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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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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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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2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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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5,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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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1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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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타테스터 (10)

DUMMY

222화


결국 인물화에 조예가 깊은 흡혈귀 처녀를 언데드로 만들어 버렸다.

비록 잡귀과에 속하는 마물이라 해도, 유령보다는 괴물에 가까운 흡혈귀인지라 언데드 제작에 별 무리가 없었던 것이다.


“지금부터 존귀한 내가 존나 비천한 너에게 막중한 임무에 대해서 설명을 할 거야. 딱 한 번만 할 거니까, 잘 듣고 빠릿빠릿하게 해. 등신같이 굴면 불사조 놀이를 할 거야, 네 몸뚱어리로. 흡혈귀 따위에서 피닉스로 격상되고 싶으면 어디 한번 대충 해 보든지.”


첫 출근을 한 신입 사원에게 협박부터 시원하게 날리는 천인공노할 대표 이사 하지운이다.


“네... 사장님...”


하지운의 세상 상스러운 훈화 말씀에 흡혈귀 처녀가 전신을 사시나무 떨듯 떨어 댔다.

입에 익지도 않은 생소한 호칭을 사용하느라, 한층 더 긴장감이 더해지는 흡 사원이었다.


“지금부터 나랑 내 분신들이 저기 서 있는 병신들을, 하나씩 기절시켜서, 네 발 앞으로 보낼 거야. 그러면 너는, 네 발 앞에 있는, 그 병신이 뭘 잘하는지 일 호한테 얘기만 해 주면 돼. 분류는 일 호가 알아서 할 거야. 다 이해했지? 존나 쉽지?”

“......”

“대답 안 하냐? 낫질이 우스웠어? 숟가락으로 차분하게 다시 해 줄까?”

“이, 이해했습니다!! 정말입니다!”

“첫날이라서 봐 주는 거야. 명심해. 내일도 이렇게 어리바리하게 굴면 바로 불 피울 거야. 내 외모를 보면 잘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 난 일 티어 인간쓰레기야.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폭력을 행사하는 천하의 개잡놈이라는 말이지. 정 그렇게 안 믿기면 쟤들한테 물어봐.”


충분히 이해했는데도 협박을 멈추지 않는 하가 놈이었다.

흡 사원의 군기가, 엄동설한의 한강 물을 연상시킬 정도로, 바짝 들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하지운의 난폭성에 대해 충분히 인지한, 흡 사원을 가운데 두고 복제 인간들의 쓸데없는 조언이 끊이지를 않았다.


“쟤 진짜 쓰레기야. 종족을 안 가리고 막 죽여. 저기 있는 등신 같은 너희 동족들까지 다 죽이고 나면, 지금까지 죽인 두발짐승의 머릿수가 십구만을 넘기게 될 거야. 물론 제 놈의 동족인 인간도 포함해서 말이야.”

“고문도 존나 잘해. ‘버러지들’이라고 관찰용 샘플들이 있어. 걔들 만나 보면 정신이 번쩍 들 거야. 말 안 듣는 언데드가 어떻게 되는지를 깨닫게 해 주는 시각 자료들이거든. 아, 저거야. 저것들이 ‘버러지들’이야. 어때, 같이 어울려 다닐 자신 있어?”


급기야 신입 사원의 눈이 풀려 버렸다.

일 호가 염동력으로 잡아 주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 그대로 드러누웠을 기색이다.


그녀에게는 불행한 일이지만, 사실 하지운과 복제 인간들이 버러지들까지 불러내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 건 소심한 그녀를 조지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저 잠시 동안이나마 동네북 역할을, 비자발적으로, 맡았던 것뿐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실제로 개망나니들의 근본 없는 협박질이 결실을 맺게 되었다.


“저... 저는 절대 미각입니다! 와인 숙성 중에 피 배합은 제가 쭉 담당해 왔습니다!”


사내놈이 하나 무리 앞으로 뛰쳐나와서는 자기소개에 열과 성을 다하는 것이었다.

신입 사원과 귓속말을 주고받던 전무 이사가 하지운에게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맞단다. 코도 개코란다.”

“야, 넌 저쪽. 그래, 오른쪽으로 가서 서.”

“저는 흡혈박쥐 양육.”


흡혈 여전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찰싹 소리와 함께, 그녀의 고개가 어마어마한 속도로 돌아가 버렸다.

하지운의 원거리 손찌검에 그녀의 육신이 허물어지는 순간, 염동력을 일으킨 이십 호가 그녀를 따로 챙겨 가는 것이었다.

이십 호의 임무가 폐처리 대상자 관리이기 때문이다.


“염병할, 지저분하게 어디 집에서 그딴 걸 키워! 역병 옮길 일 있어?”


그녀를 따라 뛰쳐나오던 일부 흡혈귀들이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아무래도 그들 모두 박쥐 양육에 조예가 깊은 이들인 모양이었다.


“저, 저는... 갑옷 제련에...”

“야, 저거 구라란다. 갑옷, 석상 그리고 흡혈석은 잡혀 온 드워프들이 제작하고 있대. 칠 번 홀 지하에, 감염된 채로 강제 노역 중인, 드워프가 서른 마리 정도 있다는데.”

“우와! 드워프도 있었어? 별게 다 있네. 이야, 진짜 여긴 없는 게 없구나.”

“뭘, 엘프가 있는데 드워프쯤이야.”

“하긴 엘프도 있고, 흡혈귀도 있는데. 없는 게 더 이상한 것일 수도.”


낯가죽이 저지방 우유처럼 하얗게 질려 버린 흡혈 청년이, 융통성 없이 정직하기만 한, 흡 사원을 노려보며 입을 실룩거렸다.

아마도 쌍욕을 퍼붓기 위한 준비 동작처럼 보였다.

하지만 가여운 사기꾼 청년은, 고작 욕 한마디조차 제대로 뱉어 보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내리꽂혀 버리고 말았다.

뺨따귀의 살점이 시커멓게 죽어 버린 상태로 말이다.


“어, 그럼 쟤들 중에 써먹을 만한 것들이 몇 마리 안 된다는 거잖아.”

“본체야, 그림 그리는 애들은 몇이나 필요하냐? 얘가 직접 골라 주겠대.”

“그래? 잘됐네. 걔까지 다섯이면 충분할 거 같으니까, 넷만 더 고르라고 해. 그리고 야! 너 말이야, 너! 절대 미각 너!”

“네? 네!”

“와인 생산할 때 너랑 같이 일했던 놈들 다 알지?”

“네!”

“이 호야, 걔랑 같이 와인 생산 인력 추려 내라. 인원은 딱히 제한 없어. 대신 숙련자만 받아 준다고 해. 야, 너 절대 미각! 방금 쟤 피로 그림 그리는 거 봤지? 이따가 다 확인해 볼 거야.”

“네, 알겠습니다!”


금세 흡혈귀 화백들로 구성된 디자인 팀과, 스무 마리의 양조 전문가로 구성된, 와인 생산 체제가 구축되었다.

그새 언데드로 탈바꿈한 그들을 찬찬히 훑어보며 품평을 하던 복제 인간들이 대뜸 짜증을 부려 대는 것이었다.


“괜히 험하게 죽이겠다고 공갈친 거 아냐?”

“그러니까. 고작 스물다섯만 추려 내게 될 줄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그런 손 많이 가는 공약은 걸지 말 걸 그랬어.”

“그러게, 그래도 약속은 지켜야지. 그래야 얘들이 내 밑으로 들어온 보람을 느끼지. 안 그래? 저것들이 편하게 죽으면 얘들이 취업 사기를 당한 꼴이 되잖아.”

“아... 그렇구나. 본체야, 이럴 때 보면 네가 참 생각이 깊긴 하다.”

“괜히 본체가 아니야. 애가 참 사려가 깊어.”

“아휴, 뭘 또.”


부끄러운 듯 손사래를 친 하지운이 수줍은 표정을 지으며 낫을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선택받지 못해 망연자실해 있는, 흡혈귀들 앞으로 폴짝폴짝 뛰어나왔다.


“얘들아, 이제 너희하고는 볼 일 다 봤어. 공약이나 마저 지켜야지. 다들 바지 내려 봐.”


구백육십여 마리의 흡혈귀들이 입을 쩍 벌린 채로 송곳니를 자랑해 대며, 기합인지 비명인지 구분이 안 가는, 괴성을 쏟아 내었다.

곧 죽어도 그렇게는 못하겠다는 대쪽 같은 의지의 표명인 듯해 보였다.


“아오, 시끄럽다. 칭얼거리지 마. 그러니까 어른들이 기술 배우라고 하는 거야. 너희 뭐 다른 거 잘하는 거 있어? 없지? 싸움이라고 하진 마. 뒈지게 맞는 수가 있어. 쓸모 있는 우리 신입 사원들의 우월감을 고취시키기 위해서라도, 너희가 개작살나 줘야지 뭐 별수 있겠어? 꼬우면 날 죽여 보시든지.”

“저... 안 그러셔도 되는데요...”

“저, 저희는 괜찮습니다. 굳이...”


고개를 돌린 대표 이사가 신입 사원들을 둘러보며, 가상하다는 듯, 왼손을 들어 올려 따봉을 날려 주었다.


“기특한 것들. 비단결같이 고운 마음씨들 좀 보소. 너희의 갸륵한 뜻은 잘 알겠으니, 그만 입들 닥치고 있어. 좌우로 뜯어 버리기 전에.”


그 누구도 원하지 않는 고문을 기어이 시행하려는 순간, 눈을 치켜뜬, 하지운이 피 안개로 변해서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물론 복제 인간들과 언데드들은 이미 소환 해제해 버린 뒤였다.


어리둥절한 눈으로 피 안개가 된 하지운을 올려다보던 흡혈귀들이 난데없이 비명을 토해 내는 것이었다.

어느새 바닥을 뚫고 올라온 나뭇가지들이 그들의 하반신을 꿰뚫어 버렸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널따란 홀의 바닥이, 솟구쳐 올라온, 거대한 나무에 치받혀서는 박살이 나 버리고 말았다.

가로세로 백오십 미터에 달하는 드넓은 팔각형 공간에, 싱크홀이라도 발생한 것처럼, 깊이가 무려 삼백오십 미터를 넘는 초대형 구멍이 모습을 드러내 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구멍이라 부르기도 뭐한 것이, 그 구덩이 전체를 거대한 나무의 가지와 줄기로 가득 메우고 있어, 작은 틈조차 보이지가 않았던 것이다.


홀의 벽에 매달린 상태로 ‘오빠 믿지’를 난사해 버린 하지운이, 덮쳐 오는 가지를 피해, 성 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클럽 하우스 지붕 위에 내려앉아 급하게 뒤를 돌아본 하지운은, 너무도 어이없는 광경에, 그만 헛웃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씨발... 잭과 콩나무냐?”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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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베타테스터 (9) 24.06.28 12 1 11쪽
221 베타테스터 (8) 24.06.26 13 1 12쪽
220 베타테스터 (7) 24.06.24 13 1 10쪽
219 베타테스터 (6) 24.06.22 15 1 9쪽
218 베타테스터 (5) 24.06.20 13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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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 도강 (8) 24.06.09 12 1 10쪽
211 도강 (7) 24.06.07 13 1 9쪽
210 도강 (6) 24.06.04 12 1 9쪽
209 도강 (5) 24.06.02 14 1 9쪽
208 도강 (4) 24.06.01 17 1 10쪽
207 도강 (3) 24.05.29 17 1 10쪽
206 도강 (2) 24.05.27 14 1 9쪽
205 도강 (1) 24.05.26 18 1 9쪽
204 즐거운 훈련 (9) 24.05.23 16 1 9쪽
203 즐거운 훈련 (8) 24.05.22 18 1 9쪽
202 즐거운 훈련 (7) 24.05.19 21 1 10쪽
201 즐거운 훈련 (6) 24.05.17 17 1 10쪽
200 즐거운 훈련 (5) 24.05.15 17 1 10쪽
199 즐거운 훈련 (4) 24.05.14 17 1 10쪽
198 즐거운 훈련 (3) 24.05.11 22 1 10쪽
197 즐거운 훈련 (2) 24.05.09 16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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