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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임의 글 공장입니다.

싱글벙글 고시원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드라마

완결

홍차임
작품등록일 :
2015.10.23 23:35
최근연재일 :
2016.04.02 21:40
연재수 :
38 회
조회수 :
69,228
추천수 :
969
글자수 :
181,952

작성
15.10.27 13:31
조회
1,300
추천
26
글자
9쪽

5화. 나를 훔쳐보는 너의 둥근 눈.

DUMMY

인생이 잘 안 풀릴 때 부모님 탓을 할 수 있다는 건 자식 입장에서 때로 아주 편리한 일이다.


‘자기 딸 칭찬좀 해주면 안 되나...’


분홍은 자신이 아직 가수가 되지 못한 이유를 생각해 본다. 많은 이유들이 있지만 그중 하나가 크면서 부모님의 칭찬을 많이 받지 못한 탓이라고 믿고 있다.


[ 옷 하나 사라. -엄마- ]


아침에 일찍 회사로 나가신 엄마는 쪽지 한 장과 만원짜리 다섯 장을 식탁에 놓고 나가셨다. 분홍은 아직도 대학생 시절 받았던 그 쪽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엄마에게 미안하다. 과에서 공연을 하는데, 아르바이트 해서 모은 돈으로 겨우 학비만 내고 있는 분홍에겐 공연을 한다고 해서 미용실을 가거나 무대에서 입을 의상을 사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다.


당시의 개성 없는 생머리를 화려한 파마 머리로 바꾸고 싶었고, 옷도 반짝이가 좀 달린 화려한 옷으로 구입하고 싶었지만 분홍의 주머니는 늘 빠듯하거나 비어있었다. 엄마에게 지나가듯 공연 때 입을 옷이 없다고 한 마디를 하였는데, 그렇지 않아도 월세 내랴, 생활비 하랴, 아버지 빚독촉 받아내랴 힘든 상황에서 분홍의 어머니는 그렇게 무뚝뚝한 쪽지와 함께 딸을 보조해 주었다.


단, 그렇게 딸을 보조해 주는 그녀의 엄마가 하지 않는 하나가 있으니 바로 칭찬이었다. 그녀가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걸 처음 본 날, 엄마의 말은 딱 한 마디였다.


“좀더 준비했어야 하지 않니? 둘이 같이 할 부분이 많았던 것 같은데 뭔가 부족했던 것 같네.”


분홍에게는 충격적인 평가였다.


'엄마가 듀엣에 대해서 잘 알고 하신 말일까? 잘 모르는 사람도 그렇게 무대를 보면 예리하게 잡아내는 걸까?'


도망갈 길을 읽힌 도둑이라도 된듯 섬뜩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 공연에서 분홍은 남자 동기와 듀엣곡을 불렀는데, 파트너인 남자애가 학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서 재수를 하겠다느니, 소속사를 알아보겠다느니 하며 학교를 거의 안 나오다시피 했다. 남녀 간의 사랑 노래를 듀엣으로 부르는데 상대가 없으니 그녀는 혼자서 연습하기도 뭐해서 교수님 코치를 받을 때 정말 챙피했었다. 사랑노래를 혼자서 열심히 부르자니, 상대방도 없는데, 괜히 분홍의 꼴만 우스워질 것 같고, 대충 부르자니, 교수님의 매서운 눈초리가 무서웠다. 또 억울하기도 했다. 열심히 화음을 짜면 무얼 하나, 연습을 하면 무얼 하나, 듀엣 상대가 없는데......


수업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죽을 쑤고나서 강의실을 나오는데 남자 동기 진우가 분홍에게 말을 걸었다.


“분홍. 세훈이 때문에 힘들지? 그자식, 파트너 고생시킬 거면 아예 처음부터 안 한다고 했어야지. 근데 분홍, 파트너 없어도 네 부분은 자신 있게 해. 세훈이가 공연 때는 올 거야. 그리고 솔직히 그 자식이 동기들 중에서 노래는 잘 하잖아.”


“노래 못해도 좋으니까 학교좀 잘 나오는 애가 짝이었으면 좋겠어.”


“내가 다음 시간에는 맞춰줄까? 남자 애드립도 해놨어?”


“응! 해놨어!”


“오~ 연분홍~~~!”


다음 수업 시간에 진우와 한 듀엣은 분홍에게도 만족스러웠다. 진짜 파트너도 아닌데, 너무나 든든한 게 몇 주 간의 서러움이 다 녹는듯했다. 공연 때까지 진우와 파트너를 하고 싶었지만, 원래 파트너인 세훈이가 완전히 휴학을 한 것도 아니어서 세훈이한테 배신자가 되는 것 같아 그럴 수 없었다. 그래도 과에서 세훈이와 친한 편이어서 파트너가 된 것이었으니까. 또한 진우는 워낙 인기가 많아서 쉽게 접근하기도 힘든 동기였다. 또, 동기들이 대부분 여자이고 남자는 귀하기 때문에 섣불리 남자 파트너를 차지하기에는 눈들이 무서웠다.


세훈이는 진우의 예언대로 공연 때가 다가오자 학교에 나타났다. 늦었지만... 파트너가 생기긴 생겼다. 전화도 피하던 세훈은 정말로 재수를 할 건지 말 건지, 소속사와 만나긴 한 건지에 대해서 아무 말이 없었다. 그리고 이제껏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천연덕스럽게 연습을 했다.


세훈에 대한 서운함 때문이었을까? 세훈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노래를 하는데 분홍의 노래는 계속 뻣뻣한 듯 했다.


“분홍아. 너 남자 한 번도 안 사귀어 봤어?"


단발의 파마머리를 한 노란색 안경알의 남자 교수님이 갑자기 피아노 반주를 멈춘다.


"애절한 노래를 부를 때는 그런 연기를 해야지. 가수는 되든 안 되든 다 해보는 자세가 필요해. ‘서로 사랑해야 할 시간도 너무 모자라요.’ 거기, 너~무 심해. 다시 해봐. 둘다!” 하며 노란색 안경알의 남자 교수님은 반주를 다시 시작했다.


“서로 사랑해야 할 시간도 너무 모자라요.”


분홍과 세훈, 함께 부른다.


‘칫. 서로 노래 맞춰볼 시간도 없는데, 무슨 사랑할 시간...’


분홍의 원망이 가슴 속에서 부글거리며 뜨거워진다.


“나를 믿어요.”


‘너를 어떻게 믿냐. 전화도 슬슬 피하고 안 받았는데!’


“믿을게요”


노란 안경알 교수님은 훨씬더 신경질적으로 반주를 멈춘다.


“야! 너네 싸웠어? 뭐 문제 있어? 공연 때 니네만 빼버릴까?”


“죄송합니다.”


세훈은 재빨리 고개를 숙이며 대답한다. 그것만 하면 다행인데 씨익 웃는다. 노란 안경알 교수님은 어이가 없다는 듯 쳐다보다가 세훈의 능글함에 허허허, 웃는다.


“그래! 뻔뻔한 것도 능력이야!”


노란 안경알 교수는 자기 자신의 쿨함에 스스로 반한 표정이다.


“분홍이 넌?”

“죄송합니다... 열심히 할게요...”


분홍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진다.


‘내가 저 자식 때문에 맨날 짝 없어서 노래도 못하구...’


교수님은 분홍이의 한 박자 느린 반응이 탐탁치가 않다.


그렇게 해서 올라간 무대였다.


세훈은 배짱이 좋은 구석이 있어서 무대 위에서 분홍을 하트 눈으로 쳐다보면서 사랑에 빠진 남자처럼 노래를 했다. 또 무대 경험도 꽤 있는 가수 지망생이라 마이크를 안 든 손을 하늘로 드라마틱하게 쳐들면서 마이크 든 손 쪽으로는 고개를 숙이는 특유의 자세로 열창을 한다. 분홍은 애써 가사에 몰입을 하려 하지만 불만 있는 얼굴에 꿔다놓은 보릿자루 같다. 분홍은 세훈이 어떤 호흡을 쓸지, 어떤 애드립을 할지 알 수가 없어서 자꾸 방어적으로 노래를 했다.


마지못해 공연이 끝난 공연장을 치운다. 어디론가 도망가서 울고 싶다. 친구들은 생각보다 잘 했다고 격려해 준다. 마음이 풀리지 않는다. 친구들의 격려 말이 믿어지지 않는다. 그냥 하는 말 같다.


그날 엄마의 말은 좀 큰 한 방이었다.


“둘이 같이 할 부분이 많았지 않나?” 라니.


‘엄마, 나도 같이 연습하고 싶었다구요. 애가 학교를 안 나오는 걸 어떡해요!’


캐시 뮤직 아주머니의 타이밍은 매번 정확했다. 그녀의 보라색 화장실용 슬리퍼는 언젠가는 검은색 슬리퍼로 바뀌어 있었다. 가까운 데는 신고 외출도 할만한 그런 검은색 인조 가죽 슬리퍼. 그 검은색 슬리퍼를 신고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는 “딱딱딱딱 딱딱딱딱” 하는 게 캐스터내츠 소리 같았다.


캐스터내츠 소리가 나서 다행이었다. 고무 슬리퍼보다는 소리가 커서, 그녀의 갑작스런 등장에 대한 놀라움을 희석시키는 역할을 했다. 예고음처럼.


연습실에는 보통 씨씨티비가 설치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악기나 스피커, 연결 잭 등의 물품을 지키는 용도로, 때로는 손님이 약속한 시간만큼 사용하는지 감시하는 용도로. 캐시 뮤직도 마찬가지였다. 분홍은 사용 시간을 1분 1초까지 정확히 적게 되는 이상한 강제효과의 원인에 대해서도 한 가지 더 알았다. 종이에 적는 장면을 잡고 있는 방향의 씨씨티비가 한 대 더 있었다.


사람들의 손을 감시하는 카메라라니!


손님들은 악기를 연주할 때보다 더 정확하고 섬세하며 정직한 손놀림으로 정확한 시간을 적고 검은색 서랍 맨 위칸에 정확한 액수의 돈을 넣어놓고 나갔다.


나물 반찬을 만드느라 하루가 다 가버린다는 슬리퍼 아주머니의 등장 타이밍은 분홍을 어떤 때는 섬뜩하게 했다. 그녀는 분홍이 연습실에 도착하는 시간을 맞추었고, 분홍이 연습실에서 나가는 시간을 맞추었다. 노래하다가 방 안이 답답해서 잠시 밖으로 나와 소파에서 쉬고 있는 시간까지도 맞추었다. 이제, 분홍은 이 상황에 대한 하나의 의심이 들었다.


‘이 아줌마가 모든 걸 보고 있구나! 그래, 그거였어.’


그 뒤로는 한동안 건물 입구에서부터 연습실 방 안의 구조까지 다 살피며 어디에 씨씨티비가 있는지 살피는 게 일상이 되었다. 노래를 하고 있으면 그 모습을 슬리퍼를 신고 딱딱딱딱 내려오는 아주머니가 감시를 하며 분홍을 평가하고 있을 것 같았다. 의식하지 않으려고 해도 노래하는 중에 천장 구석에 달려 있는 카메라를 힐끗힐끗 쳐다보게 되는 게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악보를 올려놓은 보면대의 방향을 자연히 틀게 되었다. 몸도 씨씨티비를 등지기 시작했다.


‘이 연습실을 만든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분홍의 머릿 속엔 고시원 방 수십 개를 이고지고 있다는 이 연습실에 대한 궁금함이 끊이지 않았다.

싱글벙글고시원.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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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9화. 감자조림. 15.11.29 756 2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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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7화. 첫 유혹. +1 15.11.07 1,103 23 7쪽
6 6화. 캐시 뮤직. 15.11.05 1,171 25 13쪽
» 5화. 나를 훔쳐보는 너의 둥근 눈. 15.10.27 1,301 26 9쪽
4 4화. 딸랑딸랑 자판기 커피. +1 15.10.25 1,501 29 12쪽
3 3화. 보라색 쓰레빠. +2 15.10.25 1,481 30 8쪽
2 2화. 미숙 씨의 열정. +2 15.10.24 2,456 32 12쪽
1 1화. 7만원의 경건함. +6 15.10.24 5,376 48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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