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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호 님의 서재입니다.

퇴마하는 작가님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이상한하루
작품등록일 :
2023.10.23 09:05
최근연재일 :
2024.03.15 19:00
연재수 :
6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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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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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7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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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2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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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작가가 누구야(3)

DUMMY

이미선 피디가 반갑게 말했다.


“<비 오는 날>요? 당연히 알죠. 미장센하고 영화 분위기가 수채화 같아서 제가 애정하는 영화예요. 당연히 실장님이 제작했다는 것도 알고 있고요. 근데 거기 이수연 배우가 나왔어요? 저 그 영화 두 번이나 봤는데 왜 못 봤지?”

“서브 조연이라고 할 정도로 작은 역할이어서 그랬을 거야. 워낙 밋밋한 역할이라 대본 읽을 때 나도 휙 넘어갔거든. 근데 이수연 배우 연기 보고 뒤늦게 그 캐릭터에 애착이 가는 거야.”

“무슨 역할이었는데요?”

“기억할려나? 거기서 카트 타고 다니는 젊은 야쿠르트 아줌마로 나오는데···”


이미선 피디의 미간이 좁아졌다.


“아쿠르트 아줌마···? 혹시 거기서 할아버지가 길가다가 벤츠랑 부딪혔을 때 싸가지 없는 벤츠 차주한테 따지던 그···”

“어, 맞아. 기억하는구나. 그 아줌마가 이수연이야.”


이미선 피디가 입을 반쯤 벌렸다.


“진짜요? 저도 그 장면이 기억에 남는 게 벤츠 운전사한테 당차게 따지는 것도 사이다였지만 쓰러진 할아버지를 챙기는 모습이 너무 힐링인 거예요. 그 아줌마가 할아버지를 걱정하는 눈빛이 마치 날 보듬어주는 것처럼 너무 따뜻해서 기억하고 있었어요. 눈빛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잡는 연기가 절대 쉬운 게 아닌데···”


조혜린 실장이 웃으며 말했다.


“맞아. 그렇게 잊고 있다가 지난 달 방송국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매니저도 없이 혼자 다니더라고. 이전 소속사랑 계약 끝나서 혼자 다닌다는 거야. 그래서 우리 회사로 오라고 적극 추천했지. 아직까지 제대로 배역을 얻지 못해서 꽃을 피우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더라고. 사실 나 <보이지 않는 사랑>을 우리가 제작하게 되면 혜정 역할로 이수연을 추천할 생각이었거든.”


조혜린의 말에 이미선 피디가 손뼉을 짝 쳤다.


“맞아요. 이수연 배우가 혜정역 하면 완전 찰떡일 것 같아요. 선한 눈빛이 관객 입장에서 무조건 잘됐으면 하고 응원하게 만드는 치트기 수준이잖아요.”


*


‘아, 힘들어. 4, 5화는 왜 이렇게 힘들게 썼지?’


1, 2, 3화와 달리 <보이지 않는 사랑> 4화와 5화 대본은 생각보다 힘들게 끝냈다. 영상을 보면서 수정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였다. 작업을 끝내자마자 피로가 폭풍처럼 밀려왔다. 지난 번에도 귀기를 모두 소모했을 때 이런 피로가 밀려왔다.


‘그렇다면 귀기를 모두 사용했다는 얘긴가? 그럴 리가 없는데?’


불길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메시지가 떴다.


[귀기 ‘20’을 사용했습니다. 이제 남은 귀기는 ‘0’입니다.]

‘뭐? 대본 2화 쓰는데 귀기 ‘20’을 모두 썼다고?’


지난 번에는 귀기 ‘20’으로 대본 1, 2, 3화와 시놉시스까지 모두 썼다. 근데 이번엔 대본 2화 쓰는데 귀기 ‘20’을 모두 썼단다. 목숨 걸고 퇴마 해서 귀기 ‘50’을 얻었는데 예지력 한번 사용하는데 귀기 ‘30’ 사용하고 대본 두 편 쓰는데 ‘20’을 쓰다니. 물론 그 예지력이 귀기 ‘30’을 쓰고도 남을 정도로 가치가 있긴 했지만.


‘이거 설마 처음에 귀기 맛만 보게 하고 점점 소모량 늘려서 나중엔 대본 1화 쓰는데 귀기 50 필요하다고 하는 거 아냐? 나중엔 대본은 쓰지도 못하고 퇴마만 하러 다니다가 악귀한테 죽는 신세 될 것 같은데···’


기준이 뭔지 모르지만 대본을 쓸 때 소모되는 귀기의 양이 그때그때 달라지는 것 같다. 일단 시스템을 믿는다는 전제하에 추리를 해보면 이렇다. 내가 컨디션이 나빠 집중을 못하면 똑같은 분량을 쓰더라도 귀기가 더 많이 소모된다.


실제로 이번 4화와 5화를 쓸 때 진범이 말한 드라마 제작사가 어딘지 궁금해서 도무지 집필에 집중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떠오르는 영상도 이전처럼 또렷하지 않고 흐릿해서 몇 번이나 대본을 다시 써야만 했다.


‘이진범 사악한 놈! 지가 연출 못한다고 제작사가 어딘지 알려주지도 않냐? 그런 놈을 지금까지 친구라고···. 아니다. 어차피 이전에도 그 자식은 진정한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았어.’


난 노트북을 덮으며 크게 기지개를 켰다.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만 쓰자. 어차피 귀기도 없고 편의점 알바 갈 시간 됐으니까. 근데 이렇게 피곤해서 알바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


삑~ 삑~ 삑~


“2만 4천원입니다,”


난 일주일에 4일은 편의점 알바를 한다. 옥탑방 월세도 내야 하고. 먹고 살아야 하니까. 나머지 시간에는 귀기를 얻기 위해 쫓아다녀야 하니까 글 쓸 시간이 진짜 얼마 없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편의점이 주택가 후미진 곳에 있어서 손님이 많지 않다는 것. 덕분에 틈틈이 스토리 구상도 하고 써 놓은 대본을 분석할 수도 있다.


난 <보이지 않는 사랑> 대본을 프린트해와서 틈나는 대로 읽고 또 읽었다. 프린트한 대본은 벌써 종이가 너덜거렸다. 1화부터 3화까지 대본을 읽은 후에는 오늘 쓴 4화와 5화 프린트한 대본을 읽었다.


화면으로 볼 때와 종이로 프린트해서 읽을 때 느낌이 전혀 다르다. 시스템이 대본을 써주는 건 아니다.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게 해주지만 일단 내가 대본을 먼저 써야만 시스템이 영상으로 보여준다. 난 그 영상을 보고 좀 더 재미있게 대본을 반복해서 수정할 뿐이다. 결국 내 실력이 좋아져야 대본도 더 좋아질 수 있다.


좋은 대본은 아무리 여러 번 읽어도 지루하지 않다. 오히려 읽으면 읽을수록 새로운 맛이 난다. 좀 더 맛깔스러운 대사가 생각나면 볼펜으로 체크해 놓고 집에 가서 수정한다.


딸랑~


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 나는 얼른 대본을 옆으로 밀었다.


“어서 오세...”


난 편의점에 들어온 여자 손님을 보고 숨을 삼켰다.


‘저 여자··· 이게 꿈은 아니겠지?’


여자 손님은 곧장 도시락 코너로 이동했다. 뭘 먹을지 결정하기 어려운 듯 코너에서 한참을 망설인다. 하필이면 별로 인기가 없는 도시락을 집어 드는 걸 보고 내가 안타까운 마음에··· 아니 잘 된 건가.


얼른 그녀에게 달려갔다.


“그 도시락도 괜찮은데 이게 손님들 반응이 훨씬 좋더라고요. 저도 먹어봤는데 이 도시락 반찬이 더 맛있어요. 그리고 지금 프로모션 기간이라 할인도 30프로나 하고.”

“정말요? 그럼 이걸로 해야겠네요.”


여자 손님이 배시시 웃으며 내가 권해준 도시락을 들고 다른 물건들을 살폈다. 다시 한번 재빨리 여자 손님의 얼굴을 확인했다.


‘정녕 꿈은 아니겠지?’


이수연, 그녀다.

캡모자를 눌러썼지만 내가 이수연을 몰라볼 리 없다.


이목구비가 또렷한 건 아니지만 보고 있으면 저절로 미소가 나오게 만드는 부담스럽지 않은 미인형의 얼굴. 투명한 눈빛이 진솔한 느낌을 준다. 아직은 알아보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 물건을 고르는 모습이 별다른 경계심 없이 편해 보인다.

난 카운터로 돌아가며 맹렬히 고민했다.


‘팬이라고 하고 말을 걸어볼까? 아직은 사람들이 알아볼 정도로 인지도가 있는 건 아니니까 알아 봐주면 오히려 좋아하지 않을까? 아니야. 추리닝에 슬리퍼 차림인데 알아보면 부담스러워 할 것 같기도. 그것도 동네에서. 차림새를 보면 집이 근처인 것 같은데. 왜 지금까지 못 봤을까? 새로 이사 왔나? 그럼 대박인데.’


난 이수연이 불편하지 않도록 가능한 그쪽으로 시선을 주지 않았다. 이수연이 카운터에 고른 물건들을 내려놓았다. 주로 초콜릿과 과자류, 소세지도 있었다. 딱 봐도 자취생들이 주로 고르는 품목들.


삑~ 삑~ 삑~


바코드를 찍을 때마다 물건들이 하나씩 줄어드는 게 안타까울 정도다. 마지막 스낵을 찍고 가격을 말하려는데···


“이거 혹시 그쪽 거예요?”

“네?”


고개를 옆으로 돌려보니 이수연의 손에 내 너덜거리는 대본이 들려 있었다.


“아네.”


이수연이 문득 깨달은 듯 얼른 대본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죄송해요. 대본이 보이길래 제가 허락도 받지 않고 습관처럼...”


나는 그런 이수연을 보고 빙긋 웃었다. 그녀가 배우 이수연이라는 걸 방금 확인사살 했으니까.


“괜찮아요. 보고 싶으면 더 보셔도 돼요.”

“정말요?”


이수연이 조심스럽게 대본을 집어 들었다. 맑은 동공이 빠르게 움직이며 대본을 훑었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대본을 넘겼다. 그런 이수연을 지켜보는 내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재밌어야 할 텐데.’


잠깐 보고 내려놓을 줄 알았는데 이수연은 한참을 서서 대본을 계속 넘기며 정신없이 읽었다. 대본을 빠르게 넘기던 이수연이 처음으로 돌아와 표지를 봤다. 표지엔 <보이지 않는 사랑>이란 제목과 작가인 내 이름이 프린트되어 있다. 내 이름을 보는 이수연의 눈빛에 다시 두근두근.


“보이지 않는 사랑? 이거 어디서 방송한 드라마예요? 처음 들어보는 제목인데···”

“그거 아직 방송되지 않은 대본인데요?”


이수연이 깜짝 놀라자 그렇지 않아도 큰 동공이 더욱 커졌다.


“아, 그래요?”


이수연이 다시 뒤적거리며 대본을 읽었다. 아직 방영도 되지 않은 드라마 대본은 외부로 유출되지 않는다.


‘혹시 <보이지 않는 사랑>이 방송예정인 대본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나중에 작가 지먕생인 내가 썼다고 하면 실망할 것 같은데···’


대본을 훑어보던 이수연이 물었다.


“이 대본 어떻게 구하신 거예요? 혹시··· 배우세요?”

“아, 아뇨. 배우는 아니고···”

“그럼요?”

“저는··· 작갑니다.”

“네?”

“그 대본 쓴 작가요. 앞에 이름 있잖아요. 허동수.”


그러면서 난 내 유니폼에 달려있는 명찰을 가리켰다.


“아···”


실망인지 감탄인지 감을 잡기 힘든 탄성. 나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물었다.


“배우 이수연님 맞으시죠?”


이수연의 동공이 한 번 더 커졌다. 대체 어디까지 동공이 커질 수 있는지 궁금할 지경.


“처음부터 제가 누군지 아셨어요?”

“그럼요. 완전 팬인데. 예전에 <비 오는 날> 영화에서 야쿠르트 아줌마 하실 때부터 쭉이요. 그때 연기가 너무 좋아서···”


이수연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와~ 그럼 진짜 찐팬이시네요. 그 연기 기억하시는 분 정말 드문데. 잠깐 스쳐가는 역할이라서.”

“비록 비중은 짧았지만 제가 볼 때는 그 배역이 이수연 배우님의 매력을 가장 잘 드러냈다고 생각해요. 이후로는 작가나 감독들이 수연님의 매력을 잘 살리질 못해서···”


무심코 말을 하다가 얼른 사과했다.


“아, 죄송해요. 그렇다고 수연님이 연기를 잘 못하셨다는 게 아니라···”


이수연이 보기와 다르게 털털하게 웃었다.


“아니에요. 사실인 걸요. 제가 얼마 전에 소속사하고 계약이 끝났거든요. 그래서 연기를 그만둘까 진지하게 고민···”

“아, 안 돼요!”


내가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자 이수연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죄, 죄송합니다. 실은 제가 이 작품 쓰면서 만약 드라마로 제작된다면 이수연 배우님을 꼭 캐스팅하고 싶다고 생각했거든요. 아니, 배역 중 하나는 처음부터 이수연 배우님을 염두에 두고 집필했습니다.”

“정말이요? 어떤··· 역할인데요?”

“읽어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거기 남주의 아내로 나오는···”

“혜정이요?”

“어? 배역 이름을 벌써 외우셨어요?”


이수연이 입틀막을 하고는 말했다.


“저 사실 이 대본 너무 재미있어서 계속 읽은 거예요. 그리고 혜정이 나올 때마다 너무 몰입이 돼서 내가 하면 정말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혼자 계속 김칫국 마시고 있었거든요.”

“김칫국이라니요? 진짜 이수연 배우님을 염두에 두고 쓴 건데···.”

“이거 실화예요? 제가 인맥이 없어서 늘 서러웠는데 드디어 든든한 인맥이 생겼네요. 배우 입장에서 재능 있는 작가님보다 든든한 인맥이 어디 있겠어요?”

“아니 그게··· 아직은 아무것도 아닌 대본인데···”

“아직은 아니지만 곧 드라마로 나올 것 같은데요? 대본이 너무 좋아요. 이런 대본이 드라마로 만들어지지 않으면··· 말도 안 되죠.”


이수연이 그 선한 눈빛으로 날 보고 웃었다. 나는 그 순간 편의점에 다른 손님이 오지 않아 이수연과 이런 시간을 나눌 수 있게 해준 신께 감사했다. 아니, 그보다 이수연이 이 편의점에 들리도록 해준 걸 먼저 감사해야 하나.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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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여배우한테 붙은 악귀(2) +5 24.02.17 2,667 74 12쪽
36 여배우한테 붙은 악귀(1) +2 24.02.16 2,702 73 12쪽
35 박주희의 전화(2) 24.02.15 2,744 70 13쪽
34 박주희의 전화(1) +4 24.02.14 2,813 74 12쪽
33 배우의 발견(3) +1 24.02.13 2,873 71 13쪽
32 배우의 발견(2) 24.02.12 2,882 69 12쪽
31 배우의 발견(1) +2 24.02.11 2,931 73 12쪽
30 걸그룹을 만나다(2) +2 24.02.10 2,912 79 13쪽
29 걸그룹을 만나다(1) +5 24.02.09 2,926 71 13쪽
28 걸그룹 멤버의 영혼(3) +3 24.02.08 2,970 73 12쪽
27 걸그룹 멤버의 영혼(2) +2 24.02.07 3,016 74 12쪽
26 걸그룹 멤버의 영혼(1) +6 24.02.06 3,074 75 13쪽
25 한류배우 캐스팅(3) +2 24.02.05 3,106 83 13쪽
24 한류배우 캐스팅(2) +3 24.02.05 3,063 74 12쪽
23 한류배우 캐스팅(1) +2 24.02.04 3,129 71 13쪽
22 작가가 치트키(3) +4 24.02.03 3,149 75 13쪽
21 작가가 치트키(2) +1 24.02.02 3,209 79 13쪽
20 작가가 치트키(1) +3 24.02.01 3,244 72 13쪽
19 한류배우가 은둔한 이유(4) +4 24.01.31 3,286 84 12쪽
18 한류배우가 은둔한 이유(3) +5 24.01.30 3,244 75 13쪽
17 한류배우가 은둔한 이유(2) +4 24.01.29 3,252 76 13쪽
16 한류배우가 은둔한 이유(1) +5 24.01.28 3,371 75 12쪽
15 계약하죠(3) +4 24.01.27 3,388 76 12쪽
14 계약하죠(2) +2 24.01.26 3,445 80 13쪽
13 계약하죠(1) +10 24.01.25 3,460 82 13쪽
12 몽달귀 +3 24.01.24 3,432 76 13쪽
11 작가가 누구야(4) +1 24.01.23 3,482 78 13쪽
» 작가가 누구야(3) +2 24.01.22 3,486 74 12쪽
9 작가가 누구야(2) +4 24.01.21 3,529 7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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