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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호 님의 서재입니다.

퇴마하는 작가님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이상한하루
작품등록일 :
2023.10.23 09:05
최근연재일 :
2024.03.15 19:00
연재수 :
6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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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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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51
글자수 :
371,835

작성
24.02.1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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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글자
13쪽

여배우한테 붙은 악귀(3)

DUMMY

하연수가 자신의 제안을 거절하는 날 황당하게 바라봤다. 물론 나도 하연수와 만나는 게 절대 싫은 건 아니다. 다만···


“경쟁작품 여배우와 작가가 만나는 걸 누가 보기라도 하면 온갖 이상한 루머가 돌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요?”

“아, 그렇겠네요. 그럼 어떡해요? 설마 우리 못 만나요? 최소한 제가 감사의 마음으로 밥 한 끼 대접할 기회는 주셔야죠. 그리고 물어보고 싶은 일도 많은데 너무 매정하신 거 아닌가요?”


경계심을 걷어낸 탓인지 하연수는 모니터로 보던 화려한 배우의 이미지를 벗고 날 대했다.


“저는 배우님이 연기하는 것만 보고 갈게요. 나중에 궁금한 게 있으시면 휴대폰으로 통화하면 되죠. 밥은 서로의 드라마가 끝난 다음에 사주세요. 그때는 저랑 만나는 걸 다른 사람이 봐도 작가와 배우가 비즈니스적으로 만난다고 생각할 테니까.”


내가 드림온에서 만들어준 명함을 건넸다. 하연수가 명함을 보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허동수 작가님.”


하연수가 장난치는 것처럼 생글거리며 말했다. 드라마에 나오는 생기발랄한 하연수 캐릭터가 연기가 아니라 진짜 성격이었던 모양.


“좋은 수가 있어요. 굳이 드라마 끝나고 만날 필요 있나요? 그때가 되려면 앞으로 몇 달은 있어야 할 텐데. 그러지 말고 우리 만나서 전음으로만 얘기해요. 그럼 서로 멀리 떨어져서도 대화 나눌 수 있잖아요. 그럼 아무도 우리가 만날 걸 모를 걸요?”


하연수는 전음으로 대화하는 게 무척 재밌었던 모양이다. 하긴 늘 남들의 시선을 신경 써야 하는 스타이다 보니 이해는 가지만...


‘내 입장에서는 무슨 비밀 연애하는 것도 아니고 굳이 그렇게까지 만날 이유가 있나? 아, 아니다. 혹시 다음 작품에 하연수를 캐스팅할 수도 있으니까 인맥은 단단하게 잘 유지하는 게 좋겠지. 내가 배가 불렀네. 다름 사람도 아니고 천하의 하연수인데.’


어쨌든 지금은 스타일리스트가 언제 또 들이닥칠지 몰라 불안해서 계속 대화를 나누기가 힘들었다.


“연락은 나중에 필요하면 되니까 어서 나가봐요.”


*


스타일리스트가 촬영장에 복귀한 하연수의 분장을 급하게 매만지며 물었다.


“언니, 아까 그 남자 누구예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

“네에?”

“농담이고. 어쩌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일지도 몰라. 어떤 비밀이든 털어놓을 수 있는. 그래서 나 지금 든든하고 설레. 지금까지 내 주위에 그런 사람이 없었거든,”

“와, 너무 궁금해요, 언니.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면 안 돼요?”


하연수가 주위를 살피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너 <보이지 않는 사랑> 알지? 우리 드라마하고 동시간대에 같이 방영되는 경쟁작품.”

“<보이지 않는 사랑> 당연히 알죠. 현우 오빠 복귀작이잖아요. 현우 오빠 보고싶어서 요즘 <보이지 않는 사랑> 방영 날짜만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


스타일리스트가 눈을 흘기는 하연수를 보고 얼른 말끝을 흐렸다.


“야, 니가 아무리 현우 오빠 팬이라고 해도 내 앞에서 그렇게 말하는 건 선 넘는 거지.”

“미안해요, 언니. 헤헤. 근데 갑자기 <보이지 않는 사랑>은 왜요?”

“아까 그 분 <보이지 않는 사랑> 극본 쓴 허동수 작가님이야.”


스타일리스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헐~ 진짜요?”


스타일리스트가 입틀막을 하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스타일리스트가 촬영현장을 구경하는 동수를 발견하고는 흥분한 음성으로 하연수에게 속삭였다.


“허동수 작가님 아직 안 가고 저기 있어요. 저 분 맞죠?”


하연수도 고개를 돌려 동수를 발견하곤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 맞아. 내 연기 보고 가라고 했거든.”


하연수는 동수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불안이 사라지고 마음이 편해졌다. 최근 몇달간 이렇게 마음이 편한 적이 있었던가 싶다.


“근데 작가님하고 왜 언니랑 만난 거예요?”

“그건 비밀.”

“언니 혹시 작가님이랑···?”

“그런 거 아니고··· 나 잘하면 다음 작품 허동수 작가님이랑 같이 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진짜요? 저 작가님 작품 아직 방영도 안 했는데 뭘 보고...”

“물론 <보이지 않는 사랑> 방영되면 보고 결정해야지. 새로운 작품 극본도 보고. 근데 은퇴설까지 나돌던 현우 오빠가 출연을 결정했을 정도면 극본이 진짜 재밌었다는 얘기지. 어쨌든 스케줄만 맞으면 다음 작품은 허동수 작가님 작품에 출연하고 싶어.”

“허동수 작가님한테 배우들을 끌어당기는 뭔가가 있나 봐요. 아무리 극본이 재미있다고 해도 칩거하던 송현우 배우님을 불러내고 작품 고를 때 까다로운 언니까지 극본도 안 보고 출연하겠다고 할 정도면. 근데 언니···”

“응?”

“언니 얼굴이 엄청 밝아졌어요. 분위기도 확 달라지고. 아까 촬영할 때만 해도 지금 얼굴 아니었거든요. 이렇게 갑자기 얼굴이나 분위기가 바뀔 수가 있나? 슬럼프 이전으로 돌아간 것처럼 뭔가 분위기가 밝아졌어요.”

“진짜? 사실 나도 지금 모처럼 기분이 너무 좋거든. 예전의 나를 되찾은 느낌이랄까. 사실 이것도 다 허동수 작가님 덕분이야.”

“네? 그게 무슨 말이예요?”

“그런 게 있어. 호호.”


그때 감독이 말했다.


“연수야, 준비됐으면 가자.”

“네, 감독님!”


*


카메라 앞에 선 하연수가 감정을 잡고 상대역을 바라봤다. 이전에는 연기도 연기지만 표정이 어두워서 생기발랄한 하연수의 연기가 나오기 힘들었다. 근데 지금은 하연수의 얼굴에 에너지와 생기가 감돌았다.


“연수야, 다시 말하지만 이 장면에선 텐션을 최대한 끌어올려야 해. 알았지?”

“네, 감독님.”


스태프가 외쳤다.


“슛 들어갑니다~

“카메라 돌았습니다.”

“레디~ 액션!”:


감독의 큐사인이 떨어지자마자 하연수의 얼굴에서 달콤한 애교가 뿜어지기 시작했다. 하연수가 생글거리며 남편 역할인 김도형의 넥타이를 매만지며 말했다.


“오빠, 있잖아. 오늘 우리 결혼 기념일인데 강아지 분양 받으면 안 돼?”

“몇 번을 말해? 우린 애견보다 아이를 가져야 할 때라고···”


하연수가 전매특허인 빼진 듯 눈 흘기는 연기를 시전했다. 부탁을 들어주지 않고는 버틸 수 없을 것 같은 슬픈 듯 귀여운 눈빛 연기. 모처럼 빛을 발하는 하연수의 필살기다.


“오빠는 역시 나보다 애기가 먼저구나. 나 애기 가지면 몸매도 다 망가지고··· 하던 일도 그만 둬야 하고··· 아줌마 되는 건데 그래도 괜찮아? 애기는 좀 늦게 가지면 안 돼? 나 아직 어린데··· 나도 애긴데···”


하연수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실룩거리자 남편이 말했다.


“하아, 그래, 알았어. 그렇게 댕댕이 키우고 싶으면 분양 받도록 하자. 애기는 한 2, 3년 뒤로 미루고.”

“정말? 끼약! 고마워, 오빠! 고마워!”


환호성을 지른 하연수가 갑자기 남편한테 매달리며 얼굴에 미친듯이 뽀뽀 세례를 퍼부었다.


“야,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만해. 니가 무슨 댕댕이냐?”

“나 오빠랑 결혼 너무 잘한 것 같아! 호호호~”


남편한테 안겨서 팔짝팔짝 뛰며 좋아하는 하연수의 모습을 지켜보던 감독의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스태프들도 다들 홀린 것처럼 입꼬리를 올린 채 하연수의 연기를 지켜봤다. 하연수의 텐션이 올라가자 무겁던 촬영장의 분위기도 금방 밝아졌다. 오케이를 외치는 감독의 목소리도 이전보다 훨씬 활기차고 커졌다.


“컷, 오케이! 그래. 이게 진짜 하연수지. 연수야 지금 분위기 좋으니까 이대로 쭈욱~ 가자. 멈추지 말고.”

“네, 감독님!”


스태프들의 움직임도 한결 가벼워졌다.


“27씬 1의 3, 갑니다.”

“레디~ 액션!”


*


나는 하연수의 연기를 조금 더 지켜보다가 조용히 스튜디오를 빠져나왔다.


‘역시 하연수는 하연수네.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홀리는 것 같은 연기야.’


근데 하연수 연기가 너무 생동감이 넘쳐서 한편으로 걱정이 됐다. <과거의 문>에서도 저렇게 연기하면 시청자들을 모두 쓸어갈 것 같은 불안이 들었던 것이다. 하연수한테 붙어있던 악귀를 없애준 게 미래 우리 드라마 시청률애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될 정도.


‘아니, 아니다. 나는 내 작품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지 남의 작품 신경 쓰는 건 의미가 없어. 괜히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새로 얻은 귀기로 극본이나 얼른 쓰자.’


귀기가 생기자 빨리 10화를 쓰고 싶어서 손가락이 근질거렸다. 오늘은 퇴마하러 왔지만 혹시 몰라 노트북과 가방을 메고 나왔다. 마침 이야기숲 로비 안에 있는 카페가 보였다.


‘오늘은 오랜만에 카페에서 써볼까?’


학교 때는 항상 카페에서 글을 쓰곤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커피값이 아까워 옥탑방에 처박혀 글을 썼다.


“아메리카노 따뜻한 거 한 잔이요.”


구석 자리에 자리를 잡고 노트북을 펼쳤다. 경쟁 프로그램 만드는 제작사 건물 카페에서 글을 쓴다고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전투력이 생긴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 나왔습니다.”


아메리카노를 가지고 자리로 돌아왔는데 비어 있던 옆자리에 어떤 남자가 앉아있었다. 남자는 내가 돌아온 것도 모르고 내 노트북에 띄워져 있는 <보이지 않는 사랑> 9화 극본을 힐끗거리며 보고 있었다. 10화를 쓰기 전에 9화 극본을 읽고 분위기를 잡기 위해 화면에 띄워 놓았던 것인데.


‘뭐 상관없지. 9화 극본 한 페이지만 봐서는 무슨 내용인지 알 수도 없을 테고.’


내가 자리에 앉자 노트북을 보던 남자가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내가 10화 극본을 쓰기 시작하자 연신 힐끔거리는 남자의 시선이 느껴졌다.


‘카공족 처음 보나? 왜 계속 힐끔거리고 쳐다봐.”


그러거나 말거나 정신없이 극본을 쓰는데···


“아씨, 차가 더럽게 밀리네. 오래 기다렸어요?”


갑작스레 들려온 낯선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돌아봤다. 옆에 앉아있던 남자가 일어서서 방금 온 남자를 향해 연신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아, 아닙니다. 조감독님. 저도 방금 왔습니다.”


내가 글을 쓴 시간이 족히 30분은 넘은 것 같은데 남자는 방금 왔다고 거짓말을 했다. 아마도 약속시간에 늦은 상대가 미안해 할까봐 그렇게 말을 한 것 같은데.


‘그에 반해 상대는 너무 예의가 없네. 30분을 넘게 늦었으면 당연히 미안하다고 사과부터 해야지. 되려 차 막혔다고 지가 성질이야? 근데 이 사람 배우였나? 조감독이라는 사람한테 저렇게 쩔쩔매는 걸 보면. 분위기상으로는 조연은 아닌 것 같고 단역배우?’


조감독이란 사람이 말했다.


“그나저나 어떡하죠? 이삿짐 직원 역할은 이번에 다른 사람이 맡기로 했는데··· 대사가 있는 단역이라서 웬만하면 장기태씨한테 맡기려고 했는데··· 참나.”


남자의 입에서 소리 없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남자는 이내 손사레를 치며 말했다.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죠.”


괜찮다고 말은 했지만 남자의 목소리에 짙은 실망감이 묻어났다. 나도 예전에 잠깐 보조출연 알바를 했기 때문에 단역 배우들에게 대사가 있는 역할이 얼마나 큰 기회인지 알고 있다.


“그래요. 다음에 내가 좋은 역할 있으면 장기태씨 꼭 추천할게요. 난 바빠서 이만···”

“감사합니다, 조감독님. 감사합니다.”


멀어지는 조감독이란 남자의 뒷모습에 대고 남자는 연신 허리를 굽히며 감사하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뭐가 감사한 것인지도 알지 못한 채.


털썩 자리에 주저앉는 남자의 입에서 비로소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남자가 마음을 가다듬는 것처럼 양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남자가 어딘가로 전화를 했다.


“어, 여보. 내일 가게 일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아···. 아, 그거? 다른 사람이 맡기로 했대··· 아, 아냐. 조감독님이 얼마나 신경을 많이 써 주시는데. 조감독님 아니었으면 누가 날 추천해줘?... 응. 아냐··· 실망 안 했어.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지.. 그래, 알았어. 곧 들어갈게.”


전화를 끊은 남자가 쉽게 일어나지 못한 채 멍하니 허공을 바라봤다. 근데 남자와 조감독이 나눈 대화에서 딱 기억에 남는 말이 있었다.


‘아까 분명히 장기태라고 했지? 분명히 어디선가 들어본 익숙한 이름인데··· 내가 단역배우를 알고 있을 리도 없고 어디서 들은 이름이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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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배우한테 붙은 악귀(3) +6 24.02.18 2,697 78 13쪽
37 여배우한테 붙은 악귀(2) +5 24.02.17 2,667 74 12쪽
36 여배우한테 붙은 악귀(1) +2 24.02.16 2,702 73 12쪽
35 박주희의 전화(2) 24.02.15 2,744 70 13쪽
34 박주희의 전화(1) +4 24.02.14 2,813 74 12쪽
33 배우의 발견(3) +1 24.02.13 2,873 71 13쪽
32 배우의 발견(2) 24.02.12 2,882 69 12쪽
31 배우의 발견(1) +2 24.02.11 2,931 73 12쪽
30 걸그룹을 만나다(2) +2 24.02.10 2,912 79 13쪽
29 걸그룹을 만나다(1) +5 24.02.09 2,926 71 13쪽
28 걸그룹 멤버의 영혼(3) +3 24.02.08 2,970 73 12쪽
27 걸그룹 멤버의 영혼(2) +2 24.02.07 3,016 74 12쪽
26 걸그룹 멤버의 영혼(1) +6 24.02.06 3,074 75 13쪽
25 한류배우 캐스팅(3) +2 24.02.05 3,106 83 13쪽
24 한류배우 캐스팅(2) +3 24.02.05 3,063 74 12쪽
23 한류배우 캐스팅(1) +2 24.02.04 3,129 71 13쪽
22 작가가 치트키(3) +4 24.02.03 3,149 75 13쪽
21 작가가 치트키(2) +1 24.02.02 3,209 79 13쪽
20 작가가 치트키(1) +3 24.02.01 3,244 72 13쪽
19 한류배우가 은둔한 이유(4) +4 24.01.31 3,286 84 12쪽
18 한류배우가 은둔한 이유(3) +5 24.01.30 3,244 75 13쪽
17 한류배우가 은둔한 이유(2) +4 24.01.29 3,252 76 13쪽
16 한류배우가 은둔한 이유(1) +5 24.01.28 3,371 75 12쪽
15 계약하죠(3) +4 24.01.27 3,388 76 12쪽
14 계약하죠(2) +2 24.01.26 3,445 80 13쪽
13 계약하죠(1) +10 24.01.25 3,460 82 13쪽
12 몽달귀 +3 24.01.24 3,431 76 13쪽
11 작가가 누구야(4) +1 24.01.23 3,482 78 13쪽
10 작가가 누구야(3) +2 24.01.22 3,485 74 12쪽
9 작가가 누구야(2) +4 24.01.21 3,529 7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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