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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님의 서재입니다.

만렙 히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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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최근연재일 :
2024.05.01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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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18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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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쪽

44

DUMMY

중간에 휴식도 취하면서 마차는 6일을 달린 끝에 벨루디스의 국경에 도달했다.


국경 관문에 있던 병사들은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마차에 긴장했다. 자신들이 지키는 이 관문으로는 마국, 베스티디논 밖에 없었으니.


하지만 이내 마부도 없이 혼자 달리는 마수를 보고선 병사들은 다른 의미의 긴장을 하며 경계 태세를 취했다.


그렇게 서서히 속도를 줄이던 마차는 관문에 들어서자 멈춰 섰다.


병사들은 즉시 멈춘 마차를 에워쌌다.


오늘 당번인 조장은 마차의 입구에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실례합니다. 잠시 검문하겠습니다.”


사실 검문은 필요 없었다. 원체 통과하는 자가 드문 관문인데다, 이미 며칠 전에 누가 지나갔는지 통보받기도 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눈앞에 있는 이 굴강한 마수만으로도 확인은 된 거나 마찬가지. 누구인지는 명확하다.


그럼에도 조장은 자신의 직무에 충실했다.


만약 거만한 귀족이었다면 감히 자신의 문장을 보고도 바로 통과시키지 않은 것에 불만을 토할 수도 있다만―― 이 마차에 새겨진 문장의 사람이 익히 들었던 성품이라면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조장이 잠시 기다리니 곧 문이 열렸다.


열린 문으로 맑은 하늘색의 눈과 머리칼의 학자처럼 보이는 청년이 나왔다. 마부가 없으니 보통은 고용인이 나왔을 테지만, 이 사람은 곁에 그런 자를 한 명도 두지 않기로 유명했다.


예상대로의 사람이 나온 것을 본 조장은 머리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클로디아노 님. 죄송합니다만 안을 확인 해봐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다만 조용히 부탁드립니다. 안에 주무시는 분이 계셔서요.”

“감사합니다.”


선뜻 허락하는 리카드 디안 클로디아노. 상당한 괴짜라는 말도 떠돌던데 성품만큼은 소문대로이다.


귀족치고는 평민에게도 예의 바르다는 말도 사실 같다. 적어도 가끔 보는 귀족들이나, 한두 번 생각날 때만 관문으로 와 거들먹거리는 담당 귀족보다는 훨씬 나았다.


내심 긴장했던 조장은 안심하고는 한걸음 물러서서 자리를 비켜주는 리카드를 지나 마차 안을 살펴봤다.



“응?”


안에는 성인 남성 한 명과 남녀의 두 아이가 더 타고 있었다.


아이들은 호사스러운 복장 하며 어딘가의 귀족 같은 느낌이 든다.


성인 남성은 이국적인 복장이지만 그래도 얼추 종자처럼은 보인다.


다만 같은 남자가 봐도 지나치게 잘생긴 외모와 더불어 풍기는 분위기는 어딘가의 유서 깊은 가문 출신이지 않을까 싶다. 두 아이도 상당히 곱상한 외모지만 이 남자와 비교할 바는 아니었다.


몰락한 가문의 사람인가? 아니면 상속받지 못한 자인가?


상속받을 재산이 없는 작은 영지의 막내라면 다른 집의 집사나 종자를 하는 경우도 많았다. 고용하는 입장에서도 기왕이면 귀족 출신이었던 자를 선호하기에 그리 드문 건 아니다.


‘하지만 종자라면 모시는 사람을, 그것도 이성이 저리 안고 있으면 이상한 소문이 돌 수도 있기에 절대 하지 않는 것이다만······’


조장은 의아했지만, 관계를 캐묻긴 싫었다. 이 일에 자부심도 있고 최선을 다하지만, 괜한 일에 머리를 들이밀어 수명이 짧아지는 건 사양이었으니 말이다. 어차피 확인해야 할 사항도 아니고.


그래서 조장은 확인해야 될 것들만 빠르게 처리하기로 했다.



“클로디아노 님, 이분들은?”

“제가 학원으로 초청하시는 분들입니다.”

“베르다드 학원 말씀이시군요.”

“그렇습니다.”

“알겠습니다. 통과하셔도 됩니다.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클로디아노 님.”


행선지까지 꼼꼼히 확인한 조장은 병사들에게 명령해 길을 열었다.


원래는 마국과 접경하고 있는 곳이라 위험물을 반입하는 건 아닌지 확인하는 절차도 있었지만 그건 넘겼다.


리카드는 왕에게도 신뢰받는 자이기도 한데다, 벨루디스를 포함한 인근 국가에까지 유명한 전설의 마수를 대동했다.


그런 사람에게 과연 누가 밉보이고 싶을까. 그냥 얼른 보내는 게 상책이지.



“다들 수고하십시오.”


리카드가 다시 마차에 올라타자 어떠한 지시도 없었건만 바로 출발한다.


그런 마차를 향해 조장을 포함한 병사들은 경례하며 배웅했다.


마차가 사라질 때까지 자세를 유지하고 있던 병사들은 이윽고 소리 높여 떠들어댔다.


내용은 방금 사라진 마수에 대한 것이었다.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눈앞에서 벨루디스 초대왕의 파트너였다는―― 역사서에도 나오는 마수를 보았으니 당연하기만 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마차가 지나가는 관문마다 똑같이 벌어졌지만······ 그런 줄은 전혀 모른 채 마차는 벨루디스의 수도, 아네픽시르에 다다르게 되었다.














벨루디스 왕국의 유력귀족 중 하나인 리벨리타스 후작 가.


그곳에서는 가주 부부와 몇몇 사용인들이 대문 앞까지 나와 한 명의 여성을 배웅하고 있었다.



“다녀오겠습니다, 가주님.”

“그래, 잘 다녀오너라.”

“네. 리벨리타스 가의 이름을 드높이고 돌아오겠습니다.”


귀족의 모범이라 칭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우아하게 인사하는 여성.


가주는 그 모습을 보고는 “그런 건 아무래도 좋은데”라며, 불만 가득한 심기를 드러냈다.



“한데, 얘야. 우리뿐인데 가주님은 좀 딱딱하지 않니? 전처럼 파파가 어떻겠니?”


후작 가의 가주답게 위엄 서린 얼굴이었지만, 나온 말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러한 자신의 아버님의 추태에 여성―― 라프리트 로 디안 리벨리타스는 속으로 작게 한숨을 쉬었다.


리벨리타스 후작. 그는 건국과 함께 존재해왔던 가문의 가주인 만큼 능력이 출중해 내외적 모두 평판이 좋았다.


실제 성품 또한 인자하고 자비로웠다. 그렇기에 백성들에게도 존중받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후작 가의 일원으로서 백성을 위하는 마음과 그를 위한 정치를 행하는 아버님를 존경하고, 그 뒤를 따라가기 위해 본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 훌륭한 아버님조차도 자신과 관련되면 정말 매우 귀찮았다.


물론 자식이라 귀여워하는 거라 생각하면 어느 정도 가감해서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위로 9살인 오라버님에게는 이러지 않았다.


‘결코 이렇게 떼쟁이처럼 굴지는 않으시지.’


모두 평등히 대하는 거라면 이해라도 하지. 아무리 믿을만한 사용인들과 가족뿐이라 할지라도 후작 가의 가주나 되는 사람이 저런 언동을 시원스레 하다니.


라프리트는 무심코 밖으로 새어 나올 것 같은 한숨을 참아내며 후우, 하고 심호흡했다.



“아버님, 농담은 그만하시고 전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아버님께서도 리벨리타스 가의 장녀가 가주의 어리광으로 인해 지각했다는 오명이 생기는 걸 바라지는 않으시겠죠?”

“으윽······. 하, 하지만 얘야. 아직 입학식은 많이 남지 않았니. 여차하면 내 그리핀을 불러와 빠르게 데려다주면······”

“아.버.님?”

“크으으. 알았다! 그렇지만 나도 애정 어린 딸의 뽀뽀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 자, 귀여운 라프리트야. 이 아비에게 다녀오겠습니다의 뽀뽀를―― 켁!”

“아······”


라프리트는 뒤로 쓰러진 후작과 자신의 주먹을 번갈아 쳐다봤다.


‘무, 무심코 그만······’


코피를 흘리며 드러누운 후작을 곁에 있던 집사와 사용인이 간호했다.


그러나 가주를 향한 폭력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선 질책의 시선 따윈 전혀 없었고, 오히려 이해한다는 듯한 분위기만을 풍겨왔다.


어머님―― 후작 부인마저도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내젓기만 하고 있었다.


이 모습에 라프리트는 가주인데도 못난 행동을 보인 아버님을 바로 잡은 거라며 마음 편히 넘어가기로 했다.


이러하듯 대귀족 집안임에도 상당히 느슨하기만 한 곳이지만, 라프리트는 이런 집을 정말 좋아했다. 이러한 자신의 속내는 절대 밝히지 않을 거지만.


하지만 아무리 좋아하더라도 이젠 정말 가봐야만 했다.


――새로 입학하는, 벨루디스가 자랑하는 교육시설인 베르다드 학원에.


사실 후작의 말대로 시간은 2일이나 남아 급하지도 않았지만, 먼저 가서 확인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어머님, 전 이제 출발하도록 할게요.”

“그래요. 아버님은 신경 쓰지 말고 어서 가도록 하세요. 그도 좋은 약이 되었겠죠. 그렇다고 변하진 않겠지만.”

“하, 하······”


어색하게 웃은 라프리트는 드레스를 살며시 잡고 작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 모두들, 다녀오겠습니다.”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라프리트 아가씨.”


가주의 안위를 확인하던 집사가 사용인의 대표로 정중히 답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조용히 머리를 숙였다.


안 그래도 귀족답지 않게 털털한 집안이었으나, 그중에서도 유독 사용인 모두에게 친절한 라프리트의 인기는 좋았다.


이곳에 나오지 못한 다른 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사용인들은 마음속 깊이 학원으로 떠나는 라프리트가 학업에 큰 성취가 있기를 바랐다.


그 마음을 잘 알고 있던 라프리트는 다시 한번 더 작게 묵례하는―― 귀족으로서는 이례적인 일을 하고 뒤를 돌아 준비되어있는 마차에 올라탔다.


마차는 곧 출발했고, 라프리트는 배웅해주는 사람들에게 재차 이례적으로 손을 흔들어줬다.


모두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된 시점에서 라프리트는 창문을 닫았다.


‘늦진 않겠네요.’


리벨리타스 가의 영지는 평범한 말로 수도에서 한 달여가 조금 떨어진 위치에 있다.


그러나 후작은 공무로 왕궁에 출입하는 일이 많았기에 수도에 있는 별장에서 거의 거주하고 있는 실정이다. 되려 영지에 있는 본가는 그리 기억에 없을 정도였다.


그 장점이라고 해야 할지. 덕분에 학원까지의 거리는 멀지 않다. 늦을 일은 없을 것이다.


‘이것도 다 분가 분들께서 영지를 잘 다스렸기에 가능한 것이겠죠. 그래서 아버님도 걱정 없이 공무를 보실 수 있는 거고.’


감사한 마음을 품은 라프리트. 더불어 그 분가의 사람 중 한 명이 학원에 교수로 재직하고 있어 오랜만에 볼 수 있겠단 생각에 조금 설레었다.


‘언니 같은 느낌의 분이셨는데······ 잘 지내시는지 모르겠네요.’



“아가씨, 슬슬 도착합니다.”


만남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벌써 도착했나 보다.


라프리트는 정신을 차렸다.


이제부터 중요한 볼일이 있다.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힌 라프리트는 자신의 전속 사용인, 안네에게 감사를 전하고는 마차가 멈추기를 기다렸다.


곧 도착할 거라는 말대로 마차는 이내 멈췄다.


안네는 밖을 살피고 문을 열어주었고, 라프리트는 손을 건네주는 마부의 호의로 마차에 내려섰다.


그리고 마차를 한 번 둘러보다가 깜짝 놀랐다.


마차에는 자신의 가문, 리벨리타스 가의 문장이 새겨진 깃발을 내걸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일부러 조용히 학원에 가고 싶어 가문을 알리지 말아 달라 부탁했는데도 말이다.


‘어, 어쩐지 생각보다 빨리 왔다 했네요.’


감히 리벨리타스 가의 문장이 새겨진 마차의 진로를 가로막는 자는 벨루디스엔 없을 것이다. 빨리 오는 게 당연하였다.


이것도 후작이 걱정으로 한 일이겠지만······ 지금만큼은 정말 쓸데없는 배려였다.


‘몰래 오는 건 진작에 글렀었군요.’


그렇다면 최대한 신속히 관찰하기 좋은 곳으로 이동하는 게 최선일 것이다. 다행이랄까, 빨리 온 덕분에 자리를 확보할 시간은 조금 넉넉했다.



“안네, 둘러볼 곳이 있는데, 잠시 가도 괜찮을까?”

“네. 짐은 주인어른께서 미리 정성껏 옮겨놨기에 아무런 문제 없습니다. 그런데 들를 곳이라뇨?”

“음. 설명하긴 좀 어려운데······ 일단 보고 싶은 게 있으니 간다고만 알아둬.”

“······네. 알겠습니다.”

“고마워!”


라프리트는 이해 못하겠다는 표정이면서도 토 달지 않고 따라주는 안네에게 빙긋 웃어주었다.


그 파괴력이랄까, 안네는 이럴 때마다 매번 움찔했다.


하지만 그녀는 프로. 이내 맘을 다잡고 바로 조언을 해줬다.



“아가씨. 가시는 건 좋지만 잊고 계신 게 있진 않으신지요?”

“아, 그렇지. 루케 아저씨, 고마워요. 여전히 흔들리지도 않고 좋은 솜씨였어요. 그렇지만 문장을 달았다는 건 좀 알려줬으면 했는데.”


입술을 내밀고 불만을 토로하는, 귀족으로서 보이면 안 되는 행동에 마부, 루케는 슬쩍 주변을 살펴봤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줄곧 보아온 사람으로, 남들 앞에서는 완벽한 귀족을 연기하는 자신이 이런 곳에서 실수할 리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염려스러운 시선이 떠나질 않는다.


자신을 아껴주는 마음에 라프리트는 미소 지었다.


그러나 이후 들려오는 그의 대답에 곧바로 팍 찡그려졌다.



“죄송합니다. 주인 어르신이 ‘절대’ 알리지도 말고 때지도 말라 엄명하셔서 말이죠.”

“크읏······ 바보 아버님!”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자신은 아버님인 리벨리타스 후작과 관련되면 상당히 거칠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아무리 아버지라지만 후작에게 바보라고 할 정도로 말이다.


물론 애정이 과한 후작은 바로 앞에서 저리 말해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을 거다. 되려 좋아할 것이 눈에 선하기만 하다.


뭐가 됐든 이 이상 추태를 보이기 전에 그만 흥분을 가라앉혀야 했다.


그리고 역시나 루케와 더불어 진심으로 자신을 아껴주고 따라주는 안네가 적절히 끼어들어 줬다.



“흠흠. 아가씨, 볼 일이 있으시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아. 그래, 맞아. 바보를 신경 쓸 틈이 없어.”


이젠 단순히 바보가 되었으나 침착해지자 안네는 흡족한 얼굴을 보였다.


라프리트는 그런 그녀의 손을 냉큼 잡아 걸음을 재촉했다.



“아저씨 조심히 돌아가고요. 급한 일이 생기면 연락드릴 테니까 바로 와주셔야 해요?”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조금은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루케의 배웅을 뒤로 라프리트는 학원 안으로 들어섰다.


학원에서의 신분 확인은 후작 가의 장녀답게 얼굴만으로 프리 패스한 라프리트는 입구를 지나쳐 도처를 살펴봤다.



“아가씨. 무얼 하시는 겁니까?”

“그러고 보니 설명하지 않았구나······”


라프리트는 뭐라 설명해야 하나 고민했다. 자신조차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건만, 사전지식이 전혀 없는 상대에게 이해시키려 하니 도통 내용이 정리되질 않는다.


분명한 건 적어도 몇 개월은 붙잡고 일일이 설명해야 한다는 거다. 하물며 그조차도 어느 정도만 간신히 이해하지 않을까 싶다.


게다가 섣부르게 발설할 만한 게 아니었다. 제아무리 안네가 자신이 믿고 의지하는 심복일지라도.


‘내용조차도 믿기 힘들고요.’


그래서 라프리트는 일단 둘러대기로 했다.



“으음······ 그냥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걸로 넘어가 주어라. 응? 부탁해, 안네.”

“읏. 아, 알겠습니다.”


약삭빠르게 안네가 거절하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불쌍한 표정으로 부탁하는 라프리트. 그러더니 뻔뻔하게 연이어 부탁했다.



“그러면 안네도 빨리 살펴봐 줘.”

“어떤 걸 말입니까?”

“숨을 곳 말이야.”

“수, 숨는다고요?”

“응. 저기 입구 쪽이 잘 보이는 곳으로 해서 같이 찾아봐 줘.”

“아가씨······ 후작 가의 영애가 숨어서 누군갈 몰래 본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지당한 딴죽이었다. 분명 품위 없다고 손가락질받을 만한 행동이었다.


근데, 그래서?


지금 자신이 하는 행동은 숭고한 일을 하기 위함으로, 그딴 귀족들의 잣대보다도 훨씬 중요한 일이었다. 이 정도는 신경 쓸 가치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들키지만 않으면 되는 일 아닌가?


말없이 쳐다보는―― 확고해 보이는 라프리트의 모습에 안네는 말리는 걸 포기했다.



“그럼 장소의 선별은 저에게 맡겨주시고, 아가씨는 잠시 이곳에서 기다려 주십시오.”

“응? 나도 같이 찾아야지 빠를 거 아니야.”

“아뇨. 그런 것보다 수상한 거동을 하는 아가씨를 누군가에게 목격당하지 않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에에······”

“떼써도 안 됩니다.”


라프리트는 자연스럽게 숨을 장소를 물색할 자신이 있었지만, 자신을 위하는 안네의 후의를 저버리긴 마음이 아팠다.


그런데다 왠지 ‘떼쓴다’는 소릴 들으니 후작이 생각나 더 이상 고집부리기도 싫었다.



“알았어. 얌전히 있을게.”

“감사합니다. 아가씨, 금방 다녀오긴 할 텐데······ 혼자 괜찮으시겠습니까?”

“응. 혼자 있다고 별일 일어나겠어?”

“아가씨······”


싸늘하게 쳐다보는 안네의 시선에 라프리트는 흠칫하고 떨었다. 맘이 상해 짝다리를 짚던 것도 풀어 여느 때의 완벽한 요조숙녀로 돌아갔다.



“잠깐인데 혼자서도 괜찮습니다. 안네는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도록 하세요.”

“······.”


라프리트는 삐질 땀을 흘렸다.



“저, 정말 괜찮아. 봐, 학원 안이기도 하잖아? 여기서 누가 나에게 해코지 하겠어. 그리고 학원엔 결계도 쳐져있다고 하니 외부인이 멋대로 들어오기도 힘들잖아.”

“하아······ 알겠습니다. 금방 다녀올 테니, 부디 멋대로 다른 곳으로 가시면 안 됩니다.”

“알았다니까. 걱정하지 말고 어서 알아봐 줘. 시간이 없어.”

“예.”


재촉에 안네는 고개를 숙이고는 바로 장소를 물색하러 갔다.



“후우······”


자신의 사용인이 멀어지고 나서야 긴장이 풀린 라프리트는 주변을 둘러봤다.


‘안네와의 약속은 이곳에서 움직이지 않는 것이니 제자리에서 찾는 건 약속을 깨는 일이 아니죠.’


애초에 이런 약속을 한 이유가 얌전히 있으란 뜻이었다는 건 안다. 그러나 정말 한시가 급했기에 대충 핑계대며 주변을 살피는 걸 멈추지 않았다.


자고로 좋은 숨을 곳이라 하면, 나는 보이고 상대방은 보이지 않는 곳이어야만 했다.


하지만 이 주위에는 그런 딱 좋은 곳은 없어 보였다. 몇 군데는 나름 괜찮았지만, 팔랑거리는 드레스를 입고 숨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었다.


‘으······ 왜 여기는 귀족이라고 이런 옷을 주로 입는 것일까요. 세린 님처럼 편안한 옷으로 지내면 될 것을.’


그러나 이렇게 불만을 늘어놓는 자신도 그러한 것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면 조금 불편하다는 정도로만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단순한 가정.


이미 자신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보았고, 한 번 바뀐 인식은 좀처럼 되돌아가지 않았다.


‘어쩔 수 없네요. 안네가 좋은 곳을 찾아주길 바랄 수밖에.’


사용인이라지만 너무 안네에게만 의지하고 부탁하는 게 아닌가 싶어 미안했다. 그녀는 자신보다 16살이나 많은 연상이라 더욱.


물론 외모로만 봤을 때, 안네와의 나이 차는 별로 없어 보인다.


그러나 안네가 조금 동안이라 그런 것이며, 이러한 경우는 160세까지 거의 젊음을 유지하기에 흔하다면 흔했다. 오히려 어린 사람이 더 늙어 보이는 경우가 심심찮게 있었다.


‘그 덕분이랄까, 반동으로 안네보다 나이 들어 보이지 않게 외모를 가꾸는 노력을 아끼지 않게 되지만요.’


그렇게 할 일이 없던 라프리트는 아무래도 좋은 일들을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자 안네가 돌아왔다.


꽤 열심히 뛰어 찾아다녔는지 그녀답지 않게 조금 땀을 흘렸다.


감사도 전할 겸 라프리트는 가지고 있던 손수건을 꺼내, 안네의 얼굴을 톡톡 두드려 땀을 닦아줬다.



“안네, 고생했어.”

“감사합니다, 아가씨.”

“뭘 이런 걸로. 나야말로 고맙지. 그래서 자리는 찾은 거야?”

“네. 조금 음침한 곳을 찾았습니다.”


역시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곁을 지켜주던 전속 사용인. 허투루 10년이 넘도록 후작 가에서 일한 것이 아니었다. 평생 해보지 않았을, 이런 이상한 부탁조차도 바로 해결하다니.


그녀의 능력에 감탄하면서 라프리트는 서둘러 물었다.



“바로 안내해줘. 안네는 쉬지도 못해서 미안하지만 정말 급해.”


마법으로 시간을 살펴보니 숨는 것까지 고려하면 제법 촉박해 보인다.


진지하게 쳐다보자 안네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빴던 숨을 단숨에 진정시킨 안네는 즉시 앞장서 라프리트를 안내했다.


반대는 하지 않는다.


이렇게 억지로―― 자신의 평판만이 아니라, 가문에까지 흠이 날 수 있음에도 밀어붙이는 건 어떤 이유가 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누구에게도 그 이유라는 걸 말해주진 않지만.


정말 의문투성이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왜 그런 행동을 했어야만 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일들 뿐이니 말이다.


하지만 결과를 알 수 있었던 일들에 한에서는 언제나 가족은 물론이고, 자신을 포함하여 사용인들 모두에게 좋게 끝났다.


한두 번도 아니고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니 후작 부부는 라프리트가 도움을 원한다면―― 그 어떠한 엉뚱한 일이라 할지라도 최선을 다해 도우라 명했었다.


물론 명령받지 않더라도 라프리트를 위한 것이라면 어떤 일이라도 할 의향이 있었기에 조금의 불만도 없었다. 오히려 불만은 라프리트가 자신에겐 숨기고 혼자 무언가를 하려는 게 불만이다.


내가 미덥지 못한 것인가.


처음에는 그런 생각에 제법 섭섭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라프리트가 평민이며, 사용인밖에 안 되는 사용인들을 얼마나 위해주는지 알기에 그런 마음은 금세 사라졌다.


‘분명 아가씨는 설명하기 어려운 것을 품고 계신 거겠지.’


이런 신비롭기까지 한 라프리트를 리벨리타스 가에선 ‘신의 사자’라 부르며 경배하는 자들도 있었다.


――당연히 마음속에서만이다. 세인트리안에서 인정하지 않은 자를 그리 부리면 마찰이 생기기에 함부로 입을 놀려 주인에게 폐를 끼칠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만큼 범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세계에 있는 것이 우리들의 주인. 그리고 자신 또한 그 주인의 신비로운 힘에 구해진 사람이기도 했다.



“안네, 재촉해서 미안한데 멀었어?”

“다 왔습니다.”


아까 발견한 위치―― 학사 건물 테라스 밑 그늘에 도착한 안네는 숨기 전에 누군가 주위에 있나 살펴봤다.


‘주변엔······ 아무도 없군요.’


확인을 마친 안네는 손짓하여 라프리트를 부르고는 함께 작게 나 있는 수풀에 웅크려 몸을 숨겼다.



“······.”


잠시 조용히 입구 쪽을 보고 있던 라프리트가 작은 망원경을 꺼내 마력을 주입했다. 그 망원경은 마도구로, 시력 향상의 술식이 새겨진 물건이었다.


무얼 하려는지는 모르나 안네도 익숙하게 마력을 눈에 주입하여 시력을 높였다.


그렇게 학원 정문을 보고 있던 그들의 눈에 곧 마차가 한 대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마차는 8개월 전 왕가의 미들네임을 하사받은 리카드 디안 클로디아노의 문장을 내걸고 있었다.


잘못 보거나, 다른 사람일 리는 없다.


그 근거는 마차에 있었다.


분명 저 마차는 외형으로는 전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나게 튼튼하고 쾌적하다는 평이 자자한 것으로, 후작도 무척 탐을 냈었던 물건이었다.


그 시작은 후작의 형이자, 현 왕인 아크티알 네우라 디안 벨루디스에게 마차가 헌상 되면서부터였다. 우연찮게 왕과 함께 시승하게 된 후작은 그 한 번으로 완전 홀딱 반한 것이다.


정말 얼마나 마음에 들었던지 즉석에서 왕에게 협상을 하는 등, 마차를 얻기 위해 혈안이 되었었다. 물론 딸인 라프리트를 위해서.


결과는 시원치 않아 거래의 성사로까지 이어지지 못하였지만, 후작은 다른 어리석은 귀족이나 재력가와 달리 깔끔하게 손을 씻었다.


후작은 알고 있었던 거다.


리카드, 그의 존재가 벨루디스에 얼마나 큰 이익을 가져다주는 인물인지를.


그렇기에 딸을 위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후작은 시원스레 발을 뺐지만, 그래도 여전히 갖고 싶은 물건임에는 변함이 없는지 이따금 혼자 아쉽다며 중얼거리기도 했다. 이러한 일을 했었는지 라프리트는 전혀 모르는 사안이지만.


그러나 라프리트도 마차에 대한 소문 정도는 들었을 테고, 그곳에 그려진 문장만으로 누구의 소유인지는 진작에 알아차렸을 것이다.


아니. 문장을 보지 않더라도 알 수밖에 없다. 모른다면 그게 더 이상하니까.


왜냐하면 마차를 끌고 있는 마수가 무려, 초대 건국왕과 함께 전장을 누비고 생을 함께 해왔다는 그 비젠탈이니 말이다.


주변국에까지 이름이 널리 알려진 비젠탈은 성격도 깐깐하기로 유명하다. 오죽했으면 건국왕의 후손인 현 왕은 물론이고, 왕가 어느 사람의 말에도 절대 따르지 않았다.


그나마 어느 정도 부탁을 들어주는 상대는 오직 리카드가 유일할 뿐――후작이 인정하는 그의 가치 중 하나――, 무엇이 기준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니 이 비젠탈에게 마차를 끌도록 부탁할 수 있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아가씨. 기다리신다는 분이 학원장님이셨나요? 용케도 돌아오시는 시간을 알고 계셨네요.”

“쉿. 아니야. 잠시 보고 있어 봐.”


라프리트는 검지를 입에 대고 세워 조용히 시켰다.


진지한 그 모습에 안네는 바로 입을 다물고 마차를 봤다.


수풀 속은 적막감과도 같은 침묵이 이어지고, 마차는 학원의 정문에서 멈췄다.


학원장인 리카드라면 그대로 학원내로 진입해도 전혀 상관없지만, 그는 이러한 부분에서도 거만 떨지 않고 원리원칙을 지켰다.


이러한 성품과 더불어, 능력도 역대 최고라 평가할 정도로 대단하니 존경하는 이는 적지 않았다. 반대로 싫어하는 자도 많았지만.


‘저와 아가씨는 전자 쪽으로 상당히 호감이 있는 편이지만요.’


그렇게 몰래 지켜보는 가운데 문이 열리고 리카드가 내려왔다.


사용인을 곁에 두지 않는 그이니 여기까지는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음 사람이 마차에서 내려오는 순간 라프리트와 함께 안네는 눈을 크게 떴다.


내려온 사람은 남성으로······


너무나 아름답게 생겼다.


후작 가에서 일하는 몸으로서 내로라하는 귀족 자제들을 다 만나봤던 안네조차 이처럼 아름다운 남성은 생전 처음 봤다.


마치 라프리트와 몰래 마을 거리를 돌아다니며 들었었던 음유시인의 이야기처럼 남성의 뒤로 화사한 꽃들이 흩날리는 듯했다.


정신을 못 차리고 있자니 마차에서 두 명이 더 내려왔다.


먼저 내린 남성의 손을 잡고 내려오는 둘은 남녀의 어린아이들로, 남성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상당한 외모를 자랑했다.


차림새 또한 외모 못지 않아 어딘가의 고위 귀족이 아닐까 싶을 만큼 고풍스러웠다.


특히 여자아이가 입고 있는 드레스가 장관이다.


자칫 심심한 디자인이 될 수 있는 흰 드레스를 대비되는 색상인 검정을 절묘하게 배치하여 화려하면서도 차분한 느낌을 자아냈고, 거기에 더해 은실과 금실의 조화를 이룬 문양들이 드레스를 더욱 고풍스럽게 하여 하나의 미술품을 보는 듯한 기분마저 들게 하였다.


특이하게도 드레스에 회색빛의, 어깨를 살짝 덮는 겉옷을 두르긴 했으나, 그마저도 여자아이의 머리색과 어우러져 귀엽고 예뻐 보이기만 했다.


전체적으로 이상해 보이진 않았다. 더불어 나이보다 좀 더 성숙해 보이는 인상을 줬고.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장인 중의 장인이 수년에 걸쳐, 죽기 전 남긴 최고의 작품처럼 예술에 가까운 드레스였다.


저런 일행들이라면 한 번 보면 잊기 힘들 것이다. 그런데도 벨루디스의 파티나 무도회에서는 전혀 본 적이 없으니 교류가 적은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일 터다. 국내는 확실히 아니다.


학원장이 다른 나라에서 인재를 영입해 오는 일이야, 자주는 아니더라도 근근이 있던 일이기에 이상하진 않지만, 이번에 데려온 사람들은 여러모로 상당히 눈에 띈다.


그렇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이들은 리카드와 함께 정문의 경비들에게 신분을 확인받고 바로 다시 마차에 올라타 학원 안으로 들어갔다.


멀리 건물에 가려 사라질 때까지 정신을 못 차리던 안네는 그제야 숨을 토해냈다. 정말 너무 놀라 숨 쉬는 것조차 잊고 있었다.



“후······ 저분이 보고 싶다고 하셨던 분입니까?”

“······.”

“아가씨······?”


아무런 대답이 없자 의아했던 안네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보게 되었다. 라프리트가 눈을 크게 뜬 상태로 입까지 벌리고 있는 모습을.


당연히 주인의 이런 모습을 두고 볼 리가 없던 안네는 그녀에게 주의를 주려 했지만――


그 순간 알아차리고 말았다.


저렇게 믿기 어렵다는 듯이 놀라는 모습을 보면 확실했다.


‘여태 단 한 번도 이렇게까지 아가씨를 흔든 상대는 존재하지 않았건만······’


이것 또한 충정의 길.


주인의 마음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던 안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라프리트가 스스로 정신을 차릴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마음속으로 응원하며······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라스티아 입니다!


어쨌든 여러분들 모두 좋은 하루 되세요.


아 다음화도 금방 올라갈 겁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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