고, 거대한 체구를 가진 괴조로서는 더욱 그러했지만.


애초에 대류로 인해 난다기보다 테이밍 스킬을 극한으로 발전시켜, MP로 인한 비행을 하고 있던 터라 큰 상관이 없었다. 마치 호버링을 하는 에어카처럼 제자리에 가만히 떠 있을 수도 있었다. 얼마든지. 적들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계속 조금씩은 움직여줘야 했었지만.


최태현은 의외로 앉는 착석감이 나쁘지 않은 가죽끈에 의지해, 가랑이를 걸치고 매달려 있었다. 조금쯤 비틀린 자세였지만 별로 상관은 없다. 썬더스의 아래에서, 백룡각궁을 이용해서 마음껏 화살을 쏘는 중이다.


이처럼 길드원들이 총동원되어 레이드를 벌이거나, 대형 퀘스트를 처리할 때. 보통 통신구를 이용한다. 릿샤가 간단하게 만들어서 길드원들에게 나눠주는 것이었다. 영구적인 물품은 아니었고.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새로 제작하여 며칠 정도를 쓰고 만다.


물건으로서는 내구성이 극도로 낮다고 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며칠 정도를 유지할 수 있는 간단한 스킬이라고 했을 때는 활용도도, 쓰임새도 아주 높고 많다.

릿샤는 직접 전음 스킬을 통해서 길드원들에게 이야기를 하지만 다른 이들은 그만큼 자유롭게 스킬을 쓰는 게 어렵다. 그런 환경에서 이런 통신구가 있으면 아주 유용하다. 지금도 복잡한 난전 상황에서. 썬더스의 아래에 매달린 최태현이 등에 타고 있는 라이엔과 능숙하게 대화를 하고 있지 않은가.


라이엔은 기본적으로 주변 정찰을 하면서 지원 역할을 하고, 또 최태현을 태워 후방 공격의 다리 역할을 할 때가 많았다. 그녀 스스로도 프리 롤Free role로 남을 때는 여러가지 전략 수행을 따로 시도하기는 하지만. 지금과 같은 때는 보통 주변 전세를 관찰하며 최태현의 말을 들어 적절한 방향과 위치에 가는 일에 집중했다.


어느 것이 가장 효율적인가, 를 따져서 움직일 줄 아는 여인이었다. 그런 면이 헌터즈 길드와 잘 맞는 바였고.


태현은 흔들리는 줄과 작은 안장이었지만, 능숙하게 무게와 자세를 잡으면서 화살을 날려댔다. 썬더스의 몸체는 UFO마냥 관성의 영향을 최소한으로 받으면서 거진 흔들리지 않게 나는 일도 가능했다. 물론 라이엔의 MP가 허락하는 한에서다.


그러나 썬더스의 몸뚱이가 아닌, 간접적으로 매달려 있는 가죽 좌석의 경우에는 흔들림이 조금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태현의 사격은 조금도 빗나감이 없었다. 애초에 궁술만으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사내이니까 말이다.


제냐의 궁술과도 비교하기 어려웠다. 한 가지 계열에 자신의 플레이 타임을 쏟아부은 이는. 스킬의 숙련도 레벨에서도 차이가 많이 나는 법이다.

아무리 기초, 기본 스킬이라고 하더라도 숙련도 레벨이 극極에 달하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예가 된다. 단일 분야에 오래도록 플레이 타임을 쏟은 플레이어들은, 기초 스킬부터 이후 숙련자용 스킬들까지 골고루 숙련도가 높아 남다른 움직임을 보일 수 있었다.


이 게임은 컨트롤 실력과 세세한 움직임의 변화가 전투력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치는 종류였으니 말이다.


사정없이 흔들리는 안장 위. 마치 회전 목마나, 뭐 다른 놀이기구 따위를 타는 것과 비슷한 감각이었지만. 다행히 궁술가로서의 패시브 스킬을 여럿 가진 그는 반고리관이 아주 튼튼했다. 현실에서의 그도 멀미를 잘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이곳에서의 태현, 개멋진나 최는 아예 어지럼을 느끼는 기관이 없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거기에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는 전투 플레이어로서의 감, 시스템의 보정. 뭐 여러가지 것들이 합산이 되면 이 지독한 난전 상황에서 적재적소에 화살을 쏴 갈기는 일이 가능해진다.


백색, 새하얀 궁신弓身이었다. 그 탄력적인 활줄까지도. 약간 푸른 빛이 조금 돌기도 한다. 나름대로 성장형의 아이템인 듯했다. 계속해서 태현의 MP를 머금고, 전과를 올릴 때마다 강도와 탄성, 장력 따위가 늘어나는 기분이었다.


지금, 고수급에서도 완숙한 경지에 이른 태현의 백룡각궁은 상당한 고레벨 아이템이었다. 어지간한 기력술사들은, 당기는 것조차 쉽지 않으리라.


어느새 레벨이 157에 달한 태현이었다. 실질적인 스킬, 아이템, 칭호 등 여러가지 스펙을 따졌을 때의 전투력은 그보다 훨씬 높았고. 레벨 200언저리의 전투 클래스 캐릭터들과는 그리 밀리지 않고 싸울 수 있었다. 200을 훨씬 넘기는 수준이 온다면 힘들어지겠지만, 다소.


그런 상황에서도 순간적인 화력을 투사해 잠깐의 교전은 가능하게끔, 준비를 해온 상태였다. 지금은. 헌터즈 길드에서 맞이하는 레이드나 퀘스트는 정상적인 난이도의 상황이 별로 없었으니까. 절호의 비기 따위를 여러 개 준비해오지 않는 이상 목숨을 부지하기가 아주 어려웠다.


대공가 공략도 사실 미친 짓이 아니던가.

말이 대공이지. 왕가王家에 준하는 힘을 가진 세력이다. 일국 최정상 수준의 세력이라면, 아직 플레이어들도 몸을 사려야 하는 정도였다.


탑 랭커들의 경우에는, 변방의 중소국 왕실보다는 더한 무력이나 그 외 다양한 힘들을 가졌을 지 몰랐다. 그러나 그럼에도. NPC들은 지난 수 천 여 년간 쌓아온 세력을 갖고 있었고. 이제 탑랭커들이 변방국의 최고수들 경지에 닿았을 뿐이다.


전쟁과 싸움이 곧 물자, 자원의 경쟁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아직도 플레이어들은 이 콘란드 대륙에서 마이너한 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다짜고짜 플레이어들만으로 대공가에 쳐들어오다니. 일이 어떻게 진행될 지 알 수 없는 선택이었다. 대공가의 수작이 있으리라 확신을 하니 플레이어로서 선택을 한 것이었지만.


일이 잘못 되어서 무력적으로도 형편없이 깨지고. 나중에 정치적 명분으로도 아무런 정당성을 얻지 못하고 죄인으로 낙인 찍힐 지도 모른다. 그게 최악의 경우이리라.

뭐, 그래봤자 고작 게임 오버가 처할 수 있는 가장 나쁜 처지이기는 하겠지만.


아마 대공가에도 레벨 200을 넘는 강적들이 몇 있기는 할 테였다. 산슈카 왕실을 넘지는 못해도, 분명 이만한 세력의 최고위 귀족이라면 갖추고 있을 확률이 높다. 여러모로 산슈카 내부의 정보들을 파고, 정탐하면서 얻어낸 지식들이었다.


대공가의 자랑이라 할 수 있는 ‘늑대 기사단’의 단장급들이 오면, 확실하게 퇴각의 신호로 삼아야 했다. 워메이지들 중의 수장이 오는 경우에도. 다행히 몇 분 여간 이렇게 난리를 피울 때까지, 위험한 순간은 없었다. 저 멀리에서 폭죽 놀이라도 하는지, 화려한 이펙트와 함께 대공의 저택을 깨부수려는 릿샤가 있다.


그녀가 얼만큼 해주느냐에 따라서 시간이 결정이 될텐데.


적군의 본대가 진을 치기 전에 이곳에서 빠져 나가야 하는 건 확실한 사실이었다. 이미 정해진 계획이다. 여기에서 대공과 정면 승부를 하는 건 무모한 짓거리이고. 그럴 의도도 없었으니까.


다행인 점은, 대공 측에 플레이어 캐릭터가 없는 듯하다는 점이다.


대공의 전체 세력이 얼마만한 규모인지 짐작도 하기 어려운 시점에서. 플레이어가 퀘스트를 받고 적군에 가담을 했다면 그것만큼 골치 아픈 일도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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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8 317. 전쟁(2) 24.05.15 9 1 14쪽
317 316. 전쟁 24.05.15 10 1 16쪽
316 315. 호출 24.05.14 7 1 14쪽
315 314. 건너가는 24.05.14 11 1 11쪽
314 313. 로그, 아웃. 24.05.13 10 1 11쪽
313 312. 요식업자 24.05.13 8 1 17쪽
312 311. 영감 24.05.12 12 1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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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9 308. 박제가 될 뻔한 천재를 아시오 24.05.11 10 1 23쪽
308 307. 파고 들기 24.05.10 9 1 21쪽
307 306. 제 몸 살라먹기 24.05.10 7 1 12쪽
306 305. 늑대의 뱃속에서 24.05.10 6 1 13쪽
305 304. 뇌검雷劍 24.05.09 8 1 24쪽
304 303. 검은색. 금청색. 24.05.08 9 1 23쪽
303 302. 앞니와 검날 24.05.05 16 1 20쪽
302 301. 눈알 24.05.05 10 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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