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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님의 서재입니다.

만렙 히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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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최근연재일 :
2024.05.01 00:47
연재수 :
26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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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47,950

작성
22.06.06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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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30

DUMMY

은발의 소녀라 해야 할지······ 본인을 이스피리아라 소개한 여자아이가 사라진 숲속은 침묵으로 조용했다.


이 자리에 있는 노련한 부하들도 빠르게 진행되는 흐름에 전혀 따라가지 못했다. 대응은커녕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못 잡았다.


하지만 바지탄스는 그들을 탓할 마음 따윈 전혀 들지 않았다.


――명령을 내려야 할 자신부터가 당혹으로 어찌할 바를 몰랐으니까.


이러한데 탓을 한다면 상관으로서 실격이다.


소녀의 행동은 그만큼 예측불허로, 세상 어느 누가 갑자기 머리 위에서 튀어나왔다가, 저 혼자 대화하다 말고 사라지는 걸 예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그마저도 너무 빨라 전원 소녀가 한순간에 사라진 거로 보였겠지. 흐릿하게나마 뛰어갔다는 걸 본 사람은 나뿐이겠고.’


전혀 이해가 가질 않는다.


대화 도중 공격당했음에도 개의치 않는 것도, 물건을 찾으러 간다고 이 밤중에 혼자 사라지는 것도 전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행이기도 했다.


바지탄스는 소녀가 억지로 쥐여준 화살을 쳐다봤다.


부하의 실수였긴 하나 공격을 한 것이다. 그대로 전투가 벌어졌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만약 전투가 시작됐으면······ 근거리에서 화살을 어렵지 않게 잡고, 저만한 속도로 움직이는 소녀를 상대로 싸워야만 했다.


지칠 대로 지친 이쪽으로서는 고전을 면치 못했겠지.


‘아니······ 갑작스레 뿜어져 나왔던 마력을 보면 고전이 아니라――’


바지탄스는 새어 나오는 이마의 식은땀을 닦았다.


너무 지나친 생각이 아닐까 싶다. 상당한 거리에서 느껴졌던 것이고, 자신도 어렴풋하게 포착했을 뿐이니. 실제로도 소녀에게선 마력은커녕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냉정하게 판단해봐도 소녀였다는 근거는 부족하였다.


하지만······


본능인지 감인지는 모르겠다. 확신밖에 들지 않는 것이다.


――분명 저 소녀가 마력을 내뿜은 것이라고.


그리고 이상하게 소녀를 본 순간부터 싸우고 싶다는 의지 자체가 생겨나지 않았다. 벌이려던 짓에 죄의식을 느낀 것도 아니었는데.


아직 어린 아이라 주저한 것도 아니다.


분명 그거와는 또 다른······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었다. 그것이 소녀에게 검을 겨누기 힘들게 했다.



“괜찮으십니까?”


안색이 나빠지는 바지탄스를 보며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부관, 아시리트가 물었다.



“괜찮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렇습니까.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지휘관이 평정을 잃으면 바로 잡는 게 부관의 역할. 그 본분에 따라 아시리트는 침착하게 앞으로의 행동 지침을 종용하였다.


솔직히 혼란스러웠던 바지탄스는 마음속으로 감사를 전하고는 어떻게 할지 생각해보았다.


생각은 금방 정리되어 2개의 방안이 나왔다.


하나는 소녀를 기다린다.


다른 하나는 원래의 목표대로 나아간다.


다만 목표했던 대로 나아가더라도 더는 치욕스러운 짓을 할 마음 따윈 들지 않았다.


마을에 들러 만약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나는 여기까지라며, 글로디아의 인도라 여기고 담담히 죽기로 마음먹었다.


나 자신조차도 의외였다. 그토록 혼자 불명예를 뒤집어쓸 각오를 다짐했건만. 어떻게 된 게 지금은 전혀 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 와 겁이 나는 건 아니다. 두려운 것도 아니다.


그저 소녀를 본 뒤로는 전의가 상실한 듯 그럴 마음 자체가 사라졌다.



“뭐, 진짜로 해도 저 소녀―― 이스피리아에게 다 죽겠지만.”


확신에 가득 찬 말을 내뱉으며 바지탄스는 은발의 소녀, 리아에게 잡혔던 팔을 쳐다봤다.


으스러질 것만 같았던 무시무시한 악력에 잡힌 팔은 아직도 작은 손자국이 또렷하게 나 있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소녀지만, 범상치 않은 건 분명하다. 자신들이 살아있는 건 단순히 리아의 변덕이지 않을까 싶다.



“네? 바지탄스 님, 지금 뭐라고······?”

“신경 쓰지 마라.”


얼렁뚱땅 넘긴 바지탄스는 주위에 있는 부하들을 모았다.



“여기서 아까 그 소녀를 기다린다. 절대 공격하지 않도록! 그리고······ 모두에게 할 말이 있다. 들어다오.”


부하들은 경계를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 귀를 기울였다.


모두가 듣고 있는 걸 확인한 바지탄스는 조용히 말했다.



“전원. 앞으로의 일이 잘 안 풀리면 얌전히 나와 함께 ――죽자.”


바지탄스는 자신의 이명과 함께 유명한 대검을 땅에 찌르며 고개를 숙였다.


그런 대장의 모습에 부하들은 숨을 삼켰다.


원래 조용했던 숲은 더욱 조용해져, 숨 쉬는 소리조차도 들리지 않을 만치 침묵에 잠겼다.


그러나 이내 떠들썩한 분위기를 풍기기 시작했다.



“뭘 머리까지 숙이면서 부탁하십니까? 저흰 대장의 부하라고요. 그냥 명령하시면 될 걸 가지고.”

“대장과 함께라면 신의 곁이든 어디든 따라가겠습니다!”

“네. 저희 모두 대장을 마음속 깊이 존경하고 따르는 거니까요. 그런 대장이 얌전히 같이 죽자고 하는 데 따르지 않을 놈은 여기에 없습니다.”


너도나도 한마디씩 하는 부하들은 모두 밝았다.


특히 바지탄스가 전부 독박 쓰고 할 짓을 짐작했던 이들은 더더욱 밝은 얼굴로 함께 하겠노라고 말하였다.



“감사한다. 그대들과 함께 해 영광이었다.”


진심으로 말한 바지탄스는 다시 한번 부하들에게 머리를 숙여 경의를 표했다.



“무슨 소릴 하시는 겁니까? 저희야말로 영광이죠.”

“그렇습니다. 저희가 아직 무사히 살아있는 것 자체가 광풍의 일섬, 바지탄스 님이 이끌어주신 덕분입니다.”


모두의 심정을 대변하듯 아시리트가 대표로 나와 무릎을 꿇고 예를 보였다.


30명도 안 되는 소대 규모에 불과한 이들이 보이는 이 모습은 흡사 소설에서나 나올 장면을 재현한 듯하여 감동적이고 훈훈하였다.


필시 다른 이들이 보고 있었다면 박수와 칭송을 아끼지 않았겠지.


부하들을 자랑스레 보던 바지탄스는 그리 생각하였다.



“저기······ 뭐 하시는 건가요? 다들 비장하게.”


이 엄숙한 분위기를 모르는 것인지······. 전혀 어울리지도 않는 가벼운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어린 소녀의 순진무구한 목소리였지만 상관없었다. 칭송하고 있던 이들이었다면 반드시 찬물을 끼얹어 버렸을 것이다. 그만큼 분위기면 분위기, 정말 모든 걸 일순 망쳐버렸다.


이 대범한 짓을 저지른 자는 은발에 연분홍의 눈을 지닌 어린 소녀, 이스피리아였다.


달리 잘못 볼 리도 없다. 목적을 완수한 소녀의 손에는 낡은 바구니가 있었고, 그 안에는 ‘리아’라고, 모서리 끝에 자수가 새겨진 낡은 갈색 천도 제대로 들어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나타난 소녀―― 리아에게 달리 경계하지 못했다.


모두 함께 죽을 것을 다짐하고 있던 순간에 아무렇지 않게 끼어들어 분위기를 깬 것이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리아에게 도대체 무슨 말을 퍼부어야 할지 고민밖에 안 됐다.



“바지탄스 님.”

“아아.”


이번에도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아시리트. 그런데 꽤 불쾌한 듯싶다.


함부로 나서진 않겠지만 조금 걱정스레 보던 바지탄스는 담담하게 시선을 옮겼다.



“응? 제 바구니 찾았어요. 조금 부서졌지만 멀쩡해요. 어머니가 주신 깔개도 멀쩡하고요.”


천의 용도는 깔고 앉으라고 만든 것이었나 보다.


불쾌한 아시리트를 보고 걱정하지 말란 듯 이야기한 모양이지만 완전히 헛짚었다.


하지만 리아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다들 표정이 안 좋으신데, 배고파서 그런 걸 거예요. 저도 예전에는 배가 고프면 기분이 안 좋아졌거든요. 다리도 후들거렸고. 그러니 저희 마을로 가서 다들 식사하시죠? 배가 든든해지면 기분이 좋아질 거예요.”


이쪽의 몰골을 둘러보며 마을로 초대하는 리아.


물론 배가 고픈 건 사실이나 자신들이 왜 여기를 왔는지, 목적은 무엇인지 하나 듣지 않고 마을로 안내하는 건 너무나 안일한 판단이었다.


그만큼 어머니에게서 받았다는 바구니를 되찾았다는 게 기뻤다는 소리겠지만, 단방에 경계심을 거둔 건 너무 순진했다.


냉정하게 말해 저 바구니엔 그리 큰 가치가 없다. 자신들이 받는 것에 비하면. 하물며 마을에 있는 다른 자들이 어찌 받아들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도 리아에겐 이쪽은 착한 사람으로 인식되었는지 온통 호의뿐이었다.


한 소리 들을 걱정 따윈······ 조금도 없어 보인다.



“······.”


반길 소식이었으나 부하들은 아직도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그런 그들에게 손뼉을 쳐 정신을 차리게 한 바지탄스는 이동 명령을 내렸다.



“전원 소녀를 따라간다. 경계를 소홀히――”

“――아. 그건 괜찮아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함부로 다른 마수들을 공격하시지도 말고요. 사슴 씨가 다칠 수도 있으니.”


말을 자른 리아가 경계도, 공격도 하지 말란다.


노련하고 경험 많은 부하들은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처사에 순간 발끈했다.


그러나 바로 화를 삭였다.


겉모습은 어린아이에 어리숙하기만 보이는 리아지만, 약자라 생각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살짝씩 보였을 뿐이지만, 그 강함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멍청한 부하는 두지 않았다.


그래서 부하들은 수긍했지만, 지휘관인 바지탄스는 입장이 조금 달랐다.


처음 본 소녀에게 경계를 모두 맡긴다는 소린 함정이면, 혹은 기만책이면 자신은 물론이고 부하들도 죽기 때문이다.


‘피폐한 우리들의 상태로는 대처도 힘들겠지.’


지휘관으로서는 미친 짓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바지탄스는 리아를 믿기로 했다.


예상하기로 소녀는 충분히 혼자 경계할 만한 능력은 돼 보였다. 그런데다가 함정에 빠뜨린다거나 기만책을 펼치지도 않을 것 같았다. 그럴 바엔 그냥 정면으로 깨부수지 않을까 싶다.


사슴 씨가 다친다는 소리는 도저히 이해 못하겠지만······


여하튼 그리 생각될 정도로 리아는 순진무구, 다른 말로 하면 조금 멍청해 보였다.


그리고 만약 함정에 빠뜨리더라도 순순히 거기에 걸려 죽자는 마음도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며 바지탄스는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려 주변의 경계를 배제하고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리아의 뒤를 쫓았다.






빠직――


이동하는 무리 중 혼자 혈압이 올라 화가 난 인물이 있었다.


그녀는 아시리트로, 존경하는 대장의 말을 자른 것도 모자라 대신 명령을 내린 리아 때문에 기분이 매우 안 좋은 상태였다.


하지만 리아를 째려보던 아시리트는 이내 눈을 부릅뜨게 됐다.


리아가 빠른 것은 알겠다. 눈에 거의 보이지도 않았던 속도로 움직이기도 했으니까.


그렇지만 바구니를 찾으러 가기도 했다. 길도 안 좋은 숲속에서. 그것이 얼마나 체력을 갉아먹는지 직접 몸으로 체험했었다.


그런데 리아는 다녀온 직후 바로 이동한 것이었음에도 전혀 흐트러짐이 없었다. 호흡조차도 걷는 듯 편안해 보였다.


그 손에 들린―― 자신들을 이곳까지 인도해준 바구니마저도 걷는 듯 흔들림이 없다.


‘어, 어쩌면 오인했을지도······’


화살을 두 손가락으로 잡는 묘기를 보인 리아는 물론 강할 거다. 그래도 만전의 상태에서 마주쳤더라면 제압은 가능하리라 여겼었다. 자신이나 동료 모두 피폐해졌으나 절대 약하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상상 이상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바지탄스가 아무런 의심도 없이 맡긴 게 의아했지만 조금 이해가 된다. 이만한 자의 뜻을 거스른다면 지금의 자신들로서는 저항할 방도가 거의 없으니.


불만스럽지만 바지탄스의 명이니 잠자코 있어야겠지.


그렇게 대열을 유지하며 30여 분을 나아가다······ 멈춰 서게 됐다. 뛰었던 거라 본래 계획보단 3시간 이상은 단축할만한 거리를 왔을 거다.


그러던 때에 휴식 겸, 일행을 멈춰 세운 소녀―― 리아가 마력을 내뿜었다.


정말 엄청난 양의 마력이었다. 이곳에 있는 전원을 합친 것보다도 많지 않을까 싶을 무시무시한 양이었다.


그런 마력을 의미 없이 뿜어대는 통에 모두는 무기를 겨누며 리아를 경계했다.



“으음. 역시······”

“바지탄스 님?”

“아아. 실은 저 소녀와 조우하기 전에 저 멀리 마력의 방출을 느꼈었다. 너희는 몰랐겠지만.”

“그때도······?”

“그래. 아마 저 소녀가 한 일이었겠지.”

“하, 하지만 이만한 마력은······”


그렇다. 마력을 숨기는 일을 잘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옆에 있어도 느끼기 힘들었다. 그렇기에 이해는 했다. 리아도 그런 부류의 사람이며, 단순히 마력을 잘 숨기는 제법 강한 인간이라고.


하지만 이 정도였단 말인가.


‘마력이 많다고 무조건 강한 건 아니야. 그러나 저 소녀는 이미 충분히 강하다고 생각될 모습을 제법 보여줬어. 분명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강자다.’


뒤늦게 이 사실을 눈치챈 동료들도 충격과 경악으로 흉흉한 분위기가 극에 달해졌다.



“다들 진정해라.”


작게 모두를 만류한 바지탄스는 리아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인가?”

“아~ 갑자기 미안해요. 에르······ 그러니까 제······ 으음. 헤헤. 나, 남편이 될······ 헤헤헤.”


하라는 대답은 안 하고 리아는 몸을 비비 꼬면서 얼굴을 붉혔다.


찰랑거리며 아름답게 빛나는 은발의 어여쁜 미소녀가 부끄러워하는 장면은 흐뭇하기도 했으나, 지금 상황에서는 전혀 필요 없고 성질만 돋울 뿐이었다.


평소라면 영문 모를 소녀가 영문 모를 짓을 한다고 넘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 자신들은 매우 지쳐있고 피곤했다.


무엇보다 배고픈 상태였다.


결국 분노를 참지 못하고 이성을 잃은 아시리트는 리아의 멱살을 잡았다.


상대가 어떤 자인지는 전혀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바지탄스에게 재차 충성을 맹세하던 때부터 쌓인 리아에 대한 불만이 폭발했던 거다.


아시리트는 이성을 잃은 와중에도 느껴지는 옷의 촉감에 놀라면서 소녀를 마구 흔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바로 후회했다.


리아는 말한 것이다.


――에르, 남편이 될 사람이라고.


그랬다. 마력을 내뿜은 건 의미 없는 행동이 아니었던 거다. 누군가에게 위치를 알린 것이었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아까 말한 에르라는 약혼자를 말하는 것이었다면?


흠칫······


이 자리에 있던 모두는 동시에 몸을 떨었다.


전원이 죽음을 각오했고, 방금 막 재차 각오했지만······ 그 각오조차도 얕아 보이는 진정한 죽음이 다가왔다.



“나의 리아에게 무슨 짓이지?”


빛을 모조리 빨아들이는 듯한 칠흑의 남자가 하늘에 떠 있었다. 그리고 모든 걸 꿰뚫어 보는 듯한 흑안이 차갑게 내려다본다.


언제 왔는지 모를 남자의 말은 차분하여 조용히 울려 퍼졌지만, 그 감정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리아의 멱살을 잡은 아시리트를 향해 눈을 고정하고는 짙은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 살기가 향하는 당사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각오한 이들조차도 이가 덜덜 떨리고 무릎이 부들부들 흔들렸다.


숨조차 턱턱 막혀오기 시작하고, 이대로 죽는다고 생각될 때――



“에르! 그만 해요. 다들 배고파서 신경이 예민해졌을 뿐이에요!”


이 정도의 살기가 아무렇지도 않은 것인지 리아가 남자를 다급하게 말렸다.


에르라 불린 남성은 소녀의 한마디에 바로 살기를 수습하고는 아무 일도 없던 마냥 평온하게 되어 땅으로 내려왔다.



“헉······ 허억······”


거친 숨을 내뱉는 아시리트. 리아의 멱살 따윈 진작에 놓았다. 오히려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해 털썩 주저앉아 있었다.


그런 아시리트를 한번 쳐다본 남자―― 에르는 이내 관심도 없다는 듯 눈을 돌렸다. 그리고는 허리를 구부려 리아의 손을 상냥히 잡았다.



“리아, 어떻게 된 일이야?”


조금 전의 얼음장처럼 차갑디차가운 음성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다정한 목소리였다. 아름다운 외모와 더불어 여성은 단번에 반해버릴 모습이다.


그러나 반한 사람 따윈 아무도 없었다. 여성을 포함한 이곳에 있는 전원은 최대한 에르에게서 멀리 떨어지려 뒷걸음질을 쳤다.


바지탄스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무언가를 할 마음 따윈 접은 지 오래지만, 이젠 아예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리아를 본 순간 마음을 접은 그때의 자신에게 칭찬 세례를 퍼부어 주고 싶었다.


무리였다.


이만한―― 괴물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자가 있는 마을에 위해를 가하는 것은.


하늘을 나는 것 따윈 놀랍지도 않을 만큼 충격적인 존재였다. 그나마 비교할 수 있다면 멀리서 한 번 봤던 마왕 정도이지 않을까.


정말 두렵고도 두렵다. 멱살까지 잡히고도 이 남자를 말려준 리아에게는 정말 감사하기만 했다.



“갑자기 뛰쳐나가서 미안해요. 그······ 조금 부끄러워서. 헤헤······. 따라와 줘서 고마워요.”

“후훗. 반려를 걱정해 따라오는 거야 당연하지. 오히려 늦어서 나야말로 미안해. 설마 이딴 무뢰배들에게 곤욕을 치를 줄은······”

“아, 아니에요! 자. 봐요. 다들 수척하시잖아요. 배고프면 누구나가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법이에요. 저도 그랬는 걸요?”

“이딴 자들에게도 다정히 대해주다니.”

“아뇨. 그런 게 아니라······ 아! 여기! 옛날에 잃어버렸던 바구니랑 깔개까지 찾아줬어요.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건데 덕분에 찾은 거예요. 다들 착한 분들이라구요.”

“응. 찾은 건 다행이네.”


절대 웃지 않을 것 같았던 에르가 미소까지 지었다.


리아도 따라 활짝 웃었다.


그대로 둘은 다른 사람은 보이지도 않는 듯 연인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며 사이좋게 꽁냥거렸다.


남자의 성벽이 의심될 법한 광경이었지만······ 바지탄스는 아무래도 좋았다. 조금이라도 남자의 기분이 풀어지고, 자신과 부하들을 눈에 넣지만 않는다면 그걸로 족했다.


그러나 그런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소녀의 바구니를 보던 남자는 돌연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주위에 있는 자들을 한 명씩 찬찬히 살펴봤다.


분명 누가 훼손했는지 찾는 것이겠지.


부하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오히려 잘못이 있다면 그건 나다.


바구니와 내용물을 확인하고 던졌던 그때의 자신을 욕하며 바지탄스는 입을 열었다.



“그······ 부인 분의 바구니는 원래 그랬던 것으로, 제가 좀――”

“――누가. 리아를 공격했지?”


바지탄스는 변명하기 위한 말들을 준비했지만, 에르가 꺼낸 이야기는 전혀 다른 일이었다.


그렇지만 공격이란 단어 하나만으로도 상황을 파악하기에는 충분했다.


어떻게 알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에르는 확신하고 있었고, 지금 범인을 색출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건 실수였다. 거기에 리아도 멀쩡하였다. 도리어 날아온 화살을 잡는 여유까지 있었다.


그런데 과연 그런 변명이 저 남자에게 통할까······


화살을 쏜 당사자인 부하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부풀어오르는 공포심에 침을 삼켰다. 물론 다른 부하들도 다를 바 없었다.


이내 활을 쏜 부하와 눈이 마주치고――



“네놈인――”

“――에르~! 다들 배고플 테니까 어서 돌아가도록 해요.”


――밝게 말하는 리아에 의해 구원이 내려졌다.


이 자리에 있는 전원은 리아의 등 뒤에서 광채가 나는 듯했다. 특히 활을 쏜 당사자는 전설에서나 듣던 신의 사자는 눈앞에 있는 이 소녀가 아닐까 싶었다.



“응. 그러도록 하자.”


남자는 재촉하는 리아의 말에 이미 색출한 범인을 놔두고는 아쉬움도 없이 고개를 돌려 다시 다정한 미소를 보였다.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으나, 일단 즉결심판만은 넘어갔다.


바지탄스를 비롯하여 전원은 안도의 한숨을 토해냈다.



“저기요~! 더 늦으면 밥 먹고 바로 자야 해요! 그러면 더부룩해서 아침에 속이 안 좋아지니 다들 빨리 가요!”


김빠지는 리아의 외침에 긴장됐던 분위기는 단숨에 풀어지고 멈췄던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의 따위는 없다. 아까까지 그리 화내던 아시리트조차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리아의 뒷모습을 보며 마음속으로 감사를 읊조리고 있는 형국이었다. 그런 겁대가리 상실한 자는 있지 않았다.


바지탄스도 비슷했다. 리아가 강해서 다치지 않은 것에 신들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정말 만약에 조그마한 상처라도 생겼다면 저 자에게 결코 곱게 죽지는 못하겠지. 분명히······


그리 자신을 갖고 말할 수 있는 바지탄스였다.


작가의말

친척 모임 다녀오느라 요즘 못 올렸네요.


다시 쭉쭉 업로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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