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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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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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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09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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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24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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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3. 매달린 사내의 시점2

DUMMY

끼릭.


최태현은 회전목마에 매달린 사람처럼. 관성에 따라 이리저리 구불거리는 안장에 몸을 기대며 다시 사냥감을 찾는다.


장력의 최대 한계를 찾아 팔을 끌어당겼다. 온갖 패시브 스킬들이 궁사로서 그의 역량을 끌어올렸다.

지금 그의 근력은 66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66.하고, 소수점으로 몇 자리가 나열되어 있다. 자연수 부분만 계산을 해보더라도, 51.2배의 힘이었다. 각 스탯의 원점이 되는 수치는, 상당히 오래 헬스 트레이닝 따위를 해 온 준선수 급의 피지컬이다. 근력이라고 한다면, 정확하게 나와있는 데이터는 없지만 플레이어들이 측정한 바로 3대 운동이 300즈음 나오는 정도가 ‘기본 스탯’이었다. 각 3대 측정 운동이 골고루 분포된 300이었다.


단순한 계산으로 데드 리프트 100kg를 들어올리는 인간의, 50여 배에 달하는 힘이다. 5톤짜리 물건을 제자리에 선 채로 드는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이또한 스탯에 의한 단순 계산에 불과했고. 거기에 여러가지 자세에 따른 패시브 스킬, 보정, 기력술로 인해 MP를 소모해서 얻게 되는 추가적인 파워. 같은 힘이더라도 더욱 큰 효과를 발휘하는 다양한 운동 메커니즘 따위를 더하면 어마어마한 거력巨力이었다. 수치 이상으로 말이다.


5톤 트럭을 앉은 채로 들어 올리고, 옆으로 툭 던질 수 있다고 한다면. 최태현은 상체의 반신만을 사용해서 백룡각궁을 당기는데, 그 장력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일단 스탯으로 인한 힘은 거진 다 쓰고 있는 중이었다. 여력을 남기지 않고. 거기에 순발력이 말단 부위의 근육에 힘을 더해주고 있었고.


궁사로서 스킬이 활 시위를 당기는 자세에서만 근력에 추가 보정을 주었다. 그러고서, 마지막으로 기력술사인 그가 자신의 몸뚱이를 제어해서 시위를 당겨내는 중이다.


한 손으로 어지간한 자동차를 끌어 던져버릴 수 있을만한 힘이 최태현의 손과 팔, 상체에 모여 있었고. 그만한 에너지로 백룡각궁을 당겼다.


지금 쏘아내고 있는 화살은 ‘백시白矢’였다. 자철시紫鐵矢 역시 아직까지 잘 사용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다른 종류를 가져왔다.

MP에 대한 반응성, 수용성 따위가 아주 높고. 백룡각궁과 함께 사용했을 때 시너지가 조금 있었다. 무게가 가볍고 단단하며, 정도 이상으로 MP를 넣어 포화 상태를 만들어두면 폭발하는 녀석이다.

별도의 스킬샷을 쓰지 않더라도 상대에게 추가 타격을 줄 수 있는 화살이었다. 다신 회수하지 못하고 모든 화살을 일회용으로 버려야 한다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지만.


어차피 소모품에 돈을 아낄 수는 없는 처지였다. 계속해서 이런 식으로, 키를 넘는 수준의 장애물들과 맞닥뜨리며 플레이를 하게 된다면. 돈도 살아 있어야 쓸모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


현실에서의 그도 그다지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다. 집안의 빚도 조금 있었고. 앞으로 살 집을 위해서 목돈도 마련해야 했다. 아직은 아니지만 나중에 결혼을 하게 된다면 그에 따른 자금도 있어야 할 테고.

연봉이 아주 적은 건 아니었지만 또 여느 전문직들처럼 크게 높은 편도 아니었다. 부지런하게 일하고, 계속해서 벌어야 앞으로의 삶이 평탄해지리라.


현실을 생각하면 화살을 쥐는 손의 감각이 조금 둔해지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인의 수준으로 단련이 된 캐릭터의 육신은 큰 실수를 보이지 않았지만. 그가 정신을 놓더라도 스킬에 걸려 있는 보정 시스템이 그의 감각을 보조하기는 하지만. 고수끼리의 치열한 싸움에서는 한 순간 갈리는 약점이 될 지도 모른다.


태현은 백시를 걸어낸 뒤, 다시금 다른 기사를 찾았다. 워메이지들은 아직 자리에 도착하지 않은 모양이다. 곧 시간 문제일 테다. 몇 초, 정도 남았을지 모른다.


기사 하나를 아까 날려버렸고. 제냐의 근처에서 알짱대고 있는 녀석이 있길래 고개를 돌려 화살의 목표로 삼았다. 백룡각궁도 그의 몸 움직임에 따라서 머리를 돌린다. 그가 앉아 있는 안장은 특수하게 만들어져 있어서. 무게를 실어서 몸을 빙글, 돌리면 그대로 회전을 한다. 기계식의 잠금장치 따위가 위에 있음으로. 몸의 밸런스 조절만으로 최태현이 방향을 돌리기 쉽게끔 해두었다.


평상시에는 잠금이 걸려 있는데. 아래 방향으로 꾸욱 무게를 더 실으면서 살짝 빼고, 휙 돌리는 것이다. 그의 귀에는 들리지 않으나 미세하게 달칵 하는 소리가 나면서 다시금 고리가 걸렸다.

복잡한 기기였고. 은화로 수십 개 정도 값어치는 하는 물건이었다. 드워프 장인에게 맡겨서 얻어낸 장비이고.


나름대로 특수한 합금이나 축성을 받은 가죽을 재료로 만들어 고수급의 전투에서 버틸만한 물건이 되었다. 초고속으로 움직이며, 거대한 괴물의 브레스Breath를 맞을 지도 모르는 게 고레벨 전투 클래스의 생활이기에. 장비들 하나하나를 다 특제로 만들 수 밖에 없었다.


일반적인 숨결이라면 아무 문제가 없지만. 보통 보스 몬스터의 브레스, 라고 하면 입에서 토해내는 광선같은 종류의 원거리 공격을 의미했다. 아가리에서 튀어나온다는 것 외에는 숨결과 유사성이 조금도 없는 물질들이었다.


종류에 따라서 독이던, 화염이던. 여러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가장 좋은 건 물론 애초에 맞지 않고 피하는 경우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은 늘 대비를 해야만 한다.


최태현은 백시를 당긴 상태에서 조준점을 맞추었다. 미세하게 몸과 활체를 틀어서. 그의 시야에서 보이는 ‘선’은 아주 희미하고 반투명했다. 언뜻 보면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굉장히 집중해서 시야 화면을 더듬어보면 반투명한 실선들이 보인다.


만화 따위에서 집중선으로 표시되는 듯한 선이었다. 카메라로 피사체를 빠르게 따라가며 찍으면 다른 빛들이 뭉개지면서 나타나는 그림.


초보 시절, 혹은 고수급 이전에는 뚜렷한 점선 따위가 나와서 착탄지를 일러주고는 했다. 그러나 워낙 반복 동작을 많이하다 보니까, 점선이 비쥬얼로 도착지를 알려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신체, 실제로는 신경이나 정신 부위겠지만. 아무튼 게임 캐릭터에게 감이 온다. 약간 찌릿, 하고. 지금이 적중하기 딱 좋은 위치의 조준 상태이구나 하고. 그 초점을 찾아가는 작업이었다. 일일이 점선을 보고 착탄지를 목표물에 갖다 대는 방식이 아니라.


정확한 명중 지점 근처에 다가갈수록 그 찌릿, 하는 감각은 최태현에게 선명하게 느껴진다. 태현은 머리카락을 길게 기른 상태였다. 실제의 그는 그럴 수 없었지만. 회색빛, 잿빛의 머리칼을 뒤로 길게 길러 등께를 가리고 있다. 전투를 벌이다보면 엉망이 되기도 하는데. 평상시의 머릿결은 게임 내에서 기름을 바르거나 특제 샴푸를 사용해서 찰랑이기도 했고.


현실에서 할 수 없는 모습을 하는 것도 나름대로 좋은 취미였다. 보통 기계를 다루는 그에게 그런 식의 긴머리는 방해에 가까웠다. 직접 제공한 물품들의 애프터 서비스를 위해 고객의 집을 찾을 때도 있었으니. 아무래도 평이하고 평범한 스타일이 일반적인 고객들에게 위화감을 조성하지 않으리라.

그가 딱히 긴 머리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게임이니까. 취미이고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공간이니까 현실과 다른 이상한 짓거리를 해본 것 뿐이었다.


앞머리는 물론 게임에서도 시야를 가리지 않게끔 잘 정리를 해두었다. 지금은 전체 모발을 뒤로 넘겨 질끈 묶은 상태였다. 이리저리 라이엔의 인도에 따라 그가 흔들릴 때마다 머리칼 묶음도 함께 허공을 휘저었다.


반투명한 집중선이 보다 더 선명하게 느껴지는 지점. 제냐의 근처에서 칼을 들이대고 있는 기사급 세 명 중, 가장 멀리 떨어진 한 명에게 조준이 완료되었다고 생각한 때. 최태현은 화살을 놓는다.


시위는 거력을 품고 있고. 활대가 운다. 비틀린 녀석은 제 본래 모습을 찾길 원하고, 백룡의 뿔로 만들었다는 이름의 활이 살을 밀어낸다. 밀려나간 살, 백시는 평범한 화살보다는 미사일같은 기세로 허공을 갈랐고.


마치 특수하게 만들어진 작은 살마냥, 눈에 보이지도 않는 초고속으로 먼거리에 있는 기사의 몸통을 꿰뚫었다.


아까 잡은 녀석보다는 수준이 떨어지는 인물인 모양이었다.


콰득,


하면서 기사의 겉에 있던 보호구가 박살나며, 심장이 꿰뚫린다. 사내 하나가 넘어갔고, 백시가 그러고도 힘이 남아서 쾅,


폭발을 일으켰다.


사내의 반신이 사라졌다. NPC들에게는 끔찍한 모습이었고. 플레이어들에겐 그저 비산하는 빛의 입자로만 보일 뿐이다. 저처럼 심각하게 훼손된 신체는, 플레이어들이 전투를 벌이고 있다면 금세 필드에서 사라지게 된다.


NPC들의 입장을 생각하는 것도 우습지만. 마치 이 세계가 현실인 것처럼 생각을 해보자면. 플레이어들이 있음으로 인해 제대로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를 치러주는 것도 어려운 셈이었다. 플레이어가 잡은 몬스터의 시신이 곧 게임 내 세계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마냥.


증발하듯 기사의 시신은 사라진다.


최태현은 허리춤에 대각으로 매고 있는 전통에서 백시 하나를 더 뽑아들었다. 내측에 태현의 MP에 반응하여 움직이는 스킬이 걸려 있었다. 자철시가 아니더라도 화살이 빠지지 않게끔 말이다. 금화로 다섯 닢 정도 하는 가격이었다. 콘란드 대륙에서 금화는 상당한 가치를 지닌 주화였고. 대략 현실의 물가로 계산하면 1억 정도의 가치다.


현실의 돈과 비교했을 때 1억이라는 뜻은 아니었고. 콘란드 대륙 내에서의 체감적 물가로 말이다.

게임 내의 아이템이나 재화를 팔아 현실의 돈을 챙기는 무리들도 물론 있기는 했다. 시세가 워낙 유동적이라 안정적으로 늘 바꿀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대충 5-600젠에 현금화 1만원 정도의 가격이었다.


500젠이면 150만원, 정도의 감각이었다. 콘란드 대륙 내에서 사용할 때는. 포션값으로 쓴다고 하면 충분한 정도이다. 초보-중수 정도의 구간에서.


사람들은 젠Jen을 얻어서 인게임In-game에서 사용을 하지 파는 이들이 주류는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물량이 제한적이고, 가격이 널뛰기를 하곤 한다. 만 원에 500젠. 현실의 돈으로도 상당한 가치인데 인게임 내에서 풍족한 정도의 값어치는 아니었다. 플레이어들은 보통 먹고 자는데 돈을 쓰는 것 외에, 값비싼 소모품이나 아티팩트 따위를 사면서 돈을 소모하니까. 그것들을 생각하면, 게임 내의 특수 아이템들은 어마어마한 값어치를 갖게 된다.


그러나 그런 아이템을 정말 현실의 막대한 돈을 주고서 사는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했고, 괴짜들이었다.

이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이 언제든지 접속할 수 있는 게임이 아닌 탓이었다. 비련시 온라인은 평화롭게 플레잉을 즐기는 이들이 잊어먹을 수 있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서바이벌Survival 게임이었다.


거기다가 아주 긴 시간 진행이 되는 게임 내의 거대한 스토리가 단판으로 이루어져 있는 서바이벌 게임이었다. 연年 단위로 진행되는 게임 서비스 기간이 서바이벌 게임의 승패를 가르는 한 판의 게임이었기에. 한 번이라도 게임 오버를 당하면 다시 접속하지 못한다.


그런 면에서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은 현금 거래가 많이 위축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도리어 한 번 밖에 게임을 플레이할 기회가 없는 판국에, 이 정도 현물 거래 시장이 형성된 게 비련시 온라인의 인기를 반증한다고 볼 수 있을 정도이다.


비련시 온라인의 개발진, 운영사는 현물 거래를 그다지 권장하고 있지 않았다. 정식으로는 서비스하고 있지도 않을 뿐더러.

그저 개인들이 따로 거래를 하고 아이템을 사고팔 뿐이었다.


게임사에서 시스템적으로 보증하는 바가 없었기 때문에 다양한 사기도 많이 일어난다. 게임 내에서 증서를 구입해, 계약을 맺고. 그에 따라서 게임 내 콘란드 대륙의 은행 따위를 이용해서 아이템과 젠Jen을 교환하는 방식이었는데.

상대가 계약도, 콘란드 내의 사회망적 법 체계도 무시하고 다른 지역으로 도망을 가버리면 딱히 잡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으니까.


물론 그만한 돈을 반대로, 용병 길드같은 곳에 투자하여 현상금 수배를 걸 수 있기는 했다. 사기의 피해자가. 어찌되었든, 게임사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며 보장하는 현금 거래 서비스는 없는 셈이었다.


그래도- 피차 국적을 어느 정도 알게 되기도 하고. 본명 중에서 라스트 네임, 성姓을 무조건 게임 내에서 밝혀야 한다는 점도 있으며. 외모또한 크게 변형시키기 어렵다는 면에서 무작정 사기를 치는 인간이 흔하지는 않았지만.


사르삿에서 장공인들의 도움을 받아서 만들어낸 전통에서, 백시를 뽑아 최태현은 계속해서 화살을 날린다.


몇 초만에 기사급 적을 서넛은 다운시킨 것 같았다. 죽은 놈도 있고, 죽지 않은 녀석도 있지만. 어쨌든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투에는 다시 참여하기 힘들 게 분명했다.


“조금만 위로.”

“오케이.”


최태현은 백룡각궁의 시위를 당기면서 중얼거렸다. 새의 배 아래에서 중얼거리는 사내의 목소리였고, 전황이 시끄러운 판이니 들릴 리가 없지만. 귀걸이로 만들어 각자의 귀에 둔 통신구가 목소리를 전달했다.


라이엔은 썬더스의 위쪽 안장에 앉은 채로 대답을 했고, 매의 고도를 조금 더 높였다.


워메이지들이 본격적으로 참전하면 무작정 상공을 차지하는 게 좋지 않은 수가 될 수 있다. 이쪽에서 상대를 보기 편하다는 건. 반대에서도 마찬가지라는 뜻이니까. 좋은 표적이 될 수 있는 일이었는데.


아직까지는 최태현의 화살이 조금 더 빨랐다.


크허헝.


매의 아래에서, 거대한 사자는 창대를 물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병사들은 계속해서 모여들고 있었고, 기사급들도 하나 둘 씩 참전을 하고 있었지만.


모일만하면 괴물 사자가 흩어놓고, 없애고. 제냐가 또 번개를 날리고 칼날을 휘두르면서 침묵시키고 있었기에.


대공가의 병력들은 제대로 진형을 이루지 못하고 우왕좌왕 하고 있는 꼴이었다.


제냐를 비롯해서 헌터즈 길드원들을 제대로 묶어둘만한, 실력자가 오기 전에는 비슷한 양상일 테다.


부지 내의 기사단 인력들이 태세를 갖추고 모두 모여들면 조금 힘들어질 것 같았다. 워메이지들 역시 마찬가지이고.


최태현은 썬더스에게 끌려 올라가며, 주변 상황을 살폈다. 궁수의 시야는 먼 곳까지를 한 번에 파악했다. 그의 시력은 일반적인 기력술사들에 비해서도 압도적으로 좋은 편이었다. 매의 눈보다도.


그만한 감지 능력은 있어야 화살을 제대로 쏘아 맞출 수 있지 않겠는가.


레벨 150을 넘으면서 얻게 된 심안心眼:가假 스킬이 있었기에. 심지어 눈을 감은 상태에서도 활을 쏘는 건 가능했다.


주변의 데이터를 시각 외 감각으로 받아들이고. 기력 감지술로도 느끼면서. 상대의 움직임을 머릿속으로 확률 높게 상상해내고. 상당한 명중률로 화살을 쏘아보낼 수 있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가假가 붙어 있는 스킬이었고. 기초 단계의 능력에 불과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전투 스타일의 변화이자 도움이었다.


퉁, 퉁, 퉁.


고도를 높이는 새의 아래에 매달려서. 최태현은 보자마자 백시들을 달려보냈다.


청백색의 기운을 품은 화살이 허공을 찢듯 날아갔다.


공중에서 한 번, 혹은 두 번까지도 가속을 해대며 빛살처럼 날았고, 기사급이 아니라면 제대로 인지조차 못한 상태에서 화살을 맞는다.


초인병이 아닌 일반 병력에게 백시를 소모하는 건 사실 아까운 일이기는 했지만. 말했듯 돈이 문제인 상황은 아니었다.


쾅-!


멀리서 화려한 폭음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최태현이 저지른 건 아니었고. 다른 일행이 아니라, 릿샤의 행적이었다.


그녀는 홀로 떨어져서 워메이지들의 견제를 피해 대공가의 본택을 부수고 있었다.


생각보다 알사드 대공은 편집증적인 안전주의자였던 모양이다. 릿샤가 이래저래 준비해 온 스킬과 아티팩트들이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택에 펼쳐진 보호 결계 하나를 쉽사리 뚫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어지간한 성벽보다도 단단한 방비라고 할 수 있었다.


저택 내에 있을 대공의 표정이나 심정은 조금 궁금하기는 했다.


아무리 간담이 철석같은 인간이라고 하더라도. 바깥에서 대형 폭탄이 떨어지는 듯한 소리와 진동이 계속해서 느껴지면 제정신으로 있기 힘든 상황일 테다.


실제로 초록빛으로 펼쳐진 결계는 계속해서 진동으로 흔들리고 있었고, 위태로워 보였다.


최태현은 힐끗, 하고 몸을 돌리면서 릿샤가 있는 방향을 관찰한다. 푸른 하늘과 대비되는, 끔찍한 광경이었다. 그러니까, 신이 작정하고 벌을 내리는 듯한 온갖 속성의 에너지 난류와 폭발이 일어나고 있었다. 저택 하나를 가운데에 놓고서.


신의 분노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상당한 수준의 마기아인 릿샤는 제법 그럴싸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플레이어들은 이 세계를 그리 깊이 담아두지 않으니까 별 상관이 없으나.


아마 저 자리에 평범한 NPC들이 있다면 평생 트라우마로 기억될만한 폭발의 연속이기는 했다.


불길이 치솟아서 저택을 집어 삼킬듯이 달려들고.


한기로 이루어진 거대한 얼음덩이가 운석처럼 떨어져 내렸다가.


검붉은 촉수들이 저택을 휘감았다가 핏빛의 광채를 내뿜으며 대폭발을 일으키고.


번개가 근처의 땅을 한 번 훑고 가고.


릿샤의 MP역시 한계가 있을테니 최대 전력의 화력으로 계속 유지할 수는 없을텐데.


상대의 본진이 제대로 정비를 마치고 모이는 것과. 저 본택의 결계가 깨지는 것 사이의 시간 싸움이었다.


대공의 신병을 사로잡는다면 사실 그 이상의 대성공이 없었다.


플레이어들인 그들에게는, 말했듯 법이 그리 큰 의미는 아니었으니까.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좋은 처지들이라서.


일단 확신범인 대공을 사로잡아 그 속내를 토하게만 만들 수 있다면 뭐든 좋았다.


아마 주변의 영향을 피해서 깨나 멀리까지 도망을 쳐야겠지만.


아니······. 대공을 잡지 못하더라도 일단 도망은 멀리까지 쳐야 될 것 같긴 했다.


이만한 사고를 쳐놓고 산슈카에 있기도 어려웠으니.


데슈칸 산맥의 험지나, 어둠숲 심부 따위에 가서 캠핑을 하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그 정도가 아니라면 아마 산슈카의 군대들이 그들을 잡아갈 테였다.


지금 이건 산슈카의 국왕, 왕실에 허락을 맡고 하고 있는 짓거리가 아니라 단순히 저들끼리 일으키고 있는 테러 행위에 가까웠으니까.


그것의 대상이 되는 게, 최근 일어났던 여러가지 괴사건들의 주역이라 생각되는 대공이라는 점이 중요한 사실이었지만.


‘얼굴’은 아마 다른 인상으로 NPC들에게 남겨질 테였다. 릿샤는 전문적인 초상술사였고. 자신이 주로 다루는 부류의 스킬들 외에도 여러가지 유틸Util(ity)용의 기술들을 아티팩트에 담아 주변에 나누어줄 수 있었다.


제냐로서는 버거운 일이었으나, 초상술만을 파고든 릿샤이기에 할 수 있는 작업이었다.


대놓고 고수급 술사에게 파훼 스킬을 당하지만 않는다면. 아마 NPC들은 상세한 이목구비가 전혀 딴판인 인상을 지금 보고 있을 테였다. 표정이나, 하는 것들은 비슷할 수 있겠지만. 콧대라던가. 눈의 생김새라던가. 입의 위치라던가. 얼굴형이라던가 말이다.


‘평범한’ 인상 중에서도 극과 극에 있는 인상이라는 게 있는 법이었다.


그렇게 적당히 얼굴을 감추고, 장비를 바꾸고. 머리칼을 대강 가린다던가 하면 일단 수배범이 될 위험은 피할 수 있다.

최악의 경우에는 뭐, 산슈카를 떠야 할 지도 몰랐지만.


중부 대륙에서 충분히 파밍도 했고, 게임을 즐기기도 했으니 다른 지역으로 가서 플레이를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진 몰랐다.


콰과과과광.


거대한, 그러니까 산 하나를 부수는 듯한 토목공사 현장에 어울리는 소리들이 계속해서 난다.


대공가 저택 내에는 일반적인 고용인들도 있기는 하다. 이 소란에 휘말리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었다. 이들이 지금 이렇게 소란을 피우면서 정원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것 역시 그런 의도가 포함되어 있었다.


피할 자들은 알아서 피하고, 소란을 느끼고 달려오는 전투 병력들만을 효율적으로 골라 잡아 죽이려고.


따로 분류를 하지 않더라도 거름망에 걸러지는 물질들처럼 알아서 분리되어 다가오리라. 싸울 의지를 가진 이들이.


최태현은 가벼운 마음으로 활 시위를 한 번 더 당기고, 놓았다.


제법 MP를 많이 실어 보냈다.


이번에는 괴물 사자의 근처에서 날아다니며 견제를 하던, 어느 워메이지에게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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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8 307. 파고 들기 24.05.10 8 1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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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5 304. 뇌검雷劍 24.05.09 8 1 24쪽
304 303. 검은색. 금청색. 24.05.08 9 1 23쪽
303 302. 앞니와 검날 24.05.05 16 1 20쪽
302 301. 눈알 24.05.05 10 1 15쪽
301 300. 나무 위의 사색 24.05.04 13 1 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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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5 294. 이슈칼의 경우(2) 24.05.02 8 1 16쪽
294 293. 이슈칼의 경우 24.05.02 9 1 19쪽
293 292. 벨케임의 고뇌(2) 24.05.01 12 1 22쪽
292 291. 벨케임의 고뇌 24.05.01 9 1 19쪽
291 290. 길드원員의 회의 24.04.30 9 1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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