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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이 의 서재입니다.

실직한 마왕성 문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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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이
작품등록일 :
2022.10.26 12:21
최근연재일 :
2024.06.29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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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10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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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81화 동향과의 재회

DUMMY

81화 <동향과의 재회>



눈이 내렸다.

언제나 기연을 얻는 날에는 눈이 내렸다.

그가 처음 살인을 저질렀을 때도, 신앙이라는 왕관을 머리에 얹었을 때도, 항상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날에는 눈이 내렸다.


“선생님. 도착했습니다.”


설경 속에서 많은 사제가 정화를 바라였다.

사제들이 피 냄새가 가시지 않은 전장에서 사체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들은 프로텐시아 여신을 모시는 신실한 신자들.

그들 모두가 그와 형제였다.

비록 모시는 신이 다르지만, 신앙심을 가지고 신을 따른다는 점에서 형제나 다름없었다.


“거기. 웬 놈이냐! 당장 무장을 해제하고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려라!”


성벽에 다다르자 경비병이 창을 들며 외쳤다.

경비병의 신경이 날카로운 이유가 이해된다.

어리석은 형제가 저지른 횡포에 질렸다. 같은 신을 따르는 형제의 어리석음에 탄식이 절로 나왔다.

자비로운 여신의 문양이 두려움의 대상이 되다니. 실로 슬프고 안타까워 탄복할 일이었다.

일행 모두가 순순히 두 손을 올리고, 맨 앞에 선 그가 품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앱솔루트에서 온 성직자, 알렉산드로스다.”


긴 여정 끝에 가람왕국에 찾아온 여신의 무구.

알렉산드로스가 가람왕국 수도에 입국하였다.



*****



해가 중천에 떴다.

캣니스는 계단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멍한 표정으로 입구를 바라봤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허공을 바라보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오늘 할 일이 없었다.


‘의뢰가 없어···.’


정확히는 예상치 못한 휴일이 되었다.

모험가 길드의 업무량이 반토막 난 날이었다.

이는 여러 가지 요인이 겹친 결과인데. 눈이 내리고. 몬스터 파도의 뒷정리로 바쁘고. 상인들도 큰 문제를 해결하니 현재를 즐기는 데에 바쁜 탓이었다.

그래서 캣니스는 얌전히 베르길드에 있었다.

모험가 길드에 있기에는 이카루스와의 관계가 신경 쓰였다.


“후우, 너무 한가해도 문제네요.”


너무나 할 일이 없다 보니 하염없이 방문자를 기다렸다.

하지만 방문자가 있을 리 없었다.

정문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저택도 넓으니 저택과 정원을 청소해도 괜찮았지만, 이미 브레드가 착실히 다 해놓았으니 할 일이 없었다.


“너무 조용하네요.”


그나마 할 일이 남은 계단 난간을 걸레로 닦았다.

하도 닦다 보니 원래 이렇게 광이 나는 소재였나 의문이 들었다.


“작은 손님들도 오지 않고요.”


매일같이 방문하던 아이들도 오지 않았다.

눈이 많이 와서일까 생각했지만. 아마 제일 큰 이유는 티미의 부재가 아닐까 생각됐다.


“너무 심했던 걸까요···.”


일주일 전, 가더의 방에서 실수로 티미를 죽일 뻔한 이후로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때 일로 겁에 질려서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도망친 게 아닐까 생각됐다.

그 일이 미안하고 걱정되어서 가더에게 티미의 행방에 관해 물었지만.


‘걱정하지 마. 옛날에도 자주 이랬어.’


유일한 티미의 이해자가 별일 아니라고 넘어갔다.


“여기서 뭐 해?”

“아, 자일리 님.”


캣니스가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녀가 보는 세상에서 자일리가 거꾸로 서 있었다.


“뭘 그렇게 멍하니 있어?”


자일리는 계단을 하나둘 내려와서 일 층 복도에 섰다.

그제야 거꾸로 서 있던 그의 몸도 정상적으로 보였다.


“그건 뭐예요?”

“아. 이거? 그.··· 스승에게 전하는 안부 인사랄까?”


자일리가 스승이라 부르는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에이린 프런티어. 아무래도 그녀와 인사도 못 나누고 헤어진 게 마음에 걸린 모양이다.


“스승이 제자에게 연락할 수 없으니. 제자 된 도리로서 내가 먼저 해야지. 그런데 알려준 통신 마법으로 연락해도 받지 않고, 마탑에 문의해도 모르겠다는 말만 하니. 직접 편지라도 보내는 거야.”

“그렇군요. 이번엔 꼭 답장받기를 바랄게요.”


팔에 잔뜩 들고 있는 종이 뭉치에 대한 의문이 해소됐다.

자일리는 어떤 수를 써서라도 에이린과 연락하고 싶은 모양이다.

하지만 에이린도 무단외출 후에 돌아간 거니 발에 불이 나도록 바쁠 터였다.

캣니스는 마탑의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왕실만큼이나 여러 사정이 얽히곤 한다는 건 안다.

그러니 에이린을 모른다는 마탑의 답변은, 윗사람의 입김이 닿은 게 아닐까 추측했다.


“그 뭐냐. 나는 나갔다 올 테니까. 너무 추운 대 오래 있지 마···.”


자일리가 빨개진 얼굴로 말하였다.

그가 편지를 부치러 떠나자, 또다시 주위가 적막해졌다.

캣니스는 얼마 전에 베르길드에 머물렀던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모험가 길드에서 험한 일을 겪은 두 사람.

셰인은 가더의 비밀에 관해 이야기한 그날 모험가 길드로 돌아갔고. 바네샤는 며칠 더 머무르다가 삼 일 전에 베르길드를 떠났다.

두 사람 모두 떠나기 전에 브레드와 오랫동안 이야기했는데.

무슨 이야기인지를 나눴는지 모르지만, 두 사람이 브레드와 대화할 때의 표정이 완전히 달랐다는 것만은 기억났다.


“바네샤 님과 브레드 님은 잘된 걸까요···?”


항상 클레인에게 질투를 느꼈던 바네샤였다.

이 며칠 동안 브레드와 자주 만남이 있었고. 이곳을 떠날 때의 얼굴을 떠올리면 잘 된 거 같긴 했다.

바네샤의 얼굴에서 지나간 소녀 시절의 사랑이 뚝뚝 묻어났으니 말이다.


“헛! 그러면 클레인 님과 브레드 님은 어떻게 되는 거죠?!”


캣니스는 삼각관계에 속한 또 한 명의 사랑꾼을 떠올렸다.

무려 브레드와 육체적 사랑까지 나눈 클레인.

이 며칠간 모습을 보지 못했지만, 그녀가 돌아온다면 바네샤의 태도가 달라진 걸 알게 될 거다.


“같지만 다른 마음. 찢어지는 사랑? 나눠지는 선택지! 최종 선택!”


세 사람의 사랑을 떠올리자 정열로 불타올랐다.

캣니스는 이 문제에 대해서 누구보다 관심을 가졌다.

만약 세 사람이 이 문제를 들고 찾아온다면. 누굴 응원해야 할지 고민하였다.

그런 난감한 상황이 찾아오는 상상까지 하였다.


“저는 바네샤 님을 응원하지만. 클레인 님은 이미 깊은 관계를 맺었으니···.”


자기 일도 아닌데 심각하게 고민했다.

깊은 고민에 빠진 그녀의 곁으로 익숙한 인영이 다가왔다.


“여기서 뭐 해? 캣니스.”

“어? 문지기님?”


가더가 같은 계단에 나란히 앉았다.

그는 여전히 남성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여전히 하얀 은발과 고운 피부. 같은 여성이 봐도 눈을 못 떼는 아름다운 여성체의 모습이다.


“문지기님. 그때 옷 산 건 어떻게 하고 또 그 옷이에요?”

“나는 역시 이 옷이 제일 편해서.”


지금 가더가 입은 건 여성용 옷이 아닌 남성용 옷이다.

그가 전에도 입었던, 하얀 셔츠에 간소한 프릴이 달려있고 바지는 몸의 흐름을 잘 보여주는 옷이다.

물론 지금 입고 있는 옷을 저번에 수선해서 크기가 맞았다.

예전에는 아이가 아빠 옷을 뺏어 입은 거 같다면. 지금은 제 몸에 딱 어울리는 크기가 되었다.


“저는 문지기 님이 치마 입은 모습을 또 보고 싶었는데.”

“그건 참아줘 캣니스.”


캣니스가 가더를 위해 사 온 드레스는 찬밥신세였다.

그래도 지금 입은 옷도 어울리니 강요할 필요는 못 느꼈다.


“후우. 문지기님. 그나저나 오늘, 정말로 따분하지 않아요?”

“그래? 나는 잘 모르겠는데?”

“평소에는 잠깐만 가만히 있어도 심심해하시면서요.”

“문지기 시절에는 자주 이랬어. 최근에 너랑 어울리다 보니 변한 거지.”


툭.

자연스레 이야기하던 그때였다.

돌연, 가더갸 고개를 기울였다.

캣니스의 어깨가 단번에 무거워졌다.

캣니스는 잠시 몸을 굳혔다가, 천천히 옆을 돌아봤다.


“문지기님?”

“응?”

“왜 제 어깨에 기댄 거죠···?”


가더가 캣니스의 어깨에 기댄 채 있었다.

그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너무나 사랑스러운 눈동자가 시야 안에 담겼다.


“커흡.”


캣니스는 명치라도 맞은 듯이 숨을 삼켰다.

가까운 사람끼리나 하는 애정 표현에 치명상을 입었다.


‘진정해 캣니스. 상대는 그 문지기님이라고요!’


애써 예전의 가더를 떠올렸지만 역효과였다.

머릿속이 이상하게도 가더가 잘생겼던 기억만 머릿속에 남았다.


“내가 항상 심심해하면 네가 이렇게 해줬던 게 기억나서 해봤어.”

“제, 제가 이렇게 했다고요?”

“응. 이렇게 네가 기대 있으면 포근한 느낌이 들어서 기분 좋았거든.”


캣니스는 얼굴을 감쌌다.

잔뜩 얼굴이 빨개져서 과거의 자신을 꾸짖었다.


“제가 정말로 이랬다고요?”


질문의 대상이 고민하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기억을 뒤져보니, 틈만 나면 가더의 어깨에 기댔던 거 같다.


‘어떻게···’


이 순간 캣니스는 어떻게 이런 선정적인 행위를 아무렇지 않게 했는지 질책했다.


“혹시 내가 이러는 게 불편한 거야?”

“읏···.”

“아. 그렇구나···.”


순식간에 순백의 머리카락이 풀이 죽었다.

캣니스는 마음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분명 남자인데. 남자였는데!’


남자였으면서 어떻게 이토록 사랑스러울 수 있을까.

마치 한 마리의 고양이가 ‘나 버릴 거야?’라고 묻고 실망한 거 같았다.

가더는 여성체여도 캣니스보다 키가 컸지만, 이 순간 캣니스의 머릿속에서는 문제 되지 않았다.

그가 키가 크든 작든. 작은 동물을 보는 것처럼 심장에 부담이 갔을 테니까.


“캣니스···?”


결국 이상한 망상에 빠지는 바람에 그의 불안을 해소해주지 못했다.

그가 상처받은 강아지처럼 고개를 숙였을 때는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여신님! 저는 결코 사심이 있어서 이러는 게 아닙니다!’


캣니스는 어깨에서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기도했다.

어디까지나 자신은 풀이 죽은 동행자를 위로하는 것이다.


“캣니스?”

“이. 이건 저만이 할 수 있어요!”


사심이 아니라고 되새기며 가더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남성일 때는 어깨가 아닌 팔에 머리가 기대어서 안정적인 자세였다면. 지금은 어깨뼈에 관자놀이가 닿는다.

확실히 그가 여성이 되어 키가 줄어드니, 머리를 기대는 자세가 불편해졌다.


‘으. 으아아아···.’


일단 머리를 기댄 자세가 어떤지는 넘어가고.

캣니스는 과감하게 행동했으면서도 얼굴이 라즈베리처럼 새빨개졌다.

그러다가도 혹시 그를 실망하게 한 게 아닌가 시선을 올렸다.


“그래. 알겠어.”


빛이 있었다.

신성력이 없는데도 빛이 났다.

눈웃음을 짓는 가더의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눈이 멀 거 같았다.


“그래도 이번만큼은 나도 도와줄게.”

“네? 넷!”


어깨에 기댄 머리 위로 또 하나의 무게가 더해졌다.

시야 한쪽으로 하얀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 자꾸만 코를 간질이는 머리카락에서 향긋한 향기가 났다.

숨소리가 고스란히 들릴 때면 괜스레 얼굴이 붉어진다.

남자일 때도 생각했지만, 여성일 때의 그는 정말로 치명적이다.

속눈썹이 딱 적당한 길이로 길고, 이목구비도 너무 개성이 강하지 않는 선에서 뚜렷하다.

특히 하얀 속눈썹과 눈동자 색의 조화가 설경 속에 파묻힌 루비 같아서 아름다웠다.


“그런데 캣니스. 언제까지 여기 있을 거야?”

“글쎄요. 딱히 할 일이 없으면 브레드 님이 돌아오기 전까지는 이럴 거 같은데요.”

“그래? 그건 네 말대로 조금 심심할 거 같네···.”


눈 내리는 밖. 조용한 오후.

베르길드의 일층계단에서 두 사람은 나란히 기댔다.


“뭐야 얘들은? 누구 염장 지르는···”

“쉿. 깊이 잠든 모양이니 조용히 지나가세.”


나중에 브레드와 자일리가 돌아왔지만 깨어날 기색이 없었다.

서로에 몸에 기댄 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어이 밥 먹··· 아직도 자?”


저녁 시간이 지났음에도 깨어날 기미는 없었다.

여전히 깊은 잠에 빠진 그들의 몸 위로 두꺼운 이불을 놓았다.

그들의 하루는 허무할 정도로 빠르게 지나갔다.

캣니스가 눈을 뜬 건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였다.


“좋은 아침이에요. 캣니스 님. 가더 양···? 자일리 씨. 변태 치한 대머리 빡빡이.”


이른 아침부터 셰인이 베르길드에 방문하였다.

머리가 산발이 된 캣니스가 눈을 비비며 의문을 표했다.


“이른 아침부터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이카루스 님의 호출로 캣니스 님을 찾아왔습니다.”


셰인은 모험가 길드에서 온 전언을 전달했다.


“앱솔루트 왕국의 셀레브리디 교단에서 높으신 분이 찾아왔다고 전하랬습니다.”


같은 교단의 사람이 가람왕국을 찾아왔다.

동향의 친구가 찾아왔다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캣니스의 얼굴에서 졸음이 지워졌다.

졸음에서 깬 두 눈은 어떤 사람이 찾아왔을지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했다.




제 작품이 마음에 들었다면 추천과 좋아요 잊지마세요-!


작가의말

날이 정말 덥습니다. 제가 슬라임이었다면 금방 녹아버릴 듯하네요. 그래도 아직 본격적인 지옥 불이 남았다고 생각하면 그나마 현재가 행복해지니 다행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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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83화 동향과의 재회 23.07.17 27 0 22쪽
94 82화 동향과의 재회 23.07.12 31 0 14쪽
» 81화 동향과의 재회 23.07.10 38 0 13쪽
92 외전 마계의 끝자락에서 23.07.05 43 0 29쪽
91 80화 그의 비밀 23.07.03 41 0 24쪽
90 79화 그의 비밀 23.06.28 40 0 19쪽
89 78화 이안류 23.06.23 71 0 25쪽
88 77화 이안류 23.06.20 33 0 16쪽
87 76화 재침공 23.06.16 44 0 18쪽
86 75화 재침공 23.06.13 37 0 24쪽
85 74화 재침공 23.06.07 35 0 25쪽
84 73화 재침공 23.06.03 36 0 11쪽
83 72화 재침공 23.06.03 43 0 16쪽
82 71화 재침공 23.05.29 48 0 15쪽
81 70화 재침공 23.05.25 42 0 20쪽
80 69화 재침공 23.05.22 51 0 15쪽
79 68화 재침공 23.05.18 35 0 17쪽
78 67화 재침공 23.05.15 45 0 22쪽
77 66화 재침공 23.05.10 46 0 19쪽
76 65화 다시 한번 던전 23.05.05 48 0 18쪽
75 64화 다시 한번 던전 23.05.02 53 0 12쪽
74 63화 다시 한번 던전 23.04.29 48 0 14쪽
73 62화 다시 한번 던전 23.04.25 56 0 18쪽
72 61화 다시 한번 던전 23.04.22 52 0 18쪽
71 60화 다시 한번 던전 23.04.21 49 0 20쪽
70 59화 옛 인연 23.04.17 56 0 26쪽
69 58화 옛 인연 23.04.12 56 1 21쪽
68 57화 옛 인연 23.04.05 62 0 20쪽
67 56화 베르 23.04.01 59 0 13쪽
66 55화 길드 23.03.29 57 0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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