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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온레인 님의 서재입니다.

달마묵장(達磨墨掌)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완결

이온레인
작품등록일 :
2017.07.01 18:52
최근연재일 :
2017.07.15 10:20
연재수 :
2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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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565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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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17,510

작성
17.07.05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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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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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제 10장 달마묵장의 전설

DUMMY

제 10장


달마묵장(達磨墨掌)의 전설




<선종(禪宗)의 초조(初祖) 달마(達磨)께서는 시기하는 자들에 의해 독살당해 웅이산(熊耳山)에 묻히셨다.>

<삼 년 후, 서역에 사신으로 갔다 오던 송운(宋雲)이라는 인물이 총령(葱嶺;파미르고원)을 넘다가 달마조사를 만났다.>

<헌데 맨발인 채 서쪽으로 가고 계셨던 달마조사께서는 가죽신 한 짝을 주장자(拄杖子;승려들의 지팡이)에 매달고 있었다.>

<중원으로 돌아온 송운의 보고를 받은 황제가 달마조사의 무덤을 파헤쳐보니 과연 시신은 사라지고 낡은 가죽신 한 짝만이 관 속에 남아있었다.>


* * *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르구나.)


고불참회기를 읽으며 강유는 고개를 갸웃했다.


(고불선사께서는 어찌 하여 당신의 삶을 참회하기 위해 적은 수기를 누구나 다 아는 달마대사의 고사로 시작하신 것일까?)


태실봉을 내려온 강유는 숭산 아래 등봉현(登封縣)에 자리한 객잔에 투숙했다.

날도 어두워졌고 혹시 모를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간단히 요기를 하고 객실로 돌아온 강유는 서둘러 고불참회기를 꺼내 읽었다.

헌데 강유의 예상과 달리 고불참회기는 달마대사의 고사로 시작되고 있었다.

천축 향지국(香至國)의 셋째 왕자였던 보리달마가 어떻게 중원에 들어왔고 어떻게 살다가 누구에게 죽었는지는 모르는 사람이 드물다.

고불선사가 남긴 고불참회기의 앞부분에는 바로 그 달마대사의 고사가 적혀있다.


(이럴 수가...)


처음에는 의아해 하던 강유의 얼굴은 이내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고불참회기에는 세상 사람들 거의 대부분이 모르고 있는 비사가 실려있었기 때문이다.


* * *


사실 달마의 관에서 발견된 것은 가죽 신발 한 짝만이 아니었다.

검게 말라비틀어진 팔 한쪽도 가죽신과 함께 남아있었던 것이다.

주먹을 움켜쥔 형태의 그 팔뚝은 분명 인간의 것이었지만 무엇으로도 손상시킬 수가 없었다.

칼날이 들어가지 않을 뿐 아니라 용광로의 쇳물에 넣었다 꺼내도 멀쩡했다.

황제는 달마가 남긴 그 단단한 검은 팔에 신통력이 있다 여겨 숨기고 철저히 비밀에 붙였다.

그 때문에 세상에는 달마의 관에 오직 가죽신 한 짝만이 남겨져 있었다고 알려진 것이다.

하지만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

달마의 것으로 추측되는 검은 팔에 대한 소문은 은밀하게 세상에 퍼졌으며 마침내 달마묵장(達磨墨掌)이란 이름까지 붙게 되었다.

그와 함께 달마묵장의 비밀을 푸는 자는 절대무적(絶代無敵)이 된다는 소문도 퍼져 무림인들이 눈에 불을 켜고 찾는 바가 되었다.


* * *


(달마묵장... 달마묵장...)


강유는 그 이름을 되뇌이며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견문이 그리 넓지 않은 탓에 강유는 달마묵장이라는 존재를 오늘 처음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마묵장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진 것이다.

강유는 자신과 달마묵장이 운명적으로 엮여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럴 수가...)


하지만 강유가 느꼈던 기이한 감상은 이어진 고불참회기의 내용에 의해 흔적도 없이 흩어지게 되었다.


<노납 고불은 불제자로서 결코 지으면 안되는 죄를 범했다. 욕정을 이기지 못하고 아녀자를 간음했을 뿐 아니라 그 여인으로 하여금 아이까지 낳게 하였기 때문이다.>


달마묵장의 고사에 이어 그같은 고백이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학승(學僧)으로 이름 높은 고불선사께서 금색계(禁色戒)를 범했을 뿐 아니라 자식까지 두었다니...)


강유는 당혹을 금치 못했다.

그와 함께 강유는 고불암에서 자신이 노리개를 건네주었을 때 보였던 고불선사의 심상치 않았던 반응을 떠올렸다.


(이 노리개...)


강유는 고불암에서 가져온 볼품없는 노리개를 꺼내 살펴보았다.


(어쩌면 이건 고불선사가 범했던 여인의 것인지도 모르겠구나.)


노리개를 탁자에 내려놓은 강유는 복잡한 심정으로 고불참회기를 읽어 내려갔다.


* * *


십칠 년 전의 일이었다.

소림사의 제자임에도 무공수련보다는 금석학(金石學)과 고전(古典)에 관심이 더 많았던 고불선사는 천하를 떠돌며 전대의 고승들이 남긴 유적을 연구하고 있었다.

그날도 고불선사는 천태산(天台山)에 남아있는 육조(六祖;선종의 육대 종사 혜능)의 유적을 연구하러 가던 길이었다.

비가 제법 거세게 쏟아지는 굳은 날씨였다.

하지만 머지않은 곳에 있다는 육조의 귀한 유적을 볼 수 있다는 기대에 고불선사의 발걸음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아아악!”


헌데 빗속을 뚫고 발길을 재촉하던 고불선사의 귀에 다급한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불제자로서 위급한 처지의 중생을 못 본 척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달려가 보니 산적들이 산속의 무덤가에서 젊은 여인을 겁탈하려는 중이었다.

고불선사는 산적들을 혼내 쫓아 보내고 여인을 구했다.

전삼낭(全三娘)이라는 이름의 그 여인은 사냥꾼의 아내였다고 했다.

하지만 사냥꾼이었던 남편은 사냥 도중에 변을 당해 죽었고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된 그녀를 근처 산채의 산적들이 눈독을 들였던 것이다.

겁탈당할 뻔 했던 충격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차가운 가을비를 맞은 탓인지 전삼낭의 몸은 펄펄 끓고 있었다.

불제자로서 아녀자의 몸에 손을 댈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고열에 시달리는 환자를 방치할 수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고불선사는 전삼낭을 안고 그녀의 집으로 갔다.

그리고 전삼낭을 보살피던 중 고불선사는 그만 파계를 하고 말았다.

무엇에 홀린 듯 전삼낭을 범하고 만 것이다.


* * *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고불참회기를 읽으며 강유의 머릿속에서는 의혹이 구름같이 일어났다.


(고불선사쯤 되는 고승이 그저 여자와 같은 장소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욕정에 사로잡혀 이성을 잃는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혹시 그 여자가 함정을 파서 고불선사를 유혹한 것이 아닐까?)


강유는 가슴 속에서 불길한 기운이 피어오르는 것을 느끼며 고불참회기를 읽어내려갔다.


* * *


꿈같은 하루 밤낮이 지나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고불선사는 비로소 자신이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 깨닫고 절망했다.

금색계를 지켜야하는 불제자로서, 그것도 손녀뻘인 젊은 여인을 간음하는 크나큰 죄를 지은 것이다.

고불선사는 회한과 죄책감을 참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

하지만 전삼낭의 필사적인 애원에 고불선사는 자결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전삼낭은 부처님이 정말 계신다면 고불선사가 자신을 범한 것에도 우매한 인간들은 알 수 없는 섭리가 있을 것이라며 설득했던 것이다.

그렇게 전삼낭으로부터는 용서받았지만 고불선사는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의 유품이었던 노리개를 전삼낭에게 증표로 주고 떠나며 언제든 소림사로 찾아와 죄의 대가를 받아가라는 말을 남겼다.

강유가 고불암에서 가져온 노리개는 예상과 달리 원래부터 고불선사의 것이었다.


전삼낭과 헤어져 소림사로 돌아온 고불선사는 토굴(土窟)에 스스로를 가두고 참회의 나날을 보냈다.

헌데 일 년여의 시간이 흐른 어느 날, 한통의 밀봉된 편지가 고불선사가 참회하고 있던 토굴에 은밀히 전해졌다.

봉투 안에는 고불선사가 전삼낭에게 증표로 주었던 노리개와 함께 편지가 한 장 들어있었다. 자기를 보러 와달라는 전삼낭의 편지였다.

고불선사는 토굴을 나와 한달음에 전삼낭을 인연을 맺은 곳으로 달려갔고... 그곳에는 전삼낭이 갓난아기를 안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일 년 전에 있었던 단 하룻밤의 인연으로 전삼낭은 고불선사의 아이를 낳았던 것이다.

하지만 고불선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전삼낭과 아기뿐만이 아니었다.

귀신 가면을 쓴 자가 아기의 목에 칼날을 댄 채 웃고 있었던 것이다.

고불선사는 비로소 일의 전말에 대해 알게 되었다.

고불선사가 전삼낭을 만난 것도, 그녀와 깊은 관계를 맺게 된 것도 모두 마교의 당대 교주인 귀면지존이 꾸민 짓이었던 것이다.


* * *


(마교의 당대 교주 귀면지존!)


강유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마교는 자타가 공인하는 마도 무림의 종가다.

동진(東晋) 시대에 결성 된 비밀 결사 백련사(白蓮社)는 서역의 배화교(拜火敎)와 천축의 미륵(彌勒)사상을 받아들여 마침내 마교로 불리게 되었다.

하지만 마교는 오십 여 년 전 제왕성에 의해 궤멸적인 타격을 입고 세상에서 모습을 감춰버렸다.


(제왕성에 의해 뿌리가 뽑혔다고 알려진 마교가 아직까지 명맥을 유지하며 암약하고 있었단 말인가? 헌데 마교의 교주 귀면지존은 무슨 목적으로 고불선사님을 파계시키는 함정을 판 것일까?)


강유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고불참회기를 읽었다.


* * *


진삼낭 모녀를 인질로 잡은 귀면지존은 몇 장의 종이를 고불선사에게 건네주며 해독(解讀)할 것을 요구했다.

그 종이들은 원통형의 물체 표면에 새겨져 있는 문양의 탁본(拓本)이었다.

고불선사는 탁본의 문양들이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고대(古代)의 범어(梵語)임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즉, 귀면지존은 그 고대 범어를 해독하기 위해 옛날 문자에 박학(博學)한 고불선사를 함정에 빠트린 것이었다.

비록 음모에 빠져서 관계를 맺은 결과이긴 하지만 고불선사는 전삼낭이 낳은 딸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귀면지존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다만 탁본에 새겨진 범어는 아주 오래전부터 쓰이지 않은 것인 탓에 고불선사로서도 해독에 시간이 걸렸다.

그 사실을 말하자 귀면지존은 고불선사는 증표로 노리개를 요구했고 그것을 가져오는 자에게 탁본의 해독본(解讀本)을 건네주라고 했다.


* * *


(그러니까 이 노리개가 고불선사께서 귀면지존에게 건네준 증표라는 건데...)


강유는 탁자에 내려놓은 노리개를 만져보며 검미를 모았다.


(이게 어떻게 아버지의 수중에 들어간 것일까? 또 아버지는 어떤 경로로 고불선사께서 탁본을 해독하고 있다는 걸 알고 계셨던 걸까?)


풀릴 길 없은 의혹이 구름처럼 일어났다.


(설마!)


어느 순간 강유의 눈이 부릅뗘졌다.


(아버지도 귀면지존에게 협박을 당하고 계신 게 아닐까?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나를 대신 보내 탁본의 해독본을 받아오라고 하셨고?)


강유의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얘기다. 어쩌면 아버지와 어머니도 귀면지존의 마수에 빠져있는 상태일지 모른다. 한시라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서 확인해야만 한다.)


강유는 뜨거운 가마솥에 빠진 개미가 된 기분이었다.


(그나저나 귀면지존이 고불선사님을 함정에 빠트려가면서까지 해독하라고 강요한 탁본의 내용은 무엇일까?)


강유는 타들어가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다시 고불참회기를 집어들었다.


(전삼낭으로 하여금 고불선사님을 유혹하여 아이를 낳게 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친 걸 보면 결코 평범한 내용은 아닐 텐데...)


그렇게 생각하던 강유의 두 눈이 찢어질 듯이 부릅떠졌다.


(맙... 맙소사!)


강유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고불참회기를 넘겼다.


<노납은 십여 년에 걸친 연구 끝에 마침내 탁본의 내용을 해독할 수가 있었는 바, 그 내용과 실체는 실로 놀라웠다. 귀면지존이 노납에게 맡긴 탁본은 바로 달마묵장에서 뜬 것이었기 때문이다!>


고불참회기의 내용은 그렇게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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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제 25장 달마독명안(達磨讀命眼), 운명을 읽는 힘! +4 17.07.15 3,130 45 11쪽
24 제 24장 영물(靈物)을 길들이는 법 +2 17.07.14 3,046 48 10쪽
23 제 23장 영물(靈物)을 잡는 법 +2 17.07.14 3,086 48 13쪽
22 제 22장 나타난 천마의 절기(絶技) +3 17.07.13 3,200 42 11쪽
21 제 21장 충격의 결말 +2 17.07.13 3,127 53 10쪽
20 제 20장 첫번째 실전(實戰) +4 17.07.12 3,125 45 13쪽
19 제 19장 쫓기는 미녀 +4 17.07.12 3,122 47 9쪽
18 제 18장 앙큼한 추적자 +2 17.07.11 3,105 42 11쪽
17 제 17장 만나다! +3 17.07.11 3,169 45 8쪽
16 제 16장 달아난 신부(新婦) +5 17.07.10 3,358 42 12쪽
15 제 15장 추악한 비밀 +4 17.07.10 3,235 39 11쪽
14 제 14장 파국의 전조 +4 17.07.09 3,351 46 12쪽
13 제 13장 결혼식 전야의 일막 +3 17.07.09 3,436 46 7쪽
12 제 12장 이상한 반지 +2 17.07.08 3,713 54 12쪽
11 제 11장 달마의 가죽신(達磨鞋)이 합쳐지면... +3 17.07.08 3,734 66 7쪽
» 제 10장 달마묵장의 전설 +2 17.07.05 3,802 62 12쪽
9 제 9장 대들보 위의 책 +3 17.07.04 3,748 59 12쪽
8 제 8장 오십 리를 간 후 돌아오라. +3 17.07.03 3,822 61 12쪽
7 제 7장 기인들의 제안 +3 17.07.03 3,893 59 11쪽
6 제 6장 흑백신귀 +3 17.07.02 4,055 54 9쪽
5 제 5장 필살일초 +2 17.07.02 4,341 63 9쪽
4 제 4장 강호출도 +2 17.07.01 4,473 71 10쪽
3 제 3장 소요신군 +2 17.07.01 4,906 77 10쪽
2 제 2장 절지의 수인(囚人) +3 17.07.01 5,318 79 9쪽
1 서장 + 제 1장 기이한 방문객 +4 17.07.01 6,981 8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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