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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님의 서재입니다.

만렙 히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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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최근연재일 :
2024.06.19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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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8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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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17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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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3쪽

43

DUMMY

나트알.


이름이 없는 마을로 여겨졌던 이 작은 마을에서는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이는 배웅하기 위함으로, 어제 새로이 마을의 부부가 된 리아는 이른 아침 일찍부터 나와준 주민들에게 꾸벅꾸벅, 머리를 숙였다.



“우······ 다들 배웅 정말 고마워요.”

“얘도 참. 뭘 이런 거 가지고 그러니.”

“그래. 당연한 일이니까 신경 쓰지 말고 학원이란 곳에 적응이나 잘 하거라."


눈물을 글썽거리며 감격한 리아에게 주민들은 저마다 여러 격려의 말을 건네거나, 서로 이전에 리아가 잠시 떠났을 때의 이야기를 나누며 잡담을 나누었다.


조금 어수선했지만, 다들 밝은 분위기로 있는 것을 보며 리아도 미소 짓고 대화를 나눴다.



“아가씨.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아. 바지탄스씨. 고마워요, 잘 다녀올게요! 여러분들도······ 일부러 나와 주셔서 감사해요. 그리고······ 이베시온에 들르는 일이 더 늦추어져서 죄송해요.”

“하하. 괜찮습니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아직 저희의 힘으론 그 마물을 감당할 수 없으니 말이죠. 거기에 조금 늦은 걸로 이베시온의 주민들은 맘 상하지 않을 겁니다. 그 정도로 속이 좁지 않거든요. 그러니 아가씨는 걱정하지 마시고 다녀오시면 됩니다.”

“네네! 배웅도 아가씨가 가시는 거니 마중 나오는 거야 당연한 거죠! 그렇지? 아시리트.”


바지탄스에 이어 활기찬 목소리로 말한 티라이드. 그의 물음에 아시리트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가씨, 부디 학업에 많은 정진이 있으시길 바라겠습니다.”

“고마워요! 열심히 할게요. 헤헤.”


리아는 아시리트를 끌어안았다.



“아, 아가씨?!”


헤실헤실 웃는 리아가 갑자기 끌어안자, 아시리트는 굉장히 당혹스러워하며 손이 허공에서 춤을 췄다. 그러나 그녀는 이내 따스하게 미소 지으며 자신의 가슴 언저리에 있는 리아를 부드럽게 마주 안아줬다.



“감기 들리지 않게 하시고, 건강히 지내셔야 해요?”

“네! 조심할게요!”


정화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리아는 감기 같은 병에 걸리더라도 바로 치유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아시리트의 걱정하는 그 마음을 모를 리 없어 리아는 더욱 꼭 끌어안아 감사를 전했다.


아시리트와도 대화를 마친 리아는 굉장히 반겨주는 다른 마족들에게도 감사를 전하며 돌아다녔다.


그런 때에 리카드가 왔다.



“이스피리아양! 이제 슬슬 가봐야 합니다.”


다가오며 외치는 그 말에 주민들이 고개를 돌렸다. 일부 흉흉한 눈빛으로 리카드를 쳐다보는 마족들도 있었지만, 주변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툭툭 쳐서 주의를 줬다.


일제히 모이는 사람들의 시선에 리카드는 움찔하면서도 리아에게 다가왔다.



“고생하셨어요, 리카드 씨. 준비가 다 된 건가요?”

“네. 마수 분께 출발을 전하고 왔을 뿐이지만요.”

“그럼 어서 가보도록 할까요. 입학식에 늦을 순 없으니.”


리아는 가족들과 대화하는 찬크에르와 아이리스의 곁으로 갔다.



“에르! 준비가 끝났대요.”

“응. 들었어. 우리는 이미 준비가 끝났으니 바로 가면 돼.”

“아이리스는? 뭔가 놓고 간 건 없는지 잘 살펴봤니?”

“네. 전부 잘 챙겼어요.”

“걱정하지 않아도 돼, 리아. 나도 같이 확인했어.”

“고마워요. 저도 같이해야 했는데······”

“괜찮아. 아내와 자식을 위한 건데. 이런 일쯤은 아무것도 아니야.”

“에르······”


쿨쿨 잘만 자고 있던 본인을 떠올려 리아는 미안하면서도 새삼 에르의 말에 결혼했다는 실감이나 부끄러웠다.


그렇게 몸을 꼬던 리아는 조용히 찬크에르에게 다가갔고――



“크흐음!”


크게 헛기침하는 이스카르에 의해 정신을 차렸다.



“아버지······?”

“아니란다. 아무것도.”


말과 달리 이스카르는 이마에 힘줄까지 솟아올라 찬크에르를 노려보고 있었다.


느낌이지만 왠지 뭔가가 탐탁지 않은 게 아닐까.



“크으!”


······아니다.


피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분노에 가득 차 있는 무서운 형상은 단순히 질투심을 품고 있을 뿐이었다.


한동안 딸의 재롱을 보며 행복하게 지낼 줄 알았다는―― 아쉬움이 가득 느껴졌던 어제의 술주정은 진짜였나 보다.


‘막상 결혼식 때는 의연하시길래 괜찮은 줄 알았는데. 진정되고 보니 꽤 불만스러우셨나 보네.’


뭔가 귀엽다는 생각이 든 리아는 이스카르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저 인사를 위해 한 행동으로 노리고 한 건 아니지만, 그 순간 이스카르의 얼굴이 사르르 녹으면서 여느 때에 헤실거리는 표정이 되었다.



“아버지, 다녀올게요!”

“으응! 그래! 조심해서 다녀오렴.”

“네!”


빙긋 웃은 리아는 옆에 있던 에이브안에게도 인사를 했다.



“할아버지! 다녀올께요!”


에이브안은 인자한 얼굴로 리아의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어줬다.



“그래. 마을에 학교를 짓고 싶다고 했으니 가서 잘 보고 배우도록 하렴.”

“네~! 열심히 할게요!”


에이브안과의 인사를 마친 다음은 필리아.


리아는 그녀를 껴안아 잠시 작별하는 아쉬움을 달랬다.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지만, 서로의 온기를 느끼는 것만으로 인사는 충분했다.



“어이, 리아.”

“엇! 오라버니~!”


필라아와 떨어진 직후 말을 걸어오는, 이제는 자신보다 한참이나 커다래진 루데릭을 본 리아는 냉큼 뛰어들어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으윽! 야. 넌 결혼까지 한 얘가 무슨······”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루데릭은 마주 안아주어 떨어지지 않게 잘 받쳐줬다.


‘이것이 츤데레인건가?!’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자니 루데릭이 중얼거렸다.



“······다른 남자를 함부로 껴안거나 하지 않으니 괜찮나?”

“응?”

“아니야.”


얼렁뚱땅 넘긴 루데릭은 조심히 리아를 내려줬다.



“가서 엉뚱한 일 벌이지나 말라고.”

“에엑? 나 엉뚱한 일 하는 그런 여자가 아니야!”

“옛날에도 말했었다만······ 넌, 꽤 그래.”

“무슨?! 그럴 리가 없잖아!”


항의하를 무시하고 루데릭은 손을 들어 재차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리아는 입을 삐죽 내밀면서도 그 손길을 조용히 받아들였다.


잠시 그러고 있으니 루데릭은 곁눈질로 리카드를 쳐다봤다.



“리카드. 리아를 잘 부탁한다.”


진지한 눈인 루데릭를 마주 보며 리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걱정하지 마시길. 여러분들이 걱정할 만한 일은 벌어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 한마디면 충분한 모양으로, 루데릭은 더 들을 게 없다는 듯 시선을 거뒀다.



“자. 리아, 어서 가봐야지. 늦으면 안 되잖아.”

“그렇지! 새 학기부터 지각하면 눈에 띌 거야!”


불량아처럼 보일 순 없다며 리아는 의욕을 다졌다. 그런데······ 왠지 주위의 시선에 걱정이 가득하다.


‘뭐······ 이제 막 성인이니 다들 걱정하시는 거겠지.’


대수롭지 않게 넘긴 리아는 학원에서의 생활을 상상해 보았다.


그러는 동안 에르가 리카드와 대화를 나누었다.



“마차라는 것은 숲 바깥에 서 있는 걸 말하는 건가?”

“호······ 여기서도 알 수 있습니까? 네, 맞습니다. 여기까지 들어오기엔 장애물들이 너무 많아서 올 수 없었지요.”

“알았다. 그럼 어서 이동하지.”

“예. 알겠습니다.”

“리아.”


처음 인상이 중요한 거라며, 크게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던 리아는 부르는 말에 정신을 차리고 에르에게 쪼르르 다가와 올려다봤다.


그러자 에르의 눈이 살짝 커지더니 흠칫 몸을 떨었는데······ 뭔가를 참는 듯한 기분이랄까, 그런 느낌이 든다.


뭐, 별일은 아닐 것이다. 언제나처럼 애정 가득한 눈빛이니.


역시나 에르는 평탄한 어조로 대답해주었다.



“마차는 숲 바깥에 있대.”

“아~ 하긴 나무들과 풀 때문에 들어오기 힘들겠죠.”

“응. 그래서 이제 가봐야 할 거 같은데, 괜찮아?”

“네. 인사도 다 했어요. 문제없어요. 아이리스도 괜찮니?”


말하며 돌아보니 모두에게―― 루데릭은 물론, 이스카르와 필리아, 에이브안에게 둘러싸인 아이리스가 보인다.



“저······ 다들 뭐 하세요?”


묻는 말에 모두 화들짝 놀라더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딴청을 피우기 시작했다.


어떻게 봐도 의아한 이 모습에 리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괘, 괜찮아요! 전 진작 다 인사했어요!”


다들 왜 그런 건지 궁금했으나 사랑스러운 아들의 말이다.


리아는 즉시 모든 의문을 접고는 활기차게 주먹 쥔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럼, 출발······ 후훗. 어쩐지 산속에서 돌아올 때가 생각나네요. 에르, 오랜만에 당신의 품 좀 빌려도 될까요?”

“물론이지. 언제라도 괜찮아.”


장난기가 가득한 말을 에르는 미소 지으며 받아줬다.


산속에서의 일을 재현한 리아는 만족스러움에 웃으며 에르에게로 다가갔다. 그러자 에르는 지난번처럼 안아 올려 팔에 앉히고는 아이리스도 마법으로 띄었다.



“리카드. 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겠지?”

“예. 할 수 있습니다.”

“그럼, 먼저 가라. 따라간다.”

“알겠습니다. [비행].”


발동어를 외친 리카드의 몸이 떠올랐다.


그 상태로 에르와 높이를 맞춘 리카드는 밑에 있는 주민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여러분, 환대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즐거운 추억을 쌓게 되었습니다. 이스피리아 양은 너무 걱정 마십시오. 학원에 잘 적응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해 도울 테니.”

“어이! 잘하라고! 만약 아가씨가 조금이라도 상처 입는다면 가만 안 둘 테니까!”

“리아를 잘 부탁한다!”


주민들의 말을 들으며 리카드는 다시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리아도 아이리스와 함께 손을 흔들어주는 주민들에게 소리 높여 외쳤다.



“여러분! 다녀올게요! 또 한 번 배웅해줘서 정말 고마워요!”

“다녀오겠습니다. 어머니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잘 지켜보겠습니다.”

“아가씨, 몸조심하세요! 아이리스 님도 건강하시고요!”

“리아야! 잘 다녀오렴!”


마지막으로 에르도 살짝 눈인사하고는, 리카드 때와는 전혀 다른 열렬한 배웅을 받으며 천천히 속도를 높여 날아갔다. 그 뒤를 리카드가 따랐다.


리카드는 자주 [비행]에 익숙한 것인지 상당히 숙련된 모습이었다. 덕분에 날아가는 속력은 빨라 순식간에 마을은 숲에 둘러싸여 보이지도 않게 되었다.


그렇게 잠시 에르에게 안겨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과 불어오는 바람의 시원함을 느끼고 있자 저 멀리 숲의 끝자락이 보이고, 거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대기하고 있는 화려한 마차를 발견했다.



“리카드씨! 혹시 저 마차인가요?”

“예. 맞습니다.”

“헤에······”


선두로 나선 리카드는 속력을 낮춰 먼저 마차를 향해 내려갔다. 찬크에르도 거기에 따라 속력을 낮추며 다가갔다.



“오오······”


땅에 내려와 눈앞에서 보니 마차는 지붕이나 창도 나 있어 제법 고풍스러웠다.


하지만 외형이야 어찌 됐든 겉으로 볼 땐 조금 미덥지 못해 보였는데, 안전에 꽤 진심인 리아는 참지 못하고 다가가 살짝 두드려봤다.


콩! 콩!


소리에서도 그렇지만 예상보단 좀 더 튼튼하다. 물론 못 부실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 정도라면 전복되더라도 망가지진 않을 것 같네.’


그러한 평가를 하고 있으니 곁으로 온 리카드가 말했다.



“희귀금속과 마법으로 강화한 일급품입니다.”


상당히 자부심이 있는 듯한 말이었다.


그러나 안전을 확인한 리아에겐 완전 관심 밖이었다. 대신 있는 거라고는 기대감. 만화에서만 보던 마차의 등장에 흥분할 뿐이었다.


리아는 눈을 잔뜩 빛내며 다급히 물었다.



“저기저기, 리카드씨! 정말 우리 이거 타고 가는 거예요?!”

“하하. 그렇습니다. 혹시 마차는 처음 타보시는 건가요?”

“네! 기대돼요!”

“흥. 겨우 이딴 걸로 리아를――”

“――에르도 기대되지 않아요?”

“물론. 리아와 함께하는 여행이라 기대돼.”

“······바보 아빠.”


고개를 내젓는 아이리스.


리카드는 어색하게 웃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으음······ 어딜 가신 거죠? 금방 온다고 전해드렸는데······”


두두두두······


어딘가에서 말발굽이 땅을 차는 소리가 난다.


신나 하던 리아도 그 소리에 반응해 고개를 돌렸는데, 에르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 먼저 바라보고 있었다.



“아. 오셨습니까.”


두리번거리던 리카드는 자신에게 다가온 마수―― 아마 여기까지 마차를 끌고 왔으리라 여겨지는 커다란 말을 반겼다.



“혼자 계시게 해서 죄송하게 됐습니다. 아무 일도 없으셨습니까?”


묻는 리카드의 말에 군청빛 갈기의 마수는 푸르릉 하고 짤막하게 코를 울렸다.



“하, 하. 죄송합니다. 조금 화나셨는지요?”

“으응?”


멋진 말에 등장에 눈을 반짝이고 있던 리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는 리카드의 팔을 톡톡 두드렸다.



“아뇨, 리카드 씨. 저분은 지금 ‘문제없다’라고 하셨어요.”

“네······?”

“아차. 어머니······”


뒷머리를 긁적거리는 아이리스를 보고 리아는 황급히 손으로 입을 막았다.


‘시, 실수했다!’


에르는 물론 아이리스도 몬스터의 의사를 알아들을 수 있긴 했으나, 현 시대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자들이 거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리스가 사실 드래곤인 것과 더불어 가능한 한 숨기기로 했었다.


괜히 눈에 띄는 행동을 해봐야 좋을 건 없으니까.


그런데 지금 대놓고 난 알아들을 수 있다 광고를 한 것이다.


어떻게든 빠르게 머리를 굴린 리아는 변명을 대보려 했으나······ 마땅히 떠오르는 건 없었다. 이미 늦은 것이다.



“혹시 이스피리아 양은―― 아! 그래서 그때 루데릭이······”

“아, 아니요! 그게······ 그러니까.”


리아는 우물거렸고, 놀란 듯싶었던 리카드는 이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습니다. 아무에게도 말씀드리지 않을 것을 약속합니다. 굳이 이스피리아 양을 곤란하게 만들 필요는 없으니까요. 다만, 그 대신이라고 하긴 좀 그렇지만, 나중에 몇 가지 물어볼 수 있을는지요? 제 지적 호기심 때문에 그런 것으로, 불편하지 않으시다면 부디.”

“그런 거라면야······”


리아는 슬쩍 눈을 굴려 찬크에르, 그의 의사는 어떠한지 물었다.



“리아가 괜찮다면.”

“음. 그럼 괜찮을까나······ 솔직히 나도 조금 궁금하기도 하고.”


마음대로 하라는 남편의 의견에 리아는 결정하고는 왠지 모르게 에르의 눈치를 살피던 리카드에게 말하였다.



“알겠어요. 마침 저도 궁금했던 일이었어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스피리아 양도 모르시나요?”

“응? 네. 저도 어렸을 때부터 알아들을 수 있긴 했지만 왜 그런지는 몰라요.”

“그렇습니까······”


말을 흐린 리카드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찬크에르에게 갔다. 아마 똑똑한 에르라면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 여겼는데 자신이 모른다 하니 조금 의아했던 게 아닐까.


그런 그의 시선을 받은 찬크에르는 한심하다는 눈으로 내려 봤다.


여전히 남에겐 무표정인 찬크에르였지만, 리카드도 그 감정만큼은 똑바로 느꼈나 보다. 흠칫하더니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짓는다.



“내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려주면 리아가 앞으로의 인생에서 무엇에 재미를 느끼겠나. 정말 안타까울 정도로 생각이 빈곤한 녀석이군.”

“윽······ 그렇죠. 모든 걸 누군가가 알려주기만 할 뿐이라면 지루하기만 하죠. 그것도 정답뿐이라면 더욱이나.”

“다행히 그 정도는 이해할 머리가 되나 보군.”

“······.”


‘그러면 나는 이 틈에······’


매섭게 매도하는 에르와 곤혹스러워하는 리카드.


살짝 눈치를 살핀 리아는 아직 대화하는 둘을 내버려두고 살금살금 근처에 있는 말마수를 향해 다가갔다.


이번 생에는 물론이고, 전생에서도 실제로 말을 본 적은 손에 꼽는다. 그런데다가 이토록 가까이서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이 기회를 어찌 놓칠 수 있겠는가.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마수의 앞에 선 리아는 잠시 진한 군청의 갈기와 그보단 조금 연한 몸의 털에서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것을 바라봤다.


보면 볼수록 멋진 말이다.


하지만 막상 말을 걸려니 이번 생에서는 처음으로 본 말이기에 조금 긴장된다. 마수와 대화하는 것도 사슴마수 말고는 처음이기도 하니 더욱이나.


게다가 지구에서 보던 말보다 훨씬 거대했기에 압박감 같은 게 느껴져 좀 주저된다.


한동안 흔들리는 마음을 정리하던 리아.


그러다 마침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기······ 안녕하세요! 전 이스피리아라고 해요. 오늘부터 잠시 신세를 지겠습니다!”


마수는 역시 지성이 있는 존재답게 지혜가 서린 눈으로 본인보다 한참 작은 리아를 내려다봤다.


그런데 호기심과 호의가 가득한 이쪽과는 달리, 마수는 살짝 움찔하며 조금 곤란한 기색이다.



“저기. 왜 그러시―― 아, 네! 잘 부탁해요, 비젠탈 씨? 헤헤.”


힘겹게 꺼낸 비젠탈의 소개에 리아는 사람에게 하듯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대화를 할 수 있어 무심코 사람에게 대하듯 한 것이었는데······


말에게는 손이 없다.


갈 곳을 잃은 리아의 손은 혼자 허공에 맴돌았다.



“아······ 그, 그렇지요. 악수는 무리겠죠?


부끄러움에 볼을 긁적거리는 리아를 비젠탈은 조용히 바라보았다.






예쁘장한 어린 소녀와 굴강하고 품위 넘치는 군마.


제삼자가 볼 땐 분명 그림이 되는 장면이다. 그러나 찬크에르에게 잔뜩 쏘아지다 무심코 이 모습을 목격한 리카드에겐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이름을······ 정말 마수와 대화하실 수 있으셨군요. 혹시 마물과도 가능할는지 모르겠네요. 그런데 저분이 곁에 누군가가 서 있는데도 싫어하시지 않다니······ 대화할 수 있어서일까요?’


비젠탈과 어느 정도 친밀해졌다고 생각하는 자신조차도 근방에 다가가는 게 고작이었건만 실로 흥미롭다.


아니. 이만큼 흥미로운 존재는 두 번 다시 보기 힘들 것이다. 더욱 이스피리아를 데려오려 한 판단은 현명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좋지만 이만 서둘러야겠군요.’


입학식 며칠 전에 도착하도록 시간을 꽤 여유롭게 잡았지만, 일정이 늦춰질 요소는 얼마든지 있었다.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건 학원에 도착하고 나서도 늦지 않는다.



“이스피리아 양, 이제 출발하겠습니다.”

“네! 알겠어요! ······비젠탈 씨, 잘 부탁드려요.”


해맑게 웃은 리아는 비젠탈에게도 인사를 하고 먼저 마차에 탑승했다.


리카드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 비젠탈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그의 하네스에 마차를 연결했다.


그것으로 끝.


지구에서는 마차와 말을 연결하려면 얼추 30가지 이상은 되는 장비들이 필요하지만, 비젠탈이 착용하고 있는 건 목과 몸통에 걸치는 간단한 모양이었다. 그런데다가 비젠탈은 사람의 말도 알아들으니 재갈도 하고 있지 않았다.


마차를 어느 정도 다를 줄 아는 사람이 본다면 말과 마차 모두에게 불안한 광경이지만, 리카드는 익숙하다는 듯 연결을 마치고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마부석으로 연결되는 창문을 열었다.



“비젠탈씨. 다 탔습니다. 출발하셔도 됩니다.”


리카드의 신호로 마차는 서서히 움직였다. 이내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고, 주변의 풍경은 빠르게 지나갔다.



“와. 빨라! 탑승감도 좋은 게 흡사 기차나 지하철 같네.”


창밖을 쳐다보며 그리 중얼거린 이스피리아는 놀랍다는 기색을 풍겼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한 점이 있었나, 갑자기 의아하다는 듯이 마차 안을 둘러봤다.



“엄청 정교한 마법이네요.”

“제법이긴 해. 약간 마력을 낭비하는 부분도 있지만.”


갑작스럽게 꺼낸 말이었지만 그녀의 옆에 앉아있던 찬크에르는 이해했는지 바로 말을 받았다.


그런 둘의 이야기에 흥미가 동한 리카드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끼어들었다.



“알아보실 수 있으십니까?”

“네. 바퀴 쪽에는 닿는 노면을 순간적으로 강화하는 거죠? 포장된 도로처럼 하려고요. 여기 실내에는 진동을 분산······이랄까, 진동방지를 위한 마법이 걸려있는 거 같고. 그 외에도 외벽, 창문의 강화나······ 흠. 보호막? 같은, 외부에서 오는 마법에만 반응하는 막도 있네요. 그리고 공기를 순환시키는 기능이랑,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해주는 것도 있고요.”

“대, 대단하시군요.”

“아뇨. 뭘 이 정도로······”


정말 별것 아니라는 듯 이스피리아는 쑥스러워한다.


그러나 마차에 걸린 마법은 자신이 고안해낸 술식으로, 왕의 마차에도 사용하여 헌상하기도 한 것이었다.


더불어 벨루디스의 왕에게는 집보다 편하다는 평도 받아, 재력이 있는 집안으로부터 제작 의뢰가 끊이지 않을 정도로 인기였다.


물론 전부 거절하지만.


참다못한 몇몇은 만들어 놓은 견본을 토대로 술식을 그대로 따라 하여 복제품을 만들기도 하였다.


하지만 결과는 대실패.


부와 명예를 위해 의뢰를 받고 달려든 이들도 매한가지였다. 분석은커녕 견본인 마차 어디에 술식이 있는지 찾아내지도 못하였다.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어 항복하고 알려 달라 간청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왕에게 헌상한 물건에 쓰인 마법을 알려달라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런 요구를 들어줄 순 없었다.


애초에 그딴 불경스러운 요구를 하는 건 왕의 권위에 도전하는 줄도 모르는 멍청한 귀족이거나, 돈만 믿고 설치는 재력가들이었다.


그러한 생각이 없는 자들이니 거절에 대한 대가로 압력을 넣을 수도 있으나, 자신은 현 왕―― 아크티알 네우라 디안 벨루디스에게 신임을 받는 자였다.


그런데다 최근엔 아티팩트를 발견한 공로로 왕가의 미들네임 ‘디안’까지 내려받게 되었다.


나라에 막대한 공헌을 했다는 칭호로 왕가의 이름을 받은 자는 매우 드물다. 다른 뜻으로는 그만큼 왕에게 신뢰받고 있다는 소리였다.


아무리 생각이 없기로서니 함부로 트집을 잡기란 어려웠다. 그러니 다들 아쉬운 마음을 접고 포기했고, 이제는 아예 복제하려는 시도조차도 하질 않았다.


그런데······


‘솔직히 경악스럽군요.’


술식을 자연스럽게 감추고 최대의 효과를 냈다 자부하고 있었건만, 찬크에르는 마력을 낭비하는 부분이 있다 하고, 이스피리아는 앉아서 단번에 모든 마법을 알아봤다.


완벽하다고 생각한 부분에서도 모자람이 있는 것이다.


‘정말 배움엔 끝이 없군요.’


좌절스럽기도 했지만, 리카드는 열의를 불태웠다.


부족한 부분이 있다는 걸 안 것만으로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닌가.


‘아······ 생각해보니 아쉽군요. 이스피리아양을 학생으로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초빙교수 같은 명목으로 했으면 제 보좌로 두고 마음껏 같이 연구해봤을 텐데요.’


결혼식 때의, 마법인지도 모를 정도로 치밀한 마법도 쓸 수 있는 그녀다. 마차에 걸린 마법도 한눈에 알아차릴 정도라면 몇 달만 배워나가면 교편에 서도 문제없지 않을까 싶다.


거기에 그녀는 마을에 학교를 세우고 싶다하니, 오히려 그 편이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만약 퇴직할 때가 된다면 저도 이스피리아 양이 만든다는 학교에서 교편을 잡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이네요.’


찬크에르와 이스피리아, 그리고 이 둘의 아들인 아이리스가 있다면 분명 연구 소재거리가 떨어질 일은 절대 없을 거다.


그리 생각하니 꽤 괜찮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그 마을은 마음이 편해지기도 하니 정말 나쁘지만은 않다.


그렇게 가볍게 시작한 고민에 리카드는 제법 진지하게 빠져들었고, 그런 그와 함께 마차는 조용히 베르다드 학원을 향해 나아갔다.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라스티아 입니다


후... 생각보다 수정할 곳이 많은 화였습니다

덕분에 오늘은 얼만큼 더 올릴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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