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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별의 서재.

호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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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밝은스텔라
작품등록일 :
2019.07.05 23:29
최근연재일 :
2019.08.05 22:52
연재수 :
27 회
조회수 :
2,839
추천수 :
130
글자수 :
173,118

작성
19.07.06 15:16
조회
398
추천
8
글자
9쪽

<프롤로그>

DUMMY

< 프롤로그 >



크기나 길이를 가늠할 수 없는 그것은 검붉은 뱀이었다. 또 그것과 함께 몸을 부비고 있는 또 하나의 괴물은 검고 푸른곰팡이 색을 띤 얼룩덜룩한 거대한··· 민달팽이?!


새벽 2시 17분.


밤 10시부터 산기도 중이던 박수 박은택은 어느 순간 하늘이 열리며 일월성신의 시리도록 맑은 기운이 자신을 강렬하게 꿰뚫는 것을 느꼈다. 평생 처음 느껴보는 대오각성의 경지였다.

그것은 무속인으로서 그간 대감님에 기대어 온갖 잡귀들을 보아온 시력이 아니었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자연히 깨달았다. 그는 진정한 눈이 뜨였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간 자신이 모셔온 칠성 대감과 부인인 송미자 씨가 모셔온 장군님의 본 모습을 보고 말았다. 숨이 턱 막혔다.


“이럴 수가!”


어둠 속에서 사위스럽게 번질거리는 그것은 비늘도 없었다. 썩은 피처럼 검붉은 뱀은 거대한 개불처럼 끈적거리고 미끈거렸고, 시작과 끝이 안 보일 정도로 거대했다.

별의 명징한 기운에 영혼이 씻긴 그는 자신이 곧 끝나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런 깨달음에 이르면 모든 일에 초연해질 줄 알았다. 실제로는 감당할 수 없는 공포와 허무에 온몸에서 힘이 쭉 빠지고 숨도 쉴 수 없었다. 그런 중에도 그는 본능으로 품을 뒤져 핸드폰을 꺼냈다.


― 스르르······


눈앞에 벽처럼 펼쳐진 뱀 몸뚱이는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정확히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전체적인 그림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그것들은 크기나 모양만치 뿜어내는 기운도 가늠할 수 없었다.


그것이 그가 그간 모셔왔던 칠성대감과 부인이 모셔온 장군님이었다니. 어둠보다 짙은 어둠의 응어리.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끝을 알 수 없는 악의의 우물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그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단축번호 1번을 눌렀다. 부인인 무당 송미자 씨의 번호였다.


“여보세요. 당신?”


역시나 잠에 눌린 목소리였다. 아무리 그래도 무당이라면 일반인과는 완전히 다른 감이라는 게 있는데 어쩜 그리 편안한 목소리인가. 그녀의 장군님이 여기에 납시어 그렇다!


“어어.”

“아니, 기도 간다고 한 주 동안 생식하고 따로 자던 양반이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핸드폰이라니! 자기, 지금 기도터 아니야?”

“자, 잘 들어.”


은택 씨는 최대한 침착하게 상황을 알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말은 목구멍에서 꽉 막혔고, 겨우 목소리를 내어도 상대방이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끽끽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뭔데 그래! 뭘 모르는 양반도 아니면서 기도하다가 뭔 놈의 핸드폰이야. 빨리 말하고 끊어!”

“헉··· 헉······ 우린 속았어. 난 봤어. 아니, 지금도 보고 있어. 지금껏 내가 모셔온 대감님이, 그리고 미자 네가 모시는 장군님이 사실은······.”


― 칙. 치이익.


귀를 긁는 날카로운 잡음이 섞였다. 왜 하필 이럴 때!


“여보세요? 송미자! 여보세요?”

“뭐? 듣고 있어. 뭐라고 했지? 뭐가 속았다고?”

“무섭고 끔찍해! 송미자! 그동안 우리가 모셔온 것! 그건 사실 전혀 신령한 신이 아니었···”


뚝.


중요한 용건을 말하려고 하는 순간, 통화가 저절로 끊어졌다. 배터리는 98%였다. 후들거리는 손으로 다시 통화버튼을 눌렀지만 소용없었다. 이번에는 아예 전원이 나갔다. 그와 동시에 마지막까지 침착하고자 용쓰던 그의 이성도 끊어졌다.


기도용으로 밝힌 촛불도 자지러지듯 비틀거리다 쓰러졌다.


올해 52세가 된 송미자 씨는 뿌옇게 밝아오는 문가를 바라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잠이 깨기 직전, 죽은 남편이 나오는 꿈을 꾸었다. 동료 무당인 안 씨의 진오기굿으로 공수를 받은 이후로 꿈에서는 처음 보는 남편이었다. 그는 꿈에서 미자 씨에게 잠이 깨거든 밖에 나가 책을 보라고 했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릴까? 책? 무슨 책?


미자 씨의 남편 은택 씨는 산기도 나간 다음 날 새벽, 등산객에 의해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3년 전의 일이었고, 그 일 이후로 미자 씨의 삶은 온통 뒤죽박죽이 되었다.


그녀에게는 스물여섯에 낳은 맏딸, 스물일곱에 낳은 둘째 딸. 서른 살에 낳은 막내아들이 있었다. 딸들은 김 씨였고, 아들은 박은택 씨의 아들이었다.

은택 씨는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거두어 주었다. 그랬건만, 딸들은 모두 교회를 다니면서 엄마도 아빠도 저급하기 짝이 없는 마귀라며 질색했다.


그러다가 첫째는 개척교회 목사에게 시집갔고, 둘째는 대형교회의 장로와 권사를 시부모로 모시게 되었다.

딸들은 사탄의 장난질로 벌어들인 천박한 돈을 결혼자금으로 쓰고 싶지 않다며 자력으로 알아서들 결혼해 나갔다. 그리곤 마귀와는 말 섞을 수 없다며 연락을 거의 끊었다.

몰랐는데 최근에 보니 이름도 김예진과 김지선에서 김은총와 김찬미로 바꾼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곁에서 쭉 지켜본 막내아들 박인혁은 어려서부터 자신만은 부모님 곁에서 자식으로 할 도리를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은택 씨는 숨졌고, 미자 씨는 나이 오십이 되자 신기가 끊겨 더는 벌이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아니, 막말로 요즘은 신기고 나발이고 좆도 없는 것들도 잘만 벗겨 먹고 사는데! 송 씨 정도면 지금까지 쌓아온 경력이 얼마여. 신점은 대충 손님 속 후벼서 몇 마디 끌어내고 나머지는 말빨로 후리면 안 되나? 요즘 젊은 애동제자라는 것들 다들 그러고 잘만 사는데 뭐가 문제여. 그래도 솔직히 송 씨는 사주나 관상은 또 잘 봐주잖여. 작명도 매일 줄을 서는데 말이여. 아니, 내가 진짜 너무 아까워서 그래. 응? 다시 생각해 보면 안 될까? 양심이랑 자존심, 그거 살짝만 굽히면 편하게 잘 사는 게 이 바닥 아녀.”


주변에서는 그런 식으로 미자 씨를 설득하려 애썼지만, 미자 씨는 “다른 사람과 나 자신을 속일 수는 있을지는 모르지. 하지만 장군님은 속일 수 없어요. 갑자기 날 떠나신 건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겠죠. 난 이제 아무 미련 없어요.”라고 단호하게 결심하곤 30년간 길들인 모든 무구를 손에서 놓았다.


미자 씨 부부는 제법 신통하다고 강남에서 이름을 날린 무당 부부였다. 평소 근검절약했으며 딸들도 자력으로 출가했기에 남몰래 쌓아둔 것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도 막내아들 박인혁은 혼자가 된 엄마에게 경제적 부담이 되기 싫다며 대학에 합격하자마자 기숙사에 들어가 아르바이트에 매달렸다.


송미자. 순탄치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 성인이 되어서도 편치 못했다. 첫째 남편은 술과 폭력을 쓰다가 집 나갔고, 둘째 남편은 산기도 중에 죽고, 딸들에게는 마귀 취급당하고, 손자들은 안아보지도 못한 상황. 거기다가 그녀를 지탱해주던 신기도 완전히 끊겼다. 하지만 “난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우리 엄마 호강시켜 줄 거야!”라고 외치는 스무 살 아들 하나라도 있어 감사하며 살고 있었다.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미자 씨는 긴 한숨을 쉬며 오래된 젖빛 유리 미닫이문을 들들들 열고 나갔다.


호화롭던 강남 기도당과 집을 모두 정리하고 물러난 파주의 어느 촌 동네였다. 저 길 건너 멀리에는 마천루 같은 신도시 고층 건물들이 보였다. 하지만 올해부터 미자 씨가 지내게 된 집은 시에 묶여 있어 시간이 멈춰버린 옛날 마을, 그 터의 토박이들이 살던 아주 옛날 집이었다.


무당 일을 놓고도 노후를 보내려면, 거기다가 아들 장가까지 잘 보내줄 생각을 하면 역시 아낄 수 있는 건 아껴야 할 것 같았다. 그녀는 오래된 슬레이트 지붕을 한 시골집을 구해 죽은 듯 조용히 사는 생활에 만족했다.


잠에서 깨어 밖으로 나오자 여기저기 금 간 시멘트 마당에 정리해서 쌓아둔 분리수거 쓰레기들이 보였다. 미자 씨는 그것들을 들고 천천히 마을 분리수거 터로 나갔다.

머릿속은 온통 꿈속에 나타난 남편 생각뿐이었다. 메시지가 너무 선명했기 때문이었다. 나가서 책을 보라고 했다. 뜬금없이 책이라니. 책방에라도 가라는 소린가? 왜?


미자 씨의 의문은 쓰레기장에서 풀렸다. 꽤 이른 시간이었는데도 새벽잠 없는 어르신들이 이미 이런저런 쓰레기들을 쌓아두었다. 그녀는 그 틈에서 눈에 확 들어오는 것. 냄비 받침이 분명했을 것 같은 책 한 권을 발견했다.


<호곡리>라는 제목. 냄비 테두리 모양으로 국물 오염물이 묻은 표지에는 사진을 음산한 일러스트처럼 편집한 이미지가 있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녀에게는 도저히 지나칠 수 없는 책이었다. 편집된 이미지이기는 해도, 표지에 그려진 그 집은 자신이 태어나 자라다가 끔찍한 사건을 목격하고 도망친 옛집이었으니까. 호곡리(濠谷里)라는 지명도 딱 그 집이 있는 곳이었으니까.


‘은택씨! 당신?!’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쓰레기로 버려진 냄비 받침. 아니, 책을 잡았다.

300페이지 가까이 되는 그것은 아무리 봐도 요즘 잘 나가는 감성 에세이류는 아니어 보였다.

작가명은 티라노사우르스. 지금껏 본 작가 필명 중 가장 괴상한 이름이었다.


작가의말

그냥 편하게(부정기 연재) 쓰고 고치고 쓰고 고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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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1. 효자는··· +2 19.07.30 67 5 14쪽
21 20. 호곡리를 떠나며 +2 19.07.29 71 4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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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3. 전투다! +2 19.07.18 90 7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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