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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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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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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2 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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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09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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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역사 창조의 건아 (5)

DUMMY

181화


하지운이 날린 일차 가시 공격에 제압된 엘프의 수는 총 일흔셋이다.

단숨에 수십의 동료를 잃은 엘프들의 입장에서는, 눈앞에 서 있는, 비인간적인 종자가 선보인 공격이 무지막지하고 경악스럽게만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하지운이 보유한 셀 수도 없이 많은 살인 기예들을 염두에 두고 평가해 봤을 때, 이번 공격은 다소 소극적이고 조잡한 공격이 아니었나 하는, 비판을 면키 어려워 보였다.


단지 이 공격에서 칭찬받을 점이 하나 있다면 그건, 스무 개의 가시들이 무려 이백 미터나 뻗어 나가 있음에도, 구부러지거나 휘청이는 게 단 하나도 없다는 것 정도다.

그래도 강직도 하나만큼은 감탄이 절로 나올 만치 절륜했던 것이다.


가시들이 오죽 곧고 단단했던지, 눈알이 뒤집힌 수십의, 엘프들이 그 가시들 위를 거침없이 짓밟으며 질주하고 있음에도 흔들림이 거의 없었다.


울창한 숲속에서 천이 넘는 병력이 하지운 한 명을 쳐 죽이겠다고 동시에 달려드는 상황이다.

안 그래도 좁은 공간에 스무 개나 되는 기둥들이 동선을 방해하고 있는 상황이니, 몇몇 엘프들은 급한 마음에 가시 위로 뛰어오르기도 했던 것이다.


뛰어난 신체 능력으로, 폭이 십오 센티 정도 되는, 원기둥 위를 날 듯이 달리던 그들에게 느닷없는 된서리가 한발 먼저 들이닥쳐 버렸다.


하지운의 십 미터 앞까지 접근한 꽃미남이 가차 없이 검을 집어 던지려는 순간, 딛고 있던 기둥에서, 웬 꼬챙이 같은 것이 솟구쳐 올라와 그의 왼 다리를 꿰뚫어 버리고 만 것이다.


꽃미남의 왼 발바닥을 뚫고 들어간, 지름 오 센티의, 뾰족한 봉이 대퇴근을 찢어발기며 튀어나와 있는 상황이다.

정강이뼈가 조각만 몇 개 남기고 가루가 된 마당에, 일 초도 지나지 않아서, 옆에서 튀어나온 또 다른 가시가 꽃미남의 양 볼을 관통해 버리고 말았다.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기 위해 입을 쩍 벌리려던 아름다운 청년은 혓바닥이 터져 나가는 바람에, 윽윽거리는 소리만 겨우 뱉어 내고 있을 뿐이었다.


이건 비단 이 아름다운 청년만이 겪고 있는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이 자리에 함께한 엘프 남녀 중 무려 구십구 퍼센트가 경험하고 있는, 종족 차원에서 우려해야 할, 심각한 재해 상황이었다.


겨우 가시를 피한 십수 명의 엘프들이 기겁을 하고서는 이백 미터 밖으로 빠져나가려 하였지만, 독거미 같은 하지운이 그걸 보고만 있진 않았다.


기둥 역할을 하던 스무 개의 굵은 가시에서 수천 개의 잔가시가 마구잡이로 솟아올랐다.

사이사이에서 갈가리 찢겨 나가는 선남선녀들의 시신만 없었다면, 아름드리나무들과 갈색빛의 가시덩굴이 조화를 이루어 이색적인 아름다움을 연출하였을 듯한 광경이었다.


대략 삼십여 초 만에, 천이백에서 고작 이십여 명이 부족한, 용모 단정한 대병력이 각질 같은 것으로 전락한 채 바람에 흩날려 버렸다.


가시들을 원상태로 되돌려 털어 내 버린 하지운이 염동력도 풀어 주었다.

그와 동시에, 흙바닥에 처박힌 채로 몸부림을 치고 있던, 중년의 미부가 황급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고는 미친 사람처럼 주위를 헤매더니, 자지러지는 괴성을 토해 내는 것이었다.


“너희가 원하던 대로 전쟁 상황이 됐어. 만족하지?”

“죽여 버리겠다, 이 추악한 흉물아!”

“하아... 덤비라면서? 아니... 이럴 거면, 애초에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칼을 맞아 주세요.’라고 부탁을 하든가.”

“으아아악! 그 입 닥쳐!”


발광을 하는 예쁜 아줌마를 지켜만 보고 있을 수 없던 하지운이 자신만의 방법으로 진정을 시켜 줬다.


잠시 후 온 얼굴이 거의 시커멓게 변한 중년 여성이 다시 흙바닥에 널브러졌다.

염동력 따귀를 스무 대 넘게 얻어맞은 여인이 진저리를 치며 하지운을 올려다보았다.

그래도, 뭔가 한자리 꿰차고 있는 듯한, 그녀의 두 눈에선 여전히 시퍼런 독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전혀 개의치 않는 하지운이 시건방진 태도로 질문을 던졌다.


“제정신이 돌아온 거 같으니, 뭣 좀 물어보자. 브리갠트의 사서 어디에도 엘프와 충돌했다는 기록 따위는 없었어. 너흰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인간을 벼르고 있던 거지? 그리고 족쇄는 또 뭐냐? 누가 너희에게 족쇄를 채우고 있던 건데?”

“......”

“하아... 진정 좀 시키려고 한 건데... 너무 심했나? 이 여편네가 설마... 바보가 된 건 아니지? 잘 생각해 봐. 내가 한 질문 중에, 네가 대답한다고, 너희 종족에게 해가 되는 질문이 하나라도 있었냐? 이 여편네야, 여기 인간들이 너희에게 무슨 잘못을 했냐고? 그거 대답하면 너희한테 뭐 불리해지는 거라도 있어?”

“정말 몰라서 묻는 게냐? 너희 인간들이, 대륙의 중앙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던, 우리들을 이 먼 곳까지 강제로 이주시키지 않았느냐!”

“인간이? 언제?”

“고작 천이백 년 전의 일이다! 그새 잊었단 말이냐!”

“......”


하지운은 잠시 붉어져 가는 가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색깔 봐라. 대기 오염이 없으니... 얼마나 아름답냐? 선명한 것 좀 봐라.”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헛소리.”

“......”

“야, 이 또라이 같은 여편네야. 너 올해 나이가 몇이야?”

“이백육십 살이다.”

“... 할머니, 그쪽 동네 최고령자는 나이가 어떻게 돼?”

“대장로께서 경사스럽게도 재작년에 오백 세를 넘기셨다.”

“할머니, 내 말 잘 들어 봐. 천이백 년 전이면 제국 건국 즈음이야. 그 당시의 역사는 사서에 기록도 거의 남아 있지 않아. 부족장 회의에서 어느 부족의 누가 어느 부족의 누구를 왕으로 추대했다느니 하는 개괄적인 내용밖에 남아 있지 않다고. 평범한 인간의 수명은 대충 오십 년 정도야. 사서에도 없는 천 년 전 이야기를 지금의 인간들이 알기나 할 거 같아?”

“......”

“그리고 너희들 말야. 천 년 전에는 더럽게 약했던 거야? 여기로 쫓겨 오고 나서 강해진 거냐고? 너희도 괴물의 피를 먹은 거야?”

“그게 무슨 역겨운 소리냐? 어떤 역겨운 종족이 가족들의 피를 먹는다는 것이냐? 너희가 괴물이라 부르는 숲의 아이들은 모두 우리의 가족들이다! 그리고 우리는 태초부터 탁월한 숲의 전사로 점지된 종족이다! 고작 천 년 만에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어.”

“가족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그런데 네가 말해 놓고도 뭔가 이상한 걸 모르겠냐?”

“......”

“이상하지? 솔직히 이상하잖아. 너희는 달라진 게 전혀 없다면서? 근데 천 년 전의 인간들 따위에게 삶의 터전을 뺏겼다고? 소 피, 여우 피 처먹은 지금의 인간들도 불가능한 이적을 그 당시 인간들이 행했다는 건데. 그러니까 병아리 떼가 사자 무리를 작살냈다는 거잖아.”

“......”

“그 당시 인간들 평균 키가 백육십은 되었을라나... 진짜 궁금해서 묻는 건데, 너희 그때 어쩌다가 졌어? 솔직히 너도 잘 모르겠지?”

“인간들이 야비한 술책을 썼다고...”

“지랄하네. 병아리가 야비해 봤자 야비한 병아리지. 야비한 병아리가 순진한 사자를 무슨 수로 이겨? 신체 능력의 차이는 생각 안 하냐? 지금 당장 너희 종족 사오십 개체 정도만 브리갠트로 몰려가도, 왕국 전체를 초토화시키는데 석 달도 걸리지 않겠다. 그런데 너희를 억제하고 있던 존재가 설마 ‘그분’이냐?”

“그렇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물어볼게. 아주 옛날에 말야, 혹시 너희 종족이 다른 곳에서 살았었다는 기록 같은 건 없냐? 다른 대륙이나, 아니면 아예 다른 세상에서 넘어왔다는 전설 같은 거 말이야.”

“우리도... 이 숲으로 이주하기 전의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 안타깝긴 한데... 어쩌겠냐? 이미 엎질러진 물이잖아. 세팅이 너무 티 나게 돼 있어서, 저승의 뜻을 무시할 수가 없네. 너희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나한테 좀 시달려야 할 팔잔가 보다.”

“건방 떨지 마라! 우린 종파를 수호하는 아홉 지파 중 한 곳에 속한 일개 전투 부대에 불과하다. 고작 우리 따윌 제압했다고 기고만장한 꼴이 우습구나. 곧 우리 동족들이 널 죽이러 찾아올 것이다!”

“아휴, 당연히 그러겠지. 근데... 대화 몇 마디 나눴다고, 그새 나한테 정든 거야? 알았어, 힘내서 열심히 죽일게. 너무 걱정 마.”

“누가 네깟 놈을 걱정해!!”


호통과 함께, 허리에 걸려 있던 검을 뽑아 든, 중년의 엘프가 하지운의 명치를 노려보며 빛의 속도로 몸을 날렸다.

그런 그녀의, 검을 쥔, 오른손을 염동력으로 낚아챈 하지운이 거칠게 바깥쪽으로 잡아당겨 버렸다.

가드가 완전히 열려 버린 그녀의 가슴팍에 가시 하나가 꿰뚫고 들어와, 복장뼈와 척추를 부수고는, 흉부를 관통해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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