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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반디 님의 서재입니다.

멸망할 세계의 아카데미에서 살아남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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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반디
작품등록일 :
2023.04.03 10:13
최근연재일 :
2023.04.28 07:00
연재수 :
27 회
조회수 :
19,687
추천수 :
406
글자수 :
187,515

작성
23.04.0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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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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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2 웨이브

DUMMY

전방에서 난장을 벌이고 있는 멧돼지 여덟 마리와 고블린 수십 마리를 처리할 능력은 내게 없었다.

하지만 저 후방의 멧돼지 두 마리라면 잡아낼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그리고 내가 놈들을 처리할 수만 있다면 곧 궁수들이 전방의 상황도 바꿔줄 수 있을 것이었다.


‘자, 그러면 어느 쪽부터···.’


두 마리 중 어디로 먼저 갈 것인지를 고민했다.

놈들은 각각 입에다 하프엘프 한 명씩을 물고는 사방으로 날뛰며 이리저리 난동을 피우고 있는 중이었다.


“아아아악!”

“살려줘!”


멧돼지에게 물린 하프엘프들은 지푸라기 인형처럼 가볍게 휘둘러지고 있었다.

완전히 으스러진 것처럼 보이는 몸통과 몸을 흠뻑 적신 피. 설사 구해낸다 해도 살아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이, 이제 어떡해?!”

“화살을 쏴!”

“하지만 로난이 맞으면?!”

“이쪽으로 온다! 피해!”


궁수들은 우왕좌왕하며 좀처럼 해법을 찾지 못했다.

한심하기 그지없는 모습들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들은 제대로 된 전투훈련을 받은 적이 없었으니까.

나를 포함한 저들은 그저 하프엘프, 이 생명의 숲에서 소모품에 불과한 존재들이었으니까 말이다.


나는 둘 중 좀 작은 쪽을 먼저 상대하기로 결심했다.

그러곤 바로 튕기듯 달려갔다.


타다닥!


바람처럼 달린 내 몸이 순식간에 멧돼지의 오 미터 앞쪽까지 접근했을 때였다.

바로 소리쳤다.


“노움!”


그러자 앞쪽의 땅이 갑자기 불쑥 솟아오르며 발판을 만들어줬다.

내가 소환한 땅의 최하급 정령 노움의 힘이었다.


기다렸다는 듯 그걸 밟고 힘껏 뛰어 올랐다.


“합!”


그 순간, 발판이 다시 불쑥 솟구치며 널뛰기를 하듯 나를 공중으로 튕겨 올려줬다.


투웅!


지난 이 년간 호흡을 맞춘 땅의 정령 노움의 멋진 타이밍이었다.


화아악!


내 몸은 거의 새처럼 날아올랐다.

하늘 위에서 피부를 스치는 상쾌한 공기와 언제 느껴도 기분 좋은 자유로운 부유감.

하프엘프가 된 후 내가 가장 좋아하게 된 것이 있다면 바로 이 느낌이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거의 6, 7미터 높이까지 날아올랐던 나는 이내 다시 땅을 향해 추락하기 시작했다.

정확성 따위는 전혀 없는 자유낙하였다.


문득 땅을 확인하자 내 몸이 멧돼지의 왼쪽 옆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이대로는 헛되이 놈의 옆으로 추락하게 될 상황이었다.


‘약간 오른쪽인가?’


이렇게 높이 뛰어올랐던 이유는 파괴력을 증폭시키는 동시에 아래쪽을 보는데 적합한 멧돼지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만큼 정확성도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가만히 있는 것도 아니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멧돼지들의 위로 정확히 떨어진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내가 계약했던 정령이 바람의 정령이었다면 허공에서 방향을 조종할 수 있었을 텐데, 내게는 그것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걸 꼭 내가 할 필요는 없잖아?’


아래로 떨어지며 크게 소리쳤다.


“파르암!”


그러자 궁수 중 한 명이 내 쪽을 향해 손을 뻗었다.

바람의 최하급 정령 실프와 계약한 내 친구, 파르암이었다.


순간 내 주변의 공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휘이이이이잉!


바람이 내 몸을 감싼 채 밀어주고 있었다.

마치 작고 부드러운 손이 나를 슬쩍 밀어주는 듯한 묘한 느낌.

내 몸은 곧 자연스럽게 곡선을 그리며 난동을 부리고 있던 멧돼지의 바로 위쪽으로 추락할 수 있었다.

딱 멧돼지의 머리 바로 위쪽이었다.


“좋았어!”


크게 소리치는 동시에 마음속으로 내 정령을 불렀다.


‘노움!’


그러자 멧돼지의 왼쪽 발을 디딘 땅이 푹 꺼지며 놈의 몸이 옆으로 비틀 기울어졌다.

딱 원하는 각도였다.

눈을 번뜩이며 단창을 힘껏 내리 찍었다.


“하아압!”


푸우욱!


“뀌이이이이이익!”


촤아아악!


몸으로 확 튀는 뜨거운 피와 함께 짜릿한 손맛이 느껴졌다.

두꺼운 살 속으로 푹 들어간 단창이 놈의 척추를 부순 느낌이었다.

동시에 천천히 옆으로 무너지는 놈의 거대한 몸체.


쿵!


짜릿했다.

주먹을 불끈 쥐며 이를 악물었다.


‘좋았어!’


한 번의 싸움에서 이런 거대한 멧돼지를 두 마리나.

여태껏 한 번도 세워본 적이 없던 업적이었다.

그간의 내 성장이 몸으로 느껴지는 듯했다.


하지만 바로 표정을 굳히고 고개를 들었다.

기뻐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아직 여전히 급박한 상황이었으니까.


바로 다른 멧돼지 쪽으로 달려가며 내 친구 파르암을 향해 소리쳤다.


“전방으로 화살을 쏴줘! 저러다 다 죽겠다!”


표면적으로야 파르암에게 외친 소리지만 다른 궁수들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전방에선 현재 멧돼지들이 흙벽을 부수고 그 틈 사이로 고블린들이 뛰어들어 블로우건을 날리고 있었다.

만약 저 상황이 더 길어진다면, 탱커 역할을 맡았던 땅의 하프엘프들은 그대로 떼몰살을 당하게 될 것이 틀림없었다.


그때였다.

가장 거대한 멧돼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던 나는 순간 그 자리에 끼익! 멈춰야만 했다.

동족의 비명을 들었기 때문인지 놈이 거대한 몸을 돌려 옆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놈의 커다란 눈동자가 정확히 나를 향하고 있었다.


‘저놈.’


놈이 나를 주목하고 있었다.

짐승 같지 않게도 선명한 감정을 품고 있는 커다란 눈으로.

놈의 코에서 뜨거운 콧김이 뿜어져 나왔다.


푸우우우!


그러곤 바로 물고 있던 하프엘프를 던져 버렸다.


털썩!


이제 빈 몸이 된 놈은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승합차만한 크기 때문인지 아니면 우두머리로서의 카리스마 때문인지, 그 동작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거의 4, 5미터는 될 법한 길이와 2미터는 넘을 법한 체고, 모르긴 몰라도 체중이 2톤은 넘을 것 같았다.


‘진짜 괴수로군.’


그리고 그 괴수가 지금 노골적으로 나를 노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두려움을 떨쳐내려 중얼거렸다.


“괜찮아. 할 수 있어.”


놈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천천히 무릎을 굽혀 무게중심을 낮췄다.

어디로든 튀어나갈 수 있는 태세였다.


그러곤 등에서 세 번째 단창을 꺼내 빙그르르 돌리고는 꽉 움켜잡았다.

그것을 놈을 향해 겨누며 손가락을 까닥했다.

올 테면 와보라는 듯한 자세였다.


그러자 놈이 다시 콧김을 크게 내뿜었다.


푸우우우!


그러고는 한순간 전차가 돌진하듯 내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두두두두두!


거대한 체구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의 순속이었다.

30 미터, 20 미터.

놈과의 거리가 순식간에 줄어들고 있었다.

빠르게 확대되고 있는 놈의 동체.

저런 놈에게 정면으로 받쳤다간 가루가 되어버릴 것이 틀림없었다.


“좋아. 괜찮아.”


그 엄청난 압박감 속에서도 나는 이를 악문 채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여전히 무게중심을 낮춰 단창을 겨눈 채 놈의 돌진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기다려야만 했다.

놈이 나의 영역, 노움을 수족처럼 움직일 수 있는 영역으로 들어올 때까지.


10m, 6m, 3m.


‘지금!’


손바닥을 아래로 확 내렸다.

그러자 놈이 디디려던 발밑이 푹 꺼졌다.

단창은 주의를 끌기 위한 미끼였을 뿐, 주공은 노움이었던 것이다.


쑤욱!


“꾸이익!”


앞발이 밑으로 푹 꺼지자 놈이 당황한 소리를 냈다.

아까와 똑같이 정확한 타이밍에 만든 구덩이였다.


그 순간 다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러자 확 조여들어 놈의 발을 잡아버린 땅.

놈이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앞으로 구르듯 붕 떠오르고 있었다.


우지직!


흙으로 꽉 잡아버린 놈의 앞다리에서 아름드리나무가 꺾어지는 듯 엄청난 소리가 났다.

동시에 노움이 끝까지 붙잡지 못한 다리가 확 빠져나오며 놈의 거대한 몸체가 공처럼 앞으로 굴러왔다.


우르르르릉!


“읏차!”


가볍게 옆으로 몸을 날려 피했다.

그러자 내 바로 옆으로 놈이 거대한 바위처럼 맹렬하게 구르며 지나갔다.


우르르르릉!


경험상 아무리 거대한 놈이라도 저걸 당하고 나면 잠시 동안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몸이 충격을 버텨낸다 해도 뇌가 버티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쾅! 쾅! 콰아아아앙!


여태 만난 멧돼지 중 가장 거대했던 놈은 놀랍게도 아름드리나무 두 그루를 산산이 부숴버리고는 세 번째 나무에 막혀 마침내 정지했다.

예상한대로 몸이 거꾸로 뒤집어진 채 꿈틀거리며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상태였다.


“후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대로 당장 일어나지는 못할 것 같았다.


하지만 오래 놔둘 순 없었다.

마기에 침식된 짐승들, 특히 저렇게 거대한 놈들은 회복력까지도 진짜 괴물 같다는 걸 그간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으니까.


단창을 들고는 바로 놈에게 달려가려 했다.


“자, 마무리를···!”


하지만 막 달려가려던 나는 바로 몸을 멈춰 세웠다.

주변에서 지켜보고 있던 궁수들이 이제야 놈을 향해 화살을 날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피피핑! 피핑! 핑!


바람의 정령으로 가속된 화살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커다랗게 원을 그리며 멧돼지의 몸을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화살촉이 발갛게 빛나고 있는 화살들이었다.


푹! 푸푹! 푸푸푹!


“뀌이이이익!”


화살들은 멧돼지의 두꺼운 가죽을 뚫고 놈의 몸에 깊숙이 박혀들었다.

등은 물론, 배, 눈, 심지어 입속으로 들어가는 화살도 있었다.


여기 와서 알게 된 사실인데 지구에서 당연하게 믿고 있던 엘프가 모두 명궁수라는 고정관념은 순 거짓말이었다.

애초에 엘프의 빈약한 근력으로 쏘는 화살들이 어떻게 위협적일 수 있겠는가?


엘프의 화살이 위협적인 이유는 단지 바람의 정령 때문이었다.

조준 안하고 대충 쏴도 바람의 정령이 알아서 가속해주고 목표에 명중시켜줬던 것이다.


그러니 활을 잘 쏘는 엘프는 오직 바람의 정령과 계약한 엘프들 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자기 실력도 아닌 그걸 잘 쏜다고 할 수 있는 건지는 좀 의문이긴 하지만.


“뀌이이이이익!”


순식간에 고슴도치가 된 멧돼지는 어떻게든 몸을 일으켜보려 발버둥 쳤다.

자신의 속도와 질량에 의해 큰 충격을 입은 데다 앞다리 하나까지 부러진 상태임에도 그랬다.

역시 엄청난 생명력과 독기가 아닐 수 없었다.


‘쯧, 하지만 그래봤자지.’


짧게 혀를 차며 그 모습을 지켜봤다.

놈의 생명력이 아무리 엄청나다 해도 저렇게 된 이상 어쩔 수가 없었다.

엘프 궁수의 화살이 위협적인 건 단지 바람의 정령 때문만은 아니었으니까.


“꾸이이이익.”


놈이 마침내 간신히 몸을 일으켰을 때였다.

눈과 몸, 입속에서 화살들이 갑자기 폭발하듯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화르르르륵!


“꾸이이이이익!”


놈은 순식간에 불덩어리가 되고 말았다.

화살촉에 스며들어있던 불의 정령들 때문이었다.

불의 하프엘프들이 활촉에 심어놨던 불의 최하급 정령 샐라들이 멧돼지의 몸속에서 기지개를 펴고 있는 것이었다.

바람의 하프엘프들과 불의 하프엘프들이 페어를 이루는 이유였다.


“뀌이이이이이이익!”


간신히 몸을 일으켰던 멧돼지는 비명을 지르며 다시 땅으로 넘어져서는 미친 듯 발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놈의 몸짓이 멀리 떨어져 있는 하프엘프들에게 위협이 될 수는 없었다.


엘프의 화살이 위협적인 이유가 바로 저런 것들 때문이었다.

빗나가지도 않는 화살이 몸에 박히면 저렇게 내부에서 폭발을 일으키니까.

폭발 시점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휴대용 벙커버스터라고나 할까?


거기까지 지켜보다가는 미련 없이 고개를 돌리고는 다시 전방 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이제 정상적으로 궁수들의 사격이 개시된 이상 여기서 내가 할 일은 다 한 상태였다.

그러니 이젠 초토화된 전방에서 내 친구를 구해낼 차례였다.


‘오리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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