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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임의 글 공장입니다.

싱글벙글 고시원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드라마

완결

홍차임
작품등록일 :
2015.10.23 23:35
최근연재일 :
2016.04.02 21:40
연재수 :
3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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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9
글자수 :
181,952

작성
15.11.08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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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8화. 반값 요금.

DUMMY

보라색 슬리퍼 아주머니는 분홍더러 고시원에 들어와 살면서 ‘안정’을 찾으라고 했다. 하지만 분홍은 고시원에 사는 것이 안정적인 일인지 의문이었다.


분홍에게 진짜 필요한 '안정'이 있었다. 그것은 '안정적으로' 연습할 수 있는 연습실이었다. 주민센터 아주머니들에게 수업을 할 때와는 다른 부담감이 있는 것이 개인레슨이었다. 강사로서 단체나 다수의 학생이 아닌, 한 사람에게 종속되다시피 해서 수업을 하는 것은 특별한 부담감을 분홍에게 주었다.


개인레슨을 하는 학생이 말수가 없으면 수업 시간의 그 조용함이 분홍에겐 부담스럽다. 또, 일대일이라는 상황이 학생과 선생 모두를 지나치게 솔직하게 만들어서 보컬 수업이 아닌 마치 개인 심리 상담실인 것 같은 분위기가 연출될 우려또한 있다. 또 개인레슨을 받는 학생의 입장에서는 학원에서보다는 더 많은 수업료를 내는 것이므로, ‘빨리 내 실력을 향상시켜 놓으세요.’라는 선생에 대한 강한 요구가 있기 마련이다.


아버지 사고 이후로 노래를 제대로 부른 적이 별로 없었던 데다가, 한동안 거의 하지 않던 개인레슨을 활성화시키려는 분홍의 입장에서는 스스로의 노래 연습이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었다.


'요즘 노래 많이 안 한 거 학생 앞에서 티나면 안 되는데......'


연습이 부족한 상태로 학생들을 지도하면 학생에게도 좋지 않지만, 분홍 자신이 힘들게 된다. 더군다나 자신이 예전에 개인레슨을 받았을 때를 떠올려 보면, 선생님이 수업에 성의가 없다고 생각될 때 몹시 큰 실망감을 느끼기도 했었다. 그 실망감을 자신의 제자들이 똑같이 느끼게 하는 일은 내키지 않았다.


또 하나 노래의 좋은 점이 있었다. 노래 연습을 하는 동안만큼은 아버지 일을 잠시라도 잊을 수가 있었다. 다행히 아버지가 병원을 옮길 때 그만둔 간병인 대신 새 간병인을 구했다. 지난번 중국인 간병인만큼 간병 경험이 많은 것 같지는 않았지만, 말수가 적고 뭔가 모르게 사람에게 믿음을 주는 스타일이었다.


분홍의 입장에서도 두 번째 만나는 간병인이므로 간병인과의 관계에 조금더 익숙해졌다. 간병인의 처지또한 그녀의 눈에 조금더 잘 들어왔다. 처음에 분홍은 자신이 병원에 자주 가면 간병인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여러번 관찰해 보니 간병인들도 자신만의 일하는 스타일이 있어서 가족들이 너무 자주 병원에 오는 것이 불편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가족이 병원에 있으면 간병인이 잠시 환자를 가족에게 맡겨놓고 돌아다닐 수 있어서 좋아하기도 하지만, 환자 곁의 자신의 자리를 가족들에게 내어주어야 하기 때문에, 간병인은 마땅히 있을만한 곳이 없어진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찌되었거나, 분홍에게도 정신적 휴식이나 자기만의 시간이 점점 절실해지던 시간이었다.


캐시 뮤직에서 연습을 한 시간 하면, 밥값보다 비싼 돈을 내야 한다.


연습실이라는 것은 묘한 구석이 있다. 커피숍에 가면 오천원을 내든 친구 것까지 만원을 내든 어찌되었거나 커피 한 잔이라는 '눈에 보이는 물질'을 제공 받는다. 아무리 커피숍 비싸네, 이거 다 자리값이네, 불평을 해도, 어찌되었던 커피는 손에 잡히는 무언가이다. 하지만 연습실은 다르다. 잠시 마이크를 빌려 쓰거나 피아노를 빌려 쓰고, 그것에 대한 요금을 내야 한다. 노래를 하는 이상 연습실이란 공간은 평생 안 쓸 수 없는데 매번 돈을 쓰면서도 무언가 모를 아까움이 느껴지는 장소이다. 대학생 분홍은 자신이 졸업해서 몇 년 정도 활동하면 자연스레 자신에게 개인 스튜디오가 생기리라고 생각했었다. 졸업한지 한참 지난 지금, 현실은 다르다.


가장 큰 현실, 분홍은 가수가 되지 못했다. 강사가 되었다.


연습실 요금에 대한 뭔지모를 아까움 때문에 네 시간 부르고 싶을 때는 세 시간 부르고, 세 시간 부르고 싶을 때는 두 시간만 불렀다. 캐시 뮤직 연습실에 점점더 자주 가게되자 돈이 부담되기 시작됐다.


“언니, 여기 한 달 이용권 어떻게 돼요?”

“그런거 몰라.”

"......"


분홍은 이번에도 송의 도움을 받아 집에서 가까운 연습실을 몇 군데 알아보기로 했다. 캐시 뮤직처럼 삼국대 전철역 근처는 아니지만, 다른 지하철역에서 가까운 연습실이 한 군데 있었다. 일단 역 앞이면 위치에 있어서 반은 합격이다. 강사인 분홍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찾아오기 편한 위치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분홍이 직접 찾아가보니, 방이 너무 작았다.


큰 방입니다, 하고 보여주는 방도 너무 작았다.


이용하는 방식도 복잡했다. 하루에 몇 시간을 쓸지 처음에 정해야 했다. 세 시간을 쓸지, 여섯 시간을 쓸지를. 그것에 따라 할인 혜택이 달라졌다. 분홍에겐 그 방식이 너무나 어려웠다. 그리고 오전에 쓰는지 오후에 쓰는지, 심야에 쓰는지를 미리 정해야 했다. 분홍은 어느날은 오후에 연습을 하고 어느날은 밤에 연습을 했다. 또, 미숙 씨는 주부라서 오전이 수업하기 좋다고 강조에 강조를 했었다.


또 다른 연습실은 캐시 뮤직보다는 외진 곳에 있지만 역시 삼국대 근처라고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문을 여니 드럼 셋트가 크게 널려있다시피 했다. 큰 방이지만 방의 3분의 2정도 되는 공간을 드럼이 다 차치하고 있었다. 보컬 연습을 하려면 드럼에게 내어주고 남은 조그만 공간에서 강사와 학생이 몸을 잔뜩 움츠리고 노래해야 할 판이었다. 어울리지 않았다. 방음을 위해서 붙여놓은 방음재 색깔이 여러 가지로 알록달록한 것이 정신 없는 느낌도 주었다.


"열심히 방음재를 붙였을 주인한텐 미안한데, 흥부네 집 같아."

자신이 알아본 연습실이 어땠느냐고 묻는 송에게 분홍은 이렇게 말했다.


‘에휴... 다들 나한테 딱 맞는 데는 아니네. 미우나 고우나 캐시 뮤직을 계속 이용해야 하나?’


아주머니가 고시원에 들어와 살라고 말한 뒤로 분홍은 왠지 캐시 뮤직이 불편해졌다. 좋은 쪽으로 생각해보려고도 했다.


‘나를 성실하게 본 거니까... 그러니까 들어오라고 하는 거겠지.’ 라며.


하지만 분홍에게 다른 손님들에 대한 험담을 끊임없이 늘어놓는 아주머니와의 대화 시간이 너무 길어지는 것이 점점더 부담스러워졌다.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아주머니에겐 어떤 완벽한 손님이 와도 욕을 먹을 것 같았다.


그게 두려웠다.


분홍도 어디선가 욕을 먹고 있을 것 같았다.


아주머니는 조금씩 분홍을 딸이나 동생처럼 대하는 면도 있었다. 이 얘기 저 얘기를 하면서 분홍을 의지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 때도 있었다. 자식 이야기, 자신의 건강 이야기, 고용주와 있었던 일...... 그렇게 되니 살인적인 경쟁률을 뚫고 그녀의 '좋은 고객'에 들어간 것 같은 알 수 없는 승리감도 느꼈다.


송이 말했다.


“캐시 뮤직에서 한 달권을 끊지 그래?”

“아줌마가 그런 거 잘 모른대.”

“사장님한테 물어보시라고 해봐.”

“여긴 사장님이 한둘이 아니야. 아마 누구한테 물어봐야 할지도 모르실껄?”

“설마, 그정도는 아니겠지...... 어쨌든 물어보기나 해봐.”


분홍은 송의 부추김에 용기를 내어서 다음날 말을 꺼낸다.


“언니, 제가 한 달 내내 쓸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안 될까요?”

“나 그런 거 몰라.”


이번에는 분홍이 설명을 차근차근 한다.


"다른 음악 연습실도 그렇게 많이들 해요. 음... 그러니까, 방 하나를 고시원처럼 한 명이 쓰는 거예요."


고시원과 비유해서 들으니 아주머니는 바로 이해를 한다.


"아! 그런게 있구나! 얼마 하는데?"

“보통 30만원 정도 해요. 더 비싼 데도 있고, 더 싼 데도 있고. 여기가 깨끗하고 좋긴 한데, 자주 오다보니 매번 시간당 요금 내기가 저도 좀 부담스럽고... 한 번 사장님한테 물어봐 주세요.”


며칠 후, 아주머니는 분홍에게 희소식을 전해왔다.


“사모님한테 말했는데, 그때 지비가 말한대루 한 달루다가 그렇게 하래. 그래, 그렇게 해, 이모가 알아서 해, 요래. 헤헤헤. 하이튼, 이 사모는 내가 하라는 건 다 한대니깐. 에헤헤헤.”

“아, 정말요? 그럼 얼마 내야 돼요?”

“삼십만원이래매?!!!”


아주머니는 버럭 소리를 지른다. 자기가 정확히 모르는 일을 진행하는 사람 특유의 예민함 같았다.


이렇게 소리르 지를 때는 분홍은 다른 연습실을 좀더 알아봐야 하나 싶기도 하고, 아주머니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래도 젊음의 거리라는 삼국 대학교 인근이고 악기 소리도 괜찮은 캐시 뮤직이 점점더 끌리긴 한다.


분홍은 결정의 순간을 늦추기 위해서, “지금은 학생이 많지 않으니깐, 학생이 좀더 생기면 그때 결정할게요.” 라고 말한다. 분홍이 하는 일에 대해서 아무 관심이 없다시피한 아주머니이다. 그러나 '학생 수'를 언급할 때면 분홍의 일을 한 눈에 다 아는 사람 같아졌다.


"그래, 아무렴 그렇지. 학생이 많아야 그렇게 하는 거지. 안 그럼 손해지."


캐시 뮤직 외에도 분홍에게 몇 개의 연습실을 더 추천해 주었던 송은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하는 분홍이 답답한지 먼저 말을 꺼낸다.


“분홍. 뭐 때문에 고민하는 거야?”

“그냥... 여기가 편한 것 같으면서도 불편해.”

“뭐가 불편한데?”

“씨씨티비도 개수가 너무 많아. 방에서 노래할 때도 그게 신경쓰여.”

“씨씨티비 많은 건 좋은 거야. 내가 회사 때문에 낮시간엔 같이 못 있잖아. 난 오히려 그점 때문에 캐시 뮤직이 여자들 연습하기엔 좋은 것도 같아.”


분홍과 동갑인 송은 매사에 긍정적인 편이다. 씨씨티비가 자신의 안전을 지켜줄 거라는 송의 말에, 분홍은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하면서 '역시 송이야...’ 이라고 생각한다.


송은 분홍이 실컷 고민 중인 일에 대해서도 아주 쉬운 일이라는 듯 말하곤 한다. 긍정적인 성격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엔 분홍과 많이 다투었었다. 하지만 분홍은 아버지 사고를 겪으면서 한 가지를 깨달았다. 곁에서 송이 그렇게 쉽게쉽게 말하지 않았으면 분홍은 그 상황을 견뎌내기가 더 힘들었을 거라는 걸. 이번에도 송은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 긍정적으로 이용할지에 대해서 말한 것이다.


“하긴... 그때 내 악보에 오줌 눈 누런색 개, 은근히 귀여워. 노래하다가 가끔 걔랑 놀면 기분도 좋아지더라.”


분홍의 마음은 슬슬 캐시 뮤직으로 기운다. 더군다나 새로운 연습실을 찾아가서 다시 처음부터 환경에 적응할 일을 생각하니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아, 근데, 고시원 들어와 살라니깐? 여기 고시원 사는 학생들은 여기 지하 연습실 요금을 깎아준다고.”


검은색 소파에 앉아 분홍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던 아주머니가 말한다.


“아, 정말요?”

"내가 그때 지비한테 말 안 했어? 내가 했을 텐데."


분홍은 눈이 휘둥그레진다.


“나참. 젊은 사람이 말을 했는데도 못 알아듣네. 여기 다~ 사모님 꺼야. 사모님이 아주 돈이 많어. 이거 말고도 또 건물이 있어. 남편은 코쟁이 회장님.”

“코쟁이......요?”

“아주 자알 생겼어. 미국 사람이야. 사모님이 미국에 한 번씩 간다고.”

“그 사장님이란 분 말고 동생이란 분이 여기 진짜 주인예요?”

“아. 몇 번을 말해야 알어?!!! 얼마나 좋아. 뜨거운 물 방마다 다~ 나오구. 밥도 나처럼 해주는 데가 어딨어. 여기 연습실도 내가 오십프로 할인을 해줄 수 있어. 사장님이 그렇게 했었지. 근데 사모한테 사장님이 어떻게 했단 얘기를 내가 잘 안 해. 짜증스러워해. 그때 그래서 다른 얘기하면서 슬쩍 껴서 어떻게, 할인은 계속 할 거냐고 물어봤지. 요롷~게 생각하더니, 아줌마, 그냥 해줘, 그러더라니깐. 에헤헤헤. 그냥반이 장사할 줄 알아. 아니, 그건 손님한테 싸비스지. 싸비스. 아암.“


분홍의 마음은 고시원 쪽으로 기운다. 그러다가 고개를 젖는다.


‘고시원...? ... 아니야. 연습실 알아보다가 집까지 이사하는 건 아니야.’


연습실을 이용하러 왔는데, 고시원에 들어와서 살라고 하고, 또, 고시원에 들어오면 연습실 비용을 반값에 해준다는 이 세계가 복잡해 보였다. 또 받아주기 힘든 아주머니의 성격도 고민 사항이었다. 하지만, 오랜 자취 생활 끝에, 허기진 몸에, 아주머니가 직접 만든다는 나물 반찬이며, 감자 조림이며를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점차 강해졌다. 아버지 사고 이후로 잠도 제대로 못 주무시는 어머니한테 반찬을 얻어먹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나저나 밥은... 고시원 아주머니의 일도 몇 번 거들어주었으니, 한 끼정도는 아주머니에게 얻어먹을 수 있을 것도 같았다.


한 끼정도는.


- 리얼리즘 코미디 월세 서바이벌 로맨스 <싱글벙글 고시원> 다음 화로 이어집니다. 감사합니다. -

싱글벙글고시원.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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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99 Nuan
    작성일
    16.03.13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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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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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벙글 고시원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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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5화. 나를 훔쳐보는 너의 둥근 눈. 15.10.27 1,301 26 9쪽
4 4화. 딸랑딸랑 자판기 커피. +1 15.10.25 1,501 2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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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화. 미숙 씨의 열정. +2 15.10.24 2,457 32 12쪽
1 1화. 7만원의 경건함. +6 15.10.24 5,377 48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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