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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반디 님의 서재입니다.

멸망할 세계의 아카데미에서 살아남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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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반디
작품등록일 :
2023.04.03 10:13
최근연재일 :
2023.04.28 07:00
연재수 :
27 회
조회수 :
19,723
추천수 :
406
글자수 :
187,515

작성
23.04.09 15:00
조회
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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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글자
12쪽

9 심연-1

DUMMY

내 눈앞에 심연의 짙은 어둠이 가까워졌다.

그 어둠 속으로 조심스럽게 발을 넣자, 안쪽으로 사라진 내 발이 공중에 붕 뜬 듯한 부유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마침내 얼굴까지 안으로 집어넣자 바로 다른 세계의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우와아!”


그곳은 흑녹색의 거대한 식물들이 울창하게 자라고 있는 울창한 밀림이었다.

머리 위로는 검푸른 하늘에 보랏빛 오로라가 떠다니고 있는 세상.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나는 문득 나도 모르게 허탈한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하아아···.”


그도 그럴 것이 그 광경이 예전 게임 소개의 스크린 샷에서 보던 던전의 모습과 거의 일치했기 때문이었다.

마치 이곳이 네가 생각하는 그 세계가 맞다고 확인시켜주고 있는 듯한 느낌.

복잡한 기분이었다.


‘젠장.’


그때였다.

선두로 걸어가던 솔론이 갑자기 비틀거리며 신음을 흘렸다.


“으윽!”


그뿐이 아니었다.

동시에 그의 옆에 서 있던 거대한 흙골렘 노에스 또한 와르르 무너지고 있었다.


우르르릉!


우리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솔론?!”

“괜찮아요?”


다른 우드엘프들이 급히 그에게 달려가 부축해줬다.

그러자 그가 괜찮다는 듯 손을 저으며 말했다.


“괜찮네. 마기의 농도가 엄청나군. 노에스가 힘들어하고 있어.”


그의 말 대로였다.

깊게 들이마신 대기에는 엄청난 농도의 마기가 섞여 있었다.


우리는 인간족보다 훨씬 주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 엘프족이기에 이런 주변의 기운 변화에 대단히 민감했다.

하지만 그나마 육신을 지녔기에 버틸 만은 했는데 에너지체인 정령들에겐 타격이 더 심각한 모양이었다.


특히 노에스가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것이 아마 격이 높을수록 주변 마나의 영향을 많이 받는 모양이었다.


그러자 급히 합류하는 바람에 아직 내가 이름을 알지 못한 바람의 우드엘프 여인이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이 심연을 일주일이나 방치했기 때문일까요?”


그 질문에 솔론은 무겁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렇다고 보기엔 좀 심하군. 게다가 중규모도 아닌 소규모 심연일 뿐인데 말일세.”


우리는 잠시 입구 바로 앞에 멈춰서 대기했다.

마기의 농도도 이상했지만 만약 계속 정령들의 활동이 불가능하다면 이번 심연 탐사 자체가 불가능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잠시 후 노에스와 교감해보던 솔론이 말했다.


“노에스는 이제 괜찮아졌다는군. 잠시 적응을 못 했을 뿐 이젠 문제없을 것 같다고 하네. 자네들의 친구들은 어떤가?”


그의 물음에 우드엘프들이 대답했다.


“제 실라페는 괜찮은 것 같아요.”

“제 샐러맨더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바람과 불의 우드엘프들은 물론, 계속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던 물의 우드엘프 여인 역시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우리는 다시 전진하기로 했다.


나를 비롯한 하프엘프들의 최하급 정령들은 처음부터 큰 문제는 없는 상태였다.

역시 격이 높을수록 더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았다.


나는 슬쩍 맨 앞에서 우리를 이끌고 있는 검은 머리의 나이트엘프 솔론을 바라봤다.

그리고 생각했다.


‘멋있다.’


그는 삼십 대 초반 정도로밖에 안 보이는 검은 머리의 미청년었다.

하지만 상급 엘프가 삼십 대의 나이로 보인다는 건 최소한 이백 살 이상이라는 얘기였다.


관록이 느껴지는 여유에, 늘 달고 있는 푸근한 미소는 언제나 봐왔듯 진중하면서도 부드러움을 갖춘 리더의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하프엘프에서 한 단계 격을 높인다면 우드엘프, 거기서 한 단계 더 격을 높인다면 아마 저 솔론과 같은 나이트엘프가 되겠지?’


나이트엘프가 된 나를 한 번 상상해보자 절로 흐뭇한 웃음이 지어졌다.

엘프다운 꽃미남 외모에 더해 관록이 느껴지는 강자의 아우라라니.


‘진짜 멋있긴 하겠네.’


땅의 정령과 계약한 엘프들은 상급 엘프가 되었을 때 저렇게 검은 머리를 지닌 나이트엘프가 되곤 했다.

우드엘프일 때는 종족의 특성에 따라 모두 비슷한 모습이 된다면 상급엘프가 됐을 때는 저렇게 계약한 정령의 영향이 강해져 외모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었다.


땅의 정령뿐 아니라 물의 정령 계약자는 상급엘프가 되면 금발의 미스티엘프, 불의 정령 계약자는 적발의 블러드엘프, 바람의 정령 계약자는 은발의 루나엘프가 되었다.


‘그건 그야말로 모든 하프엘프들의 염원이고 실제로도 진짜 멋있는 일이지.’


문제는 그렇게 되기까지 일반적으로 백 년 정도가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하프엘프에서 우드엘프가 되기까지도 이렇게 몬스터들을 처리하며 살 경우에만 십 년이 필요한데, 다시 우드엘프에서 상급엘프가 되기까지도 백 년이란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사실.


문득 헛웃음이 나왔다.


‘크으, 끔찍하다.’


정말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아무리 엘프들이 오래 산다지만 인간의 일평생보다도 긴 시간을 기다려야 상급엘프가 될 수 있다는 건 내게 너무도 먼 얘기였다.

마음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역시 상급엘프가 되는 건 내 선택지가 아니야.’


그런 생각을 하며 우드엘프들도 주욱 둘러보던 나는 문득 아직 소개도 받지 못한 아름다운 물의 우드엘프를 보고는 생각했다.


‘살다 살다 세라인보다 더 차가워 보이는 엘프는 처음 보네. 완전 얼음 덩어리야. 근데··· 왜 낯이 익는 것 같지? 저 여인도 혹시 영웅 NPC였나?’


그러자 내 시선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옆에 있던 솔론이 이제 안정을 찾은 듯 빙긋이 웃으며 말해줬다.


“저런 차가운 표정은 처음 보지? 나도 몇 번을 봤음에도 아직까지 서늘하다네. 미스티엘프들 중에는 그녀가 얼음의 정령과 계약해줄 거라고 기대하고 있는 사람도 있을 정도지.”

“아아, 그렇군요.”


과연 저 정도 냉기면 물이 아니라 얼음의 정령과 계약해도 놀라지 않을 것 같긴 했다.


정령들의 종류는 땅, 바람, 불, 물의 사대 원소 이외에도 꽤 많았다.

하지만 그 수가 매우 드물었고 그들과 계약하는 일은 더더욱 드물었다.

어찌나 드문지 만약 최하급 정령이라 해도 사대원소가 아닌 다른 정령과 계약할 수만 있다면 바로 승급 최우선 대상으로 지목될 정도였다.


문득 솔론에게 물었다.


“현재 얼음의 정령과 계약한 사람들은 없나요?”


그러자 그가 주변의 거대한 밀림을 살피며 대답해줬다.


“전대의 계약자가 세계수의 품으로 돌아간 후 지금은 한 명도 없는 상태라네. 만약 비야가 얼음 정령의 계약자가 된다면 아마 바로 미스티엘프로 승급시켜줄 수도 있을걸?”

“···!”


그의 말을 들은 나는 눈을 크게 치켜뜨고 말았다.

하지만 내가 놀란 건 그녀가 미스티엘프가 될 수도 있다는 말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의 이름 때문이었다.


···누구라고? 비야?


멈칫 발걸음을 세우고는 다시 물었다.


“···지금 비야라고 하셨나요?”

“그래, 비야. 아, 자넨 아직 통성명도 못했겠군. 저 얼음 같은 아가씨가 비야, 뜨거운 청년이 파드, 수다쟁이 아가씨는 나미트리아라고 한다네.”

“솔론! 수다쟁이라니요!”

“하하하!”


그의 말에 바람의 우드엘프 나미트리아가 뾰족하게 소리를 질렀지만 내 귀에 그 목소리는 들어오지 않았다.

저 비야가 누구인지 바로 기억해냈기 때문이었다.


‘빙결의 창 비야···.’


그랬다.

그녀는 분명히 ‘빙결의 창 비야’였다.

게임 소개에 나왔던 엘프 종족의 네임드 NPC.

심지어 ‘폭풍의 세라인’과 더불어 엘프족 냉미녀 이인방으로 같이 소개가 되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의 소개엔 분명히 이런 설명이 적혀 있었다.

과거 던전 공략팀으로 처음 만났던 두 사람은 사고로 모든 팀원들을 잃게 됐고, 간신히 둘만 살아남아 폭풍과 얼음이라는 새로운 정령을 각성하게 되었다고···.


나도 모르게 침이 꿀꺽 넘어갔다.


‘그러니까··· 두 사람이 처음 만나 사고로 모든 팀원을 잃게 되는 던전 공략팀이···. 바로 지금 이 팀이라고?’


등에 갑자기 소름이 확 끼쳤다.


이런 씹!


다급하게 솔론을 불렀다.


“소, 솔론!”


그때였다.

전방의 숲에서 갑자기 거대한 무언가가 솟구쳤다.


“키아아아아아아!”


푸른색 비늘을 지닌 뱀이었다.

아름드리나무 두께에 길이가 십 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뱀.

놈이 한 번의 도약으로 하늘로 튀어 올라서는 우리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캬아아아아!”


쉬이이이이익!


갑작스런 기습, 엄청난 속도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베테랑 폐쇄자인 솔론은 당황하지 않았다.


“노에스!”


그가 손을 들어 올리자 전방의 땅에서 화악 솟아오른 4미터의 흙 거인이 그 앞을 막아섰다.


콰아아아앙!


묵직한 충돌음.

흙 거인은 거대한 뱀과 부딪친 충격에 한 발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노에스는 살짝 뒤로 물러선 정도로 충격을 상쇄하고는 오히려 거대한 뱀의 몸통을 양팔로 움켜잡아버렸던 것이었다.


꾸우우욱!


“키이이익!”


몸통을 잡힌 뱀은 고통스럽게 몸부림쳤다.

그리고 그 순간 바람의 우드엘프 나미트리아가 바로 활시위를 당겼다.

불의 우드엘프 파드의 샐러맨더가 그녀의 활촉으로 스며든 것도 순식간이었다.


‘와우!’


나는 그들의 군더더기 없는 빠른 행동에 감탄했다.

역시 엘프족의 최정예인 폐쇄자들 다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때였다.

갑자기 솔론이 신음을 흘리며 비틀거렸다.


“윽!”


그는 아까처럼 몸을 가누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러자 뱀을 잡았던 노에스의 몸 또한 다시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와르르르르!


그 순간이었다.

부서진 노에스의 품에서 빠져나온 뱀이 솔론을 향해 힘껏 입을 벌렸다.

그러자 그 속에서 무언가 튀어나왔다.


취이익!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정확하게 볼 수 없었다.

무언가가 엄청난 속도로 솔론을 향해 쏘아져오고 있었다.


그리고 비틀거리고 있던 솔론은 그것을 도저히 피할 수 없었다.


촤아악!


“으아아아악!”

“솔론!”

“안 돼!”


치이이익!


그것이 회색의 부식성 독액이라는 사실은 그게 땅에 부딪쳐 연기를 뿜어내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회색 액체가 지나간 솔론의 왼팔이 팔꿈치 바로 밑으로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솔론은 고통스런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악!”


뱀의 독액은 솔론의 팔뚝을 흔적도 없이 녹여버리고도 계속해서 그 위까지 녹이고 있었다.

그 끔찍한 고통에 솔론이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칠 때 뱀이 입을 크게 벌린 채 솔론의 몸을 덮쳐왔다.


“키이이이익!”

“안 돼!”


나미트리아가 뱀을 향해 급하게 시위를 놨다.


핑!


하지만 바람의 힘으로 가속되어야 할 그녀의 화살은 그저 힘없이 날아가 뱀의 비늘에 튕겨났을 뿐이었다.


팅!


“이, 이럴 수가!”


나미트리아가 당황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중급 정령인 노에스에 이어 다른 우드엘프들의 하급 정령들도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미트리아의 실라페도, 파드의 샐러맨더도 마찬가지였다.


그 순간, 뱀의 입이 막 솔론을 통째로 먹으려고 했다.

그리고 정령을 쓰지 못하는 엘프들은 그걸 눈으로 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단 한 명, 나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놈이 막 솔론을 향해 입을 닿으려던 그때, 옆에서 기회를 노리고 있던 내가 튀어나갔다.


‘노움!’


팡!


내 도약력에 노움의 발판이 튕겨주기까지 한 탄환 같은 돌격이었다.

뱀의 거대한 머리 옆면에 위치한 놈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가랏!’


푸우욱!


“키이이이이익!”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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