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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님의 서재입니다.

만렙 히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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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최근연재일 :
2024.09.16 14:1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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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27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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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쪽

22

DUMMY

고민은 끊이지 않고 계속되어 시간만 흘렀다. 그러던 날에 자려고 이불을 펴는 도중 찬크에르가 말을 걸어왔다.



“리아, 고민이 있나? 그때부터 계속 고민이 많은 듯하다.”


“아니에요! 찬크에르 때문이 아니라······ 조금······”


“무슨 일이지? 어떤 일이든 내가 반드시 해결하마. 그러니, 리아······ 기운을 내라.”


“고마워요. 덕분에 기운이 나요.”


리아는 걱정스레 쳐다보는 찬크에르를 보며 생각했다.


드래곤이지만 모두에게 사랑받으면서 자란 아이리스. 이제는 마을 모두와도 잘 지내는 찬크에르. 그리고 매번 모두의 가슴을 졸이게 만든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주는 마을―― 가족들.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리고 있으니 활기차게 축제를 벌이던 때가 떠오른다.


나중에 듣고 보니 그 축제는 모두 자신이 건강해졌다는 것과 사건 사고 없이 무사히 1년을 보냈다는, 시시하기 짝이 없는 연유로 연 축제였다.


그런 너무나 착한 가족들이 만약 자신 때문에 다치게 된다면?


무슨 뜬금없는 과대망상이나, 의심암귀 마냥 보일 거라는 건 알고 있다. 그렇지만 알고 있음에도 불안함은 가시질 않고 갈수록 증대해갈 뿐이다.


‘나로 인해 가족들이······’



“리아!! 안색이 창백하다. 어디 아픈 곳이 있나?!”

“아, 아뇨. 괜······찮아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에요.”


살짝 한숨을 쉰 찬크에르는 진지한 눈을 향해왔다.



“······리아. 나는 그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대와 생을 함께 하기로 했다. 그대가 어떠한 생각을 하든, 어떠한 일을 하든 언제나 곁에 있을 것이다. 믿음이 안 갈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말해주었으면 한다. 난 반드시 그대의 곁에 있겠다.”

“저는 찬크에르르 믿고 있어요! 누구보다도! 다만······”

“······.”

“······후. 그래요. 같이 살아가기로 했죠. 같이 사는―― 부부는 서로 믿고 의지해야겠죠.”

“리아······”


여전히 진지한 눈으로 걱정스레 보는 찬크에르. 덕분에 마음이 굳었다.



“제 망상일 뿐이지만 들어주세요, 찬크에르.”


아직도 주저되지만, 손을 잡고 기다려주는 찬크에르에게 용기를 얻어 입을 열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모든 것을 말했다.


마력이 거의 없이 사산한 아이처럼 태어난 것부터, 4살이 막 되어 전생을 떠올리고 지금까지 살아오며 겪어온 일들까지. 그와 만나기 전까지의 모든 이야기를 남김없이 입에 담았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찬크에르는 말 대신 끌어안아 줬다.


자기도 못 믿을 이야기를 전혀 의심하지도 않고 믿고 받아들여 주는 그의 모습에 리아는 북받쳤다.


하지만 아직 이야기는 끝이 아니다. 이제부터가 본론이다.


리아는 감사를 전하고는 이어 말했다.


――자신의 불안을.


고맙게도 찬크에르는 망상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헛소리를 웃거나, 농담처럼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그저 진지하게만 귀담아들어 줬다.


제법 긴 이야기를 마치고, 방안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리아는 뭔가 열심히 고민하는 찬크에르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저, 찬크에르. 제 말을 믿나요?”

“리아를 의심하는 일 따윈 없다. 날 믿고 의지해준 것이 아닌가? 믿지 못할 이유는 없지.”

“그래도 기분 나쁘지 않아요? 전세에 남자로서, 그것도 노인까지 살아왔는데······”

“그대가 전세에 어떤 존재였든 상관없다. 리아는 리아이니. 설령 그대가 남자로서, 전세 그대로 이곳에 태어났다 해도 난 여전히 그대에게 마음을 빼앗겼을 거야. 외관이 불편하고 문제가 됐다면 내가 여자로 변하면 될 뿐이다.”

“그걸로 괜찮은 거예요?”

“아무런 문제 없다. 오히려 이곳에서 태어나 나와 아이리스를 만나준 것에 감사하기만 해.”

“고, 고마워요······ 저도 당신과 아이리스를 만날 수 있어서 해, 행복해요.”

“리아······”


너무나 직설적인 말에 저도 모르게 똑같이 답례했지만, 너무 부끄러웠다.


‘아마 지금 난 멀리서 보면 쌔빨간 홍당무 자체겠지.’


이런 자신을 보고도 아무런 언급도 없는 찬크에르의 친절에는 감동했다. 그렇지만 이제 그만 진정해야 했다.


리아는 심호흡하면서 숨을 골랐다.



“후······ 후우. 지, 진정됐다. 찬크에르, 기다리게 했어요.”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다. 되려 리아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볼 수 있어 이득이었다.”

“자, 잠시만요! 잠시······ 진짜 잠시만 너무 기뻐지는―― 창피해지는 발언은 참아주세요.”


활짝 미소 짓는 것만으로도 빨개질 화력이 충만한데, 저런 달콤 짭짤한 계속 듣는다면 진짜 죽는 건 아닐까 걱정된다.


‘후우우우. 잠시만. 진짜 조금만 쉬어라, 심장아······ 너무 빨리 뛴다야. 건강해졌는데도 고통스럽다구.’



“이제, 괜찮아요. ――잠깐! 찬크에르는 기다려요. 후우후우. 자! 찬크에르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뭘 말이지? 리아의 사랑스러운 모습 말인가?”

“거, 거기서 이제 벗어나요!”


고민스러워 보였지만 찬크에르는 이번에야말로 공격을 멈추고 본론으로 넘어갔다.



“음. 나와 동급의 존재가 덤벼든다라······ 솔직히 운명이란 건 잘 모르겠지만, 정령들이나 동포가 그럴 것 같진 않다. 다만, 혹시 모른다는 생각도 있다. ――리아에게 마음을 빼앗겨, 독차지하려 나에게 덤벼들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니. 후후······.”

“저에 대한 건 이제 됐다고요. 그리고 마력이 따끔거려요.”

“앗. 미안하다. 조금 그려보고 흥분했어.”

“······찬크에르, 바뀐 것은 기쁘지만 너무 달라진 거 아녜요?”

“당연해, 리아. 동포들이 즐겁게 세상 밖의 이야기를 하는 게 이해가 안 됐지만, 지금은 그 기분을 알겠어. 오히려 오랜 시간 나 혼자 심소에 남아 지내던 게 바보 같아졌지. 뭐, 그것도 리아를 만나기 위한 기다림이었다고 생각하면 나쁘지 않지만.”

“으윽······ 그, 그런 부분이 달라졌어요. 심장에 나빠지니 너무 자주 하지는 말아주세요. 가끔은······ 괜찮을 거 같아요.”

“뭘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알겠다.”


고개를 끄덕이는 찬크에르르 보며 리아는 일단 안심했다.


‘이대로 가면 나만 찬크에르에게 공격받고 끝날 거야. 일부러 저러는 건 아니겠지만 지금은 좀 참아줬으면 해. 나중에 얼마든지······ 헤헤······ 헛?! 아니야! 정신 차려, 바보 같은 나! 언제나 나를 생각해주는 그가 고맙지만, 지금은 제대로 쳐내야 해.’


주먹을 꽉 쥐고 결연히 다짐한 리아는 진지하게 물었다.



“찬크에르, 솔직하게 말해주세요. 만약 당신과 동급의 강함―― 그 정도가 아니더라도 강대한 존재가 공격한다면 저와 아이리스, 넓게는 마을 가족분들을 지켜주실 수 있나요?”

“으음. 리아와 아이리스만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킬―― 아니, 도망칠 수는 있다. 오올르오레이만 아니라면.”

“금룡왕이라고 하셨던가요? 그분이 공격하면 저흰 도망도 힘들군요······. 다른 동급의 존재라도······ 저흰 여파만으로 큰일 날 테니 도망이 최선이고요.”

“······오올르오레이, 그는 동포끼리의 중재를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존재야. 그만큼 강대하기도 해. 하지만······ 그가 동포인 나와 다른 존재를 함부로 죽인다는 건 생각하기 어렵군.”


까마득한 시간을 함께 지낸 동포에 대한 찬크에르의 믿음이 엿보인다.


그러나――



“당신을 원망하는 건 아니에요. 믿고, 의지하고, 좋아하고 있어요. 그런 당신에게 물을게요. 찬크에르, 당신은 함부로 누군가를 죽이는 자인가요?”

“아니. 결단코 다른 존재를 함부로 죽이지 않는다. ······그렇군. 리아가 걱정하는 것이 이건가?”

“네. 말했다시피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전혀 모르겠어요. 한 번이 있었는데, 두 번이라고 없으리란 법도 없잖아요. 당신을 의심하거나 믿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당신의 동포분들은······”

“거기에 신들도 말인가.”

“후우······ 네. 전 다른 세상의 기억이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걱정돼요. 찬크에르는 개입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운명이라는 알 수 없는 힘도 있는 거라면······ 만일이라지만 준비를 하는 것도 괜찮을 거 같아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비하려는 건가?”

“당신 말대로 ‘신님은 개입하지 않는다’라는 전제하에 말을 진행할게요. 당신과 동포분들, 정령님을 탄생시킨―― 그야말로 세상을 만든 신님들을 상대로 뭘 어떻게 저항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가 않아요.”

“리아, 한 가지 그대에게 알려줄 것이 있다.”

“네?”

“저항 말이다. 물론 신들은 강대할 거다. 분명. 하지만 정령들은 그 힘에 영향을 거의 안 받는다. 신에 가깝기 때문이지. 직접 공격하는 거야 물론 통하겠지만, 사소한 간섭 정도는 통하지 않을 거야.”

“그, 그런 거예요? 하지만 신에 가깝게 된다니······”

“알고만 있으라는 거야. 저항은 불가능하다고, 그저 자포자기로 있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리아가 희망을 품었으면 해.”

“찬크에르······ 정말 매번 고마워요. 절 위해서······”


눈물을 글썽거린 리아는 찬크에르에게 달려들어 그의 배에 얼굴을 묻으며 껴안았다. 원래는 가슴팍에 안기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신장 차이가 엄청났다.


이를 알아보았나, 찬크에르는 번쩍 리아를 들어 올려 팔에 앉히듯 안아줬다.


부끄러우면서도 고마웠던 리아는 말 없는 호의에 따라 그의 목을 껴안고는 얼굴을 파묻었다.


머릿속 한구석에선 지구였다면 위험한 분위기를 풍기는 자신들을 떼어놓고, 찬크에르가 붙잡혀가는 상상이 스쳐 지나갔지만 마음만은 편해졌다.


무심코 잠이 올 정도로 편했는데, 찬크에르는 이만 진정했다고 느꼈는지 내려줬다.


아쉬웠지만 아직 이야기가 끝난 건 아니니 리아는 참기로 했다.



“흠흠. 그럼 앞으로의 대비를 위한 이야기를 진행해보죠! 먼저, 제가 찬크에르만큼 강해지는 건······ 불가능하겠죠. 그래도 절반쯤이라면······ 혹시 가능할까요?”

“············.”

“찬크에르?”

“아, 아니, 미안하다. 다른 데에 좀 정신이 팔렸다. 절반쯤이라고 했었지? 흠······ 마력레벨만이라면 혹시 가능할지도.”

“마력레벨요······? 제가 찬크에르의 그 엄청난 마력량의 반을 가질 수 있다고요?”

“마력량의 반은 아니다만······ 후후. 역시 리아다. 과연 내가 마음을 뺏긴 반려. 나의 마력량을 정확히 알 수 있나 보군. 하지만 리아가 착각하는 게 있어. 마력레벨이란 상대적이야.”


같이 살아가는 자에서 반려로 엄청난 승진을 이루어낸 리아는 마음이 들떴지만, 차분히 이어지는 그의 설명을 들었다.


그가 말해주는 마력레벨은 에이브안에게 들었던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자연스레 모여 있는 마력량을 지칭하는 것으로 똑같았다.


다만 그 양이 상대적으로 다르다고 한다.



“그러면 제가 찬크에르와 마력레벨이 같더라도 마력량은 다를 수 있겠네요?”

“반대도 마찬가지야. 오히려 리아가 나보다 마력레벨이 높더라도 마력량은 적을 수 있다. 인간들끼리는 마력레벨이 높아야만 그 차이를 겨우 실감만큼 격차가 심하지 않으니 잘 몰랐겠지. 딱히 신경도 안 썼겠고. 물론 리아라면 마력에 민감하니 쉽게 비교가 가능할 거야.”


그 외에도 애당초 마력레벨을 측정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 마법에 능통한 자가 측정하는 것과 그러한 마법이 깃든 도구 정도만이 측정할 수 있다고 말해줬다.


또 일정 이상을 넘어선 고마력레벨은 그만큼 마력에 민감해졌다는 뜻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얼추 측정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수준에 도달하는 자는 드물어서 기대는 안 하는 편이 좋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마력레벨은 레벨이라는 말처럼 정확한 수치가 존재했다.


그 최대수치는 1000으로, 이곳에 도달하면 반 정도는 신이란다. 더불어 마력레벨이 1000에 도달한 자들끼리는 서로 비교하기도 어렵고, 비교할 방법도 없다고 한다.


찬크에르조차도 저곳에 있는 자를 정령밖에 모르기에 각자의 강함이라든지, 마력량의 차이라든지 정확히 아는 게 없었다. 하지만 그는 강한 자신감을 내비치며 “우리 용은 도달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싸우면 지지 않는다”며 단언했다.


그런 지기 싫어하는 찬크에르는 조금 귀여웠다.


‘그건 그거고······ 마력레벨은 알던 것과 조금 개념의 차이가 있었네. 단순히 마력량의 다른 말 정도로 생각했는데 말이야. 정확히 측정할 방법도 있고.’


이래저래 어안이벙벙하다.



“리아,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마력레벨이라고는 하나 결국 마력량을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으니. 정 어려우면 그저 마력량을 수치로 나타낸 것이 마력레벨이라고 생각하면 될 거야.”

“혹시 에르도 측정이 가능한가요?”

“물론이지.”

“그럼 저는 현재 몇인가요?”

“잠시만 실례한다. 음. 200······ 아니, 250쯤 되는군.”


이건 한눈에 알겠다. 거짓말이라는 것을.



“찬크에르, 제대로요.”

“······184다. 그러나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 리아. 10년도 안 산 인간이 이 정도까지 오르기는 무척이나 힘들다.”

“흠. 일단 칭찬은 고마워요. 그리고 저희 할아버지도 혹시 알고 있나요?”

“그는 106이다. 몇 번 불려가서 여러 가지 대화하다 측정하게 되었었지.”

“어머니는요?”

“70 정도는 되지 않을까 한다. 측정하지 않아서 정확히는 모르지만.”


‘으음. 어쩐지 균등하지 않은 느낌이지? 그나저나 할아버지가 자주 찬크에르를 데려간다 싶었더니 지적 호기심을 해결하려고 그랬었나 보네.’


아마 잭도 비슷한 이유이지 않을까. 뭐, 찬크에르는 용왕이니 아는 것이 많아서 그러겠지.


왠지 자신의 콧대가 높아지는 기분을 맛본 리아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물었다.



“찬크에르, 기분 탓이 아니면 마력레벨에 비해 마력량의 차이가 심한 걸로 보이는데. 맞나요?”

“정확하다. 마력레벨이 오를수록 마력량의 증가 폭이 커지지. 그 정도는 또 개체마다 다르지만.”

“그렇군요······ 괜찮다면 찬크에르의 마력레벨이 몇인지 물어도 될까요?”

“811이다. 다른 동포들보다는 높은 거야. 오올르오레이를 제외한다면.”

“그분은 어느 정도 되는지 아세요?”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아마 950은 넘지 않을까 한다.”

“구, 구백! 과, 과연······ 도망치기도 힘들다고 한 이유를 알겠네요. 위로 올라갈수록 마력량도 많아진다고 했으니.”

“그것 때문에 힘들다고 한 것이 아니다, 리아. 마력레벨이라고 해봤자 결국엔 마력량이 많다는 뜻. 강함과는 직결되지 않아. 거기에 마력은 사용자가 어떠냐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아무리 많아도 잘 다루지 못하면 무용지물이고, 활용하지 못한다면 없는 것과 다름없지.”

“하지만 그분은 모든 게 뛰어나니 강하시다는 거군요.”

“그렇지.”

“하긴 저도 마력량은 루데릭보다 많은데 신체 능력은 떨어졌었죠.”


잭과 비교해도 한참 떨어질 터다. 아니면 멀리 갈 필요도 없이 필리아랑 비교를 해도 훨씬 약할 거다.



“비슷한 거야. 그런 식으로 강함과 마력량은 별개지.”

“대충은 알겠어요. 그리고 제가 당신의 반······ 약 400정도는 어떻게든 도달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했죠?”

“나는 충분히 가능하리라 본다.”

“그럼 그 마력레벨에 도달하고 훈련까지 한다면, 최소 도망칠 수는 있게 될까요?”

“······오올르오레이 말고도, 동포 둘이나 정령이 상대라면 힘들다.”

“우리는커녕 마을을 지킬 수도 없겠군요······. 미안해요. 이상한 말이나 해서.”

“말하지 않았나. 언제 어느 때라도 그대 곁에 있겠다고. 나는 리아가 의지해줘서 기쁘기만 해.”

“고마워요······”


재차 또 울긴 그래서 리아는 내용을 정리도 할 겸 벽에 머리를 기대 눈을 감았다.



“······리아, 날이 밝았다. 조금이라도 쉬는 게 어떠한가?”


조용한 침묵 속에서 울리는 찬크에르의 말에 눈을 떠 둘러보니, 확실히 방안은 밖에서 들어오는 빛으로 인해 밝았다.


어느덧 밤을 지새웠나 보다.


물론 피곤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후련해진 탓인지 기분은 상쾌하기만 했다.


대책은······ 그다지 새워지지 않았지만.


여하튼 고민해봤자 딱히 떠오르는 방안도 없다. 그의 동포를 의심한 사과와 진지하게 상담에 응해준 감사나 전하도록 하자.



“가요.”


그 말만 하고 리아는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찬크에르의 손을 잡았다.


일절 의문이나 저항 없이 따라온 그를 데려간 곳은 식탁.


리아는 찬크에르를 자리에 앉히고 본인은 부엌으로 가 근방에서 채취할 수 있는 찻잎을 우려냈다.


보답이라기엔 솔직히 너무 별것 없다. 그렇지만 말을 많이 한 그를 위해서 준비하고 싶었다.


나란히 옆에 앉아 리아도 준비한 자신의 몫을 마시며 조용하지만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그런데······ 왠지 찬크에르가 점점 안절부절, 수상한 거동을 보이는 게 아닌가.



“왜 그러세요? 차가 별로였나요?”

“아, 아니. 리아가 준 차가 별로 일리가 없지. 나에겐 천상에서 내리는 황금주와도 같다.”

“거, 거창하긴 하지만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정말 문제없다. ······음. 잘 마셨다, 리아. 그리고 잠시 볼일이 생각났으니 금방 다녀오겠다.”

“네······ 다녀오세요?”


다급하게 차를 원샷하고 밖으로 나가는 찬크에르.


눈은 이제 며칠 전부터 안 오고, 그는 튼튼하기로는 남부럽지 않은 용왕이니 괜찮겠지만······ 착각은 아닌지 거동이 진짜 이상하다.


의문에 머리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 잠옷 차림의 필리아가 방에서 나왔다.


기상하기엔 아직 이른 시간인데 의외였다. 눈도 약간 기미가 진 것이 밤잠을 설친 모양인가 싶다.


‘차 만드는 소리에 깨신 건가?’



“잘 주무셨어요? 혹시 시끄러워서 깼나요?”

“그런 건 아니란다. 잘 자고 일어났단다. 그보단······ 어제, 뭘 했니?”

“뭘 하다뇨?”

“좀 늦게 잤니?”

“네. ······앗! 들렸었나요? 죄송해요. 최대한 조용히 하려고 했는데.”

“헤에? 조용히······ 한다고? 둘이서?”


어쩐지 필리아의 눈이 조금 가늘어졌다.



“어, 네에······ 제가 찬크에르에게 부탁했거든요.”

“호오라······ 그렇구나. 리아, 엄마 잠시 볼일이 생각났단다. 잠시 다녀올게.”

“어? 다, 다녀오세요?”


‘무슨 볼일이시지?’


차마 묻진 못했다. 왜냐하면 밖을 나가던 필리아의 눈이 매우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말을 걸기 전부터도 약간 싸늘하긴 했는데, 집을 나설 땐 아예 싸늘하다 못해 만년설이라도 쌓인 듯했다.


자신이 한 말 중에 무언가 필리아의 기분을 거스를 만한 게 있었는지 생각해 보았으나······ 그런 건 짚이지도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어머니는 바로 나에게 뭐라 하셨을 텐데······ 도대체 뭐지? 찬크에르도 그렇고 어머니도······ 두 분 모두 아침 댓바람부터 밖에 볼일도 있고 참.’



“다들 바쁘시네······ 응?”


중얼거리던 리아에게 이상하다는 생각이 번쩍 스쳐 지나갔다.


가정 먼저 필리아가 이렇게 빨리 일어날 리가 없다.


아침이라 하기에도 애매한 이 새벽에, 겨울이라 밭일도 거의 없는 판국에 볼일이 있겠는가. 약속을 이 시간에 잡을 리도 만무하고.


무엇보다 저리 무서운 눈초리를 할 이유가 없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큰일이 벌어질 것만 같다.


‘그런데 도저히 모르겠네······ 일단 느긋이 있다가 돌아오시면 물어나 볼까.’


하룻밤을 지새 조금 멍했던 리아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느긋이 차나 마셨다.


쾅.


그렇게 차 한 잔을 더 마시고 있으니, 나가기 전 겉옷을 걸치긴 했지만 여전히 잠옷 차림인 필리아가 돌아왔다.


다만 제법 지쳤는지 씩씩,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 모습이 의아했던 리아는 찻잔을 내려놓고 서둘러 필리아에게로 다가갔다.



“어머니! 무슨 볼일이셨길래······”

“칫. 역시 용왕이라는 건가. 빨라.”

“찬크에르요?”


그야 그는 용왕이니 강하고 빠를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여기서 찬크에르가 나오는지를 모르겠다.


‘서로 다른 볼일이 있었던 게 아니었나?’


하지만 재차 묻기 전에 필리아가 먼저 물었다.



“리아! 똑똑한 너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어제 밤 둘이서 껴안고 뭘 했니?”

“네에?! 껴, 껴안아요?”

“그래! 그 자식―― 흠흠. 찬크에르 씨는 입을 열지 않고 도망치더구나.”


‘그 찬크에르가 도망쳤다니. 여, 역시 어머니는 대단하셔. 근데 껴안아? 밤에? 그리고 뭘 하다니―― 헉! 설마?!’


확실히 잘 생각해 보니 껴안고 있을 때가 있었다. 거기에 당시 찬크에르도 조금 다른 데에 정신이 팔렸다고 했었다.


‘그, 그럼 그때 어머니가 보고 계셨던 거야?!’


그렇지만 상담에 대한 건 잘 모르는 눈치다. 필리아에게는 이런 피해망상 같은 소린 하고 싶지 않았는데 다행이다.


안심한 리아는 숨을 내쉬며 이야기했다.



“네. 껴안았는데, 제가 작아서 안아주게 됐어요.”

“그, 그리고!! 그다음은?”

“다, 다음이요? 어······ 그리고, 그······ 조금 했어요.”

“해, 했다고?!”

“어어, 네. 밤중이라 시끄러울까 봐 붙어서 소곤소곤했는데―― 응?! 어, 어머니?!”


필리아의 표정이 무시무시해졌다. 언제나 입가에 머물고 있던 잔잔한 미소는 자취를 감추고 눈은 불타오르고 있었다. 덤으로 관자놀이에 작은 힘줄까지 솟아나 그녀의 지금 심정이 어떤지 대변하는 듯했다.


분위기까지도 다가가기 힘들 정도로 무섭도록 변한 필리아에게 리아는 당황하며 조심스레 뒷걸음질 쳤다.



“후후······ 후. 당신, 일어나요! 빨리!”


필리아의 불호령에 아직 꿈나라 속이었던 이스카르가 헐레벌떡 방에서 뛰쳐나왔다.



“무, 무슨 일이야! 도, 도둑――은 있을 리가 없고. 응? 피, 필리아? 왜······ 왜 그래?”


뒤늦게 아내의 무시무시한 형상을 발견한 이스카르는 굳어졌다.


그런 그를 뒤로한 채 필리아는 재차 불호령을 내렸다.



“당신! 지금 당장 아빠와 잭 씨를 불러와요. 무기를 갖춰서요!”

“아, 알았어.”


이런 필리아가 의외로 익숙한지 이카스르는 어떠한 대꾸도 없이 곧장 옷을 갈아입으며 나갈 준비를 했다. 그 동작은 정말 무척이나 빠르고 민첩하다.



“후훗. 아무리 나라도 내 평생에 용왕을 사냥하게 될 줄이야.”


아주 작은 혼잣말이었으나 근처였기에 리아는 똑똑히 들었다.



“어, 어머니, 지금 무슨! 찬크에르를 왜요!”

“걱정하지 않아도 돼, 우리 리아. ――파렴치한 용은 오늘부로 잠들 거거든. 안심하렴.”

“잠들면 안――”

“――감히 어린 내 딸을? 그리도 말해놨는데?!”


필리아는 흥분했는지 들리지도 않는 모양이다.


뭔가 잘못됐다.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됐다.


위기 감지 센서가 작동하고 리아는 현생 최고의 속도로 머리를 쥐어짜 내기 시작했다.


‘크, 큰일이야. 왜 이렇게······ 어라? 잠만. 파렴치하다고? 찬크에르가 나에게? 그럴 리가 없잖아. 기다려. 나는 어머니에게 뭐라 했었지? 빨리, 빨리! 기억해!’


필사적으로 기억을 더듬고······ 마침내 도달했다.


동시에 이스카르는 문을 열고 나가려 하고 있었다.



“자, 잠깐! 기, 기다려요, 아버지!!”


정말 지금까지의 일생에서 가장 큰 목소리일거라 생각되는 목청이 터져 나왔다.


그런 딸의 절박한 외침이 닿았나, 이스카르는 뒤를 돌아봤다.



‘다행이야. 늦지 않았어. 난 찬크에르의 명예와 목숨······까진 아니겠지만, 어쨌든 지켜냈어! 응. 그는 결코 파렴치한 짓 따윈 하지 않았는걸.’


만족스러움에 리아는 고개를 주억였다.



“리아······? 사람을 불렀으면 말을 해야 하지 않겠니? 혼자 끄덕이고 있으면 안 되지 않을까 싶은데. 리아의 생각은 어떠니?”

“왓! 마, 맞아요! 옳은 말씀이에요, 어머니.”

“그래. 그래서 할 말이란 무엇이니.”


리아는 마른침을 삼켰다.



“차, 찬크에르는 무죄입니다! 사냥하시면 안 돼요!”

“헤에······ 일단 들어나 보자꾸나.”

“네넵! 그, 그전에 잠시만요. ······찬크에르! 들리시나요? 도, 돌아오세요!”


‘안 돌아오시면 큰일 나요!’


제발 근처에 있길 리아는 간절히 바랐다.


그리고――



“리아, 불렀나?”


간절한 외침이 끝나자마자 문을 열고 찬크에르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오오! 고마워요, 신님.”

“신? 어느 신에게 기도를――”

“――그런 건 됐어요. 어서 이리로 오시기나 해요. 찬크에르가 사냐앙······ 어, 어쨌든 큰일 날 거라구요!”


진짜 신이 있는 이 세계에서 매우 불경스러운 태도가 아닐 수 없지만, 그게 중요하랴.


대충 마음속으로 누군지 모를 신에게 사죄한 리아는 서둘러 찬크에르에게 달려가 거실로 데리고 들어왔다.


작가의말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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