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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반디 님의 서재입니다.

멸망할 세계의 아카데미에서 살아남는 법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겨울반디
작품등록일 :
2023.04.03 10:13
최근연재일 :
2023.04.28 07:00
연재수 :
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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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9
추천수 :
406
글자수 :
187,515

작성
23.04.2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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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글자
18쪽

24 3차 시험

DUMMY

쥰은 태양의 기사가 될 슈비츠만이 아니라 앞 여관에 묵고 있는 마검사 지망생 소녀 케이까지 불러와 함께 아침 식사를 했다.

메를린의 음식이 워낙 맛있기도 했고 케이도 함께 식사하는 걸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케이는 메를린의 음식에 감탄하며 말했다.


“정말 너무 맛있어요! 이런 음식을 돈도 안 내고 먹는다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것 같은데요? 도둑질하는 기분이에요. 메를린, 그냥 돈을 받으시면 안 될까요?”


그러자 절대 돈을 받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던 메를린이 흐뭇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어이구! 예쁜 아가씨가 어쩜 말도 이렇게 예쁘게 할까? 넣어 둬요. 세 사람이 이렇게 맛있게 먹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대가는 어제 쥰이 충분히 치렀다우. 어찌나 어깨를 시원하게 주물러주던지.”


그 말에 쥰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맛있게 먹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니. 그건 너무 위험한 말이에요, 메를린,”


갑작스런 그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는지 메를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응?”


그러자 말을 이은 건 케이였다.


“이런 음식을 맛없게 먹는 건 불가능하잖아요? 맛있게 먹어주는 걸로 만족하시다간 조만간 빈털터리가 되실 지도 모른다고요.”

“응? 오호호호호! 그런가?”


메를린이 웃음을 터트리자 쥰이 케이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내밀며 감탄해줬다.


“오오오, 케이.”

“훗! 이쯤이야. 당연한 거죠.”


만난지 삼일밖에 안됐지만 쥰과 케이는 무척 쿵짝이 잘 맞았다.

원래 알고 지내던 사이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슈비츠는 문득 작게 웃음 지었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던 이런 시끄러운 식사가, 참 푸근했다.

마음이 따뜻해져 어쩐지 눈시울마저 뜨거워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비가 내리는 창밖을 바라봤다.

혹시 눈이 빨개졌을까 걱정이 됐기 때문이었다.

잠시 마음을 가라앉힐 생각이었다.


그러자 케이가 문득 조심스럽게 물었다.


“슈비는 비를 좋아하나 봐요.”


그 말에 슈비츠가 살짝 흠칫해 그녀를 바라봤다.


“응?”

“아뇨, 아까부터 창밖을 자주 바라보는 것 같아서요.”


슈비츠는 좀 당황했다.

쥰과 계속 대화하면서도 자신을 살펴주고 있었다는 사실이 고맙기도 하고, 좀 쑥스럽기도 했다.

그래서 대충 얼버무렸다.


“아, 집에 있을 땐 비올 때마다 외출을 했었거든. 그래서 그냥 습관적으로 시선이 간 것 같군.”

“네? 비가 오는데 외출을요?”

“음, 아버지께서 비 오는 날만 수련을 쉴 수 있게 해주셔서.”

“아아.”


그 말에 쥰이 문득 물었다.


“그럼 우리 외출할까?”

“응?”

“나가자. 야외에서 비 떨어지는 걸 바라보며 전을 부쳐 먹으면 더 맛있거든. 거기다 막걸··· 아니, 술 한 잔이면, 크으!”


슈비츠가 당황해 말했다.


“아니, 내 말 때문에 굳이 그렇게 할 것 까진···.”


그저 변명을 했을 뿐인데 두 사람이 자신 때문에 빗속에서 고생이라도 하게 된다면 너무 미안할 것 같았다.

실제 자신도 자유시간이 아까워 빗속을 다녔을 뿐 고생한 기억이 더 많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쥰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네 말 때문이 아니야. 네 말 덕분에 좋은 생각이 난거지. 무엇보다, 같이 가보고 싶은 생각은 안 들어?”


그러자 케이 또한 생긋 웃으며 그를 거들었다.


“전 재밌을 것 같은데요? 한 번도 안 해본 일이라 꼭 해보고 싶어요.”


어쩐지 헛된 기대를 품은 것 같은 두 사람의 말에 슈비츠는 난감하게 웃으며 말했다.


“생각만큼 재밌지는 않을 거야. 보통 고생스러운 경우가 훨씬 더 많지. 비를 쫄딱 맞고 감기에 걸릴 수도 있고.”


그러자 쥰이 싱긋 웃고는 대꾸했다.


“내 경험엔 말이야. 좋은 친구와 함께 고생한 건 대부분 좋은 기억으로 남더라고.”


슈비츠는 잠시 대답 없이 그를 바라봤다.

그렇게 말하고는 창밖을 바라보는 쥰의 모습이 어쩐지 조금 슬퍼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쥰은 다시 밝은 표정으로 그를 보며 물었다.


“그래서! 다시 묻지만 함께 가보고 싶은 생각은 안 들어?”


슈비츠는 결국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가보고 싶긴 하군. ···친구들과 함께 말일세.”


그의 대답에 쥰은 환호성을 터트렸다.


“좋았어!”


준비는 일사천리였다.

쥰은 메를린에게 부탁해 야외에서 쓸 수 있는 조리도구와 비옷을 챙기고는 한 시간 후 바로 출발했다.


“자, 출발!”


그러자 케이 또한 환하게 웃으며 복창했다.


“출발!”


세 사람이 향한 곳은 레위어든 섬 서남부에 위치한 호숫가였다.

쥰이 섬으로 건너올 때 호숫가에 천막이 쳐져 있는 걸 봤었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케이가 문득 물었다.


“주인이 있는 곳 아닐까요?”

“주인이야 있겠지만 비오는 날 계시지는 않을 거야. 올 때 깨끗이 치우고 오면 더 좋아하실걸?”


호숫가에는 쥰이 말한 대로 천막이 있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위에 큰 천막만 쳐져있는 상태, 아래는 흙 땅이라 온통 질퍽하기만 했다.


슈비츠가 난감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쩌지? 여기에 앉긴 힘들겠는데?”


그러자 쥰이 씨익 웃고는 손가락을 풀었다.


“훗! 기다려 봐. 네 친구가 검술은 잘 못해도 다른 건 잘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줄 테니.”


그러고는 신비한 주문을 외우듯 말했다.


“수리수리마수리, 뒤집어져라!”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천막 밑의 땅이 뒤집어지기 시작했다.

젖은 땅이 바깥으로 밀려나며 아래에서부터 뽀송뽀송한 흙 땅이 위로 올라왔던 것이었다.


그 신기한 광경에 슈비츠는 탄성을 내뱉었다.


“오오오오!”


케이도 신이 나서 외쳤다.


“멋져요!”


그뿐이 아니었다.

땅의 정령 노움을 이용해 완전히 뽀송뽀송한 흙을 평평하게 다진 쥰은 마치 마술쇼를 벌이듯 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솟아라! 정의의 힘이여!”


그러자 진짜 정의의 힘이 솟구치지는 않았다.

대신 바닥에서부터 평평한 바위 세 개가 쑤욱 올라왔다. 세 사람이 앉기 딱 좋은 모양의 돌들이었다.


그것을 마무리로 멋지게 인사하는 쥰의 모습에 두 사람은 아낌없는 함성과 박수를 보내줬다.


“오오오!”

“와아아아!”


다음으로 나선 건 신이 난 듯한 케이였다.


“저도 질 수 없죠. 제가 비록 힘이 약하고 검술도 별로지만 다른 건 잘 할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릴게요!”


그렇게 말한 그녀는 주변을 슬쩍 살펴보고는 양손의 손가락을 딱 튕겼다.

그러자 젖은 나뭇가지 몇 개가 둥둥 떠오르더니 날아서 천막 중심으로 들어갔다.

염동 주문이었다.


마법 문외한인 두 사람은 알 수 없었지만 주문 영창도 없이 핑거스냅만으로 염동 주문을 발휘하는 건 무척 대단한 경지였다.


하지만 그걸 모르는 두 사람도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줬다.


“오오, 대단하군!”

“휘이이익! 멋져요, 마검사 케이양!”


케이의 마법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다시 손가락을 딱 튕기자 허공에 두 개의 수박만한 불덩어리가 생겨났던 것이었다.


케이는 쥰을 흉내낸 듯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수리수리··· 뭐라고 했었죠?”

“수리수리마수리.”

“아, 수리수리마수리 돌아라!”


그러자 두 개의 불덩어리가 장작을 가운데 두고 빙빙 돌기 시작했다.

젖은 장작을 말리기 위함이었지만 그냥 보기에도 무척 화려한 광경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케이가 다 마른 장작들을 향해 그것들을 넣으며 외쳤다.


“불타올라라!”


화르르르륵!


순간 장작 위로 불꽃이 화악 솟구치는 광경은 정말로 멋있었다.

다만 너무 높이 올라 천막에 닿아버린 게 문제였다.


세 사람은 다급하게 외쳤다.


“아악! 어떻게 해요!” “불! 불! 아니, 물! 물!”

“젖은 가지를 가져오지!”


천막 위에 붙었던 불은 황급히 젖은 가지를 꺾어 와 문지른 슈비츠에 의해 진화됐다.

생각해보면 어차피 밖에 비가오기 때문에 곧 꺼질 것이긴 했다.

하지만 잠시 난리를 피웠던 세 사람은 곧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하하!”

“큭큭큭큭!”

“하하하하하!”


슈비츠는 즐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왜 재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즐거웠다.

아까 쥰이 말했던 친구와 함께 하는 고생은 보통 좋은 기억으로 남더라는 말을 이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후로도 즐거움은 계속됐다.

쥰이 여관에서 빌려온 프라이팬으로 전을 부치는 모습도.

야심차게 세 번 연속 전 뒤집기 스킬을 보여주다 한 장을 모닥불에 던져버린 상황도.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세 사람 다 질렀던 비명도.

모두가 너무 즐거웠다.


쥰이 그토록 주장하던 전과 술의 조화 또한 환상적이었다.

딱히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늘 귀한 집 딸 같은 분위기가 있었던 케이마저도 전 한 입과 술 한 잔을 비우고는 입술을 스윽 닦으며 감탄사를 내뱉었을 정도였다.


“크으으!”


그러자 열아홉 살 주제에 작업장 아저씨 같은 효과음을 낸다며 쥰이 웃음을 터트렸고, 케이는 손가락 한번 딱 튀기는 것으로 그를 뒤로 자빠트려 복수했다.


슈비츠는 꼬맹이들처럼 툭탁거리는 두 사람을 보고는 빙긋이 웃으며 잔을 기울였다.

술이 이렇게 달콤한 것이었는지 처음 깨달은 기분이었다.

예전엔 그저 쓰기만 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말이다.


쥰은 문득 그런 그를 보고는 소리쳤다.


“우리가 싸우는 사이 혼자 잔을 비우다니, 용서할 수 없다!”


케이 또한 바로 쿵짝을 맞췄다.


“정의의 이름으로 처단하겠다! 자, 건배!”

“건배!”


챵!


즐거웠다.

언젠가 딱 하루만 기억할 수 있다면 이 날을 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슈비츠가 문득 쥰에게 말했다.


“고맙네, 쥰. 이런 하루를 선물해 줘서.”


그러자 그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나도 고마워. 흔쾌히 함께 와 줘서.”


그러고는 문득 빗방울이 떨어지는 호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 기준에 좋은 친구는, 비오는 날 갑자기 여행 갈까? 라고 물었을 때 흔쾌히 같이 가주는 친구거든. 그런 사람이 두 사람이나 생겨 너무 좋네. 고마워.”


슈비츠는 그렇게 말하는 쥰의 웃음이 어쩐지 약간 슬퍼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굳이 묻지는 않았다.

그저 묵묵히 술잔을 내밀었을 뿐이었다.


세 사람은 밤늦게까지 대화를 나누며 술잔을 기울이다 다시 여관으로 돌아갔다.

돌아갈 때까지도 모두 환한 웃음을 띤 채였다.


그날 세 사람은 각각 자신의 침대에 누워 눈을 감으며 생각했다.

정말 행복한 하루였다고.

그리고.

이곳에 오길 잘했다고 말이다.



***



“으하아아암!”


이른 새벽, 나는 습관적으로 기지개를 펴며 일어났다.

슈비츠, 케이와 함께 비오는 날의 캠핑을 즐겼던 지도 벌써 이틀이 지난 후의 새벽이었다.


문득 희미하게 여명이 밝아오는 창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드디어 오늘은 내 차례로구나.”


그랬다.

오늘이 바로 판데온의 3차 입학시험을 보러가는 날이었다.


지난 사흘간 판데온의 여관에서 나와 함께 묵었던 슈비와 케이는 어제 먼저 입학시험을 보러 갔기 때문에 오늘은 나 혼자였다.

그리고 그들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대체 무슨 시험이길래.’


이번 3차 입학시험자 명단을 보며 알게 된 사실인데, 케이의 말대로 면접과 함께 실시한 테스트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떨어졌던 모양이었다.


3차 시험을 보게 되는 사람들은 기사학부와 마법학부를 다 합해 겨우 백여 명뿐.

그들은 세 개 조로 나뉘어 다시 입학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그중 슈비츠와 케이는 일조, 나는 이조였는데 일조인 그들은 어제 시험을 치르러 갔고 나만 오늘이었다.

그리고 시험을 치러 갔던 그들은 어제 돌아오지 않은 걸 보면 예고대로 하루 만에 끝나는 시험이 아닌 모양이었다.


‘케이도 3차 시험에 관해선 아는 게 전혀 없다고 했었지. 며칠이 걸리는, 그 내용도 전혀 알 수 없는 시험이라. 아주 궁금해지는데?’


무척 좋은 집안의 자식인 듯한 마검사 지망생 소녀 케이는 매우 뛰어난 정보력을 가지고 있었다.

근데 그런 그녀도 전혀 알지 못한다니.

아마도 매우 중요하고 은밀한 시험일 것 같았다.


“에이, 못 참겠다.”


궁금한 마음에 일찍 소집 장소에 가봤다.

그러자 이미 이십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딱 봐도 기사학부 지원자로 보이는 사람과 마법학부 지원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절반 정도씩 되는 모습이었다.


그때였다.

그들 사이에서 2m는 훌쩍 넘을 것 같은 두 명의 거한들이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바로 며칠 전 케이를 밀치고 갔던 인간족 남자와 광장에서 봤던 검은털의 호인족 묵시안 드라카였다.


나도 모르게 안타까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아아아···.”


하필 이 두 명이 모두 나와 같은 조에 속해 있다니.

어째 느낌이 좋지 않았다.


특히 묵시안 드라카, 그도 그때 본 다른 수인족 여성들과는 다른 조가 됐는지 혼자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그를 보는 내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는 정말 전향자가 맞는 걸까? 맞다면 왜 여기에 있는 거지?’


혼란스러웠다.


그를 한참 바라보다가 문득 시선을 돌려보았다.

그러자 2조에 그들 말고도 내가 아는 얼굴들이 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저 녀석들은?’


그들을 보는 내 눈은 이제 완전히 막막해졌다.

이번에도 반갑지 않은 얼굴들이기 때문이었다.

한숨이 다 나올 지경이었다.


‘아, 나한테 왜 이러는데?’


그들은 바로 그놈들이었다.

고작 흙먼지 좀 털었다고 케이에게 시비를 걸었던 베이 뭐라는 백작가 후계자 놈과 그 똘마니 두 놈.

그 셋이 모두 우리 조에 와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저놈들은 다른 조로 떨어지지도 않았는지.

어째 이번 3차 입학시험이 꽤 짜증나는 이벤트가 될 것 같다는 불길한 느낌이 들고 있었다.


‘그래, 아주 불길해. 마구마구 불길하다고! 왜 조 인원 배정이 이렇게 된 거야?!’


속으로 포효하며 소집 장소에 서 있을 때였다.

문득 누군가가 환한 빛무리와 함께 갑자기 우리 앞에 나타났다.

백발의 걍팍하게 생긴 노중년인이었다.


화아악!


‘저건!’


그걸 본 내 눈이 크게 확대됐다.

처음 보지만 저게 무슨 마법인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법진 없이 사용하려면 5서클 이상의 마법사여야만 한다는 텔레포트 마법이었다.

그리고 이 세계에선 5서클 이상의 마법사들을 마도사, 7서클 이상이면 대마법사라고 부르곤 했다.

한 마디로 쉽게 보기 힘든 고위 마법사란 뜻이었다.


그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입학 지원자 여러분, 반갑다. 나는 마법학부의 학부장이자 원소 마법 담당 교수인 체인스 라 칼리드라고 한다.”


내용과 달리 전혀 반갑지 않은 듯한 목소리.

무척이나 오만하고 걍팍한 인상을 지닌 남자였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다는 말을 사람으로 만들면 저런 모습이 나올 것 같을 정도였다.


‘음, 처음 봤지만 저 사람이 기사학부가 아닌 마법학부 교수라 다행이다.’


그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이곳에 모인 서른다섯 명은 지난 번 입학 지원당시 돌발적으로 실시했던 테스트에서 우수한 능력을 보여줬던 지원자들이다. 그렇기에 이번 시험에선 그때 본 전사로서의 기술이나 마법적 능력이 아닌 다른 것들을 시험해볼 예정이다.”


그렇게 말한 그가 왼손 손가락을 딱 튕겼다.

그러자 갑자기 그의 옆쪽 공간이 찢어지기 시작했다.


화아아악!


공간을 찢고 나타난 검은 구멍.

그건 분명 심연 또는 균열이라고 불리는 던전의 입구임에 틀림없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균열에 놀란 우리가 웅성거릴 때 그가 다시 말을 시작했다.


“이 균열은 판데온의 마법학부 교수들이 인위적으로 만든 곳이다. 이 안의 환경 또한 마찬가지지.”


그 말을 들은 우리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균열을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그게 가능해?

특히 나보다도 마법학부 지원자들이 거의 눈이 튀어나올 듯 놀란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런 우리의 놀람을 당연하다는 듯 넘기며 그는 오만한 태도로 이야기를 계속했다.


“이번 입학 테스트는 이 균열 안에서 일주일 간 생존하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이곳으로 들어가면 균열의 입구는 닫힐 것이고, 일주일 후에나 다시 열리게 될 것이다. 안의 환경은 가혹할 것이고 지금 지니고 있는 소지품들은 가지고 들어갈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참고로 말하지만 사망자도 나올 수 있다. 그러니 무섭거나 걱정되는 사람은 지금 포기하는 것이 좋다. 어떤가? 포기할 사람이 있는가?”


그렇게 말한 체인스 교수는 냉정한 눈길로 우리를 스윽 훑어봤다.

하지만 좀 더 자세한 설명을 해주고 생각할 시간을 줬다면 모를까 이렇게 갑자기 묻는다 해서 포기자가 나올 리 없었다.


그리고 그 역시 이미 그럴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는 우리를 한 번 스윽 훑어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그럼 포기자는 없는 것으로 알겠다. 제군들 모두의 행운을 빈다.”


그러고는 바로 들어가라는 듯 왼손을 들어 균열을 가리켰다.

그러자 지원자들은 잠시 망설이다 어쩔 수 없이 균열을 향해 하나 둘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이 술술 흘러가는 상황에 입술을 혀로 핥으며 주변을 살폈다.

지원자들은 불안한 표정이었지만 홀린 듯 균열로 들어가고 있었다.


뭔가 이상했다.

모든 일이 너무도 급작스럽지 않은가.

마치 사기를 당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래, 맞아. 사기 당하는 느낌.’


딱 그거 같았다.

나는 이번에도 내 느낌을 그냥 흘려버리지 않고 거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사기라···.’


근데 뭘로 사기를 당한다는 거지?

여기가 판데온이 아닐 리도 없고 입학 시험이 거짓일 리도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남은 건 저 균열인가?


불길함이 느껴졌다.

그가 균열에 대해 뭔가 거짓을 말했던가, 아니면 사실을 다 말하지 않았을 거란 느낌이 들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해도 어쩔 수가 없었다.

어느새 내 앞의 지원자들이 다 균열 안으로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이젠 나도 어쩔 수 없이 그곳 안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제길. 안 내키는데.’


그래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지금 와서 입학을 포기할 수는 없었으니까.


일단 몰래 내 정령들을 실체화시켜 옷 속에 숨긴 후 앞 사람을 따라 균열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러자 지난번의 균열 탐사가 그랬듯 불길한 어둠 속으로 발을 디딘 순간 내 몸이 붕 뜨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나는 전혀 다른 공간속에 발을 디디고 있었다.


작가의말

내일부턴 제목도 바꾸겠습니다.

‘멸망할 세계의 아카데미에서 살아남는 법.’

착오 없으시길 바랍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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