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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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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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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02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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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새 역사 창조의 건아 (1)

DUMMY

177화


가을이 절반쯤 지나갈 무렵인 구월의 마지막 날에, 루시아 먼틸리 호소녀, 맨디 젠킨스 양이 사이코패스와의 후속 인터뷰에 돌입했다.


작년 말일에 첫 인터뷰를 했었으니, 딱 구 개월 만에 다시 갖게 된 소통의 시간이다.

다만 이번 인터뷰는, 지난번 인터뷰와는 달리, 그녀가 원해서 벌이고 있는 짓이 아니라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하지운이 삼월 초에 왕궁을 작살낸 후, 칠 개월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그사이에 하지운은 정말 알찬 시간을 보냈다.

웨스털랜드주에 위치한 세 개의 에메랄드 광산을 흙 마법을 사용해 다 털어먹었고, 수십 개의 원수 집안을 돌면서 약탈한 금품도 전부 처분해 버렸다.

그중에 보관할 가치가 있는 세공품만 원상태로 남겨 두고, 자잘한 것들은 전부 녹여서 금괴와 은괴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이제는 수납장의 저장 용량이 이백칠십 톤이라는 미친 수치에까지 이르게 되었음에도, 굳이 시간을 들여 가며 정리 정돈에 공을 들인 하지운이다.

딱히 정리할 필요 없이 마구잡이로 던져 놔도 용량이 남아도는 마당에, 이토록 차곡차곡 정리하는 것만 보아도 하가 놈의 끝 모를 탐욕스러움을 능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지운만 열심히 산 것은 아니었다.

복제 인간들도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애초부터 왕성으로 가지 않고 페어먼트 성에서 틸다를 보호하고 있던 십칠 호는, 아예 그곳에 눌러앉아, 그녀의 검술 스승 노릇을 계속하였다.

험프리 놈이 궁에서 벌인 인질극 때문에 지나치게 이름이 팔려 버린 그녀인지라, 여우 피도 먹이고, 스스로를 지킬 수 있도록 검술도 가르쳐야만 했던 것이다.


물론 로저네 집안 아이들도 당연히 가르쳐야 했기에, 일 호부터 오 호까지, 다섯이 콘체스터 성에 죽치고 앉아 금 부장과 팔자에도 없는 선생 노릇을 해야만 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열두 개체의 복제 인간들은 삼교대로 마차를 몰았다.

험프리까지 칠인조 그룹이 완성되었기에 쇼케이스를 안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현재까지 브리갠트에 설립된 주가 마흔한 개인데, 그중에서 콘체스터와 웨스털랜드 두 개 주를 제외한, 무려 서른아홉 개 주를 하나도 거르지 않고 전부 방문해 온 것이었다.


반년에 걸친 전국 투어를 마치고 콘체스터로 돌아온 험프리와 졸개들은, 대략 삼 주 정도의 시간 동안, 지옥이 부럽지 않을 정도의 끔찍한 팬 미팅을 즐겨야 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두당 평균 칠십 회에 가까운 자살 소동을 일으키고 말았다.

어차피 오늘 다 죽을 예정인 데도 그 삼 주를 못 견딘 것이었다.


패널로 참여한 이 성의 군식구 컬버트 호소인과는 달리, 인터뷰를 진행할, 맨디 양은 본래 오늘 뒈져 버린 험프리의 마지막을 참관하기 위해 콘체스터 성에 방문했던 것이다.


혹시라도 하지운이 험프리를 살려 두었다가 차후에 장난질을 칠 경우, 신생 왕조인 먼틸리 왕가는 감당키 어려운 분란을 겪게 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맨디 양을 비롯한, 왕성에서 나온 인원들에 각 유력 가문의 대리인들까지, 무려 이백 명이 넘는 인파가 선왕 험프리의 사형 집행 과정을 말 그대로 밀착 감시한 것이었다.


남들이 자신을 못 믿는 걸 전혀 섭섭해하지 않는, 인간 백정, 하지운은 흔쾌히 험프리와 졸개들의 도축 과정을 공개하였다.

뒈지지 않을 정도로 기력을 빨아먹은 후, 명치에 한칼씩 쑤셔 박고는 추가로 경동맥까지 그어 버렸다.


하지운에 대한 믿음이 쥐똥만큼도 없던 참관인들은 사체들의 콧구멍에 손을 가져다 대 보고는, 맥박까지 확인한 후, 한참 동안이나 죽은 자들의 상판대기를 뚫어져라 노려보기까지 하였다.

이제는 하가 놈이 남의 면상에, 변신 능력으로, 장난도 칠 수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기에 이러고 앉아 있던 것이다.


십 분 정도가 지나서야 모든 참관인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칠인조의 죽음을 받아들였다.

보는 눈들이 있어 맨손으로 기력을 흡수해야 했던 하지운이, 손을 씻다 말고, 그들을 성 밖으로 내보내 버렸다.

언데드 제작 과정까지 생중계할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언데드 제작을 끝마친 하지운과, 아직까지도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두 명의 지구인이 내성의 게이트하우스 위에 마련된 자리에서 회합을 가지게 되었다.


컬버트 호소인이야 사돈이 되어 한집에 살다 보니, 군소리 안 하고 얌전히 기어 나와서 와인만 홀짝이고 있었다.

하지만 수행원들과 막 떠나려다가, 갑자기 호출을 받고, 불려 온 루시아 호소녀 맨디 양의 표정은 사뭇 부정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녀의 기색을 살핀 하지운이 심심한 위로의 뜻을 전해 주었다.


“표정 좀 밝게 해, 뒈지기 싫으면. 꼴에 공주가 되었다고, 눈에 뵈는 게 없는 거야? 정신 번쩍 들게 해 줄까?”

“... 아... 아니요...”


순간적으로 현기증을 느낀 맨디 양이 잠시 흐느적대다가, 자리에 똑바로 앉은 후, 억지웃음을 지어 보였다.


“무슨 일로 부르신 거죠? 굳이 더 나눌 말이 남아 있던가요? 아! 내일 떠나신다고... 혹시 환송회라도 열어 달라는 건가요?”

“뭔 헛소리를 자꾸 씨불이는 거야? 가기 전에 너희 둘을, 한자리에 앉혀 놓고, 협박하려고 부른 거야.”

“협박...이요? 매번 느끼는 거지만... 정말 솔직하세요.”

“그건 그래. 내 몇 안 되는 장점 중 하나이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던 컬버트 호소인이 힘겹게 입을 열어 질문을 꾸역꾸역 꺼냈다.


“사돈... 방금 그건... 그런데 나는... 굳이 왜 부른 거야?”

“내가 너는 의심 안 하는 줄 알았냐? 내 집에서 마음껏 돈 쓰면서 놀고먹는 건 네 자유지만, 허튼 생각을 품는 것까지 봐 줄 생각은 없어. 내가 떠나고 난 후에, 네가 어떻게 돌변할지 난들 어찌 알겠느냐? 미리미리 족쇄를 채워 둬야지.”

“......”

“내가 서른 번째 부활자를 강제로 만들었을 때, 저승에서 메시지가 날아오던데. 너희도 그 메시지 받았지? 난 최종 우승자가 누가 되든 별 상관 안 해. 중요한 건 우리 셋 다 지구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거야. 내가 숲 너머에서 뒈지든 살아 돌아오든 그딴 건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야. 진짜 중요한 건, 앞으로도 족히 수십 년은 더, 너희 둘과 내가 같은 행성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거지.”

“......”


창백한 얼굴로 마른침을 삼키는 두 남녀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날아들었다.


“이름은 맨디 젠킨스. 디트로이트 데니스 스트리트... 번지수도 불러 줘?”

“어? 어어...”

“이혼한 엄마는, 웬 재수 없게 생긴 배 나온 대머리랑 재혼해서는, 시카고로 이사 가서 잘 살고 있고. 주소는.”

“그만!!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이 미친 악마야!!”

“방금 얘기했잖아. 협박하는 중이야. 아직 클리블랜드에 사는 사촌 오빠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잖아. 앉아서 기다려. 내가 방금 최면으로 어디까지 알아냈는지 싹 다 알려 줄게.”

“허어... 허억... 대, 대공. 시, 시키시는 대로 다 할게요! 제, 제발 그만해 주세요...”

“아쉽다... 콘돔 싫어하던 네 전 남친 주소도 외웠는데... 그런데 넌 원래 성별을 안 가리니? 전 남친은 그렇다 쳐도, 전 여친은 뭐니? 진짜 부럽다... 삶이 참 풍성했겠네.”

“......”

“네가 왜 그렇게 죽을 둥 살 둥 모르고 까부나 했더니, 원래 천성이 이렇게 타고났구나. 존나 용감하네. 옆집에 든 강도를 잡겠다고, 테이저 건을 들고 뛰어든 거야? 총도 아니고... 와... 씨발, 너 간이 부었구나?”

“여, 옆집에는 노부부가... 종종 애플파이도 만들어 주시고, 정말 친절하신...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었어요... 경찰이 올 때까지 기다릴 수만은 없어서...”

“푸흡... 번개 마법을 골라 온 이유가... 테이저 건이 불량품이라... 쏴 보지도 못하고 죽어서...”

“흐윽...”

“그런데 넌... 미국 살던 년이 나더러, 위험해 보인다고, 다짜고짜 벼락을 날렸던 거야? 이거 완전 미친년 아냐?”

“네?”

“씨발! 의무 교육도 제대로 못 받은 온갖 양아치 잡놈들이 자동 소총 같은 걸 끼고 사는 곳에서 온 주제에! 툭하면 총기 난사가 일어나는 곳에서 살다 온 년이! 마법 쓰는 나나, 옷장에 AR-15을 처박아 놓은 놈들이나 뭐가 그렇게 달라? 마법에 맞아 죽는 건 끔찍하고, 소총탄에 벌집 되는 건 귀엽냐? 넌 전생에 귀엽게 뒈졌었냐?”

“그, 그런...”

“왜? 내 말이 아주 헛소리로 들려?”

“내가 당신을 죽이려고 했던 건... 단지 당신이 지나치게 강해서만이 아니었어요! 당신이 원수를 징치하는 방식 자체부터가... 혐오스럽기 짝이 없어서... 나, 난 지금도 내 생각에 변함이 없어요! 당신의 방식은 잘못됐어요! 당신 같은 인간...이 지구로 돌아가선 안 돼!!”

“내 방식이 혐오스럽다는 건 백 퍼센트 공감해. 그런데 잘못되었다는 건 공감이 전혀 안 가. 강간범들을 강간한 게 뭐가 잘못이라는 거야? 원래부터 피해자는 강간당해도 되는 거지만, 가해자는 강간당하면 안 되는 거였어?”

“그게 무슨...”

“진짜 이해가 안 되네. 애초에 혐오스러운 범죄자에게 그놈이 했던 짓을 고대로 돌려 줬으니, 옆에서 보고 있기에 혐오스러웠던 건 이해가 간다고. 그런데 혐오스러운 강간범을 어떻게 하면 깔끔하고 세련되게 처벌할 수 있어? 똥을 치우면서 똥내는 풍기지 말라는 거야?”

“그, 그냥 한 번에 죽이면...”

“왜? 피해자는 공개적으로 존나 수치스럽고 고통스럽게 죽었는데, 가해자에게는 고통도 없고 수치도 없는 깔끔한 처벌을 내려 달라고? 너 혹시... 애초부터 피해자라는 단어에 따로 혐오감 같은 게 있었던 거야?”

“무, 무슨 그런 해괴한 논리가!”

“됐고. 네가 아주 병신이 아니라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했을 거야. 뭐 어쨌든. 내가 자리를 비웠다고 쓸데없는 지랄하지 말라는 얘기야. 너희가 보기엔 이 동네가 일회용 같아? 우리만 뽑고 끝날 것 같으냐고? 다음에 올 놈들이 몇이나 더 될지는 모르겠지만, 걔들 통해서, 너희가 어떻게 행동했는지 파악하는 건 일도 아니야. 알잖아, 내가 고문에 일가견이 있다는 거.”


핏기 없는 얼굴을 한 채 침묵을 지키고 있던 컬버트 호소인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질문 하나를 겨우 토해 냈다.


“방금 이... 여성에게 했던 거... 최면... 말이다. 나한테도 걸었었냐?”

“하아... 넌 그걸 질문이라고. 안 했겠냐?”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새벽에 돌아와서, 쉬지 않고 쓰면서 선작수 빠졌으면 어떡 하지...

 하는 마음에 ㅠㅠ


 하얗게 불태운 보람이 있네요. 꿀잠 잘 것 같습니다.

 여러분 모두 행복한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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