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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별의 서재.

호곡리

웹소설 > 작가연재 > 공포·미스테리, 일반소설

완결

밝은스텔라
작품등록일 :
2019.07.05 23:29
최근연재일 :
2019.08.05 22:52
연재수 :
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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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40
추천수 :
130
글자수 :
173,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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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2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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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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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8쪽

20. 호곡리를 떠나며

DUMMY

< 20 >



“난 안 가요. 인혁이를 여기 버려두고 가긴 어딜 가. 미안해요. 모두 먼저 가요. 이미 너무 많이 폐 끼쳤어···.”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보다 누님 마음은 분명 이해합니다. 그런데 이것 하나만 말씀드릴게요. 누님, 전 사슴신당의 종관이며 동시에 예언직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평소에도 어느 정도 감은 있거든요. 음, 음, 그래서 조심스러운 말씀이긴 하지만, 저도 인간적 머리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교는 붉게 부은 눈을 끔뻑이는 미자 씨에게 이 말을 하는 게 과연 도움이 될까 어떨까 고민 끝에 주저주저 말하기로 했다.


교는 설령 자신의 감이 틀렸다 할지라도, 잠시라도 비논리적인 희망에 기댈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쁜 일은 아니리라 여겼다. 생각해 보면 우리 나약한 인간이란 모두 그 실낱같은 희망 한 줄기를 찾기 위해 이런저런 신앙에 매달리는 게 아닌가? 그는 누님께 흐릿한 무지개 같은 희망 한 줄기라도 쥐여드리고 싶었다.


“인혁이는 무사할 겁니다.”

“네?”

“네. 우리가 모두 눈으로 봤지요. 녀석이 결코 무사치 못하리라는 것을. 하지만 제 예언의 피가 말하고 있습니다. 무사하다고. 그래서 정말이지 조심스러운 말씀이지만, 누님께 꼭 들려드리고 싶었습니다.”

“······.”

“솔직히 저 백교랑은 자신이 없습니다. 하지만 예언자로서는 빈말이 아닙니다.”


미자 씨는 평생 분의 진지함을 모아 어렵게 한 마디씩 때는 교를 보며 잠시 말이 없었다. 그 예언의 ‘감’이라는 것을 무속인이었던 그녀가 모를 리 없다.

교는 이제 남은 일은 진실과 시간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는 마음으로 몸을 일으켰다.

사슴신의 종으로 자신은 결코 허언 하지 않았다. 그걸로 되었다.


“고마워요.”

“······.”

“고마워요. 모두. 작가님, 종관님, 신부님. 모두 모두.”


짐을 메고 방에 우두커니 섰던 교와 혜성과 비오 신부는 저마다 얼굴을 돌아보며 긴 한숨을 토했다.

방바닥에 넋을 놓고 앉아 있었던 누님의 영혼에 아주 미약한 빛이 돌아온 것 같았다. 혼자가 되면 혹시 극단적인 선택을 할까 걱정도 되었는데, 다행히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누님. 약속입니다. 부디 마음 추스르시고 몸도 잘 챙기십시오. 인혁이를 다시 찾을 때까지 누님이 바로 버티셔야 합니다. 아셨지요?”

“그래요. 내 새끼를 위해서도 내가 버텨야지. 혹시 내가 안 좋은 결심 할까 걱정하지 말아요. 나 이래 봬도 온갖 일 다 겪으면서 여기까지 왔어요. 난 약하지 않아요.”

“네. 누님. 믿겠습니다.”

“자, 이제 어서들 가 봐요. 혹시 경찰들 들이닥치면 모두 곤란해지잖아.”


그랬다.


이대로 있으면 당연히 경찰들이 올 거고, 그렇게 되면 일행 모두 발이 묶인다. 경찰들에 의해 일단 발이 묶이면 지은 죄 없이도 일이 아주 골치 아프게 꼬인다. 각자의 입장도 그렇지만, 사슴신당과 가톨릭이라는 조직까지 골치 아파진다.

무엇보다 교와 비오 신부가 휴대한 괴상한 무기류들이 문제. 심지어 교의 검에는 비오 신부의 혈흔까지 남았을 터이니 말이다. 모두는 서둘러 움직이기로 했다.


“마을로는 차가 들어갈 수 없어요!”


집사의 말로는 폭우로 인해 마을까지 이어진 길이 완전 진탕이라고 한다. 차가 들어갈 수도 없지만, 엄하게 시도했다가 이도 저도 아닌 곳에서 아예 묻혀버릴 수도 있다고. 결국, 모두는 표지석까지 걷기로 했다.


제관 어르신의 유서를 가지고 있다는 봉팔네를 부르러 간 어르신은 돌아오지 않았다. 길이 거지 같은 데다가, 아마 간밤의 일 때문에 새삼 수치스러우셨으리라. 낯부끄러워 못 오시는 이유도 있겠지.


“그럼 누님, 우리 먼저 갑니다.”

“그래요. 나중에 서울 가거든 우리 연락 나눠요.”

“네. 누님, 뭔가 좀 챙겨 잡수시고요.”

“마음 써 줘서 고마워요.”

“그럼.”


혜성과 교, 비오 신부는 가방에 신을 넣고 맨발로 출발했다. 비에 쫄딱 맞으며 진탕 밭을 허우적거리는, 영웅들의 초라한 탈출 길이었다.


‘와, 뭐지? 우리가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밤새 폭우가 이어졌기에 시골길은 군데군데 발목까지 빠졌다. 거기다가 모두 어제 아침 겸 점심 이후로는 먹은 게 없어 말도 못 하게 배가 고팠다. 게다가 산말 밖으로 나가기 직전에는 돌장승에 목을 맸다는 제관 어르신까지 있었다.


「끔찍했다.」 이렇게만 묘사하자.


정말이지··· 목을 매고 죽은 시신은 지금까지 본 어떤 괴물들보다 더 무서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교와 비오 신부는 그 앞에서 한참 기도를 올렸고, 혜성은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으악! 으악! 멘탈 추스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다시는 호러 소설 안 써! 너무 진짜를 봐 버렸잖아!”


그녀가 그러든 말든, 남자들은 진지하게 현실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래도 마을 사람들이 손댄 것 같지는 않네요. 눈도 안 감겨드린 거 보니.”

“어르신들이지만, 경찰이 올 때까지 가만 놔둬야 한다는 건 아시는 거지. 마음은 아프지만, 우리도 손대면 안 돼.”

“네.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아무도 지키고 있지 않아도 되는 걸까요?”

“이 날씨에 여기 서서 시신을 지킬 체력 좋은 젊은이들이 아무도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모두 70을 넘기신 연세인 데다가 간밤의 일도 있고 하니······.”

“쩝. 하긴.”

“이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그저 슬픈 일일 뿐이지.”


남자들은 모았던 손을 풀며 긴 한숨을 토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구역질을 올리고 난리가 났을 상황이지만, 남자들은 둘 다 종교인이었다. 교는 녹도에서 관혼상제를 담당하는 종관이었고, 비오 신부도 제 역할 상 끔찍한 시신을 제법 봤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슬픈 죽음 앞에서도 침착했다.


“쓸쓸한 끝이네요. 대체 이유가 뭘까요?”

“일종의 책임감 같은 게 아닐까? 그동안 마을의 제관이라면서 이것저것 이상한 의식을 행해 오신 거잖아. 옛 용소의 그 정신 사나운 금줄도 모두 이 어르신이 진두지휘하셨을 테고, 금줄도 온갖 잡귀들을 부르는 역 새끼로 꼰 거야. 모두 이 어르신이 하신 일이었겠지. 기본적인 지식 없이 옛 미신에만 기대다가 이렇게 된 거니까.”

“그렇다면 당신 탓에 산신이 노하고, 마을 사람도 희생되고, 모두를 돕던 인혁이도 끌려 들어가고. 그래서 모든 일에 자책감을 느끼신 거군요.”

“이렇게라도 책임지고, 또 사죄하고 싶으셨을 거야.”

“······.”

“뭐, 모르지. 그 외에 또 다른 이유가 있었을지는. 우리가 어떻게 알겠나.”


교와 비오 신부는 다시 한번 기도를 올리곤 걸었다.


시골길은 그냥 쭉 걸으면 되었다. 마을을 관통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마을에도 들르지 않고 논 사이로 그냥 쭉 걸어 일행은 오후 2시 정도에야 표지석에 다다랐다.

습하고, 덥고, 더우면서도 으슬으슬하고, 배고픔은 24시간을 넘겨 이제 눈앞이 빙빙 돌 지경이었다.


“으악! 종관님! 혜성님! 아니 그 꼴이 다 뭐야!”


스마트폰 문자에 약한 교를 대신해 다다닥 「거의 다 왔음」 메시지를 보낸 혜성 덕에 큰 우산을 쓰고 차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집사는 눈이 뒤집히는 줄 알았다.


“아니, 뭐가 다 왔다는 거야. 저기 시골 거지들밖에 없잖아.”


그 거지 중 하나가 제가 모시는 주인일 줄이야.


“어? 교! 저기 봐봐.”

“음?”


시완의 속이 뒤집히든 말든, 도저히 속도를 낼 수 없는 일행은 천천히 혜성의 손이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은 폐가가 있는 숲이었다. 그런데 그곳도? 밤새 화재가 있었는지, 그 일대가 온통 검게 그을려 있었다. 아직도 푸슈우······ 하고 한숨 같은 탄내가 공기 중에 떠돌고 있었다. 나뭇잎 같은 건 당연히 남아 있지도 않았고, 검게 탄 나무 시신들만 늘어선 그곳.


“교. 정말 천벌이라는 게 있기는 있나 봐.”

“음. 있지.”

“뭐라고요? 아니, 이 빗속에 불이 났다는 겁니까?”

“어제 신부님 자고 있을 때 배봉산도 불났어.”

“네에에?!”

“아마 그곳과 저기가 동시에 불타지 않았을까 싶군. 고약한 산신의 힘이 미치는 곳이 불로써 심판을 당한 거겠지.”

“그런 소설 같은 일이···.”


셋이 그렇게 멍해져 있을 때, 저기서 집사가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다.


“종관님! 빨리 오세요! 전 그리로 못 가요! 구두 버리거든요!”


사슴족 집사의 생명은 품위니까. 집사의 품위가 곧 주인의 얼굴. 반짝반짝 윤을 낸 구두가 진창에 빠지게 할 순 없지!


정작 주인은 진흙 인간 꼴로 난리가 난 상황이지만.


“아이고, 저 친구. 밤새 기다렸다던데, 내가 고생만 시키네. 다들 어서 가자.”

“괜찮아. 괜찮아.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잖아.”

“천혜성. 저 친구는 아무 잘못 없이 우리 때문에 고생하는 건데 너무 당당한 거 아니냐.”

“웃자고 한 소린데 안 통해? 어휴 세대 차이. 네. 네. 미안요.”

“??”


비오 신부는 그 대화에 깜짝 놀랐다.


‘둘 다 얼굴은 나보다 어려 보이는데 세대 차이라니?!’


7월 26일. 오후 2시 34분.


일행은 시완이 끌고 온 리무진 트렁크에 짐부터 채웠다. 비오 신부의 비밀스러운 짐도 모두 그 안에 넣었다.


“경찰들이 오면 이 짐들이 제일 문제니까. 어서 출발해.”


교는 짐을 모두 실은 후 트렁크 문을 닫고 차 엉덩이를 탕탕 두드리며 오라이~! 하고 외쳤다. 가장 먼저 의심스러운 짐들부터 치워놓기 위해서였다.


“앗! 종관님. 잠깐만요. 그렇게 초조해하실 필요 없어요. 조금 전에 정보관들이랑 이야기 나눴는데요.”


그 이야기에 비오 신부의 귀가 쫑긋! 섰다. 정보관? 저 젊은 친구는 사슴신당 관련자라면서. 신당이라는 조직에서 무슨 정보관? 그가 그렇게 의아해하든 말든 시완과 교의 이야기는 이어졌다.


“이곳을 담당하는 경찰조직들은 지금 움직일 수가 없어요. 그쪽에서 이리로 오는 **번 국도에서 밤새 도로 유실이 있었고요, **번 국도에서는 산사태까지 났어요. 또 그들이 담당하는 곳에서도 밤새 산사태가 나서 마을 하나를 덮쳤거든요. 지금 움직일 수 있는 인원은 모두 그쪽으로 집중되고 있어서 여기서 신고를 한다고 해도 그들은 금방 올 수 없을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게 정말 간밤에 일어난 일인가? 맙소사. 그럼 상황도 상황이고 길도 없다는 거군.”

“네. 그런데 여기는 지금 공식적으론 그 제관 어르신인가 하는 분의 자결 건이 문제인 거잖아요. 하지만 다른 곳은 마을 하나가 통째로 아비규환이니까요.”

“저런! 희생자들은 얼마나?”

“아직 사망자 1명 집계된 게 전부지만요. 그런데 그분은 정확히 말하자면 산사태 때문에 돌아가신 건 아니라 합니다. 그 외에는 12인가량이 실종 추정이라고 하더라고요.”

“그거 진짜 큰 문제네!”


놀란 혜성이 어떡해! 하고 펄쩍 뛰었다. 시완의 보고는 계속 이어졌다.


“거기다가 경찰 한 명이 무너진 담에 깔려서 부상, 달려오던 119 구조대 차량도 계곡 쪽으로 굴러버려서 구조대 두 명도 크게 다쳤다고 하고요.”

“엉망진창이군. 부디 다들 무사해야 할 텐데.”

“그렇죠. 문제는 기상청 호우 예보 같은 것도 없었고, 밤새 재난 문자도 없었어요. 그러니 모두 아무 준비 없이 맞은 재난이라 지금 여기저기 난리가 난 모양입니다.”


끔찍하다. 설마 용신의 역할을 맡은 뱀 한 마리가 불러온 이 비 때문에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희생되었단 말이야? 아, 설마. 다른 국지성 호우랑 겹친 거겠지.


혜성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무리, 뱀은 그러라고 비를 부른 게 아니겠지! 그런데 또 생각해 보면 뱀 입장에서는 비만 내리면 되는 거지, 사람들의 안녕은 아무 상관 없는 거 아닌가?


역시 어려웠다. 사람 사는 세상도 답 안 나오는 일 투성이인데, 안 보이는 존재들이 하는 일까지 어떻게 알겠나.


“잠깐, 그럼 지금 전국적으로 이 난리예요?”


시완은 교에게 하듯 혜성에게도 깍듯이 대했다.


“아닙니다. 간밤에는 경기랑 강원도 사이 딱 이 정도 지역에서만 난리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비구름이 점점 퍼지고 있다나? 뭐 기상청 슈퍼컴퓨터 이야기니까 대충 흘려들으시면 됩니다.”

“아, 네. 샤먼 컴퓨터 이야기는 알아서 들을게요.”

“아, 거기다가 지금 남쪽에서도 장마 전선이 서서히 올라오고 있다네요. 하지만 그것도 일단 와야 오는 거니까요.”

“그럼? 이쪽 길도 저쪽 길도 막혔으면 우린 어디로 가야 함?”

“네. 제가 어제 온 길도 막혔더라고요. 아, 잠깐만요.”


시완은 교가 대신 들어주는 우산 아래서 서둘러 팔목에 장착한 기계에 뭔가를 톡톡 찍고는 귀에 꽂은 장치에 대고 뭐라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반적인 스마트 워치와는 달랐다. 그것에서는 뭔가 그들만의 정보가 뜨는 모양이었다. 기계 줄에는 멋진 수사슴 문장이 작게 새겨져 있었다.

비오 신부는 그것을 관찰하며 문득 제 손목을 감고 있는, 그 또한 특수한 스마트 기기가 떠올라 새삼 화들짝 놀랐다.


‘아! 보고 타이밍 놓쳤다!’


그때 시완이 돌아서며 모두에게 이야기를 들려줬다.


“네. 지금 정보관이 추천한 길은··· 네. 홍천 쪽이 막힌 거니까요. 여기 비가 계속 내리든, 남쪽에서 장마 전선이 올라오든. 우리는 이대로 남쪽으로 쭉 내려가서 원주까지 찍고 올라오는 게 안전하다고 하네요? 만약 원주 쪽으로 가실 거면 숙소와 옷가지들을 미리 준비해 놓겠다고 합니다. 거기서 그냥 편하게 하루 묵으시는 걸 추천한다는데요?”

“숙소와 옷?”

“네. 각자 안팎으로 사이즈 입력해주시면 그쪽에 있는 우리(사슴족) 호텔 지배인이 모두 준비해놓겠다고 하네요. 제가 지금 우리들 꼴이 인간이 아니라고 말씀드렸거든요.”

“오오오! 교! 이 친구는 정말 훌륭한 비서다!”

“하하하. 과찬이십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비오 신부는 적잖이 혼란스러웠다.

사슴신당이라면서. 그도 언젠가 먼발치서 건물 지붕 정도는 본 적 있었다. 그냥 대충 그렇고 그런 종교 집단 아닌가? 그런데 지금 저들의 모습은 그렇고 그런 종교 집단의 이야기 같지가 않았다. 정보관은 뭐고 집사들이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린가.


그리로 간다고 말만 하면 숙소와 입을 옷도 모두 준비해 놓겠다고? 지금 그들은 거대한 가톨릭 조직이 움직이는 수준을 뛰어넘고 있었다.

만약 지금 자신이 도움을 청하면 아마 어디 교구 성당에 연락해 둘 테니까 가봐라. 민폐 끼치지 말고. 그 정도겠지. 그 정도만으로도 상당한 힘인데, 그런데 뭐지? 저들은?


“하지만 내 옷, 속옷 사이즈 같은 건? 꺅! 이건 인권침해다!”

“하하하! 제가 좀 있다가 창을 열고 눈 감고 있을 테니 혜성님은 거기다가 내용을 손으로 그냥 쓰시면 됩니다. 그 창은 글을 쓰는 순간 없어지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담당자 외에는 아무도 못 봅니다. 그러면 유능한 여성 호텔리어가 알아서 준비해 줄 겁니다.”

“으음. 진짜다?”

“하핫. 네. 유능한 저의 눈대중으로는 벌써 위아래, 안팎으로 사이즈 다 나왔지만요.”

“으악! 이 변태! 성희롱이다. 맞아라!”


― 뻐억!


정작 시완의 머리를 시원스레 때린 건 교였다.


“나이스!”

“여성에게 쓸데없는 소리 지껄이지 마라.”

“앗. 죄송합니다. 종관님.”


그때였다. 모두의 이야기를 지켜보며 제 랜드로버에 기대 서 있던 비오 신부가 주르륵- 미끄러져 바닥에 주저앉았다.


“비오 신부?!”

“신부님!!”

“아, 앗. 죄송합니다. 잠깐···.”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겨 있다가 잠깐 어지러웠다. 아니, 뭔가 몸에서 힘이 쭉 빠지면서 상처 부위가 쑤셔왔다.


“! 교! 어떡해! 신부님 열 있는 거 같아!!”

“저런! 시완이, 서두르자. 원주? 좋아. 그리로 간다고 해! 무엇보다 이 친구는 지금 잘 먹고 푹 쉬어야 해!”

“앗? 네! 네! 참, 차 안에 급한 김에 비상약품들과 물 있습니다!”

“좋아. 모두 출발이다!”


··· 배고파요······.


교를 모시기 위한 리무진 내부는 시완에 의해 신속하게 신문지 천국이 되었다. 트렁크 한구석에 용도를 알 수 없는 신문지 뭉치가 쌓여 있어서 다행이었다.


“죄송합니다. 당장의 품위에는 지장이 있지만, 필요한 일이라 여겼습니다. 혹 불편하지는 않으신지요?”

“괜찮아요. 발이랑 옷에 묻은 이 진흙들로 멋진 가죽시트가 엉망이 된다면 그게 더 불편할 거 같으니까. 뭐 이미 여기저기 묻었네. 나중에 청소할 때 저도 도울게요.”

“하하, 마음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움직이기 시작한 차 안에서, 비오 신부는 멀어져 가는 검은 랜드로버를 멀어져 가는 정신으로 돌아보며 주린 배를 움켜쥐었다.


‘아, 저거 언제 회수하지?’


아, 몰라. 눈을 감았다.

배가 고프면 힘을 못 쓰는 젊은이는 이럴 때 가장 서럽고 슬프다.


조수석에는 혜성이 앉고, 뒷좌석에는 두 남자가 앉았다. 교는 조용히 눈을 감는 비오 신부를 흘끔 보며 ‘교황의 문장’을 떠올렸다. 아이들 스티커로 가린 그것에 관해 묻고 싶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다.


‘도대체 이 녀석, 정체가 뭘까?’


반면, 기운이 없어 까무룩 잠에 빠지는 비오 신부의 머릿속은 오직 이것뿐이었다.


‘배고파··· 고기······.’



------------


*작가의 말 :


; ㅅ;)/ 안녕하세요. 친고기성향의 작가입니다. (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34 창조소설러
    작성일
    19.07.29 21:44
    No. 1

    오늘은 일찍 와서 봤습니다~>< 저두 친고기파! 고기를 달라!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밝은스텔라
    작성일
    19.07.29 22:52
    No. 2

    아삭아삭한 상추와 향긋한 깻잎 위에 소금(이나 쌈장이나 기름장 찍은) 고기 두 점. 파채 듬뿍에 생마늘 한 조각. 한 입 아웅~!! 먹으면서 풋고추도 씹어주고요. 성인이라면 살짝 머금어 주는 소주나 맥주나 (취향 따라)... 마무리는 된장찌개. 크으~ 살면서 한 달에 한 번쯤. 고기를 먹을 수 있다면 성공한 삶이라고 혼자 생각합니다. ^^ 거기에 남이 차려주고 구워준 고기라면 그야말로 영약, 보약이지요! ㅎㅎ 감사합니다. 좋은 밤 되세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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