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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온레인 님의 서재입니다.

달마묵장(達磨墨掌)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완결

이온레인
작품등록일 :
2017.07.01 18:52
최근연재일 :
2017.07.15 10:20
연재수 :
25 회
조회수 :
186,563
추천수 :
3,392
글자수 :
117,510

작성
17.07.10 12:57
조회
3,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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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글자
12쪽

제 16장 달아난 신부(新婦)

DUMMY

제 16장


달아난 신부(新婦)




“어쩜... 어쩜 이렇게 늠름해지셨을까? 그 귀엽던 아기가...”

“숙... 숙정 당신이 잘 먹이고 잘 키워준 덕분이지 뭐.”

“뭘... 제가 뭘 잘 먹여드렸는데요? 말씀해보세요.”

“이것저것... 어렸을 때는 젖을 먹여주었고 나중에는 다른 것도...!”


창문을 통해 들리는 난잡한 대화가 진상파의 귀에 천둥처럼 들렸다.

거친 숨소리와 함께 들리는 모용준과 구숙정의 대화를 통해 진상파는 여러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구숙정은 원래부터 제왕성 소속은 아니었다.

하남 모용세가 출신인 그녀는 모용준의 유모였으며 둘 사이에는 오래전부터 깊고 은밀한 관계가 이어져 오고 있었다.

모용준은 섭장천의 양자가 되어 제왕성으로 들어올 때 내연관계인 구숙정을 데리고 와서 내총관으로 앉혔던 것이다.


“어떻게... 절 어떻게 하실 거예요 도련님?”

“어...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내... 내일부터 진가년이 도련님의 공식적인 마누라잖아요. 그럼... 나이 들고 볼품없어진 저같은 년은 거들떠보지도 않으시겠지요?”

“그... 그럴 일 없어. 명목상으로는 진상파 그년이 내 본처라 해도... 제왕성의 실질적인 안주인은 숙정 당신이야. 난 절대 당신을 홀대하거나 버리지 않아.”

“고... 고마워요 도련님! 고마워요!”

“진... 진가년이 필요한 건 내 자식을 낳을 때까지야. 자... 자식이 생겨서 황금성을 공식적으로 집어삼킬 수 있게 되면 그년을 쥐도 새도 모르게 제 아비 곁으로 보내버릴 계획이야.”

“도... 도련님 말씀을 들으니 진가년이 불쌍하게까지 느껴지네요.”

“진... 진가년 생각은 그만하고 가능한 빨리 내 아이를... 내 자식을 낳아줘. 그... 그럼 그 아이로 제왕성의 후계자를 삼을 테니까.”

“노... 노력해볼게요 도련님.”


너무나도 엄청난 얘기를 듣다 보니 어느덧 현실감이 없어졌다.

진상파는 지금 자신이 듣고 경험하는 게 꿈속의 일인 것처럼 느껴졌다.


(짐승들!)


진상파는 이를 갈며 뒷걸음질로 일신재의 창문에서 떨어졌다.


(날 이용만 하고 없애버릴 생각이었다 이거지? 하지만 너희 년놈들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황금성의 동전 한 푼도 제왕성의 것이 되지 않을 테고...)


진상파는 꿈속을 걷는 듯 허우적거리는 걸음으로 일신재에서 멀어졌다.

자신들이 방금 전 치명적인 재앙을 야기했음을 알 리 없는 모용준과 구숙정의 몸부림은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었다.


* * *


밤이 아주 깊어 제왕성에 불이 켜진 건물이 드물다.

하지만 제왕성의 정문 일대는 여전히 대낮같이 환했다.

손님들을 태우고 왔던 마차들이 줄줄이 정문을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내일 있을 혼례식을 위해 무려 만 명이 넘는 하객이 제왕성을 찾아왔다.

제왕성이 아무리 규모가 커도 그 많은 하객을 모두 수용할 수는 없다.

그래서 비교적 가까운 곳에서 찾아온 하객들은 돌아갔다가 아침에 다시 오도록 권유를 받았다.

진상파는 제왕성을 빠져나가는 마차들 중 하나에 몸을 싣고 있었다.

마차의 주인은 무공을 익히지 않은 부유한 상인이어서 어렵지 않게 제압할 수 있었다.


(두고 보자! 두고 보자!)


혈도가 짚여 기절한 마차 주인 옆에 쪼그려 앉은 채 진상파는 가슴 속의 칼날을 벼리고 또 벼렸다.

얼마 전 일신재에서 엿들어 알게 된 추악한 비밀은 설령 죽어 재가 된다 해도 잊혀질 수 없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모용준이 황금성의 재물을 노리고 자신과 결혼을 하려했다는 사실은 도저히 용서가 안된다.


(가능한 빨리 집으로 돌아가자. 그나마 제왕성의 폭압으로부터 내 몸을 지킬 수 있는 곳은 집뿐이니...)


금릉(金陵)에 자리한 황금성까지의 거리가 너무도 멀게 느껴지는 진상파였다.


(모용준! 구숙정! 나 진상파를 적으로 돌린 게 얼마나 끔찍한 실수인지 알게 해줄 것이다.)


진상파는 초조한 마음을 살의와 분노로 다스리려 애썼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차는 천천히 제왕성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 * *


날이 채 밝기도 전에 제왕성은 발칵 뒤집혔다.

사대무력집단을 포함한 제왕성의 모든 무사들이 나서서 제왕성의 안팍을 수색하고 있었다.

어수선한 분위기에 일찍 깨어난 하객들에게는 거처에서 절대 나오지 말라는 살벌한 경고가 떨어졌다.


* * *


“지금 그걸 말이라고 씨부리는 것이냐?”


혈가람의 화등잔만한 눈에서 불이 뿜어졌다.


“오늘 혼례를 올리기로 되어있는 신부가 감쪽같이 사라졌는데 이유와 사정을 아는 놈이 한명도 없다는 게 말이 돼?”


혈가람이 불같이 화를 내고 있는 이유는 진상파가 사라진 것을 보고 받은 때문이다.

대청 안에는 외총관인 독검마유 궁무독을 비롯해서 여러 명의 나이 든 무사들이 굳은 표정으로 서있었다.

모용준은 오만상을 쓰며 상좌에 앉아있고 그의 뒤에는 구숙정이 병아리를 지키는 암탉같은 모습으로 서있다.


“고정하십시오 부성주님. 살천인조께서 본성의 사대무력집단 전부를 동원하여 수색에 나서셨으니 곧 상황 파악이 될 것입니다.”


궁무독이 혈가람의 격노를 갈아 앉히려 애쓰며 말했다.


“듣기 싫다.”


혈가람은 솥뚜껑만한 손을 거칠게 저으며 고함을 질렀다.

자존심이 상한 궁무독의 미간이 순간적으로 찡그려졌다.


“일이 터진 후에 수습하면 뭘 해? 이런 일이 애초에 벌어지지 않게 했어야지! 궁무독 너는 외총관 자리에 앉아있으면서 누가 제왕성을 들고 나는지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냐?”

“면목이 없습니다 부성주님.”


궁무독은 치미는 화를 억지로 누르며 고개를 숙였다.

어쨌든 자신이 큰 실수를 했음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이게 대체 무슨 개망신이냐 말이다. 제왕성이 소성주의 신부될 계집 하나 지키지 못했다는 소문이 퍼지면 세상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게 아니냐?”


혈가람의 질타에 할 말이 없는 궁무독과 무사들은 고개 떨군 채 듣고만 있었다.


“당장 진상파, 그 년을 찾아내서 끌고 와라! 그년을 찾지 못하면 단 한 놈도 살아서 돌아올 생각 말고!”


혈가람은 이를 바득 바득 갈면서 손을 저었다.


“존명!”

“진소저를 반드시 찾아서 데려오겠습니다.”


궁무독과 무사들은 일제히 포권을 한 후 대청을 빠져나갔다.

이제 대청에는 혈가람과 모용준, 구숙등 세 사람만이 남게 되었다.


“밥 버러지같은 놈들! 제왕성의 이름에 똥칠을 해도 유분수지.”


대청 밖으로 멀어지는 궁무독 일행의 뒷모습을 노려보며 혈가람은 황소처럼 씨근거렸다.


“상심이 되겠지만 너무 걱정하지는 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진가년을 붙잡아 와서 소성주의 품에 안겨줄 테니...”


그러다가 모용준을 돌아보는 혈가람의 얼굴에는 화색이 가득했다.

그걸 보며 모용준은 사람의 표정이 이렇게 갑자기 변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저야 대사님만 믿을 따름입니다.”


모용준은 억지로 웃으며 고개를 조금 숙였다.


“저 머저리들은 도무지 믿음이 안가. 노납이 직접 성을 나가서 진가년을 찾아보도록 하겠네.”


혈가람이 앉아있던 의자에서 벌떡 일어셨다.


“살천인조께서 나서셨는데 대사까지 수고하실 것까지야...”

“곧 좋은 소식 갖고 돌아오도록 하겠네.”


휘익!

모용준의 만류에도 혈가람은 바람같이 대청 밖으로 날아나갔다.


“저 땡중이 도련님께 잘 보이려고 갖은 재롱을 다 부리는군요.”


그 모습을 본 구숙정이 피식 웃었다.


“그래서 준걸(俊傑)인 게야.”


모용준도 비웃음을 흘렸다.


“준걸이라뇨? 중놈 주제에 살인을 밥 먹듯 하고 술과 계집에 환장하는 저 땡중이?”

“옛말에 시세(時勢)를 아는 자가 준걸이라고 했잖아. 저 땡중은 다음 대 천하의 주인이 나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거야.”

“옳거니! 준걸이라는 게 그런 뜻이었군요”

“황금성의 인간들은 뭐하고 있어?”

“진가년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우리보다 더 자지러지게 놀라더군요.”

“그렇다는 건 진상파를 황금성의 인간들이 빼돌린 건 아니라는 건데...”


모용준의 미간이 찡그려졌다.


“고독모모를 비롯해서 진가년의 호위들인 백팔금차 전원은 이미 본성을 빠져나가 수색을 하고 있어요. 그 때문에 지금은 황금성의 몇몇 늙은이들과 아랫것들만 성중에 남아있는 상태구요.”

“혹시 고독모모나 백팔금차가 진가년을 먼저 찾아내는 거 아니야?”

“그럴 일은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딱!

모용준의 우려 섞인 말에 대답하면서 구숙정은 천장을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반짝!

그러자 천장 구석에서 짐승의 눈 한 쌍이 반짝이며 나타났다.

휘익!

이어 천장에서 아래로 날듯이 뛰어내린 것은 한 마리의 담비였다.

특이하게도 온몸이 황금빛 털로 덮인 그 담비는 한 쌍의 눈은 붉은 핏빛이다.


“그놈은...!”


담비를 본 모용준의 눈이 이채를 띄었다.


“본교(本敎)의 영물인 섬전초(閃電貂)예요.”


구숙정은 금모적안(金毛赤眼)의 담비를 향해 두 손을 내밀었다.


끼이! 팟!


그러자 섬전초라 불린 담비는 가볍게 튀어올라 구숙정의 품에 안겼다.

원래 담비는 체격은 작아도 날래고 사납기 이를 데 없는 짐승이다.

그 담비들 중에서 우연히 천고영약을 먹어 수백 년을 살아온 영물이 섬전초다.

그놈은 호랑이도 어렵지 않게 잡아 죽이는 흉포함과 함께 빠르기가 번개같아서 섬전초라는 이름이 붙었다.


“혹시 몰라서 이놈을 데리고 왔는데 유용하게 써먹게 되는군요.”


구숙정은 자신의 품에 안긴 섬전초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하여간 유모의 준비성은 알아줘야한다니까.”

“이 아이는 빠르기가 번갯불 같을 뿐 아니라 후각이 사냥개들보다 몇 배 더 민감해요. 진가년의 냄새가 밴 물건만 있으면 그년이 어디에 있든 안내해줄 거예요.”


구속정은 말하며 옆을 돌아보았다.

모용준이 따라서 돌아보니 철위사대의 대주인 냉혈철심 사우가 대청 옆에 달린 쪽문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가져왔습니다 외총관님.”


다가와서 모용준에게 인사하는 사우의 두 손에는 몇 벌의 여자 옷이 들려있다.


“그 옷가지들은?”

“진가년이 입던 옷들이에요. 사(査)대주가 손을 써서 구해왔군요.”


구숙정은 섬전초의 얼굴을 사우가 내미는 옷가지에 대어주었다.

휘익!

코를 벌름거리며 옷가지에 배린 냄새를 맡던 섬전초는 이내 눈을 빛내며 구숙정의 품에서 뛰어내렸다.

바닥에 내려선 섬전초는 머리를 이리저리 돌려 냄새를 맡는 시늉을 했다.

휘익! 끼이!

그러다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빠르기로 대청에서 달려나갔다.


“발이 특히 빠른 자들을 데리고 섬전초를 따라가라. 진가년에게 안내해줄 것이다.”


구숙정이 재빨리 사우에게 지시했다.


“험하게 다뤄도 상관없으니 다른 인간들 보다 먼저 진가년을 찾아내서 끌고와라. 소성주님께 드리기 전에 내 손으로 단단히 교육을 시켜야하니까.”

“실망시켜드리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냉혈철심 사우는 대답과 함께 대청에서 날아갔다.

대청 밖에는 십여 명의 무사들이 모여 있었다. 모두 철위사들인데 경신술이 특기인 자들이다.


“따라와라!”


사우는 이미 상당히 멀리 간 섬전초를 따라서 날아가며 외쳤다.


“예 대주님.”

“가자!”


철위사들도 바람같이 몸을 날려 사우를 따라갔다.

곧 섬전초와 사우 일행은 제왕성을 빠져나갔다.

혼례를 앞두고 달아난 신부를 찾아내기 위한 추격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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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제 25장 달마독명안(達磨讀命眼), 운명을 읽는 힘! +4 17.07.15 3,130 45 11쪽
24 제 24장 영물(靈物)을 길들이는 법 +2 17.07.14 3,046 48 10쪽
23 제 23장 영물(靈物)을 잡는 법 +2 17.07.14 3,086 48 13쪽
22 제 22장 나타난 천마의 절기(絶技) +3 17.07.13 3,200 42 11쪽
21 제 21장 충격의 결말 +2 17.07.13 3,127 53 10쪽
20 제 20장 첫번째 실전(實戰) +4 17.07.12 3,125 45 13쪽
19 제 19장 쫓기는 미녀 +4 17.07.12 3,122 47 9쪽
18 제 18장 앙큼한 추적자 +2 17.07.11 3,105 42 11쪽
17 제 17장 만나다! +3 17.07.11 3,169 45 8쪽
» 제 16장 달아난 신부(新婦) +5 17.07.10 3,358 42 12쪽
15 제 15장 추악한 비밀 +4 17.07.10 3,235 39 11쪽
14 제 14장 파국의 전조 +4 17.07.09 3,351 46 12쪽
13 제 13장 결혼식 전야의 일막 +3 17.07.09 3,436 46 7쪽
12 제 12장 이상한 반지 +2 17.07.08 3,713 54 12쪽
11 제 11장 달마의 가죽신(達磨鞋)이 합쳐지면... +3 17.07.08 3,734 66 7쪽
10 제 10장 달마묵장의 전설 +2 17.07.05 3,801 62 12쪽
9 제 9장 대들보 위의 책 +3 17.07.04 3,748 59 12쪽
8 제 8장 오십 리를 간 후 돌아오라. +3 17.07.03 3,822 61 12쪽
7 제 7장 기인들의 제안 +3 17.07.03 3,893 59 11쪽
6 제 6장 흑백신귀 +3 17.07.02 4,055 54 9쪽
5 제 5장 필살일초 +2 17.07.02 4,341 63 9쪽
4 제 4장 강호출도 +2 17.07.01 4,473 71 10쪽
3 제 3장 소요신군 +2 17.07.01 4,906 77 10쪽
2 제 2장 절지의 수인(囚人) +3 17.07.01 5,318 79 9쪽
1 서장 + 제 1장 기이한 방문객 +4 17.07.01 6,980 8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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