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지하이 의 서재입니다.

실직한 마왕성 문지기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지하이
작품등록일 :
2022.10.26 12:21
최근연재일 :
2024.07.30 08:09
연재수 :
223 회
조회수 :
13,342
추천수 :
133
글자수 :
1,694,679

작성
24.05.04 22:53
조회
13
추천
0
글자
18쪽

159화 전사의 나라

DUMMY

159화 <전사의 나라>



“언니. 진짜 쓰레기였다.”


라나가 질색하며 말했다.

릴리트의 과거가 나쁜 줄은 알았지만, 상상 이상으로 못난 짓을 많이 했다.

그런 비난을 담아서 말하니 릴리트는 고개 돌리고 못 들은 척했다.

본인이 한 일이 좋지 못했다는 건 아는 모습이었다.


“브레드 님. 감사해요.”


그리고 화제의 당사자가 찾아왔다.

모두가 시치미 뚝 뗐다. 한 사람을 두고 하던 대화가 끊겼다.


“감사하다니. 무얼 말인가?”


브레드가 여유롭게 답해주었다.

그의 침착한 대응에 여인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브레드 님께서 사람들을 구하셨어요.”

“나는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이네. 그리고 자네야말로 앞장서서 사람들을 구하지 않았나.”

“저는 한 일이 없는걸요. 브레드 님과 문지기님이 모두 해결하셨죠.”

“허허. 제일 먼저 나선 건 자네였네. 자네가 한 일이 없다면 이 브레드 머슬릿도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거로군.”


브레드는 일의 공로를 캣니스에게 돌렸다.

이번 인명 사고가 적은 이유에는 그녀가 있다고, 만약 자신이 이 나라 사람이라면 영웅이라 부르기를 아끼지 않았으리라고 칭찬했다.


“브레드 님. 그래도 그건 너무···”


과장된 말이다.

캣니스는 그리 생각하였는데, 브레드가 그렇지 않음을 눈빛으로 알려주었다.


“잠깐만. 생각해 보니 그렇네? 목숨 구해준 것치고 너무 조용한 거 아니야?”


가만히 듣던 라나가 끼어들었다.

이어서 매서운 눈빛으로 주변을 휙휙 둘러봤다.

험한 꼴 당한 상황치고 주변이 평안하다. 마치 아무 일을 겪지 않은 사람들의 모습이다. 너무나 태평한 모습이 어이없어서 웃었다.


“미친 거 아니야?”


사람들의 분위기가 ‘무사히 살았다,’ 정도에서 그친 일을 못마땅해하였다.

다른 나라였으면 공식적으로 감사의 말을 듣거나, 박수 세례받아야 할 일인데 말이다.

고작 몇몇만 감사 인사하고. 나머지는 아예 신경 쓰지도 않는다니.

심지어 영주 곁에 모여서 아무렇지 않게 웃고 떠들고 있었다.


“라나 님. 이해해 주세요. 마두크의 분위기가 원래 이런 듯해요.”

“아니. 이게 이해까지 해야 할 일이야?”

“저도 그 심정 이해하지만, 어쩌겠어요.”


캣니스가 라나를 달랬다.

이곳 마두크의 사회적인 분위기에 관해 설명했다.

앞선 영주와 남성의 대화만 아니었으면 알지 못한 채 넘어갔을 전통이다.

마두크의 시민들은 강자에게 굽신거리는 일이 그들을 모욕하는 행위로 여겼다.


“그래도 호의적이에요. 무언가 필요한 게 있으면 가져다줄 거예요.”


지금 저택의 분위기야말로 일행을 배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토끼가 늑대를 잡아먹은 호랑이에게 감사 인사하지 않듯이, 토끼는 호랑이에게 자신까지 잡아먹혀도 별수 없다고 여긴다.

마두크의 사람들에게는 이게 기본적인 사상이었다.

그들이 판단한 강자와 약자 사이에는 뭐라고 설명하기 힘든 무언가가 존재했다.


“뭐야 그게···.”


라나는 캣니스의 설명 듣고도 인상을 일그러트렸다.

상당히 노골적인 감정 표현이었는데, 캣니스도 그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하였다.


“무슨 사람을 약탈자 대하듯이···!”


라나가 분통을 터트렸다.

사람의 선의를 완전히 깔보는 마두크 사상에 실망하였다.

실망감이 담긴 눈빛으로 주변을 보았다.


“하지만 그것이 이 나라의 문화일 터이지.”


브레드가 라나의 기분을 진정시켰다.

브레드는 알았다.

같은 인간이라도 주변 환경에 따라서 천 개의 얼굴이 될 수 있음을 말이다.

살아간 세월도, 얻은 경험도. 모든 환경적 요소가 다른 장소에서 자란 다른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과 같은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겠는가.

그 차이를 인정하는 게 모험가의 첫걸음이다.

베테랑 모험가답게 환경에 적응하는 법이 능숙했다.


“그렇다곤 해서 무리해서 공감할 필요는 없네. 그저 그들의 삶이 그렇구나 인정하는 정도가 적당하지.”


불쾌한 대접에 관한 의견은 이 말이 마지막이었다.

마두크의 문화를 존중하는 선에서 그치기로 했다.

상당히 뒤끝이 찝찝한 결론이지만. 더 고민해도 사회 전반에 깔린 사상을 바꿀 수는 없기에 끝냈다.

그보다는 더 건설적으로 할 이야기가 많기에. 브레드는 일행들의 기분을 달래었다.


“저기, 달링.”

“음? 릴리트여, 왜 부르는가?”

“저기 저 아이. 달링 보러오는 거 아니야?”


부상자의 치료가 거의 끝나가던 중이었다.

멀리서 게르드가 손가락으로 숫자 ‘셋’을 가리킨 와중에 한 여인이 다가왔다.

여인은 빠른 걸음으로 브레드 앞에 섰다.

짙은 갈색 피부와 검은 눈과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여인이었다.


“으, 은인님!”


여인은 다짜고짜 브레드의 손을 붙잡았다. 우수에 젖은 눈을 마주 보면서 이야기했다.


“은인님. 혹시 이후에 일정이 있으신가요?”

“일정 말인가? 딱히 없다네. 시간도 늦었으니 바로 돌아가서 눈을 붙일 생각이었네.”

“그러면. 혹시 이후에 시간이 되실까요? 부, 부족한 몸이지만 제가 은인님의 여독을 풀어드리려고 하는데요···!”


여인은 말끝마다 목소리를 높였다.

브레드와 일행은 여인을 보며 당황했다.

이 나라에서는 영주가 초대한 손님을 다시 초대하는 게 일반적인지 고민했다.

이에 대한 답은 여인의 눈빛을 보고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언니 저거···.”

“나도 알아. 조용히 해 봐.”


라나와 릴리트가 작게 속삭였다.

두 사람의 눈빛이 어느 때보다 차가웠다.

은혜 입은 여인이 많고 많은 은인 중에서 굳이 브레드와 접촉한 이유.

비슷한 처지인 사람으로서 기민하게 여인의 의도를 알아챘다.


“미안하네만 일행이 있네. 안타깝게 그대의 부탁은···”

“이 이상 은인님을 욕심부리지 않을게요, 부디 밤시간만 저에게 나눠주시면 안 될까요?”


눈물이 차오르는 올망졸망한 눈으로 바라본다.

넌지시 던져진 거절 표현에 브레드의 손을 더욱 애타게 붙잡는다.

이에 브레드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여 쓴웃음만 짓던 때였다.


“가세요, 브레드님.”


곤란한 남자의 등을 떠민 건 캣니스였다.

캣니스가 측은지심이 가득한 얼굴로 두 사람을 보았다.


“하나 캣니스여···.”

“은혜를 갚고 싶다고 말씀하시는걸요. 그동안 고생하셨으니 하루 정도는 편히 쉬세요.”


캣니스가 상냥하게 미소 지었다.

그러나 편히 대접받으라는 배려에도 불구하고 브레드의 눈이 지진 나듯 흔들렸다.

순수한 여사제의 얼굴을 마주하였다. 분명 마땅한 이유가 있는데 어떠한 말도 꺼내지 못했다.

속에 있는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지독한 사람이 될 거 같은 느낌이었다.

실제로 여인과 여사제, 둘 중 하나에게 몹쓸 사람이 되리라.

결국 수많은 변명을 뒤로하고, 목에 가시처럼 박힌 말을 꺼냈다.


“알겠네. 용기 내준 여성을 울릴 수 없는 노릇이니···.”


결국 그 혼자서 각오를 다졌다.

어쩐지 뺨이 홀쭉해진 느낌이 있지만 기합을 세게 넣었다.


“최선을 다할게요!”


여인의 얼굴이 활짝 폈다.

초대에 은인이 응했다는 사실에 미소를 만개하였다.

그러나 곧, 웃는 여인의 어깨 위로 낯선 이가 팔을 올렸다.

새하얗다 못해 창백해 보이는 하얀 피부. 검붉은색 긴 머리카락 사이로 붉은 눈이 끼어들었다.


“야. 나도 껴도 되지? 나도 달링과 같은 ‘은인님’이잖아?”


릴리트가 여인의 대접에 샘내며 끼어들었다.

이에 여인의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그래도 여인은 물러나지 않았다. 릴리트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고 초대하였다.


“두 분과 함께하는 건 처음이지만, 최선을 다해볼게요···.”


그녀 또한 비장한 각오로 말하였다.

많이 긴장하는지 귓불도 빨개졌다.


“아싸! 달링. 오늘도 기대할게~”


초대에 기뻐하는 릴리트. 추가된 인원이 걱정되는 건지 부끄러운 건지 얼굴을 붉히는 마두크의 여인. 그리고 어쩐지 볼이 더 핼쑥해진 브레드.

저마다 같은 상황에 다른 감정을 품은 세 사람이었다.

그들 먼저 양해를 구하고 연회장에서 나갔다.


“어라? 라나 님은 안 따라가세요?”


캣니스가 브레드와 떨어진 라나를 의아해하고 물었다.


“이틀 연속은 무리야.”

“아. 그랬죠. 어제도 밤을 새웠죠. 그래도 저기에 끼는 편이 좋지 않아요?”

“미쳤어? 내가 저기에 왜 껴?!”

“네에···?”

“내가. 저기를, 왜, 끼냐고!”


라나가 목에 핏줄까지 세우며 반박했다.

이에 캣니스는 두 눈을 깜빡였다.

왠지 더 라나와 이야기하면 사이가 틀어질 거 같았다.

흔히 선을 넘는다고 말하는 종류의 무언가였다.

그래서 어영부영 다른 쪽으로 말 돌렸다.

남은 일행들을 돌아봤다.


“어··· 그러면 우리도 이만 돌아갈까요?”


때마침 아쿠아도 게르드에게 업혀 왔다.

캣니스와 아쿠아의 활약으로 한밤중 사고로 생긴 부상자 치료가 모두 끝났다.

몸 성히 살아남은 연회 객들도 하나둘 자리를 떴다.

캣니스와 일행들도 늦은 연회로 피곤하기에 침대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영주님. 이만 돌아가 볼게요.”

“오늘 감사했습니다. 여러분이 사막을 정복할 날을 기대하겠습니다.”


간단한 인사 뒤에 연회장 밖으로 나왔다.


“게르드 마차. 출발···.”


아쿠아는 게르드의 등에 업힌 채 이동했다.

때아닌 노동에 반쯤 실신 상태였다.

게르드에게 업힌 채 목만 앞뒤로 꺼떡꺼떡 움직였다.

다함께 숙소로 향하는 복도에서였다.


“하, 저것들. 끝까지 감사 인사 하나 없네? 진짜 진절머리 난다, 이곳 사람들.”


라나가 해산하는 사람들을 향해 혀 내밀었다.

단단히 심기가 뒤틀렸는지. 공식적인 감사 인사 한번 없는 이곳 사람들에게 화냈다.

문화의 차이를 이해하지만, 별개로 속상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고생한 만큼 보상이 따르지 않으니 미워해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래도 한 분은 저택까지 초대할 정도로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던걸요.”

“그게 무슨 감사한 마음이야? 너 미쳤어?!”

“네?”

“너는 알지도 못하면서··· 에휴. 됐다. 너랑 무슨 이야기를 하겠어?”


난데없이 쏟아지는 비난.

영문 모를 비난에 캣니스는 울상이 되었다.

맞장구쳤을 뿐인데 험악한 말을 들었다. 자세한 사정을 알지 못하는 순수한 사람은 억울하였다.

이후로는 어떠한 대화도 없이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세 번째 복도에 들어섰다.

언성이 오가고 서먹서먹하던 분위기도 끝나갔다.


“음냐. 시끄러워.”

“어머. 아쿠아 짱. 고작 그만큼 일하고 뻗어버리면 어떡하니~”

“우으. 파프리카는 싫어요, 대주교님.”


돌연 아쿠아가 잠꼬대하였다.

캣니스와 게르드는 잠꼬대할 정도로 태평한 아쿠아를 보고 지었다.

특히 캣니스는 게르드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하였다. 깊이 잠든 릴리트에게 한마디 던졌다.


“편식은 나빠요. 골고루 드세요.”

“우으으. 대주교님 나빠···.”


옳은 말 해도 욕을 듣는 건 총대주교님.

참신한 반응에 캣니스는 악동 같은 미소 지으며 다가섰다.


“파프리카는 아쿠아 님이 좋대요.”

“우으으으. 파프리카 저리 가.”

“파프리카는 맛있어요.”

“아니야. 맛없어.”

“파프리카는요. 아쿠아 님이 싫다고 해서 고기를 데리고······”


긴장이 풀리니 시답잖은 장난을 치게 된다.

기분 전환하기 딱 좋은 장난에 즐거움을 얻던 그때였다.


“캣니스.”

“네? 문지기님.”

“근처에서 피 냄새가 나.”


나란히 걷던 가더가 캣니스를 불렀다.

근처에서 피 냄새가 난다는 꺼림칙한 이야기를 하였다.


“피 냄새요?”


캣니스는 표정을 굳혔다.

웃고 장난치던 행동을 즉각 멈췄다. 최대한 냉정하게 주변을 둘러봤다.

이 방면에서 그가 틀린 말 한 적 없으니 믿고 행동했다.

역시나 이번에도 그가 옳았다. 미약하게 느껴지는 혈향에 미간 사이를 좁혔다.


“게르드 님. 이건···.”


그들은 걸음을 서둘렀다.

순식간에 그들이 걷던 복도가 끝나고 다음 건물을 알려주는 문까지 달려왔다.

달빛으로 그늘진 아치형 문을 지났다. 숙소 앞 정원이 나왔다.

곧바로 숙소 앞 정원에서 익숙하고도 낯선 풍경을 마주하게 되었다.


“뭐야? 왜 이 많은 사람이 다들 쓰러져 있어?!”


라나의 말대로 사람들이 있었다.

하나 같이 혼절하여 정원 곳곳에 쓰러져 있었다.


“어이, 일어나 봐. 무슨 일 있었어?”


라나가 다가가서 뺨을 두들긴다. 어깨도 흔들었다.

그래도 누구도 깨어나지 못하였다.


“상당히 큰 충격을 받은 모양인데?”


제법 과격한 수단으로 기절한 이들이었다.

약이나 술이 아니라 물리적인 수단에 의해서 정신을 잃은 게 분명하였다.

기절시킨 수단이 과격한 만큼. 이 중에는 몇몇, 영원히 깨어나지 못할 사람도 있었다.


“캣니스 짱. 이거 보렴.”


이번에는 게르드가 무언가를 발견하고 불렀다.

기분 나쁜 사실을 알아냈다.

쓰러진 사람들은 영주 저택의 병사와 시종들이다. 그리고 한때 사막에서 붙잡아 온 반갑지 않은 사막 강도들도 상당히 많았다.


“모종의 이유로 모두가 다 함께 기절~”

“-같은 이유는 아니겠죠.”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이들이나 저택 내부의 노예들을 납치하다가 그친 일이라고 다행스러워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고 있다.

아군과 적군 상관없이 깽판 쳐놓은 정원의 모습. 이는 제삼의 세력이 이곳을 침입했다는 소리다.


“숙소 안에는 지금 누가···.”


넓은 저택 중 이곳만이 난장판 이유를 떠올리다가 멈췄다.

불현듯 한 가지 걱정이 떠올랐다.

불안이 목 끝까지 올라왔다.


“게이로드 님···.”


난장판 속에서도 보이지 않는 동료를 떠올렸다.

원래대로라면 이런 일을 겪었을 때, 그가 제일 먼저 현장에서 자신들을 반겨줬을 터이다.

하지만 이곳에는 그의 흔적이 없었다.


“숙소에는 게이로드 님이 남았어요···!”


아직 어떠한 일도 정해지지 않았지만 걱정하며 달려갔다.

머릿속의 가정은 이미 걱정 정도로 그치지 않았다.

오랜 시간 단련된 확신과 가장 가까운 직감.

쓰러진 사람들을 돌보는 일은 뒷전이었다. 숙소에 남은 일행을 확인하기 위해 서둘러 갔다.

정원을 가로질러서 함께 머무는 숙소의 방문을 열었다.


“아. 왔어? 문지기, 사제.”


그들은 문을 열자마자 멈춰 섰다.

방 안에서 덮쳐오듯 다가온 정보에 말문이 막혔다.


“기다리고 있었어. 밤이 깊었으니까.”


캣니스는 입술을 달싹였다.

여러 말을 하고 싶은 가운데, 가장 이성적인 말을 꺼냈다.


“티미 님. 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방 안은 난장판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없던 바닥의 흠이 생겼다. 멀쩡하던 가구가 망가졌다. 창문이 있어야 할 벽에 나무 문 못지않은 큰 구멍이 보였다.

신경 쓰이는 일투성이였다.

그래서 이 모든 일의 전말을 알고 있을 자에게 물었다.


“티미 님. 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있던 거예요? 알려주세요.”


가고일 티미.

밤이 되어 움직이는 미형의 조각상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이에 캣니스가 한 번 더 차분한 목소리로 질문했다.


“티미 님을 책망하는 게 아니에요. 그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만 알려주세요.”


당혹스러운 상황인데도 이성적으로 행동했다.

마음속의 불길이 일지만 억눌렀다.

방 안에서 빠지지 않은 피 냄새가 역한데. 그게 오히려 머릿속을 차갑게 만들었다.


“이거 받아.”


티미는 봉투 하나를 건넸다.

현 상황을 대수롭지 않아 하는 모습에 긴가민가하다가 봉투를 건네받았다.


“이게 뭐죠?”

“놈이 놓고 갔어.”


편지를 담을 것처럼 생긴 종이봉투는 일부분이 피에 젖어있었다.

캣니스는 또 한 번 관자놀이가 화끈거리는 걸 느꼈다. 그래도 봉투의 내용물을 확인하기 위해 거꾸로 뒤집었다.


“이···”


봉투를 뒤집으니 어느 물체가 떨어졌다.

손안에 떨어진 물체를 확인하였다. 까득, 이를 사리물었다.


“이게··· 지금··· 도대체······.”


너무 흥분해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쿵쿵. 귓가에 이명이 들렸다.


“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한 거예요!”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자 살기가 흘러나왔다. 푸른색 눈동자가 금빛으로 물들었다.

그녀를 분노하게 만든 원흉이 바닥에 떨어졌다. 편지 봉투의 내용물은 편지 같은 게 아니었다.

어찌 보면 누군가의 질 나쁜 장난질이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못할 장난이기도 하였다.


“확실히 이건 상당히 악취미인걸~”


게르드도 한 마디 얹었다.

절단된 손가락 마디와 뭉텅이로 잘린 붉은 머리카락을 보고 혀를 찼다.

두 가지 모두 이 방에 머무르던 두 사람의 신체 일부이다.

모험가 게이로드의 손가락과 마왕 고레모리의 머리카락이었다.


“티미 님. 누구예요? 대체 누가 이런 짓을 했어요!”


캣니스는 살기를 잠재우지 않은 채 물었다.

방 안에서 일어난 일을 알고 있는 가고일에게 자초지종 물었다.


“대체 누가! 누가 이런 짓을 한 거예요?!”


반드시 이 일의 배후를 알아내야 한다.

동료를 건드린 파렴치한을 용서치 않을 태도였다.

분노한 신성력의 파동이 바람을 일으켰다.

피 냄새가 쓸려나가고 황금빛 알갱이만이 몇몇 떠다녔다.


“다들. 이리 좀 와 봐.”


모두가 각자의 방식대로 분노하던 그때였다.

방 안에서 양초를 들고 서성이던 라나가 말했다.


“이것 좀 봐.”


방 한곳에서 특이한 점을 발견하고 불렀다,

어둠 속에서 초를 높이 들었다. 초를 들어 비춘 대상은 새하얀 천장이었다.

새하얀 천장에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글씨가 붉은색을 띠게 한 염료는 평범한 재료가 아니었다.


“‘사막을 건너온 전사는 전사의 친우인가. 아니면 더러운 외적인가.’”


라나가 읽은 벽 위의 시.

누군가의 피로 쓴 기분 나쁜 메시지였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악취미인 행위에, 모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제 작품이 마음에 들었다면 추천과 좋아요 잊지마세요-!


작가의말

앞으로도 토요일에 올릴 예정입니다. 오늘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실직한 마왕성 문지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96 163화 사막 그리고 지하 24.05.13 11 0 13쪽
195 162화 사막 그리고 지하 24.05.13 7 0 15쪽
194 161화 사막 그리고 지하 24.05.08 9 0 9쪽
193 160화 사막 그리고 지하 24.05.06 14 0 16쪽
» 159화 전사의 나라 24.05.04 14 0 18쪽
191 158화 전사의 나라 24.05.01 11 0 14쪽
190 157화 전사의 나라 24.04.29 9 0 15쪽
189 156화 전사의 나라 24.04.27 17 0 15쪽
188 155화 전사의 나라 24.04.24 13 0 15쪽
187 154화 전사의 나라 24.04.22 9 0 12쪽
186 153화 변하지 않는 24.04.19 8 0 25쪽
185 152화 변하지 않는 24.04.15 15 0 13쪽
184 151화 사막의 나라 24.04.13 12 0 15쪽
183 150화 사막의 나라 24.04.10 13 0 17쪽
182 149화 사막의 나라 24.04.08 12 0 16쪽
181 148화 사막의 나라 24.04.05 10 0 21쪽
180 147화 사막의 나라 24.04.03 21 0 12쪽
179 외전 다섯 번째 용사 終 24.04.01 13 0 31쪽
178 외전 다섯 번째 용사9 24.03.29 10 0 13쪽
177 외전 다섯 번째 용사8 24.03.27 11 0 16쪽
176 외전 다섯 번째 용사7 24.03.25 13 0 28쪽
175 외전 다섯 번째 용사6 24.03.20 11 0 21쪽
174 외전 다섯 번째 용사5 24.03.18 10 0 20쪽
173 외전 다섯 번째 용사4 24.03.15 13 0 19쪽
172 외전 다섯 번째 용사3 24.03.13 12 0 18쪽
171 외전 다섯 번째 용사2 24.03.13 10 0 14쪽
170 외전 다섯 번째 용사1 24.03.08 10 0 13쪽
169 146화 십강 사무엘 24.03.06 17 0 25쪽
168 145화 십강 사무엘 24.03.04 16 0 17쪽
167 144화 십강 사무엘 24.03.01 11 0 2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