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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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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최근연재일 :
2024.08.15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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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6
글자수 :
1,045,919

작성
24.03.18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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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웬도버의 봄 (10)

DUMMY

171화


전투가 불가능할 법한 노약자와 영유아를 제외한, 십 대 중반부터 중장년까지, 최소한의 저항이 가능한 나이대의 남녀가 이곳에 모여 있는 상태다.

하지만 하지운이 아무리 지랄을 해도 당당하게 나서는 용사 따위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처음부터 머릿수가 이천팔백이든 이만 팔천이든, 그딴 건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었다.


애초에 제대로 된 걸 처먹지 못해 엘리트 전사가 되질 못했으니, 로저네 집까지 기어들어 가서 깽판을 치는 일에 한몫 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들이 무슨 부조리에 저항하고 의식이 깨어 있어서 참전을 거부했던 것이 아니었다.


피붙이들이 전장으로 떠나 있는 동안, 본거지를 지키겠답시고, 안전한 후방에서 뒹굴고 있었던 이 자들은 대부분이 개돼지 피를 먹은 잉여들이었다.

원수 놈들조차 노략질하러 가는 길에 끼워 줄 가치조차도 못 느꼈던 게 이들이라는 것이다.


그런 이들이 왕국 제일 검인 동시에 기적을 실천하는 대마법사를 앞에 두고, 당당한 용사의 풍모를 풍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왕국에서의 마지막 이벤트를 열정적으로 즐기고 있던 하지운이 이들에게 너무도 과한 것을 강요하고 있었던 것이다.


“좋다! 너희의 뜻이 정 그러하다니, 사서의 내용은 내가 알아서 각색하도록 하마! 아니다! 아예 내가 직접 편찬하도록 하겠다! 너희 모두가, 연놈 할 것 없이, 얼마나 열심히 울면서 똥오줌을 싸 갈겼는지 적나라하게 기록하도록 하마! 그러니 다들 그렇게 알고 맘 편하게 뒈지도록 하거라!”


인간 말종 하지운은 자신의 손에 곧 죽을 예정인 가련한 이들에게, 역사 왜곡까지 서슴지 않겠다는, 개같은 협박까지 주저 없이 나불댔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악독한 하지운조차도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다.

실제로 하지운은 전혀 왜곡된 것이 없는 진실 그 자체를 기록하게 될 예정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들 대부분이 이미 똥오줌을 지린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에게 하지운의 더러운 협박이 전혀 먹히지를 않은 것이었다.


후각 또한 개같이 발달한 하지운이지만, 시체 태운 냄새가 진동을 하는 구덩이 속에서, 곧 죽일 놈들의 사타구니 사정까지 헤아려 줄 수는 없었던 것이다.


안 그래도 배고팠던 하지운이 좁쌀만큼 남아 있던 미련을 깨끗하게 내다 버렸다.

잠시 후 생각을 정리한 하지운이, 파무어 요새 앞에서 했던 것처럼, 또다시 자신이 딛고 있는 자리만 삼십여 미터 위로 치솟게 만들고는 바로 물의 원소들을 불러내었다.


이윽고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억수 같은 폭우에, 구덩이 속에 있던 이들이 괴성을 질러 대면서 발광을 하였다.

그 꼴을 보고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구덩이 밖의 용사들이 하지운을 향해 닥치는 대로 창칼을 집어던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백여 개에 달하는 흉기가 하지운의 코앞까지 들이닥쳐 버린 것이다.


소피아를 비롯한 드레이시 가문의 신입들이 입을 크게 벌리고 비명을 지르려는 찰나에, 또다시 이적이 일어났다.

갑자기 흉기들이 허공에 떡 멈춰 버리더니, 천천히 상승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이내 육안으로 따라잡기도 버거운 속도로 치솟아 버렸다.


좌중의 모두가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던 찰나에, 까마득한 검붉은 허공 속으로 솟구쳤던 흉기들이 가공할 속도로 쏟아져 내렸다.


피하고 자시고 할 틈도 없었다.

다연장 로켓을 방불케 하는 백여 자루의 날붙이들이 구덩이 밖에 있던 용사들의 하반신을 말 그대로 분쇄해 버린 것이다.

단숨에 사분의 일에 가까운 원수들이 의식 불명 직전의 상태까지 내몰려 버리고 말았다.


그런 그들에게 복제 인간들이 따스한 손길을 내밀어, 병 준 자리에, 약을 주었다.

애초부터 하지운은 염동력을 쓰지도 않았던 것이다.

미우나 고우나 본체가 없으면 살아갈 수가 없는 복제 인간들이 알아서 능동 방어를 해 준 것이었다.

심지어 그럴 필요도 없었는데 말이다.

작금의 하지운은, 이 같잖은 엘리트 전사들이 날려 대는, 날붙이들을 굳이 몸에 꽂아 줄 만큼 육질이 연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츤데레 같은 복제 인간들을 보고 피식 웃은 하지운이 마지막으로 얼음의 원소들을 불러들였다.

두 달이 넘도록 단 한 번도 부름을 받지 못해, 극한까지 삐져 있던 얼음의 원소들이 짜증을 있는 대로 내면서도 결국에는 못 이기는 척 반응을 하였다.


얼음의 원소들의 반응을 보고 약간 꺼림칙했던 하지운이 소피아와 정보 길드 노인들을 둘러보며 손짓을 하였다.

눈치 빠른 누이와 노인네들이 황급히 대열을 한참 뒤로 물리도록 하였다.

그걸 보고 원수들도,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부상자들을 잡아끌고는 부리나케 뒤로 물러났다.

워낙 한 짓들이 있다 보니 아군, 적군 할 것 없이 모두가 기합이 바짝 들어 있던 것이다.


복제 인간들의 염동력 쇼로 좌중의 시선이 집중돼 있던 사이에, 구덩이 속은 말 그대로 호수가 되어 있었다.

그새 이 미터 높이까지 차오른 물 때문에, 수영을 전혀 할 줄 모르는, 브리갠트 토박이들이 광란의 자맥질을 하느라 구덩이 속을 아비규환의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고막이 터져 나갈 것처럼 시끄럽던 공간이 삽시간에 고요해졌다.

하지운이 마력을 일으키기가 무섭게 이 미터 이십까지 차올랐던 엄청난 양의 물이 단숨에 얼어붙은 것이다.


경솔한 하지운이, 오랜만에 자신의 직감을 믿고, 일행을 뒤로 물린 게 신의 한 수였다.

만약 귀찮다고 대충 마력부터 움직였다면, 생각하기도 싫은 대참사가 일어날 뻔했던 것이다.

이 정도 냉기면 주변의 구경꾼들까지 전부 골로 보내 버렸을 게 명약관화한 일이었다.


사만 사천 톤 분량의 물을 대략 오 초 만에 얼려 버린 하지운이 만면에 여유로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속으로는 본인조차도 어찌나 놀랐던지, 이마를 타고 내려오는 싸늘한 땀방울들까지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하지운이 여유로운 척 허세를 부리고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두 눈이 똥그래질 정도로 놀라 버린 복제 인간들이 거침없이 쓴소리를 내뱉어 댔다.


“본체야, 아직 삼월 초다! 벌써 더워서 그러는 거냐? 기운 좀 조절해라! 존나 춥다, 이 정신 나간 새끼야!”

“저 새끼가 벌크업을 하고 나서는, 아예 힘 조절할 생각을 안 하네! 미친 새끼야, 작작 좀 해라! 네 가솔들까지 다 얼어 뒈질 뻔했다!”

“저 새끼는 한번 분위기를 타면 정신을 못 차려! 진짜 치료를 한번 받든가 해야 된다니까! 약이라도 강제로 처먹여야 한다고!”


복제 인간들이 알 수 없는 말들을 섞어 가면서 고함을 질러 댔지만 별문제는 없었다.

주변을 둘러싼 모든 이들이 다 얼어붙어 버려서, 그 소음에 귀를 기울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냉기 때문에 얼어붙은 것이 아니라, 공포에 질린 나머지 몸뚱어리들이 굳어 버린 것이었다.


흥분한 복제 인간들을 달래기 위해, 이미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 하지운이 다급히 정신을 통해 의사를 전달했다.


‘진정들 해! 내가 그런 게 아냐!’

‘야, 이 또라이 새끼야! 여기 너 말고 너 같은 마력 부자가 또 어디 있다고 발뺌이야?’

‘아니, 내 말은 내가 일부러 마력을 왕창 때려 넣은 게 아니라고!’

‘그런데 왜 이 지랄이 나? 구덩이 깊이가 십오 미터나 되는데, 냉기가 바깥까지 튀어나와 버렸잖아! 아니, 이럴 거면 애초에 구덩이를 더 깊이 파든가!’

‘아, 그게... 얼음의 원소들이 미쳐 버렸나 봐... 이 잡것들이 꼴리는 대로 마력을 끌어가 버렸다고!’

‘잘한다, 잘해. 또 연습 안 하고... 이러니까 네 여친이 맨날 널 철없는 애새끼 취급하지.’

‘야, 이 씨! 그 얘길 왜 지금 해? 그리고 아직 날도 쌀쌀한데 얼음 마법을 뭐 하러 연습해! 여름 되고 나서 하면 되지...’

‘그럼 방금도 쓰지 말았어야지!’

‘아, 그러니까... 그냥 갑자기 생각나서... 시험 삼아... 아이씨... 냉면이라도 꾸준히 만들어 먹을 걸 그랬나...’


복제 인간들에게조차 개같이 혼나 버린 하지운이 구덩이 밖으로 몸을 날렸다.

근엄한 표정으로 날아든 하지운을 보며, 육백사십여 명에 달하는 일행들이 공포심과 경외심을 가득 담아 공손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어지간한 유스터스 로먼트조차 자신도 모르게 따라서 숙이다가, 화들짝 놀라서는 황급히 고개를 들어 버렸다.


“경들은 그럴 것 없소! 이 모든 건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그분께서 내려 주신 권능 덕분이오! 난 그저 황송하옵게도 그분의 힘을 티끌만큼이나마 잠시 빌려 쓰고 있는 것에 불과하오! 그러니 경들은 이런 작은 일 하나하나에 괘념치들 마시오!”


장시간 동안 자리를 비워야 할 상황이라, 숲 너머로 떠나기 전에, 몇몇 놈에게 겁을 줄 생각으로 겸사겸사 힘을 좀 과하게 쓰기는 하였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할 생각은 하지운 본인에게도 없었던지라, 이제는 오히려 그들을 다독여 주기 위해 쓸데없는 공을 들여야 할 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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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 웬도버의 봄 (6) 24.03.10 33 1 9쪽
167 웬도버의 봄 (5) 24.03.08 37 1 10쪽
166 웬도버의 봄 (4) +2 24.03.06 45 2 10쪽
165 웬도버의 봄 (3) 24.03.04 38 1 9쪽
164 웬도버의 봄 (2) 24.03.02 40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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