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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별의 서재.

호곡리

웹소설 > 작가연재 > 공포·미스테리, 일반소설

완결

밝은스텔라
작품등록일 :
2019.07.05 23:29
최근연재일 :
2019.08.05 22:52
연재수 :
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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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73,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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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15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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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10. 발 묶임

DUMMY

< 10 >



저녁 7시. 시골은 금방 어두워지고 금방 밝아진다.

아니, 그것보다 이럴 수가! 예언자 교도 어느 정도 발이 묶일 줄은 알았지만, 설마 집에 못 갈 줄은 몰랐지! 남자들은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토했다.


“형님, 지금 몇십니까?”

“어, 7시.”

“어휴. 스마트한 기기들 먹통 되니까 사람이 바보 된 기분이네요. 뭐야. 시골에서 저녁인데 밥은? 혹시 우리만 굶고 있는 거 아닐까요?”

“설마. 배고프면 뭣 좀 줄까? 아까 누님이 무겁다고 내 가방에 넣어준 주먹밥 있는데.”


지금 남자들은 뜻하지 않게 감금(?)당한 방에서, 눈치도 없이 빨리 찾아온 시장기에 시달리고 있었다.

비오 신부는 교가 백 팩에서 주먹밥 꺼내는 소리를 들으며 방구석에 앉아 있는 학생을 돌아보았다. 그 방에 먼저 와 있었던 외지인 남자였다.


그는 자신을 대학 1학년생이라고만 했다. 뭔가 상당한 충격을 받은 사람처럼 넋이 나간 모양으로 저 구석에 처박혀 있어서, 지금껏 교도 비오 신부도 섣불리 다가가지 못했다.

무슨 사연일까? 비오 신부는 잠시 주먹밥을 꺼낸 교와 눈짓을 나누곤 학생을 향해 살짝 턱짓해 보였다.


아마 그 어린 학생도 하의 실종 아줌마를 본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암.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겠지. 이 형들도 아직 멍한데.

역시 둘은 직업윤리 상, 굶고 있는 어린 녀석을 언제까지 모른 체할 수 없었다. 둘은 조심스레 다가가 보았다. 이 배고픔도 어쩌면 기회로 삼을 위기일지 모르지.


“저기, 주먹밥 좀 있는데. 같이 안 먹을래?”

“······.”

“두 개 있는데 하나 학생 먹어.”

“······.”


무릎을 세우고 앉아 있는 학생은 말이 없었다. 덕분에 곤란한 침묵이 시골 방구석을 가득 채웠다. 결국 비오 신부가 버럭! 일어나 분위기를 전환했다.


“으악! 그것보다 이게 무슨 꼴이냐고요! 여기, 감옥이야? 뭐야! 우리, 무슨 포로로 잡힌 겁니까? 핸드폰 좀 빌리자는 말이 그렇게 흉악한 소리냐고요!”

“쉿. 비오 신부님. 목소리 낮춰. 오늘은 이 동네 여자분들이 좀 날카로운 모양이니까.”

“신부?”

“엇.”


계속 멍하니 허공만 응시하던 청년이 ‘신부’라는 말에 갑자기 정신이 든 모양이다.


“신부님이세요?”

“아, 나 말고 저쪽.”

“그, 그럼 악마 쫓고 그러시는 거죠?”


뭐, 뭔데. 또 뜬금없이 악마입니까?


“그건 영상 매체의 망상일 뿐이야.”

“하지만 그냥 신부님이라도 기도는 하는 거죠?”

“그거야. 기도는 그냥 신자도 해.”

“그럼 기도해주세요! 악마 쫓는 기도!”


스무 살 청년이 갑자기 와락 하고 달려들자 흠칫 놀란 비오 신부가 엉겁결에 그의 손을 뿌리쳤다. 의식하고 한 행동은 아니었다.


“미, 미안. 놀라서. 아무튼, 왜 그러는 거야. 동생, 무슨 일 있었던 거야?”

“저 선배님··· 찾아야 하는데.”

“선배? 동생은 혼자 여기 온 게 아니군. 그런데 찾아야 하는 선배랑 악마랑 신부님 기도는 무슨 상관이지?”

“본래는 상관이 없지만, 상관있게 되었어요.”


뭔 소리냐.


“저 이 동네는 오늘 새벽에 건너왔어요. 실은 어제 저 뒤에 산에 갔었는데.”

“앞도 뒤도 없고 무슨 소리야. 좀 차분하게 말해 봐. 넌 어디에서 온 누구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거고? 지금은 왜 여기 있는 거지? 아, 무서운 아주머니들이 굿하는 데 방해 된다고 열 받아서 잡아 뒀다는 건 알겠어. 우리도 그래서 잡혔으니까. 그나저나, 선배라니? 남자? 여자?”


그렇다. 모두는 여자들에게 잡혔지만, 남자들에 의해 감금 아닌 감금을 당했다. 그나저나 비오 신부는 왜 선배의 성별이 궁금한 걸까.


“으으······.”


비오 신부는 떠올리기 싫은 기억을 떠올리며 바들바들 떠는 학생의 등을 쓸어주었고, 교는 그의 떨리는 손에 커다란 주먹밥을 쥐여 주었다.


“자, 일단 먹으면서 하자. 뭔가 우리도 뜻하지 않게 버려진 거 같으니까 다들 느긋하게 말이야.”

“아, 형님. 버려졌다니요. 웃으면서 그런 소리 하시면 저까지 우울해지려고 합니다.”

“형님? 형님도 신부님?”

“난 아니야.”

“이분은 사슴신당 종관님이라고.”


비오 신부도 주먹밥을 건네받으며 교를 소개했다. 하지만 학생은 그게 뭔지 몰랐다.


“그게 뭔데요.”

“몰라도 돼.”


교는 학생에게 하나 주고 남은 주먹밥 하나를 반으로 나누어 비오 신부에게 건넨 후 방 벽에 등을 기댔다. 그러자 마치 감방 서열이 그려지는 묘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자, 이제 말해 봐. 무슨 일인데?”

“네. 사실은······.”


남자들이 그러고 있을 때, 혜성도 미자 씨도 아직 저녁 전이었다. 그녀들은 지금껏 마을 이장이자 제관인 어르신 앞에 앉아 호곡리에 관한 길고 깊은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이거죠? 1. 호곡리(濠谷里)는 행정상으로는 해자가 파인 계곡마을이라는 뜻이지만, 실은 호랑이가 곡을 하는 마을, 한자로는 虎哭里이다. 호랑이가 많이 죽은 곳이라서. 호랑이의 한이 맺힌 곳이라서.”

“맞네.”

“2. 산말 언덕을 넘으면 배봉산이라는 산이 있는데, 그 산은 테두리로 정말 해자처럼 땅이 파여 있고, 강처럼 물이 흐른다. 행정명 호곡리는 바로 그 모습을 뜻한다. 그런데 그 산은 아주 영험한 산이라서 옛날부터 사람들이 그곳 산신께 탯줄을 바쳤다. 산 이름인 배봉은 배꼽이라는 옛날 말이 어원이다.”

“그렇지.”

“3. 바로 그 배봉산을 도는 물에 자른 호랑이 머리를 담그는 침호두 기우제를 했다. 그런데 그게 엄청 영험했었다. 그랬는데 나라에서 행하는 국행의례용 호두 구하기도 힘든 판에 시골에서 그런 의식을 행한다고, 왕의 눈에 어긋나 배봉산의 산격과 산신격이 완전 소멸되었다. 사람으로 치면 삭탈관직에 유배.”

“젊어서 그런지 요약을 잘하는구먼.”


엣헴. 살짝 으쓱해진 혜성은 손가락 하나를 마저 펴며 추리 소설에 나오는 탐정인 양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4. 그 과정에서 어느 왕족 가문의 태릉까지 발견되어 발칵 뒤집히고, 궐에서 직접 사람이 나와 배봉산에 있던 모든 산신당과 제단을 직접 부수고 산을 아예 폐산시키기에 이르렀다. 죄목은 괘씸죄. 사람으로 치면 삭탈관직에 유배에 삼대를 멸족.


으으음······.


제관 어르신의 앞뒤 없이 길기만 했던 이야기는 대충 그렇게 요약이 되었다.


“몇몇 전문용어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수모를 당한 배봉산과 거기 산신을 여기 마을 사람들은 그 뒤로도 계속 모셨다는 거죠? 물론 몰래.”


제관 어르신은 젊은 건지 어린 건지 모르겠는 혜성의 명랑한 목소리에 마음이 복잡하게 헝클어지는 것을 느꼈다.

토박이인 자신들은 대대로 목숨까지 걸고 모신 산이었는데, 외지인 여자아이의 발랄한 목소리에 담긴 배봉산은 어쩐지 자신들이 알고 있는 그 성산이 아닌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70 평생 처음이었다. 배봉산이라는 이름이 새털처럼 가볍게 여겨진 것은. 어르신은 자신들이 그토록 수고를 바친 의미도 하염없이 가볍게 여겨지는 것 같아 언짢기도 하고, ‘맞아. 그게 다 무슨 소용이었나.’ 싶기도 하고. 심기가 뒤숭숭했다.

거기다가 정작 무당이었다는 미자 씨가 계속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게 신경 쓰였다.


“그래, 무당 선생님은 어찌 들으셨소?”

“네. 말씀 들으면서 계속 생각 중이었어요.”

“어떤 생각인지 들려줄 수 있소?”

“배봉산 둘레를 물길이 돌고 있다 하셨는데, 그럼 그걸 용소라고 불러도 될는지, 하지만 실제 용소는 따로 있는 거 아니고요?”


미자 씨가 무당이었다는 이야기가 거짓이 아닐까 내심 의심 중이던 어르신은 그제야 그녀를 믿게 되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하지 않았을 질문이었으니까.


“음. 우리 조상님들은 아무래도 의식을 위해 매번 산 깊이까지 들어가셨던 모양이오. 그래요. 진짜 용소는 배봉산, 즉 배꼽산에서도 배꼽 부분에 있소. 우리는 ‘옛 용소’라고 부릅니다. 산 중앙에 아주 작은 물웅덩이가 있는데, 연못치고는 작은 그냥 웅덩이라오. 얕아서··· 그래서 실제 침호두 의식은 대부분 테두리 물길에서 치러졌소. 그러다가 요즘은 아예 그 테두리 물길을 용소라 부릅니다.”

“그럼 폐산된 이후로 마을 분들은 그 산속, 옛 용소까지는 안 가셨고요?”

“1년에 최소 봄, 가을. 일반적인 산신제를 지내러 가긴 가오. 그 외에도 갈 때가 있지만, 그건 드문 경우고.”

“그럼, 어떤 경우에 옛 용소에 가시는지 여쭤도 될까요?”

“음, 우선은 마을에 아이가 태어났을 때.”

“아, 탯줄을 바치러 가는 거군요.”


어르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잠시 혜성을 흘끔 보았다. 아무리 봐도 스무 살 가량의 아가씨인데, 그 앞에서 곤란할 이야기를 해야 할 분위기라. 그러자 미자 씨가 한 발 앞서 눈치껏 이야기를 끌어나갔다.


“산신을 달래주러 갈 때도 있었겠지요.”

“으으음······.”


어르신은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과부 산신을 달래준다는 것. 여러 형태가 있지만, 어쨌거나 음란과 연관되는 일이었다.


“마을에 일이 꼬이고 병자가 생기면, 마을에서 가장 젊은 것을 골라, 길일을 잡고 혼자 용소에 보낸다오. 그리고 축시에 그걸······.”

“으음, 쉬운 일은 아니겠네요.”

“못난 것들이 대부분 실패하고 오지만, 탓하는 이는 없소. 하지만 성공하든 아니든, 다녀와서는 트라우마인가 뭔가 하는 것 때문에 탈이 많아서 요즘은 그런 거 안 하오. 그래서 요즘은 대신 ‘몽둥이’를 박아놓고 온다오. 그리고 다음에 갈 때 새 걸로 갈아놓는 정도지.”


미자 씨는 그 정도만으로도 내용을 알아들었다.

마을에 우환이 생길 때, 가장 젊은 남자를 골라 혼자 옛 용소에 보낸다. 그리고 축시(새벽1시~3시). 그 깜깜한 어둠 속에서 남자 혼자 옛 용소에 정액을 뿌려 산신을 달랜다는 건데··· 아주 옛날식이다. 하지만 그게 그리 쉽게 될 리가 없지. 그래서 대신 쓴다는 ‘몽둥이’란 남근석이나 남근목을 말하는 것일 테다. 옛 용소에 그걸 박아놓는 거로 과부 산신을 달랜다니.


무업을 턴 미자 씨는 새삼 이 나라의 무속 문화가 이 정도였나 싶어 긴 한숨을 토했다. 딸들이 자신에게 미개하다고 할 만도 했지. 그 순간 처음으로 납득했다. 꼭 기독교에 심취하지 않았어도 말이다.

이 땅에서는 요즘 젊은 사람들이 들으면 기절초풍할 일들이 한때는 당연했다. 어쩌면 개화기를 거치면서 그런 문화가 어느 정도 제어 당한 것이 꼭 나쁘지만은 않았는지도.


어른들끼리 뭔가 묵직한(?) 대화가 오가자 혜성은 또 심심해졌다. 다시 제 스마트 폰을 만지작거렸지만, 역시 바보 상태였다.


‘망할. 앱 게임 30일 연속 접속 템 받아야 하는데!’


어른들의 이야기는 계속 되었다.


“그럼 옛 용소에 제단은요? 옛날에 부서진 그대로인가요?”

“아니, 왜정 시대에 그 옆에 돌 제단을 새로 세웠다오. 하지만 그 이전 시대에도 몰래몰래 그곳에서 탯줄을 바쳤다고 하오. 그래서 우리끼리는 최근까지도 여기 호곡리를 제댓골이라 부르기도 했다오.”

“제댓골요?”

“음. 제대. 배꼽의 또 다른 말이라오. 배꼽 산 배꼽에 배꼽에서 떨어진 탯줄을 바치는 마을이니까.”

“하긴, 사실 탯줄 바치는 의식이 침호두 의식보다는 훨씬 빈번했을 테지요.”

“그렇소. 거기다가 옛날에는 아기가 참 많이도 태어났지.”


거기까지 듣고 미자 씨는 잠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어느 왕족이 임금 몰래 가문의 태릉으로 삼을 정도면 배봉산은 일단 영기가 상당한 곳일 거다. 하지만 왕에 의해 산이 뒤집히고 산신당이 허물어지고 폐산에까지 이르렀다면······.


이건 무당의 영감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위험한 냄새가 났다. 하지만 그 뒤로도 이곳 사람들은 그곳 산신을 모셨다는 거고, 거기에 대대손손 탯줄과 음란한 행위를 바쳤다는 거다. 그렇게 산신의 분노를 어찌어찌 달랬을 거다. 그런데 지금은?


“그럼, 그곳에 마지막으로 탯줄을 바쳤던 건 언제인지 여쭤도 될까요?”

“으음··· 요즘은 이런 곳에 시집을 안 오니까. 젊은것들은 다 나갔고. 아기를 낳아도 병원에서 낳으니까. 그래. 옛 용소에 마지막으로 탯줄을 바친 건 아마 20년도 더 됐지?”

“네에······.”


미자 씨는 살짝 소름이 돋았다.


‘지금쯤 엄청나게 굶주려 있을 텐데.’


배봉산에 모신 산신이 남편 여덟을 거치고도 아이를 낳지 못한 과부 여신이라고 하니 더 신경이 쓰였다.


“아무튼, 옛날 어르신들은 아기가 태어났는데도 옛 용소 제대에서 태를 바치지 않으면 반드시 살을 맞는다고 하셨소. 요즘은 뭐 바치고 싶어도 바칠 수도 없지만.”


그 시각, 뜻하지 않게 포로처럼 취급되는 남자들의 대화도 점점 깊어지고 있었다.


“그 선배가 군대 가기 전에 담력시험 해야 한다고 해서 둘이 그 산에 들어갔다고?”

“네.”

“우와, 요즘 젊은 애들은 군대 가기 전에 이러는구나.”

“형님. 갑자기 무슨 말씀입니까. 이 녀석들이 별난 거죠. 요즘 젊은 애들이라니. 형님도 요즘 젊은이입니다.”

“아. 그렇지. 그래.”

“어휴.”


대학생은 눈이 동그래져 황당한 두 형님을 번갈아 보았다. 어째서인지 ‘큰 형님’은 형님이라기보다는 자꾸 영감님 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아무튼, 새벽에 일어나 보니 선배가 없어졌다. 핸드폰도 먹통이 되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러 왔다가 잡혔다. 이거군.”

“네.”


그러자 비오 신부가 ‘아 뭐야! 그런 거야?’ 식으로 제 무릎을 탁! 치더니 학생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그러자 학생은 살짝 기분이 상한 듯, 어깨를 비틀어 그의 손을 피했다.


“아, 미안. 아무튼, 이야기대로라면 그림 뻔하잖아. 뭘 걱정해서 이렇게 포로 신세까지 되는 거야. 그 선배가 엿 먹이려고 널 두고 먼저 뜬 거야.”

“네?”

“그런 곳에서 혼자 남으면 얼마나 무섭겠어. ‘사내놈 둘이 한 텐트에 있는 게 뭔 담력시험이겠어. 안 그러냐?’ 아마 서울 돌아가거든 그 선배, 분명 술 쏘면서 그렇게 말할 거다.”

“그럼 선배는 지금 무사할까요?”

“지금쯤 혼자 방구석에서 티브이 보며 네 생각에 킬킬거리고 있겠지.”

“하지만.”

“뭐. 마음에 걸리는 거라도 있는 거야?”

“네. 전 선배가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사실은······.”

“사실은?”

“새벽에 나갔더니 텐트 주변에 엄청 이상한 게 있었거든요.”

“음?”


교와 비오 신부가 서로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순간 차창을 마구 두드리던 손자국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선배가 무사하다고 확신할 수가 없는 거예요.”

“뭔데. 말해 봐. 그러고 보니 너 아까 나더러 악마 쫓아달라느니 뭐니 했잖아.”

“네. 악마. 네. 큭! 악마!”


녀석은 세운 무릎을 오므리며 힘을 주어 떨기 시작했다.


“워워. 괜찮아. 여긴 괜찮잖아. 악마. 그래. 악마 나오면 이 신부님이 뚜까 패서 쫓아줄게. 그러니 마음 편히 놓고 말해 봐.”


그럼 이 녀석은 악마라고 믿는 것들에게 쫓기면서 사라진 선배를 찾았다는 거다. 그러다가 도움을 청하러 마을에 왔는데 이번엔 무서운 아줌마, 아저씨들에게 잡혀서 갇혀 있었던 건가?!


뭐냐. 너의 청춘.


“네. 땅에서 뭔가가 솟구쳐 올라 부글부글 춤추고 있었어요. 뭐랄까. 그 두더지 잡는 게임 알죠?”

“어? 어.”

“그것처럼 땅에서 그런 게 불쑥불쑥 올라왔다가 들어갔다가. 커질 때는 중학생 키만큼 커지고, 다리도 없는데 앞뒤로 소리 없이 스르륵 움직이기도 하고. 가까이 왔다가는 멀어지고. 그런 게 여기저기 어슬렁거리고 있었어요. 제가 정말 헛걸 본 걸까요?”


오. 우. 야······.


교와 비오 신부는 다시 서로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믿기 싫은 이야기일수록 리얼하게 다가오는 건 왜일까.


“그런··· 것들이 덤벼들지는 않았고?”

“마을로 향하는 고갯길까지 계속 따라오기는 했어요.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가 하면서 계속 따라오기는 했지만, 덤벼들지는 않았어요. 제가 아마 옛날에 엄마한테 받은 부적을 품고 있어서 그런 거 아닐까 싶었어요.”

“엄마가 준 부적?”

“네. 엄마가 무당이셨거든요. 아빠도.”

“!”


교와 비오 신부가 퍼뜩! 눈빛을 교환했다. 뭐, 무당의 아들이야 전국에 한둘이 아니겠지만. 왜 갑자기 ‘누님’이 떠오르는 거지?


“아, 하지만 전 남들이 뭐라 하든 부모님이 무당이었다는 걸 한 번도 부끄럽게 여겨본 적 없어요!”

“아니, 우린 뭐라고 안 해. 존중한다.”


나왔다. 존중 젊은이의 존중 카드.


“네. 아무튼, 그래서 전 무사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맨몸이었을 선배는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잖아요.”

“넌 그 두더지, 아니. 흙덩이 같은 것들이 선배를 해코지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거구나.”


학생은 형들이 자신을 이상한 소설 많이 읽은 미친놈 취급하지 않는다는 것에 큰 안도감을 느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귀도 기울여주지 않았을 텐데.


“네. 제게는 덤벼들지 않았지만, 느낌이라는 게 있잖아요. 그것들, 뭔가에 굶주려 있는 것 같았어요. 전 본능적으로 그런 걸 느꼈고요. 저도 명색이 무속인 아들인데. 감이라는 게 있잖아요.”

“······.”


교는 눈썹을 찡그리며 차창을 두드리던 손바닥들을 떠올렸다. 이 학생의 이야기가 정말이라면, 그 흙덩어리들은 손바닥들과는 성격이 전혀 다른 존재다.


‘어쩌면······.’


잠시 모두의 머리 위로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때였다.


― 덜커덩!


“으악! 깜짝이야!”

“거기 총각들. 밥상 차렸으니 다들 나와서 밥 먹어요.”


아아! 심장 벌렁벌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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