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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이 의 서재입니다.

실직한 마왕성 문지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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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이
작품등록일 :
2022.10.26 12:21
최근연재일 :
2024.06.29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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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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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0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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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화 사막의 나라

DUMMY

150화 <사막의 나라>



“와아. 이건 정말 멋지네요.”


첨벙첨벙 물 쏟아지는 소리.

하얗고 뿌연 김이 사방에서 피어올랐다.

사막에서 흔치 않은 향락을 위한 공간이었다.

천장이 뻥 뚫린 실내에서 밤하늘을 볼 수 있는 실내 목욕탕이다.

이런 시설이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도시 근처에서 온천수를 끌어오기에 가능했다.

물의 순환과 온도 유지를 위해서 마력석이 빛난다.

밤하늘의 별은 불빛과 숨바꼭질하였다.

사막 한가운데에서 별하늘을 바라보며 온천욕을 즐기다니. 이렇게 멋진 경험은 흔치 않은 일이다.

마두크의 첫 도시, 라부.

첫인상은 괜찮은 편이었다.


“사막 옆에 우림이 있고. 또 온천수도 나온다니 라부는 정말로 신비한 도시네요.”


캣니스는 돌 위에 앉았다.

끊임없이 뜨거운 물이 나오는 온천수에 발을 담갔다.

전신으로 열이 퍼지는 감각에 전율했다.

전날 밤부터 쌓인 피로가 풀리니까 바보 같은 미소가 나왔다.


“녹아내릴 거 같아요···.”


이윽고 아예 몸 전체를 물에 담갔다.

노곤한 얼굴로 점점 키가 줄어들더니, 급기야 눈만 남긴 채 물속으로 들어갔다.


“와. 뭐야? 목욕탕이라더니, 여기 왜 이렇게 넓어?”


아치형 입구에서 또 한 사람이 들어왔다.

금빛 머리카락과 녹색 눈동자. 아쿠아 센츄어리였다.


“보글보글. 보글보글. 보글보글보글.”

“캣니스. 인어도 물속에서 말하진 않아.”

“보글보글- 푸하! 어서 오세요, 아쿠아 님!”

“그래. 무사해 보여서 다행이야.”


캣니스가 아쿠아와 인사한 건 이틀만이었다.

아침 해가 밝고 사막 강도들의 소굴에서 나갔다. 나름 서두른 게 밤이 돼서야 도시에 도착했다.

밤에 도착하다 보니 일행과 인사하는 일보다 흙투성이인 몸을 씻는 일이 간절했다.

그래서 먼저 몸을 씻을 수 있는 목욕물을 요청하였다.

이를 놓치지 않은 영주가 목욕탕을 자랑하였다.

목욕탕이 목욕탕이지. 뭐가 특별한가 싶었는데.

천연 온천을 개조한 목욕탕에 몸 담근 현재에 다다랐다.


“와. 이거는 진짜로 장난 아닌데?”


캣니스도, 아쿠아도 만족스러웠다.

확실히 이런 목욕탕이 있으면 누구에게나 자랑할만했다.

머릿속에 한 가지 공통된 생각이 떠올랐다.

셀레브리디 교단의 대신전에도 이런 목욕탕이 하나 생겼으면 좋겠다. 그러면 자주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있을 텐데.

행복한 소망을 꿈꾼 두 사람은, 거대한 목욕탕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앉았다.


“으아. 죽인다-”


아쿠아의 입에서 감탄하는 숨결이 나왔다.


“보글보글보글.”


캣니스도 감탄사를 끊이지 않았다.

그렇게 목욕탕에 앉은 지 꽤 시간이 지나갔다.

맨 처음 웃고 떠들고 감탄하던 시간이 흘러가고, 어느 순간부터 두 사람은 별하늘만 쳐다보았다.

조용히 휴식을 음미하였다. 굳이 고요함을 흐리지 않고 용건이 있을 때만 말하였다.


“이런 장소를 몰랐으면 평생 후회할뻔했네~”


아쿠아가 말하고 캣니스는 긍정했다.

확실히 이런 경험을 모르면 평생 손해 보는 삶이다.


“캣니스. 너는 후회하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을 다 하고 살아~ 알았지?”


아쿠아는 뜬금없이 어른의 조언이라는 걸 하였다.

이에 캣니스는 답변하지 않았다. 대신에 많은 감정이 담긴 눈빛을 보냈다.

누가 누구에게 조언하는 걸까, 하는 눈빛.

그러나 눈빛은 닿지 않았다. 아쿠아의 시선이 하늘에서 내려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핀잔주기를 포기하고 물속으로 잠수하였다.


“푸하!”


캣니스는 넓은 목욕탕을 유영하였다. 오 분 넘게 유영하고 나서야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물 밖으로 나와서 물에 젖은 개처럼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이내 물 먹은 머리카락을 꽉 짜내고, 아쿠아의 옆으로 다가갔다.


“아쿠아 님. 혹시 지금 일을 부탁드려도 괜찮을까요?”

“부탁? 아. 그거? 해줄게. 뒤돌아서 앉아.”


두 사람은 평소의 일에 관해 이야기하였다.

서로 이야기가 통한 상태로 한 사람의 등을 마주 보며 앉았다.

아쿠아는 캣니스의 작은 몸 위로 손바닥을 올렸다.

짧게 기도하자, 맞닿은 신체를 따라서 신성력이 흘러갔다.


“분명 무리하지 말라고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말이야. 어떻게 귀신같이 이런 일에 엮이지?”

“그러게요. 운이 나빴어요.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괜찮은 느낌이에요.”

“이걸 멍청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긍정적이라고 해야 할까. 너의 그 봉사 정신은 날개들도 혀를 내두를 거야.”

“날개에는 알렉산드로스 선생님을 포함한 건가요?”

“음. 포함해서 맞아. 적어도 그 사람은 너처럼 무리하지 않거든.”

“그것도 그러네요. 선생님은 무리하지 않으시죠.”

“무리는 너랑 내가 자주 하지.”

“아쿠아 님은 무리의 기준이 낮아서 그렇지만요.”


두 사람은 서로 통하는 이야기에 웃음을 터트렸다.

비슷한 환경에 있지 않는다면 공감하기 어려울 주제였다.

셀레브리디 교단과 열한 명의 팔라딘.

이 도시에서 그들을 수닷거리로 삼을 수 있는 두 사람뿐이었다.


“자. 이제 물에서 나가자. 여기 목욕은 향유를 바르고 씻어 내는 모양이야.”

“그래요? 그런 걸 어떻게 알아요?”

“그야 어제 이곳 사람들에게 시중받았으니까. 여기만큼 좋지는 않지만 나쁘지 않은 목욕이었어.”


아쿠아는 병에 담긴 기름을 들고 자랑스럽게 가슴을 내밀었다.

이를 보는 캣니스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렇군요. 제가 험한 일을 당하는 동안 목욕시중을 받았나 봐요?”

“그럼 그럼. 얼마나 좋았는데. 떠받들어지는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 새삼 알겠더라고.”

“그래도 그렇게 자랑하듯 말하는 건 밉네요. 저는 정말로 험한 일을 당했다고요.”

“캣니스. 원래 산 사람은 살고 죽은 사람은 잊는 법이야. 나중에 내가 비슷한 일을 겪으면 너도 그냥 편하게 잊고 살아.”

“알겠어요. 저는 그러지 않고 싶지만, 아쿠아 님이 미워서라도 그럴게요.”


아쿠아는 한 번 더 웃음을 터트렸다.

따로 향유를 씻어 내는 장소로 갔다. 향유가 담긴 병을 들었다.

향기 나는 기름을 손 위로 가득 부었다. 그걸로 상대의 몸에 바르려고 손 뻗었다.


“설마 사막 옆에서 이런 사치스러운 공간이 있을 줄은 몰랐군.”


그때였다.

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남성의 목소리.

브레드 머슬릿의 목소리를 듣고, 두 사람 모두 움직임을 멈췄다.


“달링. 오늘은 특별히 서비스 해줄게. 나랑 같이 씻자.”


이어서 또 하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캣니스와 아쿠아는 경악했다.

벽 하나를 두고 동료들이 있었다. 브레드와 릴리트가 같은 목욕탕에 들어간 상황이다.


“잠깐! 뭐 하는 거야! 부, 부끄럽지도 않아?! 버, 벗은 몸으로 그렇게 달라붙는 게?!”


심지어 아직 놀랄 일이 더 있었다.

일행 중 마지막 여성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브레드와 릴리트 그리고 라나.

세 사람이 같은 목욕탕에 들어갔다.


“부끄럽다니? 어느 부분이? 이미 너도 달링이랑 물고 빨고 다 했으면서 이상한 소리 하네?”

“그, 그거랑 지금은 사정이 다르잖아! 지금은 몸을 씻는 시간인데 그렇게 달라붙으면···.”

“흥. 순진한 척하기는. 너도 음습한 마음을 품고 들어온 오잖아?”

“나, 나는 언니가 이상한 짓 못 하게 감시하러 온 거거든!”

“그래? 그러면 확실히 말해줄게. 이상한 짓 할 거니까. 지금이라도 옆으로 넘어가도록 해.”


치정 싸움이 담 너머에서 치러졌다.

그런데 정작 담벼락 너머에서 펼쳐지는 쟁탈전에 피해 보는 건 캣니스와 아쿠아였다.

손에 향유만 가득 담은 채 숨을 죽였다. 얼굴이 빨개져서 아무 말도 못 했다.

낯부끄러운 상황이 상상될수록 더욱 기척을 죽였다.


“라나. 네가 왜 그렇게 나를 견제하는지 알 거 같네? 그런 가슴을 달고 있으면 나라도 하루하루 불안할 거야.”

“하? 차이가 난다면 얼마나 난다고! 지금 싸우자는 거야? 싸우자는 거지? 좋아. 덤벼. 사천왕이고 나발이고 아주 곤죽으로 만들어 줄 테니까.”

“하여간에 가슴만큼이나 여성성도 작아서 싸움질밖에 못 하나 보지?”

“뭐? 이게 언니 취급해 주니까 내가 만만해 보여?”


거침없는 인신공격.

아쿠아는 담벼락 너머의 소리에 집중하다가 한숨 쉬었다.

난데없는 치정 싸움에 당황한 일도 잠깐이었다. 놀란 가슴을 진정하였다.

저쪽 일에 신경 끄고 향유 병의 마개를 다시 열었다.


“하여간에. 처음에는 얌전하다 싶더니만 결국 본색을 드러내네. 서큐버스라는 게 다 저렇지. 안 그래? 캣니···”


아쿠아가 캣니스에게 향유를 부어주려던 때였다.

아무렇지 않게 고개 돌리다가 흠칫 놀랐다.

바로 앞에서 캣니스의 표정이 어두웠다. 왠지 말을 걸 분위기가 아니었다.

무표정한 얼굴 밑으로 짙은 어둠이 엿보였다.


“여성성···.”


입에 담는 말은 이해하기 쉽지 않은 종류였다.

자꾸만 이상한 단어를 입에 담으며 본인의 흉부에 손을 올린다.

아쿠아는 얘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생각하였다.

곧 캣니스의 시선이 아쿠아의 흉부에 닿았다. 그제야 얘가 어디에 관심 가지는지를 눈치챘다.


“아. 미안···해···?”


어째서 이런 말을 하는 건지도 이해 없이 뱉은 말.

캣니스의 표정이 역대급으로 가라앉았다.


“아쿠아 님.”

“으응?”

“주세요. 제 몸은 제가 씻을게요.”


캣니스는 그리 말하며 향유 병을 가져갔다.

뽀득 뽀드득. 열심히 구석구석 씻었다.

누군가 이곳에 들리고 이 광경을 목격하면 그냥 열심히 씻는 아이라고 생각할 모습이다.

하지만 현재 아쿠아의 눈에는 약간 다르게 보였다.

울분을 삼킨 채, 마치 어서 방으로 돌아가 자고 싶다는 의사 표현 같았다.


“물로 씻으면 되죠?”

“어. 응. 맞아. 씻으면 돼.”


캣니스는 나무통을 하나 들고 일어섰다. 온천물을 한가득 퍼서 가져왔다.

아쿠아 바로 앞에서 머리 꼭대기부터 물을 쏟아부었다.

선 채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씻어 내서 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홀딱 젖은 생쥐 꼴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지난 움직임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 나무통을 내려두었다.


“먼저 나갈게요···.”


물기 하나 안 털고 홀딱 젖은 채로 걸어간다.

이곳에 미련 갖지 않은 채 혼자 출구로 향했다.


“꺄악! 어딜 만지는 거야?!”

“같은 여자끼리 웬 내숭? 목욕탕에 들어왔으면 당연히 다 벗어야지!”


그러다가 들려온 담벼락 너머의 목소리.

그쪽을 향한 캣니스의 표정이 여전히 어둡다. 심지어 미약하게 살기가 감돈다.


“뭐. 그래도 네가 하얀 사제보다는 큰 편이네?”

“걔랑 비교하는 건 그냥 욕 아니야?!”


뿌득, 이가 갈리는 소리가 났다.

한층 더 표정이 가라앉았다.

잠깐 얼굴에서 저질러 버릴까, 라는 고민이 엿보였다.


“캣니스···?”


다행히 살인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떠한 사건도 만들지 않고 목욕탕에서 나갔다.

아쿠아는 캣니스가 사라진 자리를 지켜봤다. 그리고 여전히 소란스러운 건너편의 목소리를 들었다.

끝없이 착잡한 기분으로 향유 병을 거꾸로 들었다.


“오늘은 캣니스 데리고, 최대한 먼 방에서 자야겠다.”


왠지 살인이 일어날 거 같은 밤.

같은 교인으로서 그건 막아야겠다는 의무감을 느낀 아쿠아였다.



*****



“게르드 님. 게이로드 님.”


캣니스가 영주의 저택을 돌아다니던 때였다.

한 나라의 궁전 부럽지 않게 거대한 저택 복도였다.

복도 너머에서 걸어오는 두 사람과 마주쳤다.

두 사람은 미스릴 모험가 게르드와 게이로드였다.

다른 목욕탕에서 나온 두 사람이었다.


“어머. 캣니스짱. 이제 나왔니?”


거대한 덩치와 음영이 진 얼굴.

이 나라의 개방적인 옷 아래로 각진 근육들이 엿보였다.


“방금 씻고 나왔어요.”

“숙소로 가는 길이니?”

“네. 찾아가는 길이에요.”


캣니스는 묻는 말에 성실히 대답했다.

그러다 두 사람의 모습을 빤히 바라봤다.

쌍둥이 모험가는 모두 같은 동료이고, 같은 숙소를 배정받았다.

하지만 지금 시간에 복도에서 마주친 건 우연이다.

그래서일까? 새삼 반가웠다.

조금 더 이야기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두 분도 막 목욕탕에서 나왔나요?”

“그럼. 오랜만에 온천욕을 즐기니 기분 좋더라~”

“이 아이들도 지쳐있던 터라 좋게 달래줄 수 있었어~”

“아이들이요?”

“여기. 이 아이들 말이야~”


쌍둥이 모험가는 근육이 돋보이는 자세를 취한다.

브레드와의 첫 만남이 연상되는 모습이다.

사실 그때가 아니더라도, 그들은 가끔 이런 식으로 근육을 부르곤 하였다.


“푸훗. 기쁘시다니 다행이에요.”


캣니스는 아직도 김이 나는 두 사람의 신체를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두 모험가의 음영 진 얼굴은 서로 마주 보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문지기님은요? 아직 목욕 중인가요?”

“가더 짱 말이야? 그 아이는 한참 전에 목욕하고 방으로 갔어~”

“같이 목욕하는데. 갑자기 화내면서 나가더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지만. 두 사람 다 입술을 핥으며 입맛 다신다.

분명히 두 모험가가 동행자의 성미를 건드렸다.

두 사람의 괴롭힘과 이번 일까지 가더에게 빚이 생겼다.

이에 대해 확실한 보상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캣니스였다.


“그래서 캣니스 짱. 아쿠아는 아직 목욕 중?”

“네. 하지만 이제 곧 나올 거예요.”

“그래? 고마워~ 우리는 가서 우리 공주님을 모셔 와야겠어~”


호위 역할을 이행하러 가는 두 사람.

캣니스는 길을 비켜주었다.


“좋은 밤 되세요. 두 분.”

“좋은 꿈 꾸렴. 캣니스짱~”

“우움- 쪽~ 내 꿈 꾸렴~”


밤 인사를 끝으로 각자 갈 길 갔다.

두 사람은 목욕탕으로, 한 사람은 맨 처음 안내받은 숙소로 향했다.

목욕탕에서 숙소까지 향하는 거리는 제법 멀었다.

분명 영주가 사는 저택인데 이 정도 규모면, 왕이 사는 궁전은 어느 규모일지 상상도 안 됐다.


“어? 그 이불은 저희 건가요? 제가 들고 갈게요.”


복도를 지나가던 중 누군가를 발견하고 종달걸음했다.

한 시종이 이불을 들고 있는 걸 보고 도왔다.

무거운 이불을 전부 들었다.

그러자 시종이 말없이 허리를 숙였다. 이 나라에서 표하는 감사 인사였다.

그 후, 시종은 발걸음을 돌려서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갔다.

복도에 캣니스 혼자 덩그러니 남았다.


“···알고 있었는데. 도저히 적응이 안 되네요.”


캣니스는 시종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시종의 입가에 그려진 문신. 혀가 잘린 노예라는 뜻이다.

아직도 노예제도를 시행하는 나라가 몇 있다. 그중 하나가 마두크라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그나저나. 설마 다 맡기고 가실 줄은 몰랐는데요···.”


캣니스는 고개 돌려서 앞을 보았다.

두 팔로 든 이불이 산을 이뤘다. 하얀 뭉치가 시야를 완전히 가로막았다.

만약 앞에 돌부리가 있다면 손쓸 새도 없이 엉망이 될 거다.

살짝 긴장하며 걸음을 옮겼다.


“영차. 안 넘어지도록 조심해야겠어요.”


제 키만큼이나 높이 쌓은 이불을 들고 숙소로 향했다.

길을 헤맬 때면 근처에 있는 시종에게 묻곤 했다.


“다음은 오른쪽이랬죠.”


저택이 워낙 넓고, 시야도 온전치 않아서 시간이 걸렸다.

그만큼 많은 도움을 받았다.

혀가 잘린 시종 둘. 귀가 잘린 시종 하나. 눈을 뽑힌 시종 하나. 다리가 망가진 시종 넷.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본 시종들의 수였다.

총 아홉 명의 시종을 보고 나서야 방 앞에 설 수 있었다.

몸이 불편한데도 불평 없이 일해 준 노고에 감사한 마음을 가졌다.


“문지기님. 문 열어주세요.”


똑똑.


나무 문을 두드렸다.

이곳 대부분 방에 문이 없지만 손님 방은 예외로 나무 문이 존재했다.

게르드와 게이로드의 말에 따르면 가더가 먼저 숙소로 돌아와 있을 거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답변이 없었다.

캣니스는 그가 아직 방에 없다고 생각했다.

어쩔 수 없이 한 팔의 균형감각 시험하며 문을 열었다.


“영차. 문지기님. 벌써 주무시는···”


그때였다.

캣니스는 방 안에 들어갔다가 제자리서 굳었다.

방 앞에 무릎 꿇은 가더가 있었다. 그 위에 발을 올린 마족 아이가 있었다.

얼핏 보기에는 권력자의 무자비한 체벌로 보이는 상황.


“지금 뭐 하세요···?”


이를 마주한 캣니스의 눈이 흔들렸다.

그제야 방 안의 두 사람도 캣니스를 바라봤다.


“아. 아니야! 나, 나는 그냥···.”


당황한 마족 아이가 냅다 소리 질렀다.

그런데 대체 이 상황에서 어디가 억울하다는 걸까?

누가 봐도 이쪽이 나쁜 짓을 하다가 들켰다. 하지만 마족 아이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 손을 불안하게 떨었다.


“내, 내가 아니야! 얘가 이러고 싶댔어!”


이어서 뱉은 말은 어처구니없는 종류였다.

그 가더가 무릎 꿇린 채 밟히고 싶다고 말한다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나, 나는 얘가 권해서 어쩔 수 없이 한 거야···!”


그런데도 어처구니없는 변명을 밀어붙인다.

변명이 이어지자 캣니스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아이의 마음속을 훤히 꿰뚫어 볼 듯한 눈으로 쳐다봤다.


“히꾹!”


아이가 지레 겁먹어서 딸꾹질했다.

입을 막으며 캣니스로부터 몇 걸음 멀어졌다. 뒷걸음치던 다리가 꼬여서 엉덩방아 찧었다.


“히꾹-!”


여전히 겁에 질린 얼굴로 올려다보는 아이.

그래도 캣니스는 아이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제 작품이 마음에 들었다면 추천과 좋아요 잊지마세요-!


작가의말


작가의 tmi: 사막의 나라 마두크는 하나의 수도와 열 두 개의 도시가 있다.


마두크(수도)와 가까운 순서대로- ‘티아맷’, ‘바슈무’, ‘우슘갈루’, ‘무슈마헤’, ‘무슈후슈’, ‘우갈루’, ‘우리딤무’, ‘기르타블리르’, ‘우무 다브루투’, ‘쿨툴루’, ‘쿠사릭쿠’, 라부 순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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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 152화 변하지 않는 24.04.15 6 0 13쪽
184 151화 사막의 나라 24.04.13 7 0 15쪽
» 150화 사막의 나라 24.04.10 8 0 17쪽
182 149화 사막의 나라 24.04.08 6 0 16쪽
181 148화 사막의 나라 24.04.05 6 0 21쪽
180 147화 사막의 나라 24.04.03 9 0 12쪽
179 외전 다섯 번째 용사 終 24.04.01 9 0 31쪽
178 외전 다섯 번째 용사9 24.03.29 9 0 13쪽
177 외전 다섯 번째 용사8 24.03.27 11 0 16쪽
176 외전 다섯 번째 용사7 24.03.25 11 0 28쪽
175 외전 다섯 번째 용사6 24.03.20 8 0 21쪽
174 외전 다섯 번째 용사5 24.03.18 8 0 20쪽
173 외전 다섯 번째 용사4 24.03.15 12 0 19쪽
172 외전 다섯 번째 용사3 24.03.13 11 0 18쪽
171 외전 다섯 번째 용사2 24.03.13 8 0 14쪽
170 외전 다섯 번째 용사1 24.03.08 9 0 13쪽
169 146화 십강 사무엘 24.03.06 8 0 25쪽
168 145화 십강 사무엘 24.03.04 9 0 17쪽
167 144화 십강 사무엘 24.03.01 10 0 20쪽
166 143화 십강 사무엘 24.02.28 13 0 12쪽
165 142화 십강[十强] 24.02.26 13 1 14쪽
164 141화 십강[十强] 24.02.23 13 0 21쪽
163 140화 십강[十强] 24.02.21 9 0 15쪽
162 139화 십강[十强] 24.02.19 8 0 17쪽
161 138화 십강[十强] 24.02.16 11 0 20쪽
160 137화 십강[十强] 24.02.14 8 0 15쪽
159 136화 떠도는 이야기와 장사꾼 24.02.12 8 0 15쪽
158 135화 떠도는 이야기와 장사꾼 24.02.05 12 0 18쪽
157 134화 떠도는 이야기와 장사꾼 24.02.02 12 0 27쪽
156 133화 떠도는 이야기와 장사꾼 24.01.31 11 0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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