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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인요거트의 글방

밀수업자 - The Smuggler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SF

완결

플레인Y
작품등록일 :
2019.07.28 20:59
최근연재일 :
2019.12.13 09:00
연재수 :
34 회
조회수 :
3,223
추천수 :
70
글자수 :
163,984

작성
19.10.23 08:00
조회
28
추천
1
글자
11쪽

21화 - 머릿속 지우개

DUMMY

호렌은 돌아가며 다짐한다. 에제타노 녀석, 반드시 기억해 주겠다. 반드시, 몇 번이고 그렇게 다짐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얼마쯤 걸었을까. 주변이 밝아진다. 숲에서 나온 것이다. 호렌은 조금 전의 그것을 다시 되뇌어 보려 한다. 어... 그런데 이상하다. 생각이 나야 하는데... 에제타노가 뭔가를 하겠다고는 했는데... 그게 뭐였지? 뭐였지? 마치 그 부분만 지워진 듯, 좀처럼 생각이 나지 않는다. 레스토랑 야외 테라스에 점점 가까워질수록 그것은 점점 더 흐릿해진다. 숲에서 분명 누구를 만났는데... 누구였더라... 누구... 누구였지... 호렌은 머리를 흔든다. 이게 아닌데... 생각이 나야 하는데... 누구였지... 그리고 뭘 이야기했더라... 도대체 뭐였지... 도대체... 도대체... 도대체... 이건 무슨...


“호렌! 어디 갔다 온 거야? 기다렸잖아.”


수민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온다. 호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네가 사라지면 어떡해. 빨리 와.”


이건 아이샤의 목소리. 아까 같았으면 듣기만 해도 화가 치밀어오를 텐데, 이상하게 화 같은 건 하나도 안 든다.


“화장실 갔다 온다더니 어디까지 갔다 오는 거야?”


“음... 그게...”


호렌은 얼른 말을 꺼낸다. 잊어버리기 전에... 잊어버리기 전에...


“음... 그 말이지... 그게... 그게...”


아뿔싸! 그 기억은, 머릿속에서 더 희미해져 버렸다! 그 누군가를 만났다는 그 부분만, 소거되어 버린 것이다! 그 누구였더라... 그리고 어디... 어디였더라...


“왜 그렇게 말을 못 해? 그냥 어디 갔다 왔는지 말하면 되잖아.”


“아... 화장실이 좀 멀어서.”


호렌은 대충 얼버무리고 자리에 앉는다.


“거 참 별일이네. 화장실이 그렇게 멀었던가?”


“그러게. 아무리 늦어도 10분이면 다녀올 텐데.”


“아... 아 참, 그렇지. 내가 왜 그렇게 늦은 거지?”


호렌의 머릿속에서는 이제 ‘그것’은 완전히 날아가 버린 지 오래다. 다른 기억은 다 있는데, ‘그 부분’만 날아가 버린 것이다!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딘가를 다녀왔었어. 그런데...”


“자, 진정하고, 식사나 하자고. 맛있게 먹다 보면 생각이 나겠지.”


수민의 말에 호렌은 앞에 놓인 에피타이저를 먹기 시작한다. 그런데 목구멍에서 음식이 잘 넘어가지 않는다. 입안이 가득 말라 있다. 마치 음식이 아닌 흙덩이를 삼키는 듯...




그날 저녁 9시쯤. 호텔 지하 1층에서 호렌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에서 누군가가 나온다.


“아, 왔구나.”


엘리베이터에서 나온 사람들 중에, 수민이 끼어 있다.


“왜 나를 부른 건데?”


“왜인지 모르게 자꾸만 불안해. 여기서 좀 놀다 가면, 좀 편안히 잠들 수 있을까 해서.”


“그래? 그럼 저기서 ‘부유 당구’나 좀 하고 가자고.”


수민은 한쪽에 있는 오락실을 가리킨다. 호렌은 수민의 제안에 흔쾌히 따른다.




부유 당구란, 전체적인 룰은 당구와 비슷하지만, 부유 당구대는 공이 떠 있을 수 있도록 하는 장치가 되어 있고, 공은 보통 당구공보다 조금 더 가볍고, 떠 있을 수 있는 소재로 만들어졌다는 특징이 있다. 종족을 불문하고 두루 인기가 있는 스포츠로, 부유 당구 전문 채널도 있을 정도다. 수민과 호렌 역시 부유 당구를 즐겨 친다.


수민과 호렌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부유 당구를 즐기다 보니, 어느덧 30분이 흘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둘 사이에서는 이제 그만 돌아가자는 말은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다. 그 정도로 시간이 잘 갔다... 한 사람이 그들 옆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아... 졌네. 한 판 더 할까?”


“열 판이라도 좋지.”


수민과 호렌은 방금 한 판이 끝났음에도, 곧바로 다시 당구대를 잡는다. 바로 그때.


“두 분, 재미있게 하고 계시네요.”


누군가가 수민과 호렌의 뒤에서 말한다. 수민과 호렌이 뒤를 돌아본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 바로 뒤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오, 그쪽이 아닙니다.”


이번에는, 수민의 옆이다... 그리고 보인다. 갈색의 슈트를 입은 한 남자가.


“당신, 누구지?”


“아까도 당신들과 함께 있었죠. 당신들은 알지 못했겠지만.”


남자는 슈트의 머리 부분을 벗는다. 갈색 머리가 드러난다.


“뭐... 뭐야!”


“당신... 설마!”


슈트를 입은 남자는 다름 아닌 이반.


“그렇습니다. 제가 여기 오게 된 건, 저희 보스의 명령에 따라서입니다.”


“너희 보스가 누구이기에, 직접 오지 않는 거지?”


호렌은 당구대를 옆에 놓고, 꽉 쥔 주먹을 이반의 앞에 보여 주며, 끓어오르는 화산 같은 목소리로 말한다.


“보스라는 녀석이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당장 내 앞에 오라고 해라! 박살을 내줄 테니!”

EP21.png

호렌이 자신을 보고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듯 으르렁댐에도, 이반은 마치 자기 아래의 하등한 존재를 보듯 호렌을 비웃을 뿐이다.


“호오... 그러시군요? 하지만 벌써 저희의 계획은 착착 진행 중이랍니다. 여러분은 그저 편히 쉬시면 되는 겁니다.”


“이 자식이! 말 다 했냐!”


호렌이 주먹을 쥐고 이반에게 달려들려 하자, 수민이 호렌을 붙들고 제지한다.


“현명한 선택을 바랍니다. 내일은 편히 쉬십시오. 그러면 이만.”


이반은 말을 마치자마자, 슈트를 다시 온몸에 두르고는, 주변 풍경에 녹아들어 사라져 버린다. 호렌은 소리를 지르며 이반을 쫓아가려 하지만, 수민이 다시 호렌을 붙든다.


“놔... 놓으란 말이야!”


“자, 진정하고, 이러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아. 우리도 길을 찾자고. 어딘가에는 분명 그 녀석들을 이길 수 있는 길이 있겠지. 어두운 방 안에 갇혀 있어도, 밝힐 수 있는 불이 있으면 돼.”


불이라... 그래... 호렌은 수민의 말을 듣고는 벌겋게 붉혔던 얼굴을 푼다. 수민은 그 길로 오락실을 나서서 엘리베이터로 향한다. 호렌은 말없이 수민을 따라간다.




그날 밤, 호렌은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다. 불을 다 끄고 눈을 감은 지가 2시간은 지났을 텐데, 잠이란 녀석은 조금도 호렌에게 다가오지를 않는다. 아직도 정신이 또렷하다. 심란하다. 이 정도로 잠이 안 온 적이 몇 번일까? 아마 1년에도 한 번 있을까 말까 할 정도일 것이다. 기억의 퍼즐이 아무리 생각해도 맞춰지지가 않는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도대체 왜 그것만... 그것만... 분명 화장실을 간 건 맞는데, 왜 생각이 안 나지... 왜지? 이 알 수 없는 이질감! 미쳐 버릴 것 같다...


아버지는 말했다. 마음속에서 등불이 빛나야 한다고. 하지만, 이런 등불은 썩 좋지 않다. 미칠 것만 같다... 그 등불로 아까 전의 어둠 속에 감춰진 그것을 훤히 비출 수 있으면 좋으련만, 좀처럼 비치지 않는다.




그 시간. 수민 역시 잠이 통 오지 않는다. 기대 반, 걱정 반이다. 내일 만나게 될 브라운 씨와 로렌 씨란 과연 누구인가, 그리고 호텔에서 마주치는 그들은 과연 누구이며, 무엇보다도 의뢰인 파디샤란 도대체 누구인가. 무엇보다도, 오락실에서 본 그 갈색 슈트의 남자까지. 모든 게 수수께끼투성이이다. 과연 베라네 거래를 잘 한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며칠 전으로 돌아갔다면, 그때도 베라네 운반에 관여하겠다고 했을지... 하지만 돌아갈 수는 없다. 이건 게임이 아니다. 선택은 한 번뿐이다. 선택은 어쨌든 수민 자신이 한 것이다. 그 대가는 오롯이 수민 자신의 몫이다. 지금까지 일어난 일도,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도.


옆을 문득 돌아보니, 아이샤가 있어야 할 침대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또 어디를 갔나 싶어 걱정스럽다. 어제 식사를 할 때 브라운 씨, 로렌 씨와 어디서 만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잠깐 했었는데, 아이샤가 유독 격하게 반응했던 것이 생각난다. 아무리 그래도, 설마 그것 때문에 그런 건 아니겠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린다. 여전히 잠이 잘 안 온다.




다음 날 아침. 여느 날과 다르게 하늘은 구름이 잔뜩 껴 있다. 호렌은 여전히 잠에서 덜 깬 얼굴을 하며, 22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탄다. 호렌 혼자다. 어느 정도를 내려갔을까. 13층에서 엘리베이터가 선다. 누군가가 엘리베이터에 탄다. 자신과 닮은 얼굴... 그렇다. 그는 바로...


“에제타노! 네가 어째서 여기에...!”


“흐흐흐, 뭘 그렇게 놀라는 거야. 우리는 어제 한 번 봤을 텐데?”


그렇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지워졌던 기억이 다시 돌아온다... 그 악몽같았던 순간이.


“나를 농락하고도 무사할 줄 아냐?”


호렌은 애써 침착한 어조로, 표정을 관리하며 말한다.


“오, 왜 그러는 거지? 평소처럼 하라고, 평소처럼.”


“네놈의 얼굴을 보면, 그 ‘평소처럼’이 안 될 것 같아!”


호렌이 입술을 깨물어 가며 최대한 분노를 표출하고 있음에도, 에제타노는 그저 비웃을 뿐이다. 오히려 호렌의 뒤로 가서 손으로 어깨를 짚으며 말한다.


“흐흐흐... 너한테만 특별히 하나 알려 주지. 나는 지금 그 브라운과 로렌이라는 사람들을 죽이러 가는 길이야.”


“이... 이 자식... 내가 널 가만 둘까 보냐!”


호렌은 순간, 에제타노를 바로 마주 보고 노려본다. 에제타노는 그러건 말건, 여전히 호렌을 비웃는 얼굴을 하며 말한다.


“원래 예정보다 빠르게 오고 있다고 했지? 더 빠르게 온다더군. 오늘 오전에 도착한다고 하던데? 뭐, 너희들이 그들을 볼 일은 없겠지만. 벌써 너희 일행에게도 한 명이 가 있지.”


“반드시 막겠다, 반드시!”


“아, 그럴 수는 없어. 내 능력은 이미 발동했거든.”


에제타노는 이미 이겼다는 듯 얼굴에 웃음을 가득 띠며 말한다.


“무... 무슨...”


“그럼, 남은 시간을 잘 즐기다 가라고.”


호렌이 에제타노를 쫓아가려 하나, 에제타노는 이미 엘리베이터에서 내렸고, 엘리베이터의 문은 닫혀 간다. 손을 뻗어 보려 하지만, 엘리베이터 문은 이미 닫혔다.


그런데... 이상하다? 방금 누구였지... 그 문으로 사라진 게? 누구... 였더라... 생각이 안 난다. 마치 그 부분만 잘라낸 듯이. 그대로 지하 1층에 도착한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다. 그제야 생각난다. 아... 맞아! 카페에서 아침 식사를 하기로 했는데... 서둘러 카페로 간다. 시계를 보니 7시 50분. 40분에 만나자고 했는데, 늦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수민과 카르토, 아이샤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여기를 찾아봐도, 저기를 찾아봐도, 안 보인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마치 조그만 소행성에, 우주선도 없이, 혼자만 고립된 것 같은 기분이다...


다급히 전화를 걸어 본다. 수민, 카르토, 그리고 아이샤에게. 그러나 아무도 안 받는다.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하다가, 간신히 등을 벽에 기댄다. 이제 어떡하나... 어떻게 해야 하나... 마치, 그의 안에 있는 불이 서서히 꺼져 가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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