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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반디 님의 서재입니다.

멸망할 세계의 아카데미에서 살아남는 법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겨울반디
작품등록일 :
2023.04.03 10:13
최근연재일 :
2023.04.28 07:00
연재수 :
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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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5
추천수 :
406
글자수 :
187,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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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0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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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4 하프엘프 쥰-2

DUMMY

잠시 여인들을 둘러보던 내 시선은 그녀들 중 한 명에게서 멈췄다.

물의 하프엘프들 중에서도 가장 필사적으로 부상자를 치료하고 있는 여인에게서였다.


“조금만 참아! 제발 조금만! 내가 꼭 살려줄게!”


오리스 또한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 말했다.


“아리에는 바쁜 것 같은데?”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뭐, 늘 그랬으니까. 오늘은 부상자가 많으니 훨씬 더 바쁠 테지.”


우리가 보고 있는 흑청색 머리카락의 하프엘프 여인은 물의 계약자들 중 유일한 내 친구인 아리에였다.

그녀는 대부분 순하고 착한 성품인 물의 하프엘프들 중에서도 가장 착한 성품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부상자가 생길 때마다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서 치료해주고는 했는데, 오늘은 평소보다 더욱 바쁜 듯했다.

부상자가 많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치명적인 부상자가.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아리에에게 치료받는 걸 포기하고는 가장 가까이 있는 다른 물의 하프엘프에게로 다가갔다.

그러곤 침을 꿀꺽 삼키고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저, 테사나. 여기 오리스가 부상을 좀 당해서 그러는데···.”


늘 많이 죽고 바뀌는 땅의 하프엘프들과는 달리 물의 하프엘프들은 인원 변동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친하지는 않아도 대부분 다 아는 얼굴들이었다.


그러자 다른 부상자를 치유하고 있던 흑청색 머리카락의 하프엘프 테사나가 내 말에 웃으며 대답했다.


“아, 쥰이구나? 그래, 알았어. 지금 치료가 마무리되면 오리스도 봐줄게.”

“그래, 고마워, 테사나.”


지구였다면 영상매체 속에서나 볼 수 있었을 것 같은 아름다운 여인의 웃음에 나는 바짝 굳어지고 말았다.

나 또한 이제 연예인급 외모를 지닌 하프엘프가 되었건만 여자와 대화하는 일, 그것도 미인과 대화하는 일은 여전히 내게 너무도 지난한 일이었다.


테사나는 급 빨갛게 상기된 내 얼굴이 웃겼던지 풋 웃음 짓고는 다시 내게 물었다.


“근데 쥰, 너부터 치료받아야 하는 거 아냐? 피를 많이 흘린 것 같은데?”


그녀는 내 몸을 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옷을 흠뻑 적신 멧돼지들의 피를.

그 말에 황급히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 이건 내 피가 아니라 멧돼지···.”


하지만 그렇게 말한 순간 바로 ‘아차!’하고 후회해야만 했다.

그녀의 표정이 확 굳어지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었다.


테사나는 슬쩍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아, 그랬구나. 그럼 오리스를 거기다 좀 눕혀 줄래? 여기 치료가 끝나면 바로 치료해줄게.”

“···그래. 알았어.”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내 쪽을 바라보지 않는 그녀의 모습에 쓴웃음을 짓고는 오리스를 그녀의 옆쪽에 눕혀줬다.


“치료 받고 와, 오리스. 난 저쪽에 가 있을게.”

“그래, 쥰. 이따 봐.”


그러고는 테사나의 뒷모습을 힐끗 본 후 다시 멧돼지 사체가 있는 쪽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멧돼지들의 몸통에 박아 넣은 단창을 회수하기 위해서였다.


땅의 정령 ‘노움’과 계약한 내게 철광석을 비롯한 광물을 찾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걸 제련해 창날로 만들려면 불의 정령과 계약한 하프엘프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얘기는 최근 불의 하프엘프들과 매우 사이가 좋지 않은 내가 더 이상 창날을 만들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러니 어쩔 수 있겠어? 지금 가지고 있는 거라도 알뜰하게 회수해서 써야지.’


내가 단창을 박아 넣었던 멧돼지는 두 마리였다.

그런데 그중 두 번째 멧돼지는 이미 불의 하프엘프들이 둘러싼 채 불태우고 있었다.

그놈의 목에 박힌 내 단창의 나무 창대 역시 활활 타오르고 있는 중이었고 말이다.


그걸 보고는 혀를 차며 생각했다.


‘쯧, 저건 이따 창날만 회수해서 또 다시 창대를 만들어야겠군.’


그렇게 생각하고는 첫 번째 멧돼지 쪽으로 날렵하게 달려가며 소리쳤다.

구석진 곳이라 좀 늦어지긴 했지만 그쪽 또한 불의 하프엘프들이 막 소각하려고 하고 있던 참이기 때문이었다.


“잠깐! 기다려!”


그러자 막 멧돼지를 향해 손을 뻗고 있던 하프엘프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내 쪽을 바라봤다.

그들을 향해 넉살 좋게 웃으며 말했다.


“미안, 미안. 내 무기 좀 회수할게. 잠깐만, 아주 잠깐만 기다려줄래?”


나를 본 불의 하프엘프들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아무 말 하지 않고 팔을 내린 채 잠시 기다려줬다.


그 사이 멧돼지에게 다가가 창대를 움켜잡았다.

그러자 여전히 몸을 꿈틀거리며 옆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는 멧돼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엄청나게 질긴 생명력이 아닐 수 없었다.


녀석의 거친 털을 한번 쓰다듬어 주고는 미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게 왜 심연 같은 곳에 가까이 가서는···. 아프게 해서 미안하다.”


그러고는 창대를 움켜잡고는 힘껏 뽑았다.


“흡!”


촤악!


확 뽑힌 창과 함께 피가 튀며 또 내 몸을 적셨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지만 쓴웃음이 나왔다.


‘에휴.’


슬쩍 주변을 둘러보니 불의 하프엘프들이 아까보다 더 인상을 찌푸린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숨길 수 없는 불쾌감이 얼굴에 드러난 채였다.


얼굴에 튄 피를 손으로 대충 닦으며 생각했다.


‘빨리 가서 씻어야겠군.’


이게 내가 다른 하프엘프들에게 경원시되고 있는 가장 치명적인 이유였다.

조화와 생명을 중시하는 엘프들에게 있어, 직접 창으로 찌르고 칼로 베며 동물의 피를 뒤집어쓴 내 모습은 야만인과 그리 다를 바가 없어보였던 것이다.


숲을 지키기 위해 마기에 침식된 동물들과 싸우고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엘프들은 모든 생명을 사랑하고 존중했다.

전투는커녕 남과 말다툼을 하는 것조차 싫어하는 평화로운 종족이 바로 엘프인 것이었다.


‘근데 그런 엘프들 앞에서 직접 창과 칼로 동물들을 죽이고 다녔으니.’


그들이 내게 이질감을 느끼는 것도 당연했다.

심지어 온몸에 동물의 피까지 뒤집어쓰고 있을 때면 본능적인 혐오감이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지구인들이 똥을 뒤집어 쓴 사람을 볼 때랑 비슷한 느낌일지도 모르지.’


그런 점을 생각할 때 사실 이 정도 대우면 충분히 다행한 일인지도 몰랐다.

그나마 이들이 착하고 순한 엘프들이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인간들이었으면 끔찍한 혐오감에 벌써 집단폭행이 가해졌을지도 모를 일이었으니까.


‘물론 걔 중엔 진짜 그러고 싶어 하는 녀석도 있는 것 같지만.’


그때였다.

문득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숨길 수 없는, 아니. 전혀 숨기지 않은 혐오감으로 가득 찬 목소리였다.


“정말 구역질나는군. 다시는 내 눈에 띄지 말라고 경고했을 텐데? 이 하얀 배덕자 놈아.”


그 익숙한 목소리에 쓴웃음을 지었다.

가능하면 듣고 싶지 않았던 목소리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바로 표정을 바꾸고는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그곳에 놈이 있었다.

불의 정령 계약자들 중 가장 뛰어난 하프엘프, 그래서 현재 불 하프엘프들의 리더를 맡고 있는 타키라는 놈이었다.


놈은 드물게도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에 대한 증오를 표현할 수 있는 하프엘프였다.

또한 최근 내가 불의 하프엘프들과 완전히 소원해지게 된 것도 다 이놈 덕분이었다.


피식 웃으며 놈에게 말했다.


“여어, 타키. 내가 보기 싫었구나? 그것 참, 미안하게 됐네. 근데···.”


한쪽 입 꼬리를 올려 띠꺼운 표정을 지으며 사납게 말했다.


“그럼 눈이라도 감지 그랬냐? 그랬으면 나도 네 짜증나는 목소리를 안 들어도 됐을 게 아니냐? 응?”


그러자 놈의 표정이 급 일그러졌다.


“···뭐라고? 지금 말 다했나?”


인간들보다 훨씬 에너지체에 가까운 엘프들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은 물론 계약한 정령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받곤 했다.

땅의 정령과 계약한 엘프들은 대부분 성격이 진중해졌고, 물은 유순해졌으며 바람은 경쾌해졌다.


그리고 불과 계약하면 성격이 급해지곤 했다.


‘바로 저놈처럼.’


하프엘프라곤 하지만 저 타키가 꼭 지구에 있던 인간들의 성격과도 흡사하게 느껴지는 이유일 것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감안해도 저놈은 도가 지나쳤다.


‘아무리 그래도 하프엘프란 놈이 자기가 싫다고 집단 왕따까지 시전하는 건 너무했잖아?’


그래서일까?

놈과 마주하고 있으면 어쩐지 지구 학창시절의 계지훈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을 느끼곤 했다.

좆같은 일진 놈들과 늘 치고받았던 그때 그 시절로 말이다.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내가 저런 놈들을 대하는 방법은 똑같았다.

증오엔 증오로. 도발엔 도발로.


솔직히 순박한 엘프들보단 오히려 저런 놈들이 더 대하기 편한 것 같기도 했다.

너무 착한 친구들에겐 나도 조심스러워졌으니까.


비웃듯 말해줬다.


“에헤이, 벌써 말을 다 했을 리가. 아, 그러고 보니 아까 널 보고 꼭 해주고 싶던 말이 하나 있었다.”

“···아까라고?”

“그래, 네가 멧돼지 두 마리에 쫓겨 이리저리 도망 다닐 때 말이야. 아주 멋지던데? 뭐랄까, 매우 활달한··· 고블린 같았어.”


만물을 사랑하는 엘프들에게도 싫어하는 건 있었다.

조화를 해치는 존재들, 부정한 존재들을 싫어했다.

특히 몬스터들에 대한 혐오는 아주 끔찍할 정도였다.


그러니 내가 지금 놈에게 고블린 같다고 한 말은 지구에서 부모님 안부를 묻는 말만큼이나 지독한 모욕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자 놈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뭐라고?!”


나는 그런 놈을 향해 코웃음을 쳐주고는 계속 쏘아붙였다.


“뭐? 내가 보기 싫어? 너에게도 양심이란 게 있다면 그딴 소리 할 시간에 먼저 동료들에게 사과나 하지 그래?”

“웃기지 마라! 내가 무슨 사과를 한단 말이냐?!”

“죽은 동료들에 대한 사과! 네놈이 고작 멧돼지 두 마리도 처리하지 못해 시간을 끄는 바람에 앞에서 죽어간 동료들에 대한 사과 말이다!”


그러자 놈도 흠칫했다.

아무리 내가 싫어도 동료들의 죽음에는 좀 양심이 찔렸던 모양이었다.


그런 놈을 쏘아보며 물었다.


“너도 눈이 있다면 봤겠지? 그 멧돼지 두 마리를 누가 처리했는지. 내가 왜 후방으로 가야 했는지를 말이다. 근데 뭐? 구역질이 나? 눈에 띄지 말라고? 내가 눈에 안 띄었으면 타키 네가 지금 거기 서 있을 수나 있을 것 같냐?”


엘프들은 기본적으로 선하고 지혜로운 존재였다.

그렇기에 명백한 사실들을 접하고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을 땐 대부분 다 스스로를 반성하고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물론 대부분이 그렇다는 건 아닌 엘프도 있긴 하다는 뜻이었다.


잠시 이를 악물었던 타키가 마침내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흥! 아까 멧돼지들을 죽인 건 바람 하프엘프들의 화살과 우리 불 하프엘프의 샐라 덕분이었다! 네놈이 안 왔어도 어차피 그렇게 될 일이었지. 그걸 자기 덕분인 것처럼 얘기하다니 역시 뻔뻔한 놈이로구나!”


···그래. 어디서나 뻔뻔한 놈들은 있었다.

사람만이 아닌 엘프조차도 그랬다.


문득 어이없는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역시 저놈에겐 사실폭행보단 직접적인 모욕이 더 유효할 것 같았다.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 그래? 역시 그랬구나?”

“···뭐가 역시라는 거냐?”

“아니, 아까 네가 팔짝팔짝 뛰는 거 보고 왜 저러나 했었거든? 알고 보니 눈과 머리도 고블린 수준으로 퇴화돼서 그랬던 거였어. 그래, 내가 이해할게. 고블린이 어떻게 그런 판단을 하겠어?”


애비에미 호출하는 것도 아니고 고작 고블린이란 소리나 하고 있다니.

약간 유치원생들 싸움 같은 느낌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그것만으로도 효과가 충분했으니까.


타키는 너무 시뻘게져 터져버릴 것 같은 얼굴로 소리쳤다.


“뭐라고, 이 하얀 배덕자 놈이?!”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만 같은 기세였다.

하지만 놈이 그러지 못한다는 건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놈이 할 수 있는 공격이라 봤자 불의 정령 샐라를 이용해 불태우는 게 유일한 것일 테니까.


그리고 그건 아무리 사이가 안 좋아도 동료 하프엘프에게 쓸 수 없는 공격방법이었다.


나는 과장되게 깜짝 놀란 척하며 놈에게 말했다.


“어이쿠, 많이 화났구나? 미안, 내가 잘못했다!”


내 갑작스런 사과에 놈은 잠시 멈칫했다.

분노한 와중에도 약간 혼란스러운 눈빛.

그런 놈을 향해 씨익 웃으며 말해줬다.


“난 사실 고블린을 무서워하거든. 지금 네 표정이 너무 고블린 같아서 너무 무섭더라고.”

“뭐, 뭐라고?!”


어쩌니 저쩌니 해도 대한민국 중고등학생들과 비교하면 그저 순둥이들에 불과했다.

그런 놈들 놀리는 거야 일도 아니었다.

그러자 놈은 드디어 폭발해버린 모양이었다.


“이 배덕자 놈!”


완전히 분노한 놈은 마치 주먹을 휘두를 듯 팔을 뒤로 젖혔다.

하지만 이 거리에서 주먹이 닿을 리 없는 상황, 저 포즈는 내게 불의 정령 샐라를 던지려는 자세임에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건 꽤나 놀라운 사실이었다.


‘진짜 나한테 정령을 쓰겠다고?’


나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자세를 살짝 낮춰 몸을 피할 준비를 했다.


놈이 만약 진짜로 내게 샐라를 던진다면 그건 녀석에게 있어서 최악의 선택이 될 것임에 틀림없었다.

정령을 이용해 동료를 해하는 건 엄청난 중죄이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 사실이 알려진다면 잘 풀려야 생명의 숲에서 추방당하는 정도,, 심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그러니 놈이 아무리 화가 많이 났어도 진짜 저걸 던질 거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혹시 모르지.’


그러니 대비는 해야 했다.

만약의 경우 그냥 맞아줄 수는 없었으니까.


“이 배덕자 놈!”


놈이 내게 팔을 휘두르려하고, 나는 그걸 주시하고 있는 상황.

그리고 주변에 있던 불의 하프엘프들 또한 놀란 표정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였다.


차마 팔을 휘두르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고 있던 타키의 시선이 문득 내 단창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순간 놈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놈이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지. 아무리 그래도 동료를 상처 입힐 수야 없지.”


그렇게 말한 놈은 고개를 돌려 다른 불의 하프엘프들을 바라보고는 지시했다.


“저놈을 붙잡아라.”

“?!”


녀석의 갑작스런 말에 불의 하프엘프들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녀석을 쳐다봤다.

그러자 타키가 짜증난다는 듯이 다시 말했다.


“놈의 팔다리를 붙잡으라고. 이런 간단한 말도 못 알아듣는 거냐?”


그 말에 하프엘프들은 당황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하, 하지만 타키, 동료를···.”


그러자 타키가 비릿한 웃음으로 다시 내 단창을 힐끗 바라보고는 말했다.


“내가 저놈을 어떻게 하라고 한 게 아니잖아? 그냥 붙잡으라고 말한 거 아니냐? 그 다음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너희는 저놈을 그냥 붙잡으면 된단 말이다.”


그 말에 하프엘프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나를 바라보았다.

동료를 괴롭히는 건 생각도 하지 못하는 그들이었지만 그저 붙잡기만 하라는 말에 그 정도는 해도 되지 않을까 싶은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녀석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바로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다른 녀석들이 나를 붙잡으려 할 때 혹시라도 내 무기에 상처를 입게 되면 그걸 트집 잡을 생각인가보군.’


정령으로 동료를 상처 입히거나, 무기로 상처 입히거나 심각한 죄인 건 똑같았다.

그러니 녀석은 그 짧은 사이 자기가 나를 상처 입히기보단 내가 다른 동료들을 상처 입히게 만드는 게 훨씬 더 낫다는 사실을 깨닫고 음모를 짠 것이었다.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고 상대를 처리하겠다는 영악함.

다른 동료들이 상처 입는 건 상관도 없다는 이기심.

정말이지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저렇게 인간적이라니. 진짜 고등학교 때 일진들을 보는 것 같잖아?’


문득 여기가 생명의 숲인지 대한민국의 중고등학교인지 헷갈렸다.

어이없는 말투로 녀석에게 물었다.


“우리 둘 사이의 일에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이다니, 너는 자존심도 없냐?”


그러자 녀석이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저들이 왜 다른 사람들이지? 네놈이 먼저 우리 모두를 모욕했지 않나? 고블린이라고 말이다.”

“그건 너한테···.”


그 말에 반박하려던 나는 그냥 말을 멈췄다.

어차피 지금 놈에겐 진실이 중요한 게 아닐 것이기 때문이었다.


놈은 그냥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일 핑계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불의 하프엘프들은 리더 격이 된 놈의 말을 거부하지 못할 테고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불의 하프엘프들이 굳은 표정으로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마음을 굳힌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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