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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반디 님의 서재입니다.

멸망할 세계의 아카데미에서 살아남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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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반디
작품등록일 :
2023.04.03 10:13
최근연재일 :
2023.04.28 07:00
연재수 :
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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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5
추천수 :
406
글자수 :
187,515

작성
23.04.14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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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글자
12쪽

12 샤하라드

DUMMY

아리에의 도움으로 약간 체력을 회복시키고는 바로 구석으로 가 명상에 들어갔다.

세라인 덕분에 가슴이 두근거리고는 있었지만 언제 또 싸워야 할지 모를 이곳에서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후우우우.”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다시 단전 깊숙이 들이마셨다.

그러자 공기와 함께 엄청난 양의 마나가 아랫배로 밀려들어왔다.


이곳에서 단전호흡을 해보며 느낀 점은 이곳의 마나 농도가 생명의 숲과 또 다르다는 것이었다.

생명의 숲만 해도 지구에 비한다면 웅덩이와 호수의 차이였는데, 이곳은 아예 바다 속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었다.


마나가 마치 해일처럼 몸속으로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굳이 단전호흡을 하지 않고 숨만 쉬어도 순식간에 몸속이 마나로 가득 차 버릴 듯한 느낌, 심지어 의식적으로 마나를 흡수하고 몸속에서 순환시키고 있는 내 단전의 느낌은 경이로울 정도였다.

실시간으로 정령력이 증가하는 게 느껴졌다.


‘이게 마계의 공기인가? 이 상태라면 어쩌면···.’


욕심이 났다.

솔론의 말처럼 여기서 하루, 아니 이틀만 더 버틸 수 있다면 껍질을 깰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런 욕심을 부릴 순 없지. 그것도 다 살아있어야 의미가 있는 거니까.’


그러니 지금 최대한 이곳의 마나를 호흡해야만 했다.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물론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었다.

마계의 공기이기 때문일까?

어쩐지 마나의 성질이 세계수의 숲보다 좀 음습하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내겐 상관없었다.

내가 혼돈의 존재인 인간의 피가 섞인 하프엘프인데다, 단전호흡 자체가 몸속을 순환시키며 마나를 정순하게 만드는 과정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이런 이유 때문에 하프엘프들의 정령만 멀쩡한 걸까?’


알 수 없었다.

어쨌든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내가 하프엘프인 게 전화위복이 됐다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완전한 밤이 됐다.

창백했던 푸른 해도 사라져 버린 상태.

하지만 완전한 암흑이 될까 걱정했던 게 무색하게도 하늘에는 붉은 달이 광채를 드리우고 있었다.

오히려 낮의 푸른 해보다도 더 밝게 보이는 핏빛 달이었다.


그러자 그 달빛에 던전 안을 덮고 있던 투명한 막이 붉게 번지기 시작했다.

마치 검붉은 장막이 하늘 전체를 드리운 듯한 광경, 보라색이었던 오로라는 이제 자주색이 되어 신비로운 빛을 붉은 밤하늘 위로 흩뿌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내 정령력의 그릇이 껍질을 깨고 다음 단계로 올라섰다는 걸.

벽을 넘은 것이었다.


벅찬 희열에 몸이 떨려왔다.


‘됐다! 정말 됐어!’


언젠가는 가능할 거라 믿고 있고 있었다.

하지만 고작 이 년 만에 해내다니.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십 년을 바라보고 있던 경지가 지금 이 순간 내게 와준 것이었다.


나지막이 내 파트너를 불러봤다.


“노움.”


그러자 흙속에서 귀여운 흙두더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간 나와 함께 하며 수없이 내 목숨을 구해줬던 내 친구, 지금 나는 이 녀석을 하급 정령인 ‘노인’으로 진화시킬 수 있는 그릇을 갖춘 상태였다.

그러면 녀석은 나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진정한 친구가 되겠지.


‘하지만···.’


녀석을 쓰다듬어주며 아쉬운 마음을 삼켰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녀석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미안해, 노움.’


그러자 녀석이 괜찮다는 듯 작은 앞발로 내 손을 살짝 두드렸다.


나는 진심으로 이 작은 친구를 좋아했다.

하지만 앞으로의 성장 방향을 생각했을 때 내게 더 필요한 건 바람의 정령이었다.


아까 세라인이 내게 전투술을 가르쳐달라고 했을 때 나는 바람의 하프엘프인 그녀가 나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얘기해줬었다.

그리고 그건 빈말이 아니었다.

완력이 약한 대신 동작이 빠르고 민첩한 엘프족에겐 바람 정령과의 시너지가 최고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내겐 바람의 정령이 필요했다.


아쉬운 마음으로 노움을 쓰다듬으며 녀석을 성장시켜주지 못해 아쉬운 마음을 애써 합리화시켰다.


‘그래, 이곳에서 하급 정령으로 성장시켜봤자 다른 하급정령들처럼 잠들어 버릴지도 모르지.’


그러고는 몸을 일으켰다.

더 늦기 전에 시작해야만 했다.


일단은 동료들이 있는 바위산에서 좀 멀어졌다.

노움을 진화시키는 게 아니라 다른 정령과 계약한다는 사실을 굳이 다른 엘프들에게 알릴 필요는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어느 정도 거리를 벌렸을 때 드디어 입을 열어 주문을 외웠다.

그간 수없이 연습해왔던 바람의 정령을 소환하는 주문이었다.


“ᥪᤛᥪ ᤇ ᡝ ព ᝌ.”


그러자 순간 수많은 정령의 기운이 기지개를 펴듯 자신의 존재를 알려오기 시작했다.

마치 한순간 사방에서 반딧불들이 빛을 뿜어내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아아!”


그 황홀한 느낌에 나도 모르게 탄성을 흘렸다.

수십 수백의 정령들이 내게 자신을 골라달라며 떼를 쓰고 있었다.

절로 웃음이 나왔다.


‘확실히 바람의 정령은 아이 같은 면이 있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그 중 가장 밝은 느낌의 아이를 선택하려 할 때였다.

누군가 갑자기 내게 말을 걸었다.


[그 아이를 선택하려고?]


어딘가 토라진 듯한 목소리, 그것도 새침한 여자 아이의 목소리였다.

그 갑작스런 목소리에 깜짝 놀라 물었다.


“누구?”


하지만 내 질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목소리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너는 보는 눈이 없구나? 그 아이는 얼핏 화려해보일지 모르지만 지구력이 부족해. 얼마 안 되는 힘을 모아서 한 번에 방출하는 타입의. 그래, 좀 속이 부실한 아이지. 나라면 절대 그 아이를 선택하지 않겠어.]


이 목소리는 정령들에게도 들리는 모양이었다.

지목당한 정령이 억울하다는 듯 깜빡거렸다.


그러자 목소리가 화를 냈다.


[지금 너 따위가 감히 내게 화를 내는 거야? 감히 이 샤하라드 님께?]


그 분노가 위협적이었는지 정령의 빛이 슬그머니 줄어들었다.


나는 그제야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아낼 수 있었다.

너무 큰 존재감이라서 모르려야 모를 수도 없었다.


그녀의 정체를 파악한 나는 탄성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와아아!”


그녀는 푸른 반딧불이 같은 바람의 정령들 속에서 홀로 불꽃같이 붉은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처음에 그녀에게 주목하지 않았던 것도 당연했다.

그녀는 바람의 정령처럼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그녀는 마치, 그래, 불타는 바람, 열풍처럼 느껴졌다.

불꽃과 바람의 특징을 모두 갖고 있는 그런 존재였던 것이다.


게다가 내가 감탄한 이유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샤하라드라고?”

[흥, 미천한 것이 감히 내 이름을 불러도 된다고 허락한 적은 없는데?]


헛웃음이 나왔다.

정령은 보통 중급 이상의 존재가 되었을 때 자신의 진명을 갖는다.


그리고 그 진명은 매우 중요한 의미로, 정령은 그것을 부르는 자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계약자 이외의 존재에겐 절대 알려주지 않는 것이 철칙이었던 것이다.


근데 이 정령은 그 진명을 자기 스스로 내게 말해 준 것이었다.

저렇게 철이 없는 정령이라니.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굳이 말 안 해도 알 수 있었다.


‘나와 함께 하고 싶은 거구나?’


그때였다.

문득 나쁜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그녀와 계약하지 않고 진명을 이용해서 나를 따르라고 요구한다면?’


그래도 그녀는 내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남는 정령력으로 다른 정령을 계약하고 그녀의 힘은 이용만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물론 그러면 계약자의 힘이 아닌 본신의 힘을 소모해야 하는 저 정령은 언젠가 힘이 다해 소멸해 버리겠지.


그러니 내게 달콤하게 느껴지는 이 유혹은 그녀를 불행하게 만들고 말 것임에 틀림없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문득 그녀가 다시 말을 걸어왔다.

불안한 듯 살짝 떨리는 목소리였다.


[뭐야? 왜 말을 안 하는 거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이제야 위험성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하여간 바람의 정령들이란.

불의 성질까지 더해져 저런 무모한 성격이 된 건가?


어쩔까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아무리 내가 절반 이상, 아니 기억과 마음까지 따지면 거의 대부분이 인간이라고 해도 일단 종족은 엘프가 아니던가?


그러니 엘프의 친구인 정령을 상대로 그런 사악한 짓을 할 수는 없었다.

문득 내 친구인 노움을 생각했다.

아직 지성은 높지 않지만 내 진정한 파트너인 작은 친구를···.


‘그래, 정령은 정령사에게 그런 존재여야 하겠지.’


마음을 정하고는 부드럽게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진명을 갖고 있는 정령이라니, 너무 감동해서 그래. 나는 아직 그런 정령들과 대화를 해본 적이 없거든.”

[···흥! 너처럼 미천한 것이라면 당연히 그렇겠지.]


이제 조금 안정을 찾은 듯한 목소리에 웃음이 나왔다.


“그래서 말인데, 나와 함께 해주지 않겠어, 샤하라드? 내 친구가 되어줘.”


진명을 말한 이상 그녀에게 거부권은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바로 수락하지 않았다.


[흥! 너는 그릇이 너무 작아. 너와 계약하면 나는 힘을 제대로 쓰지도 못한다고!]


그 말은 사실이었다.

그녀는 지금 하급 정령 정도의 존재감을 보이고 있으니, 나와 계약하면 원래의 십분의 일도 힘을 쓸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나와 같이 가고 싶었기에 진명을 알려준 것이 아닌가.

놀리고 싶은 마음이 살짝 들었지만 최대한 그녀를 기분 좋게 해주기로 했다.


“물론 그래. 나도 미안하게 생각해. 하지만 샤하라드. 나와 함께 가면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 여기와는 다른 세계로 갈 수도 있고 흥미로운 일들이 잔뜩 있을 걸?”


물론 내가 지금 이 게이트에서 죽지 않았을 때의 얘기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자 내 정성스런 말에 샤하라드는 이제야 넘어가는 척을 해주었다.


[흠, 그럴까? 정말이지? 정말 재밌게 해줄 거지?]


웃으며 대답해줬다.


“그럼, 정말이지. 내가 여기서 나갈 수 있도록 네가 도와주기만 한다면 말이야.”

[뭐, 좋아. 그렇게까지 날 원한다면 나도 특별히 한 번만 너와 함께 해 주겠어.]


한 번 만이라···.

한 번 함께하면 계속 같이 가는 건데?


그 철없는 말에 또 다시 웃음이 나왔을 때였다.

갑자기 온몸에 황홀한 전율이 차오르며 몸이 부르르 떨렸다.

샤하라드와 내가 영혼으로 연결된 것이었다.


내 세계가 하늘 멀리로 확장되는 고양감에 환희에 찬 웃음이 나왔다.


“하하하하!”


이렇게 급하게 올 거면서 빼기는.

이런 걸 츤데레라고 하던가?


샤하라드는 이젠 나와 영혼으로 연결되어 내 생각을 다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모른 척 다른 소리를 했다.


[아우, 쫍아. 넌 정말 그릇이 작구나? 이래서 이 샤하라드님을 잘 모실 수 있겠어?]


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으며 대답해줬다.


“그래그래, 미안해 샤하라드. 내가 열심히 그릇을 넓혀서 너를 성장시켜 줄게.”

[흥! 지켜보겠어!]


뿌듯한 마음으로 샤하라드의 투정을 받아주고 있을 때였다.


문득 풀숲을 헤치고 무언가가 나타났다.

몸길이만 4m, 길쭉한 다리를 포함하면 십 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거미였다.


“흐음.”


그걸 보고는 문득 혀로 입술을 핥았다.

만약 아까였다면 급히 세라인과 타키를 불러 합공을 준비했어야 했겠지?

하지만 지금은 어쩐지 간식거리 정도로 보이고 있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제껏 상상만 해왔던 전투방법들을 드디어 실제로 실험해 볼 때였다.

씨익 웃으며 말했다.


“자, 어디 실력 좀 볼까, 샤하라드?”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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