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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이 의 서재입니다.

실직한 마왕성 문지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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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이
작품등록일 :
2022.10.26 12:21
최근연재일 :
2024.05.13 20:41
연재수 :
19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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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9,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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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25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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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70화 재침공

DUMMY

70화 <재침공>



루나는 몸에 묻은 흙먼지를 털었다.

퉤, 손바닥에 침을 뱉어서 머리카락과 고양이 귀를 매만졌다.

제자리에 쭈그려 앉은 뒤 널브러진 검은 천을 들었다.

그곳에는 바짝 마른 미라가 있었다.


“죽어 있다냥.”


미라의 푹 꺼진 눈동자를 보았다.

괜히 미라의 손을 들었다가 먼지가 되어 부서졌다.

루나를 여기로 데리고 오고 홀로 몸부림치다가 죽은 인간이다.

바솔루트의 성기사였기에 애도의 마음은 생기지 않았다.


“혹시 너희들이 수를 쓴 걸까냐?”


루나는 지저분해진 검은 천을 놓았다.

서른 걸음 정도 떨어진 성기사들을 바라봤다.


“공간이동 같은 건 아니고냥.”


루나는 상황을 읽었다.

장소는 동굴 그대로다.

하지만 에이린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성기사의 수는 절반가량 줄었다,

공기의 흐름은 자연스럽지 않고 무언가 인위적이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현실 같지 않은 공간.

그런 종류의 결계로 끌려왔다고 보면 될 터였다.


“다들 말도 없고. 재미없는 형씨들 뿐이다냐.”


루나는 무릎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몸을 앞으로 뻗으며 기지개를 켰다.

유연한 움직임으로 몸을 풀고 일자로 섰다.


“형씨들은 실수한 거다냥.”


허리에 손을 올리며 까딱 고갯짓했다.

대치하던 성기사들이 검을 들었다.

루나의 동공이 그들에 맞서서 세로로 찢어졌다.

다섯 명의 성기사가 일제히 달려들었다.

루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입꼬리를 내렸다.


“나는 가람왕국 모험가 길드의 루나 타이거다냥. 참고로 진흙탕 싸움은 내 전문이다냐.”


성기사가 검을 휘둘렀다.

동시에 루나의 몸이 아래로 내려갔다.

짧게 흩날린 머리카락이 시야 아래로 낙하하였다.


“스킬, 냥냥한 고양이 첫 번째다냐.”


바닥까지 몸을 숙였던 루나가 첫 번째 성기사를 지나쳤다.

지나치고 가볍게 어깨를 밀었다.

그러자 성기사는 몸에 힘이 풀린 듯 쓰러졌다.


“냥냥한 향기에 취하면 모두 냥냥한 졸음에 빠진다냥.”


루나는 네 명의 성기사에게도 달려들었다.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성기사도 손쉽게 제압하였다.

처음 나섰던 성기사들은 모두 기절했다.

남은 성기사들의 표정이 빠르게 굳었다.


“숯을 넣어서 입에 덧대라.”


성기사의 지휘관이 명령했다.

잠에 빠지는 스킬이 후각을 통해 발동된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성기사들은 예비용으로 들고 다니는 숯을 손수건에 싸서 코와 입에 덧댔다.


“쌍둥이. 해치워라.”


이어서 명령했다.

조금 전과 확연히 다른 움직임을 보이는 성기사들이 튀어나왔다.

두 성기사는 순식간에 루나와 거리를 좁혔다.

목과 다리를 노리고 동시에 검을 휘둘렀다.


“후냥. 통성명도 없고 치사한 형씨들이다냐!”


루나는 검이 닿기 직전에 몸을 접었다.

검과 검 사이로 몸을 집어넣는 기예를 보였다.

바닥에 착지하고, 이름 모를 두 성기사를 돌아봤다.


“악한 자에게 들려줄 이름 따윈-”

“-가지고 있지 않다!”


두 성기사가 합을 맞춰서 달려들었다.

끝없이 연마한 노력이 보이는 합공을 선보였다.


“흐냥!”


한 명이 머리를 공격하면 다른 한 명은 몸통을 향해 찌르기를 넣는다. 몸통을 노리면 또 다른 궤적으로 목을 노렸다.

그렇게 합공이 이어지기를 수십 번.

기예에 가까운 몸놀림을 보이는 루나의 몸에도 작은 생채기가 가득 생겼다.


“빈틈-”

“-발견!”


그때. 두 성기사가 빈틈을 노렸다.

루나가 얼굴 쪽으로 날아올 검을 신경 쓸 때, 다른 성기사가 먼저 달려든 성기사를 밀쳤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던 때에 복부를 깊이 베였다.


“흐냥!”


검이 닿은 위치에 선혈이 튀었다.

길드 업무원의 복장이 길게 찢어졌다.

성기사는 거기에 만족하지 않으며 발차기를 먹였다.


“흐갹!”


성기사가 신성력을 담아 밀어 찼다.

그 힘을 따라서 루나의 몸이 저 멀리 날아갔다.

동굴 벽에 부딪히고 일부가 무너져내렸다.

돌들이 무너지며 피어오른 흙먼지가 루나의 모습을 가렸다.


“방심은 금물-”

“-거기서 나와라. 정의를 실현할 때다.”


두 성기사가 피어오르는 흙먼지 안을 주시했다.

바스타드 소드를 머리 위로 올리며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기도를 통한 축복으로 육체의 능력을 강화한다.

상대가 흙먼지 밖으로 나온 순간 단번에 끝을 볼 심산이었다.


“후냥, 한 대 맞으니 정신이 든다냐.”


그런데 루나가 흙먼지 속에서 태연히 말했다.

귓속에 흙이 들어갔는지 머리 한쪽을 여러 번 두들겼다.

툭툭.

흙먼지 속 인영은 몸을 잔뜩 낮추더니 달려드는 형상을 취했다.

그에 맞서서 성기사의 검에도 힘이 실렸다.


“스킬, 냥냥한 고양이 두 번째. 냥냥한 고양이는 어떤 냥냥도 할 수 있다냥.”


얌전했던 흙먼지가 폭발하듯이 흩어졌다.

그 사이로 호랑 무늬가 튀어나왔다.

두 성기사는 루나가 달려오는 것을 인지하고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 순간 루나의 몸이 더욱 가속하였다.


“으으냥. 엄청 단단하다냐···.”


검을 휘둘렀을 때 호랑무늬는 없었다.

성기사가 맨바닥에 휘두른 검이 깊은 구덩이를 만들었다.


“당신들. 도대체 얼마나 단단한 걸 입은 걸까냥?”


오른쪽의 성기사가 고통을 호소하며 비틀거렸다.

갑옷 아래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신성력으로 몇 번이고 축복했던 미스릴 갑옷이다.

그런데도 무언가에 찢어발겨진 듯한 구멍이 생겼다.


“크윽. 이해할 수 없다.”

“대체 무슨 수로 우리의 갑옷을?!”


허리를 꺾은 성기사가 고통을 호소하였다.

다른 성기사는 그를 보호하며 루나를 경계했다.


“놀랄 것 없다냐. 오히려 내 쪽이 더 놀랐다냐.”


루나는 잔뜩 헤진 업무용 옷을 벗었다.

몸의 굴곡이 그대로 드러나는 검은 옷을 선보였다.


“후냥. 여기도 너덜너덜해졌다냥.”


누더기가 된 길드 업무복을 보며 우는 소리를 냈다.

안쪽에 입었던 옷도 골반 부분이 찢어진 것을 확인하고 한탄했다.


“잠깐만 기다려라냥.”


루나가 일찍이 기절시킨 성기사의 수통을 훔쳤다.

성수를 허리춤에 들이부어 피와 상처를 씻어냈다.

살점과 달라붙은 옷을 떨어트리자 깨끗한 맨살이 드러났다.


“바보 같은!”

“허리에 있는 그 낙인은!”


두 성기사가 그녀의 상처 부위를 확인하고 경악하였다.

골반 위에 새겨진 도장 크기의 흉터를 알아보았다.


“어떻게 본국의 검투수가-”

“-바깥에 돌아다닐 수 있는 거지?”


흉터는 바솔루트의 검투수에게 새기는 낙인이었다.

아인종을 노예로 부리며 유희 거리로 다루는 바솔루트의 관습이었다.

그런데 타국의 사람에게서 검투수의 낙인이 찍혀있다.

이는 있을 수 없는 일.

오로지 검투수만 낙인을 새기며. 엄중한 관리 속에서 유희 거리로 살다가 죽는 게 검투수의 숙명이었다.


“두 발 있는 짐승이 어디를 못 갈까냐?”


루나는 길드 업무복을 팡팡 털어냈다.

검은 옷의 옷매무새를 마저 다듬고. 지금껏 유지하던 미소를 거두었다.


“형씨들은 그저. 소중한 은인 덕분에 내가 나올 수 있다는 사실만 알면 된다냐.”


손톱이 날카롭게 변했다.

피로 얼룩진 오른손이 어떤 식으로 갑옷을 뚫었는지를 알려주었다.


“들어본 적 있다-”

“-과거에 정점을 찍었던 검투수가 은연히 정체를 감춘 적이 있다고.”


또 한 번 시야에서 루나가 사라졌다.

다음 순간에는 귀를 찌르는 소리와 함께 시야가 얼룩졌다.

투구를 찢고 그 안에 있는 얼굴에 상처를 남긴다.

얼굴 전체를 가로지르는 열상에 비명을 질렀다.


“이 괴물이-!”


다른 성기사가 검을 휘둘렀다.

루나는 그 팔을 붙잡고 손쉽게 비틀었다.

그러고는 아까와 똑같이 투구와 함께 얼굴을 찢어발겼다.

그들은 바닥을 구르며 고통을 호소하였다.

그러다가 복면의 정화작용이 사라지고, 수면 스킬의 영향으로 조용해졌다.


“전원 착검해라.”


줄곧 방관하던 성기사의 지휘관이 입을 열었다.

스무 명 남짓의 성기사가 전부 검을 빼냈다.


“상대는 도망친 맹수. 타이그리스이다. 위험도를 상급 마물과 견준다고 생각하고 전투에 임하도록.”


결코 조금 전 상대에 비해 약하지 않은 성기사들이 달려들었다.

성직자의 축복과 함께 검을 휘둘러왔다.

루나는 바닥을 툭툭 걷어찼다.

그들과 맞서는 호박빛 눈동자가 맹수처럼 길게 찢어졌다.



*****



“별것도 아닌 게 까불기는.”


에이린은 손을 털었다.

루나가 다른 공간에서 열심히 맞서는 한편. 현실에 남은 에이린도 상황을 정리하였다.

수십이나 되는 성기사들을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기절시켰다.

그냥 기절도 아니라 저마다 발악하다가 신성력 고갈로 쓰러졌다.


“어디 보자. 잘린 손이 미라가 됐다는 건 신성력 이상의 생명력이 필요했다는 이야기고. 성기사의 절반이 사라진 건 돌아올 수단이 있다는 거겠지?”


에이린은 루나를 가둔 성물을 찾기 위해서 그들의 몸을 수색했다.

그러다가 아직 의식이 있는 성기사를 발견하고 손을 밟았다.


“야. 아직 잠들지 말고 하나만 대답해. 너희들 그 고양이를 어떻게···”

“흐냥!”

“으앗! 뭐야?!”


성물로 사라진 루나가 허공에서 튀어나왔다.

반응할 새도 없이 서로 이마를 부딪쳤다.

두 사람 모두 다시 재회한 반가움을 느낄 새도 없이 이마를 감싼 채 고통을 호소했다.


“에이린! 무사했구나냥!”


루나는 반가워서 팔을 벌렸다.

그러나 에이린의 눈빛이 심상치 않은 것을 보고 활짝 벌렸던 팔을 다시 접었다.


“이씨. 캣니스의 친구만 아니었어도···.”


에이린은 이마를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이마를 부딪친 분통함을 삼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용케 무사했네. 고양이.”

“흐냥. 사실은 아슬아슬했다냐.”

“멀쩡하면서 엄살은···. 옷은 왜 이리 선정적이야? 칠칠치 못하게 상처는 왜 달고 다녀?”


수십에 달하는 성기사를 홀로 상대했다는 것만으로도 칭찬할만한 일이었다.

그걸 모르지 않을 텐데도 에이린에게서 고운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 질타에 루나의 꼬리가 축 내려앉았다.

기분이 가라앉았다.


“여기에는 냥냥하지 못한 사정이···”

“시끄러워. 한심하게 저런 애들한테 맞기나 하고 돌아다니면서 뭘 따라오겠다 한 거야? 자만이 하늘을 찌르는 거 아니야? 이 약해빠진 주제에 고집만 센 고양아.”

“흐냥. 에이린은 엄격한 거 같다냐···.”

“어딜 가는 거야? 뒷걸음질하지 말고 이리 와. 인상쓰지 마. 애처럼 굴지 마. 상처는 치료해야 할 거 아니야!”


루나는 시무룩해져서 주저앉았다.

별 변명도 못 한 채 상처를 보여줬다.

상처를 본 에이린의 눈살이 단숨에 찌푸려졌다.


“멍청하게 이 상처로 움직였구나? 내가 구해줄 때까지 도망만 다니면 될걸. 대체 뭔 이상한 짓을 하고 있던 거야?”

“그건 나도 에이린을 구해주려고 했으니까다냐.”

“시끄러워. 제 몸 하나 못 챙기면서 이상한 소리 하지 마.”


루나는 에이린이 상처를 보며 쏟아내는 타박에 머리를 긁적였다.

에이린은 신경질적으로 그녀의 허리를 긁었다.


“아이 씨. 이건 무슨 재질이길래 이렇게 착 달라붙어 있어?”


딱 달라붙는 재질의 옷이 혈액과 피부 속에 파묻혀 있어서 상처와 분간되지 않았다.

이대로 치유 포션을 사용했다가는 피부 속에 천 조각이 들어가서 썩고 말 거다.


“안 되겠네. 그냥 찢어야겠어. 재들 옷 중 아무거나 뺏어 입으면 되겠지.”


당사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과감한 판단이었다.

루나의 동공이 심히 흔들렸다.


“에, 에이린 냥? 그건 조금 곤란한 거 같다냐. 아무리 그래도 저 옷을 입으라니. 너무 자존심도 없을··· 냐앙!”

“가만히 좀 있어. 일단 물로 씻어내야 뭐가 보이기나 할 거 아니야.”

“아프다냐! 살살해줘라냐!”


에이린은 상처에 성수를 쏟아부으며 문질렀다.

피와 불순물을 모두 씻어내고, 상처 주변에 천 조각을 모두 잘라버린 뒤에야 포션 하나를 들이부었다.

이제야 살 만한 루나가 편히 숨을 내쉬었다.

남은 상처가 없는지 확인하던 에이린이 골반 위에 있는 흉터를 주시하였다.


“너. 이거···.”


무심코 물으려던 말을 집어넣었다.

곧 시선을 떼고 손바닥으로 상처 부위를 가격했다.


“흐냣!”

“뭐. 애썼다는 건 알겠네. 고양이 주제에 수고했어.”

“···전혀 수고한 사람에게 하는 말 같지 않다냐.”


나름 상냥한 말이지만 허리를 때린 손바닥이 매서웠다.

루나는 눈물을 머금었다.

상처를 때린 에이린이 원망스러웠지만 내민 손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 놈들이 전부인 건지. 아니면 도망간 건지. 도통 머리를 내밀 생각이 없네?”


동굴 깊숙한 곳을 보았다.

이 소란에도 아무런 소리 없이 고요하기만 하다.


“어떤 인간인지 모르겠지만 잡히기만 해봐. 내 손에 아주 죽을 줄 알아.”


에이린은 씩씩 화를 내며. 이 일을 주도한 우두머리를 잡기 위해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은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좁아졌다.

좁은 입구는 어느 기점으로 굉장히 넓어졌다.


“허. 이것들 봐라.”


에이린이 동굴 안쪽을 확인하고 코웃음 쳤다.

동굴 안은 병기고였다.

무기, 갑옷, 식량. 별 군수품이 다 있었다.

들킨다면 결코 문책을 피할 수 없는 물건들을 타국에 당당히 들여놓았다.

그들이 남겨둔 군수품을 확인하며 바솔루트의 뻔뻔한 행동에 어이없어했다.


“이쪽에서 피 냄새가 난다냐.”


루나가 에이린을 불렀다.

예민한 코로 피 냄새를 쫓아간 곳은 평범한 동굴 벽이었다.


“환영이야.”


에이린이 본질을 꿰뚫어 보고 손가락을 튕겼다.

벽이 사라지고 본래의 모습을 드러냈다.

새로이 생겨난 지형은 지하로 내려가는 통로였다.

사람의 손길이 닿은 장소였다.


“미친. 이것들이···.”


에이린은 계단을 모두 내려가고 욕설을 짓씹었다.

계단 끝에서 목격한 광경에 분노했다.

남자, 여자, 노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재갈을 물리고 두 눈을 가렸다.

손과 발을 묶는 것은 당연하거니와. 그중 몇 명은 상처도 치료받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었다.

그들 모두가 바솔루트가 가람왕국에서 붙잡은 셀레브리디 교단의 신자들이었다.

마녀사냥의 역사에서나 나올법한. 성직자를 향한 비인도적인 행동에 말문이 막혔다.


“누굴 예전처럼 멍청이로 아나. 바솔루트의 국왕도 앱솔루트의 사제에게 이럴 자격이 없다는 거 이제는 안다고.”


처음에는 바솔루트가 나름의 사정이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 광경을 본 이후에는 같잖은 생각이었다고 다시 한번 깨달았다.


“에이린. 캣니스가 안 보인다냐···.”


그들은 붙잡힌 사제들의 구속을 풀어주었다.

이곳 어디에도 캣니스는 없었고, 누구도 캣니스를 보지 못했다.


“젠장. 어디로 끌고 간 거야···.”


에이린은 아연실색하였다.

캣니스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조바심이 생겼다.

만약 바솔루트 놈들이 마을 밖으로 데려간 것이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좋은 수가 떠오르지 않은 그때, 한 여성이 치맛자락에 매달렸다.


“도와주세요! 저희를 구하러 오신 거죠? 제 아이가! 아이가 안 보여요!”


바솔루트는 힘을 집행할 정당한 권한도 없으면서 어머니와 아이를 납치했다.

에이린의 표정이 낮게 가라앉았다.


“아이가 어디로 갔는지 알까냥?”

“모르겠어요. 갑자기 주문을 외우더니 아이와 함께 사라져서···.”

“블루. 레드.”


에이린이 곧바로 두 마리의 슬라임을 불렀다.

푸른 슬라임에게서 일전에 맡아두었던 캣니스의 머리 장식을 꺼내었다.


“인과율. 운명을 짜내는 실타래. 무수히 뻗은 세계수의 가지. 이 꽃장식을 사용했던 캣니스의 흔적을 추적해. 대가는 무엇이 되든 상관없으니 지금 당장.”


신성력과 다르게 마법은 완벽한 계산이 따른다.

마법은 연금술과 일맥상통하는 등가교환의 법칙이 전제로 깔려있다.

그렇기에 마법은 기적이 아니다. 마법은 가능하지 않은 일을 해낼 수 없다.

이것이 신성 마법과 마나를 이용한 마법의 차이.

마법사가 기적을 바랄 때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내놔야 한다.


“그래. 사실을 보지 못한 눈 하나쯤은 내놓는 게 좋겠지.”


에이린은 지금 그 기적을 바랐다.

캣니스를 찾기 위해 금지된 마법을 사용했다.

적(赤)과 청(靑)의 슬라임이 천칭의 양쪽 추 역할을 하였다.

보이지 않는 기준을 두고 완벽한 대칭을 이루었다.


“에이린냥···?”


타인이 보기에는 두 마리의 슬라임이 공중에 떠 있는 거로 보인다.

하지만 에이린이 사용한 마법은 기적과 가장 가까운 금단의 지식.

루나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마법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경외심을 느꼈다.


“왼쪽 눈을 줄게. 그러니 캣니스를 찾아줘.”


에이린의 왼쪽 눈이 푸른 마나에 휩싸였다.

곧, 천칭의 푸른 추가 한쪽으로 기울었다.

붉은 추가 푸른 추와 대칭을 만들기 위해 점점 내려왔다.

두 개의 추가 완벽한 수평을 이룬 그때. 비밀기지의 사방이 황금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하. 이러니까 못 찾지. 사제 놈들이 사제답게 신이나 부르짖을 것이지···.”


에이린은 실소했다.

동굴 전체가 수많은 마법진의 배열로 이루어졌다.

이 마법진이 일반적인 마법과 다른 점이 있다면. 마나가 필요한 대신에 신성력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같잖게 성물의 힘을 빌려서 마법사님 노릇이나 하고 말이야.”


마력을 담아서 손가락을 튕겼다.

황금빛으로 물들었던 공간이 푸른색으로 변했다.

얼마 안 가서 푸른색이 붉은색으로 변해갔다.

에이린은 아이를 찾던 어머니를 돌아봤다.


“이봐. 아이 걱정은 하지 마. 내가 무사히 데려올 거니까.”


동굴의 사방이 하얀색으로 점멸했다.

에이린과 루나는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인 공간으로 찾아왔다.


“성공한 걸까냐?”


동굴 위층에서 겪은 일처럼 공간을 분리하는 마법이다.

에이린이 마법진의 주도권을 빼앗고 마나를 사용하여 같은 결과에 도달하였다.


“캣니스?”


그런데 기껏 찾은 장소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각하였다.

바닥을 채운 혈액. 코끝을 찌르는 지독한 피 냄새. 곳곳에 돌아다니는 끔찍한 고문 도구들.

그 가운데서 피가 덕지덕지 말라붙은 옷을 입은 여사제가 있었다.


“캣니스! 무사 한 거야?”


에이린이 그녀를 불렀다.

그러나 캣니스에게서 어떠한 반응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저 제자리에 서 있는 채로 어딘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캣니스. 내 목소리 들리면 대답 좀 해봐. 너, 그 모습은 대체···.”


에이린과 루나가 캣니스의 얼굴을 보기 위해 앞으로 가던 순간이었다.


“헉!”


캣니스가 고개를 꺾어 그들을 보았다.

검붉은 피로 얼룩진 머리카락 사이로 금빛 눈동자가 빛났다.


“캐. 캣니스냥. 너 눈동자가 이상하다냐···.”


이내 원래 시선을 두었던 곳을 바라봤다.

모든 게 평소와 달랐지만, 제일 이상한 건 그녀의 행동이었다.

손에 쥔 물건을 바라보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49···50···51···”


줄곧 시선을 주던 물건을 알아봤다.

그것은 눈이었다.

사람에게서 척출해낸 안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캣니스. 너 지금 뭔가 이상해···. 원래 이러지 않잖아 너···.”


구석진 자리에서 납치당한 아이와 노인이 서로 부둥켜안은 채 몸을 떨고 있었다.

그들을 신경도 쓰지 않는 모습이 기이하게 다가왔다.


“54···55···57···60···”


여전히 숫자를 읊고 있는 그녀.

언제부터 셌는지도 모를 숫자였다.

도대체 왜 이런 상황에서 숫자를 세는지 알 수 없었다.

낯설기만 한 그녀의 모습에 말 한마디 꺼내기 힘들었다.


“아. 아아아악!”


그때. 아이가 소리쳤다.

이 기이한 상황이 두렵기까지 하던 그때였다.


“61.”


숫자를 멈추고 신성력이 터져 나왔다.

캣니스로부터 시작된 신성력이 사방을 황금색으로 물들었다.

밝은 빛에 눈을 감았다가 뜨자. 낯선 광경이 펼쳐졌다.

그들은 처음으로 사건의 주동자를 만날 수 있었다.


“아. 으아. 아아아!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알몸인 모습으로 바닥을 기는 중년의 남성.

바솔루트의 성기사단을 지휘하는 기사.

이 모든 사건의 주동자인 성기사단장이 캣니스를 바라보며 두려움에 떨었다.


“괴물. 괴물···! 고요한 분위기 속에 정체를 숨겼구나······!”




제 작품이 마음에 들었다면 추천과 좋아요 잊지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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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89화 동향과의 재회 23.07.27 26 0 17쪽
100 88화 동향과의 재회 23.07.25 22 0 13쪽
99 87화 동향과의 재회 23.07.24 24 0 21쪽
98 86화 동향과의 재회 23.07.20 24 0 14쪽
97 85화 동향과의 재회 23.07.19 20 0 17쪽
96 84화 동향과의 재회 23.07.18 22 0 16쪽
95 83화 동향과의 재회 23.07.17 24 0 22쪽
94 82화 동향과의 재회 23.07.12 30 0 14쪽
93 81화 동향과의 재회 23.07.10 36 0 13쪽
92 외전 마계의 끝자락에서 23.07.05 42 0 29쪽
91 80화 그의 비밀 23.07.03 37 0 24쪽
90 79화 그의 비밀 23.06.28 39 0 19쪽
89 78화 이안류 23.06.23 66 0 25쪽
88 77화 이안류 23.06.20 32 0 16쪽
87 76화 재침공 23.06.16 39 0 18쪽
86 75화 재침공 23.06.13 33 0 24쪽
85 74화 재침공 23.06.07 34 0 25쪽
84 73화 재침공 23.06.03 34 0 11쪽
83 72화 재침공 23.06.03 40 0 16쪽
82 71화 재침공 23.05.29 41 0 15쪽
» 70화 재침공 23.05.25 38 0 20쪽
80 69화 재침공 23.05.22 49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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