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밝은 별의 서재.

호곡리

웹소설 > 작가연재 > 공포·미스테리, 일반소설

완결

밝은스텔라
작품등록일 :
2019.07.05 23:29
최근연재일 :
2019.08.05 22:52
연재수 :
27 회
조회수 :
2,826
추천수 :
130
글자수 :
173,118

작성
19.08.05 22:52
조회
72
추천
5
글자
9쪽

<에필로그>

DUMMY

< 에필로그 >



“그래서, 이제 좀 성이 차요?”

“음? 아아.”


혜성과 교를 보내준 후 비오 신부가 무뚝뚝하게 디모테오 수사의 등을 쿡쿡 찔렀다. 그러자 접시에 남은 간식들을 제 뱃속으로 청소 중인 그의 스승이 어? 하고 돌아보았다.


왜 쿵푸팬더가 떠오르는 걸까?


어쨌거나 디모테오 수사는 하하 웃으며 제 무릎을 탁! 쳤다.


“멋졌어!”

“뭐가. 요.”

“그 둘 말이다.”

“그 둘 뭐. 요”

“서로 전혀 다른 곳에서 출발한 사람들인데 서로 완전히 달랐을 주파수? 파장 같은 것이 한곳으로 모이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아, 그래. 둘은 색깔이 같았어.”


뭐? 색깔?


“색깔? 그게 무슨 소리죠? 뭐 정치적 견해 같은 게 같다는?”

“뭔 소리야. 아니, 형제님은 처음부터 그런 거 못 느꼈나? 만약 못 느꼈다면 정말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해주지.”

“네? 그게 무슨 소리예요. 그거야 둘이 사이좋으니까 그런 거 아닌가요? 연인이라면 더더욱 그럴 거고.”

“연인이라도, 아무리 부부라도, 심지어 쌍둥이라 할지라도 그렇게까지 같은 색을 띨 수는 없어. 설령 육체적 결합이 있다고 해도, 그건 말 그대로 고기와 고기가 만난 일이라서 단지 그런 일로 저렇게까지 영혼의 색이나 파장이 일치하지는 않아.”

“저기요. 고기랑 고기라니. 말 좀 골라가면서 해요. 자기도 고기이면서.”


비오 신부가 문제 발언을 꼬집어 주었지만, 디모테오 수사는 뜨거운 독백처럼 이야기를 계속 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그 둘에게는 내가 사람을 측정하는 여러 가지 기준을 넘어서는 뭔가가 있었어. 뭔가가··· 게다가 보통 사람들이 뿜는 기운과는 여러모로 달랐지. 흠흠. 아무튼, 아주 잘 봤다. 정말이지 만족스러웠어.”

“그래서, 수사님의 ‘스카우터’에 찍힌 그들의 전투력은?”

“흠. 일단 그 사슴신당 종관이라는 친구는 내 새끼 비오 신부보다 한 계단 위더군. 이번에 떠진 영상은 전투력을 측정하기 힘든 것이었지만, 딱 봐서 딱 떨어지는 타입이었어. 그 친구도 날 보자마자 감을 잡더군.”

“그랬어요? 난 왜 전혀 몰랐지?”

“솔직히 놀랐다. 역시 형제님은 역시나 아직 깜깜한 애송이라는 걸 인정해.”

“아니, 그 인정을 왜 수사님이 하는 건데요. 뭐, 저도 인정합니다만. 그리고 작가님은요? 물론 작가님의 경우는 전투력으로 논할 문제는 아니겠지만.”


그 질문에 디모테오 수사는 접시에 남은 치즈 쿠키 부스러기를 입에 털어 넣으며 활짝 웃어 보였다.


“그 작가님은 무등(無等)!”

“네?”

“급이나 등수를 매길 수 없는 존재라는 거지.”

“흠······.”

“어떻게 보면 나보다 위고, 어떻게 보면 형제님보다 아래. 하지만 애초에 그런 식으로 잴 수 없는 인물이야. 세상엔 드물지만, 종종 그런 존재가 있지. 나도 이번엔 상당히 드문 케이스를 봤네. 살면서 한 번 보기 힘든 경우거든.”


뭐가 뭔지.


“좋아요. 뭐 아무튼, 수사님이 앞으로 저들을 더 귀찮게 할 거 같지 않으니 저도 만족하기로 했습니다.”

“흠흠. 그래. 그럼 이번에는 내가 내리는 다음 임무다.”

“또 뭐요!”

“또 뭐긴. 내일 당장 호곡리로 가서!”

“네에에?!”


앞치마를 두르고 열심히 뒷정리하던 비오 신부는 목소리가 뒤집혔다. 뭐? 내일 당장 호곡리?!


“그래. 당장 차(검은 랜드로버) 끌고 올 것! 그거, 총원장 수사님이 어른 수사님들 모시고 병원 다니려고, 또 당가 수사님 시장 보라고 큰마음 먹고 뽑은 신차인데!”


비오 신부는 뜨끔했다.


“어르신들 어제 병원 가시는 날인데, 차가 없어서 옆 동네 성당 유치원 봉고차 빌렸다고!”

“아아. 참참. 죄송요. 진짜 죄송. 그래도 어디 기스나고 한 곳은 없어요. 끌고 와서 제가 안팎으로 세차까지 완전히 해놓겠습니다.”

“당연하지. 그리고 가는 김에 문제의 폐가 데이터 한 번 더 찍어올 것. 본래 작가님과 동행하고 한 번, 형제님 혼자 한 번 찍어오는 게 임무였으니까.”

“네. 하지만 거기 온통 불타서 이제 뭐 찍힐 것도 없을 텐데요.”

“그럼 아무것도 안 찍히는 데이터를 찍어와.”

“네. 네.”


차 문제로 주눅 든 비오 신부는 이제 한 마리 어린양이 되어 뭐든지 끄덕거리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또 있어요?”

“세차까지 다 해놓고 안토니오 신부 있는 성당으로 돌아갈 것.”

“아아.”

“그 양반, 엄청난 오해 하고 있던데. 일단 내가 말은 잘해 뒀지만, 형제님이 직접 가서 오해를 벗어야지. 안 그럼? 저대로 놔두면 우리 수도원 이미지까지 꼬이잖아. 그 신부가 오해한 상태에서 교구 신부들한테 이야기 퍼져 봐! 아 씨!”


악! 생각만 해도 똥줄이 탄다. 그랬다가는 진실이야 어찌 되든 교구 놈들 안줏거리로 천 일은 족히 질겅질겅 씹히겠지. 하 씨.


“아아, 죄송, 죄송. 처음부터 말을 잘 해야 했는데.”

“그리고 하나 더!”

“네. 네. 아주 그냥 말려 죽이십시오.”

“흠, 그 성당 애들 여름 캠프 다녀올 동안 평일 미사랑 토요 특전 미사 전담할 것.”

“네에에?!”

“감히 내 멱살 잡은 일에 대한 보속이다.”

“······.”

“싫어? 그게 싫으면 형제님이 애들 데리고 여름 캠···”

“순명! 순명하겠습니다!”


비오 신부는 급히 한 무릎을 꿇으며 디모테오 수사가 내린 보속을 받아들였다. 애들 데리고 여름 캠프만큼은 피하고 싶었으니까!


***


그날 밤, 혜성은 잠자리에 누워 울고 있었다.

재밌게 잘 지낸 하루였는데, 제 방에서 홀로 조용히 있자니 갑자기 그렇게 눈물이 났다.


그동안 있었던 모든 일에 담긴 모든 고통이 갑자기 그녀를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마치 성난 바다에 빠져 어푸어푸 허우적거리는 것 같았다. 숨을 들이켜려면 다시 파도가 덮치고, 꼬르록 가라앉았다가 다시 숨 쉬러 올라가면 또 새로운 파도가 덮쳐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상태에 빠진 양 괴로웠다.


혜성은 그간 배미골에서부터 호곡리까지, 보통 사람이라면 견딜 수 없을 온갖 일을 겪고 온갖 것들을 보았다.

인간적으로 그 후유증이 없을 리는 없건만, 그래도 지금껏 나름 잘 지냈다. 그런데 그날 밤은 갑자기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교. 교······.’


이럴 때 그와 함께 있으면 덜 무서울까? 덜 슬플까?


아니, 그건 아닐 것 같았다. 지금 그녀에게 들이닥친 슬픔과 두려움과 공포. 등등은 오직 자신에게만 내밀어진 계산서 같았으니까.


혼자 헤쳐나가야 한다. 사람을 성장, 숙성시키는 고독의 힘으로. 혜성은 눈물을 닦으며 잠시 침대와 붙어 있는 창밖 어둠을 응시했다.

그녀는 평소에는 그렇게 잘 웃고, 장난치고, 고통에 무딘 듯 지냈지만, 사람이다.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짊어져야 할 삶의 쓰라린 흉터가 있고 피할 수 없는 짐, 결코 남이 져주지 않는 십자가가 있으니까.


‘교······.’


혜성은 혼자 이겨내야 할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저도 모르게 자꾸만 교를 찾았다.


그때였다. 혜성의 목소리를 듣기라도 한 양, 그에게서 짧은 문자가 하나 도착했다.


「잘 자.」


그것뿐이었다. 하지만 그 한마디에 혜성의 젖은 눈가엔 웃음이 떠올랐다. 혜성은 답변하지 않았다. 그대로 눈을 감았다.

거짓말처럼 마음이 편해졌다. 감은 눈꼬리에는 그날의 마지막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


그 눈물 끝에는 무지개가 뜨겠지?


혜성이 눈을 감자 그와 동시에 교도 침묵하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잘 자.」


감은 눈앞에서 혜성이 밝게 인사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저 망상이겠지. 잠기운이 부른 환상이겠지. 하지만 행복했다.


밤 11시 23분.


각자의 잠자리에서 눈을 감고 거의 동시에 잠든 두 남녀의 입 꼬리는 보기 좋게 올라가 있었다.


“앞으론 꽃길만 펼쳐지기를.”

“앞으론 꽃길만 펼쳐지기를.”

“하지만 가시밭길이라도, 난 너와 함께 갈 거야.”

“하지만 가시밭길은 따라오지 마. 바보.”


그 밤, 혜성과 교는 서로를 아끼는 같은 마음, 그러나 다른 말을 둘이 공유하는 영혼의 칠판에 남기며 편안히 쉬었다.


「The show must go on. The show must go on.」


모두가 조용히 잠든 시간.


감미로운 어둠에 안긴 혜성의 방에는 낮은 볼륨으로 ‘여왕님’의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새벽 1시까지 플레이가 예약된 혜성의 스마트 폰 라디오 앱이었다.


쇼는 계속 되어야 해.

쇼는 계속 되어야 해.


「I have to find the will to carry on, on with the show. The show must go on, show must go on······.」


라고.




------------


감사합니다.


^^ 모두 안녕히 주무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호곡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호곡리 설정 사진과 그림입니다. +4 19.07.31 84 0 -
공지 배미골과 용어 차이. 19.07.06 127 0 -
» <에필로그> +2 19.08.05 73 5 9쪽
26 25. (마지막 회) 늘 고마워할 거야 +1 19.08.03 90 6 13쪽
25 24. 지켜주고 싶어 19.08.02 69 3 16쪽
24 23. 아름다운 밤 19.08.01 71 2 14쪽
23 22. 슬픔의 끝에서 기쁨의 눈물을 +2 19.07.31 69 2 13쪽
22 21. 효자는··· +2 19.07.30 67 5 14쪽
21 20. 호곡리를 떠나며 +2 19.07.29 71 4 18쪽
20 19. 다음 날 +4 19.07.26 76 6 15쪽
19 18. 무너짐 +4 19.07.25 76 4 15쪽
18 17. 성전과 수호자 +6 19.07.24 87 5 15쪽
17 16. 졸라 짱 쌨다 +4 19.07.23 77 5 13쪽
16 15. 옛 용소에서 +4 19.07.22 84 6 15쪽
15 14. 뒷북엔 장사 없다 +2 19.07.19 92 8 18쪽
14 13. 전투다! +2 19.07.18 89 7 16쪽
13 12.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3 19.07.17 91 5 12쪽
12 11. 한밤중의 습격 +2 19.07.16 93 6 13쪽
11 10. 발 묶임 19.07.15 76 4 18쪽
10 9. 곤란하다 곤란해 19.07.12 87 4 18쪽
9 8. 경고 19.07.11 87 4 16쪽
8 7. 도착 19.07.10 88 4 13쪽
7 6. Another one bites the dust 19.07.09 93 5 14쪽
6 5. 출발 19.07.08 98 5 11쪽
5 4. 서로 기가 막혀 19.07.08 100 4 12쪽
4 3. 작가 소환하는 독자 19.07.07 109 3 15쪽
3 2. 소설 호곡리 19.07.07 148 4 14쪽
2 1. 조금 젊어졌습니다 19.07.06 253 6 13쪽
1 <프롤로그> +2 19.07.06 398 8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