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지하이 의 서재입니다.

실직한 마왕성 문지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새글

지하이
작품등록일 :
2022.10.26 12:21
최근연재일 :
2024.06.22 20:57
연재수 :
208 회
조회수 :
11,897
추천수 :
130
글자수 :
1,579,242

작성
23.07.17 14:25
조회
25
추천
0
글자
22쪽

83화 동향과의 재회

DUMMY

83화 <동향과의 재회>



“캣니스 무슨 일 있어?”


알렉산드로스가 찾아온 지 이틀째 되는 날.

베르길드의 식당 안이었다.

캣니스는 하얀 접시 속 토마토수프를 뒤적이다가, 갑작스레 들이민 얼굴에 화들짝 놀랐다.


“왜 그래? 아직 한 숟가락도 들지 않고.”


가더의 말을 듣고 나서야 지금까지 무얼 했는지 깨달았다.

접시 안의 커다란 채소는 온통 조각났고, 따뜻했던 수프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무슨 일인가? 어제 급하게 뛰어나간 일과 관련 있는 건가?”


식탁 앞에서 브레드가 물었다.

차갑게 식은 토마토 수프를 보는 눈빛이 서글펐다.

그가 묻는 말은, 어제 아침부터 그녀가 부랴부랴 차려입고 홀로 나간 일이었다.


“아니에요. 그냥··· 조금 심란한 일이 있어서요.”

“곤란한 일이라면 얼마든지 말하게.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나설 줄 테니.”

“감사해요. 하지만 정말로 별일 아니에요. 조금 마음 쓰는 일이 생겨서 그래요. 마음은 정말로 감사해요.”

“캣니스여. 혹시 훗날에 늦었다고 생각하더라도 말해주게. 자네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니.”


꼭 필요한 사람.

그 말에 가슴이 몽글몽글하면서도 불안했다.

어쩐지 그 말이 어제 있었던 일을 떠올리게 했다.

알렉산드로스와 가람왕국의 거리를 산책했던 일이 지나간 뒤, 유희는 이쯤에서 끝내고 돌아와서 책무를 다하라는 말을 들었다.

그 자리에서 답변하지는 않았지만, 알렉산드로스는 자신이 어떤 말을 할지 눈치챘을 것이다.

그래도 확답을 듣지 않은 건. 돌아올 거라는 굳센 믿음일지, 아니면 단순한 유예기간을 준 것뿐일지.

캣니스가 침울한 기분으로 있자, 눈앞의 동료들이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냈다.

이내 그 시선을 눈치챈 캣니스가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캣니스여···.”

“아! 아이들이 왔나 보네요.”


문 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지자 곧장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답지 않게 허둥대는 모습을 보이며 식당 밖으로 나갔다.


“자네도 그렇고 캣니스도 그렇고. 도통 무슨 일이 생기면 알려주지를 않는군.”


한탄하는 말에 캣니스의 동행자가 귀를 후벼팠다.

조금도 이상할 구석이 없다는 태도에 한숨이 나왔다.


“하여간 너무 강한 것도 좋은 일이 아닐세.”



*****



오늘도 아이들이 베르길드의 로비를 차지하였다.

캣니스는 볼 일이 있다는 말과 함께 홀로 외출했다.

옛날이었다면 가더가 동행하겠다고 이야기했겠지만. 성별이 바뀐 뒤부터는 그런 언질도 없었다.

그게 살짝 서운한 기분이 있지만 충분히 이해됐다.

성별뿐 아니라 스테이터스도 낮아졌다.

그의 처지에서는 약점이 고스란히 노출된 상태나 다름없을 것이다.


“저. 이 꽃으로 할게요.”

“어머나 고마워라. 정말로 꽃을 사줄 필요는 없는데.”

“저번에는 감사했어요. 그리고 답례 때문에 온 게 아니라 아는 사람 병문안 용도로 왔어요.”


그렇기에 오늘도 홀로 외출 나왔다.

캣니스는 저번에 머리를 땋아줬던 꽃집 앞에 서 있었다.

한참 동안 수다를 떠는 그녀 곁에 특이한 인연이 닿았다.


“저 벨라 님? 혹시 하실 말씀이 있는 건가요···?”


마르티의 동생 벨라.

옷 입는 특징도 마르티를 닮았는지 사제복을 입지 않은 모습이다.

한 겨울인데도 무릎 아래로 덧댄 면이 없었다. 팔도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면을 덧댄 부분은 두께가 상당했지만, 그래도 추워 보인다는 점은 같았다.

실제로 이 날씨에 저 옷을 입고 돌아다닐 수 있는 사람은 브레드 머슬릿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남성체 상태의 가더 정도,


“벨라 님? 왜 저를 찾아왔는지 말씀 안 할 건가요?”


찾아온 이유에 대해 다시 한번 묻자, 벨라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맹한 얼굴을 하다가도 이름을 부르면 날카롭게 눈을 뜨는 모습이란.

몸만 사람이지 영락없는 고양이였다.


“푸르르르.”


벨라는 이마 앞으로 넘어간 뒷머리를 치우느라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손을 쓰면 될 텐데 고개만 흔드는 모습이 신기하여 무심코 바라봤다.


“감시.”

“네?”

“감시 중”


돌연 감시한다는 말에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어째서 그녀가 자신을 감시한다는 것인지. 캣니스는 알 수 없었다.

그나마 생각할 수 있는 생각 중에서 제일 그럴듯한 가설을 물었다.


“혹시 선생님이 시키신 일인가요? 제가 수상한 행동을 하지 않는지 확인하라던가···”


고개를 가로젓는 모습을 보면 아닌 모양이다.

단호한 답변을 들을수록 기분이 복잡해졌다.


“그러면 대체 왜···.”


벨라는 캣니스가 되묻는 말에 한참 입을 다물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 이내 결정을 내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전에 없을 정도로 당당하게 말했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상황 이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자유시간.”

“자유시간이요···?”

“그렇다. 벨라는 자유시간이다.”


그러니까 자유시간에 왜 자신을 감시하는 건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난감한 기분을 느꼈다.

그래도 차마 말로 따질 수 없어서 그저 웃었다.

그러자 이게 또 마음에 안 드는지 벨라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웃지 마.”

“네···?”

“그거. 안 좋은 버릇. 마르티 언니 혼내.”


이건 또 처음 듣는 소리다.

의외로 마르티는 제 동생을 챙기는 부류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보다 캣니스는 제 웃는 모습이 혼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벨라. 많이 혼났다. 그러니 동생도 조심해라.”


난감해서 웃는 모습을 비웃음으로 느낀 걸까.

나름의 이유로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동생. 꽃 사서 뭐 하게?”

“아. 이거요? 아는 분께 문병 선물로 가져가게요.”

“문병? 아파? 신성력으로 치료하면 된다.”

“으음. 신성력으로 치료할 수 있는 상처가 아니라서요. 혹시 괜찮다면 같이 가실래요?”


스스로 생각해도 이상한 권유였지만 벨라는 큰 의문을 두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 함께 문병 가도 괜찮아?”

“네. 사실 저도 잘 아는 분이 아니라서 많이 떨리거든요. 벨라 님이 함께 있으면 기운이 날 거 같아요.”

“알았다. 그러면 벨라도 가겠다.”


오히려 선뜻 함께 하겠다는 말을 들었다.

캣니스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고민했다.

신중히 고민하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같이 가요.”


이후로는 별말 없이 꽃을 골랐다.

벨라도 노란 꽃을 몇 번 건드리기만 했지. 말이 없었다.

캣니스는 그녀를 한 번 곁눈질 하고는. 입구 앞에 놓인 하얀 꽃을 주문했다.


“이것도 같이 주세요.”


꽃을 사고 나가는 길에 벨라가 바라보던 노란 꽃도 선물 받았다.

꽃집 아저씨가 직접 벨라의 머리에 장식해줬다.


“꽃을 머리에. 이해가 안 되는 행동이다.”

“예뻐서 보기 좋아요. 참 잘 어울리세요.”

“···그렇게 아부해도 안 넘어간다. 벨라는 네가 싫다.”

“그래요? 저는 그래도 벨라 님이 좋은걸요?”


캣니스의 한마디에, 벨라는 ‘이상한 녀석.’이라고 중얼거렸다.

상점 주인 앞에서는 똘망똘망했던 눈매를 가늘게 뜬지 오래였다.


“멋대로 좋아해라. 벨라는 네가 싫다.”


그런데 마음에 안 든다는 듯 고개 돌린 말과 행동과 다르게, 귓불은 옅게 붉어졌다.

분명 이런 선의가 낯선 모양이었다.


“귀여워요. 벨라 님.”

“어린 취급하지 마라! 내가 더 나이가 많다!”

“알고 있어요. 벨라 언니.”


우뚝, 벨라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숙인다.

잔뜩 붉어진 얼굴을 가리는데, 양 손바닥을 다 써서 필사적으로 가렸다.

캣니스는 조금 전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붉어진 귓불을 보며 맑게 웃었다.


“저는 정말로 벨라 님이 좋아요. 그래도 아직 제가 싫어요?”

“···시끄럽다!”


‘캬악!’ 소리 지르며 뒷걸음질 치는 벨라.

결국 캣니스는 웃음을 터트렸다.

이에 벨라는 붉은 얼굴로 캣니스의 등을 떠밀며 갈 길을 재촉했다.

이 상황에 눈물이 나면서도, 화난 벨라를 달래느라 또 한 번 웃음이 나왔다.


“아. 도착했어요.”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여러 기성복을 취급하는 의류점이었다.

가더의 옷을 산 곳과는 또 다른 장소다.

붉은 지붕이 인상적인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 안에 들어서자마자 카운터에 앉아있던 중년 남성과 눈이 마주쳤다.


“죄송합니다. 지금은 영업을 안 하는 중이니···”

“몸은 좀 어떠신가요?”


들어서자마자 하는 한마디.

피곤한 남성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누구···?”

“아, 저예요. 몇 달 전에 키 큰 남자랑 왔었는데 기억하시나요?”

“키 큰 남자라면···. 아 기억납니다. 워낙 키도 훤칠하고 외모도 수려하신 분이었던 지라 옷을 판매하는 데 보람을 느꼈죠.”

“기억하신다니 기쁘네요. 그러면 잠시 매장을 둘러봐도 될까요?”

“그, 다시 찾아온 건 감사합니다만 아무래도 오늘 장사는 안 하는지라···”

“그건 아쉽네요. 그러면 본론으로 넘어갈게요.”


오늘은 장사를 안 하는데 본론으로 넘어가겠다는 말.

남성이 굉장히 의아한 그때였다.


“부인의 상처는 잘 치료됐나요?”


남성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당황스러운 기색이 눈동자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물자 계산하던 장부도 떨어뜨릴 정도로 놀랐다.


“어, 어떻게 그 사실을···”

“부인이 다치셨을 때 함께 있었거든요. 괜찮다면 부인의 상처를 봐도 될까요?”


와장창-

남성이 일어섰다. 카운터에 놓여있던 유리공예품이 깨졌다.

남성은 많이 놀란 얼굴로 캣니스를 바라봤다.


“그렇군요. 당신이 그분이었군요···.”


이내 혼자 말을 하고, 홀로 납득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카운터 밖으로 나와서 2층 계단을 밟았다.


“오시죠. 아내에게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캣니스는 그가 안내하는 대로 따라갔다.

벨라도 가게 안에 진열된 옷을 구경하다가 뒤따라갔다.

복도를 걷는 남자의 어깨가 잔뜩 긴장해 있었다.


“우선 아가씨께 먼저 말씀드리자면 죄송합니다. 정말로 아내가 심려를 끼쳤습니다. 그때 일을 용서해달라고는 말하지 않겠지만, 제 부인도 마음 깊이 반성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2층으로 올라가서 복도를 걸었다.

한 개의 방문 앞에서 똑똑 문을 두드렸다.

아무런 대답이 없는 것에 당황하며 한 번 더 문을 두드렸다.


“여보. 옛날에 왔던 손님이 병문안을 왔어. 지금 들어가도 될까?”


딸랑-

방울 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가 방문을 허락하는 신호였는지, 문을 열고 들어갔다.


“너무 놀라지 말고 들어줘. 예전에 키 큰 남자랑 왔던 여사제님 기억하지? 그분이 직접 상처를 봐주신다고 말씀하셨어. 괜찮겠어?”


남성이 먼저 방으로 들어가서 이야기를 나눴다.

여성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한 사람의 목소리만으로 몸은 괜찮은지. 기분은 어떤지. 몸 상태에 관한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그동안에 캣니스와 벨라는 열린 문 옆에 기대어 서서 허락이 떨어지길 만을 기다렸다.

이내 허락이 떨어졌다.


“된다는 거지? 알겠어. 절대 놀라거나 당황하면 안 돼 알겠지?”


들어와도 된다는 신호와 함께 캣니스는 벽에서 몸을 뗐다.

이미 열린 문으로 발을 한 걸음 옮겼다.


“안녕하세요. 셀레브리디 교단의 사제, 캣니스 센츄어리라고 해요.”


가슴에 손을 올리고 고개를 숙였다.

예의를 차리고 고개를 들자 병상 위 부인의 모습이 보였다.

목에 붕대를 감은 채 그녀 쪽을 보는 부인.

부인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 아. 아아아-”


이내 목에서 마치 쇠를 긁는 듯한 목소리가 나왔다.

조금 전까지 공허했던 부인의 두 눈이 짙은 감정으로 얼룩졌다.


“여, 여보! 아직 일어나면···!”


남성이 부인의 몸 상태를 걱정하여 진정시키려 했다.

하지만 부인은 격하게 반항하며 침대 밑으로 내려왔다.

다리에 힘이 없으면서도 내려가다가 이불과 함께 바닥에 쓰러졌다.

성치 않은 몸 상태로도 처절한 움직임으로 바닥을 긴다.

끝내 캣니스의 발치에 도착했다.

마침내 도착한 위치에서 그녀는 머리를 조아렸다.


“죄송··· 죄송합니다···.”


쇠를 긁는듯한 목소리.

목이 아플 텐데도 필사적으로 문장을 말했다.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끊임없이 머리를 조아리며 용서를 구했다.

캣니스는 아무런 반응 없이 서 있었다.

벨라는 여전히 문 뒤에 숨어 있었다.

그 부분은 다행이었다. 이런 모습을 누구든 간에 보여주기를 원치 않았다.


“쿨럭 쿨럭-”


용서를 구하던 부인이 피를 토해냈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한 남편이 어깨에 담요를 얹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지독한 감정을 담아 손을 뿌리쳤다.

남편은 고개를 조아리는 부인에게 애원했다.


“여보. 이만 일어나요. 우선 치료받고 사죄해도 늦지 않아요.”


부인의 손을 꼭 잡고 캣니스를 바라보는 남성.

캣니스는 그 말을 긍정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제 아내의 상태는 어떤가요···?”


한바탕 소란이 지나갔다.

부인은 침대에 눕히고 본격적으로 상태를 살폈다.

신성력을 사용하여 목 안쪽에 남았을 상처를 진단했다.


“당장 어떻다고 장담하기 어려워요. 아무래도 상처가 생겼을 때 제대로 치료하지 못한 게 크니까요.”


말뿐이라도 좋게 해줄 수 있음에도 아직 모른다고 답했다.

그만큼 부인의 상태는 뭐라 장담하기 힘든 단계였다.

그날 제대로 치료받았다면 모를까. 애매하게 치료를 한 게 원인이었다.

신성력을 받아들인 상태에서 자연치유 단계를 거쳤기에, 또 한 번 신성력이 통할지 확신할 수 없었다.


“아~ 해주시겠어요?”


목에서 손을 떼고 혀누르개를 들었다.

부인의 입을 열게 한 뒤 목 안쪽을 살폈다.


“한번 말해보시겠어요?”

“아. 아아···.”

“확실히 처음보다는 맑게 나오네요. 목의 통증도 더 나아졌죠?”

“네···.”

“다행이에요. 아직은 치유 능력이 통하고 있어요.”

“그 말은 혹시··· 제 아내가 이전처럼 말할 수 있다는 말씀인가요?”

“네. 아마도요. 목을 다쳤던 만큼 약간의 불편함은 남을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점차 나아질 거라고 보여요.”


확신이 가득한 말에 남성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는 부인에게 다행이라고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고 부인을 안았다.


“미안해요···. 저 같은 걸 위해서 이렇게까지···.”


뚝뚝. 부인이 눈물을 흘렸다.

남편은 부인의 턱에 흐르는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아주었다.

남편 된 자로서 부인의 마음에 공감하듯 눈꺼풀에 입을 맞췄다.

부인은 죄책감이 얼룩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는 정말로 못된 사람이에요.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좋은 사람을 악당들에게 팔아먹었겠어요···.”


가슴이 미어지는지 한 손으로 가슴을 두드렸다.

그래도 갑갑함이 해소되지 않는지 우는 소리를 냈다.


“제 딸이 살아있었으면 비슷한 나이였을 아이를. 저는 어떻게 이렇게 무참하게 그들 손에 넘겼을까요!”


부인은 가슴께를 붙잡은 채 상체를 숙였다.

죄책감으로 가득한 울음이 멈추지 않는다.

침대 옆 탁상 위에는 작은 액자가 있었다.

언젠가 화가가 행복했던 가족을 그렸던. 부부의 세상 어떤 재화와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일 터였다.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이런 나를 위해서···. 저 같은 거를 위해서 마음 쓰게 해서 미안해요···.”


끊임없이 잘못을 구하는 부인.

캣니스는 부인의 손 위로 본인의 손을 겹쳤다.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얼굴을 바라보며,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요. 부인께서는 궁지에 몰려서 벌인 일이었는걸요. 분명 저였어도 그랬을 거예요. 여신님께서도 용서하실 거예요.”


그저 하는 말이 아닌 진심에서 우려낸 말.

만약 자신에게 소중한 것이 걸려있다면 부인의 행동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거라는 답변을 해주었다.


“이렇게 사죄해주셨는걸요.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아픔에 공감하여 눈물 흘려주셨는걸요. 그거면 충분해요. 용서할게요. 그러니 이제 행복하기 위해 웃어주세요.”


부인은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맞닿은 손에 온기에 기대어서 한참 동안 눈물 흘렸다.

부인의 곁에서 남편은 또 하나의 온기가 되어주었다.

힘든 부인에게 의지가 되도록 제 온기를 나눠주었다.


“실은 저희 딸을 잃은 지 2년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앱솔루트 본교에 지원 갔다가 영광스러운 죽음을 맞이했죠. 아마 그 일 때문에 부인이 심적으로 부담이 컸던 모양입니다. 그래도 은인님을 성기사의 손에 넘긴 이후로 제 아내가 잠도 못 잘 정도로 후회하였다는 사실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울다 지쳐 쓰러진 아내를 대신하여 남성이 말했다.

캣니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보여주신 은혜는 어떠한 방향으로든 꼭 갚겠습니다.”


남편이 잠든 부인 곁에서 무릎을 꿇으며 맹세했다.

그에게 은혜를 약속받으며 방 안에서 물러났다.


“동생. 대체 무슨 일···?”


더 이상 집 안에 있을 이유가 없기에 가게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벨라가 품고 있던 의문을 말했다.


“설명하자면 긴데요···.”


제법 긴 이야기를 간추려서 이야기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벨라가 이해한 바로는 상황이 이러했다.


“동생을 팔아넘겼다, 제정신···?”


조금의 언어순화도 없는 말에 캣니스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번에는 벨라를 설득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제정신이 아니었을 거예요. 딸을 잃은 상처를 회복 못한 상태였고, 그 상황에서 남편이 붙잡혀간 상황이었으니까요. 분명 자해를 한 이유도 저를 끌어들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심리적으로 살 의지가 없었기 때문일 거예요.”


캣니스가 부인의 처지에서 변호하자 벨라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벨라는 조금 전의 말에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 내가 제정신이냐고 한 말은 동생 이야기였다.”

“네?”

“얄팍한 감정으로 교단의 사제를 공격했다. 어째서 살려둔 것뿐만 아니라 치유까지 해줬지?”


우뚝, 캣니스의 발걸음이 멈췄다.

몇 걸음 앞선 벨라를 바라봤다.

벨라는 뒤 돌은 채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어떠한 감정도 보이지 않고 순수한 의문만이 가득한 눈동자.

그렇기에 벨라의 모습은 더욱 위험해 보였다.


“···하지 마세요.”

“어째서지?”

“제가 원하지 않으니까요.”


돌려서 말할 이유가 없기에 직설적으로 말했다.

그래도 벨라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제를 해하는 건 형벌 대상이다. 더군다나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 희생양으로 밀어 넣었다면, 최고 수위의 형벌까지 고려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제 주관에 의해서 벌어진 일이에요. 저의 선택으로 벌어진 일이고 저는 이미 그분을 용서했어요.”

“그건 중요치 않다. 중요한 건 행위의 목적성이다. 만약 동생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다쳤어도 그런 말을 할 수 있나? 그때에는 좋은 결과가 되었을 거라 장담할 수 있어?”

“그래도 저는 그분 편을 들겠어요. 이번 일에서 그녀는 피해자일 뿐이에요.”


의견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다.

자신의 신념을 뚜렷이 믿을수록 말로 설득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이번 의견에 대해서 조금도 물러설 수 없었다.

캣니스가 약간의 편법을 사용해서라도 말이다.


“열한 번째 창의 이름을 걸고 장담할게요. 부인은 이번 일을 계기로 셀레브리디 교단의 훌륭한 조력자가 될 거예요.”


팔라딘의 이름으로 장담했다.

이름을 건 맹세까지 무시할 생각은 없는지. 벨라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불평스러운 모습인 건 같았다.

말없이 빤히 쳐다보자, 그제야 벨라는 확답을 내놓았다.


“알았다. 동생의 말대로 옷 가게의 부부는 건드리지 않겠다.”

“선생님께도 말을 전하지 말아주세요.”

“그건 곤란하다. 이런 일을 위해서 내가 옆에 있는 거다.”

“언제는 자유시간을 받아서 왔다면서요.”


벨라의 동공이 지진 나듯 흔들렸다.


“그건··· 벨라가 잘못했다······. 사실 벨라는 동생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알겠어요. 원래 맡은 바를 나무라지는 않겠어요. 대신에 부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언질을 주세요.”


벨라는 이 부탁까지 거절할 수 없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믿고 맡겨달라는 듯 가슴을 두드렸다.


“알겠다. 저 부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말해주겠다.”

“여신님의 이름으로 맹세코요?”

“···여신님의 이름으로 맹세코다.”


일단 맹세를 받았으니 걱정은 덜었다.

물론 모든 걸 정하는 건 알렉산드로스였기에 완전히 걱정의 끈을 놓을 수는 없었다.

그래도 그녀가 아는 신부의 모습을 떠올리며 긍정적인 결과를 예측했다.

그들은 아무런 해도 받지 않고, 잠정적인 셀레브리디 교단의 조력자가 됨을 알 것이다.

만에 하나의 일이 벌어져도, 미리 보험을 두었으니 지금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벨라 님. 제 부탁을 받아들여 주셔서 감사해요. 이 일은 나중에 반드시 꼭···”

“캣니스?”


집으로 돌아가려던 그때였다.

갑작스레 들린 목소리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둥둥.

심장의 고동이 불안하게 귓가에 맴돌았다.

캣니스는 친근한 목소리임에도 그 방향으로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


“캣니스. 대머리가 할 말이 있다고 찾고 있었어. 있다가 저녁에 모험가 길드로 와줄 수 있냐는데?”


캣니스가 불안한 안색으로 벨라를 바라보았다.

손에 땀이 맺힐 정도로 초조한 표정이었다.


“동생. 이건 무슨 경우지?”


벨라는 고개를 기울이며 웃었다.

그것은 결코 호의적인 웃음이 아니었다.

노골적인 적의를 보내며 허리춤의 단검에 손을 올렸다.


“저 마족이 동생에게 아는 척을 한다.”


가더의 정체를 확신하는 목소리에, 캣니스는 눈을 질끈 감았다.

교단의 그림자가 되었을 때 네 번째 칼이 하는 세 가지 조언 중 하나.

마족을 믿지 말고 현혹되지 마라. 그 목에 칼을 쑤셔 넣는 것을 망설이지 마라.

이런 조언을 할 만큼 마족과의 관계는 굉장히 안 좋다.

그래서 일부러 모험가 길드에도 가더를 안 데려갔던 건데···.

결국 절대로 들켜서는 안 될 사람에게 걸리고 말았다.




제 작품이 마음에 들었다면 추천과 좋아요 잊지마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실직한 마왕성 문지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21 외전 서큐버스 여왕 23.09.16 15 0 29쪽
120 98화 서큐버스 여왕 23.09.12 14 0 13쪽
119 97화 서큐버스여왕 23.09.09 18 0 15쪽
118 96화 서큐버스 여왕 23.09.05 19 0 18쪽
117 95화 서큐버스 여왕 23.09.01 17 0 13쪽
116 94화 서큐버스 여왕 23.08.29 17 0 16쪽
115 93화 서큐버스 여왕 23.08.23 17 0 22쪽
114 92화 서큐버스 여왕 23.08.21 22 0 13쪽
113 91화 서큐버스 여왕 23.08.18 20 0 14쪽
112 90화 서큐버스 여왕 23.08.16 24 0 19쪽
111 외전 인연의 시작 終 23.08.14 19 0 24쪽
110 외전 인연의 시작9 23.08.11 22 0 18쪽
109 외전 인연의 시작8 23.08.09 18 0 17쪽
108 외전 인연의 시작7 23.08.07 22 0 21쪽
107 외전 인연의 시작6 23.08.03 21 1 13쪽
106 외전 인연의 시작5 23.08.02 25 1 12쪽
105 외전 인연의 시작4 23.08.01 20 1 13쪽
104 외전 인연의 시작3 23.07.31 18 1 15쪽
103 외전 인연의 시작2 23.07.29 19 0 17쪽
102 외전 인연의 시작1 23.07.28 20 0 15쪽
101 89화 동향과의 재회 23.07.27 27 0 17쪽
100 88화 동향과의 재회 23.07.25 23 0 13쪽
99 87화 동향과의 재회 23.07.24 25 0 21쪽
98 86화 동향과의 재회 23.07.20 26 0 14쪽
97 85화 동향과의 재회 23.07.19 21 0 17쪽
96 84화 동향과의 재회 23.07.18 25 0 16쪽
» 83화 동향과의 재회 23.07.17 26 0 22쪽
94 82화 동향과의 재회 23.07.12 31 0 14쪽
93 81화 동향과의 재회 23.07.10 37 0 13쪽
92 외전 마계의 끝자락에서 23.07.05 43 0 2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