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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임의 글 공장입니다.

싱글벙글 고시원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드라마

완결

홍차임
작품등록일 :
2015.10.23 23:35
최근연재일 :
2016.04.02 21:40
연재수 :
38 회
조회수 :
69,239
추천수 :
969
글자수 :
181,952

작성
15.11.07 08:57
조회
1,103
추천
23
글자
7쪽

7화. 첫 유혹.

DUMMY

“지비도 여기 들어와 살어.”


“네? 여기 고시원이요?”


“여기 얼마나 좋아. 방 안에 화장실 다 있고, 밥도 삼시 세끼 다 주고. 점심은 아무 때나 먹고. 아침은 6시 40분부터 먹어. 나도 잠을 자야지! 어떤 년들은 꼭 새벽에 네 시에 전화해서 하수구 막혔다고 지랄을 하지. 그게 어디 내 탓이야?”


“한 달에 얼만데요?”


“59만원.”


검은색 소파에 분홍과 나란히 앉아 보라색 슬리퍼를 발 끝에 걸고 까닥거리는 아주머니는 '59만원'이라고 말하고나더니 마치 어린아이가 어른에게 거짓말을 하고 딴청을 하는듯한 표정으로 다른 쪽을 바라본다.


“헤에?!”


분홍은 놀란다. 지금 사는 원룸보다 무려 14만원이 더 비싼 액수이다. 수업이 별로 없는 때는 지금 사는 원룸 월세 45만원을 내는 것도 힘에 겨운 게 분홍의 처지이다.


“좀 비싸네요...”


"삼시세끼 내가 다 해주는데? 그게 돈으로 따지면 얼마야. 거기다가 방 안에 뜨슨 물이 다 나오고. 방마다 화장실, 샤워기, 다 있다니까?! 여기 살던 누구냐, 양 교수님이 있어. 사진을 보여주드라고. 그랬더니 이쁘자앙~ 하게 생긴 년 사진이 있지. 그렇게 좋은 여자를 만날 줄 누가 알았나. 여기 처음 올 때는 그 양반 거지도 그런 거지 꼴이 없었지. 내가 안 받을라고 했어. 그런데 여기 밥 먹고, 또, 여기가 학교랑 얼마나 가까워. 그러니깐 따악 안정이 돼가지고 재혼을 했지.”


“교수님이요?”


“여자가 성악을 한대나 모래나. 이혼하자마자 여기 와가지고, 저래가지고 사람 구실도 못하게 생겼었다니까. 이제는 안정이 돼서 학교에서 뭐... 뭐뭐뭐... 주임인가 뭔가 아무튼 좋은 교수가 돼가지고 재혼까정 했지. 사람은 뭐니뭐니해도 삼시세끼를 딱딱 챙겨먹어야지. 돌아다니면서 먹어봐. 제대로 된 음식이 있냐. 다 쓰레기같은 음식에 돈만 쳐들지.”


아주머니는 오늘따라 ‘안정’이라는 말을 유독 많이 하고 있었다.


분홍은 ‘내가 곧 서른인데, 고시원에서 사는 것이 과연 안정일까?’ 라고 생각했지만 말하진 않았다.


분홍이 생각하기에도 아주머니의 정신없는 말들 가운데에서도 밥에 관한 말은 공감이 갔다. 밥을 한 끼 사먹으려면 요즘엔 아무리 싸도 6천원이다. 7천원짜리 밥도 질이 나쁘지 않다면 감사하게 먹어야 할 때가 많다. 운좋게 5천원짜리 밥도 가끔 있지만 주황색 깍두기 반찬 하나, 맹물 같은 오뎅국에 밥먹는 걸 감수해야 한다. 다행히 분홍은 하루에 세 끼를 다 먹지는 않는다. 하루에 밥값으로 만원만 쓴다해도 한 달이면 식비가 30만원이다. 먹는 일은 어린 시절 목욕탕 가듯이 일주일에 한 번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런 셈법이라면 어쩌면 아주머니 말처럼 이 고시원에서 사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분홍이 이 아주머니에게 경외심이 생겼던 것이 바로 그 점이기도 했다. 삼시세끼 먹을 밥을 짓는 것은 그 자체로 어려운 일이거니와 그것도 수십 명의 밥을 짓는다는 것은 대단한 생활력이 아니면 안 되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지하 연습실 화장실 변기에 물을 부어대며 자주 청소하는 것까지 생각하면...


“식사를 할 수 있는 거야 정말 좋지만, 저는 물건도 많고 아끼는 책상도 있고... 고시원에 살기는 힘들 것 같아요. 방이 좁은 편이지요?”


“......”


분홍에게 대답할 시간을 주지 않거나,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는 아주머니가 이번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이내 평소보다 작은 목소리로 다시 시작한다.


“그래도 다른 데보다는 여기 방이 훨씬 커. 그리고 지비가 온다고 하면 내가 코나 방을 주지. 방을 정하는 것도 내가 다 해. 코나 방은 왜 그런지 몰라도 다른 방보다 더 커. 건물 짓는 사람이 뭔가 잘못 알고 착각을 했나보지? 하이튼, 이 고시원을 잘 아는 애덜은 이모, 코나 방 주세요, 코나 방 주세요, 요런다니깐? 요즘 것들 여우 같어. 에헤헤헤헤.”


‘코너 방’이 크다는 말에 분홍은 혹하는 마음이 든다.


'좀더 큰 방에 삼시세끼?'


그러나 이내, 큰 맘 먹고 샀던 원목 책상과 얼마전 중고로 구입한 냉장고가 떠오른다. 행거에 걸린 옷들도. 절로 고개가 저어진다.


“어휴... 저는 안 될 것 같아요. 짐이 많아요. 독립을 한 지가 좀 오래돼서, 물건이 불기 시작했어요.”


“혼자 사는 여자가 짐이 많으면 뭐 얼마나 많다고? 냉장고가 커? 냉장고 같은 건 아깝지.”


“네. 굉장히 커요.”


분홍의 냉장고는 사실 '굉장히 크지' 않다. 혼자 쓰기에 넉넉한 정도이다. 하지만, 냉장고 싸이즈로 쐐기를 박아놔야 아주머니의 유혹이 멈출 거라는 생각이 들어 그녀는 과장을 한다.


분홍의 집은 서울인데 지방대를 가야했다. 그래서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기숙사 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런데 소심한 구석이 있는 분홍에게 네 명이 한 방을 쓰는 기숙사 생활은 고역이었다. 글을 쓴다면서 밤에도 불을 끄지 않는 문예창작과 룸메이트는 그렇다고 쳐도, 매일같이 과음을 하고 들어와서 술주정으로 꼭 울고불고하는 룸메이트는 정말 참을 수가 없었다. 돈을 생각하면 기숙사에 살아야했지만, 학교 공연을 할 때면 특히 더 예민해졌던 분홍은 어느날 공연을 며칠 앞두고 폭발을 하고 말았다.


“너희들은 잠도 안 자니?”


그녀의 누적된 피로로 인한 포효는 단 한 문장이었다.


평소에 그냥 넘어가던 분홍이었기에 그런지 한 번 불만을 표시하자, 룸메이트들이 급격히 분홍을 불편해했다.


“야, 이 미친년아. 술좀 그만 쳐먹어!” 라고 소리지르는 사람은 주변을 불편하게 하지 않았다. 하지만 참다참다 한 마디를 내뱉은 분홍은 룸메이트들을 불편하게 했다.


분홍은 3학년이 되면서 아르바이트를 더 해서라도 혼자 살아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그때부터 고시원 또는 원룸에서 혼자 살기 시작한 것이 스물아홉 지금까지 혼자 살게 된 것이다.


수업하러 여기저기 돌아다녀도 돈벌이가 잘 되지 않고, 코러스 일은 많이 하려고 해도 기회가 별로 없다.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하신 뒤 마음은 더 무거워졌다. 고시원에 살면서 밥값도 아끼고 전기요금, 수도요금 같은 생활비도 줄이고 싶고, 유혹의 언어 '안정', 다 좋다. 하지만, 서른 살을 앞두고 대학생 때 살았던 고시원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무언가 전투 중 후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아주 큰 후퇴인 것만 같았다.


하지만 보라색 고무 슬리퍼를 신은 아주머니는, 분홍을 볼 때마다, 고시원에서 사는 일의 매력에 대해서 이야기를 풀어놓곤 했다. 왜냐하면 분홍은 누런 개가 악보에 오줌을 쌌을 때도 개 주인인 자신에게 화를 내지 않았기에 아주 믿을만한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 리얼리즘 코미디 <싱글벙글 고시원> 다음 화로 이어집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보라색.jpg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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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99 Nuan
    작성일
    16.03.13 16:14
    No. 1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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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벙글 고시원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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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9화. 감자조림. 15.11.29 757 20 12쪽
8 8화. 반값 요금. +1 15.11.08 793 24 13쪽
» 7화. 첫 유혹. +1 15.11.07 1,104 23 7쪽
6 6화. 캐시 뮤직. 15.11.05 1,172 25 13쪽
5 5화. 나를 훔쳐보는 너의 둥근 눈. 15.10.27 1,301 26 9쪽
4 4화. 딸랑딸랑 자판기 커피. +1 15.10.25 1,502 29 12쪽
3 3화. 보라색 쓰레빠. +2 15.10.25 1,481 30 8쪽
2 2화. 미숙 씨의 열정. +2 15.10.24 2,457 32 12쪽
1 1화. 7만원의 경건함. +6 15.10.24 5,377 48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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