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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호 님의 서재입니다.

퇴마하는 작가님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이상한하루
작품등록일 :
2023.10.2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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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1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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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2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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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작가가 누구야(2)

DUMMY

제작사 관계자로 보이는 여자의 마지막 말이 머릿속에서 울리며 사방에서 밝은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전 처음부터 <보이지 않는 사랑>의 연출을 이진범 감독한테 맡기고 싶지 않았어요. 작가님하고 이 감독 사이에 연출계약만 없었다면 말이죠.’


아무리 예지력이 생겼다고 해도 솔직히 방금 본 미래가 진짜일지 의심이 들었다. 이진범이 아무리 감이 없다고 해도 혜정 역할에 윤하린을 캐스팅할 수가 있나. <보이지 않는 사랑> 대본을 제대로 분석하긴 한 건가.


윤하린은 이번 진범의 영화에서도 남자를 유혹하는 요부로 출연했다. 혹시 둘 사이에 무슨 은밀한 관계라도 있는 건가. 그런 게 아니라면···

내가 미래의 아공간에서 빠져나왔을 때 메시지가 나타났다.


[귀기 ‘30’을 사용했습니다. 이제 남은 귀기는 ‘20’입니다.]


순간 나는 방금 전 미래 영상을 보고 놀란 것보다 더 놀라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미친! 귀기를 ‘30’이나 사용했다고? 귀기 ‘30’이면 <보이지 않는 사랑> 대본 몇 편을 쓸 수 있는 양인데? 와씨. 예지력 한번 사용한 대가로는 너무 많은 거 아닌가? 그런 건 미리 좀 알려주던가.’


하지만 나는 금방 생각을 바꿨다.


“아니다. 대본 쓰는 것보다 방금 본 미래가 훨씬 중요한 정보지. 아무리 대본을 재미있게 쓰면 뭐 하냐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마찬가진데.’


감독을 잘못 선택하는 바람에 <보이지 않는 사랑>은 시청자들에게 욕을 먹는 최악의 드라마가 됐다. 방송국 게시판에 올라온 시청자들의 악플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는다.


“너 지금 뭐하냐?”


진범의 목소리에 비로소 현실로 돌아왔다. 내 눈앞에 그 문제의 계약서가 놓여 있다. 씁쓸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미래의 아공간에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던 진범의 목소리가 아직도 머릿속에서 웅웅거렸다.

웃음을 머금고 있는 진범의 얼굴이 가증스러웠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확인이 필요하다. 예지력이 정말로 정확한지 검증이 되지 않았으니까.


“너 혜정 역할로 누구 캐스팅할지 생각해 뒀어?”

“아까 얘기했잖아. 혜정 역할은 그렇게 비중이 크지 않다고.”

“전혀 생각해 둔 사람 없어? 아··· 아까 오디션으로 뽑겠다고 했었나?”

“그래, 그게 기본 방향이야.”


진범의 말대로라면 혜정 역할을 오디션을 통해 뽑았다는 말이다. 오디션을 봤다면 작가도 분명히 참여를 했을 텐데.


‘그렇다면 내가 절대로 윤하린을 뽑도록 두지 않았을 테고. 혹시 예지력에 오류가 있는 거 아닌가?’


그때 진범이 슬쩍 눈치를 보며 말했다.


“일단 기본방향은 오디션인데···”

“근데?”

“혹시 몰라서 스케줄 체크해둔 배우는 있어.”


내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물었다.


“혹시··· 윤하린은 아니지?”


진범이 깜짝 놀라 눈을 휘둥그레 떴다.


“너 그거 어떻게 알았어? 내가 얘기한 적이 있나?”


믿고 싶지 않았던 미래가 사실로 굳어지는 순간 나는 확신했다. 메시지 설명처럼 예지력은 정확하게 미래를 보여준다는 걸. 더는 이 인간하고 말도 섞고 싶지 않았다.


“나··· 이 계약 안 할 거야.”

“뭐?”

“네가 연출하는 조건으로는 드라마 제작 안 한다고.”

“허동수!”

“아무튼 <보이지 않는 사랑> 연출은 너한테 못 맡겨.”

“야, 이제 와서 그런 소리하면 어떡해?”

“이제 와서? 내가 뭘 하긴 했어? 난 그저 너한테 대본 모니터링을 부탁했을 뿐이야. 근데 네가 갑자기 드라마 제작 어쩌고 하면서 이 계약서 들이민 거잖아. 어제만 해도 나한테 밤늦게 전화했다고 개념이 있네 없네 하더니 너야말로 무개념 아니냐? 나한테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이런 계약서 가지고 와서 다짜고짜 사인부터 하라고? 혹시 뭐 나한테 숨기는 거 있냐?”


평소라면 절대 하지 못했을 독설이 드라마 대사처럼 술술 쏟아져 나왔다. 이것도 귀기의 힘인가. 진범의 표정이 허옇게 변했다. 당황하고 있는 게 확연히 드러날 정도였다. 자신이 지금까지 알고 있던 우유부단하고 바보 같은 허동수의 모습이 아니었기에.

진범이 다소 풀이 죽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유가 뭐야? 내가 이번에 영화 실패한 것 때문에 그래?”

“아니. 넌 <보이지 않는 사랑>이라는 작품을 어떻게 연출해야 할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어.”


진범이 혀를 차며 발끈했다.


“장난하냐? 내가 <보이지 않는 사랑> 연출을 어떻게 할지 니가 알아? 공모전도 맨날 떨어지는 주제에···


내가 피식 웃자 진범도 아차하는 표정.


“혜정 역할에 윤하린이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어. 윤하린이 혜정을 연기하면 영찬이 아내를 다른 남자와 맺어준다는 컨셉이 이상한 쪽으로 흘러가고 시청자들도 영찬의 결정에 동의하지 못하게 된다고. 그렇게 되면··· 아무리 드라마가 재미있어도 시청자들한테 엄청난 악플을 받게 될 거야.”


진범이 헛웃음을 흘렸다.


“뭐? 시청자 악플? 아직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대본을 가지고 너무 나간 거 아니냐? 너 꼭 미래를 보고 온 사람처럼 말한다?”


마음 같아서는 ‘그래, 미래를 봤다! 니가 얼마나 쓰레기인지도 봤고!’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굳이 미래까지 보지 않아도 알 수가 있지. 넌 대본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 했어. <보이지 않는 사랑>에서 가장 중요한 캐스팅은 영찬도 아니고 이한영도 아냐. 바로 혜정이라고. 넌 그걸 모르잖아.”

“와아. 허동수. 대본 재미있다고 추켜세워졌더니 니가 무슨 대단한 작가라도 된 것 같은 착각이 드는 모양인데··· 혜정이 중요한 캐릭터라고? 지나가는 소가 웃겠다.”

“나중에 <보이지 않는 사랑>이 드라마로 나오면 너도 알 게 될 거야. 지금 니가 뭘 잘못 알고 있는지. 감독으로서 뭘 놓치고 있는지. 아무튼 난 너한테 이 작품 연출 맡기고 싶은 생각 없어.”


진범이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허동수 많이 컸네. 좋아. 나한테 연출을 맡기고 싶지 않으면 그렇게 해. 근데 니가 모르는 사실이 있어. 내가 말은 하지 않았지만 모 제작사와 이 작품으로 드라마 제작하기로 하고 이미 논의 중이었거든? 근데 방금 물 건너 갔어. 넌 일생일대의 좋은 기회를 방금 놓친 거야.”


진범이 신경질적으로 계약서를 챙겨 들고는 호프집을 나갔다. 비로소 오늘 왜 갑작스럽게 진범이 계약서를 들고 날 찾아왔는지 알 것 같았다.


‘하긴 제작사가 있으니 그런 미래의 영상이 나왔겠지. 미래 영상에 나왔던 그 여자가 제작사 관계자 같았는데··· 진범이가 그 여자를 부를 때 이름을 뭐라고 했더라? 아, 그래. 혜린 선배라고 했던 것 같아.’


난 최대한 미래 영상에서 본 기억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여자가 이렇게 얘기했어. 혜정 역할은 시청자에게 진솔한 느낌을 줄 수 있는 이수연 같은 배우를 캐스팅했어야 했다고. 나와 진범 사이에 연출계약만 없었다면 자신도 진범에게 연출 맡기고 싶지 않았다고.’


그 말은 곧 제작사도 감독보다는 대본이 재미있어서 드라마 제작을 결정했다는 얘기다. 그만큼 대본을 잘 봤다는 것이고. 무엇보다 혜정역할에 이수연이 어울렸을 것이라고 말한 부분이 기억에 남았다. 적어도 그 여자는 나하고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얘기니까.


그런 생각을 하자 진범의 말처럼 너무 성급하게 마음의 결정을 내린 건 아닌지 걱정이 됐다.


‘만약 다른 제작사를 찾지 못하면 어떡하지? 진범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내가 잘못된 결정을 바로 잡으면서 제작을 하면 미래가 바뀌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독단적인 진범의 성격을 생각하면 매순간 둘이 얼마나 싸우게 될지 상상이 됐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제대로 된 작품이 나올 리가 없다. 무엇보다 이진범 같은 인간한테 내 소중한 작품을 맡기고 싶지 않았다.


‘그 제작사를 찾아서 직접 접촉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곳이 어딘지 알아야지. 혜린이라는 이름만으로는 알 수가 없고. 가만, 예지력을 한 번만 더 사용해볼까?’


머릿속으로 명령을 떠올렸다


‘<보이지 않는 사랑>의 미래 제작사가 어디인지 알기 위해 예지력을 사용하고 싶어.’


메시지가 떴다


[귀기가 부족합니다.]

‘아, 맞다. 예지력은 한번 사용하는데 귀기가 ‘30’이나 필요하지? 현재 나한테 남아있는 귀기가 ‘20’이니까 ‘10’이 모자라잖아. 지금 당장 밖으로 나가 한 맺힌 영혼을 찾아서···’


아니다. 예지력을 사용하는 건 좀더 신중해야 할 것 같다. 원래 미래라는 걸 궁금해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이걸 알게 되면 저게 궁금하고 저걸 알게 되면 또 다른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기기 마련이다. 자칫하면 대본은 쓰지도 못하고 예지력에 모든 귀기를 사용하다가 끝날 수도 있다.


지금 내가 가장 두려운 건 지금의 행운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능력이 생길 때도 갑자기 생겼으니 사라질 때도 갑자기 사라질 수 있다. 능력이 있는 동안 부지런히 대본을 써 놓는 게 차라리 나은 선택이 아닐까. 좋은 대본이 있다면 분명 기회는 올 것이다.


*


“이 감독 그게 무슨 말이야?”


전화를 받던 드림온 조혜린 실장이 목소리를 높이자 옆에서 지켜보던 이미선 피디가 눈을 반짝이며 귀를 기울였다.


“<보이지 않는 사랑> 작가가 드라마 제작을 원하지 않는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고?”

[아무튼 생각할 시간을 좀 달라고 하네요.]

“생각할 게 뭐 있어? 드라마 제작해주겠다는데? 우린 이미 내부적으로 기획안 올려서 완전 스탠바이 상태란 말야. 그럼 작가 전화번호라도 좀 알려줘. 내가 직접 얘기해볼 게.”

[아··· 그건 좀 곤란하구요.]

“아니 왜 작가 연락처를 안 알려주는데?”

[그냥 제가 조만간 다시 연락드릴게요.]

“이 감독! 야, 이진범!!!”


조혜린이 전화를 끊고는 빽 소리를 질렀다.


“어우씨~ 이진범, 이 미꾸라지 같은 놈!”

“작가 전화번호도 알려줄 수 없대요?”

“그렇대. 내 후배긴 하지만 진짜 알면 알수록 인성 쓰레기야. 내 생각에는 지가 장난치다가 작가하고 관계가 틀어진 것 같아. 자기가 못 먹는 감 다른 사람한테도 못 준다는 심보지.”

"그럼 어떡해요? 지금 본부장님 보고까지 다 드렸는데··· 그 후배 감독님 어떻게 설득 안 될까요?”


조혜린이 고개를 저었다.


“걔랑 얘기해서 될 문제가 아냐. 내가 보기에 걔는 대본에 대한 권한이 아예 없는 것 같아, 지가 연출하려고 나한테 설레발치다가 작가하고 관계가 틀어졌거나...”

“보통 신인 작가들은 감독이 연출해준다고 하면 껌뻑 죽잖아요. 그 과정에서 불공정계약도 많이 생기고. 근데 작가가 거절한 거 보면 강단이 있나 봐요.”

“그러게.”

“아무튼 아쉽네요. 전 최근에 봤던 대본 중에서 제일 재미있게 읽었는데···”


조혜린의 입에서도 낮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번에 기획한 드라마 엎어져서 대타로 진행하면 딱 좋겠다 싶었는데. 참 이수연 배우하고 오늘 전속계약서 쓰기로 한 거 진행 잘 되는지 체크 좀 해줘. 드라마 3팀에서 진행하나?”

“아마 그럴 거예요.”


드림온은 제작사이면서 매니지먼트를 겸하는 기획사이기도 하다. 대형 기획사는 아니지만 실속 있게 꾸준히 작품을 만들어오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를 자체제작하기 때문에 배우 매니지먼트를 진행하는데도 유리한 점이 많고.


이미선 피디가 물었다.


“근데 실장님은 이수연 배우를 왜 그렇게 좋아하세요? 이번 전속계약도 실장님이 적극 밀었다는 소문이 자자하던데. 물론 연기도 나쁘지 않고 마스크도 선해서 저도 호감이긴 한데··· 딱히 임팩트 있는 연기를 본 적은 없어서···”


조혜린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걸렸다.


“이수연 배우 신인 때 같이 작품 한 적이 있어. 그렇게 흥행한 영화가 아니어서 이 피디가 알지 모르겠네. <비 오는 날>이라고. 내가 영화사 차리고 만든 첫 작품이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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