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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반디 님의 서재입니다.

멸망할 세계의 아카데미에서 살아남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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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반디
작품등록일 :
2023.04.03 10:13
최근연재일 :
2023.04.28 07:00
연재수 :
27 회
조회수 :
19,663
추천수 :
406
글자수 :
187,515

작성
23.04.26 07:00
조회
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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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글자
13쪽

25 베가드

DUMMY

균열을 넘어 발을 디딘 곳은 푹신한 백사장이었다.

그것도 푸른 바다와 맞닿아 있는 어느 해안가의 그림 같은 백사장.


촤아악!


투명한 에메랄드 빛 바다에서 하얀 파도가 밀려오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문득 주변을 둘러봤다.


“뭐야, 여긴?”


뭔가 예상 밖이었다.

좀 더 가혹한 환경을 예상했었는데···.


맑게 갠 푸른 하늘, 속이 훤히 비치는 에메랄드 빛 바다, 하얗게 빛나는 백사장.

이곳은 열대의 어느 바닷가인 듯했다.


날씨도 화창했다.

나를 비롯한 우리 조원 모두가 고개를 들어 태양을 보지 못하고 하늘에서 내리쬐는 뜨거운 햇살에 눈을 찡그려야만 할 정도였다.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려보자 해안 맞은편으로 빽빽하게 자라있는 열대수림이 눈에 들어왔다.

멍하니 중얼거렸다.


“이건 너무··· 아름답잖아?”


그랬다.

들어오기 전 느꼈던 불길함이 무색하게 느껴질 만큼이나 무척 아름다운 곳이었다.

이런 곳에서 일주일간 생존하기라니, 어쩐지 테스트보단 휴양처럼 느껴질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불길했던 내 느낌이 착각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살짝 들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환경이 아닌 사람이 문제였다.

우리 조원 모두가 주변을 충분히 인식했을 때쯤 베이어쩌구 백작가 후계자란 놈이 갑자기 행동을 개시했던 것이었다.


그의 첫 목표는 계속 눈에 띄었던 덩치 큰 남자였다.

놈이 그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이봐, 너 붉은 도끼 용병단장 라만 탄의 아들인가?”


그의 갑작스런 말에, 그리고 그가 말한 내용에 모두가 그쪽으로 시선을 집중했다.

붉은 도끼 용병단이라면 이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강력한 용병단이었다.

이 세상에 나온지 얼마 안 된 나도 들어봤을 만큼이나 유명한 용병단.


그 단장인 라만 탄의 위명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 세계에 딱 열 명 있다는 특급용병 중 한 명이었으니까.


그 말을 들은 덩치 큰 남자가 무심한 눈빛으로 반문했다.


“그렇다면?”


그러자 거만하게 씨익 웃은 녀석이 대답했다.


“역시 맞았군. 예전에 붉은 도끼 용병단에 의뢰를 했던 적이 있었지. 나는 베이트라스 백작가의 후계자인 베가드 라 베이트라스다.”


그의 말에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던 남자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그러자 베가드가 자신만만한 태도로 말했다.


“나와 함께하자. 우리가 함께 한다면 이곳에서든, 이곳을 나가서든 무척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좋은 결과라, 무슨 좋은 결과를 말하는 거냐?”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질문하는 그에게 베가드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예를 들면 너는 판데온을 졸업하고 나서도 꾸준히 거래할 수 있는 고객과 스폰서를 동시에 얻게 되겠지.”


그 말에 거한의 눈빛이 예리하게 번뜩였다.

베가드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거만하게 웃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는 다른 지원자들을 주욱 둘러보며 말했다.


“수준에 안 맞는 것들과 대등한 척 놀아주는 짓을 안 할 수 있을 테고 말이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눈빛이 내게 잠시 멈췄던 것을 놓치지 않았다.

역시 짜증나는 놈이 아닐 수 없었다.


라만 탄의 아들이라는 남자는 그의 말을 듣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의 신경은 온통 그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그의 대답 여하에 따라 이번 테스트, 더 나아가 앞으로의 생활에 큰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걸 모두가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베가드가 저 덩치 큰 자를 얻는다면 꽤나 골치 아파질 것 같았다.


그때였다.

생각을 마친 듯 베가드를 바라본 거한이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은 폴 탄이다.”


젠장···.

아무래도 진짜 골치 아파질 모양이었다.


그의 대답을 들은 베가드가 만족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베가드 라 베이트라스다. 앞으로 좋은 거래 상대가 되기를 기대하지.”


그렇게 우리 조 제일의 악당과 제일의 무력이 손을 잡았다.

조원 모두는 걱정스런 얼굴로 그들의 행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폴 탄을 포섭한 베가드가 이제 주변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모두 들었겠지만 나는 우리 카야플리아 왕국에서 명망 높은 베이트라스 백작가의 후계자인 베가드 라 베이트라스다. 그리고 본 공자는 나와 격이 맞지 않는 자들이 내게 머리를 조아리지 않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머리를 조아리지 않는 걸 싫어한다니.

저런 말을 자신 있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부터 일단 정상적인 놈은 아니었다.


거기까지 말한 놈은 오만한 눈빛으로 우리를 주욱 훑어봤다.

그런 후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니 제안하겠다. 내게 머리를 조아릴 자는 내 밑으로 와라. 그럼 무사히 이곳에서 생존할 수 있도록 보호해주겠다. 그리고 앞으로 학교에서는 물론 졸업 후에도 우리 베이트라스 백작가의 영향력 아래서 편히 살 수 있게 해주지. 물론 그게 싫다면 강요하진 않겠다. 하지만 이후의 삶이 그리 즐겁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의 뒤쪽엔 원래 함께 있던 똘마니 두 명이 킬킬 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거대한 덩치의 폴 탄이 말없이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무척이나 위압적인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자 주변의 지원자들 몇몇이 눈살을 찌푸렸고, 몇몇은 겁먹은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그때였다.

문득 한 명이 큭큭 웃으며 말했다.


“클클클클, 웃기는구나. 기껏해야 가문 자랑밖에 할 줄 모르는 애송이가 잘난 척 으스대는 꼴이라니. 인간족들이 쓸데없는 가치에 목을 맨다더니만 정말 그렇군. 어이, 애송아. 남을 무릎 꿇게 하고 싶으면 너 자신의 힘을 보여라. 꼴사납게 네 것도 아닌 것들로 잘난 척 하지 말고.”


그렇게 말한 이는 내가 계속 눈여겨보고 있던 검은 호랑이 수인, 묵시안 드라카였다.

미래에 최고의 악당이 될 그가 현재 최고의 악당에게 시비를 걸었던 것이었다.


그러자 그의 말은 베가드를 제대로 열 받게 하고 말았다.

순식간에 얼굴이 시뻘게진 베가드가 드라카를 노려보며 씹어뱉듯 말했다.


“미천한 수인좀 놈이 감히 베이트라스 백작가의 후계자인 나를 비웃어?”


그러곤 폴 탄을 향해 소리쳤다.


“폴 탄! 저놈이 우리의 첫 거래 대상이다. 할 수 있겠지?!”


그러자 폴 탄이 묵묵히 팔짱을 풀고는 드라카를 향해 천천히 걸어 나갔다.

거대한 벽이 걸어가는 듯한 박력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걸 본 드라카는 코웃음을 쳤다.


“흥!”


그러고는 한 순간 맹수처럼 달려들며 주먹을 날렸다.


부아아앙!

퍼억!


보기만 해도 엄청난 힘이 느껴지는 일격이었다.

하지만 바위라도 부술 것 같던 그의 주먹은 결국 아무것도 부수지 못했다.


“음?”


폴 탄이 가볍게 그의 주먹을 받아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막은 게 아니라 그대로 주먹을 잡아버린 모습, 순간 드라카의 표정에 놀라움의 감정이 떠올랐다.


그 순간이었다.

이번엔 폴 탄이 반대쪽 주먹을 날렸다.


부아아앙!


마치 공성추 같은 주먹.

하지만 드라카 역시 그것을 잡아냈다.


턱!


“호오!.”


폴탄의 눈 또한 이채를 띠었다.

두 사람은 이제 각자의 오른 주먹을 붙잡은 채로 바로 힘 대결로 들어갔다.


“후우웁!”

“흥!”


악다문 턱과 솟아오른 핏줄, 점점 모래밭으로 파고들어가는 네 개의 발이 두 사람이 얼마나 힘을 쓰고 있는 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힘만을 따졌을 때 아무래도 둘은 막상막하인 모양이었다.


우리 조원들은 이제 흥미진진한 표정이 되어 두 사람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어쩐지 대단한 승부가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드라카에겐 불행히도 승부는 일대일로 계속 진행될 수 없었다.

못마땅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던 베가드가 나무 막대기를 하나 주워들고서는 드라카의 뒤로 다가갔기 때문이었다.

아까 교수가 얘기한대로 이곳에 들어오며 모든 무장이 사라졌기에 검 대신 든 것 같았다.


그는 한순간 비호처럼 뛰어들어 드라카의 무릎 관절 뒤쪽을 후려쳤다.


빠악!


“크윽?!”


푹 꺾이는 드라카의 무릎, 한참 막상막하였던 힘 대결의 무게추가 급속도로 기울어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드라카가 그를 향해 소리쳤다.


“감히 전사의 일대일 대결에 끼어들다니!”


하지만 그와 대결하고 있던 폴 탄 또한 일대일 대결에는 그다지 미련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쯧!’하고 혀를 한번 차더니만 한쪽 무릎을 꿇으며 힘이 풀린 드라카의 주먹을 놓아버리고는 바로 펀치를 날렸던 것이었다.


뻐억!


“크윽!”


안면을 정통으로 얻어맞은 드라카가 비틀거렸다.

그나마 뒤로 쓰러지지 않고 버틴 것만도 대단한 일이었다.


그가 눈을 치켜뜨고 소리쳤다.


“이런 비겁한 놈!”


분명 비겁한 짓이었다.

하지만 폴 탄은 양심보다는 기회를 택한 모양이었다.

그는 비틀거리는 드라카를 향해 다시 한번 주먹을 날렸다.


뻐억!


드라카는 급히 팔뚝으로 얼굴을 방어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뒤로 퍽! 쓰러지는 것만큼은 어쩔 수가 없었다.

엄청난 파괴력이었다.


“이런!”


폴탄은 드라카가 쓰러진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 덩치의 움직임이라곤 믿을 수 없을 만큼 번개같이 달려들어 드라카의 상체를 깔고 안더니만 마운트 자세로 소나기 같은 펀치를 날리기 시작했다.


퍼퍼퍼퍼퍼퍽!


팽팽했던 전세가 완전히 무너진 건 한 순간이었다.

드라카는 팔로 얼굴을 가리며 어떻게든 방어해 보려고 했지만 폴 탄은 노련하게 그의 몸부림을 제압하며 계속해서 펀치를 날려댔다.

이제 곧 승부가 끝난다는 사실은 누구도 의심할 수 없을 것 같았다.


“······.”


그 시점에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 모습을 그냥 지켜보고만 있는 중이었다.

저런 결과도 그리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중에 가장 위험한 인물이 있다면 누굴까?

베가드? 폴 탄?

그들도 분명히 악당이긴 하지만 적어도 전향자들의 이름에서 들어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드라카는 달랐다.

묵시안 드라카, 그는 세상의 멸망을 추구하는 전향자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난폭하고 잔인한 검은 마수, 움직이는 재앙이었다.


그러니 그를 없앨 수 있다면 미리 없애는 게 낫다는 게 내 판단이었다.

사실 아까 교수가 균열에서 사망자가 나올 수 있다는 얘기를 했을 때도 문득 이곳에서 드라카를 죽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그러니 그가 저렇게 당하는 건 내게 전혀 나쁠 게 없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왜일까?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베가드 저놈과 폴 탄이 하고 있는 짓거리가 너무나도 꼴 보기 싫었다.

어린 시절 힘없던 나를 괴롭히고 나중에 힘이 생긴 후에는 수없이 대립했던 일진 놈들의 얼굴이 놈들과 겹쳐 보이고 있었다.


반면 드라카의 얼굴은 그때의 나와 겹쳐졌다.

홀로 악만 남아 발버둥치곤 했던 그때의 계지훈과···.


“씨발.”


결국 마음을 결정했다.

비겁한 짓을 당한 약자를 못 본 척 하는 건 인간 계지훈이 살던 방식도, 선량한 엘프족인 쥰의 방식도 아니었으니까.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드라카는 분명 전향자가 될 놈이지. 하지만 아직 아닐 수도 있잖아? 저렇게 밟히는 걸 봐도 그렇고 말야. 원래는 전향자가 아니었다가 저런 짓을 당해서 전향자가 되는 게 아닐까?’


그러니 지금 내가 할 행동이 전향자 드라카를 예방하는 짓일 수도 있다고, 그냥 그렇게 합리화하기로 했다.

바로 몸을 움직였다.


타닥!


성질 더러웠던 계지훈 시절의 나는 한번 움직이기로 결정하면 의외로 철저하게 계산에 따라 움직였었다.

결정은 감정에 따를망정 승부는 계산적으로 해야 이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감정을 못 이겨 정면으로 달려들다 수없이 밟혀보고 깨달은 사실이었다.


‘그러니 제일 먼저 할 일은!’


내가 먼저 달려든 쪽은 웃으며 지켜보고 있던 베가드의 두 똘마니들이었다.

일단 쉬운 놈들부터 먼저 전력을 줄여야 나중에 합공을 당하지 않을 테니까.


쉬익!


소리 없이 바람처럼 달려가 놈들의 뒤에서 점프한 후 한 놈의 관자놀이를 후려찼다.


뻐어억!


“크어어억!”


갑작스런 기습에 한 놈이 그대로 날아가 쓰러졌다.

정신을 잃은 모양이었다.

남은 한 놈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뭐, 뭐, 뭐냐?!”


멍청이, 뭐냐고 묻는 게 아니라 바로 대응부터 했어야지.

바로 달려들어 녀석의 얼굴을 향해 손을 휘두르자 화들짝 놀란 놈이 팔을 들어 얼굴을 방어했다.

딱 바라던 대로였다.


그 손을 붙잡고는 그대로 허벅지를 향해 로우킥을 후려 차줬다.


뻐어억!


“끄어어어억!”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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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3 친구 +2 23.04.24 397 10 18쪽
22 22 면접 23.04.23 406 6 17쪽
21 21 꼰대양의 기사 +2 23.04.21 423 7 16쪽
20 20 판데온-2 23.04.20 429 10 14쪽
19 19 판데온-1 23.04.20 443 8 15쪽
18 18 세계수-3 +8 23.04.19 451 6 20쪽
17 17 세계수-2 23.04.19 437 7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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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5 탈출-2 +1 23.04.17 445 1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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