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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임의 글 공장입니다.

싱글벙글 고시원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드라마

완결

홍차임
작품등록일 :
2015.10.23 23:35
최근연재일 :
2016.04.02 21:40
연재수 :
38 회
조회수 :
69,233
추천수 :
969
글자수 :
181,952

작성
16.02.14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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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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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21화. 강남 남자.

DUMMY

분홍은 서서 노래를 하다가 악보 파일을 확 덮어버린다. 도저히 연습에 집중이 되지 않는다. 하이든 방 밖으로 나온 그녀는 캐시 뮤직의 검은색 소파에 벌러덩 눕는다. 지난 주말에 아버지 병원에서 만난 엄마와 나눴던 이야기가 머릿속을 맴돌아 연습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엄마, 여기 왜 이래?”


분홍은 엄마의 안쪽 팔목에 멍든 자국을 발견하고 묻는다.


“출근 전에 급하게 아빠 병원엘 가다가 넘어졌지 뭐니.”


분홍의 어머니는 바지단을 들어올려 무릎에 멍든 자국도 분홍에게 보여준다.


“...... 왜 그렇게 급하게 갔는데?”

“느이 아빠가 요즘에 입맛이 통 없다고 하고 밥을 안 먹는댄다... 환자는 살 빠지면 안 돼. 병원밥이 맛이 없나해서 내가 찹쌀 넣고 팥 넣고 아빠 좋아하는 팥밥을 해서 가져다 드리거든. 간병인 말이 팥밥은 잘 드신대.”

“아휴... 병원에 들를 거면 퇴근할 때 들리지, 뭘 아침부터 그렇게 바쁘게 가다가 넘어져?”

“얘. 그게 되냐? 밥을 퇴근할 때까지 하루종일 들고다닐 것도 아니고.”


분홍은 그 애길 듣고 며칠째 마음이 아프고 화가 난다. 엄마가 다친 걸 보고 속이 상한 것은 물론이고 다른 가족들은 돈 벌랴 병원에 문병 다니랴 바쁜데, 가족들 마음을 배려하지 못하는 아버지에게 화가 난다. 엄마의 멍든 무릎을 보고 느낀 감정의 불똥이 밥상 투정을 하는 아버지에게로 튀어가는 걸 느낀다.


분홍은 아버지의 교통 사고 이후로 몸 고생은 물론이거니와 정신적 고통도 겪었다. 버스를 타고 가면 버스가 너무 빨리 달린다는 생각밖에는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다. 마치 버스가 무언가에 충돌하기 위해 달려가고 있는 것처럼 분홍은 몸을 의자 등받이쪽으로 납짝하게 붙이고 시선은 앞을 피하면서 끊임없이 조마조마해 했다. 지금 달리는 버스가 보행자를 치고말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멀미를 느끼거나 식은땀이 나기도 했다.


그런 두려움은 '엄마나 언니가 차에 치이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으로 쉽사리 확장되었다. 두려움이 옮겨가는 속도는 불이 옮겨붙는 속도보다도 빨랐다. 자신이 미친 건가 싶어 송에게도 잘 털어놓지 않았던 심리상태이다. 이제 좀 시간이 흘러 마음이 안정이 되었다 생각했는데, 엄마가 넘어져 다치신 이후로 분홍은 다시 불안증이 도졌다. 연습실에 와도 노래가 잘 되지 않는다. 불길한 상상을 끊어내기가 어려웠다. 문자 메시지 수신음이라도 울리면, '혹시...?' 하면서 두려움이 밀려왔다.


요즘 꽁지머리 남자는 밤늦게 나타나서 현금 매상만 챙기는 것 같다. 사모님과의 조건이란 게 이 손님 없는 가게에서 사백만 원이 넘으면 제 몫이 생긴다니, 어떻게 장사에 의욕을 가질 수 있는가, 라는 생각에, 연습실에 안 오는 남자가 이해되기도 한다.


남자도 오지 않고 아주머니도 오지 않고, 이제 바야흐로 캐시뮤직은 진정한 셀프 연습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부모님 때문에 머리가 아픈 분홍이었지만, 연습실의 이런 사정만큼은 분홍도 싫지는 않았다. 아무도 없으니 분홍의 행동은 자유로웠다.


"아휴. 힘들어..."


혼잣말을 한다.


그때 계단을 내려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분홍은 슬리퍼 아주머니가 씨씨티비로 분홍을 보고 내려오는 건가 생각하며 '아. 역시, 또 나타나는구나.'라고 생각한다. 아주머니가 아니었다. 연습실 입구로 어떤 머리가 긴 여자가 나타난다. 왼쪽 눈썹 아래로 가로지르는 피어싱을 하고 보통의 긴 머리보다 훨씬 긴 머리를 한 여자이다. 손님이겠거니, 생각하고, 분홍은 최소한의 예의만 갖추어 누웠던 소파에서 억지로 일어나 앉는다. 분홍은 자신이 이곳에 처음 온 날, 부스스 일어났던 뽀글머리 할머니처럼 행동하는 것 같아 스스로 우스워졌다.


피어싱 여자는 미소를 띄우면서 분홍을 바라본다. 분홍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두리번거린다.


"아, 그냥 들어가서 쓰시고 나오면서 시간 적으시면 돼요."


여자를 빨리 들여보내기 위해 분홍은 설명을 해준다.

여자는 계속 미소를 띄우며 분홍을 쳐다본다.


‘누구한테 웃는 거지? 나? 나밖에 없지... 왜 나한테...?’


“제가 여기 관리해요.”


꽤 부드러운 음성이다.


“아, 정말요? 안녕하세요.”


분홍은 목소리를 가다듬어 인사를 한다. 아주머니가 말한 꽁지머리 남자의 여자 친구가 이여자인가 싶어진다. 여자는 미소를 지으며 분홍을 계속 바라본다. 분홍은 침묵을 무찌르기 위해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아무거나 질문한다.


“하루종일 계시는 거예요?”


“아니요. 저는 여섯 시부터 있어요.”


여자는 물건을 좀 사왔는지 비닐 봉지를 하나 들고 있다. 자신의 주황색 가방을 프론트에 올려 놓더니 비닐 봉지 안에서 수세미와 고무장갑을 꺼내 미니 자판기 위에 올려 놓는다. 그러더니 저녁 여섯 시가 되도록 분홍 외에는 손님이 없는 이 연습실 바닥을 빗자루로 청소하기 시작한다. 캐시 뮤직은 손님이 별로 없는 만큼 바닥에 먼지도 별로 없다. 그런 바닥을 빗자루질 하는 여자의 모습이 조금 처연해 보인다.


피어싱 여자는 프론트에 앉는다. 그리고 벽에다 사진 한 장을 비닐 테이프로 붙인다. 분홍은 이제까지 캐시 뮤직을 반 년 가까이 이용하면서 프론트에 사람이 앉는 것을 처음 본다. 아주머니는 검은색 소파에 앉아 있었고, 할머니는 검은색 소파에 누워계셨고, 남자는 모차르트 방에 있었다. ‘사모님’은 남의 집을 보러 온 사람처럼 서성대며 기웃거렸고.


피어싱 여자가 그렇게 프론트에 앉으니, 이 캐시 뮤직이란 공간도 괜찮아 보였다. 역시 사람 한 명이 그 공간의 특성을 좌우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찍은 거예요.”


피어싱 여자가 벽에 붙인 사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분홍이 다가가 사진을 보니, 덩치가 큰 여성과 아주 마른 남자가 키스를 하는 사진이었다.


"여자는 원래 굉장이 날씬하고 예뻤는데 병 때문에 이렇게 살이 찐 거예요. 전 남편과 아이도 있고요. 그리고 남자는 나이가 어리고 총각이고요."


한 눈에도 외국에서 찍은 외국인들의 사진이었다. 긴 머리와 피어싱, 외국에서 찍은 사진 등을 종합해 그녀는 자유로운 인생을 사는 것 같다고 느껴졌다. 그렇게 생각하니 수세미를 사오고 바닥을 청소하는 그 모습은, 뭔가 그녀의 본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었다.


캐시 뮤직에 드나드는 손님의 숫자를 보면, 어쩌면 남자는 그냥 캐시 뮤직을 포기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 때문인지 그는 피어싱 여자를 보내서라도 캐시 뮤직을 지키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녀도 오자마자 빗자루질을 하는 걸 봐서는 무료 봉사는 아닐 것 같았다. 은색 모자를 쓴 남자도 며칠만에 사라졌는데, 피어싱을 한 여자도 그러지 않을까, 생각을 하니 분홍은 아쉬운 마음이 벌써부터 들었다. 캐시 뮤직에 와서 관계자와 편한 대화를 해보는 것이 처음 같았다.


지하라는 공간은 대체로 채광이 안 되고 습기가 많은 대신에 비교적 넓게 쓸 수 있는 공간이다. 그것이 지하의 장점이다. 분홍이 이사를 다닐 때도 지하나 반지하는 같은 가격에 방이 넓은 경우가 많았다. 캐시 뮤직은 꽤나 넓은 공간이다. 방도 여섯 개다.


분홍은 퇴근해서 온 송에게 오늘 새로운 여자가 나타났는데 아주머니 말이 꽁지머리 남자의 여자친구인 것 같다고 이야기를 전한다.


두 사람은 돈까스가 질렸다면서 즉석 떡볶이 집으로 향한다. 삼국대 쪽으로 길을 건너 골목을 찾아 들어간다.


"내가 캐시 뮤직을 운영하면 난 저렇게는 안 해. 방 두 개 정도는 터서 큰 홀로 쓰고 나머지만 지금 싸이즈의 방으로 하면 훨씬 손님이 많을 거야."


[물은 셀프]라고 붙여놓은 걸 확인하고 물 두 잔을 떠오더니, 한 잔을 분홍에게 건네면서 송이 말한다.


"연습실 장사를 하면? 송, 나는 절대로 장사는 안 할 거야."


대학 학비를 벌기 위해 스무 살때부터 커피숍 서빙, 복사 아르바이트, 과외, 문서입력 알바, 안 해 본 것이 없는 분홍은 잘 알고 있다. 늘 즐겨가던 곳이라 할지라도 그곳의 종업원인 것과 손님인 것은 하늘과 땅 차이라는 걸. 까페란 쉬기도 하고 수다도 떨 수 있는 곳이지만, 만일 그곳의 손님이 아닌 서빙 알바가 되면, 눈에 띄는 모든 것이 일꺼리가 된다. 누군가가 테이블에 버리고 간 껌종이, 바닥에 흘리는 음료수, 닦아도 닦아도 다시 묻는 화장실 바닥 진흙, 비어버린 냅킨 통, 그런 것들 모두가 다 자신의 일이 된다. 심지어 들으면서 감상에 빠졌던 음악마저도 갑자기 끊기면 바로 달려가 다시 틀어야 하는 '신경쓰이는 것'이 된다.


가게의 문을 열고 닫는다는 것은 역시 단순히 어떤 것의 문을 한 번 열고 한 번 닫는 것이 아니다. 열면서는 입간판 따위를 손님들에게 잘 보이는 위치로 옮겨놔야 하고, 꺼놨던 전기제품도 다시 전원을 켜야 한다. 문을 닫는 것도 그저 끼익- 철컹-하고 닫는 것이 아니다. 그날 매상을 맞춰서 적어야 한다. 그리고 그 돈 가운데 혹시 비는 금액은 없나, 어떻게 분실하지 않고 주인에게 전달해야 하나,를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분홍은 절대로 송과 같은 상상, '내가 캐시 뮤직을 운영한다면?' 이라는 상상 같은 것은 하고 싶지 않았다.


송이라고 해서 그런 현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송의 집은 강남이다. 분홍은 처음에 송이 무척 부유한 사람인줄 알았다. 공연 뒷풀이 자리에서 우연히 나란히 앉게 된 송은 자기네 집이 공연장에서 가깝다고 말했다. 나이도 동갑인 송에게 분홍은 가볍게 말했었다.


“송시경 씨는 강남에 사는 거 보니 돈이 많으신가 봐요.”


송은 대답을 한참 있다가 했다.


“그냥 집이 있고, 차가 한 대 있죠.”


송의 회색 승용차는 무척 윤이 났다. 송은 굳이 분홍에게 데려다 준다고 했다. 지하철역은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거리였기에 사양했지만, 송이 웃으면서 권하고 그 눈웃음이 선량해 보였다. 또, 공연에서 만난 사람이라 신원이 확실하니 믿고 타도 될 것 같았다. 그 윤이 나는 차도 송이 돈이 많다고 생각하는 데 한몫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송은 있는 그대로 이야기를 했는데, 분홍은 처음에 연애를 시작할 때 눈이 멀어 말하는 대로, 있는 그대로 듣지 않은 면이 있다. 거기다가 분홍이만의 연습실을 만들어준다고 하니, 막연히 그에게 돈도 많은 줄 알았다.


하지만 알고보니, 송 역시 분홍과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워진 이후로 온갖 고생을 한 것은 분홍과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분홍과 송은 같은 나이인 데다가 부모님의 역사가 닮아서 서로에게 더 끌렸는지도 모른다.


송은 월급날이 되면 "분홍, 우리 콘서트 보러 갈까?"하고 상냥한 목소리로 물었다. 노래를 하는 분홍에게 그것이 남자 친구가 줄 수 있는 선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송...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난 콘서트 보러 잘 안 가. 그리고 난 요즘 내 인생의 마지막 연습시간이라고 생각하고 노래 연습하는 거야. 정말 절박해. 나는 이제 콘서트도 별로 가고 싶지 않아. 콘서트 보면 내가 무대에 못 서는 게 슬프기도 하고, 대체 언제까지 다른 사람의 공연을 봐야 하나 생각이 들기도 해. 내가 잘 이해가 안 되지? 어릴 때는 공연에 가는 것도 공부라고 생각하고 비싼 표 사서 봤지만... 이젠 아니야. 내 무대를 만들어야 돼. 나는 지금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같은 거야.”


송은 분홍이 노래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좋아한다. 그런 송은 분홍의 그런 전투적인 자세만큼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좀더 즐기면서 연습해. 분홍이 너, 노래 충분히 잘 해. 이제까지 좋은 사람을 못 만나고 운이 없어서 그렇지, 조금만 뜨면 탄력 받아서 금방 확 뜰 거야. 너는 얼굴도 예쁘잖아.”


분홍은 그런 송의 대책 없는 긍정이 위로가 된다. 분홍은 아직 생일이 안 됐으니 서른 살이 아니라고 우기지만, 해가 바뀌었느니 이제 서른이다. 아버지는 병원에 누워 계신다. 남자 친구는 직장에 다니지만 돈을 잘 못 모으는 성격이다.


분홍은 즉석 떡볶이를 배부르게 먹고 송의 따듯한 손을 잡고 길을 걸으면서도, 웬지 기운이 나지 않는다.


-싱글벙글 고시원, 다음 화로 이어집니다-

분홍이_밤.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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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화. 미숙 씨의 열정. +2 15.10.24 2,457 3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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