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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임의 글 공장입니다.

싱글벙글 고시원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드라마

완결

홍차임
작품등록일 :
2015.10.23 23:35
최근연재일 :
2016.04.02 21:40
연재수 :
3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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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268
추천수 :
969
글자수 :
181,952

작성
16.02.12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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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4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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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19화. 사모님 예쁘죠?

DUMMY

모짜르트 방을 차지한 남자는 처음엔 연습실 운영에 열의가 있었다. 캐시 뮤직의 여섯 개의 방 구조를 바꾸었다. 기계를 보는 눈이 어두운 분홍의 눈에는 그게 그거 같았지만 송이 말하기를 그가 좋은 앰프만 남겨두고 고장난 앰프는 다 입구 밖 계단 밑에 있는 빈 공간으로 빼놓았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각 방의 어지럽던 구성이 상당히 정돈된 것 같았고, 조금씩 넓어진 것도 같았다.


분홍은 열심인 남자가 실망할까봐 가슴을 졸였다. 캐시 뮤직에 손님이 얼마나 없는지 분홍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며칠 지나자지 않아, 꽁지머리 남자는 점점 움츠러들었고, 남자와 함께 다니던 은색 야구 모자를 쓴 남자가 보이지 않았다.


400에 인센티브에 방 한 개, 라는 조건. 그 쉬워보이지 않는 미션 가운데 은색 모자의 자리가 있을 리는 없어 보였다.


보라색 슬리퍼 아주머니는 황 사장과 꽁지머리 남자 사이의 공백 기간에 캐시 뮤직을 관리했던 것이었다. 이야기 속의 황 사장은 아주머니에게 세 가지의 의미였다. 첫째로, 황 사장은 누런 개의 원래 주인이다. 황 사장은 “그 개 내가 칠만 원에 샀어.”라는 말과 함께 아주머니에게 개를 넘겼다. 둘째는 일 중독 성향의 아주머니에게 “천천해 쉬어가면서 일해.” 라고 얘기해준 괜찮은 사람이다. 그 정도의 아량은 있는 푸근한 보스였다. 셋째는 고시원과 연습실의 운영에 있어 슬리퍼 아주머니보다 현격히 실력이 떨어지는 자였다. 쉬흔세 개의 고시원 방값을 둘쭉날쭉 제각각 책정했다고 한다. 누가 사정좀 하면 오십구만 원짜리 방을 오십오만 원에도 내주었단다. 오십칠만 원, 오십팔만 원에 내준 방은 수도 없이 많았단다. 그래서 황 사장으로부터 일을 받아쥔 아주머니가 한동안 헤매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실소유주인 '사모님'이 지저분한 걸 싫어하는데 황 사장은 지하 캐시 뮤직에서 배달 음식따위나 시켜먹곤 했단다. 그 이야기를 전하면서 슬리퍼 아주머니는 심하게 눈살을 찌푸렸었다.


'그게 그렇게 화낼 일인가?'


분홍은 의아했지만 말하지 않았다.


아주머니가 방의 가격을 오십구만 원으로 일제히 통일하고 고시원생이 들어오고 나가는 날짜와 그날 들어온 돈을 공책에 딱 맞게 적어놓은 것을 보고 사모님은 “그래, 이거야! 일을 이렇게 해야지!”라고 외쳤단다. 아주머니는 그 날 사모님에게 칭찬 받은 기억을 분홍에게 이야기할 때마다 마치 간절하게 연설문을 낭독하는 정치인 같아 보였다.


황 사장이 인수인계 절차도 없이 사라졌을 때 6층짜리 검은색 건물은 아주머니만의 성이 되었다. 성을 접수한 기쁨도 잠시, 그녀에게는 수많은 도전들이 있었다. 그 성에는 긴 머리카락을 시도 때도 없이 흘려대는 짜증나는 여학생들이 살고 있었다. 도전하는 존재들은 여자뿐만이 아니었다. ‘남자의 손이 필요한’ 고시원 잡일을 잘 도와주다가 어느날 “왜 내가 내 돈 내고 살면서 여기에서까지 일을 해야 됩니까? 나도 집에서는 쉬어야 됩니다!”라고 소리치며 돌변한 3층 남자도 눈엣가시였다.


그뿐이 아니라 했다. 방값은 엄연히 선불로 지불해야 함에도 아주머니에게 열쇠를 받아 방에 짐만 가져다 놓고 무려 3일 간이나 돈을 주지 않는 젊은 여자도 있었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적이 잇었다. 그 적은 바로 틈만 나면 고시원의 경영권을 차지하고자 마수를 뻗는 사모님의 동생이었다. 동생도 위험하지만 동생의 남편이 더욱 위험한 존재라 하였다.


"그 치 소개로 꽁지머리 남자가 온 거야. 내가 그 말 들었을 때 이렇게 될 줄 알았지 암!"


그 목소리에 오래 묵은 경계심이나 앙심이 느껴졌다.


고시원 방 변기 커버를 자기 맘대로 알록달록하고 푹신한 것으로 바꾸더니 나갈 때는 원래 있던 변기커버까지 가지고 가버린 여학생의 엄마도 있었다. 그런 날 아주머니는 얼굴이 시뻘개졌고 머리가 아프다고 분홍에게 호소했다.


분홍은 집에서 나서기 전 회색 천으로 만든 벽걸이 신발장에서 올겨울 처음으로 털이 달린 어그부츠를 꺼내 신는다. 날이 추워져 다소 발이 시려웠지만 어차피 연습실 실내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운동화로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이틀 전부터 날씨가 갑자기 많이 추워졌다. 어그 부츠를 신으니 훨씬 따듯했다. 추운 날이지만 드디어 결심 하나를 실천하기로 했다. 그 결심이란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서 연습실까지 가는 것이다.


길에는 며칠 전 쌓인 눈이 거의다 녹았지만, 분홍이 살고 있는 다세대 주택가의 담 아래에는 누군가 빗질로 모아놓은 눈이 그대로 쌓여 있기도 했고 다른 곳보다 그늘이 많이 진 골목엔 바닥에 작은 빙판이 한 개씩 눈에 띄었다. 분홍은 재미삼아 빙판을 밟아 쭈욱 밀고나가기도 하면서 걸었다.


노래를 시작하기 전에 가급적 스트레칭 및 워밍업을 하곤 하는 분홍은 버스비도 아낄겸, '걸어다니리라' 얼마 전부터 생각을 한 것이다. ‘집에서 캐시 뮤직까지 걸으면 삼십 분정도이니까, 워밍업 시간으로 딱 좋겠는데? 군살도 좀 빼고 폐활량 훈련도 되고. 돈도 아껴야지.’ 라고 일기장에 적었지만, 막상 집을 나서면 버스 정류장으로 직행하곤 했다. 그런데 털 부츠에 발이 따듯해지니 걸어갈 용기가 났다.


[분홍, 그러다가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어떡해?ㅠㅠ 아무튼 조심하고 오늘 하루도 힘내!♥]


걸어가는 중이라면서 거리 풍경을 찍어 보냈더니, 송은 걱정부터 한다.


추운 날씨라 숨을 들이마시면 폐가 아픈 것 같았지만 그만큼 상쾌하기도 했다. 그렇게 걷는 시간이 이십 분이 지나면, 패딩잠바며 모직 스웨터며 잔뜩 껴입은 분홍의 몸에 기분좋을 만큼의 땀이 났다. 그럴 때 노래를 시작하면 세상을 가진 것처럼 신이 났다.


상쾌한 마음으로 캐시 뮤직에 들어섰다. 다행히 오늘은 분홍보다 일찍 온 손님이 있었는지 낮 두 시경인데 연습실 문이 열려 있었다. 아주머니를 불러내리지 않아도 되어서 분홍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입구를 들어서자, 어떤 머리가 긴 여자의 뒷 모습이 보였다. 남의 집을 몰래 훔쳐보는 사람처럼 캐시 뮤직 안을 어슬렁거리면서 살펴보고 있더니 분홍이 들어오는 인기척에 놀라서 뒤돌아본다. 작은 눈에 긴 머리, 마른 체구의 여자. 값이 나가 보이는 갈색 명품백이 눈에 띈다.


‘사모님이라는 사람이구나.’


슬리퍼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수백 번은 족히 들은 인물이기에, 마치 원래 알고 있는 사람 같기도 했다.


“안녕하세요.”

“......?”


머리가 긴 여자는 뒤에서 나타나 먼저 인사를 하는 분홍을 경계하는 눈치였다.


“아, 저 연분홍이라고...... 아줌마한테 말씀드리고 여기 삼십만원...”

“아. 네.”


염탐하는듯한 자세이던 여자는 분홍을 보고는 태연한 척 했으나 이내 추위를 느끼는 사람처럼 옷깃을 여미면서 묻는다.


“여기 원래 이렇게 사람이 없나요?”

“아, 사장님이요?”

“사장님... 뭐, 어, 네.”


긴 머리 여자는 분홍이 남자를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못 마땅한 눈치였다. 그러나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 우선 분홍의 말을 긍정했다. 분홍은 꽁지머리 남자를 저 여자로부터 보호해 주고 싶었다.


“아니요, 남자 사장님이 늘 계시는데, 오늘은 어딜 가셨나 봐요.”


분홍은 '남자 사장님'이라고 성의 있게 꽁지머리 남자를 지칭했다.


“몇 시에 문이 열리나요?”


분홍도 그건 정확히 모른다. 그때그때 다르다. 다만, 미숙씨 수업 때문에 오전에 나왔을 때는 캐시 뮤직의 문이 닫혀 있곤 했다. 그러면 분홍이 아주머니에게 전화를 걸고, 아주머니가 일그러진 얼굴로 남자에 대한 욕설을 하면서 내려와 문을 열어준다. 분홍이 오후나 저녁 때 나온 날은 문이 열려 있고 남자는 벽걸이 티비를 보고 있거나, 모짜르트 방에서 일하고 있었다.


분홍은 다시 한 번 남자를 보호해준다.


“제가 맨날 오후에 나와서 잘 모르겠어요.”

“아, 네.”


머리가 긴 여자는 고맙다는 말을 생략한 채 캐시 뮤직을 빠져 나간다.


약 일 주일쯤 지났다. 분홍은 대학 휴학생인 현아와 레슨을 한 뒤, 현아를 배웅하러 입구로 함께 나오고 있었다.


검은색 소파에 다리를 곱게 모은 꽁지머리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얼마전 본 눈이 작고 머리가 긴 여자가 작고 무거운 목소리로 말을 하고 있었다. 남자의 모습은 교무실에 끌려온 고등학생 같아 보였다.


“문을 여는 시간은 정해져 있어야 될 것 같아요.”

“아, 네네. 제가 특별한 일이 없을 때는 일찍 와서 문을 엽니다.”


다리를 모으고 모은 무릎 위에다 손까지 모은 꽁지머리 남자는 평소보다 몸집이 작아 보였는데 상체를 수그리고 있어서 더욱 작아 보인다. 분홍은 학생을 배웅하면서 속으로 ‘내가 당신을 도와줬습니다.’라고 남자에게 말했다. 그날 만약 분홍이 “아침에는 항상 아주머니가 열어주셨어요.”라고 말했다면, 오늘 남자는 상체를 더 많이 수그렸을 거라고 짐작한다.


그날 저녁이었을 것이다. 남자는 유독 친절하게 분홍에게 말을 건낸다.


“연 선생님은 개인 레슨도 많이 하시고 출강도 하시고 일을 아주 많이 하시네요?”

“아, 네. 학생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데...... 그렇게 됐어요. 노래하는 사람이 무대를 서야 하는데, 자꾸 수업만 하게 되네요.”

“음악하는 사람들이 먹고 사는 게... 뭐, 다 그렇죠.”


남자가 분홍에게 말을 걸면서도 벽걸이 티비를 계속 보고 있어서, 분홍도 대답을 하면서도 티비를 본다. 티비 속에는 추운 겨울 바다에서 물고기를 건져 올리는 나이 든 어부와 그를 인터뷰하는 얼굴은 알지만 이름은 모르는 개그맨이 바닷 바람을 맞으며 소리지르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무대는 어떤...?”

“선배들이 부르면 갑자기 가서 코러스 설 때도 있고요, 가이드 보컬도 조금 하고요. 아직, 제 앨범은 못 냈어요.”


그 말을 한 분홍은 자기 얼굴이 빨개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늘 그렇다. 누가 분홍에게 앨범을 냈느냐고 묻지 않아도, 꼭 자신은 아직 앨범을 내지 못했다는 말부터 하게 된다.


“저는 요즘 가요랑 국악이랑 접목시키는 작업을 합니다.”


분홍도 알고 있다. 방음이 완벽하지 않은 캐시 뮤직에 있다보면, 서로의 음악 장르가 무엇인지, 실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 의도하지 않아도 다 알게 된다. 꽁지머리 남자는 모짜르트 방을 차지하고 나서 처음에는 책상에 앉아 책을 붙들고 무언가를 연구하는 듯 했다. 캐시 뮤직의 벽은 방음이 부실한 반면 방문에는 투자를 많이 한듯했다. 이중 문이었고, 바깥 문은 스폰지도 많이 댄 뒤 검은색 인조가족으로 덧씌워서 보기에도 근사했다. 바깥의 검은 문까지 닫고 있으면 안을 볼 수가 없지만, 안쪽 문만 닫고 있으면 문에 창문이 나 있어서 방 안의 모습을 볼 수가 있다. 그 창문 넘어로 보이는 남자는 초기엔 책에 밑줄을 치는 것 같았고 어느 순간부터는 판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분홍은 사실, 그 모습을 보고 남자를 좋은 사람이라고 믿게 되었다. 대한민국의 음악계에서 국악은 그 설 자리를 많이 잃었다. 국악을 접목시킨 음악이 영화 음악으로 쓰여 잘 되는 경우는 가끔 보았지만 평균적으로 국악의 상업성은 높지 않다. 그럼에도 남자가 자신의 소리, 자기 민족의 소리를 찾는다는 것이 분홍에게는 신실해 보였다. 분홍도 어떤 소리가 좋은 소리인지 고민이 깊어질 무렵 대학 선배가 소개시켜준 여성 국악인을 찾아가 소리 수업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녀는 얼굴에 하얀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아주 빨간 립스틱만을 사용하는 사람이었다. 민족의 소리를 찾으러 간 분홍은 그녀의 외모를 보면서 일본 사람과 있는 것 같단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그때도 분홍은 돈이 없어서, 다른 제자들은 한 시간씩 배우는데 한 번에 삼십분씩 배웠다.


소리에 대한 동질감 때문인지 분홍은 남자와 처음으로 꽤 긴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때 남자가 서랍을 열더니 삼베 과자를 내어 놓았다.


“어머나. 감사합니다.”


분홍은 삼베 과자를 한 조각 먹었다. 남자는 극구 사양하는 분홍에게 더 많이 먹으라고 권하더니, 모짜르트 방에 가서 에이포 용지 한 장을 들고나와 한 웅큼의 과자를 종이에 얹어준다.


분홍은 자신의 짐작을 확인해보고자 한다.


“아까 얘기하시던 여자분, 사모님이란 분이시죠?”


분홍도 워낙 아주머니로부터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그렇지 정식으로 ‘사모님’을 아는 것은 아니다.


“아주 미인이세요.”


남자는 가타부타 ‘사모님’의 미모를 칭찬한다. 아까 두 사람의 대화는 심각해 보였는데, 남자가 사모님의 미모를 칭찬하는 걸로 봐서 캐시 뮤직의 꽁지머리 남자 체제는 당분간은 흔들림 없이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분홍은 안심이 되었다. 너무 많은 변화는 분홍에게도 피곤하다.


분홍은 오케스트라 방으로 들어와 하얀 종이 위의 삼베과자를 의자 위에 올려 놓고 한 조각 더 집어먹는다.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노래 연습을 위해 반주 엠알(MR)을 튼다.


-싱글벙글 고시원, 다음 화로 이어집니다-

분홍이_밤.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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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4화. 딸랑딸랑 자판기 커피. +1 15.10.25 1,503 2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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