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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반디 님의 서재입니다.

멸망할 세계의 아카데미에서 살아남는 법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겨울반디
작품등록일 :
2023.04.03 10:13
최근연재일 :
2023.04.28 07:00
연재수 :
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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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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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87,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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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2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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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쪽

21 꼰대양의 기사

DUMMY

태양의 기사 슈비츠 라 폰트의 정식 별호는 분명 ‘태양의 기사’였다.

하지만 그와 친분을 맺고 싶어 하던 유저들은 그를 좀 다른 명칭으로 부르곤 했다.


그 중 제일 많이 쓰인 게 바로 ‘꼰대양의 기사’였다.

그놈의 고지식한 기사도 때문에 만나는 유저들마다 모두 속이 터져버렸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었다.


‘그뿐인가? 또 다른 것도 있었지.’


그는 인간족 1티어 영웅이자 최강의 마법 검사인 케이세리아 공주가 대놓고 짝사랑하는 행운아였다.

하지만 동시에 전혀 그녀의 감정을 눈치 채지 못하는 연애 고자이기도 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바로 ‘모태양의 솔로 기사’였다.

그냥 대놓고 부르면 모태솔로기사 슈비츠.


그랬다.

사실 태양의 기사 슈비츠는 유저들 사이에서 대놓고 조롱받던 NPC였던 것이다.


물론 그의 무력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꼰대지만 함께 있으면 듬직하다.’, ‘모태 솔로지만 멋있긴 하다.’라는 평가가 대부분이었으니까.


어쨌든 그가 설사 꼰대처럼 고지식하고 속이 터질 듯 답답하다 하더라도 그를 절대 그냥 보내줄 순 없었다.

그의 무력, 그의 인간관계, 그의 성향.

모두가 내 목표에 큰 도움이 될 테니까.


‘그러니 지금 어떻게든 친분 관계를 만들어야만 해.’


하지만 어떻게?

급히 머리를 굴려 방법을 생각하고는 대화방법을 달리 하기로 결심했다.


‘그래, 고지식 대마왕에게 융통성을 말하려고 했으니 통할 리가. 바보에겐 바보의 언어로. 꼰대에겐 꼰대의 언어로 말했어야지.’


그리고 꼰대라면 나도 한 명 알고 있었다.

그것도 현대 지구에서 무려 성현으로 손꼽히는 전설적인 꼰대를.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살짝 사극톤을 가미해 진중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옛날 어떤 현인께 두 사람의 제자가 차례로 물었습니다. ‘스승님, 정의로운 일을 들으면 바로 실행해야 합니까?’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현인께선 첫 번째 제자에게는 이렇게 답하셨지요. ‘부모님과 스승님이 주변에 계신데 어찌 그분들의 의견도 구하지 않고 바로 행동할 수 있겠느냐.’라고 말이죠.”


그러자 슈비츠가 살짝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내 말에 집중했다.

속으로 씨익 웃음 짓고는 톤을 한 단계 높여 약간 고조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두 번째 제자가 또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스승님, 정의로운 일을 들으면 바로 실행해야 합니까?’라고 말입니다! 그때 현인께선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정의로운 일을 들으면 망설이지 말고 바로 행해야만 한다!’ 라고 말입니다. 그분이 왜 그렇게 대답하셨는지 그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그러자 흠칫한 표정을 지었던 그가 어느새 내 얘기에 빠져 생각에 잠겼다.

그 모습을 보고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역시! 이거였어!’


방금 내가 말한 이야기는 공자와 그의 두 제자 자로와 염유의 일화였다.


과거 한참 힘들었던 시절 동양철학에 빠져 있던 적이 있었다.

논어, 묵자, 관자 등 주로 제자백가 때 책들을 많이 읽었는데, 그때 얻은 가르침들은 내 삶에 큰 영향을 끼쳤었다.


그 당시 알게 된 게 몇 가지 있었는데, 그 중 한 가지가 공자가 많은 부분 오해를 받고 있다는 점이었다.

공자는 우리가 막연히 상상하듯 꼰대의 대종사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가르침 중에는 몇 천 년을 내려올 만큼 훌륭한 것들이 훨씬 더 많았다.


그때 드디어 생각을 마친 슈비츠가 의문이 가득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전혀 모르겠구려. 그분이 진정 현인이 맞단 말이오? 어떻게 현인께서 제자들에게 그런 모순된 대답을 해주실 수가 있단 말이오?”


그래, 너로선 잘 모르겠지.

빙긋이 웃으며 대답해줬다.


“그래서 다른 제자들도 당신처럼 물었습니다. ‘왜 같은 질문에 다르게 대답하십니까?’라고 말이죠. 그러자 현인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첫 번째 제자는 성격이 급해 옳은 일을 행한다 해도 자기 몸을 해치게 될 확률이 높다. 그래서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하라는 뜻으로 주변의 의견을 물으라 한 것이다.”


공자의 제자 중 단순, 호쾌하기로 유명한 자로에 대한 얘기였다.


“또한 두 번째 제자는 성격이 소심해 결심을 했다고 해도 잘 실천하기가 힘드니 결단력을 가지라는 뜻으로 그렇게 말한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어떻습니까? 아직도 그 분이 현인이 아닌 것 같습니까?”


그러자 슈비츠는 완전히 충격 받은 표정이 되고 말았다.

그가 멍한 표정으로 되뇌었다.


“그것이 설사 정의라 해도 상황과 사람에 따라 달라야 한단 말이오? 하지만 그건···.”


혼란스러워 보이는 그에게 강한 어조로 말을 덧붙여줬다.


“아까 만약 그와 당신이 싸웠다고 칩시다. 그래서 승패를 떠나 그 사실이 판데온 쪽에 알려진다면? 그래서 만약 당신은 입학이 거부됐는데 아까 그 백작가의 후계자는 가문의 힘으로 그 일을 무마하고 입학하게 된다면?”


그러자 그가 바로 대꾸했다.


“그런 건 중요하지···.”


하지만 그의 말을 끊으며 계속해서 말했다.


“예, 중요하지 않다고 말씀하시겠죠. 하지만 그렇게 되면 그는 판데온 안에서 아까처럼 여러 사람에게 옳지 않은 행동들을 계속하게 될 겁니다. 당신은 결국 그걸 막지 못할 거고요. 그럼 그걸 막을 힘도 없는 많은 이들이 결국 그에게 같은 일을 당하게 되겠군요.”


그 말에 슈비츠는 입을 달짝거리면서도 다음 말을 내뱉지 못했다.

그의 눈빛은 아까보다도 더 큰 혼란에 빠져 있었다.

그런 그에게 쐐기를 박아줬다.


“당신의 정의라는 건 뭡니까? 불의를 막아내는 겁니까, 아니면 정의를 지켰다는 자기만족입니까? 계속 말씀하시던 기사도라는 게 다른 사람들은 어찌됐든 스스로 옳은 행동을 했다고 만족하면 끝나는 거였습니까?”


그러자 슈비츠는 그대로 딱딱하게 굳어버리고 말았다.

완전히 멍해진 얼굴로 내가 한 말을 되뇌었다.


“···정의를 지켰다는 자기만족?”


그러고는 또 생각에 빠져들었다.

함께 얘기하던 사람을 앞에다 세워두고 저렇게 자기 세계에 빠져들다니, 정말 짜증이··· 나기는커녕 흐뭇한 웃음이 지어졌다.


꼰대양의 기사가 독특한 거야 당연한 얘기지만, 내 말이 그에게 큰 충격을 준 것 같지 않은가?

이제는 진짜 그의 뇌리에 나라는 사람이 강렬하게 각인됐을 것 같았다.


‘내 또래에 이렇게 현명한 사람이 있었다니! 뭐 이런 생각을 하겠지?’


물론 초면에 그의 말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충격을 준다는 게 꼭 좋은 접근방법일 수는 없었다.

나도 다른 사람이었다면 다른 방법을 썼겠지.


하지만 이 슈비츠라면 괜찮을 것 같았다.

좀 꼰대라 그렇지 순수하고 올곧게 정의를 추구하는 그라면 내 말이 틀리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상 오히려 고마워 할 테니까.


그래서 그의 생각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기로 했다.

태양의 기사 슈비츠 라 폰트와 친분을 쌓을 수 있다면야 이 정도 기다림 쯤은 일도 아니었다.


그때였다.

문득 모든 일의 원인이 됐던 갈색 머리 소녀가 내게 다가와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저기, 감사합니다. 도와주셔서.”

“네? 아, 네!”


문득 그녀를 완전히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슈비츠에 대한 사심 때문에 정작 가장 놀랐을 사람을 신경 쓰지 못했던 것이었다.

살짝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어색하게 웃으며 그녀의 인사에 대답했다.


“아닙니다. 도움을 준 건 저쪽분이지 저는 딱히 한 일도 없는 걸요. 그나저나 아까 일로 마음이 좀 상하셨겠어요. 몸은 괜찮으신가요?”


그러자 그녀가 생긋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에요. 전혀 상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이런 대우를 받아본 게 처음이라 재미있던 걸요?”


응?

아까 그게 재미있었다고?

그 이상한 대답에 그녀의 표정을 살펴보니 아무래도 진심인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면 아까도···.’


문득 아까 그녀가 거한에게 밀려서 넘어졌을 때도 헤실헤실 웃었던 장면이 떠올랐다.


‘뭐지? 좀 이상한 여자앤가? 보기엔 멀쩡해 보이는데?’


그녀는 살짝 작은 키에 귀여운 외모를 지닌 십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소녀였다.

예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엘프들 사이에 있었던 내 눈엔 매우 평범하게 보이는 얼굴.

대신 반짝반짝 빛나는 눈망울만큼은 무척 영리해 보이고 있었다.


그때 그녀가 조심스럽게 다시 말을 걸었다.


“저, 아까 그 얘기는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같은 진리라 해도 적용하는 방법은 상황과 사람에 따라 달라야 한다는 교훈을 그런 식으로 전달할 수 있다니. 정말 현명하신 분이라고 생각했어요.”


응? 바로 핵심을 파악했어?

아까 말한 고사의 진의를 바로 깨달아버린 그녀의 영민함에 살짝 감탄하고 말았다.

어쩌면 보기보다 더 똘똘한 아이인 것 같았다.


일단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현명은요. 그저 어디선가 들은 얘기를 그대로 베낀 것뿐인데요.”

“어디선가 들은 얘기를 상황에 맞게 적용할 수 있다면 그건 이미 자기 거라고 들었거든요. 저도 그저 어디서 들은 말일 뿐이지만요.”

“예? 하하하하!”


생긋 웃으며 말한 그 재치 있는 대답에 그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지난 이 년 간 순둥이 오리스와만 대화하다 이런 식의 대답을 듣게 되니 너무도 신선했기 때문이었다.


빙긋이 웃으며 다시 말했다.


“아무튼 칭찬 감사드립니다.”


그러자 그녀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한테 감사하실 필요는 없지요. 그냥 들은 얘기를 했을 뿐인데요.”

“흠, 적절히 쓰시는 걸 보니 이미 그쪽 분 것 같아서요.”

“오오!”


슈비츠의 사색이 길어지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대화를 계속 이어갈 수 있었다.

처음 본 사람, 그것도 여자인데도 어쩐지 어색함이 없는 신기한 기분.

이런 적은 처음인 것 같았다.


엄청난 미인이 아니어서일까?

아니면 나이가 어려보이니 여동생 같은 느낌이어서 그런 건가?

어쨌든 무척 즐거웠다.


문득 그녀의 몸을 슬쩍 보고 물었다.


“근데 정말 기사학부로 지원한 게 맞아요? 몸보단 머리를 훨씬 잘 쓰실 것 같은데요.”

“원래 마법을 오랫동안 배웠었는데 요즘 갑자기 검술도 배워보고 싶어져서요. 그냥 한번 경험삼아 지원해 봤어요.”

“호오, 마검사를 꿈꾸시는군요. 멋진데요?”


사실 이 질문을 한 건 체격도 작고 딱히 무술을 익힌 몸으로 보이지 않아 걱정돼서 물어본 거였다.

근데 입학시험을 보기 위해서도 꽤 큰 금액이 필요한 판데온에 그냥 경험삼아 지원했다라···.


일단 꽤 부유한 집안의 사람이라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의도로 지원했다면 같이 판데온에 합격하기는 쉽지 않겠는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녀가 약간 수줍은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근데 그쪽 분 이름은 뭐예요? 대화 하면서 계속 그쪽 분이라고 하기가 좀 그래서···.”

“아, 그것도 그렇네요. 제 이름은 쥰이라고 합니다. 쉽죠? 그쪽은요?”

“제 이름은 케이세···. 아니, 그냥 케이라고 불러주세요.”


케이세?

문득 머릿속에 익숙한 이름 하나가 떠올랐다.

바로 옆에서 사색에 잠겨 있는 태양의 기사 슈비츠를 짝사랑했던 인간족 최강의 여캐 케이세리아 공주가···.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러자 그녀가 수줍은 표정으로 내 시선을 피하며 물었다.


“저기, 왜 그렇게 보시는지···?”

“네? 아, 죄송합니다!”


하긴.

절대 그럴 리가 없었다.

게임 소개책에서 봤던 케이세리아 공주는 백금발의 글래머러스한 팔등신 미인이었으니까.

그에 비하면 지금 눈앞의 소녀는···.


‘작고, 작고, 갈색머리잖아?’


물론 작다는 건 키 얘기였다. 흠흠.

아무튼 그러니 절대 동일 인물일 리가 없었다.

대충 말을 얼버무릴 겸 웃으며 말했다.


“너무 귀여우셔서 저도 모르게 자세히 보게 됐네요. 죄송합니다.”


그러고는 바로 돌처럼 굳어지고 말았다.


‘맙소사, 내가 이딴 소리를 하다니···.’


온 지 얼마 안 된 이 세계는 물론 이십 대 중반까지 살았던 계지훈 때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던 소리였다.

아니, 애초에 계지훈 땐 이렇게 여자랑 웃으며 대화를 해 본 적 자체가···.


문득 불안한 마음에 그녀를 바라봤다.


‘불쾌해하면 어떡하지?’


그러자 그녀는 내가 두 번의 삶을 살며 여자와 대화할 때 단 한번도 본 적 없는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바로 빨갛게 상기된 부끄러운 표정이었다.


마법처럼 새빨개진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 쥔 그녀가 소리쳤다.


“네, 네?! 그, 그런 말은 한 번도 못 들어봤는데. 꺄악! 어떡해!”


멍하니 그녀를 바라봤다.

아무리 내가 여자를 잘 몰라도 그게 절대 기분 나쁜 표정이 아니라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뭔가··· 감격스러웠다.


‘내가 이런 말을 해도 좋아해 주는구나.’


이게 잘생긴 하프엘프가 된 효과일까?

사실 알 수 없었다.

계지훈 때는 애초에 이런 말을 할 기회조차 없었으니까.


하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세계로 와서, 하프엘프가 되서 다행이다.’


그때였다.

슈비츠가 사색에서 깨어났다.

그러고는 새빨개진 얼굴로 꺅꺅거리고 있는 케이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바로 내게 물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께 상황에 따라 자신의 신념을 굽히는 자는 기사가 아니라는 교육을 받고 자라왔소. 그 얘기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시오?”


잠시 그의 눈을 바라봤다.

혼란스럽고 어두워 보이는 진중한 눈.

적어도 그에겐 무척 중요한 가치에 관한 질문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해봤다.


그와 친분 관계를 쌓고 싶다면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걸 나 또한 중요하게 생각해줄 필요가 있었다.

적어도 내가 친구를 사귀는 방법은 그랬다.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아까의 얘기는 상황에 따라 신념을 굽히라는 얘기는 아닐 겁니다. 오히려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 그 실행 방법을 유연하게 가져가라는 얘기일 테지요. 아까 그자와의 일로 돌아간다면, 진짜 중요한 건 당신이 기사답게 행동하는 게 아니라 그자가 다른 이들에게 불의한 일을 저지르는 걸 막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자 슈비츠가 충격 받은 표정이 되어 내 말을 되뇌었다.


“신념을 굽히는 게 아니라, 신념을 지키기 위해 방법을 유연하게 가져간다?”


옆에 있는 케이라는 소녀는 바로 핵심을 깨달은 것 같던데, 하긴 이건 슈비츠의 이해력이 떨어진다기 보단 케이의 이해력이 뛰어난 게 맞는 것 같았다.


이왕 말을 한 김에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나름 교사를 목표로 하던 적이 있어 그런지 혼란스러워 보이는 그에게 제대로 된 조언을 해주고 싶었다.


‘이게 바로 교사병인가?’

“그리고 예전에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청색 물감은 남색 풀에서 나왔지만 그보다 더 파랗다고 말이지요. 아버님께서 바라시는 게 당신의 아들이 자신과 똑같아지는 것일까요? 어떤 부모든 자기 자식은 당신보다 나아지기를 바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아버님의 말씀을 철저히 따르는 것보단 아버님보다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는 게 더 현명한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건 계지훈일 때 항상 하곤 했던 생각이었다.

적어도 내 아버지보단 나은 인간이 되겠다고 늘 이를 갈며 되뇌었었으니까.

문득 씁쓸한 웃음을 짓고는 한 마디를 덧붙여줬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제 생각일 뿐입니다. 판단은 그쪽 분께서 하셔야겠지요.”


그러자 잠시 눈을 질끈 감았던 슈비츠는 잠시 후 다시 눈을 뜨고는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아직 판데온에 입학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스승을 만난 기분이군요. 고맙습니다. 저는 슈비···. 라고 불러주십시오.”


그렇게 말한 그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훗날 인간족의 영웅이 될 태양의 기사 슈비츠 라 폰트가 먼저 내민 손이었다.


‘시작이 좋은데?’


어쩐지 앞으로 판데온의 생활도 잘 풀릴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쩌면 이 세상의 멸망을 막는 것까지도.


그가 내민 손을 힘껏 맞잡으며 대답해줬다.


“쥰이라고 합니다. 스승보단 친구면 족할 것 같군요. 반갑습니다, 슈비.”


그렇게 인간족 네임드 영웅 한 명을 친구로 만들 수 있었다.

아직 판데온에 입학도 하기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게다가 이 녀석과 함께 있으면 인간족 최강 영웅인 케이세리아 공주와도 친분을 다질 수 있단 말이지?’


다가 올 앞날이 너무 기대가 됐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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