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홍차임의 글 공장입니다.

싱글벙글 고시원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드라마

완결

홍차임
작품등록일 :
2015.10.23 23:35
최근연재일 :
2016.04.02 21:40
연재수 :
38 회
조회수 :
69,252
추천수 :
969
글자수 :
181,952

작성
16.02.13 20:37
조회
791
추천
17
글자
12쪽

20화. 누런 개, 연이.

DUMMY

“오늘 사모가 아주 노발대발이었어.”


슬리퍼 아주머니는 분홍이 혼자 밥을 먹고 있는 식당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한 문장을 내지른다. 분홍은 아주머니가 씨씨티비로 자신을 보고 올라왔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주머니는 자신의 고용주를 ‘사모님’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사모’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분홍은 ‘사모님’은 그렇다 쳐도, 사모라는 표현은 들을 때마다 어색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 남자가 사모님한테 아주 그냥 싸가지가 없게 말을 했더구만.”


분홍이 봤을 때 ‘사모님’과 꽁지머리 남자는 그저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했을 뿐이었다. 캐시 뮤직 문 여는 시간에 대해서 ‘사모님’이 낮은 소리로 이야기를 하였지만, 둘 사이에 언성이 높아지거나 하지 않았기에 ‘사모님’이 분노하였다는 아주머니의 말에 분홍은 의아했다. 남자는 그날 심지어 사모님의 미모를 칭찬하지 않았던가!


“방 천장에서 석면 가루가 떨어진다면서 사모님한테 천장 공사를 해달라고 했대. 지 주제를 알아야지. 나참, 지까짓 게 뭐라고..."


캐시 뮤직의 방들은 방음재로 표면이 처리되어 있었기 때문에 분홍 역시 석면은 아니어도 호흡기에 안 좋은 먼지가 많이 떨어질 거라고 생각은 했었다.


"게다가 할머니 욕도 하고, 동생 욕도 하고, 아주 난리였다네.”

“할머니 욕도요?”

“어! 그래도 내 욕을 제일 많이 했겠지. 내가 안 봐도 비디오지! 내가 보통 사람이 아니거든. 산전수전 공중전인데! 척 보면 딱이야!”


아주머니는 남자를 욕했고, 흥분해 있었고, 묘한 기쁨을 풍기고 있었다.


“여기 사람들은 왜 다들 나한테 와 가지고서는 한 마디씩 하느냐고, 자기가 머리가 아파 못 살겠다고 했대. 내 고 인간 고롷게 크-은 실수를 하고말줄 알았지. 할머니는 왜 와서 한 마디 하고, 동생은 또 왜 와서 한 마디를 하느냐고 했대. 사모가 그렇게 화를 내는 사람이 아닌데, 어떻게 그렇게 싸가지가 없냐면서 오늘 아주 소리소리 지르더라고.”


분홍은 아주머니가 만든 미역국에다가 남은 밥을 말아먹고 있다. 평소 미역국을 먹을 기회가 별로 없는 분홍은 납짝한 식판 대신 싱크대에 엎어져 있는 그릇 하나에 미역국을 그득 담아 먹고 있었다.


아주머니의 이야기는 분명히 분홍이가 본 것과는 다른 상황이었다. 아니면, ‘사모님’이 남자 앞에서만 조용하게, 사무적으로, 말을 하고, 남자 없는 데서는 분노를 폭발한 것이리라.


“사모님이 그래도 그치가 해달라는 걸 많이 해줬거든. 지하라 공기가 탁하다고 해서 공기... 그게 뭐지, 어! 공기 청정기인가 뭔가 그것도 사모가 새 걸루다가 해주고, 또 춥다고 해서 온풍기도 집에서 안 쓰는 거 가져다 주고 그랬대니깐. 나는 허구헌날 앉아 있어도 추운지 모르겠뜨만. 그럼 고맙습니다, 허고 지 헐 일이나 잘할 것이지, 뭐, 천장이 어쩌고 저쩌고... 허이고~ 어이가 없어서. 내가 장담을 한다. 저 치 오래 못 가, 암, 오래 못 가지.”


아주머니는 ‘사모님도 이제 알았다’ 라는 말을 연신 하였다. 무엇을 알았다는 것일까? 아마도 사모님이 꽁지머리 남자의 본성, 또는 꽁지머리 남자의 진실을 알게 되었다,를 의미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분홍은 꽁지머리 남자의 본성이 무엇인지 잘 알 수가 없었다.


“그럼 사모님이 이제 그 사람을 나가라고 하는 거예요?”

“아니. 한 달을 더 지켜보겠대.”

“네...”


아주머니가 사모님이 분노한 것에 대해서 기쁨을 감추지 못하듯이, 분홍은, 자꾸 바뀌는 캐시 뮤직의 상황에 혼란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아주머니의 말에 따르면, 슬리퍼 아주머니뿐만 아니라 뽀글머리 할머니도 꽁지머리 남자에게 잔소리를 했고, 사모님의 동생도 그에게 듣기 싫은 소리를 한 것이다. 다들 자기한테 와서 한 마디씩 하는 바람에 스트레스를 받은 남자가 사모님에게 애로사항을 털어놓은 모양이다.


사람들은 때로는 자신을 욕하는 것보다 가족을 욕하는 것에 더 크게 화를 낸다.


"내가 진짜 말을 안 할라구 했는데, 도저히 안 되겠어서, 그치가 전기 내린 거 사모님한테 말했어. 내가 뒤에서 누구 이야기하는 사람이 아닌데, 이건 건물 전체 전기가 나가니깐 어떻게 말을 안 해?"


아주머니는 눈동자로 분홍에게 동의를 구했다.


"그렇죠. 사람이 많이 사는 데니까... 안전이 중요하죠..."

"그럼!"


분홍의 동의에 아주머니는 오른손을 들어 강하게 안쪽으로 잡아당기며 대답했다. 분홍은 여전히 지하 전기판과 건물 전체 전기는 상관이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에 안전의 문제에만 동의를 하였다.


"내가 절대로 뒤에서 말 전하고 안 그런다구."


아주머니는 말을 반복하며 스스로에게도 확답을 구했다.


남자에게이제, 한 달의 시간, 한 달의 기회가 주어졌다.


사모님은 남자에게 캐시 뮤직 문을 일찍 열라고, 매일 정해진 시간에 열라고 했지만, 남자는 그 뒤로도 오후 서너 시에나 나왔기에, 오전에 도착한 날 분홍은 아주머니를 불러내려 문을 열어야 했다.


학생을 보내고 난 분홍은 하이든 방에 남아서 노래 연습을 하고 있었다. 보통은 레슨을 하고나면 진이 모두 빠져서 집에 바로 가고 싶은데, 오늘은 계속 노래를 부르고 싶다.


"너무나 니가 미워 고운 말투 여린 눈빛

나에겐 없는 너의 모든 것 니가 미워


지금 그에게 니가 없다면

그의 옆에서 환희 웃을 수 있을 텐데

떠나줘 그의 곁에서"


오늘따라 목에서 소리도 잘 빠지고 감정 몰입도 잘 되었다. 거칠게 내지르는 부분에서 음이 불안했는데, 캐시 뮤직에 자릴 잡고 연습을 해서 그런지 안정적으로 질러졌다. 락 발라드 곡에 필요한 힘이 자신에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계속 부르다보니, 일정정도 어느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그때 남자가 분홍이 연습하고 있는 방의 문을 노크하였다. 분홍은 처음엔 반주 음악 소리 때문에 못 들었지만, 등 뒤에서 이상한 기척이 느껴져 돌아보았다. 남자와의 관계가 처음에 비해 편해진 것도 요즘 노래가 잘 되는 원인 가운데 하나인 것 같았다.


큰 키의 꽁지머리 남자는 굉장히 미안하다는듯이 두 손을 부비며 서 있었다.


“......?”

“저...... 연 선생님. 죄송한데, 제가 지금 가봐야 해서......”


분홍은 오늘 같이 노래에 신이 난 날 연습이 끊기는 것이 정말 못마땅하고 안타까웠다. 스마트폰 화면을 켜고 시간을 확인하니 시간은 열시 반을 향해 가고 그렇게 늦은 시간도 아니었다.


“사장님, 제가 노래좀 더 하다가, 열쇠를 소화기 밑에다 숨기고 가면 안 될까요?”


남자는 놀라는 눈치였다. 슬리퍼 아주머니가 연습실을 관리하던 때 분홍이 늦게까지 연습하는 날 아주머니가 두어 번 그렇게 열쇠를 넘기고 간 적이 있었다.


남자의 얼굴에는 희비가 모두 드러났다.


아주머니 이야기를 들으니 일그러졌고, 분홍이 관리 책임을 나눠 진다니 반갑기도 했다. 그런데 또 열쇠를 넘긴 것이 누구 귀에 들어가면 사모님한테 군 소리를 들을 수도 있어, 고개를 살짝 옆으로 눕힌 채로 몇 초간 생각을 한다.


"그러면 연 선생님, 뒷정리좀 잘 부탁합니다. 아휴. 정말 여기 여자들한테 말 듣는 거 진절머리가 나거든요."


남자는 초조한 얼굴로 분홍에게 억지 미소를 지어보였다. 분홍은 혼자 남아 노래 연습을 더 했다. 럼블피쉬의 노래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여자의 마음을 잘 나타냈다. 자기보다 예쁘고 더 얌전한 여자를 부러워하고 질투하는 한 여자의 마음을 담았다. 분홍은 그 감정에 깊숙이 빠져들었다.


혼자 남아 캐시 뮤직의 뒷정리를 하는 것은 조금 무서웠고 얼른 복도와 입구 등을 끄고 도망치듯 나왔다. 다행히 비상등이 있어서 사물의 형체정도는 보였으나 어떤 면에서는 연두색 비상등이 색다른 공포감을 주기도 했다.


꽁지머리 남자는 그 날 이후로 연습실에 나오는 시간이 점점더 늦어졌다. 분홍은 사모님의 계획이 단 한 달의 시간만 주고 아웃시키는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모종의 변동을 예상하였다.


이 상황이 분홍에게 좋은 점도 있었다. 검은색 소파에서 쉴 수 있는 시간이 다시 생겼다는 것이다. 분홍은 남자가 오기 전엔 검은색 소파에서 남자도 없고 아주머니도 없는 극도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그럼 그때 거기 돈까스 집에서 만나^^]


삼국대 앞의 가격도 저렴하고 깔끔한 돈까스 집을 발견한 송은 그 뒤로 거의 매번 거기서 만나자고 한다. 송을 만나 밥을 먹으려면 두 시간 이상 남았는데, 노래를 많이 부른 분홍은 배가 고팠다. 그렇다고 고시원 밥을 먼저 먹으면 이따 저녁밥이 맛이 없을 테고 송에게도 미안해진다. 편의점으로 향했다. 부자 동네에는 편의점도 흔하지 않았다. 지하철역 쪽으로 두 블록 이상 걸어가면 편의점이 하나 있었다. 크림치즈가 들어간 빵이 튤립에서 신제품으로 나왔다. 분홍은 유통기한을 확인하고 하나 집어든다. 슈퍼에서 파는 빵도 유통기한만 잘 확인하면, 때로는 제과점 빵 못지않게 맛이 있다. 특히 분홍은 튤립에서 나온 빵들을 좋아한다. 편의점을 나서려던 그녀는 다시 들어가서 빵 하나를 더 산다. 아주머니에게 주기 위해서다.


아주머니는 마침 건물 입구에서 고시원생들을 욕하면서 신발을 정리하고 있다.


"어~~~ 진짜. 도대체 한 사람이 신발을 몇 개나 갖다놓구 신는 거야? 신발장 다 있는데, 거기다 간수허고 정 필요할 때는 딱 한 개정도 더 갖다 놓고 써야지. 아주 신발이 넘쳐요."


분홍이 들어오는 걸 보고 아주머니의 목소리는 더 커진다. 빵을 건내는 분홍에게 아주머니가 묻는다.


“여자 친구 데려온 거지?”

“... 누구요? 그 남자가요?”

“그럼. 그 남자지! 지하에 누가 또 있어?”


아주머니는 소리를 지른다. 분홍은 깜짝 놀란다. 아주머니는 건네받은 빵에 관심을 보인다.


“어머, 이 빵 맛있는 거네? 연이 줘야지.”


분홍은 버럭 소리지르는 아주머니 때문에 기분이 조금 상했지만, 누런 개와 조금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아주머니를 따라 건물 1층 사무실에 들어간다. 난방을 세게 했는지 바닥은 뜨겁고 공기는 건조하다.


'지하는 추운데 여기는 이렇게 따듯하구나...... 하긴 여긴 잠도 자고 생활하는 데니까.'


누런 개 연이가 익숙한 냄새를 풍기는 분홍을 작은 점프와 앞발 들어올리기로 환영한다.


아주머니는 크림치즈 빵에서 크림치즈 부분은 자신이 먹고 맨빵 부분을 연이에게 준다. 분홍은 “연이 줄 줄 알았으면 빵을 한 개 더 사올걸 그랬어요.”라고 말한다.


“아냐. 이 년 너무 많이 쳐먹어서 살좀 빼야돼. 얼른 쳐먹어 이 년아. 그거 먹으면 더 줄 테니깐. 이 년, 지꺼 안 먹고 여기만 쳐다봐 이년."


누런 개 연이의 원래 이름은 ‘개년’이다. 아주머니 말이 개년아, 개년아, 부르다가, 이름이 길어서 앞의 한 글자를 빼고 연아, 연아, 라고 불렀고, 그래서 이름이 연이가 되었단다. 사람들은 보통 애완 동물의 이름을 지을 때 ‘해피’, ‘사랑이’, ‘메리’, ‘행복이’ 등, 인간사에서 찾기 어려운 것들을 가져다 부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누런 개 연이도 인간사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것을 자신의 이름으로 갖게 되었다.


‘그나저나 연습실에 이번엔 여자가 왔다니, 또 어떤 사람일까?'


분홍은 속으로 생각하며, 이름부터 가여운 연이를 품에 꼬옥 안는다.


-싱글벙글 고시원, 다음 화로 이어집니다-

강아지아리.jpg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싱글벙글 고시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9 9화. 감자조림. 15.11.29 758 20 12쪽
8 8화. 반값 요금. +1 15.11.08 794 24 13쪽
7 7화. 첫 유혹. +1 15.11.07 1,104 23 7쪽
6 6화. 캐시 뮤직. 15.11.05 1,172 25 13쪽
5 5화. 나를 훔쳐보는 너의 둥근 눈. 15.10.27 1,302 26 9쪽
4 4화. 딸랑딸랑 자판기 커피. +1 15.10.25 1,503 29 12쪽
3 3화. 보라색 쓰레빠. +2 15.10.25 1,482 30 8쪽
2 2화. 미숙 씨의 열정. +2 15.10.24 2,458 32 12쪽
1 1화. 7만원의 경건함. +6 15.10.24 5,377 48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