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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임의 글 공장입니다.

싱글벙글 고시원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드라마

완결

홍차임
작품등록일 :
2015.10.23 23:35
최근연재일 :
2016.04.02 21:40
연재수 :
38 회
조회수 :
69,253
추천수 :
969
글자수 :
181,952

작성
16.02.07 15:03
조회
842
추천
19
글자
9쪽

15화. 두 지배자의 갈등.

DUMMY

"그 인간이 나보고 뭐라고 했는줄 알아?"

"뭐라고 했는데요?"

“개는 옆에 끼구 돌아다니면서 사사건건 뭐하는 거냬.”

“......? 진짜 그렇게 말했어요?”

“그랬다니까?!”


꽁지머리 남자가 아주머니한테 그런 말까지 했다는 게 분홍은 믿기지 않았다. 처음엔 그가 분홍의 인사도 잘 안 받고 해서 좀 기분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이야기를 나눠보니,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부드럽고 여린 면도 있는 남자였다. 그런 그가 아무리 화가 났기로소니 아주머니가 개를 키우는 것까지 트집을 잡고 인신공격성 말을 했다는 게 잘 믿기지 않았다.


“지가 뭔데 왜 전기판에 손을 대? 대기를!”


아주머니의 말에 따르면, 지하 연습실 벽에 있는 전기판에 남자가 손을 대는 바람에 검은색 건물 전체의 전기가 나갔다는 것이다. 요즘 들어 전기가 나가는 일이 두 번이나 있었는데, 처음엔 몰랐지만 알고보니 그 남자 탓이었다는 것이다. 분홍도 남자의 새로운 연습실 관리 방식에 애로 사항을 느끼기도 했었다. 캐시 뮤직에 손님이 없는 건 사실이지만, 꽁지머리 남자는 아예 전기를 차단시켜 놓고 손님이 와서 입구 차단기 스위치를 직접 올리고 방을 이용하게 했다. 사용 시간을 손님이 직접 적고 서랍에 요금을 넣어놓는 캐시 뮤직의 셀프 운영 방식에서 또 한 번 난이도가 높아졌다. 이것이 수학 문제라면 미지수 엑스만 있다가 와이까지 생겨난 셈이다.


분홍은 그 전원 스위치 바를 올릴 때마다 뭔가 폭발하거나 불꽃이 튀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을 느꼈었다. 그리고 방의 순서는 모차르트 방-오르간 방-바이올린 방 순서인데, 그 차단기 바의 순서는 바이올린 방- 모차르트 방-오르간 방 순서였다. 한 마디로 뒤죽박죽이라 더 어려웠다. 남자가 견출지에 방 이름을 적어 전원 스위치 바 위에 붙여 놓았지만 그렇다고 안심이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 자주 쓰다보니, 분홍은 그것에도 적응을 하였다.


불편한 것은 사실이지만, 과연 지하 차단기 하나 때문에 이 6층 건물 전체의 전원이 나간단 말인가? 하고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분홍은 그 이야기를 아주머니에게 하지는 못하였다.


지하의 검은색 소파에 앉아서 다리를 꼬고 발 끝에 보라색 슬리퍼를 걸고 까닥까닥 흔들며 자판기 커피를 뽑아 마시면서 손님들을 상대하고 관찰하고 험담하기를 반복하던 아주머니가 오늘 부로 지하 연습실 출입금지를 당했다고 한다.


출입금지라니.


꽁지머리 남자가 아주머니더러 다시는 지하에 오지 말라고 했단다. 밤에 문을 닫고 화장실 청소를 하는 등 관리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하는 아주머니에게, 관리고 뭐고 다 자기가 알아서 할 테니 다시는 나타나지 말라고 남자가 고함을 쳤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마디, 개나 옆에다 끼고 다니면서 뭐 하는 거냐고, 비아냥거리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왜 그렇게까지 사이가 안 좋아지신 거예요?”

“전기를 내리고 난리잖아!”


아주머니의 고함에 분홍은 씹고 있는 밥알이 더 딱딱하게 느껴진다. 사람의 관계가 그렇게 한 번에 나빠질 리는 없는데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그날 이후로 그러는 거 같어.”

“......”

“그저껜가, 어뜬 애가 의자 하나만 달라고 하니까, 그치가 거기서 가져가세요, 이러대? 그래서 내가 그랬지. 의자는 손님한테 갖고 가라고 하믄 안 되고, 직접 방에다 딱 갖다가 주는 거라고. 그랬더니, 아줌마는 왜 자꾸 여기 오는 거예요? 이러는 거야. 내 기가 막혀. 나참. 허!”


분홍은 남자의 마음도 이해가 갔다. 자신의 영역에 예전 관리자가 자꾸 나타나면 불편할 수도 있다. 거기다가 일하는 방식에까지 이래라 저래라 한다는 건 기분 나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분홍이 이 캐시 뮤직을 쭉 지켜본 걸 토대로 생각해보면, 남자 자신을 위해서도 아주머니와 ‘잘 지내는’ 것이 필요해 보였다. 이 캐시 뮤직은 아주머니가 잘했든 못했든 손수 관리해오던 곳이니, 아주머니에게 말만 조금 곱게 하면, 남자는 관리 책임을 덜 수 있어 편할 것이다. 그것이 분홍이 생각하는 인지상정이요, 현명함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상생의 길을 가지 않았다.


분홍은 겨우 남자와 상생의 길을 가기로 합의를 봤다. 그런데 아주머니와 남자는 상극이 되었다. 그리고 바로 지금, 남자는 전화로 분홍을 찾는다.


‘나한테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걸까?'


분홍은 괜히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뭐,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걱정은 하지 말자.’


마음을 다잡았다.


분홍은 식사를 마치고 6층 식당에서부터 지하 연습실까지 계단을 타고 내려간다. 6층이 밥을 먹는 곳이 아니라면, 분홍은 감히 그렇게 높은 곳을 걸어올라다닐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갑이 늘 가벼운 분홍에게 2천원짜리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이기에 그 6층이 그리 힘들지 않았다. 고시원 각층의 분위기를 흘끔거리면서 오르내리는 맛도 있었다.


각층에는 하얀색 신발장이 있었는데, 어떤 층에는 같은 하얀색이지만 유심히 보면 디자인이 다른 신발장이 있었다. 분홍은 그런 것을 예리하게 알아보는 자신에게 만족해 했다.


'이 고시원은 꽤 오래된 고시원이야. 저런 가구들의 교체 흔적을 보면...'


“무슨 일로......?”


분홍은 연습실로 내려오자마자 꽁지머리 남자에게 물었다.


“아, 예. 제가 내일 어딜좀 일찍 가봐야 해서요, 내일만 연 선생님이 연습실 문좀 닫아 주시면 안 될까요?”


‘올 게 왔구나. 언젠가 이럴 줄 알았어. 이 연습실이 원래 좀 힘들다니까... 그러니까 아줌마랑 잘 지냈어야지...’


“아, 저, 내일은 제가 저녁 때 출강이 있어서, 안 될 것 같은데. 어쩌지요?”


분홍에게 내일 출강따위는 없다. 하지만, 분홍은 아직 이 남자의 편의를 봐줄 만큼 남자에게 마음을 많이 내어줄 수가 없다.


“아... 그러세요. 그럼 어느 요일에 출강이 없으세요?”


분홍은 어이가 없었다. 아예, 분홍에게 공짜 아르바이트를 시킬 셈인 듯 했다. '복사기좀 쓰게 해줬다고 연습실 일을 시키는 거야?' 분홍은 생각했다.


분홍이 아주머니의 편의를 알게 모르게 봐준 것은 이 연습실에서 그녀가 누리는 자유에 대한 보답이기도 했다. 여러 대의 씨씨티비,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처럼 바로바로 나타나는 아주머니의 행동은 부담스러웠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이곳은 ‘셀프’였다. 분홍이 모차르트 방을 쓰든, 오케스트라 방을 쓰든, 오르간 방을 쓰든 그건 분홍 맘이었다. 아주머니가 없는 때는 입구의 검은색 소파에서 잠시 누워서 쉴 수도 있었다. 연습실에 손님이 워낙 없어서 화장실 다녀오면서 계단이나 복도에서 노래를 불러도 뭐라 할 사람이 없었다. 아주머니를 도와준 건 분홍이 누리는 그 자유에 대한 보답이었다. 그래서 다른 손님들에게 응대도 하고, 마이크도 바꿔주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남자가 나타난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그가 나타난 이후로, 분홍의 악보 파일은 분실되었고, 소파에 눕기는 커녕 소파는 남자의 차지가 되어 앉지도 못했다. 요금은 예전과 똑같이 내는데 말이다. 거기다가 분홍이 남자와 화해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이럴 땐 정중한 거절이 상책이다.


“도와드리고 싶지만, 제가 강사라서 시간이 들쭉날쭉해서 안 되겠네요. 죄송해요.”

“아... 네... 어쩔 수 없죠.”


남자는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제가 여기서 오래 버텼던 사람으로서 팁 하나 드릴까요?”


분홍은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와서 그런 말을 꺼냈는지 스스로 놀란다.


“제가 아주머니랑 친하거든요.”


분홍은 친하다,는 말이 이렇게도 쓰이는구나, 생각한다. 불편한 사이일수록 말은 본래의 뜻을 잃어간다.


“아주머니가 성격이... 조금 힘든 면도 있지만, 어쨌든 문 열고 닫고 기본적인 관리는 하셨으니까, 두 분이 잘 지내시고, 아줌마한테 조금만 살갑게 대해드리면, 사장님도 한결 편하실 것 같아요.”


남자의 얼굴은 쓰디쓴 다크 초콜렛을 입 안에 녹이고 있는 사람처럼 점점 찡그려진다.


- 세입자 서바이벌 리얼리즘 코미디 로맨스 <싱글벙글 고시원> 다음 화로 이어집니다. 감사합니다. -

보라색.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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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6화. 캐시 뮤직. 15.11.05 1,172 25 13쪽
5 5화. 나를 훔쳐보는 너의 둥근 눈. 15.10.27 1,302 26 9쪽
4 4화. 딸랑딸랑 자판기 커피. +1 15.10.25 1,503 29 12쪽
3 3화. 보라색 쓰레빠. +2 15.10.25 1,482 30 8쪽
2 2화. 미숙 씨의 열정. +2 15.10.24 2,458 32 12쪽
1 1화. 7만원의 경건함. +6 15.10.24 5,377 48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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