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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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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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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3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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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역사 창조의 건아 (7)

DUMMY

183화


숲속 치고는 제법 너른 공간에서 하지운과 팔천에 달하는 엘프 전사들이 대치 중이다.

나흘 전 네 개 지파의 통합 병력 오천팔백 명이 하지운 한 명의 손에 몰살당한 후, 두 번째로 치르는 대회전이다.


현재 남은, 세 지파와 종파의, 병력이 모조리 다 쏟아져 나와 있는 상태인 것이다.

불과 칠 일 만에, 엘프라는, 한 종족의 전투 가능 인원 전부가 전장으로 끌려 나오는 기념비적인 시점이 아닐 수 없다.


팔천여 명의 엘프들은 담담한 표정으로 눈앞에 다가온 일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 그들 모두는, 지금 이 순간, 허탈하고 착잡한 심정을 억누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중이었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고작 일주일 만에, 자신들의 멸종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까지 몰릴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해 봤던 그들이다.

지금도, 자신들이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에, 순간순간 몽롱해질 정도였다.


실은 하지운이 여태 모르고 있는 일이 하나 있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되기까지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일등 공신은 바로, 로저와 자기 자신, 두 인간 말종 듀오라는 것을 말이다.


엘프들도 바보가 아닌데, 자신들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기록들이 뭔가 앞뒤가 안 맞는다는 생각을 안 했을 리가 없었다.

자연히 인간들과 구태여 무력 충돌까지 갈 필요가 있겠냐는 의견이 오랫동안 우세해 왔던 엘프 사회였다.

무엇보다 인간들을 오랜 시간 동안 염탐해 왔던 엘프들의 입장에서, 인간들은 굳이 때려잡을 일말의 가치도 느껴지지 않는, 허약한 부스러기들에 불과했던 것이었다.


그런 그들의 여론이 뒤집히게 만든 계기가 바로, 로저 드레이시의, 테일강 서쪽 지역에 대한 개간 사업이었다.

인간이 토러스들을 몰아내고 숲속에 거대한 거주 지역을 조성해 가는 과정 하나하나가, 엘프들에게, 까닭 모를 불안감과 초조함을 안겨 주었던 건 분명한 사실이다.

어쩌면 구전돼 오던 설화가 거짓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추측들이 팽배해진 가운데, 이제는 어수스를 때려서 잡는 기괴한 인간까지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대대로 대장로가 된 엘프들은 빠짐없이 신탁을 받아 왔다.

그 신탁들의 내용은, 딱히 별게 없었는데, 그저 인간을 상대로 선제공격을 하지 말라는 게 그 내용의 전부였다.


신탁 때문에 꾸역꾸역 참아 왔던 엘프들이 결국, 곰머리를 쥐어패고 있던, 하지운에게 맨발로 마중을 나가고 만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요 며칠 동안 피눈물을 흘리며 후회를 거듭하고 있는 중이다.

그다지 뻔뻔하지 못한 종족이라 그런지 강경파들 중 자살자도 속출하고 있는지라, 마을의 분위기가 이루 말도 못 할 정도로 암울해져 있는 판국이다.


만약 이 자리에서 이 인간의 형상을 한 괴생물체를 제거하지 못한다면 멸종이 따 놓은 당상인지라, 엘프 전사들의 비장한 심경이 골수에 사무칠 지경이었다.


“이야... 무지하게 많네. 대충 만 명 정도 되려나? 빈자리가 안 보이는구나. 이것들까지 다 잡아먹고 나면, ‘기력 흡수’를 구십 레벨까지 찍고도 남겠는걸.”


흐뭇한 상상을 하던 하지운이 자신과 같이 싸워 줄 원군을 불러냈다.

총 스물일곱 개체의 복제 인간들이, 하지운이 꺼내 주는, 활과 화살을 받아 들고는 일렬로 죽 늘어섰다.


기존의 개차반들에 아홉 개체의 신규 말종들이 추가되어, 하지운 본체까지, 총 머릿수 스물여덟의 절망을 불러일으키는 개망나니 소대가 창설되고 만 것이었다.


소대장 하지운이 천인공노할 소대원들에게 주의 사항을 일러 주었다.


“대가리에다가 쏘면 안 돼. 무조건 다리통만 노려. 혹시라도 뒈진 종자가 하나라도 나오면, 끝나고 바로 단체 기합이야. 병신 같은 실수하지 말고 똑바로들 해.”

“본체고 나발이고, 난 대뜸 이 새끼부터 죽여 버리고 싶다!”

“그래, 당장 이 새끼 대갈통에 헤드샷부터 날리고 싶다고!”

“안 돼! 그건 자살이야. 자살 충동을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는 자세야말로 우리 분신들의 궁극적인 미덕이라 할 수 있어.”

“맞아. 우리도 그동안, 이 새끼 등에 칼을 쑤시고 싶었던 매 순간마다, 눈물겨운 노력으로 인내해 가면서 한층 더 성장해 올 수 있었던 거야.”


이미 충분히 하지운 맛을 본 복제 인간들이 새로 편입된 금쪽이들을 달래기 위해 진땀을 빼야 했다.

그런 복제 인간들을 히죽거리며 방관하던 하지운이 한마디를 더 보탰다.


“사격 준비.”


하지운의 공갈에 짜증을 내던 금쪽이들도 순순히 무릎쏴 자세를 취하였다.


하지운과 복제 인간들을 향해 팔천여 명의 엘프 용사들이 천천히 접근해 왔다.

뽀얀 살결의 미남 미녀들도 수천 명이 뭉쳐서 한꺼번에 몰려드니 그 위압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매우 중요한 부위만 가린 수천의 예쁘장한 노출 변태들이라니. 참으로 장엄한 광경이로구나. 저것들이 저러고 인간들의 왕국으로 쳐들어가면, 연놈 할 것 없이, 저항을 포기하고 개가 되기를 자처할 것들이 한둘이 아니겠는걸.”

“과연... 일리가 있는 말이다. 안 그래도 강한 것들이 복장마저 바람직하니, 전투력이 어마어마할 것이다. 소 피 먹은 어중간한 것들 따위는 금세 행복하게 쓸려 나가겠어.”


뽀얀 살결의 쓰나미를 관조하며 하지운과 분신들은 차분하게 감상 평을 주고받았다.

세상 차분한 그들과는 달리, 수적으로 압도적인 우세 상황임에도, 진군 중인 엘프 전사들은 펄떡거리는 염통을 주체하기가 버거울 지경이었다.


하지운 패거리의 손에 들려 있는 목궁과 화살들이 그들을 돌아 버리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생명의 나무’와 거기서 나온 모든 것들은, 본질적으로, 엘프 외의 다른 종족들에게 절대로 손길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런데 인간의 형상을 한 악귀 같은 것들이 자신들만의 고유한 병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다루고 있는 모습이 그들에게 괴상망측한 상상까지 하도록 유도하고 있던 것이었다.


엘프들의 밑도 끝도 없는 억측과는 달리, 하지운과 로저, 이 둘 모두 인간과 엘프 사이의 금단의 사랑으로 잉태된 존재가 아니란 건 반박이 불가한 진실이다.


사실 엘프들의 상식대로, 하지운이 엘프의 목검을 처음 집어 들었을 때는 지금처럼 멀쩡하게 손에 들려 있지를 않았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가지가 말라비틀어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부스러져 가루가 돼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래도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염동력으로 집어 들어서, 수납장에 넣어 놓기는 하였다.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누군가에게 팔아먹을 행복한 순간이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했던 짓이었다.


나흘 전 오천팔백에 이르는 엘프 전사들을 다 잡아먹고 그들의 무기까지 알뜰하게 다 챙기던 하지운은 깜빡하고 맨손으로 목궁을 집어 들었었다.

단숨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흡수하고는 잘 소화되고 있는지 걱정되어, 투시 능력까지 발동시킨 채로, 온몸을 훑어 대느라 정신이 약간 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고는 화들짝 놀라던 하지운의 표정이 점차 기괴하게 변해 갔다.

잠시 후 조심스럽게 마력을 일으켜 보던 하가 놈이 이내, 꿈에 나올까 무서운, 흉측한 미소를 띠며 온몸을 배배 꼬아 댔다.


그러고 보니, 칠십삼 레벨이던 ‘기력 흡수’가 아름다운 종족을 만난 후 팔십이 레벨이 되어 있었다.

물론 숲으로 들어오기 전에 백수십 명의 인간을 잡아먹었었고, 숲속에 들어와서도 곰머리 수십 마리를 잡아먹었다.

그렇다 해도 대략 8.8레벨을 엘프 한 종족만으로 채워 넣은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징그럽도록 많은 엘프들을 처잡아먹었다는 걸, 의도치 않게, ‘생명의 나무’가 인증해 준 셈이 되었다.

생명의 나무조차 하지운이 뿜어내는 마력을 받아들이고는, 그를 엘프로 착각해 버리고 만 것이었다.

아마 그때 생명의 나무는, 자신에게 마력을 쑤셔 넣는 엘프 호소인을 보고는, 그저 가정 교육 좆같이 받은 쌍놈의 엘프가 나왔다고 한탄만 하고 말았던 듯싶다.


어쨌든 그리하여 스물여덟의 개망나니들이 엘프의 활에 마력을 불어넣고는 다가오는 엘프들을 향해 겨누는 막장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하지운이 발사를 명하려는 순간, 침착한 신입 복제 인간 하나가 아주 침착한 태도로 하지운에게 질문 하나를 건넸다.


“본체 새끼야, 근데 대체 우리가 왜 이러고 있는 거냐? 마법으로 순식간에 썰어 버리면 되는 거 아냐? 네 마법은 아침마다 거시기 닦는 데나 쓰려고 있는 거야?”

“씨발... 그러네.”

“듣고 보니... 우리가 왜 다 기어 나와서, 이 지랄을 하고 있는 거야?”


얼굴이 발그레해진 하지운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분신들에게 변명을 하였다.


“내가... 중세 덕후잖아... 한 번만이라도 그럴듯한... 중세 느낌 나는 전투를 해 보고 싶어서... 도와줘. 그래도 내가 명색이 본체잖아. 분신들이 그것도 못해 줘?”

“아이, 씨발... 좆같아서 진짜!”

“내가 그냥 저 새끼를 쏘자고 했잖아!”

“저기... 얘들아, 이제는 쏴야 해...”

“닥쳐, 이 새끼야!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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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역사 창조의 건아 (7) 24.04.13 36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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