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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임의 글 공장입니다.

싱글벙글 고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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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홍차임
작품등록일 :
2015.10.23 23:35
최근연재일 :
2016.04.02 21:40
연재수 :
3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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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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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9
글자수 :
181,952

작성
15.11.05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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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6화. 캐시 뮤직.

DUMMY

캐시 뮤직의 품격은 화장실에서 시작된다.


화장실에서는 라벤다 향도 아닌 것이 허브향도 아닌 것이 어떤 화학적인 냄새의 방향제가 걸려 있었다. 그것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칙’하고 액체를 분사했다.


천연향이 아니면 어떤가, 화학적 냄새이면 어떤가, 음악 연습실 화장실이 그 정도면 황송하다.


더군다나 보라색 슬리퍼를 신은 아주머니의 특별 관리로 화장실은 깨끗하기 그지 없었다. 변기에 하도 물을 뿌려대서 변기에 앉았다가 엉덩이에 물이 묻는 일이 잦았다. 처음엔 물 묻는 게 기분이 나빴지만 그게 청소할 때 뿌린 물이 안 마른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 분홍은 젖은 엉덩이도 감사했다.


분홍이 이용해 본 연습실들의 화장실들은 한 마디로 가관이었다. 어떤 연습실은 화장실이 좌변기인 데다가 물을 내리는 시설이 없어서 이용객이 플라스틱 양동이에 물을 모아 바가지로 퍼서 변기에 부어야 했다. 그나마도 준비된 바가지가 너무 작아서 바가지가 내려치는 물의 힘이 부족해서 난감했었다. 또다른 연습실은 전통 시장 길 골목에 있었는데, 그 연습실의 화장실은 눈으로 봤을 땐 분명히 깨끗해 보이는데 늘 대변 냄새인지 하수구 냄새인지 모를 고약한 냄새가 났다.


또 어떤 연습실은 화장실 창문 유리가 깨져 있어서 일을 볼 때마다 밖에서 누가 안을 들여다 볼까봐 신경이 쓰였다. 정말 최악인 건 그렇게 유리가 깨져 있는데 주인이라는 사람은 너무나 연습실에 신경을 안 써서 유리 깨졌다는 말을 하는 것도 웬지 망설여졌었다. 그 주인장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은 그 사람을 귀찮게 만드는 일처럼 손님이 미안해해야 할 판이었다. 문의 전화 받는 목소리가 귀찮은 투여서 망설이다가 시간당 요금이 다른 데보다 천원정도 싸서 이용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분홍은 후회가 됐다. 어떤 화장실은 너무 좁아서 들어가서 문을 닫고 볼일을 보기 위한 적당한 몸의 위치를 잡기도 불편했다.


그런데 캐시 뮤직 화장실에는 양변기가 두 개나 있었고, 무엇보다 방향제 냄새가 났다!


그것만으로도 족했다.


“으악! 얘! 야! 왜 이래?! 저리 가. 어머 어떡해! 어... 언니!!”


분홍은 놀라 소리친다.


누런 개는 분홍의 악보집 위에다 오줌을 눈다. 분홍이 검은 색 소파 위에 악보집을 올려놓고 물을 마시고 있는 있는 사이, 누런 개가 다른 데도 아닌 파일 위에다 오줌을 싼 것이다.


분홍은 놀라서 슬리퍼 신은 아주머니를 찾는다. 1층으로 올라갔지만 보이지 않는다. 반층을 다시 올라가니 아주머니는 화장실에서 걸레를 빨고 있는듯 쪼그리고 앉아 뒷모습을 보이고 있다. 앉은 자세라 바지가 당겨져 허리춤 위로 맨살이 반 뼘정도 보인다.


“언니, 개가 오줌을 쌌어요! 제 악보에!”

“응. 그래?”


아주머니는 슬로우로 일어나더니 놀람을 억누르는 표정으로 걸레를 들고 내려간다. 분홍도 쫓아내려간다.


그녀는 누런 개와 오줌에 젖은 파일을 한번씩 쳐다보더니 딱 한 마디를 내뱉는다.


“이- 년이?!”


그리고 또 한 마디를 했다.


“진짜 쌌네, 써억을 년.”


‘아, 진짜 연습실 주인이랑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아주머니는 악보집 표지를 걸레로 두어 번 휙휙 닦았다. 분홍이 악보집을 펼쳐 보니 개 오줌이 스며들어 악보의 가장자리가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하얀 악보의 가장자리가 자잘한 커브형으로 물결을 치며 젖어 있었다. 오줌 냄새가 심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분홍은 비통한 표정으로 악보집을 들고 서서 아주머니가 자신에게 사과를 하기를 기다렸다. 왜냐하면 개는 사과를 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말 없이 나가버렸고 조금 이따 걸레를 들고 다시 나타났다. 걸레가 아까와 다른 점은 뜨거운 물로 빨았는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온다는 것이었다. 아주머니는 걸레로 분홍의 악보집을 다시 닦았다. 하지만 플라스틱 재질의 표지는 닦을 수 있을지 몰라도 안쪽 종이는 걸레로 닦을 수 없는 게 분명했다.


분홍은 인내심 있게 사과를 기다렸지만, 얼마 후 아주머니가 사과를 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결국 깨달았다. 이대로 그냥 지나간다면 마음에 한이 남을 것 같았다.


분홍은 사과를 받을 수 없다면, 그렇다고 화를 낼 수도 없다면, 유머를 구사하여 할 말을 하고 싶었다.


“언니, 이제 저한테 더 잘해 주셔야겠어요.”


분홍은 눈으로 찡긋 웃으면서 말했다.

아주머니가 분홍의 그런 눈을 쳐다봤다. 그녀의 눈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뭐? 지금 나한테 네 밑으로 가라는 거냐?”


그 무언의 대사를 읽자 분홍은 당황했다. 자신이 사과를 해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뭐... 언니가 원래도 저에게 잘 해주시지만... 그게...”


악보집은 뜨거운 걸레로 닦았지만 차가웠다.


품격 있는 캐시 뮤직엔 이상하게 손님이 없었다. 캐시 뮤직이 위치한 곳은 번화가와 가깝다. 젊은이들과 예술, 클럽의 메카인 삼국 대학교 인근에 위치한 캐시 뮤직. 한 가지 부족한 게 있다면 삼국 대학교 쪽 블록이 아닌 큰길 건너편이라는 점이었다. 하지만 삼국대 입구 전철역에서 그렇게 멀지 않고 악기 품질도 중간 이상은 되기에 분홍은 손님이 없는 이유가 궁금했다.


분홍은 개를 데리고 다니는 슬리퍼 신은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그녀의 많은 ‘오너’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이야기를 제일 많이 들은 사람은 황 사장이었다. 황 사장은 캐시 뮤직의 정교한 무인 시스템을 최초로 고안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남자였다. 그녀의 이야기 속에는 사모님도 자주 등장했다.


“그러니깐 사모님은 사장님 부인 말씀하시는 거예요?”

“미쳤어? 여기 사장이지.”

“사장님은 남자라고 하셨잖아요.”

“아휴! 사장의 동생이지.”


사장의 동생을 동생이라고 하지 않고 왜 사모님, 이라고 부르는지는 분홍으로서는 알 수 없었다. 슬리퍼 신은 아주머니는 황 사장에 대해서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날 황 사장은 대학생 손님들과 호프라도 한 잔 할 수 있는 인간적인 인물이었다. 또 어떤 날은 연습실이고 뭐고 다 놔버리고 달아난 무책임한 인간이었다. 분홍이 무책임하다고 맞장구를 좀 쳐줄라 하면, 그렇게 쉽게 욕을 해서는 안 되는 인간적인 사람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어떤 날도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었다. 황 사장은 일을 정확하게 하는 사람은 아니라 했다. 그래서 자신이 꼭 이 건물에 있어야 한댔다. 자신은 고등학교까지 나왔고 공책에 돈이 들어오는 날짜와 돈의 액수를 정확하게 적는다고 했다.


이름난 대학은 아니어도 대학을 나온 분홍은 세상 사람들이 모두 고등학교를 나오거나 대학을 나오는줄 알았었다. 그녀의 부모님은 각각 대학 졸업, 고등학교 졸업을 하셨다. 또 그녀의 언니도 대학을 졸업했다. 그리고 분홍의 친구들도 대체로 전문대든 4년제 대학이든 대학을 나왔다.


그랬던 그녀가 세상을 조금더 알게 된 것은 주민센터에서 노래교실 강사를 했을 때였다.


그녀의 수업을 신청한 주부 가운데 한임자 씨는 언제나 헤어 스타일이 정갈했다. 정갈한 정도가 아니라 매일매일 외출할 때마다 미용실에서 셋팅을 하나, 싶을 정도로 완벽했다. 또 화장도 은은한 게 세련되기 그지 없었다. 주부 학생들 가운데 화장을 하는 사람은 한임자 씨 외에도 많았지만, 주부 중에서는 슬림한 몸매에 우아한 화장, 아름다운 헤어를 가진 그녀는 단연 눈에 띄었고 강사 분홍에게도 다정한 편이었다. 아버지 사업이 망한 이후로 늘 쪼들렸던 분홍은 그녀에게서 부유함과 안락함의 냄새를 맡으며 향수에 젖곤 했다.


어느날 머리를 땋아 댕기 머리를 하고 펭귄처럼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있는 주민센터의 여자 공무원이 마지막 수업이 다가오자 수강생들로부터 의견을 받아오라며 분홍에게 설문지 한 묶음을 건네 주었다. 분홍은 설문지의 정체를 알기 위해 땋은 머리 공무원의 얼굴 표정을 살폈다. 그 얼굴은 학생들의 반응이 좋든 나쁘든 아무 상관도 없다는 무관심한 표정이었다. 분홍은 '설문지 결과가 좋든 나쁘든 다음 시즌 수업 개설은 하겠군'하며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도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자신에게 다정한 학생들 위주로 설문을 받는 게 유리하겠다 싶었다.


“임자 씨, 저 이거 받아야 되는데, 한 장만 써주세요. 설마 수업 재미 없다고 체크하시는 거 아니죠? 흐흐흐.” 하고 임자 씨에게 애교를 떨며 종이를 건넸다.


분홍의 애교가 무색하게 한임자 씨의 얼굴은 즉각 굳어졌다. 분홍은 친분을 이용해서 좋은 평가를 받고자 한 자신의 의도가 들킨 것 같아 챙피해졌다. 분홍은 말을 더듬었다.


“아..아..아..니, 그냥 편한대로 느끼신대로, 좋으면 좋았다, 싫으면 싫다... 그냥 쓰시면 돼요.”


임자는 이걸 꼭 자기가 써야 되느냐고 물었다. 왜 자기가 써야 하느냐고 다시 짚어 물었다. 분홍은 이유를 만들어 냈다.


“임자 씨가 안 빠지고 출석 잘 하셔서 그렇죠. 우리반 모범생이잖아요.” 라고 둘러댔다. 그제서야 임자의 얼굴은 조금 편안해지는 듯 했다.


임자 씨는 분홍이 들고 있던 싸구려 모하니 펜을 건네받아 모든 질문에 대해서 보기 중에 가운데 있는 ‘3번 보통이다’에 동그라미를 쳤다. 동그라미를 그리는 손에 힘이 들어가보였다.


그러더니 마지막 네모칸에 소감을 묻는 곳에 아주 커다란 글씨로 “제밋음니다 소고하새이” 라고 썼다.


임자 씨가 ‘수고’를 ‘소고’라고 쓰고 ‘시옷’을 쓸 때 왼쪽으로 가는 획보다 오른쪽으로 가는 획을 먼저 쓰는 것을 보고 분홍은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녀는 글을 잘 모르는 것이었다.


노래를 배우는 임자 씨 모습에서 그녀가 글자를 잘 못 읽는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었다. 가사를 잘 ‘읽고’ 곧잘 노래를 했을뿐만 아니라, 신나서 몸으로 박자도 타곤 하던 임자였다.


그날 이후로 분홍은 주부교실 아주머니들에게 설문지를 건넬 때, 집에 가서 쓰시고 다음 수업 때 내달라고 방법을 바꾸게 되었다.


분홍은 자신이 세상을 너무 몰랐던 걸까, 하는 생각에, 은행원 친구 윤아한테 그 날의 일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친구는 답했다.


“분홍. 생각해 봐. 소현이 어머님도 초등학교 나오셨지, 현정이 어머님도 초등학교만 나오셨지, 그리고 아마 미라 엄마도 중학교 중퇴정도 되실껄?”


분홍은 보라색 슬리퍼 아주머니 나이대에 여성이 고등학교를 나온 것은 고학력이라는 사실을 그때서야 알게 된 것이다. 아주머니는 자신이 고졸, 즉 고학력자라고 믿고 분홍에게 그 사실을 자꾸 어필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고보니 자신이 신발 가게를 할 때 돈을 자루에 담을 정도로 많이 벌었다는 이야기도 그녀에게는 중요한 이야깃꺼리였다. 그리고 딸이 은행원이라는 것도, 그녀에게는 너무나 중요하여 계속 반복해야 할 이야기 소재였다.


황 사장은 그날 들어온 돈이 얼마인지도 모르는 흐리멍텅한 사람이었는데, 그날 들어온 돈은 확실하게 공책에 펜으로 적어 오너에게 넘기는 자신은 고학력자의 기상을 이 건물에 떨치고 있는 것이었다. 분홍의 머릿속에 아주머니의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들이 조금씩 자리를 찾으며 질서정연하게 줄을 서는 것 같았다.


보라색 슬리퍼 아주머니는 개오줌 사건 당시 분홍이 화를 내지 않자, 분홍이 진정으로 믿을만하고 착한 처녀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분홍이 방 안에서 연습을 하고 있으면 문을 슬쩍 열어 자판기 커피를 넣어주는 일이 더욱 잦아졌다. 사용 요금을 낼 때 자신이 거스름돈 때문에 불편할까 봐 만원짜리 지폐 말고 천원짜리 지폐를 미리 챙겨와 내는 분홍이 마음에 들었다.


분홍은 주로 낮에 노래를 하거나 수업을 했는데 손님이 없는 캐시 뮤직은 낮에는 더욱 조용했다. 분홍이 왔을 때 문이 닫혀 있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땐 노란색 포스트 잇에 적혀 있는 전화 번호로 전화를 하면 아주머니가 계단을 타고 내려와 문을 열어주고 복도 불도 켜주곤 했다. 낮에 분홍만 있는 모습을 보고 분홍을 주인으로 착각하는 손님들도 생겨났다.


“마이크 잘 안 나오는데 다른 거 없어요?” 라든가, “화장실 어딨어요?” 또는, “주말에도 문 여나요?” 와 같은 질문이 분홍에게 이어졌다.


작은 친절은 베풀 수 있었으나 손님들의 요구가 가끔은 선을 넘기도 했다. 그럴 땐 귀찮기도 하고 관리 책임에 대한 덤태기를 쓸까 겁도 났다. 그렇지만 분홍은 캐시 뮤직을 마치 자기 연습실처럼 거의 혼자서 이용하는 이 상태가 만족스러웠다. 그래서 귀찮음정도는 흔쾌히 이기고 다른 손님들에게 친절히 답변을 해주었다.


- 월세 서바이벌 로맨스 <싱글벙글 고시원> 다음 화로 이어집니다. 고맙습니다. -

분홍이.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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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4화. 딸랑딸랑 자판기 커피. +1 15.10.25 1,501 29 12쪽
3 3화. 보라색 쓰레빠. +2 15.10.25 1,481 30 8쪽
2 2화. 미숙 씨의 열정. +2 15.10.24 2,457 32 12쪽
1 1화. 7만원의 경건함. +6 15.10.24 5,377 48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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