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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이 의 서재입니다.

실직한 마왕성 문지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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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이
작품등록일 :
2022.10.26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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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9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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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화 사막의 나라

DUMMY

148화 <사막의 나라>



주위를 걸어 다니는 발소리.

수많은 사람이 다른 이유로 내뱉는 숨결들.

두 파벌의 기뻐하는 목소리와 슬퍼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누군가의 웃음과 또 누군가의 울음이 있었다.

캣니스는 아주 오래전에 겪어본 아득한 기억이 떠올랐다. 오래전 혼자 다니던 시절이 떠오르는 소리였다.


‘여기는······?’


캣니스는 몽롱하던 정신을 깨웠다.

천천히 몸을 바로 세웠다.


철컥-


몸 아래서 당겨지는 힘이 있었다.

손과 발 그리고 목에 답답한 구속구를 차고 있었다.

손은 밧줄로 묶은 게 느껴지고 발목은 사슬로 이어진 족쇄다. 또 목에는 족쇄와 비슷한 형식의 쇠 목줄을 차고 있었다.

굳이 눈 뜨고 보지 않아도 촉감으로 알 수 있는 사실들.


“이건 좋지 못한데요···.”


미간에 작은 골이 파였다.

눈꺼풀을 열었는데도 주위는 여전히 어두웠다.

아무래도 눈가리개를 씌워둔 모양이었다.

무엇 하나 편히 넘기지 않은 모습에 입꼬리가 삐뚜름하게 올라갔다.


“기절한 사람을 두고 철저하네요.”


천천히 제 상태와 주변 환경을 점검해 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최악이다.

마석을 삼킨 몸 상태는 끔찍하고, 주변에서 들리는 난폭한 소리로 보아 인신매매 굴에 납치된 모양이다.

심지어 사방이 탁 트인 공간이 분명했으니, 섣부르게 움직였다가는 도리어 험한 꼴 당할 수 있었다.


‘이런 실수를 저지른 게 얼마 만인지.’


캣니스는 입에서 비릿한 피 맛을 느꼈다.

본인의 실책으로 낭패를 보는 건 오랜만이었다.

바솔루트에게 당한 일은 누군가를 구하려다 겪은 참사였으니. 그걸 제외하면 십 년도 넘는 먼일이다.


‘그때는 선생님이 찾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렸는데.’


어렸을 적과 비교하면 지금 상황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

아홉 살 때는 광신도에게 붙잡혔는데, 그때는 산 제물이라는 명목으로 온몸에 피를 뺐다.

지금은 제힘을 어떻게 사용할지도 모르던 시절과 다르게, 어떻게 힘을 이용하는지 안다.

산 제물로 바쳐져 죽을 걱정도 없고, 구출하러 올 동료도 있으니, 불안해할 필요는 없었다.


“그나저나 정말 많이 약해졌네요···.”


무거운 몸으로 무릎을 끌어당겨 앉았다.

다행히 마차에서 떨어질 때 부러진 목은 전부 나았다.

자연치유 가능성 적으니, 아무래도 상품으로 써먹기 위해 치료해 준 모양이다.

침착하게 몸 안에 남은 신성력 크기를 확인했다.


‘여전히 적어.’


몸 안의 신성력을 확인하고 쓰게 웃었다.

십강과의 대련에서 점멸 몇 번 쓴 일로 신성력이 바닥났다.

그때로부터 별로 나아진 점이 없다.

아쿠아에게 꾸중과 함께 치료받았는데도, 좀처럼 몸이 원상복구 될 생각이 없는 나약한 상태다.

예전 같았으면 조금도 무리 될 게 없는 기술이기에, 조금 억울한 감도 있었다.


“후우. 이 모습을 선생님께 들키면 꾸중 들을지도 모르겠네요.”


무엇보다 안타까운 점은 약해진 몸 상태가 아직도 체감 안 된다는 점이다.

힘의 격차가 어느 수준까지 떨어졌는지 가늠하는 것만 벌써 몇 개월째다.

아무리 약해졌다는 사실을 인지해도 이해와 활용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였기에.

앞으로 비슷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또 좌절했다.


“커흡. 쿨럭. 아. 또 시작인가요···.”


이때, 캣니스는 목에서 올라오는 비릿한 피 냄새를 맡았다.

현재 심장이 본인의 심장이 아니어서 가끔 이런다.

서서히 오르는 열에 식은땀을 흘렸다.

발작이 일어날 때면 아쿠아에게 도움을 받았는데, 지금은 혼자서 해결해야 했다.


“아. 왠지 오늘은 더 아픈 거 같은···”


새우등처럼 몸을 말았다.

마석을 삼킨 후유증이 문제가 되려는지, 가슴에 통증이 일어났다.


“으. 으으으윽-!”


점점 가쁘게 뛰는 가슴 언저리에 힘을 줬다.

심장이 불타는 것만 같았다.

마기가 서서히 전신으로 뻗어갔다.

네임드 마물의 심장이 마석과 공명했다.


“아아아악-!”


혈관이 꼬이고 실핏줄이 터져나간다.

코와 입에서 홍수처럼 피가 쏟아져 내린다.

지금껏 일어났던 발작 중에서 제일 심각한 상태였다.


“흐악. 아흑. 흐아아윽!”


새빨간 세상에서 몇 번이고 비명을 내질렀다.

고통을 참기 위해 이를 사리물었다.

그렇게 인내의 시간이 이어진 지 얼마나 되었을까.


“----------!”


눈가리개 바깥에서 발소리와 말소리가 다급하게 다가왔다.

창살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

“--------!!”

“으읍-!”


캣니스는 강제로 입이 벌려지고 무언가를 삼켰다.

비릿한 향기가 목을 타고 넘어가고. 이내 구토감이 몰려왔다.


“우욱! 우윽! 우우욱···!”


어지러운 정신 속에서 몇 번이고 구토했다.

한참을 토하고 나서야 심장과 혈관이 불타오르던 통증이 잠잠해졌다.


“옮겨라. 씻겨서 판매할 준······”


대장격인 남자의 목소리가 마두크의 언어로 명령했다.

캣니스는 지쳐서 그에게 따져들 기운도 없었다.

얌전히 눈가리개 속 눈꺼풀을 내렸다. 그동안 그들은 그녀를 들고 어딘가로 이동했다.



*****



“우으. 수치스러워요.”


캣니스는 얼굴을 감쌌다.

누군가에게 부끄러운 얼굴을 보일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았다.

이곳은 입구의 불빛과 달빛이 전부인 철창 안이었다.

현재 두 눈으로 확인하였으니 틀릴 리 없었다.


“선생님이 봤으면 분명 혼냈을 거예요···.”


아무도 보는 이 없는 곳에서 머리를 감쌌다.

한 번도 아니고 무려 두 번이나 악인의 손에 정신을 잃었음에 낙담했다.

이러한 실수는 어린 제자들도 하지 않을 일이다.

몰려오는 수치심에 몸부림쳤다.


“그래도 이건 다행이네요···.”


캣니스는 몸부림을 멈추고 바닥에 누웠다.

손목이 가볍다. 아직 몸에 남은 쇠목줄과 족쇄도 훨씬 가벼운 소재로 바뀌었다.

코앞에서 죽을 뻔한 일을 보고 알아서 배려한 모양이다.

사막 강도들이 자신을 나약한 사제 취급해서 정말로 다행이었다.

이로 하여금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해졌다.


“시간이 많지 않을 테니 움직여야겠죠.”


누워있던 자세에서 바로 앉았다.

안대가 사라진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체계적으로 활동하는 강도 소굴답게 납치한 인간을 팔기까지 속전속결일 터다.

길어야 반나절. 당장 날이 밝으면 본격적으로 판매 준비에 나설 게 분명했다.


“일단 마석은 전부 게워 낸 거 같고요.”


여신의 무구나 돼서 정신을 잃은 건 부끄러운 일이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하지 않다.

고통이 있으면 수확도 있는 법.

몸 안에 있던 마석의 잔여물을 빼낸 건 긍정적인 성과이다.


‘호문쿨루스의 심장에 대해 한 가지 알아낸 사실도 나쁘지 않고.’


심장 위에 손을 얹었다.

한때 가람왕국을 집어삼키려던 마물의 심장이 아직 몸 안에 남아있다.

그동안 노력해서 삼분의 일 정도는 인간의 심장으로 복구했지만, 남은 절반 이상은 여전히 마물의 심장이다.


‘마석을 삼키자마자 이런 반응이 일어나다니요.’


가벼운 팔을 하늘 높이 뻗었다.

달빛으로 비춘 팔에는 새까만 멍이 있었다.

이는 마석을 삼키고 나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심장이 이런 동안에는 마족화의 전조가 쉽게 나타났다.


“조심해야겠어요. 자칫 잘못하다가는 몸을 빼앗길 테니까요.”


새까맣게 물든 팔을 천천히 내렸다.

이번에는 마족화 직전에 그쳤지만, 다음에는 모른다.

이 일로 크나큰 경각심을 느끼고 주의하기로 했다.

하급 마석이 이 정도면 중급 이상의 마석은 어떨지. 상상만 해도 식은땀이 흘렀다.


“후우. 정신 차려요. 정신 차리세요, 캣니스.”


스스로 뺨을 쳤다.

일단 심장에 관한 문제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지금 중요한 건 다른 부분이다.

규모와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사막 강도들의 소굴 안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몸 안의 신성력은 골절 수준의 정화, 근력이 생기는 축복, 점멸은 세 번도 아슬아슬한 수준이네요.”


탈출하기 위해서 몇 가지 상황을 파악했다.

모두를 구하기는커녕 제 몸조차 간수 할 수 있을지조차 의심 가는 힘이지만, 해내야 한다.

이곳을 나가서 동료에게 돌아가기 위한 준비 작업을 시작했다.


‘긍정적인 여건 하나. 다행히 일반 구속구를 채워놨어.’


발목에 찬 족쇄를 들어 보였다.

마도구가 아니라서 쉽게 끊을 수 있는 소재였다.


‘둘. 이제 곧 날이 밝을 거야.’


밤이 두 번 찾아왔을 리는 없으니, 하루가 다 지나지 않았다.

날이 밝는다는 건 곧, 사막을 횡당하는 게 가능하다는 소리다.


‘셋. 이곳에 있는 게 나뿐만이 아니라는 점이네.’


주변을 둘러봤다.

제대로 외형을 알아볼 순 없어도 많은 사람이 이곳에 갇혀있었다.

각각 쇠창살로 분리된 감옥 안에는 적어도 수십 명의 사람이 수용되어 있었다.


“게이트 스크롤까지 사용할 정도면 정말 무시 못 할 규모로 활동하는 조직이겠네요.”


많은 피해자로 알 수 있는 사실은 조직의 규모가 상상 이상으로 크다는 것.

이 조건들을 잘 저울질 하여 탈출해야 한다.


‘그렇다면 역시 최선의 방안은···’


캣니스는 고개 들었다.

이곳에는 밤새도록 감시하는 간수가 없다.

잠깐씩 경비가 찾아와서 등불로 도망친 피해자가 없는지 한 번 살펴보고 간다.

그로 인해 이곳이 쉽게 탈출할 수 없는 적진 한가운데에 있을 거라는 예상이 되었다.


“역시 도움을 청하는 게 가장 안전한 방법이겠죠.”


방안을 정했다.

예전에 비슷한 일이 많기에 어렵지 않게 생각했다.

내 힘이 부족하다면 주변에서 가져온다.

강도 모두를 상대할 수 있는 강자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제일 좋은 경우는 동행자가 찾아오는 일이지만, 아직 소식이 없는 걸 보아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간 모양이니 제외한다.


‘여기 있는 사람 중에서 찾아야 해.’


이 정도 규모의 범죄 조직이라면 그녀가 찾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 그런 낌새가 이곳에 있었다.


‘마력 제어기구를 찾자.’


흔히 특상품이라고 불리는 인물들.

마법사나 마나를 다룰 줄 아는 실력자를 찾아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만에 하나의 가능성을 없애야 한다.

천천히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캣니스. 할 수 있어. 의심하지 마. 분명히 얕보고 있을 거야.’


캣니스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부디 예전만큼이나 이 방법이 잘 먹히기를 기도하였다.



*****



“꺄아아아악!”


감옥 안에 새된 비명이 가득 찼다.

무언가 큰일을 겪은 사람 같은 비명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한 사람이 감옥 입구로 들어왔다.

감옥 앞 불침번을 서던 경비였다.


“아씨, 또 저거야?”


남자는 투박한 마두크의 억양으로 말하였다.

그 외에 사람은 없었다. 감옥 앞에 최소한의 경비만 둔 모양이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여기가 어디예요? 제발 집으로 돌려보내 주세요! 꺄악!”

“이게! 가만히 안 있어!”

“꺄아아악!”


남자는 몽둥이를 들었다.

쇠창살을 마구잡이로 두드렸다.

보통 수감자라면 위협적인 행동에 겁먹어서 뒤로 물러날 터였다.

하지만 캣니스는 더욱 혼란에 빠진 것처럼 보이게 하였다.

비명 지르면서 창살 사이로 팔을 뻗었다. 제발 여기서 빼내 달라는 듯이 애원했다.

그런 그녀를 조용히 시키기 위해 더욱 거칠게 몽둥이로 위협을 가했다.

끝내 위협만으로 안 되니 머리카락을 잡았고, 그때 캣니스는 남자의 팔에 손이 닿았다.


끼이이익-


이윽고 수감자 혼자 남았다.

캣니스는 쇠로 된 창살을 아무렇지 않게 벌렸다.

벌린 쇠창살 틈으로 밖으로 나왔다.


‘시간은 충분해.’


이곳을 들린 감시자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녀 혼자서 심호흡하고 눈을 감았다가 떴다.


‘있어. 안쪽이야.’


조금 전 본 광경과 사뭇 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시야가 일반인들이 보지 못할 흐름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공중에 떠다니는 마나의 흐름을 읽었다.

공중의 마나는 한 곳에 정체되어 있다.

이는 마력 제어기구의 효과였다.

실력자를 납치한 뒤 탈출하지 못하게 묶어둔 흔적이었다.


‘수가 꽤 많아!’


캣니스는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수감자들에게는 불행한 일이지만, 지금 캣니스에게는 다행인 일이었다.

마나를 다룰 줄 아는 이와 다루지 못하는 이의 전력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기에.

지금까지 저들은 강도의 상품에 불과했지만, 지금부터는 훌륭한 아군이 되어줄 수 있는 예비 전력이다.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리겠어.’


불안하던 가능성에 확신이 생긴다.

이렇게 되면 오히려 그녀가 동행자를 찾아가야 할 판이다.


‘우선 장막부터 펼치고···.’


벽에 손을 갖다 댔다.

모습을 감출 수는 없지만 목소리 정도는 없앨 힘이 되었다.

투명한 막이 잘 깔린 것을 확인하고 만족하며 걸어갔다.


“어이, 너?!”


그때, 감옥을 감시하던 감시자는 한 사람이 아니었다.

먼저 온 사람이 돌아올 생각이 없자, 감시자 한 명이 더 찾아왔다.


“멸[滅].”


그러나 문제는 없었다.

캣니스는 또 한 명의 간수를 지나갔다.

한순간 남자의 몸에서 빛이 나더니 증발했다. 옷가지만 남아서 바닥에 떨어졌다.


“벌써 두 명째. 서둘러야겠네요.”


캣니스는 흐르는 코피를 막았다.

또 누가 올지 모르니 서둘러서 마나가 정체된 장소로 갔다.

수많은 수감자가 있는 감옥 중에서 하나를 골라 앞에 섰다.

상당한 양의 마나가 정체된 감옥이었다.


“저기요. 신자님.”


캣니스가 부르자 어둠 속의 형체가 움찔 몸을 떨었다.

어둠 너머에서 시선을 느꼈다.


“제 이름은 캣니스 센츄어리예요. 혹시 말할 수 있나요?”


묵묵부답.

답이 없는 상황이 한참 동안 지속됐다.

캣니스는 잠깐 고민하다가 한 번 더 입을 열었다.


“제 말에 긍정이면 사슬을 당겨 소리 내세요. 부정이면 두 번 소리 내시고요.”


절그럭.


다행히 긍정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다행이에요. 혹시 말할 수 없는 상황인가요?”


절그럭.


“구속 때문인가요? 아니면 간수들이 들을까 봐 그래요?”


절그럭 절그럭.


“아. 죄송해요. 다시 물을게요. 몸 상태나 구속 때문에 말할 수 없는 상황인가요?”


절그럭 절그럭.


“그러면 간수들이 들을까 봐 목소리를 안 내는 거예요?”


절그럭.


캣니스는 화색이 됐다.

다행히 말할 수 있을 정도의 기력이 남았단 뜻이었다.


“제가 장막을 펼쳐뒀으니 편히 이야기해 주시겠어요?”


절그···럭?


조금 전과 다르게 쇠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다가 말았다.


“그건, 무슨 말이지?”

“아. 대답해 주셔서 감사해요.”


처음으로 수감자가 대답했다.

캣니스는 창살 앞으로 가까이 갔다.


“방금 들으신 대로예요. 제가 장막을 펼쳐 놨으니, 이쪽의 대화는 새어나가지 않을 거예요.”


묻는 말에 바로 답변했다.

그러자 감옥 안의 목소리가 한참 동안 침묵했다.


“지금··· 그 말을 믿으라는 거냐? 행색을 보면 너도 끌려온 사람 같은데 장막을 펼쳤다고?”

“아. 밤눈이 밝으시군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제 모습을 살펴보면 알 수 있을 거예요.”


캣니스는 수감자가 잘 볼 수 있도록 양팔 벌렸다.

빙그르. 한바퀴 돌았다.


“그렇군. 실력자였나? 어려 보이게 소녀로 변장하다니, 제법······”

“그런 게 아니에요! 제 모습 어디가 어려 보인다는 거예요!”


좋게 대화 나누던 일도 잠시. 목소리가 커졌다.

그러자 캣니스도 수감자도 대화를 멈췄다.

큰 소리로 말했는데도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자, 둘 다 머쓱해진 얼굴로 사과했다.


“미안하다. 많아야 열여섯 정도로 생각했다. 장막을 펼치는 실력자가 나보다 연장자인 게 당연한데, 멍청하게 실언하고 말았군.”


다만 남자의 사과는 감정 해소에 도움이 못 됐다.

캣니스는 서러운 마음에 입술을 꽉 씹었다가, 가까스로 평정심을 되찾았다.


“크흠. 칭찬으로 들을게요. 그보다 무슨 일로 이곳에 왔는지 알려줄 수 있나요?”

“나는 사막 용병단의 리더였다. 그런데 내 자리를 노리던 부하 놈이 함정을 파서 이렇게 만들었군.”

“용병단의 대장이었군요. 그러면 실력에 자신이 있겠네요?”

“물론이다. 여기에 잡혀 온 일도 식량과 이동 수단을 빼앗긴 채 사막에 버려져서 그랬다. 원래 상태였다면, 저것들 백 명이 와도 내게 상처 하나 내지 못하지.”

“백 명이요? 신자님을 무시하는 건 아닌데 너무 과장되게 말씀하시는 거 아닌가요?”

“백 명이 과장됐다고? 하하. 그렇군. 너는 이곳 사람이 아닌가 보지?”


이곳 사람이 아니다.

정확하게 타지역에서 건너왔다는 사실을 꿰뚫어 보았다.


“이 사막의 나라에서 어중이떠중이들은 용병 간판도 못 내밀고 죽는다. 이것이 마두크의 풍습이며 영원히 이어갈 명맥인. 강자만이 살아남는 무구한 전통이다.”


용병의 말은 한마디 한마디가 자신감에 차 있다.

자만에 빠져 하는 말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손발이 저릿저릿한 기운이 담겼다.


“좋아요. 그러면 신자님께 제안할게요. 저와 함께 이곳을 나갈 생각이 있나요?”


구름이 걷히고 달빛이 기운다. 창틈으로 흘러들어온 달빛이 어둠 한곳을 비췄다.

그곳에는 세월의 흔적이 있으면서도, 험난한 생사를 해쳐온 지혜와 강인함이 담긴 얼굴이 있었다.

한때 용병단의 리더였던 용병은 씨익, 미소를 만개했다.


“전사의 명예를 걸고 맹세하지. 만약 나를 치료해 준다면 이딴 곳 열 개든 백 개든 부숴주마!”


자신감이 넘치는 포부를 뱉었다.

그 말에 캣니스는 웃음으로 답해줬다.


“좋아요. 함께 이곳을 뒤집어봐요.”


드드드드득.


창살을 넓혀서 들어갔다.

게르드와 게이로드와 견줘도 작지 않은 체구인 용병 앞에 섰다.

손과 발 그리고 목에 묶여있는 마도구에 신성력을 주입하였다.

철컹. 구속이 풀렸다.


“흥! 마도구가 풀렸으니, 놈들이 몰려올 거다. 어서 빨리 나를 치료해라. 사제.”

“치료가 끝나면 저는 다른 사람들을 더 구출하겠어요. 부디 강도들이 이쪽을 신경 못 쓰게 날뛰어 주세요.”

“크하하! 나를 미끼로 양동작전을 펼치는 건가? 좋지! 정말 오랜만에 피 맛을 보겠군!”


황금빛 신성력이 몸을 치료하였다.

다음에는 붉은색 기운이 용병의 온몸에 넘실거렸다.


“정말로 실력자셨군요?”

“이 정도면 됐다. 너는 너의 할 일을 하라, 사제.”


육중한 거구가 일어섰다. 근육과 뼈가 가동하며 뿌드득 소리가 났다.

근육을 짜내는데 돌이 부서지는 듯한 소리가 나는 게 신기했다.


“전부. 각오해라!”


쾅, 소리를 내며 철창 밖으로 날아갔다.

용병 대장이 지나간 감옥 바닥은 물론이고 쇠창살도 엉망이 되었다.

입구에서부터 달려온 사막 강도들이 그에게 휩쓸려서 시야에서 사라졌다.

자신 있게 뱉은 포부만큼이나 흰머리 짐승은 거칠게 날뛰었다.


“여기! 여기도 구해줘!”


순식간에 상황 파악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손길들이 있었다.

캣니스는 그런 목소리와 손길을 모두 무시했다.

수많은 목소리를 뒤로하고 감옥 깊은 곳으로 달려갔다.

우선순위를 착각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더 안쪽으로 가야 해.’


모두가 구해야 할 사람이지만, 당장 구해야 할 존재는 따로 있었다.

아무리 용병 대장이 강해도 한 사람만으로는 탈출하기 힘들다.


‘여기다!’


감옥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장소.

이곳만 쇠창살이 아닌 금고같이 생긴 철에 이중 삼중으로 잠겨 있었다.


“영-차!”


평범한 철이 아니다. 모두 마법 부여가 되어 있는 고급 철제다.

자연 상태의 마나를 소멸시킬 정도로 강한 마법이다.

하지만 못 풀 정도는 아니었다.

이번에는 캣니스도 조금 무리해서 코피가 흘러내렸다.

그래도 마도구를 전부 무력화하였다. 금고의 문을 열었다.


“누···구···?”


어둠 안쪽에서 들려온 건 여성의 목소리다.

하지만 이곳에 갇혀있는 만큼 평범한 피해자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바깥의 용병을 마도구만 채워서 쇠창살 안에 가둬둔 만큼, 온갖 마도구를 사용한 이쪽이 더 큰 거물이라고 확신했다.


“지금 이곳을 뒤엎으려고 하고 있어요. 부디 힘을 빌려주세요.”


철컹. 철컥.


바깥의 상황을 설명하면서도 착실히 손을 움직였다.

작은 체구인 여성을 구속한 마법 사슬을 해제했다.

어느새 얼굴에서 코피가 물처럼 쏟아지지만, 가볍게 닦아내며 구속을 풀었다.


“됐어요. 이제 치료할 테니. 치료가 끝나면 바깥으로···”

“아아아악!”


그런데 구출한 여성이 비명을 질렀다.

정화의 힘을 사용하던 캣니스는 화들짝 놀라서 손을 뗐다.

조금 전 힘을 사용한 손을 바라보고, 바닥에서 고통을 호소하는 여성도 바라봤다.


“아파. 아파. 아파. 아파···!”


바닥에 쓰러진 여성이 몸부림쳤다.

캣니스의 안색이 굳었다.

그녀도 제법 강도들의 생태에 관해 아는 바가 있었다.

희소성이 크면 클수록 비싼 값에 사람을 판다.

그래서 대부분 일생을 알프헤임에서 보내는 엘프가 귀하고, 그보다 더 희귀한 존재가 있다면 눈에 불을 켜고 수집한다.


“설마 당신은···”


하지만 아무리 수집욕에 미쳐도 이건 미친 짓이었다.

수집욕을 위해서 저지르기에는 너무나 위험한 행동이었다.


“흐윽. 내가 왜. 내가 왜 이런 꼴을 당해야 해···!”


캣니스는 신성력의 불빛으로 어둠을 밝혔다.

구속되어 있던 존재의 얼굴을 확인했다.

붉은 머리카락과 색이 보이지 않는 눈동자는 ‘그 종족’ 특유의 색과 거리가 멀다.

하지만 뾰족한 송곳니와 길쭉한 귀는 평범한 인간족이 아니다.

무엇보다 평범한 인족이 아니라고 확신하는 이유는, 정화의 힘을 고통으로 받아들이는 종족은 ‘그 종족’이 유일하다.


“마족.”


어떠한 전투 민족보다 호전적인 종족.

사막 강도들은 마족에게 목줄을 채워놓고 노예로 판매하려 하고 있었다.

이제는 그녀도 마족이 곁에 두기만 해도 불길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마족을 노예로 삼아 곁에 둔다니. 이러한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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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직한 마왕성 문지기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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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 152화 변하지 않는 24.04.15 6 0 13쪽
184 151화 사막의 나라 24.04.13 7 0 15쪽
183 150화 사막의 나라 24.04.10 8 0 17쪽
182 149화 사막의 나라 24.04.08 7 0 16쪽
» 148화 사막의 나라 24.04.05 7 0 21쪽
180 147화 사막의 나라 24.04.03 9 0 12쪽
179 외전 다섯 번째 용사 終 24.04.01 9 0 31쪽
178 외전 다섯 번째 용사9 24.03.29 9 0 13쪽
177 외전 다섯 번째 용사8 24.03.27 11 0 16쪽
176 외전 다섯 번째 용사7 24.03.25 11 0 28쪽
175 외전 다섯 번째 용사6 24.03.20 8 0 21쪽
174 외전 다섯 번째 용사5 24.03.18 8 0 20쪽
173 외전 다섯 번째 용사4 24.03.15 12 0 19쪽
172 외전 다섯 번째 용사3 24.03.13 11 0 18쪽
171 외전 다섯 번째 용사2 24.03.13 8 0 14쪽
170 외전 다섯 번째 용사1 24.03.08 9 0 13쪽
169 146화 십강 사무엘 24.03.06 8 0 25쪽
168 145화 십강 사무엘 24.03.04 9 0 17쪽
167 144화 십강 사무엘 24.03.01 10 0 20쪽
166 143화 십강 사무엘 24.02.28 13 0 12쪽
165 142화 십강[十强] 24.02.26 13 1 14쪽
164 141화 십강[十强] 24.02.23 13 0 21쪽
163 140화 십강[十强] 24.02.21 9 0 15쪽
162 139화 십강[十强] 24.02.19 8 0 17쪽
161 138화 십강[十强] 24.02.16 11 0 20쪽
160 137화 십강[十强] 24.02.14 8 0 15쪽
159 136화 떠도는 이야기와 장사꾼 24.02.12 8 0 15쪽
158 135화 떠도는 이야기와 장사꾼 24.02.05 12 0 18쪽
157 134화 떠도는 이야기와 장사꾼 24.02.02 12 0 27쪽
156 133화 떠도는 이야기와 장사꾼 24.01.31 11 0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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