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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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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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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9 0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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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321. 어느, 한 명의 탈락

DUMMY

*


대공가의 기사, 는 아니지만 용병으로서 몇 번 의뢰에 참가한 조디악 카일은 몸을 떨었다.


붉은 머리에 잡티가 많은 피부. 그러나 썩 못생기지 않은 훤칠한 외모의 백인 남성이었다. 그는 미국인이었고, 누구나가 그렇듯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을 즐기고 있는 유저 중 한 명이다.


이 게임은 특별했고, 그의 일상과 삶을 바꿔놓았다고 말할 수도 있으리라. 어쨌든 혁신적인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었고. 이전의 게임들에 비해서 그리 과하지 않은 가격으로 신기술을 즐길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미대륙에 산다고 누구나 멋진 여행을 즐기며 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물리적인 이유도 있었고. 정신적인 이유, 경제적인 이유도 있으리라. 팍팍한 삶이라는 건 어느 나라에나 있는 법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저렴한 가격에. 마치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것과 같은 게임 타이틀은 무척이나 소중한 것이었다.


다만 생존, 서바이벌 게임이었고. 단 한 번이라도 게임 오버를 당한다면 그대로 계정이 삭제된다는 패널티는 지나치게 가혹했다.


그의 주변 친구들도, 이 게임을 즐기다가 딱 한 번 삐끗하는 실수를 하는 바람에 다시는 즐길 수 없게 되는 이들이 많았다. 벌써 플레이가 서비스된 지 수 년이 지나는 시점이었고. 초창기에 기세 좋게 플레이를 시작했다가.


별다른 노하우가 쌓이지 않은 시점에서 탈락해버린 이들은 이후의 시간을 모두, 타인의 게임 플레이 영상을 보는 걸로 만족할 수 밖에 없는 꼴이 되었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을 한 번이라도 경험해본 이들은 그것의 기술력이 차원이 다름을 알고 있었고.

잊으려고 해도, 영 눈길이 가게 되는 면이 있었으므로.


비련의 시나리오 게임 내의 시스템을 이용한 여러 컨텐츠들은 늘 많은 인기를 갖게 된다.


그와 친한 친구들 중에는 초창기에 플레이를 하다가 탈락한 이들이 많았고. 조디악은 살아남았고, 중수급 정도까지 캐릭터를 키워냈으므로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고수급에 도달하는 이들은 플레이어들 중에서도 그리 많지 않은 수였고. 또 그 이상으로 향상심을 발휘하는 이들은 더욱 적다.

나름대로 호기롭게 게임에 도전한다고 하더라도 마음처럼 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였고 말이다.


그는 플레이 영상을 녹화해서, 간단한 편집 후 영상 공유 사이트에 올리는 일도 하고 있었는데. 대단한 수익이 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용돈벌이 정도는 되는 일이었다. 취미 주제에 돈이 된다는 건 제법 쏠쏠하다.


단순하게 돈이 된다는 것 이외에도, 그는 이 게임을 진정으로 즐기고 있었고 또 좋아했다.


그러나, 이 게임에 존재하는 ‘선악 수치’에 대해서 조금 더 신경을 쓰며 플레이를 했었더라면, 좋았을 뻔 했다.


그게 아니더라도. 이번에는 선택을 조금 잘못한 것 같았고 말이다.


양군이 서북부와 동남부로 갈려져, 지도상에서 보자면 거대한 대각선을 그리며 지겨운 전쟁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 시대의 병사들은 모두 초인들밖에 없는 것인지. 수 만을 훨씬 넘는 병사들이 거대한 평야에서 그대로 맞부딪혀 서로를 죽이려 하고 있으면서도. 교착 상태를 계속 이어나간다. 칼 한 번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보통 목숨이 달아나고는 할텐데. 일반병들의 투지도 대단했고. 그 주위에서 전선의 사기를 북돋는 초인병들의 분전도 끈기가 대단했다.


카일은 그 지루한 격전 속에서 목숨을 비교적 잘 부지하고 있었는데.


기왕 플레이어로서 루트를 개발해서 게임을 즐길 것이라면. 산슈카국이니만큼 왕국군에 붙는 것이 차라리 나았을지 모르겠다.


대공가의 병력으로서 참여하는 것도 사실 쉬운 일은 아니었고. 나름대로 알사드슈트와 사르삿 등 여러 대도시를 오가면서 다양한 퀘스트를 해결하고. 명예 점수를 벌고. 여러 개의 레어급 퀘스트들을 깨고.


또 다양한 NPC들과 교우관계를 맺으며 친밀도를 높이는 등의 작업을 거쳐야만 했었다. 세르게이 알사드라는 인물이 굉장히 조심성이 많으니만큼. 그 속에 파고드는 일은 지난한 것이었다.


그런 과정들을 거쳐야, 비로소 대공가의 외부 전력으로 취급을 받을 수 있었다. 대공이 어린 시절부터 거둬들여 키웠다거나, 혹은 직접 믿을만한 방식으로 스카웃을 한 인물들이 아니라. 대공의 조직에 우연히 닿게 되어 함께 일을 하게 되는 자들도 있기는 했으나.


반쯤 외부인으로 취급이 되며 어딘지 모를 경계선이 느껴지고는 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대공가에서 오래도록 일을 하고. 심지어 핵심 인력이라고 할만한 늑대 기사단이나, 전술사단의 워메이지들조차 대공이 어떤 계획을 꾸미는지 그 전부를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으니.


대공과 만날 길도 없고, 세르게이 알사드가 계산하지도 못할만치 멀리 떨어진 인물들은 그만큼 일의 핵심에서 멀어지게 되리라.


그러나 다른 용병 일을 하는 것보다 보수가 좋았고. 또 계속해서 의뢰가 나온다는 게 조디악 카일로서는 재미있는 점이었기에 열심히 헌신을 했었다.


다만, 즐겁게 즐기는 건 좋았다만. 길을 잘못 선택한 듯 싶었다.


눈앞으로 병사들을, 무슨 잘못 놓인 쓰레기더미 마냥 밀어내며 전진하는 작자들을 보니 그리 생각이 들었다.


NPC인지 플레이어인지. 아마 이 거대한 전장 속에 플레이어보다는, 확실히 NPC의 숫자가 많을 테였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었고. 조디악 카일 역시 미리 닦아두었던 퀘스트 루트가 아니었다면 참여하지 못했을 전쟁이니까.


그러나 그게 NPC이든 아니든. 위용은 굉장했다.


나름대로 값비싼 장구류와 보호구를 맞춰서 입고 있는 기사의 행색이 그의 것이었다. 조디악의 것 말이다. 전투력 레벨로 보아도 50 이상은 확연히 넘을만했고. MP를 다루는 기술. 여러가지 스킬들의 레벨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스킬 레벨을 익히기 위해서는 결국 자신의 감각을 갈고닦는 게 필요하다 보니까. 일정 수준 이상으로 넘어가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말이다.


나름대로 쉽게 죽지 않을 자신 정도는 있었는데.


“으아아아악!”


그렇게 독기가 서리고 또 군기가 높은 대공가의 병력들이 비명을 지르며 나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니 조금 다른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었다.


기본적으로 그보다도 레벨이 높을 듯한 위용의 기병단이었고.


두두두두두.


한창 격전이 일어나고 있는 전장이니만큼 온갖 시끄러운 소리들로 귀가 먹먹했는데. 그와중에 근처의 지축을 울리는 말들의 발굽 소리가 있었고.


사람에게 닿을 때마다 무슨 화약이라도 터지듯 쾅, 쾅 거리는 소리를 내며 전진하는 작자들이었다.


조디악 카일은 어쩌다보니 그들의 돌격대형의 정면에 서 있게 되었고. 그가 열심히 칼을 휘두르고 있는 공간에, 멋들어진 갑옷을 입은 사내가 달려오고 있었다.


흩날리는 금발. 깊은 푸른 눈동자. 씨익 웃는 것처럼도 보이는 모습이 소름끼쳤고. NPC의 눈빛을 보면서 조디악은 많은 생각에 잠겼다.


진실로 전쟁을 대하고 있는 어느 인물의 표정을 본 것 같아서 말이다. 플레이어들은, 아무리 이 내부 세계가 현실이라고 생각을 하더라도 일정 지점이 되면 몰입이 깨지기 마련이었다.


그들에게 이건 실제가 아니었고. 단순히 게임 속에서 보게 되는, 연출된 환상에 불과하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압도적인 현실감은 정신적인 이질감을 거의 제로에 가깝게 바꿔주기는 했는데.

아무튼 NPC와 플레이어들은 늘 생과 사를 가르는 진지한 기로에서는. 서로 다른 태도를 취할 수 밖에 없었다.


이 게임 내에서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는 플레이어들은. 그 자신의 삶에 대한 고민을 이곳에서 하는 이들밖에 없을 테였다. 이곳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꿈이요 환상이니까. 실체가 없는 것에 진정으로 공감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정신병자라고 하더라도, 가짜로 자신을 속인다고 하더라도. 깊은 곳에서는 흔들림이 있게 된다.


그런 흔들림이 없는 NPC의 눈알은, 때로 플레이어들에게 진한 충격을 주기도 한다.


AI가 만들어내는 환상이니까 말이다.


거대한 지구 역사의 방대한 데이터를 모아 만물박사가 표현하고 있는 인간상人間像이었다.


내달리며 다가오는 장년인.


기병단의 제일 앞장 서는 인물.


요드먼 백작의 얼굴에는, 지난 날 죽어 사라진 전쟁터의 인물들과. 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러 인물들의 데이터가 섞여 들어가 있었다.


실제로 누군가는, 전장에서 저런 얼굴을 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정확히 같은 인물은 있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비슷한 태도를 보이는 인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소설이나 다양한 컨텐츠 작품들의 의의 역시 그런 데에 있는 법이었다. 실재를 그려내지 않는 작품이라는 건 결국 실로 쓸모가 없는 법이었으므로.

판타지를 그려낸다고 하더라도. 깊이 파고들고 또 파고들다 보면. 어느 부분이라도 현실과 관련이 있고. 현실에 대한 비유나 성찰이 담겨 있어야만 결국 실제의 삶을 사는 관람자에게 쓸모가 있는 법이었으니.


전장을 즐기는 것인지.

생사에 관하여 초탈해진 것인지.


요드먼 백작은 오래 전에 마음을 굳힌 사내의 얼굴을 하고 있었고.


기병대의 위력 때문에 발길이 얼어버린 조디악 카일은, 그 표정을 보고 전쟁터에서 짧고 깊은 상념에 빠졌다.


“어.”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몇 초를 허비했고.


이미 몸은 여러 번의 전투로 인해 익숙해진 자세를 취하며 기병대에 맞서려고 움직이고 있었지만.


그의 기력은 기세가 다소 부족했다.


아마 철혈과 같은 정신력을 발휘하여, 가진 바 모든 능력을 짜냈다고 하더라도 생사를 장담할 수 없었을 텐데.


잠깐의 방심으로 인해 틈이 생겼으므로 더욱 승산이 없는 싸움이 되고 말았다.


조디악 카일은 후회를 하기도 했다.


알사드 군에 투신한 건 잘못된 일이었을까.


“으랴-!”


앞장서는 장년의 사내가 기합을 내지르며, 랜스의 끝을 정확히 조디악에게 향한다.


짧은, 붉은 머리를 흩날리며. 약간 퉁퉁한 체격을 가진 백인 사내는, 길다란 롱소드를 양손으로 쥐며 상단세를 잡았다.


레어 급의 검술 스킬이 있었다. 기호지세騎虎之勢라는 스킬 명이었는데. 영어로 번역된 이름이 있었으나 조디악에게는 영 이해가 가지 않는 이름이었다.

전투적이고, 호쾌하고, 공격적인 형식이 많이 들어가 있는 검법이었고. 조디악에게는 그것이 감각적으로 마음에 들고 또 잘 맞아서 여태까지 사용을 해왔다.


지금까지 늘 그랬던 것처럼 가장 친숙해진 자세를 잡았고.


조디악은 기병대의 선봉을 바라보며, 정확한 타이밍에 1m 50cm는 되는 검날의 긴 롱소드를 후려치듯,


아래로 베어내렸다.


쾅!


붉은 검기가 조디악의 칼날에 서렸지만.


마주오는 요드먼 백작의 랜스 차징에 닿아서, 오래 버티지 못하고 날아가고 말았다.


1, 2초 정도의 순간만이 조디악이 인지할 수 있는 마지막 감상이자 장면들이었다.


‘컥.’


이렇게 끝내고 싶지는 않았는데.


너무 가벼운 마음으로 전쟁 퀘스트에 수락을 하고 참여를 한 것 같기도 했다.


조디악 카일은 그리 무리하지 않고 전장의 후방에 있다가, 어느 정도 전공을 세우고. 그리고 다음 플레이를 계획해 볼 생각이었다.


너무 모험을 하지 않고 안정적으로만 플레이하는 것도. 그다지 게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슬슬 서서 말이다.


방향성 자체는 좋았지만. 급변하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무리한 수를 둔 셈이었다.


조디악은 갑자기 시야가 바뀌며, 어둑한 하늘을 보게 되었다.


기병단의 돌격에 정면으로 맞았음에도 몸이 분쇄되지 않은 것이 대단한 점이었다.


대신 그가 두르고 있던 방어구니, 아티팩트니 하는 것들이 죄다 터져나갔고.


그것으로도 충격량을 충분히 해소하지 못해 몸뚱이가 견뎌야 했다.


조디악의 HP가 거진 다 줄어버렸고.


어두운 밤 하늘에 여기저기서 터져대는 초상 스킬들. 그리고 조명을 위해 쏘아올린 발광류의 여러 스킬들이 어른거렸고.


그대로 다시 시야가 돌아가면서,




하는 소리가 들렸고.


조디악은 암전되는 시계 속에서 게임 오버의 문구를 보게 되었다.


짧은 전류의 흐름과, 삐- 소리가 나더니.


그대로 게임에 로그인 할 때의 설정 화면으로까지 이어진다.


“으아!”


그가 토해내듯 소리를 쳤고.


로그인-아웃의 설정 화면에서는 완벽하게 신경이 링크되어 있지 않았고. 잠이나 꿈이라고 친다면 반쯤 깨어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미국 가정집, 어느 방에 있는 그의 실제 입 역시 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참으로 아쉬운 마지막이 아닐 수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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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 325. 전쟁, 한창(3) 24.05.22 17 1 19쪽
325 324. 전쟁, 한창(2) 24.05.21 13 1 14쪽
324 323. 전쟁, 한창 24.05.20 10 1 15쪽
323 322. 몸을 부대끼며 24.05.19 10 1 14쪽
» 321. 어느, 한 명의 탈락 24.05.19 8 1 13쪽
321 320. 전쟁(5) 24.05.19 9 1 18쪽
320 319. 전쟁(4) 24.05.18 6 1 18쪽
319 318. 전쟁(3) 24.05.18 9 1 16쪽
318 317. 전쟁(2) 24.05.15 9 1 14쪽
317 316. 전쟁 24.05.15 10 1 16쪽
316 315. 호출 24.05.14 7 1 14쪽
315 314. 건너가는 24.05.14 12 1 11쪽
314 313. 로그, 아웃. 24.05.13 11 1 11쪽
313 312. 요식업자 24.05.13 8 1 17쪽
312 311. 영감 24.05.12 12 1 16쪽
311 310. 아이템들Items 24.05.11 9 1 18쪽
310 309. 가쁜 숨을 편히 내쉬며 24.05.11 7 1 20쪽
309 308. 박제가 될 뻔한 천재를 아시오 24.05.11 10 1 23쪽
308 307. 파고 들기 24.05.10 9 1 21쪽
307 306. 제 몸 살라먹기 24.05.10 7 1 12쪽
306 305. 늑대의 뱃속에서 24.05.10 7 1 13쪽
305 304. 뇌검雷劍 24.05.09 8 1 24쪽
304 303. 검은색. 금청색. 24.05.08 10 1 23쪽
303 302. 앞니와 검날 24.05.05 16 1 20쪽
302 301. 눈알 24.05.05 10 1 15쪽
301 300. 나무 위의 사색 24.05.04 13 1 28쪽
300 299. 걸음(2) 24.05.04 8 1 14쪽
299 298. 걸음 24.05.04 9 1 15쪽
298 297. 어지러운 생각 24.05.03 9 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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