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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님의 서재입니다.

만렙 히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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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최근연재일 :
2024.05.01 00:47
연재수 :
26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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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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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647,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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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11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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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36

DUMMY

“이걸로 끝이네요. 다들 고생하셨어요. 어서 식사할 준비를 하죠!”

“수고하셨습니다, 아가씨!”


마족 주민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우렁차게 외쳤다.


처음에는 영화에서나 보던 조폭의 두목 같아 보여 뭔가 좀 싫었었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하는 생물이라고 했던가, 지금은 그냥 그러려니 하는 정도로 넘어갈 수 있게 됐다.


‘성녀만은 도저히 무리였지만······’


그때가 떠오른 리아는 질겁하며 검을 에르에게 도로 맡겼다.



“고마워요, 에르.”

“뭘 이 정도로.”


환한 미소로 답하는 에르.


그에게 시선이 꽂힌 리아는 눈을 떼지 못한 채 몸을 비비 꼬며 다가갔다.


그리고 슬쩍 손을 잡았다.


거부는 없었다. 에르도 내밀어 온 손을 자연스럽게 마주 잡아줬다.



“에헤헤······”


따듯한 체온이 느껴지자 리아는 바보같이 헤실헤실 웃었고, 에르도 상냥한 미소를 지어줬다.


뜬금없는 애정행각이었지만 신경 쓰는 이는 없었다. 1년 동안이나 보아 온 것이다. 모두 이쪽을 내버려 두고 다들 익숙하다는 듯 식사를 준비하러 갔다.


‘어차피 난 요리도 잘 못 하고 말이야.’


자신의 주제는 잘 알고 있다. 끼어드는 게 오히려 더 힘들게 만들 뿐이다.


그나마 할 수 있는 건 식기를 나르는 정도였지만, 그건 자신들이 하겠다며 마족 주민들이 극구 말리기에 이 시간만큼은 그저 병풍이었다.


그리고 요리면 요리, 농사면 농사,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에르는 자신과 달리 전력이 되는 고급 일손이었지만, 그도 이 시간엔 아무것도 안 했다.


이리된 이유는 여성 주민들의 적극적인 의사가――인간, 마족 가리지 않고―― 반영된 것으로, 어딘가의 대귀족인 마냥 기품이 흘러넘치는 에르와 함께 요리를 만드는 게 너무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추가로 마족들은 조금 무섭다는 게 포함되지 않았나 싶지만······


여하튼 에르는 평소에도 마을의 많은 일들을 해결해주기도 하니 이 의견은 놀랍게도 불만 없이 받아들여졌다.


남자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 마누라의 곁에나 있으라는 명목으로 에르를 주방에서 내쫓았다.


‘나야 좋긴 하지만······ 뭐, 기왕 배려해줬으니 즐기지 않으면 손해겠지?’


고개를 크게 끄덕인 리아는 마음을 비운 채 에르와 꽁냥거렸다.


그러는 사이 곧이어 광장 근처, 에르가 새롭게 만든 커다란 공동식당에는 하나둘 사람들이 모여 시끌벅적해졌다.


사이좋게 서로 도와가며 준비를 하는 그들은 마치 잔치를 벌이는 듯하다.


이렇게 주민 전원이 모여 같이 식사하게 된 건 훈련과 마찬가지로 바지탄스들을 주민으로 받아들일 때부터 시작되었다.


계기가 된 건 푸른 머리의 청년. 판결을 내렸던 그날 사과하는 마족들에게 그가 손을 내민 것으로 인해 지금의 형태를 갖추게 됐다.


덕분에 시작된 축제는 한적한 시골 마을인 이곳에서는 좋은 즐길 거리로, 주민들은 다 같이 모여 뭔가를 한다는 것 자체를 재밌어 했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도 자연스럽게 지속되고 있었다.


‘식당을 만드는 에르도 멋있었고 말이야. 그날 오라버니도 좀 멋졌지.’



“고생했단다, 리아야.”

“헤······ 헛! 하, 할아버지?! 어, 언제부터? 설마 보고 계셨어요?!”

“그래. 멋지더구나.”

“멋져요······ 제가? 아. 아아! 그렇군요! 멋졌나요? 고마워요, 할아버지.”


괜스레 혼자 뜨끔한 리아. 그러다 뭔가 허전한 모습에 물었다.



“응? 그런데 아시리트 씨랑 티라이드 씨는요?”

“둘은 좀 더 순찰하고 온다더구나.”

“그런가요······”

“얼굴 피거라. 그 둘이 보면 더 미안해할 거야.”

“네······ 알겠어요.”


에이브안은 전과 달리 둘을 혐오하는 분위기가 사라졌다. 바지탄스와 마찬가지로 뭔가를 떨쳐낸 듯 후련해 보이기도 했다.


리아가 보기에도 마력은 안정되어 있어 편안해 보였다. 그래서 에이브안이 정말로 바지탄스들을 용서하고 주민으로 받아들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조금은 한시름 놓게 되었지만······ 자신이 한 게 있다 보니 불편한 마음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나저나 공부는 잘 되어가니?”

“네. 재밌게 하고 있어요. 할아버지도 그 책들로 공부하신 건가요?”

“그렇단다.”


바지탄스들의 처우를 결정한 다음 날 에이브안은 촌장의 집 서고 깊숙이 있는 숨겨진 방으로 안내했었다.


그곳은 서고의 3배 이상 넓었는데, 그 안에는 전 촌장들이 연구하며 정리한 책들과 일지 등 방대한 자료들이 즐비했다.


서고도 처음 들어가는 판국에, 그 안쪽의 숨겨진 방을 알 턱이 없던 터라 매우 흥분했었다.


비밀기지.


자신을 흥분시킨 단어로, 실제 들어가는 방법도 책을 이리저리 옮긴다든가, 벽에 손을 대 마력을 보낸다든지 했었기에 정말 드라마에서나 보던 비밀기지라 생각됐었다.


그래서 말도 듣지 않고 이리저리 싸돌아다니다가 혼나는 일도 있었지만, 에이브안에게 비밀 서고의 출입을 허가받았다.


그리고 그 안에 있던 모든 자료를 1주일도 안 돼서 전부 읽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읽기만 한 것이다. 이해하고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인 건 아니었다.


그럼 아무 쓸모도 없는 게 아닌가도 싶겠지만, 현재 자신은 이상하리만치 기억력이 좋아졌다.


지금도 읽은 내용은 전부 기억하고 있는 데다, 혼자 머릿속으로 공부를 하는 중이었다.


시뮬레이션으로 알아서 분석하고 습득하는 편법이 있긴 했지만, 그러면 현재 하는 일들을 취소해야 하니 따로 선택지는 없었다.


‘어차피 남아 있는 여유 공간도 별로 없고 말이야.’


바지탄스들의 훈련을 분석하는 정도라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처리할 수준은 됐지만, 수백 년은 족히 쌓여 보이는 자료를 검증하고 분석할 여유까진 없다.



“흠······”

“왜 그러니?”

“아뇨. 그 서고를 생각하고 있었어요.”

“뭐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니?”

“그냥 그 서고에 있는 내용은 아무나 볼 수 없는 건가 싶어서요.”


감춰놓은 서고였으니 열람하기 위해선 무언가 자격조건이 필요해 보였다.


그러나 에이브안은 고개를 갸웃했다.



“딱히 그런 건 아니다만······ 아하. 서고가 숨겨져 있어서 그리 생각한 게니?”

“네에.”

“하하. 아니란다. 단지 보관을 위해 그랬을 뿐이란다. 저번에 보여준 일지 말고 다른 일지에 적히지 않았느냐. 지식은 잘 보관하여 후세에 물려줘야 한다고.”

“아뇨. 그쪽은 아직 안 보고 있어서요.”

“그렇니?”


고개를 주억거린 에이브안. 그러다 그는 살짝 웃음소리를 흘렸다.



“근데 내 손녀라지만 정말 굉장하구나. 나도 다 읽는데 80년 정도가 걸린 걸 1주일 만에 전부 다 독파하고 말이야. 처음엔 정말 믿기 힘들었단다.”

“대, 대단한 건 아니에요.”

“겸손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 많은 걸 전부 기억하고 있잖니. 물어본 책과 페이지에 적힌 내용을 몇 번이나 정확히 말했을 때는 눈이 빠질 만큼 놀랐었지.”


에이브안은 흐뭇한 얼굴로 턱을 쓰다듬었다.


그 모습을 보며 리아는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기분을 맛보았다.


‘아, 안돼! 마, 막아야 해!’


그렇다. 반드시 막아야 한다.


내 손녀는 대단하다며 이어지는 칭찬 세례를 떠올린 리아는 창백해져 재빨리 머리를 쥐어짰다.



“뭐, 뭔가 좋은 수는······ 응? 아! 하, 할아버지! 비밀기지요! 비밀기지――가 아니라, 숨겨진 서고도 그분이 만든 건가요?”

“비밀기지······? 오호라.”


에이브안의 관심을 돌리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이번에는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중얼거리게 됐다.


하나에 몰두하면 주변 따윈 안중에도 없는 그의 안 좋은 버릇을 알고 있던 에르는 한숨을 쉬며 말을 걸었다.



“에이브안, 구상은 나중에 하는 게 어떤가?”

“으응? 아아. 그렇군. 꽤 좋은 착안점이여서 말이지.”

“알았네. 그건 다음에 차차 이야기하기로 하지.”

“그거 반길만한 소식이군. 흠흠. 그래서······ 뭐였더라?”

“마족이었던 전 촌장님이요, 할아버지.”

“아아. 맞단다. 그분이 보관소를 만들었지. 그리고 실은 일지를 제외한 서고에 있는 자료 대부분은 그분께서 작성하신 거란다.”

“그, 그 많던 거를요?!”


놀란 리아는 빠르게 기억을 더듬어 봤다.


확실히 종류를 가리지 않고 연구한 자료들은 글씨체가 전부 비슷하긴 했다.


아니······ 자세히 보니 비슷한 정도가 아니라 전부 찍어낸 듯,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묘하게 똑같았다.



“어······ 글씨가 너무 똑같은데요?”

“아마 마법으로 썼지 않겠니.”

“마법이요? 하긴.”


차원을 열어서 물건도 넣는 판국에 글씨 정도야 간단하리라.


그런 생각을 하며 리아는 무의식적으로 에르를 쳐다봤다. 그리고 그는 전혀 예상치도 못한 소리를 했다.



“······기대에 어긋나서 미안하지만 나는 할 줄 몰라.”

“네?! 에르가요?!”


설마 에르가 할 줄 모른다니······


‘마, 말도 안 돼. 고작 글씨를 쓸 뿐이잖아! 도대체 얼마나 어려운 마법인 거야?! 혹시 전 촌장님은 신님?!’


경악하여 입을 벌리고 있으니 에르는 작게 숨을 토해냈다.



“그게 아니야, 리아. 난 용들이 모여 살던 심소―― 사람들에게는 성소 및 죽음의 섬 등 다양하게 불리는 그곳에서 벗어난 적이 없어. 공용문자는커녕 문자 자체를 쓸 일이 없었던 거야.”

“에엥? 기록 같은 걸 아예 남기지 않는다는 소리예요? 그럼 생일은 어떻게들 챙겼어요?”

“우린 전원 망각이란 기능이 없거든. 그랬기에 단순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습득하지 않았던 거야. 마음만 먹는다면 10분 이내에 습득할 수 있어.”

“어쨌든 지금 에르가 하지 못하는 걸 전 촌장님은 할 수 있었던 거잖아요. 우와······ 대단해.”


마왕도 알현할 수 있었고 여러모로 전 촌장은 굉장한 인물이지 않을까 싶다.



“아니. 정말 별것도 아닌 마법이야. 그리 높게 평가하지 않아도―― 음?!”


반박하던 에르가 순간 멈칫했다.



“왜 그러세요?”

“모르는 마력이 감지됐어. 마력레벨까지는 멀어서 측정할 수 없지만 상당한 마력량이야.”

“어느 정도길래 그래요?”

“에이브안이나 잭보다도 확연히 많아. 그런데다가 상황으로 봐선 전투를 벌이는 것으로 보여.”

“누, 누구랑요!”

“아시리트랑 티라이드야.”

“야, 양상은 어때요?!”

“좋아보이진 않아.”


그 대답을 듣는 즉시 리아는 시뮬레이션하고 있던 것들을 중단했다.


안개가 낀 듯 뿌옇던 사고는 맑아지고, 광범위한 주변이 손에 잡힐 듯 감각이 예민해진다.


그것을 느끼며 리아는 바로 마력을 탐지했다.


곧 전투가 벌어지는 위치를 찾아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시리트와 티라이드가 괴한을 상대로 2:1로 싸우는 걸 목격했다.


물론 마력만으로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순 없었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괴한은 둘을 죽일 작정이다.



“에르, 서두를게요! 할아버지!”

“그래. 이곳은 맡겨두거라!”


에이브안의 대답을 다 듣기도 전에 리아는 곧장 뛰었고――


핑. 슈와아아······


대기를 찢는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리아는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찬크에르, 부탁하네!”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한 에르도 바로 리아의 뒤를 따라 날아갔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사라진 둘을 배웅한 에이브안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식당으로 뛰어갔다.


이런 상황을 예상한 건 아니었지만 마침 전원 식당에 모여 있어서 다행이다.


그렇게 황급히 식당에 들어온 에이브안은 크게 외쳤다.



“비상사태다! 다들 요새로 대피하도록!”


이제 막 밥을 먹으려던 주민들은 순간 멍한 얼굴을 했다. 그러나 기다려줄 틈은 없다.


재차 소리치니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듯 모두 식기를 내려놓고 빠르게 뛰쳐나가기 시작했다.


처음 있는 일에 조금 당황했지만, 다들 이런 상황을 대비하여 피난 훈련도 해왔기에 큰 혼란 없었다. 질서를 갖춰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런 그들을 지켜보고 있으니 바지탄스가 몇 명의 마족을 이끌고 다가왔다.



“촌장님, 저희는 무장을 챙겨서 현장에 가겠습니다.”

“괜히 혼선만 생겨. 자네들도 요새로 가게.”

“하지만!”

“이미 찬크에르와 리아가 먼저 갔어. 우리가 가봐야 방해다. 자네도 그 정도는 알고 있겠지?”


모를 리가 없다. 이들은 직접 리아와 찬크에르가 어떤지를 겪어봤으니.


신음을 흘리던 바지탄스는 반박할 말이 없다는 걸 알고는 내키지 않아 하면서도 먼저 간 주민들의 피난을 돕기 위해 몸을 돌렸다.


에이브안도 혹여 빠진 사람은 없나 확인하면서 식당을 빠져나왔다.



“이 맑은 날에 무슨 일이고······”


한숨과 함께 푸념을 늘어놓은 에이브안은 리아가 떠나간 방향을 한 번 쳐다보고는 곧장 요새로 향했다.


쿵.


한 사람도 빠짐없이 들어온 걸 확인하고 성문을 닫았다. 그리고 주민들은 잭의 지시를 받으며 각자 정해놓은 역할에 따라 물자를 나르며 침공에 대비했다.


현 상황에 자신이 할 일은 없다.


바삐 움직이는 주민들을 지나쳐 에이브안은 계단을 밟아 첨탑을 올라갔다.


언뜻 평온한 얼굴을 하였으나, 이는 불안한 모습을 보일 수 없기에 꾸며낸 것에 불과하다.


결국 사람들이 보이지 않게 되자마자 마침내 참지 못한 한숨이 새어 나왔다.



“마음이 복잡하구먼.”


리아가 강한 건 잘 안다. 바지탄스들의 훈련을 봐주는 것도 그렇지만, 에르와 하는 대련이랄까······ 싸우는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굉장하단 말로는 부족하다. 당최 5년 만에 뭘 어떻게 하면 저리 강해질 수 있는지 경악스럽기만 했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본 힘을 낸 게 아닐 거다.


방금 눈앞에서 사라진 것만 봐도 분명했다. 리아의 힘은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강하더라도 전투가 벌어지는 곳에 손녀가 가는 걸 반기는 가족이 있겠는가.



“후우······ 할애비 노릇을 하고 싶었는데 말이야.”


그것만을 위해 근 몇 년을 정말 바삐 살았다.


집을 요새로 건축하기도 했고, 실험하는데 필요하지 않으면 하지도 않던 훈련도 정말 최선을 다해서 했다.


제법 무리를 하는 건 기본이었고, 마력 고갈로 쓰러진 적도 많았다. 언제나 리아가 위험한 일을 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던 자신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리고 성과는 있어 역대 촌장들이 남겨놓은 자료의 도움도 받아 가며 빠른 속도로 강해지게 됐다.


이 나이를 먹고 이렇게나 힘들게 살 거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 했지만, 손녀와 마을을 위해서라고 생각하면 나름 할 만은 했었다.


그러나 부족하였다.


할애비 노릇은커녕 남겨지기만 했다.



“하하······하. 찬크에르, 정말 자네 말대로야. 무력하기 짝이 없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나는군.”


메마른 웃음소리를 내며 도착한 꼭대기에서 에이브안은 주변을 살펴봤다. 눈에 들어오는 숲은 조용했지만, 저 멀리 3명의 마력이 느껴졌다.



“녀석들. 저기까지 순찰을 나갔나.”


상당히 먼 거리다.


평소라면 저리 떨어진 곳의 마력을 파악할 수 없었을 테지만 전투로 인해 마력이 새어 나오기에 잘 느껴진다. 그렇지만 리아처럼 누구의 마력인지는 전혀 분간할 수 없었고, 아직 전투를 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혹은 이미 끝났을지도.’


재차 마력을 감지해봤으나 느껴지는 거라고는 3명의 마력만이 전부였다. 찬크에르야 용왕이니 넘어가더라도 리아의 마력도 느낄 수 없다.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애당초 리아의 마력은 처음 마법을 쓴 이후로는 느껴본 적이 없었으니. 그나마 아이리스를 품고 있을 때 살짝 마력이 느껴지는 듯한 기분이 든 게 다였다.



“과연 찬크에르가 칭찬할 만한 수준의 마력조작이야. 거기에 상황을 보고 빠르게 결정하는 것도 훌륭했어.”


바지탄스들 때도 그랬지만 방금도 그렇다. 리아의 판단은 냉철하고 정확했다.


솔직하게 말해 촌장인 자신은 마을과 주민들을 지켜야 하기에 따라갈 순 없었다. 그 자리에서 빠르게 현장으로 갈 수 있었던 건 그 둘뿐이었다.


분명 옳은 판단이었다.


그런데 정말 그것뿐일까······


리아는 마력량이 극도로 적었을 때도 어마어마한 범위의 마력을 감지했었다. 그것도 대기의 마력을.


지금이라면 더욱 늘어나 자신은 상상도 못 할 정도로 넓게 탐지할 거다. 주변에 다른 자가 있는지 정도는 쉽게 파악할 터. 그러니 누군가 있었다면 분명 말해줬을 것이다.


하지만 리아는 마을을 맡기고 본인만 갔다. 이래서는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대피를 시키려던 게 아닐까 싶다.



“싶은 게 아니라 필시 그러한 의도였겠지. 리아라면 분명 그랬을 거야.”


저벅저벅.


다시금 무력함에 한숨을 토해내고 있으니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등 뒤였다. 첨탑 꼭대기로 올라오는 계단을 누군가가 올라오고 있었다.


주민 중 한 명이다.


어느 순간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마력의 분간을 조금은 할 수 있게 됐다. 정밀하게 구분할 수준은 아니라도 아는 사람인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마력을 통해 누군지 안 게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마력이 느껴지지 않기에 주민이라 알게 됐다.


마력이 느껴지지 않는 자는 이 마을에 단 3명뿐이니······



“어라? 큰할아버지도 오셨어요?”


돌아본 그곳에는 예상대로 아이리스가 있었다.


에이브안은 평정을 가장하여 대답했다. 증손자에게 꼴불견인 모습을 보일 순 없기에.



“그래. 살펴보려고 왔단다. 다른 침입자가 있을지도 모르지 않느냐.”

“하하. 그렇죠? 저도 한 번 살펴보려고 온 거예요.”


그리 말한 아이리스는 옆으로 와 바깥을 둘러봤다. 회색빛의 머리칼이 흔들리는 옆얼굴에선 사랑스러운 손녀와 찬크에르의 모습이 비쳤다.


에이브안은 잠시 그 모습을 바라봤다.



“으응······ 어딘지 모르겠네.”

“리아 말이더냐?”

“네.”

“저쪽이란다. 현 상황은 모르겠지만.”

“오. 역시 큰할아버지! 근데 꽤 멀리 있네요.”


아이리스는 인상을 쓰고는 가리킨 방향을 노려봤다.



“으음······ 여전히 안 느껴지네.”

“인간의 모습일 땐 마법을 못 쓴다고 듣긴 했다만, 마력을 느끼는 것도 힘드니?”

“네. 모든 감각에 막이 낀 듯 희미해서요. 처음엔 걷다가 넘어지는 일도 많았다니까요.”


살짝 미소까지 띠며 말한 아이리스에게 근심은 없는 듯했다.


그래서 무심코 물어봤다.



“리아나 찬크에르가 걱정되진 않고?”

“어머니요? 어······ 바보 아빠야 그러려니 하지만, 어머니는 걱정되죠. 조금만 눈을 떼면 어디 가서 엉뚱한 일이나 무모한 행동도 자주 하니까요.”


거기서 말을 멈춘 아이리스는 시선을 옮겨 리아가 있는 방향을 보았다.



“그래도 믿으니까 걱정하진 않아요. 무책임한 말이지만 그것밖에 제가 할 수 있는 것도 없고요. 하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건 성미에 안 맞으니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해요.”

“할 수 있는 범위라······”

“네. 큰할아버지에게만 말씀드리는 건데······ 솔직히 어머니 옆에 서 있을 자신이 전혀 없거든요. 하하.”


맞는 말이었다.


사람마다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다르다. 이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찬크에르―― 용왕과 리아의 곁에 있어서 눈이 높아졌나 보군. 아니······ 오만해졌다고 해야 하려나?’


찬크에르와 리아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른다. 그렇지만 자신이 꼭 그 수준까지 도달할 필요는 없다.


물론 도달하면 더 많은 일을 도울 수는 있을 거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아무것도 못 하는 건 아니었다. 무력하기 그지없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은 분명 있다.



“하하하핫!”

“큰할아버지······?”

“하하. 놀라게 해서 미안하구나.”


사과하면서도 에이브안은 좀처럼 웃는 걸 멈추지 못했다.


‘어리석구나, 에이브안. 아무것도 할 수 없다니. 정말 오만한 생각이었어.’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애초에 자신은 손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려 훈련했던 거다. 그건 크고 작고를 따질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무력함을 느낄 새도 없겠지.”

“어······ 그게.”

“아무것도 아니란다. 그저 내 손녀랑 증손자가 굉장해서 기분이 좋아졌을 뿐이야.”


에이브안은 어리둥절한 아이리스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앞으로도 손녀의 도움이 되지 못해 지금처럼 고뇌에 빠질 수도 있겠지.’


하지만 손 놓고 지켜만 보고 있지 않을 것이다. 사랑스러운 손녀와 그 손녀가 사랑한 마을을 위해서라도.


고민을 떨친 에이브안은 리아가 있는 곳을 바라보며 그리 다짐했다.


그렇게 밝게 웃는 그 눈은 맑게 빛을 내뿜었다.


작가의말

불타오르는 에이브안.


안녕하세요~ 라스티아입니다.


다들 주말 잘 보내세요~! 저도 이번 주말은 잠시 쉬다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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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30 22.06.06 91 0 20쪽
30 29 22.06.03 116 0 30쪽
29 28 22.06.02 93 3 41쪽
28 27 +1 22.05.31 101 3 23쪽
27 26 22.05.31 101 3 15쪽
26 25 +1 22.05.30 110 2 22쪽
25 24 +2 22.05.29 114 3 33쪽
24 23 22.05.28 121 4 28쪽
23 22 22.05.27 141 3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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